(공포) MOS.Q (part.1)
꽤 오래 되어 보이는 세피아 차량 안에 두 명의 남자가 빵을 씹으며 전방을 주시하는 모습이 보인다. 오래 씻지 못했는지 얼굴에는 투명한 개기름이 가득했고 까칠한 수염 또한 입 주위를 에워싸면서 자라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만은 일반 사람들의 평범함이 아니었다. 우물거리며 운전대에 앉은 남자가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알. 정말 저기에서 나타나는게 맞아?"
남자의 굵은 두 눈썹이 역팔자로 꺾였다. 그 옆에 앉은 남자는 조용히 빵을 씹으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를 가만히 주시하기만 했다. 그들의 차 안. 구석탱이에는 붉은 색의 조그만한 간이 사이렌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고 앞 좌석 위에 있는 좁은 공간에는 경찰 뱃지가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점차 가열 되어 가고 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에어컨 없이 차 안 속을 버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자 역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만하세요. 그러니까 말년 반장이라는 소리를 듣죠.”
그 말이 상당히 자극적이었는지 남자의 주름이 더욱 깊어지며 조수석에 앉은 남자를 째려보며 말했다.
“김창수. 너 이 새끼 많이 컸다?”
김창수. 28세의 나이로 현직 경찰이다. 딱히 빽도 없는 그가 이런 류의 일을 하게 된 사정은 그리 특별하지가 않았다. 그저 ‘공무원이니까.’ 라는 타이틀이 컸겠지만 몸으로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의 성격일지도 몰랐다. 아슬아슬하게 턱걸이 식으로 경찰 시험에 합격한 후 실기 시험에는 모두 만점을 받은 그였다. 서에서 그는 보기 드물 정도로 여러 가지 단증의 소유자였고 사격 솜씨 또한 알아주는 수준이다. 김창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창문을 올리고 에어컨 버튼을 눌렀다.
“예전 신입 때의 제가 아니지요. 에어컨 좀 틀죠. 더워 죽겠어요.”
박반장. 앞서 김창수가 말했듯 서에서 말년 반장으로 통하는 그다. 본인 스스로 그 별명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아 보이나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듯 하다. 오랜 반장 생활로 인해 히스테리성이 많이 짙어졌지만 반장 생활 10년이라는 경력만큼은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안돼. 임마. 기름 값이 남아 도는 줄 알어?”
박반장은 다시 창문을 내리며 에어컨 버튼을 눌렀다. 인공적인 차가운 공기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후끈한 열기가 다시 차 안을 가득 메운다. 김창수는 질렸다는 듯 좌석에 몸을 크게 뒤로 뉘우며 중얼거린다.
“내 참. 사람들 심리라는게 웃기지도 않지..”
“별 수 있나. 당장 지구가 망하게 생겼는데 누군들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을까.”
거대한 운석이 지구로 충돌하는 설이 나돌기 시작하고 실제로 그것이 입증이 된 순간부터 대한민국의 범죄율이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표면 그대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런 식으로 일탈 행동을 함으로써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며 지내는 사람들이 엄청난 수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에 맞서 정부의 대응도 강경해졌다.
‘실탄 소지.’ 라는 파격적인 제시를 내놓으며 일탈 행동을 일삼는 이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총알들을 선사해주라는 공문을 내린다. 오래전 폐지가 되었었던 ‘사형’ 이라는 제도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지만 범죄율은 그와 반비례적으로 큰 폭으로 늘어나 버렸다. 그들 대부분의 생각이 ‘어차피 망한 것 무슨 미련이 있는가.’ 라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범죄를 일삼는 것인지도 몰랐다. 덕분에 죽어나가는 것은 경찰이나 법에 관련되어 종사하는 이들이었다. 한 때는 꿈의 직업이기도 했던 검사, 판사 등. 바로 이 ‘사’ 자로 끝나는 직업이 각광 받던 시절이 점차 지나가고 있었다.
“반장님! 오늘도 조졌다니까요?”
김창수가 갑갑한 표정을 지으며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신경질적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박반장도 조금은 수긍했는지 이마에서 비오듯 흐르는 땀을 거칠게 닦아내며 창문을 닦기 위해 버튼을 눌렀다.
지이잉-
낮은 기계음이 나며 서서히 닫히는 창문. 박반장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에어컨 버튼을 누르고 차를 몰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무거운 한숨을 쉬며 힘없는 눈으로 전방을 주시하다가 문득 차안에 들어온 조그만한 녹색의 모기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창수는 손으로 허공을 저으며 말했다.
“아무리 세상이 미쳤다고 해도 이런 모기 새끼들이 있나..”
그 태도에 박반장은 김창수의 손을 저지하며 말했다.
“냅둬. 이 새끼들도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데 그걸 죽이냐. 어차피 몇 년 뒤면 같이 죽을 운명 아니냐.”
“아이구. 성군 납셨네. 야 모기야. 어서 반장님 피나 빨아라. 너를 위해 기꺼이 피를 헌납해 주시겠댄다.”
그 말을 이해하기라도 했는지 녹색의 조그만한 모기가 운전대를 잡은 박반장의 팔뚝에 앉아 몇 번 더듬거리더니 대가리를 쿡 박고는 피를 빨기 시작한다. 김창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그만한 몸에 거침없이 빨려 들어가는 피 때문인지 금방 그 얇디 얇은 몸이 통통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김창수는 그것을 보고는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내 참.. 오늘 하루 살아보겠다고 이 놈도 발버둥치는데.. 이 놈에 사람들이란..”
박반장은 맛있는 식사를 하고 있는 모기를 힐끔 보고는 말했다.
“어쩌겠냐. 환경이 사람들을 변하게 만드는데. 밥이나 하고 가라.”
“아, 매번 미안한데..”
“그런 말을 할거면 조금은 미안한 표정을 짓고나 말하지? 이 빌어먹을 놈.”
박반장의 말에 김창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씨익 웃었다. 누런 이가 햇볕을 받아 반짝거린다.
“그래도 사모님 음식 솜씨가 워낙 좋아야죠. 반장님은 참 결혼 잘했습니다.”
“그럼, 내가 딴 건 몰라도 마누라 음식 솜씨는 자랑할만하지.”
“하아, 부럽습니다.”
“너도 하지 그래.”
김창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지금 와서 누가 결혼을 하며 미래에 대한 설계를 합니까. 그냥 하루하루 탈 없이 보내는 거에 만족해야지. 사람들이 너무 욕심을 부리면 안되요. 참, 반장님 그거 아세요?”
김창수의 물음에 박반장은 힐끔 그를 보고는 팔뚝을 바라보았다. 어느샌가 식사를 마친 모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예의 평범한 모기처럼 가려운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자신의 행동이 잘한 것이라고 여긴 박반장은 입을 열었다.
“뭐?”
“원래요. 우리들의 피부색이 이러지 않았데요. 눈이랑요.”
“미x놈. 너 요새 사이비 종교 믿냐?”
박반장의 말에 김창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쉬고는 한손으로 턱을 괴고는 말했다.
“그냥.. 재밌으라구요.”
“실 없는 놈.”
그렇게 얼마나 차를 몰았을까. 박반장의 집 앞에 도착한 이들은 주위를 한번 훑어 보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요즘 같이 흉흉한 세상에는 방심하면 그대로 골로 갈 수가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등록을 하며 세금을 내면 개인용 화기를 소지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그것이 꼭 옳은 판단이 아닌 것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살상 무기를 구할 수 있는 탓에 1분 1초를 마다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이 일상이다.
고요한 빌라 단지. 드문드문 보이는 창문들은 모두 검은 색의 커튼이 내리쳐져 있다. 도로에 다니는 사람들이라고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박반장과 김창수의 모습을 멀리서 주시하던 한 사람이 둘에게서 위협을 느끼지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다른 쪽으로 걸어간다. 김창수는 그 사람에게 두 손을 들며 의사를 표현하자 그 사람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다른 쪽 골목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가자. 배 꺼지겠다.”
그런 김창수의 어깨를 잡으며 박반장이 빌라 내부로 들어갔다. 퀘퀘한 냄새가 나는 빌라 계단. 잘사는 집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내부가 많이 더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관리자가 더 이상 출근을 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느리게 계단을 올라 3층에 도착한 박반장은 굳게 잠겨 있는 문의 도어락을 열고 번호를 입력한다.
삐. 삐. 삐-
하이톤의 기계음이 나며 도어락이 철컥하고 열린다. 이어 박반장은 문 위쪽에 마련된 지문인식장치에 엄지 손가락을 가만히 대었다.
삐-
다시 기계음이 나며 문이 완전히 개방되었다. 박반장은 바로 문을 당겨 집안으로 들어간다. 김창수 역시 그 뒤를 바짝 따랐다. 살짝 더운 열기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후각을 찔렀다.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으며 거실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도중 부엌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민 박반장의 부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창수는 부인을 향해 공손히 인사 했다.
“사모님 매번 신세만 집니다.”
김창수의 말에 부인은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됐어. 맛있게 먹어주는 창수씨가 있는데 뭘. 어서 손이나 씻고 와. 밥 다됐으니까.”
가족의 없는 그에게는 이런 말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닿을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아련한 가정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 주로 김창수가 박반장의 집을 들리는 걸지도 몰랐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박반장 부부는 김창수에게 더욱 살갑게 대해주었고 덕분에 김창수는 거의 하숙생 수준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니 당신은 나보다 이 놈을 더 챙기나?”
박반장의 말에 부인은 연하게 눈웃음을 지었다. 세월의 흐름을 이길 수 없는 듯 얼굴에는 잔주름이 가득하다. 그러나 젊었을 적에는 꽤나 미인 소리를 들었을 법한 외모다. 저런 나이를 먹고서 기품과 정이 넘친다. 김창수는 그런 박반장을 부러워했다. 집에서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 사람과 행복하게 지낸다는 것이 가정을 꾸려본 적이 없는 김창수에게는 큰 선망의 대상이었다.
“당신은 알아서 하잖아요.”
“저 놈이 이집을 한 두번 오나.. 나 원 누가 손님이고 주인인지.”
둘의 모습을 보며 김창수는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대에서 손을 깨끗이 씻고는 걸려 있는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내었다. 다시 화장실에서 나와 거실에 있는 식탁으로 걸어가 비어 있는 의자에 앉는다. 아직도 보글거리는 찌개들과 몇가지 밑반찬이 눈에 들어온다.
“차린건 없지만 맛있게 먹어.”
부인의 말에 김창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잘 먹겠습니다.’ 를 시작으로 식사를 한다. 밖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가정의 맛이 입안 가득 퍼지는 것 같아 마음에 안정이 생기는 것 같다. 허겁지겁 식사를 하는 김창수의 등을 박반장이 두드린다.
“야, 많으니까 천천히 좀 먹어. 누가 따라오냐?”
“그래. 창수씨. 천천히 먹어.”
“아 마이느거 어더케요.”
입안 가득 음식물이 고인 상태로 말을 하는 김창수의 모습에 박반장 부부는 작은 웃음을 흘리며 못말린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이어 식사를 시작한다. 15분에서 20분이 지나자 완전히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빌라 옥상에 올라 지상을 바라보며 담배를 물었다.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빌라 단지. 언제부터 이렇게 변해버린 것일까. 김창수는 옅은 붉은 색의 지붕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담배를 깊게 들이 마쉰다.
“반장님.”
“응?”
“이 일. 계속 할거에요?”
김창수의 물음에 박반장은 한동안 담배를 피우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같은 세상에 우리 같은 사람 하나하나가 소중한때야. 나 힘들다고 그만두면 다른 누군가가 죽게 되겠지. 나는 그런게 싫어. 그리고 내가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기도 하니까 딱히 그만두고 싶지는 않아. 왜? 넌 아니야?”
“..모르겠어요. 계속 해야 될지.. 내가 과연 적성에 맞는 일을 하고는 있는건지. 이왕 죽는거 하고 싶은 거라도 다 하고 죽고 싶거든요.”
김창수의 우울한 얼굴을 가만히 보던 박반장이 입을 열었다.
“그럴땐 가슴이 시키는 것을 해.”
“예?”
“너처럼 무언가가 불분명하게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땐 가슴속에서 정말 원하는 것을 하란 말이야. 지금 당장 하고 싶은것을 우선적으로 해. 물론 여러 가지 조건이 따르겠지만 지금 선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찾아서 해봐.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는거야. 나도 좋아서 이 일을 시작한줄 아냐? 하다보니까 생활에 익숙해지고 점차 보람도 느끼게되고 누군가를 지킬 수 있다는 사명감 때문에 하는거지. 세상에 본인이 정말 원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해? 열에 여덟 아홉은 그렇지 않을걸?”
박반장의 말에 김창수는 다 타버린 꽁초를 밖으로 던져버린다. 날아가는 꽁초를 보며 눈살을 찌푸린 박반장이 말했다.
“너 임마. 벌금이야.”
“어때요. 반장님이 던졌다고 하면 되지. 걸릴 일도 없어요.”
“그런 안일한 생각 때문에 우리나라 범죄가 그렇게 증가하는거란 말이야.”
“예~ 예~”
휘파람을 불며 옥상 문을 열며 내려가는 김창수의 뒷모습을 씁쓸한 표정으로 본 박반장은 다시 한 번 휑하게 변해버린 동네를 바라보고는 김창수의 뒤를 따랐다. 느리게 계단을 내려와 집문을 연 박반장은 쇼파에 편하게 앉아 TV를 켰다.
[서울시 10명의 무장한 괴한이 묻지마 살인으로 시민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 방송을 보고 계시는 일대에 사시는 분들은 바깥 출입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앵커의 낭랑한 목소리. 채널을 돌리며 화면을 바꾸지만 나오는 거라고는 뉴스가 전부다. 금새 흥미를 잃은 박반장은 아무런 채널에 맞추고서 멍하니 바라본다. 그의 옆으로 부인이 따뜻한 커피를 가져와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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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반장의 집을 나선 김창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걸어간다. 같은 빌라 단지 내에 있기 때문에 걸어가도 충분한 거리다. 5분 남짓이 지나자 자신의 집에 다다른 김창수는 느릿하게 계단을 올라 2층에 있는 잠긴 문을 열었다.
삐-
남자 혼자 사는 집안이라 그런지 특유의 냄새가 집안에 가득하다. 그러나 그것이 익숙해져버린 김창수는 거실에 불을 키고서는 아무렇게나 옷을 낡은 쇼파에 걸치고서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구석에 있는 샤워기로 온 몸을 씻기 시작한다.
쏴아아-
김창수의 고심을 털어주기라도 하듯 차갑고 거센 물이 온 몸을 강타한다. 그것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김창수는 대충 몸을 씻고 나서 물기를 닦고는 냉장고 쪽으로 걸어가 반찬보다도 많은 맥주 캔 하나를 꺼내 가져와 쇼파에 털썩 힘 없이 앉았다.
딸깍-
청량한 소리와 함께 맥주 캔을 따자 하얀 기포가 꾸물거리며 위로 올라온다. 김창수는 그것이 아까운 듯 단숨에 맥주 캔의 반을 비워낸다.
“크~”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TV를 키는 김창수. 역시 보이고 들리는 것은 각종 사고에 대한 뉴스 채널 뿐이다. 금새 흥미를 잃은 김창수는 TV를 끄고 쇼파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빌라가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나타내 주기라도 하듯 전체적으로 누렇게 변해버린 천장이 눈에 보인다. 길게 한숨을 쉰 김창수는 쇼파 여기저기를 더듬거리며 오디오 리모콘을 찾아 전원 버튼을 눌렀다.
“사랑이 무엇인지~ 아픔이 무엇인지~”
저음의 보이스가 매력적인 남자 가수 목소리가 방안에 낮게 울린다. 김창수는 그것을 가만히 들으며 눈을 감았다.
삐리리리리. 삐리리리-
꽤나 시끄러운 핸드폰 소리에 신경질적으로 눈을 뜬 김창수는 인상을 찡그리며 거실 식탁에 놓여 있는 핸드폰 쪽으로 걸어간다. 주인이 오고 있다는 것을 감지라도 하듯 그 소리가 점차 커져가는 것 같다. 김창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핸드폰을 받았다.
“네.”
“....”
“..여보세요?”
상대방에게서 아무말이 없자 인상을 크게 구긴 김창수는 종료 버튼을 누르기 위해 핸드폰을 귀에서 천천히 떼기 시작한다. 그러던 그 때.
“창수씨.. 창수씨..”
낯익은 소리다. 김창수는 얼른 핸드폰을 들어 말했다.
“사모님?”
“창수씨.. 흐윽..”
박반장의 부인이 우는 소리에 직감적으로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느낀 김창수는 벌떡거리는 심장을 다그치며 쇼파로 걸어가 앉았다.
“사모님 왜 그러세요? 차분히..”
“빨리.. 빨리 창수씨.”
뚜. 뚜-
그렇게 연락이 끊겨버린 통화. 김창수는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액정 화면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흐느끼는 부인의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든 김창수는 허겁지겁 어제 벗어두었던 옷을 입고서 밖을 나섰다. 계단 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짙은 푸른색이다. 핸드폰 시계를 보니 새벽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김창수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 박반장의 집으로 걷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한 번도 있었던 적이 없는 이례다. 5년 넘게 박반장과 그 부인을 알고 지냈지만 이런 적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김창수는 가슴이 점차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긴거라면? 박반장에게 뭔가가 생긴 거라면? 애써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김창수는 빠르게 걸으며 얇은 자켓 안쪽에 있는 권총이 잘 있는지 확인했다.
저벅. 저벅-
김창수의 발소리가 유독 빌라 단지에 크게 들리는 것 같다. 빠르게 계단에 오른다. 이어 박반장의 집 앞에 도착한 김창수는 긴장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주변을 먼저 살폈다. 특별히 이상이 있는 거라고는 없었다. 이어 김창수는 문을 서서히 열었다.
철컥-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 느릿하게 문을 열며 박반장의 집으로 들어서는 김창수. 그리고 신발 벗는 곳 바로 앞에 주저 앉아 있는 부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부인에게 다가간 김창수는 부인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왜 그러세요?”
“차.. 창수씨..”
그것은 차마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공포에 젖은 표정이었다. 예사 일이 아닌 것을 느낀 김창수는 부인이 가리키는 문 쪽으로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며 자켓 안쪽에 있는 권총을 뽑았다. 걸음을 옮기는 도중에 김창수는 부들거리며 자신을 멍하니 보고 있는 부인에게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화장실에 계세요.”
“....”
“어서요.”
단호한 김창수의 말이 조금은 효과가 있었는지 부인이 느릿하게 몸을 이끌어 화장실로 들어갔다. 김창수는 마른 침을 삼키며 부인이 가리킨 문 쪽으로 다가갔다. 조용히 귀를 대고서 안에 뭔가가 있는지 확인을 하는 김창수. 하지만 들려오는 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도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서서히 문고리를 잡아 문을 여는 김창수.
끼이익-
낡은 쇳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방안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뭔가가 김창수의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흉하고 징그러운 하나의 ‘알’ 이었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마치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았다. 김창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 다른 방문을 열었다.
끼이익-
특별히 의심을 살만한 것이 없는 방안이다. 다시 김창수는 ‘알’이 있는 방으로 돌아와 멀리서 유심히 바라보았다. 살색으로 된 거대한 핏줄덩어리들이 ‘알’을 단단히 감싸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 바닥으로는 ‘알’이 충분히 설 수 있도록 뭔가 끈적한 것이 붙어 있었다.
“이게 대체..”
여지껏 살아오며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것이 눈 앞에 펼쳐지자 김창수는 어찌할 바를 모른채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 시선을 받으며 위 아래로 움직이며 숨을 쉬는 ‘알’.
“창수씨..”
어느새 다가온 부인이 ‘알’을 가리키며 말했다. 놀란 심정을 애써 진정시키려는 것이 역력했다. 부인은 떨리는 목소리가 김창수의 귀로 전해진다.
“일어나 보니.. 그 사람이 없어서 찾는 도중에 왠 알이 하나가 있는거야. 궁금한 마음에 가까이 다가갔지. 근데.. 저 알에서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거야.”
“반장님..요?”
김창수의 물음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부인은 느릿하게 걸어가 알 근처로 다가갔다. 부인의 접근을 알았는지 그럴수록 알의 위 아래 반복운동이 점차 거세져간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든 김창수는 그것을 가만히 보며 권총을 알 쪽으로 겨누었다. 부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무턱대고 권총을 쏴 버릴수도 없는 일이다. 만약 반장이 저 안에 있다면 어떻게해서라도 꺼내야만 했다.
“사모님 일단 물러나세..”
쩌억. 쩌억-
김창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위아래로 크게 요동치던 알이 좌우로 크게 갈라지더니 연한 붉은 색의 액체가 방안 에 가득 흩뿌려졌다. 참기 힘든 악취 때문에 인상을 구긴 김창수는 부인을 데려오려고 했지만 알 가운데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것을 보며 걸음을 멈추고 그것을 멍하니 바라봐야만 했다.
“뭐, 뭐야..”
거대한 몸짓과 여러 쌍의 다리들. 붉은 색의 액체가 몸 주위에서 뚝뚝 거리며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족히 2미터가 되어보이는 신장 위로는 기다랗고 날카로운 침을 가진 작은 대가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몸 뒤로 서서히 돋아나는 여러쌍의 투명한 날개막. 그것은 사람이라고 표현하기에는 거리가 먼 흡사 ‘모기’와도 같은 형상이었다.
“여..보?”
그 모습을 믿기 힘들다는 듯 주저 앉은 부인. 자신의 몸에 끈적한 액체로 범벅이 된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김창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장 이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결단을 내리기가 힘들었다. 그간 겪었던 일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 그런지 머리가 굳어버린 것 같았다.
키이이-
낮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바로 옆에 주저 앉은 부인을 바라본 ‘괴물’은 그대로 고개를 부인의 몸 쪽으로 돌렸다.
푸욱-
소리와 함께 날카롭고 긴 침이 부인의 머리에 그대로 꽂힌 모습이 썩 보기만은 좋지 않았다. 그리거 이어 쭉쭉거리며 부인의 몸이 급속도로 말라비틀어져가고 있는 것이 김창수의 눈에 들어왔다.
“꺼.. 으..”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그대로 말라 비틀어진 부인. 한끼의 식사를 가볍게 마친 ‘괴물’은 이어 자신을 가만히 보고 있는 김창수에게 서서히 다가간다.
“씨.. 18.. 뭐냐고..”
덜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총구를 들어 ‘괴물’의 머리쪽을 향해 겨눈다.
키이이-
김창수를 머잇감으로 인식한 ‘괴물’은 점차 빠르게 다리를 움직여간다. 서서히 운동신경이 되돌아오는 것 같은 모습이다. 김창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어쩌지 못하고 뒤로 서서히 물러난다. 그와 마찬가지로 날카로운 침을 빛내며 김창수에게 거침없이 다가가는 ‘괴물’. 그 속도가 점차 빨라진다. 이대로 있다가는 당하기 십상이다.
키이이이-
목표물과 가까워지자 흥분했는지 ‘괴물’이 앞으로 뛰어올라 김창수를 향해 날카로운 침을 내밀었다.
“흐앗!”
본능적으로 몸을 튼 김창수는 그대로 다른 방 구석에 쳐박힌 ‘괴물’을 보고 권총을 들었다.
“떨지마.. 떨지마 18!”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부들거리는 손 때문에 목표물을 정확히 조준하기가 어려웠다. 김창수는 부인과 박반장의 안위보다 지금 이런 현실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가 더 궁금했다. 왜 하필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냐는 것인지 아무나 잡고 묻고 싶을 정도로 갑갑했다.
키이이-
그러나 ‘괴물’의 입장에서도 필사적이다. 꾸물대며 다시 몸을 일으킨 ‘괴물’은 전과는 비교도 안되는 속도로 김창수에게 접근해간다.
쉬이잉-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온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챈 김창수는 몸을 바닥에 납작 엎드리고는 감으로 허공을 향해 권총을 갈겨댔다.
타앙. 타앙. 타앙-
뜨겁고 끈적한 뭔가가 김창수의 몸을 완전히 뒤덮었다. 더럽고 찝찝한 기분이 오감을 자극한다. 하지만 완전히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총알의 힘을 이기지 못한채 몸이 흉하게 바스라진 ‘괴물’은 자신이 태어났던 곳에 아무렇게나 쳐박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키..이이-
살아보겠다고 온 사지를 바들거리며 몸을 일으키려고 하지만 충격이 너무 큰 탓에 그러지 못한다. 김창수는 얼굴 가득 묻은 액체를 닦아내고 약하게 버둥거리는 ‘괴물’에게 다가간다.
찰박. 찰박-
진하고 깊은 액체들 때문에 발이 완전히 잠기는 것 같다. 서서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김창수의 움직임을 포착했는지 작은 ‘괴물’의 얼굴에 달린 눈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인다. 그것을 가만히 본 김창수는 권총을 들어 ‘괴물’의 머리를 향해 겨누었다.
키이이- 키이이이-
극도로 불안에 젖은듯 ‘괴물’의 소리가 점차 거세져간다. 김창수는 이를 악물고서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후우.. 후우.”
거칠게 숨을 몰아쉰 김창수는 힘없이 바닥에 걸레짝처럼 늘어져버린 ‘괴물’을 가만히 주시했다. 사람의 몸에서 어떻게 저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동안의 쌓아온 지식이나 상식으로 이 상황을 이해해 보려고해도 도무지 납득이 가지가 않는 상황이다.
찰박. 찰박.
끈적거리는 액체가 발목을 단단히 부여잡는 듯 하다. 김창수는 인상을 쓰며 더러운 방에서 나왔다. 나오는 도중 힐끔 고개를 돌려 박반장의 부인의 시체로 시선을 가져간다.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시체는 더 이상 김창수가 알고 있는 온화한 미소를 짓던 부인이 아니었다. 액체 속에 두둥실 떠다니는 것 같은 모습이 부인의 현 모습이라니.. 김창수는 애써 방문을 닫고서 느릿하게 걷는다.
찰박. 찰박.
꿈인가 생시인가. 익숙치 않은 느낌과 경험으로 인해 김창수의 머리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계적으로 화장실로 들어와 옷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샤워기를 들어 온 몸을 소독하기라도 하듯 한동안 멍하니 액체들을 씻어낸다.
쏴아아.
화장실 배수구에는 붉은 색의 낯선 색이 가득 고여 있다. 츄우우웁. 있는 힘껏 액체들을 빨아들이는 배수구. 어느정도 샤워를 마친 김창수는 물기도 닦지도 못한채 다시 거실로 걸어와 굳게 닫힌 방문 앞에 서성거렸다. 묘하고 역한 냄새가 희미하게 후각을 찌르고 있다.
“대체.. 이게..”
몸을 돌려 비어 있는 방을 바라본다. 잔뜩 찌그러지고 푹 꺼진 벽이 눈에 들어온다. 키이이- 위이잉- 소리가 금방이라도 옆에서 들릴 것만 같은 공포감에 휩싸인다. 부르르 몸을 떤 김창수는 거실을 둘러보며 식탁 위에 놓인 부인의 핸드폰을 들고서 자신의 서로 전화를 건다.
뚜루루루-
긴 신호음만 들리기만 할 뿐 받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김창수는 끊임없이 전화를 걸고 기다린다. 제발 누구라도 받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뚜루루루-
“여보세요?”
한참 뒤에야 받은 목소리에 김창수는 헛바람을 들이켰다. 조금이나마 기댈 곳이 생긴거라고 여긴 김창수는 다급히 숨을 들이키고 말했다.
“누구시죠?”
“예?”
상대방은 영문을 모른다는 듯 반문해왔다. 어느 누가 경찰서에 전화를 걸고서 상대방의 신분을 물어본단 말인가. 그제야 김창수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신분을 밝히며 말했다.
“아, 김창수 형사님이시군요.”
아는지 모르는지 상대방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무미건조’라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김창수는 차분히 말을이었다.
“지금 밖은.. 괜찮나요?”
“밖이라고 하시면..?”
“아니, 그러니까..”
김창수는 이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난데없이 큰 알덩이에서 거대한 모기가 나와 사람을 빨아먹고 나를 해치려고 했기에 총알을 먹여주었다고 말을 한다면 상대방은 과연 믿어줄까? 어떻게 이 사실을 전해야만 할까. 김창수는 머뭇거리며 핸드폰을 꽈악 쥐었다.
“저.. 여보세요?”
“그게.. 그러니까요.”
“형사님, 이런 식으로 새벽에 전화하셔갖고 한다는게 이런 장난입니까?”
김창수의 답답한 태도에 상대방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김창수는 할 수 없이 큰 숨을 몰아쉬며 그 짧은 동안 자신이 겪은 일들을 남김없이 털어 놓았다.
“....”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무거운 침묵 뿐. 김창수는 이를 악물고 핸드폰이 부서져라 꽈악 쥐었다.
“..아무래도 취하신 것 같군요. 형사님.”
역시나. 상대방은 곧이 곧대로 김창수의 말을 믿지 않았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 김창수는 말없이 종료 버튼을 눌렀다.
뚜. 뚜. 뚜-
긴 종료음이 나면서 액정이 점차 어두워져간다. 점차 투명해져가는 액정으로 자신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김창수는 열려 있는 방으로 들어가 구석에 있는 장롱을 열어 대충 아무거나 꺼내 입었다. 체격이 꽤 푸짐했던 박반장의 옷이 그대로 맞을 리가 없겠지만 나체로 밖을 돌아다니는 것보다 나을 거라고 김창수는 생각했다.
“총.. 총.”
거대 모기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무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김창수는 장롱 안을 샅샅히 뒤지기 시작한다. 사계절이 가지런히 정돈 되어 있는 옷들 하나하나를 들추며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낸다. 하지만 김창수가 원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멈출 수 없는 일이다. 생명이 걸린 이런 일에서는 총의 역할이 무엇보다 거대할지도 모른다.
“어딨지.. 어딨어..”
2개의 장롱을 샅샅히 뒤져도 나오는 것은 옷가지들 뿐이다. 김창수는 다른 한쪽에 놓인 간이 테이블로 다가가 아래에 있는 서랍들을 하나씩 열어제끼기 시작한다. 하나 하나 열 때마다 나오는 거라고는 가정에 필요한 물품들이 전부다.
스르륵. 스르륵.
그렇게 마지막 서랍을 열었을 때 아직 쓰지도 않은 총알 몇십 발이 눈에 들어온다. 김창수는 그것을 소중히 챙겨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리고는 바닥에 깔린 얇은 잠바를 몸에 걸치고 안주머니에 총알들을 거칠게 털어 넣었다. 남은 것은 총이다. 김창수는 아까 식탁 의자에 걸쳐진 박반장의 잠바를 떠올리고는 빠르게 그쪽으로 걸어갔다.
저벅. 저벅.
고요한 거실에는 김창수의 묵직한 발소리만 가득하다. 서둘러 잠바를 뒤지는 김창수.
“그렇지.”
딱딱한 금속의 물체가 만져지는 것을 느낀 김창수는 서둘러 빼내어 총의 상태를 점검한다. 쓰지도 않은 총알이 6개가 들어 있다. 비장한 표정으로 그 총을 허리춤에 꽂은 김창수는 TV 쪽으로 걸어가 전원 버튼을 눌렀다. 낯선 기계음이 나면서 켜지는 TV. 하지만 보이는거라고는 파란 화면에 비치는 ‘방송 준비 중’ 이라는 말 뿐이다.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김창수는 힐끗 닫혀 있는 방문을 바라보았다.
“반장님.. 사모님..”
자신에게 허물없이 대해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바로 몇 시간 전만해도 김창수와 박반장은 옥상에서 이런저런 잡담을 나눌 정도였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김창수는 무거운 호흡을 고르며 방문을 향해 고개를 90도로 숙이고서 집을 나섰다. 왠지 이대로 있다가는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저벅. 저벅.
김창수는 멍한 얼굴로 더러운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아직 20분 밖에 지나지 않은 시각이다. 사람들이 일어나려면 이른 시각이다.
“가만..”
김창수는 뭔가가 생각난 듯 걸음을 멈추고 빌라 위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고요한 빌라 내부에는 퀘퀘한 냄새와 고요한 정막만이 가득할 뿐이다.
“그 정도 소음이나 총소리가 나면 경찰에 신고할 법도 한데..”
그 말대로 방금전에 났었던 소리들은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런 새벽에서는 절대로 날 수 없는 소리의 크기다. 김창수는 의심적인 표정으로 위의 계단 사이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보이는거라고는 작은 틈 사이로 쇠로 이루어진 봉들만이 전부다. 김창수는 다시 어두운 표정으로 1층으로 내려와 자동적으로 자신의 집으로 걷기 시작한다.
“대체 뭐가.. 무엇이 반장님을 저렇게..”
아직도 생생한 그때의 감촉을 느끼며 김창수는 골몰했다. 하루 종일 박반장과 붙어 있으면서 이상한 점은 느끼지 못했었다. 하루만에 사람이 저렇게 변할수도 있는 것인가? 김창수는 어제의 일을 기억해내려고 애쓰기 위해 이마에 주름을 잡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어제.. 반장님이.. 차.. 모..기? 녹색의 모기..?”
분명 그것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색의 모기가 아니었다. 게다가 낮에도 버젓이 차안에 들어와 박반장의 피를 빨아댔다. 그리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모기. 김창수는 미간을 좁히며 어제의 모기에 대해 가만히 생각하기 시작한다.
“녀석의 공격으로 인해.. 변할수도 있는걸까. 녀석은 피를 빨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바이러스를 안에다가 투입시킨 것은 아닐까..”
어렴풋이 모기의 습성에 대해 기억해낸 김창수는 모기 안에 있는 바이러스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해낸다. 그 바이러스 때문에 물린 사람들은 가려움을 느끼는 것이고 긁어대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데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도 있단 말인가?
챙그랑.
김창수의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다. 빌라 단지를 걷는 도중에 창문이 깨지는 소리에 퍼뜩 고개를 돌린 김창수는 바로 뒤쪽 5층쯤 높이에서 뭔가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는 멍해졌다.
위이잉-
거대한 날개를 끊임없이 움직여대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 그것은 아까 김창수의 손에서 생을 마감했던 모기와 같은 모습이었다. 부르르. 몸에 돋아나는 소름들을 느끼지도 못한채 김창수는 멍한 얼굴로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그런 김창수의 작은 행동을 감지했는지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던 거대 모기가 고개를 홱 돌려 김창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위이잉-
본능적으로 위험하다고 느낀 김창수는 그대로 몸을 돌려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집 쪽으로 최대한 빠른 속도로 뛰어가기 시작한다.
위이잉-
거대 모기도 자신의 먹잇감을 이대로 놓치기 싫은 듯 엄청난 속도를 내며 김창수의 뒤에 금방 따라 붙었다. 엄청난 바람소리에 힐끔 고개를 돌린 김창수는 거대한 모기의 모습에 대경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저 날카로운 바늘에 찔릴 것이라고 판단한 김창수는 오른쪽 발을 디딤대로 삼아 왼쪽으로 크게 돌면서 바닥에 굴렀다.
위이잉-
순식간에 일어난 행동에 거대 모기는 관성의 법칙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앞으로 주욱 날아가버린다. 절호의 기회를 놓칠리 없는 김창수는 바로 앞에 있는 자신의 빌라 계단으로 미친 듯이 뛰어오르기 시작한다.
“허억. 허억.”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멈출 수 없다. 단숨에 3~4개의 계단을 뛰어오르며 자신의 문 앞에 다다른 김창수는 재빨리 문을 열기 위해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눌러댄다.
위이잉-
그러나 거대 모기의 집념도 만만치 않았다. 계단을 통해 있는 창문 틈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 모기는 가만히 김창수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그 행동에 김창수는 당황해 마지막 비밀번호를 실수로 다른 번호를 눌러버린다.
삐- 삐- 삐-
경보음이 울리며 문이 열리지 않는다.
“낭패다..”
그렇게 중얼거린 김창수는 굳게 잠긴 문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열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문을 열려면 5분이상은 기다려야만 한다. 평소에는 몰랐었던 기능이 지금에서는 정말 거지같은 것이 아닐 수가 없다.
위이잉-
김창수의 상황을 파악하기라도 한듯 거대 모기는 고개를 다시 밖으로 빼내 아래로 빠르게 내려간다. 계단을 통해서 올라올 것이라고 생각한 김창수는 이를 악물고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그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굳게 잠겨 있는 옆의 문과 위로 뻗어 있든 계단들.
“제길..”
하는 수 없이 김창수는 잠바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단단히 쥐었다.
위이잉-
저 멀리 아래에서 거대 모기의 날개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김창수는 침을 꿀꺽 삼키고서 조심스레 권총을 장전하고 거대 모기가 올만한 경로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두근. 두근.
점차 빨라져만가는 심장 박동 소리를 애써 무시하기 위해 심호흡을 하지만 헛수고다.
위잉-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이대로 달아나기에는 너무 무모하다. 김창수는 이를 악물고서 권총 손잡이가 부셔져라 꽈악 쥐었다.
철컥.
그때 구원의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굳게 잠겨 있었던 문이 열리면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는 김창수에게 말했다.
“어서 들어와요.”
“..예?”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김창수는 선뜻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 행동이 답답하게 느껴졌는지 여자는 맨발로 걸어나와 김창수의 손목을 잡고 단숨에 집안으로 들였다.
위이잉-
때맞춰 계단에 오른 거대 모기가 점점 닫혀지는 문을 보고 그대로 달려드는 것이 김창수의 눈에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쿠웅!
그리고 이어지는 묵직한 굉음.
“어맛!”
여자의 당황한 음성이 김창수의 귀에 울린다. 김창수 역시 비오듯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지 못한채 문에 온 몸을 몸에 기대 거칠게 숨을 몰아 쉬었다.
쿠웅! 쿠웅!
몇 번 전해지는 묵직한 소리를 끝으로 더 이상 충격이 이어지지 않았다. 김창수는 조바심이 난 마음을 달래며 문에 달린 조그만한 렌즈로 밖을 바라보았다.
위이잉-
거대 모기는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문 앞에서 동상처럼 서있는 모습이 김창수의 눈에 가득 찬다. 얼른 고개를 뗀 김창수는 몸을 돌려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여자를 보고 멍하니 서있었다. 그 시선을 느낀 여자는 놀란 기색을 얼른 지우고서는 말했다.
“그렇다고 당신을 완전히 믿은 것은 아니에요.”
자신을 구해주었던 표정과는 완전히 다른 표정으로 말하는 여자를 보며 김창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몸을 돌려 거실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일단 앉아요.”
170은 되어 보이는 잘 빠진 볼륨 있는 몸매가 김창수의 눈에 가득 잡힌다. 이 와중에도 여자를 훑어보는 자신을 작게 원망하면서 김창수는 쭈뼛거리며 여자의 뒤를 따랐다. 식탁을 사이로 두고 의자에 앉은 두 사람. 긴 생머리를 뒤로 넘기며 여자는 김창수를 보며 물었다.
“대체 저게 뭐죠?”
“..그걸 알면 제가 이러고 있겠습니까.”
“제가 볼땐 모기 같은데.. 아닌가요?”
“맞아요.”
“근데 어떻게.. 저런 크기가?”
여자의 투명한 눈동자가 두려움에 젖어들어가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김창수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서는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다만..”
“다만?”
“어제.. 근무를 하고 있던 도중에 녹색 모기가 제 상사를 무는 것을 봤거든요. 그래서 다음날 아침에 집에 가보니까 거대한 알로 되어 있더군요. 거기서 태어나는 것이 바로 저 모기구요.”
김창수의 말에 여자는 할말을 잃은 표정으로 가만히 김창수를 바라보았다. 살면서 이런 미인과 마주하는 일이 거의 없었던 김창수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애꿎은 손만 만지작거렸다.
“아니, 당신 말이 거짓말 같지는 않아요. 눈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눈이요?”
“그렇다쳐요. 그럼 밖에는 저런 놈들이 하나가 아니라는 말이 되는건가요?”
“그렇겠죠. 저도 괴물로 변해버린.. 상사를 제 손으로 죽이고 오는 도중에 저 밖에 있는 놈을 만난거니까요.”
그 말이 꽤나 충격으로 와닿았는지 여자의 눈이 토끼처럼 휘둥그레졌다.
“..죽여요?”
“그게.. 제가 살려면 어쩔 수 없는..”
김창수를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기분이 드는 것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타앙- 총 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명히 들리며 고통스러운 얼굴로 서서히 말라비틀어져가는 사모님의 모습과 더 이상 사람의 모습이 아닌 괴물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제 손으로.. 이제는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그 분들에게 받았던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제 손으로.. 죽였어요.”
죄책감을 떨쳐내고픈 마음에 김창수는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강하게 쥐어뜯으며 식탁에 강하게 머리를 쳐박았다. 꽤 커다란 소리에 살짝 놀란 여자는 얼른 손을 뻗어 김창수의 양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아니에요.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제가 그 분들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
멍한 얼굴로 바닥을 보는 김창수를 가만히 보던 여자는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을 꺼내 컵에 따라 김창수에게 내밀었다. 조심스럽게 컵을 받아든 김창수는 단숨에 컵을 비워내고서 크게 심호홉을 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여자가 말했다.
“옆집에 당신 같은 사람이 살줄은 몰랐네요.”
“..예?”
“그냥.. 왠지 풍기는 모양새가 경찰 같아서요.”
“경찰 맞아요.”
그 말에 여자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사람을 볼 줄 아시네요.”
“뭐, 제가 하는 일이 그렇다 보니까..”
“하는.. 일이라면?”
여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돌렸다.
“아니, 됐어요.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니까.”
“그렇죠..”
김창수는 빈 컵을 만지작거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의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만약 눈 앞에 있는 여자까지 지켜야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것을 완전히 수행해낼지가 의문이었고 저런 거대한 것들에게 제대로 저항할 힘이 자신에게 있는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점차 무거워지는 어깨 때문인지 추욱 가라앉는 것 같다.
“이윤희에요.”
문득 들려오는 소리에 김창수는 멍한 얼굴로 자신 앞에 서있는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윤희라고 밝힌 여자는 한심하다는 듯 김창수를 내려다보며 똑바로 말했다.
“이.윤.희 라구요. 제 이름이요. 서로 간에 이름이라도 알아야 할거 아니에요.”
“아, 아. 김창수입니다.”
“김창수.. 촌스럽네요?”
“원장님이 그렇게 지어주셔서..”
“원장님?”
김창수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컵을 내밀었다.
“죄송하지만 물 좀 더 줄 수 있나요.”
빤히 김창수의 눈을 바라본 이윤희는 입술을 비죽 내밀고는 컵을 받아들었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난 김창수는 느리고 조심스럽게 문쪽으로 걸어가 문에 달린 렌즈에 고개를 숙였다.
“....”
까맣고 거대한 물체가 아직도 자리에서 죽은 듯이 서 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괜히 허탈한 마음이 생긴 김창수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식탁 위에 있는 물이 가득한 컵을 단숨에 비워냈다. 힘없어 하는 김창수를 가만히 보던 이윤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놈들에게 당할 바에 차라리.. 자살할까요?”
“자살..이라뇨.”
“왜, 그렇잖아요. 저런 징그러운 것들에게 당할 바에야 차라리 깨끗하게 인간다운 모습으로 죽는게 더 좋을지도 모르죠.”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꺼내는 이윤희를 가만히 바라보던 김창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안됩니다. 자살은 인간이 하는 행동 중 가장 비겁하고 어리석은 행동이에요.”
“무슨 근거로요?”
“..아무튼 안됩니다.”
김창수의 태도에 이윤희는 답답한 듯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말했다.
“이봐요. 지금 밖에 저런 놈들의 수가 정확하지도 않잖아요. 그런데도 꿋꿋하게 살아나갈 자신이 있다구요? 언제 어디서 당할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를 선뜻 도와줄 것 같아요? 세상이 이렇게 변해버린 마당에?”
“할 수 있어요. 분명 뭔가가 있을 겁니다.”
그 말에 이윤희는 매섭게 눈매를 좁히며 몸을 앞으로 내밀며 김창수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걸 장담하죠?”
“당신처럼 죽을 생각만 하는 것보다야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이윤희는 다시 몸을 원래대로 하고서 팔짱을 끼고 김창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라고 좋아서 이러겠어요? 그저 더러운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 뿐이에요. 어차피 몇 년 뒤면 이 지구는 망하잖아요. 그게 조금 더 앞당겨졌다고 생각하면되죠.”
“그래서 후회 없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할겁니다.”
김창수는 문득 박반장의 말이 떠올라 인상을 구겼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 그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김창수는 입을 굳게 다물고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다시 서에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아까와 같은 신호음이 울린다. 그 행동을 가만히 보던 이윤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방 쪽으로 걸어간다. 김창수는 하필 연락할 곳이 서 뿐인 것을 원망하며 가만히 신호음을 듣기만 한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길게 이어지는 수화음을 가만히 듣고 있는 김창수.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받아주기만을 바란다. 이 현실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위험을 공유하고 같이 헤쳐나가야하는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 사람들보다는 전문적인 인력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여, 여보세요?”
아까와 같은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서려 있었다. 김창수는 직감적으로 뭔가가 일어났다고 생각하고는 말했다.
“아까 전화를 걸었던..”
“아, 형사님!”
전과는 다르게 남자의 목소리에는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분명 뭔가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틀림 없다. 남자는 이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아깐 정말 죄송했습니다. 형사님의 말이 전부 거짓인줄 알았어요. 근데..”
“거기도 상황이 심각한가요?”
“..예에. 밖을 나갈 수가 없어요. 그나마 순찰 나갔던 대원들도 당한 모양이라.. 서에는 저 밖에 남지 않았어요. 다행히 모든 유리들이 쇠창살로 단단히 되어 있어서 녀석들이 들어오기는 힘들 것 같지만 그것도 시간문제라고 생각해요. 여기도 안전한 장소는 안될거에요.”
“그렇군요. 저도 옆집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근데 문 밖에서 녀석이 대기하고 있어서..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에요.”
그 말에 두 사람은 한동안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일단 알았습니다. 전화기로는 제가 잘 받지 못할수도 있으니 핸드폰 번호를 알려드릴게요.”
“예.”
통화가 끝나자 마자 몇 초 지나지 않아 문자 메시지가 김창수의 핸드폰으로 도착했다. 그것을 바로 받은 김창수는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난 뒤 한동안 멍하니 액정을 바라보았다. 바탕화면에는 박반장과 사모님이 찍은 사진이 김창수의 눈에 잡힌다. 이를 악물고서 고개를 돌린 김창수는 한숨을 쉬고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쨍그랑!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던 것도 잠시 크고 거친 소음이 김창수의 귀로 들려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날카로운 비명소리.
“꺄아악!”
이윤희가 방금 들어갔던 방이다.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킨 김창수는 그리 멀지 않은 방문을 거칠게 열고서 권총을 앞으로 겨누었다. 그곳에는 아까 보았던 비슷한 생김새의 거대 모기가 창문을 깨고 바닥에 주저 앉아 있는 이윤희에게 서서히 다가가고 있었다. 얇은 여러 쌍의 다리가 방바닥을 기면서 번뜩이는 침을 상하로 흔들며 다가가는 꼴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철컥.
김창수는 망설임 없이 권총을 들어 모기의 대가리 부분을 조준했다. 다행히 아까와 같이 손의 떨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철컥 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직감적으로 느낀건지 모기의 대가리가 고개를 획 들어 김창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노려보고 있다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그 시선이 느껴진다.
서서히 방아쇠에 손을 가져간다. 실수를 하면 안된다. 김창수는 심호흡을 하면서 제법 거리가 있는 모기 대가리를 뚫을 듯이 노려본다.
키이이-
그것이 직감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모기는 거대한 창문 쪽으로 슬금슬금 몸을 빼기 시작한다. 그 인간스러운 태도에 김창수는 저 놈을 쏴야하는지 놔줘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이대로 놔두었다가는 분명 다른 사람들을 해칠 것이 뻔하다. 쏜다면? 행여나 그 소음에 다른 녀석들이 오지 않을까? 아니다. 모기는 청각이 없다. 그 생각에 그친 김창수는 머뭇거림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키에에에에-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거대 모기가 비틀거리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하다. 붉은 액체를 폭포처럼 흘리며 고통스러워 하는 녀석을 가만히 보던 김창수는 방 구석에 있는 야구 방망이를 들고 녀석에게 빠르게 달려가 밀어내는 식으로 손을 주욱 뻗었다.
퍼억-
딱딱한 뭔가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거대 모기가 그대로 창문 뒤로 넘어가버린다.
키에에에에-
공중에 힘없이 떨어지면서 남은 몸뚱아리며 사지를 베베꼬는 녀석의 모습이 그리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급속도로 땅에 가까워지는 녀석.
파각-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몸이 산산조각나며 거대한 붉은 액체가 바닥에 가득 고이기 시작한다. 김창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야구 방망이를 힘없이 내려 놓았다.
“흐윽.. 흑.”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고 판단한 이윤희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며 몸을 떨고 있었다. 김창수는 말없이 그것을 보며 창문 양옆에 있는 어둡고 거대한 커텐을 치기 시작한다. 그러다 문득 모기는 검은색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챈 김창수는 커텐을 다시 제자리에 두고 휑하니 뚫려 있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위이잉-
상념에 잠기기도 잠시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오는 거대 모기 특유의 소리에 김창수는 얼른 몸을 돌려 이윤희를 강제적으로 일으켜 방문을 닫았다. 아직 그 사태에 진정이 되지 않았는지 이윤희는 작은 어깨를 떨며 김창수에게 안겨 있는 꼴이다. 아름다운 여성이 안겨 있는 상황이 남이 보면 부러울 법도 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낄수가 없다.
위이잉-
거대한 소리가 점차 크게 들려온다. 김창수는 다시 권총을 굳게 쥐고는 문에 기대었다. 이대로 녀석이 문을 부수고 거실에서 활보를 하게 된다면 그녀를 온전히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김창수는 이윤희를 조심스럽게 다른 쪽으로 밀어내고서 심호흡을 크게 했다.
위잉-
바로 지척이다. 이대로 문을 두드리거나 부순다면 그대로 튕겨나가버릴지도 모른다. 김창수는 느리고 조심스럽게 몸을 옆으로 틀어 문이 부서지거나 열림과 동시에 녀석에게 총알을 먹여줄 위치를 잡았다.
드르륵. 드륵.
문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위잉- 거리는 소리가 여러번 교차해서 들려온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서 눈을 감는다. 제발 이대로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평소에는 믿지 않았던 신에게 기도를 올려본다.
드르륵. 드득.
점차 그 강도가 약해져간다. 위잉- 소리도 점차 멀어져간다. 김창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거실 끝 쪽에서 두려운 토끼눈을 하고 있는 이윤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채 눈물도 닦지 않은 모습이 마치 길을 잃은 한 마리 새끼 사슴과도 같았다. 안아주고 지켜주고 싶다라는 보호 본능을 저절로 자극하는 여자다.
“후우..”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한 김창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았다. 하지만.
콰직!
그대로 돌아간 녀석이 아니었다. 한 번의 충격으로 문이 좌우로 갈라진 틈으로 거대 모기의 대가리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여자와 김창수를 번갈아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주루룩 소름이 돋은 김창수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시선이 마주친 녀석에게 망설임 없이 권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키이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기라도 했는지 녀석은 그대로 김창수를 바라보았다. 그 처연한 태도에서 자비를 바라고 있는것 같기도 하지만 이미 총알은 떠난지 오래다.
파각-
박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대가리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떡으로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몸은 완전히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파닥거리며 문을 거세게 압박해간다. 얇고 두 쪽이 난 문은 녀석의 무게를 온전히 버틸 재간이 없었다.
콰직-
마침내 문이 쪼개지며 대가리를 잃은 처량한 몸이 파닥거리며 거실을 빙글빙글 멤돌았다.
“꺄아악!”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녀석과 멀어지려고 발악을 하는 이윤희. 김창수는 더 이상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 창문 근처에 놓인 방망이가 생각나 그리로 빠르게 걸어갔다. 붉은 액체를 가득 머금은 방망이는 마치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듯 아침 햇살을 받으며 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크으..”
엮겨운 냄새와 끈적거리는 액체 때문에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올라 올 것 같다. 김창수는 얼른 방망이를 잡고 거실로 걸어간다. 끈적거리는 느낌이 손안 가득 느껴진다.
파다다다닥-
거칠게 날개짓을 하며 거실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대가리를 잃은 몸통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살아보겠다고 죽기 싫다고 말하는 것 같다. 김창수는 얼른 거대 모기에게 다가가 다리며 날개며 있는 대로 방망이를 내리쳤다. 빠각. 빠각. 거리는 소리가 여러차례 들리며 녀석의 움직임도 점차 둔해져간다.
파다닥-
마침내 완전히 움직임을 멈춘 녀석은 그대로 거실에 추욱 늘어졌다. 하지만 역한 냄새와 끈적거리는 액체 때문에 자리에 있기가 힘들었다. 김창수는 조심스럽게 문쪽으로 걸어가 몸을 숙여 렌즈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문 앞을 지키던 녀석은 보이지 않는다. 김창수는 거실 끝에서 무릎을 끌어안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이윤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얼른 이리로 와요.”
그 말에 이윤희는 힐끔 김창수를 올려다보기만 할 뿐 움직이지 못했다. 그녀 앞에 있는 거대한 것과 끈적거리는 액체 때문일지도 몰랐다. 김창수는 답답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끈적거리는 액체 위를 거침 없이 걸어가 이윤희를 강제적으로 안아들었다. 생각보다 가벼운 몸이었다.
“잔인한 말 같지만 지금처럼 행동하면 딱 죽기 쉬워요.”
이윤희는 멍하니 김창수를 올려보다 어린 새처럼 김창수의 가슴에 몸을 웅크렸다. 무거운 한숨을 내쉰 김창수는 여자를 들고서 빠른 걸음으로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퀘퀘한 냄새만 날 뿐 아무것도 들리는 것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온 김창수는 자신의 집으로 걸어가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차분히 누르고 문을 열었다. 남들이 맡으면 인상을 찡그릴법한 냄새지만 김창수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집의 냄새였다. 우선 품에 안겨 있는 여자를 쇼파에 눕히고서 방을 돌아다니며 밖을 살폈다.
보이는거라고는 역시 평소와 같은 빌라의 모습이었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군데군데 깨진 창문이나 뚫린 벽이 있다는 것이다. 이대로는 안심하기 힘들다고 생각한 김창수는 시내에 있는 서를 생각하고는 다시 거실로 걸어왔다. 멍한 얼굴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이윤희에게 다가가 양 어깨를 거칠게 잡고 흔들어대는 김창수.
“이봐요! 정신차려요!”
“....”
“이봐요!”
김창수의 외침에 눈에 서서히 생기가 돈 이윤희는 멍하니 김창수를 바라보다가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며 김창수에게 안긴다. 한시가 다급한 상황에 빨리 움직여야만 하지만 자신의 품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괜찮아요.. 괜찮아.”
우는 그녀의 머리와 등을 가볍게 쓸어내려주며 위로해주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 김창수는 그 행동을 계속 반복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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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는 현관문을 나서며 아직 두려움에 젖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윤희에게 말했다.
“금방 올거니까 여기서 기다려요. 여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아요. 시내에 있는 서로 이동하는게 좋겠어요.”
이윤희의 얇은 눈썹이 살짝 찡그려진다. 혼자 남는다는 불안함 때문인지 그녀의 눈이 미약하게 흔들린다.
“..꼭 올거죠?”
처음 자신을 대했던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김창수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집을 나섰다. 이상하게 남인데도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남들과는 다르게 만난 상황이라 그런가? 서로 목숨을 구해준 사이라서 그런가? 김창수는 고개를 젓고는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지금 서로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하기 위해서는 박반장의 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24개월로 차 하나 뽑는건데 말야.. 제길.”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1층에 다다른 김창수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거대 모기를 가만히 바라보고는 고개를 살짝 내밀어 주위를 둘러본다. 평범하고 고요한 동네. 전속력으로 달려간다고 해도 2~3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 시간 내에 녀석들의 공격이 자신에게 가해질지는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몸이 굳어가는 것 같다.
“후우.. 후우.”
그러나 망설이면 안된다. 자신에게는 이제 지켜야할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여기서 이렇게 죽기에는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너무나 허무하다. 심호흡을 하고서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발을 뗀다. 다행히 보이고 들리는 것은 없다. 슬금슬금. 김창수는 서서히 속도를 높인다.
타다다닥.
그리고 필사적으로 박반장의 집으로 뛰어가기 시작한다. 30초. 40초를 지나자 저 멀리 잊혀질래야 잊혀질 수 없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헛바람을 삼킨 김창수는 빌라 단지 사이에 있는 작은 골목으로 몸을 돌려 그 안으로 피신했다.
위이잉-
위잉-
두 마리가 그리 멀지 않은 허공에서 빙글거리며 날아다니는 것이 보인다. 한 동안 같은 자리를 멤돌다가 다른 녀석이 김창수가 왔던 곳으로 날아가자 다른 녀석도 그 뒤를 따른다. 거친 숨을 고르며 고개를 살짝 내민 김창수는 멀어져가는 거대 모기의 뒷꽁무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서 다시 주위를 조심스럽게 훑었다.
“하아. 하아..”
안전하다라고 판단을 내린 김창수는 다시 빠르게 뛰어간다.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한 박반장의 집. 거칠게 문을 열어 박반장이 입고 있던 잠바에서 자동차키를 꺼낸 김창수는 굳게 닫혀 있는 문을 보고는 잠시 멍해졌다. 하지만 상념에 계속 잠겨 있으면 안된다. 김창수는 무거운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현관문을 나섰다.
“으아아악!”
그러자 한 남자의 비명소리가 김창수의 귀로 들려온다. 재빨리 계단 위 아래를 살핀 김창수는 한 계단을 내려 가슴 쪽에 있는 창문을 통해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바로 옆 빌라에서 여러 명의 사람들이 튀어나와 이리저리로 흩어지는 모습이 들어온다. 거대 모기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일까.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하며 도망치는 사람들. 하지만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녀석들이 아니었다.
위이잉-
위잉-
위이이잉-
어느새 나타났는지 수십여 마리의 녀석들이 빠르게 허공을 가르고 흩어져있는 사람들을 낚아 채듯이 허공으로 물어간다. 마치 사냥을 하는 독수리의 그것과도 같았다. 허공에 들린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녀석들에게 떨어지려고 하지만 단단하고 튼실한 녀석들의 3쌍의 다리에는 속수무책이다.
푸욱. 푹-
날카로운 침을 그대로 꽂아 사람들을 천천히 빨아들이는 녀석들. 그에 따라 사람들의 비명소리도 약해져간다. 이내 껍데기만 남은 시체들을 허공에 휙휙 던져버린 녀석들은 승리를 장식하기라도 하듯 그 자리에서 한동안 빙글거리며 날갯짓을 하더니 다른 쪽으로 날아가버린다.
“이대로 나갔다가는 위험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녀석들이 대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김창수는 다시 박반장의 집으로 들어와 핸드폰을 들어 자신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몇 초 지나지 않아 전화를 받은 이윤희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극도의 불안에 젖어 조심스러운 목소리 김창수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 밖이 위험한 상태라 당장은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요. 최대한 녀석들의 눈에 띄지 않게 좁은 공간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곧 갈게요.”
“..네.”
짧게 통화를 마친 김창수는 이 상황을 타개해갈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내기 시작했다.
“모기는 후각과.. 시각을 이용해 사람들을 찾는다. 녀석들을 따돌릴 방법은 없는 것인가..”
그러다 문득 닫혀 있는 방안에 있는 끈적거리는 액체가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갔다. 김창수는 얼른 몸을 돌려 닫혀 있는 방문을 열었다. 아까 봤던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광경이지만 점차 굳어져가는 액체만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김창수는 망설임 없이 잠바를 벗어 안 주머니에 핸드폰과 권총, 자동차키를 넣고 점차 굳어져가고 있는 액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살다살다.. 내가 이런 짓을..”
역하고 옅은 붉은 색의 액체는 분명 사람이 참아내기에는 힘든 것이 있었다. 하지만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만 한다. 김창수는 그대로 몸을 던져 액체에 온 몸을 묻히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굴렸다. 끈적거리는 액체가 피부에 스며드는 것 같은 더러운 기분을 애써 무시하며 여러번 뒹군 후 몸을 일으킨 김창수는 완전히 액체에 뒤덮인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확인하고서 잠바를 들고 집을 나섰다.
“큭..”
역한 냄새를 완전히 참아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제발 이 방법이 통하기만을 바라며 김창수는 빠르게 빌라를 나왔다. 껍데기만 남은 사람들의 시체가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말라비틀어져 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되어 있는 세피아차량을 확인하고서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집으로 걸어간다.
위이잉-
그와 동시에 김창수의 주위에 나타나는 녀석들. 몇 번 김창수의 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김창수는 최대한 침착을 유지하며 느리게 앞으로 걸어나간다.
위잉-
계속 김창수의 주변을 멤도는 녀석들. 보자마자 공격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동료로 인식하고 있다는 걸지도 몰랐다. 어느 정도 희망이 생긴 김창수는 좀 더 과감하게 빠르게 걸어나갔다. 그제서야 방향을 바꾼 녀석들은 다른 쪽으로 날갯짓을 해가며 이동한다.
“후우.. 후..”
집까지의 거리가 이렇게 멀게 느껴진 적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김창수는 서둘러 집의 문을 열었다. 그에 맞춰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의 문이 열린다. 이윤희는 변해버린 김창수의 몰골을 가만히 보고는 인상을 구겼다. 익숙치 않은 냄새 때문이다. 김창수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당신도 당해요. 녀석들의 액체로 몸을 휘감아야 안전해요.”
“하, 하지만..”
“시간 없어요.”
머뭇거리는 이윤희의 얇은 손목을 가로채듯이 잡은 김창수는 서둘러 이윤희의 집 문을 열고 거실에 흥건히 고여 있는 액체를 가리켰다.
“몸에 묻혀요. 최대한 많이.”
“우.. 우욱.”
비위가 약한 이윤희는 고개를 돌려 헛구역질만 해댔다. 그 모습을 안타깝게 보던 김창수는 강제로라도 해야 겠다는 심정으로 이윤희를 이끌고 액체 쪽으로 걸어갔다.
“싫어요! 안 할꺼야! 차라리 죽고 말지!”
이윤희는 저항을 하며 김창수에게서 멀어지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여자의 근력으로는 애초에 무리였다. 힘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이윤희는 남은 손으로 김창수의 등이며 머리를 거칠게 때려댔다. 그러나 김창수는 요지부동이었다. 굳어져가는 거대 모기를 옆으로 힘겹게 치워낸 김창수는 이윤희의 양손을 단단히 잡았다. 분한 듯 숨을 씩씩거리며 김창수를 노려다보는 이윤희를 보며 말한다.
“끝까지 살아요.”
“왜! 왜 그렇게 당신이 날 챙기는건데!”
“....”
김창수는 대답대신 힘으로 이윤희를 강제적으로 웅덩이처럼 고여 있는 액체 위로 던지듯이 밀었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한 이윤희는 헛구역질을 해대며 액체 위에서 버둥거리며 일어나려고 애썼다. 김창수는 그 모습을 무심한 눈길로 지켜보다 어느 정도 액체들이 몸을 감쌌다고 여겼는지 이윤희를 일으켰다.
“흐윽.. 흑. 우욱!”
눈물을 흘리며 헛구역질을 해대는 이윤희를 잠시 바라보고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문을 나선다. 그러던 중 문득 생각이 났는지 김창수는 얼른 그녀의 집으로 들어가 거실 싱크대 쪽에 있는 꽤 큰 바가지를 꺼내 액체를 가득 담아 다시 밖으로 나왔다.
“난 경찰이니까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겁니다.”
그런 말을 하면서 김창수는 아까전 무차별적으로 당하던 사람들을 애써 머리에서 지워내려고 애쓰며 이윤희의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빠르게 계단을 내려간 두 사람은 세피아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공간으로 빠르게 걸어간다.
“다.. 당신들!”
다급한 남자의 목소리. 힐끔 뒤를 돌아보자 10미터 거리에 있는 위치에서 중년의 남자는 김창수와 이윤희를 바라보며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그 표정이 매우 다급해보였는데 그 뒤로는 거대 모기 여러 마리가 남자를 금방이라도 덮칠 기세였다.
“도.. 도와줘! 으아악!”
순식간에 거대 모기에게 둘러 쌓인 남성은 온 몸에 꽂히는 날카로운 침 때문에 몸을 버둥거리며 나아가지 못했다. 그리고는 급속도로 말라비틀어져가는 남자의 몸. 김창수는 애써 남자의 마지막 눈빛을 무시하며 차 쪽으로 걸어간다.
위이잉-
식사를 마친 모기들은 성이 차지 않았는지 빠른 속도로 날아가며 두 사람의 위를 지나쳐갔다. 바들바들 떠는 이윤희의 어깨를 강하게 잡고서 세피아 차량에 도착한 김창수는 아까 퍼왔던 액체를 차량 위에다 뿌리고는 차에 올랐다. 하지만 이윤희는 머뭇거리만 할 뿐 김창수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안타요?”
“....”
김창수는 조수석의 문을 열고 이윤희를 강제적으로 조수석에 앉히게 한 뒤 운전석에 올랐다.
부르릉.
차에 시동을 걸고 서서히 운전을 시작하는 김창수. 전방에는 말라 비틀어진 사람들의 시체 여러개가 보였지만 그것을 일일이 배려할 만큼의 상황이 아니다. 바스락. 바스락. 거리는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시체가 부서지는 것 같았다.
부아앙.
서서히 속도를 내며 빌라 단지내에서 멀어지는 세피아차량. 김창수는 시내 쪽으로 차를 몰며 속도를 서서히 높이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