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MOS.Q (part.2)
빌라단지를 지나 빠르게 차를 몬다. 거리 곳곳에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사람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하루아침에 변해버린 동네의 모습에 김창수는 최대한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묵묵히 운전에 집중한다. 그 옆에 앉은 이윤희 역시 아무말 없이 멍한 표정으로 의자에 기대어 창 밖을 바라보기만 한다.
위이잉-
빠르게 운전을 하던 중 거대 모기의 날갯짓 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김창수는 백미러를 통해 뒤에 뭐가 따라오고 있는지 잠시 관찰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주위를 둘러보며 속도를 조금 늦췄다.
처컹.
무거운 무게감과 함께 묵직한 소리가 차 위에서 느껴진다. 이윤희는 헛바람을 들이키며 의자를 최대한 뒤로 당겼고 김창수는 이를 악물고서 묵묵히 차를 운전했다.
위잉-
뭔가 이상하다고 여긴 녀석은 위에서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톡톡 건드리기 시작한다. 의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같은 종류의 냄새가 나지만 이렇게 지상에서 빠르게 이동한다는 것은 자신들에게는 없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멈출 수 없다. 행여나 위의 녀석으로 인해 다른 녀석들의 주의마저 끌게 된다면 최악의 상황까지 갈 수가 있다.
‘제발..’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수 밖에 없다. 서서히 속도를 올린다. 빌라 단지 내부를 완전히 벗어난 차량은 주욱 이어진 도로에 진입하게 된다. 여러 가게들과 음식점이 눈에 보이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전부 문이 굳게 닫혀 있는 상태다.
부아앙.
서서히 속도를 높인다. 서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이 정도의 속도만 유지한다면 10분내로 당도할 수 있을 것이다.
키이이-
하지만 녀석은 의심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고 집념 있게 차 위에서 이리저리 움직여댄다. 다급해진 김창수는 초조한 마음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차 속도를 점차 올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
키이이이-
급격히 빨라지는 속도에 자신의 동료가 아니라고 여긴 녀석은 그대로 날카로운 침을 천장에 꽂았다.
파캉.
소리와 함께 천장의 한 부분이 기형적으로 깊게 패인다. 이대로 몇 번 충격이 가해진다면 그대로 뚫릴 것이다.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김창수는 우선 유리로 통해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녀석들을 보면서 최대한 거리를 벌리기로 했다. 다행히 다른 녀석들의 주의가 이쪽으로 몰리지 않는다. 서둘러야만 한다.
부우웅.
서서히 속도를 늦추며 권총을 꺼낸 김창수는 굳은 얼굴로 심호흡을 했다.
키이이이이-
그러는 와중에도 녀석의 공격은 끊임없이 이어져 천장은 금방이라도 뚫릴 것만 같다. 빠르게 자동차를 멈춘 김창수는 슬그머니 운전 석을 열고 느리게 몸을 빼냈다. 녀석의 신경이 온통 차 위에 쏠려 있다. 권총을 들어 녀석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는 부위를 고른다.
철컥.
장전 소리가 이렇게 커다랄 수도 있는 걸까. 아까와 같이 녀석의 시선이 자신에게 돌려질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튼실한 다리가 천장을 단단히 부여 잡고 있고 그 왼쪽으로는 대가리가 보이긴 하지만 비대한 몸집 때문에 겨누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뒤에 길게 뻗어 있는 배 부분을 노려야만 한다.
“후우..”
작게 호흡을 고르고 위 아래로 흐늘거리는 흉몰스러운 배 부분에 총을 겨눈다. 서서히 방아쇠에 손을 가져간다.
키이이-
그 살기를 감지라도 했는지 녀석의 대가리가 홱 하고 김창수를 노려본다. 다시 살갗이 뚫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머뭇거리면 안된다. 김창수는 바로 방아쇠를 당긴다.
타앙-
키이이이이이-
빠르고 곧게 뻗어나간 총알 때문에 녀석의 배 부분의 중간이 휑하니 뚫려 있다. 고통스러워 하며 날갯짓을 하며 저 멀리 날아가버리는 녀석. 그러는 도중에 녀석의 체액이 온 몸에 묻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차분히 숨을 고르고 주위를 둘러본다.
위이잉-
자동차와는 꽤 거리가 되는 높이에서 녀석들이 빙글빙글 돌며 배회하고 있다. 다행히 주의가 끌리지 않았다. 김창수는 얼른 차량에 타서 운전을 하기 시작한다.
부우웅-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차. 어느새 생긴 천장에 뚫린 자그마한 구멍으로 통해 거센 바람이 차안을 가득 채운다. 이윤희는 살짝 눈을 찡그리며 앞을 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김창수는 그런 그녀를 힐끗 보고서는 서서히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 서로 차를 몰았다. 문 앞에 쳐진 철로 된 바리게이트 뒤로 넓은 주차 공간. 그리고 그 뒤로는 3층으로 되어 있는 넓은 서가 보인다. 평소 같았으면 바리게이트가 양옆으로 쳐져 있고 보초 근무를 서고 있는 순경이 보일 텐데 하나도 보이지 않고 굳건히 입구를 봉쇄하고 있는 바리게이트만 눈에 들어온다.
김창수는 얼른 차에서 내려 바리게이트를 양옆으로 밀어내기 시작한다.
촤르르르.
쇠가 땅에 끌리는 소리와 함께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는 바리게이트. 힘겹게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갈 만한 공간을 벌려 놓고서 다시 차를 몰아 주차장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한다. 자동차의 소리가 빈 주차장에서 꽤나 크게 울렸는지 아무렇게나 주차를 했을 때 즈음 입구 쪽의 문이 슬며시 열리더니 누군가 조심스럽게 나오는 것이 보인다.
김창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성이 세피아 차량을 유심히 살핀다. 김창수는 그가 직감적으로 전화를 받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조금은 안도한 마음에 김창수는 서둘러 차 문을 열고 내리려고 했지만 그의 목소리에 다시 몸을 숨겨야 했다.
“녀석들이 와요! 나오지 마세요!”
그 말대로 바로 2~3마리의 녀석들이 거칠게 날아와 주차장에 하나둘 내려 앉는 모습이 김창수의 눈에 잡힌다. 이대로 서까지 뛰어가기도 무리한 상황이다. 남자는 김창수를 잠시 보더니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김창수는 다시 권총을 단단히 잡고서 주차장에서 두리번 거리며 먹잇감을 찾고 있는 녀석들을 가만히 주시했다.
키이이이-
넓은 주차장에서 거대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먹잇감을 찾아 다니는 녀석들의 모습에 온 몸이 소름으로 주루룩 돋는 것 같았다. 이윤희가 두려운 눈으로 김창수를 올려다 보지만 김창수는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주인을 잃고 주차가 되어 있는 차량들을 신경질적으로 부수기 시작하는 녀석들.
챙그랑. 챙. 챙.
점차 상황이 악화되어간다. 이대로 있다가는 험한 꼴을 면치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빼도 박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차례차례 차량들을 엉망으로 만들며 다가오는 녀석들. 그 중 한 녀석이 김창수와 이윤희가 타고 있던 세피아를 유심히 바라본다.
키이이-
대가리를 좌우로 흔들며 관찰하는 모습. 희미하게 남아 있는 동료의 흔적 때문인지도 몰랐다. 따가운 햇볕 때문에 녀석들의 액체가 서서히 말라가고 있다. 그렇게 되면 완전히 적으로 인식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양손을 들어 거의 말라가는 붉은 액체를 가만히 바라본다.
키이이-
여전히 의구심을 풀지 않은 한 녀석. 마침내 날카로운 침으로 차 유리를 톡톡 건드리기 시작한다. 이대로 힘을 조금만 더 줘도 유리가 산산조각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렇게되면 녀석이 두 사람의 채취를 맡고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다.
키이이이-
그 행동이 다른 녀석의 주의를 끌었는지 서서히 남은 2마리도 김창수와 이윤희가 있는 차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서서히 다가오는 두 녀석까지 합세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 김창수는 이를 악물고 만약에 대비하기 위해 권총을 들었다. 톡톡 유리창을 건드리는 녀석의 대가리 쪽으로 겨눈다.
키이이-
유리창 안에 뭔가가 움직였다고 판단한 녀석은 한참을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리곤 이내 다가온 녀석들과 알 수 없는 소리들을 주고 받더니 서서히 차를 에워싸기 시작한다. 들통난 것이다. 녀석들은 거친 소리를 내며 서서히 차 쪽으로 다가간다.
타앙-
그 때 뒤에서 들려오는 총소리에 김창수와 이윤희는 헛바람을 들이키고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처음의 남자가 출입구의 문을 열고서 권총을 들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저대로 계속 오게 된다면 녀석들의 공격에 당할 우려가 있다.
키이이이-
그러나 남자의 공격도 아주 무용지물이 된 것은 아니었다. 몸통 부분에서 폭포처럼 피를 흘리는 녀석이 괴로움을 못이겨 바닥에 파닥거리며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남은 두 녀석은 고통스러워하는 동료를 멀거니 지켜보는가 싶더니 다시 차를 바라본다. 이상하게 뒤에서 총을 쏜 남자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뭐.. 뭐지?”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전개되자 김창수는 당황하며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것은 이윤희도 마찬가지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상황에 이런 식으로 목숨을 건질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의 몸이 더욱 세차게 후들거린다.
타앙-
이어지는 두 번째 총소리. 그와 맞춰 고통스러워하며 쓰러지는 한 녀석. 남은 한 녀석은 영문을 모르는 눈치인지 고통스러워 하는 두 마리의 동료를 가만히 보다가 다시 들려오는 총 소리에 대가리가 부숴지며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파다다닥.
아직 살아 있는 두 마리 녀석들이 날개로 바닥을 거칠게 때려대며 빙글빙글 돌아대고 있다. 조심스럽게 차 쪽으로 다가온 남자는 김차수에게 걸어 가다 조수석에 앉아 있는 이윤희를 발견 하고서는 먼저 조수석을 열었다. 파다다닥 거리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며 남자의 목소리도 같이 들렸다.
“어서 나와요.”
남자가 내민 손을 얼결에 잡은 이윤희는 그대로 밖으로 나갔고 김창수도 서둘러 밖을 나온다. 차 주위로는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며 기괴한 괴성을 흘리는 녀석들이 눈에 밟힌다. 세 사람은 빠르게 이동해 출입문을 열고서 무작정 어디론가 뛰기 시작한다.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 왼쪽 통로 쪽으로 이동한다.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두터운 철문을 열자 꽤 넓은 사무실로 보이는 것들과 한쪽에 마련된 유치장이 보인다. 곳곳에 창문들이 있지만 전부 단단한 쇠창살로 막혀져 있어 녀석들의 공격에 조금은 버텨줄지도 몰랐다.
“허억.. 허억.”
“하아. 하.”
세 사람은 한 동안 말없이 숨을 삼키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서히 숨이 안정이 되어가자 김창수와 이윤희는 익숙한 냄새에 코를 킁킁거렸다.
“이..건?”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옷에서 진하게 나는 냄새를 가볍게 맡으며 말했다.
“킬라에요. 왠지 이게 녀석들에게는 직접적으로 해를 끼칠 것 같지는 않지만 저한테 다가오지는 않을 것 같아서 해본건데 의외로 먹혀 들었네요.”
“아.. 감사합니다.”
“아뇨. 같은 경찰끼리 이정도야 뭐.”
남자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문 옆에 있는 간이식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 옆에 비어 있는 의자에 따라 앉은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하듯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남자는 김창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화하셨던?”
“네. 김창수입니다.”
“아, 전 윤지후라고합니다.”
윤지후라고 소개한 남자는 살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가볍게 손을 잡은 김창수. 윤지후는 이어 이윤희에게도 손을 내밀었고 그녀 역시 가볍게 악수했다. 간단히 소개를 마친 세 사람. 김창수는 윤지후를 보며 물었다.
“새벽까지 서에 남을 정도면.. 당직이셨나요?”
“예에. 뭐, 그렇죠.”
“아아.”
“전 운이 좋은 케이스에요. 어쩐지 그날은 당직이 이상하게 끌리더라구요. 그 결과 저 혼자 남게 되었지만요.”
“그렇군요.”
“당신들은 어떻게 된거죠?”
두 사람은 그 동안 겪어 왔었던 일들을 차분히 윤지후에게 설명했다. 이윤희의 일은 그리 볼 것도 없으니 제대로 듣지 않는 태도였지만 김창수의 일들만큼은 달랐다.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경청한 윤지후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생각까지 하실 줄이야..”
“..살기 위해서는 별걸 다 하게 되더군요.”
“그건 그렇고 모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게 마음에 걸리네요.”
팔짱을 끼고 무거운 한숨을 내쉰 윤지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이었다.
“녹색의 모기? 그것으로 인해 박반장의 모습이 변했다라..”
“그와 같이 생활하는 사모님도 그렇게 말했어요. 알에서 뭔가 소리가 난다고..”
“흐음..”
윤지후는 잠시 더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이렇게 우리가 고민한다고 해도 해결될 것 같지는 않으니 바깥 상황이나 좀 들어보죠.”
사무실 한켠에 있는 TV 쪽으로 걸어간 윤지후는 전원 스위치를 누르고 채널 여기저기를 돌린다. 자리에 멍하니 남아 있던 두 사람도 천천히 일어나 윤지후에게 다가간다. TV 채널에는 온통 뉴스만이 가득했는데 단연 그 화제는 거대 모기였다. 평소와 같은 아나운서가 나오며 낭랑한 목소리로 기사를 도보하기 시작한다.
[현재 밖에는 거대 모기가 속출하고 있다는 신고가 끊임없이 접수 되고 있습니다. 이 모기를 만나면 반드시 좁은 공간이나 물 속으로 피신하실 것을 당부하며 개인이 소지하고 있는 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정부에서는 이에 따른 해결책을 시급히 연구중에 있으니 안심하시고 외출을 최대한 자제하시기 바랍니다.]
가벼운 하나의 사건이라고 여기는 듯 기사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세 사람은 허무한 표정으로 다른 기사를 도보하고 있는 아나우선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본다.
“뭐, 뭐야.. 이렇게 쉽게 여길 일이 아니라구.”
윤지후가 뭐에 홀린 듯이 중얼거리며 TV를 껐다. 김창수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집도 안전하지 않아.. 녀석들은 얼마든지 창문을 깨고 안으로 들어왔었어..”
“어떻게 직접적으로 나선다는 말은 하나도 없을 수가 있죠? 군인이며 다른 병력들은 대체..”
이윤희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상황이 오고 사람들이 무참히 죽어나가는 와중에도 움직이지 않는 병력들을 생각해 보면 분명 뭔가가 잘못된 것이 틀림 없다. 단순히 외출을 삼가라는 말로는 뭔가가 이상하다. 윤지후는 이윤희를 보며 말했다.
“어쩌면 녀석들과 혈투를 벌이고 있는지도 모르죠.”
“....”
“우리들에게 못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에게 떨어진 불부터 끄기 바쁜걸지도 몰라요. 형사님 말대로 모기에 물린 사람들이 전부 변했다고 치면.. 정말 쉽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하루에도 모기한테 물리는 사람들이 수백 수천 수만이 될수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전부 변했다고 치면..”
윤지후는 끝의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김창수는 그것을 이어 대신 말했다.
“어쩌면 이대로 인간들이 멸망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시간문제일지도 모르겠군요.”
“..대체 왜 이런 일이..”
이윤희는 온전히 서있기 힘든 듯 책상에 있는 의자를 꺼내 힘겹게 앉았다.
따르르릉-
그 때 사무실에 있는 여러대의 전화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울리기 시작한다. 퍼뜩 상념에서 깬 세 사람들은 마치 자기들이 받아야하는 것처럼 전화기 앞으로 다가가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귀를 통해 들려오는 사람들의 두려움이 가득찬 목소리.
“살려주세요! 우리집에 괴물이.. 괴물이!”
“으아아악! 살려주세요!”
온갖 비명이 난무하는 소리가 세 사람의 귀로 생생히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는 상황인지라 세 사람은 말없이 수화기를 들고 자리에 놓았다. 아직 남은 전화기들은 받아 달라며 소리를 요란하게 내지만 세 사람은 그것을 받으러 움직이지 않았다.
“틀렸어..”
절망 어린 표정으로 수화기 너머로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윤지후는 신경질적으로 전화기에 연결된 선들을 하나하나 뽑기 시작한다.
따르르르-
그와 동시에 점점 줄어만가는 전화기의 소리. 마지막남은 전선 하나까지 뽑자 다시 적막만이 가득한 내부로 되어 버린다. 세 사람은 허탈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서로를 힐끗 바라보고는 아무렇게나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살려주세요!”
생생히 들려오는 사람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킨 두 명의 형사는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르게 소리가 난 곳으로 뛰어가기 시작한다. 아래쪽이다. 두 사람은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 주위를 살핀다. 출입문이 크게 열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을 향해 느린 걸음으로 다가가기 시작하며 권총을 단단히 움켜쥔다.
“살려주세요!”
주차장 쪽이다. 서둘러 밖으로 나온 두 형사는 아직도 바닥에서 파닥거리며 버둥대는 녀석에게 잡힌 한 명의 고등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꺼져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피를 빨고 싶은 욕망이 강한지 날카로운 침으로 연신 고등학생의 몸에 꽂으려고 했지만 온전치 않은 몸으로는 힘겨워 보인다. 고등학생은 문쪽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두 형사를 보고는 희망에 찬 얼굴로 외쳤다.
“아, 경찰 아저씨!”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지만 녀석의 3쌍 다리의 힘은 인간의 범주를 훨씬 넘어서있다. 고등학생은 두 형사를 보자마자 몸을 빼내려고 이리저리 몸을 굴리려고 했지만 그럴 수록 녀석은 더욱 고등학생을 거세게 압박해갔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고등학생이 위험할지도 모른다.
철컥.
걸음을 멈춘 김창수는 서둘러 방아쇠를 당겨 작은 대가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녀석을 가만히 조준했다. 실수를 하면 안된다. 지척에 바로 평범한 시민이 있기 때문에 자칫 빗나가기라도 한다면 무고한 사람이 죽어나갈 수가 있다. 심호홉을 하면서 조준을 다시 바로 한다. 실수는 있을 수가 없다.
키이이-
금방이라도 꺼질듯한 소리를 내며 움직여대려고 애쓰는 녀석. 위, 아래 약하게 흔들거리는 대가리. 호흡을 정지한 김창수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빠르게 총을 떠나간 총알은 그대로 녀석의 대가리를 뚫었다. 깔끔한 사격 솜씨다. 그리고 추욱 늘어진 녀석을 무거운 발길질로 빠져나온 고등학생은 완전히 젖어버린 자신의 몸을 보며 인상을 썼다. 그 고등학생에게 천천히 다가간 윤지후가 말했다.
“고생했어.”
“....”
고등학생은 당한 일이 너무나 큰듯 아무말 없이 두 형사를 바라보다 활짝 열린 출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윤지후는 머쓱한 마음을 숨기기라도 하듯 아직 열려 있는 바리게이트 쪽으로 걸어갔다. 다시 닫으려는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김창수도 얼른 뛰어가 바리게이트를 닫기 시작한다.
“시내가 고요하군요.”
윤지후의 말에 이젠 완전히 사람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거리를 바라보며 김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이 거지같이 굴러가도 유분수지..”
“그래도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겠지요. 들어갑시다.”
그렇게 말한 윤지후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걸어간다. 김창수는 이제 완전히 딴판이 되어버린 거리를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불과 하루전만 해도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곧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보였었는데 이제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마저 보이지가 않는다.
“후우..”
문득 멀리 뻗어진 방향에서 잠복을하며 범인을 기다리던 어제의 일이 생각이 난 김창수는 애써 생각을 떨치려 머릴르 세차게 흔들고서 몸을 돌려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박제처럼 그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거대 모기 세 마리를 힐끔 보고는 끓어오르는 가래침을 거칠게 바닥에 뱉는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는 쉽게 풀리지 않는 것 같다.
처음 정신없이 달려왔던 공간에 모인 네 사람. 예고에 없던 한명이 추가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이윤희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능력이 없어 보이는 고등학생. 지켜야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눌 수가 없다는 뜻이 된다. 윤지후는 사무실 한켠에 있는 냉장고에서 마실 것을 꺼내 문 쪽 의자에 앉아 있는 고등학생에게 내밀며 말했다.
“놀랐지?”
“....”
말없이 마실 것을 받아들고 단숨에 마시기 시작하는 고등학생. 윤지후는 그 옆에 앉아 자그맣고 편안한 음성으로 물었다.
“이름이 뭐니? 너 혼자야?”
“..네.”
김창수의 일격에 죽어버린 녀석의 타액이 고등학생의 옷에 묻어 있어 그 역한 냄새가 후각을 강하게 찌른다. 그러나 윤지후와 김창수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고등학생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서는 말했다.
“저는 박인성이에요. 수성고등학교 3학년이고요..”
“그래 인성아. 집에 가는 도중이었니?”
“네. 매일매일 이어지던 야자를 갑자기 오늘은 안한다는거에요. 반 친구들 모두 신났죠. 너나 할거 없이 가방 싸들고 집으로 갈 채비를 했어요. 근데 전.. 담임 선생님의 표정을 보고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죠.”
“표정?”
윤지후의 물음에 박인성은 눈썹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는 정말 무표정만 유지해서 감정을 전혀 읽을 수 없거든요. 근데 그날따라 뭔가에 홀린듯.. 두려움에 젖은 듯한 표정으로 교실을 빠르게 나가는거에요. 매일 하던 조례도 하지 않아서 애들은 좋아라하며 반에서 뛰쳐나가기 시작했죠. 하지만 그것은 불운의 시작이었어요.”
그 뒤의 상황은 대강 상상이 갔으나 두 형사는 차분히 박인성의 말을 들어주었다.
“저도 오랜만에 친구들과 PC방에서 스트레스 좀 풀려고 했죠. 근데 뭔가 검은 물체들이 창문으로 달려붙더니 순식간에 깨부수는거에요. 그리곤 바로 창가 근처에 일어나 있는 애들을 차례대로 먹어치우기 시작했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어요.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그저 발이 움직이는대로 움직였어요. 잘 기억도 안나요. 여기까지 제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도..”
그때의 회상이 아직도 생생한듯 박인성은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떨었다. 윤지후는 그런 박인성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려 주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이곳저곳에 널려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켜 이것저것 검색하기 시작한다.
“후우..”
무겁게 숨을 내쉬는 박인성을 보던 김창수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가자, 일단 씻어야겠다.”
“아..”
그제서야 자신의 몸에서 낯설고 역한 냄새가 난다고 느낀 박인성은 자리에서 쭈뼛거리며 일어났다. 김창수는 그런 아이가 행여 상처를 받을까 귓속말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저기 저 누나가 비위가 많이 약해서 그래. 네가 이해해줘.”
“네.”
김창수는 박인성을 이끌고 문을 열고 화장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이윤희는 서서히 닫히는 문을 보며 투덜거렸다.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 말에 윤지후는 힐끔 그녀를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귀가 밝으시네요?”
“저리 크게 중얼거리면 다 들리죠.”
“하하하. 창수씨가 참 눈치가 없네요.”
다시 모니터에 시선을 가져가며 집중하는 윤지후.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이윤희는 끊어져 있는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갈팡질팡한다. LCD 모니터로 그 모습이 희미하게 비치는 것을 확인한 윤지후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어디에 걸게요?”
“네?”
자신의 행동이 빤히 보인다는 것을 못 느낀 이윤희는 살짝 놀란 눈치였다. 윤지후는 피식 거리며 말했다.
“그렇게 초조하게 선을 만지작거리면 딱 봐도 알 수 있죠.”
“..네에.”
“걸어요. 상대방이 받아 주는 것 까지는 제가 도와드릴 수 없지만요.”
“....”
이윤희는 한동안 머뭇거리며 전화기를 만지작거린다. 그러다 곧 결심을 했는지 선에 전화를 연결하고서 천천히 숫자 버튼을 누르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를 힐끔 보고는 다시 인터넷에 신경을 쓰는 윤지후. 검색 창에 ‘거대 모기’ 라는 키워드만 입력했을 뿐인데도 나타나는 페이지의 수는 어마어마했다. 일일이 클릭해 볼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유용한 정보만이 모인 페이지들만 클릭하기 시작한다.
[거대 모기 특성 분석]
이라는 눈에 확 끌리는 제목이다. 거침없이 그것을 클릭한 윤지후는 생각보다 비실하고 알고 있는 내용에 다시 창을 닫고 여러 페이지를 건너 띄기 시작한다.
“여..보세요?”
그러던 중 이윤희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윤지후는 궁금함에 고개를 돌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귀만 기울인다.
“어, 언니? 무사해? 그래.. 나도 무사하지. 다른 애들은?”
통화가 점차 길어질수록 이윤희의 목소리도 희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으응. 그래. 잘 지내고 꼭 살아 있어야 돼. 내 걱정은 하지마.. 언니나 걱정하고 다른 애들한테 내 안부 좀 전해줘. 응.. 알았어.”
한숨을 쉬며 수화기를 내려 놓는 이윤희. 그 힘들어하는 모습에 윤지후는 실례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딱히..”
대답을 회피하기라도 하듯 고개를 저으며 전선을 다시 뽑아내는 이윤희. 윤지후는 그런 그녀를 유심히 보다가 팔쪽과 허벅지 쪽에 있는 특유의 타투를 보고서는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어, 그 문신..”
“..에?”
검은 색의 기하하적인 문양을 가리키며 말하는 윤지후를 빤히 바라보는 이윤희. 윤지후는 뭔가를 생각해내기라도 하듯 미간을 좁히며 팔짱을 끼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당신..”
“....”
뒤의 말은 오고가지 않았지만 윤지후는 어렴풋이 자신의 감을 믿고 있었다. 일반적인 여성들의 팔쪽에 새겨진 타투와 흔하게 볼 수 없는 외모와 잘빠진 몸매. 형사 일을 오래 해오면서 그런 부류의 여자들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조금은 도움이 된 것도 같았다.
“맞나보군?”
“....”
담당 지역이 그런 쪽이라 그런지 윤지후는 단박에 이윤희의 직업을 알아 맞췄다. 그녀는 정곡에 찔린 듯 무표정하게 윤지후를 덤덤히 바라보았다. 윤지후 역시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다리를 꼬아 여유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잘 알지. 세상에 아무 짝에 쓸모도 없는 것들이 바로 당신들이야.”
순식간에 변해 버린 표정에서 표독스러운 말이 튀어나온다. 완전히 변해 버린 그 모습에 이윤희는 살짝 놀라는 눈치였지만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윤지후는 뭔가 안 좋은 기억이라도 생각난 듯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을 이었다.
“다 알고 있어. 당신 같은 사람들이 일하는 곳에서 각종 마약이나 무기들이 거래되고 있다는 것을. 그 일 때문에 우리 같은 형사들이 얼마나 죽어나간 줄 알기나 해? 이 빌어먹을 여자야.”
낮게 읆조리듯이 말하는 그 모습에서 처음 그녀를 구해주었던 자상한 남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윤희는 한쪽 입술을 깨물고는 말했다.
“그건 인식이 그렇게 박혀서 그런거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식으로 우리를 매도하지마.”
“매도? 난 현실을 얘기한거 뿐이야. 처음으로 누군가를 구한 것이 후회되는군. 말해봐. 매일 당신네 골목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전부 꾸며진 허상이라는건가?”
이윤희는 뭐라고 반박하려고 했지만 그의 말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서 윤지후를 노려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 표독스러운 표정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윤지후는 잔인한 미소를 띄며 말했다.
“때가 되면 너를 버릴 거야. 너 같은 년들은 세상에 암적인 존재거든.”
그렇게 말한 윤지후는 다시 몸을 돌려 키보드에 손을 가져간다. 그에 맞춰 깨끗하게 씻고 온 박인성을 데리고 온 김창수는 전과는 다른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윤지후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그 물음에 윤지후는 처음과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보다 녀석들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어서 큰일이네요.”
“뭔가 알아낸거라도 있나요?”
“딱히.. 없어요. 그저 외출을 삼가라는 말 외에는..”
“그렇군요.. 참 인성아.”
처음 와보는 곳인지 신기한 표정으로 사무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박인성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네.”
“너.. 부모님은?”
“..글쎄요.”
“글쎄요라니?”
그 말에 박인성은 생각하기도 싫은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왜? 걱정되지도 않아?”
“일밖에 모르는데요 뭘. 지금 같은 순간에서도 아마 악착같이 일하고 있을 걸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전화라도 해볼래?”
김창수의 말에 박인성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너의 부모님이잖아.”
“부모다운 노릇을 해야죠. 아저씨는 몰라요. 이런 얘기는 이제 그만하죠.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의논하기로 해요.”
“너..”
점차 분위기가 이상한 쪽으로 흐른다는 것을 느꼈는지 윤지후가 자리에서 일어나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됐어요. 인성이 말대로 지금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하니까요. 일단은.. 인성아 너 총 쓸 줄은 아니?”
“..몇 번 서바이벌 게임식으로 써보긴 했어요.”
“그래? 서바이벌용은 이런 권총이 아니지 않아?”
“네.”
“괜찮아. 금방 배우니까.”
그런 말을 하며 윤지후는 자신의 허리 춤에 달린 권총을 꺼냈다. 김창수는 그 행동을 조심스럽게 저지하며 말했다.
“아직 어린아이에요. 꼭 이래야만..”
“이래야만 해요. 저 아이도 이제 현실을 직시하고 적응해야 한다구요.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이면 어린게 아니죠. 언제까지나 보호 받는 식으로 자란다면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뭉개는 행위라구요. 그렇지 인성아?”
윤지후의 말에 박인성은 눈빛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자신감이 아닌 단순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이었다. 김창수는 가슴 한켠에서 끌어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무시하며 권총을 박인성에게 건네주는 윤지후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윤지후는 친절히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인 아이에게 살인을 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자, 총을 쏠 때는 항상 이 조준간을 안전으로 맞추지 말고 쏴야 해. 반대로 총을 쏘지 않을 때에는 안전이라고 쓰여진 곳에 핀을 맞춰야 하고 조준을 하는 요령은 생각보다 반동이 심하니까 목표물보다 아래를 조준해야 해. 물론 너의 키와 목표의 키를 고려해야겠지.”
“생각보다 묵직하네요.”
“그럼 살상무기가 어디 그렇게 가벼울 줄 알았니? 참, 사격을 할 땐 호흡을 멈춰야 한단다.”
“멈추고요?”
“그래. 작은 호흡으로도 총구가 흔들릴 수가 있거든 정확한 조준과 격발은 너의 생명을 지켜줄거야. 반대로 네가 누군가를 지킬 수도 있는거고.”
그 말이 꽤 크게 다가왔는지 박인성은 눈을 더욱 반짝거리며 아직은 커보이는 권총을 조심스럽게 이리저리 훑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윤지후는 박인성의 머리를 쓰다듬고서는 김창수를 보며 말했다.
“일단은 쉬도록 해요. 밤에 있을지도 모를 녀석들의 공격에 대비하려면 지금 쉬어야겠네요. 저도 어제 당직이후로 한숨도 못 잤고 형사님도 제대로 쉬지 못한 것 같으니까.. 아, 물론 저 여자도요.”
이윤희를 바라보는 윤지후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지만 그것을 캐치하지 못한 김창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네요. 그럼 인성이는?”
“인성이는 우리가 잘 동안 보초를 서줄거에요. 그래서 총을 맡긴거구요. 그렇지 인성아?”
그 말에 박인성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번에는 제가 지켜드릴게요. 원래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라서요.”
그 말에 ‘풋’ 하고 웃은 두 형사는 박인성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고맙다.”
“잠은 어디서..? 당직실에서 자기에는 위험부담이 꽤 클지도 모르겠는데요?”
김창수의 말에 윤지후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사무실 구석 쪽에 있는 유치장을 가리키며 웃었다.
“저기가 좋겠네요.”
“하하. 여지껏 경찰 생활 하면서 저런 곳에서 자게 될 줄이야.”
“저 정도 강도라면 녀석들도 쉽게 뚫지 못할거에요. 졸려 죽겠네.. 부탁한다 인성아.”
“네. 안심하고 푹 주무세요.”
눈을 빛내며 권총 여기저기를 뜯어 보는 박인성. 그런 아이에게 노파심이 생긴 김창수는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윤지후의 말대로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는 작은 것부터 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유치장 쪽으로 걸어가는 윤지후를 따랐다. 그러던 중 멍하니 서있는 이윤희에게 시선이 간 김창수가 그녀에게 말했다.
“안와요? 윤희씨.”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느릿하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차캉.
쇠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유치장 한쪽이 열리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야 갈 수 있는 공간. 먼저 들어간 윤지후는 넓직한 공간에 대자로 뻗어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김창수는 그제야 피로가 몰려드는 것을 느끼고는 하품을 했다. 느리게 걸어오는 이윤희를 들여보내고 문을 완전히 닫지 않은 김창수는 오른쪽 끝에 앉았다.
가운데에서 눈을 감고 있는 윤지후는 그새 잠이 들었는지 규칙적으로 숨소리를 내며 움직이지 않았고 왼쪽 끝에 누운 이윤희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본인과는 다르게 짧은 차림의 그녀가 행여라도 추울까 김창수는 사무실 의자에 비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박인성을 작은 소리로 불러냈다.
“인성아 잠깐만.”
“네?”
“저기 끝에 옷걸이 보이지?”
“네.”
“저기서 아무거나 걸칠 것좀 가져다줄래? 누나가 많이 추워보여서.”
그 말에 박인성은 고개를 끄덕이고 거의 끝 부분에 있는 기둥 형식의 옷걸이에 걸린 여러개의 옷들을 들추더니 상체를 덮을만한 남방을 가져왔다. 고맙다고 인사를 한 김창수는 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이윤희의 상체에 남방을 걸쳐주고서 다시 자신의 자리로 와 천천히 누웠다.
“후우..”
딱딱한 마룻바닥 느낌이었지만 그간 쌓였던 피로와 긴장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김창수는 그대로 눈을 감았고 이내 몸이 노곤해지는 것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마침내 잠이 든 세 사람을 가만히 보던 박인성은 자신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사명감에 사무실 곳곳에 있는 창문 쪽으로 걸음을 옮겨가며 권총을 이리저리 훑어 본다.
“나도 누군가를 지키는거야..”
학급에서 소위 말하는 왕따를 당하던 박인성에게는 지금 이런 상황이 고맙기만 했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와 이렇게 오래 대화하는 경우나 누군가를 지켜야하는 상황에 처음 닥친 그에게 있어서는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처음 거대 모기의 습격으로 죽어나가는 친구들 아니, 자신을 괴롭히던 놈들이 죽을 때 그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었다.
하늘에서 자신의 상황을 가엾이 여겨 천사들을 보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자신의 착각이었다. 일파만파로 퍼져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사냥해가는 녀석들의 모습에 뭔가가 잘못 돌아간다고 생각한 박인성은 그대로 곧장 학교를 벗어나기 위해 계단을 날다시피 이동했었다. 그런 도중에 모기에게 붙들려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학급 친우들의 모습이 보였지만 철저하게 무시하며 달려온 곳이 여기였다.
집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맞벌이를 하는 부모가 자기를 반겨줄리 만무하다고 생각한 박인성은 시내 가운데에 위치한 서로 걸음을 옮긴 것이 참 잘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오다가 죽을 뻔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 이렇게 살아서 다른 사람들을 지켜주고 있다. 난생처음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낀 박인성은 그 묘한 성취감에 흥분되는 마음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했다.
“나도.. 나도.”
당장에라도 괴물 녀석들에게 총알을 먹여주고 싶다고 생각한 박인성은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윤지후가 썼던 컴퓨터 앞에 앉아 실시간으로 뜨고 있는 기사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거대 모기의 원인은 다른 모기에게 물리는데에 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기사를 클릭한 박인성은 기사 내용을 면밀히 훑어보기 시작한다. 그에 따라 점차 굳어져가는 얼굴. 박인성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신경질적으로 컴퓨터를 끄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심호흡을 했다.
“거짓말일거야.. 거짓말.”
실성한 듯 풀린 눈으로 같은 말만 반복하던 박인성은 점차 몸에서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바닥에 주저 앉는다. 그리고 기관지를 통해 뭔가가 올라오는 것을 느낀 박인성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흰 것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우웩. 우웨엑.”
끊임없이 토해내며 서서히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낀 박인성은 거리가 꽤 되는 곳에서 잠을 자고 있는 세 사람에게 다가가려고 몸을 버둥거렸지만 따라주지 않는 몸이다. 몸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흰색의 액체를 계속적으로 토해내며 서서히 눈을 감기 시작하는 박인성. 그러면서도 그의 손에는 권총이 단단히 쥐어져 있는 상태다.
“우웩.”
미약하게 힘으로 권총을 집은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겨누기 위해 온 힘을 쥐어짜내지만 헛수고다. 이대로 죽는다는 생각이 들자 저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흘린 박인성은 머릿속으로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자신의 일상을 가만히 회상하면서 눈을 감는다.
부득. 부드득.
처음 나오던 다량의 액체가 바닥에 단단히 자리를 잡아 굳어가기 시작한다. 그것을 시작으로 동그란 원 모양으로 액체가 서서히 꾸물거리며 굳어져간다. 아직 바닥 밖에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계속적으로 나오는 액체들의 양이 점차 늘어만간다. 그와 동시에 박인성의 몸은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져가기 시작한다.
이제는 박인성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생명체가 되어가는 것을 알지도 못한채 세 사람은 유치장안에서 곤히 잠들어있다. 모두 고단한 하루를 보냈는지 박인성의 신음 소리와 구역질 소리에도 눈 하나 꿈쩍 않고 일어날 기미가 없다. 그럴수록 박인성의 몸은 점차 인간의 기준을 한참 지나쳐버리고 마침내 하나의 거대한 알로 변해버리게 된다. 이윽고 완전히 변태를 마친 하나의 알은 넓직한 사무실 안에 2미터 가량으로 자라 적당한 부분에서 자리를 잡고 기계적으로 위 아래로 크게 숨을 쉬기 시작한다.
두근. 두근.
거칠게 숨을 몰아쉬듯 생동감 있는 꼴로 움직여대는 알.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정도 숙면을 취한 김창수는 저절로 깨는 몸을 느끼고 눈을 떴다.
“흐아암.”
기지개를 주욱 펴고 꽤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낀 김창수는 몸을 일으켜 이제는 어두워진 사무실 공간을 바라본다. 그리곤 문득 이상함을 느낀 김창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치장 한 쪽에 있는 자그마한 문을 열고 나오며 말한다.
“진성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실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익숙한 숨소리에 대경한 김창수는 굳은 표정으로 어둠속에서 꽤 큰 소음을 내며 꿈틀대는 무언가로 향해 다가간다. 한 발. 한 발. 다가감에 따라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잊을 수 없는 그때의 알. 그것이 김창수의 눈에 가득 찬다.
“허..”
황당함에 아무말도 꺼내지 못하는 김창수는 멍한 얼굴로 눈 앞에 있는 거대 알을 가만히 바라본다.
“진성아..”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이 된 김창수는 차마 알 쪽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아직 자고 있는 윤지후와 이윤희를 깨웠다. 두 사람은 김창수의 다급한 소리에 재빨리 유치장 밖으로 나와 김창수가 가리킨 곳으로 서서히 걸어가기 시작한다.
쉬익. 쉬익.
인간이 낼 수 없는 거대한 숨소리에 두 사람의 표정은 급격히 굳어져간다. 이윽고 그 소리를 내는 진원지의 위에 있는 정체를 확인한 두 사람. 헛바람을 삼키며 뒤로 후다닥 물러나는 이윤희와는 다르게 덤덤한 표정으로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는 윤지후.
“없애야해요.”
“....”
“깨어나면 골치 아프니까요. 어쩔 수 없어요.”
마치 박인성을 알지도 못했다는 듯 처연스럽게 넘기는 그의 태도에 김창수는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분명 눈 앞에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지만 그래도 몇 시간 전엔 자신들과 함께 했었던 평범한 고등학생에 불과했다. 그런 복잡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윤지후는 알 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가 발로 가볍게 툭 찼다.
물컹.
부드럽게 내용 물을 감싸고 있는 듯 윤지후의 발이 살짝 패인다. 윤지후는 이어 사무실 책상 여기저기를 뒤지기 시작하더니 굵은 커터칼 여러개를 갖고 온다. 멀찍이 떨어져 있는 이윤희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윤지후는 알 옆에서 멍한 얼굴로 서있는 김창수의 손에 커터칼을 쥐어준다.
“이건..?‘
“총은 꼭 필요할 때만 쓰도록 합시다.”
“....”
가만히 커터칼을 잡고 있는 김창수의 얼굴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윤지후는 그 얼굴을 잠시 보다가 망설임 없이 커터칼의 날을 길게 빼내어 알 가운데를 깊게 찔러 넣었다.
푸욱.
고기를 썰때와 비슷한 느낌이 손으로 전해진 것을 느낀 윤지후는 이어 서서히 손에 힘을 주기 시작한다.
푸우욱.
세로로 갈리며 붉은 액체를 폭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하는 알. 이리저리 튀는 액체를 몸 그대로 받아들이는 윤지후. 가만히 있던 김창수도 폭포처럼 흐르는 액체를 보고서는 윤지후의 곁으로 다가가 칼질을 하기 시작한다.
푸욱. 푹.
그 둘의 모습에 이윤희는 질렸다는 듯 한 손으로 입을 막고서 다시 유치장으로 들어갔다. 지금 그녀에게 있어 제일 안전한 공간은 쇠창살로 막혀진 이 공간일지도 몰랐다.
푹.
쉴새 없이 칼질을 하는 둘. 마침내 거대한 구멍이 알 가운데에 생기며 검은 형체가 액체를 타고 바닥에 흘러내리듯 축 늘어지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태아가 산모 뱃속에 있을 때의처럼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는 하나의 곤충을 말없이 보는 두 사람.
키이-
그러던 중 사지를 벌벌떠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거대 모기. 아직 완전한 부화가 아닌 모양인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그 모습을 싸늘한 눈으로 보던 윤지후는 퍼덕거리는 거대 모기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키이이-
곧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기라도 한듯 거대 모기는 있는 힘 없는 힘을 짜내어 윤지후에게서 최대한 멀어지려고 발버둥을 치기 시작한다. 그 발악하는 모습에서 박인성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지는 것이 느껴지는 김창수는 아예 고개를 돌려버리며 손에 쥔 커터칼을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던져버린다.
키이이-
어두운 사무실 바닥에 길게 액체를 흘리며 이동하는 녀석을 보며 작게 미소짓는 윤지후. 손에 쥔 커터칼을 높게 들고 버둥거리는 녀석의 목쪽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발로 콰악 누른다.
키이이-
몸을 베베꼬며 윤지후를 밀어내기 위해 3쌍의 다리로 그의 행동을 저지하려고 하지만 약해질대로 약해진 상태인지 그러지 못한다. 그러다 최후의 수단인 침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윤지후에게 해를 입히려고 하지만 그 동작이 상당히 느린 탓에 윤지후는 여유롭게 그것들을 피해냈다.
“잘가라.”
발에 힘을 꽉 쥐며 커터칼을 높이 든 상태에서 그대로 내리찍는다.
콰직.
키이이이이-
한번에 죽지 않은 거대 모기가 살아보기 위해 몸을 버둥거린다.
콰직.
키이이-
콰직. 콰직. 콰직.
여러차례의 칼질이 계속 될수록 서서히 몸이 굳어가는 녀석. 이미 생명이 끊어진 상태지만 윤지후의 칼질은 멈추지 않는다.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잔인한 미소를 띄며 튀어오르는 액체들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은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콰직. 콰직.
그것을 보다 못한 김창수가 얼른 윤지후에게 다가가 말렸다.
“후우. 후우..”
그제서야 숨을 몰아쉬며 대가리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뭉개진 곳을 가만히 바라보던 윤지후는 양손과 옷에 묻은 액체들을 털어내며 말했다.
“우선 이것을 처리해야겠네요.”
“어디에..?”
“1층.. 밖에 버려야겠어요. 그래야 녀석들도 오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죠..”
순식간에 달라진 그의 태도에 약간 불안함을 느낀 김창수는 애써 생각을 떨치며 바닥에 추욱 늘어진 가는 다리를 잡았다. 자잘한 잔털과 딱딱한 무언가가 손 끝에 느껴진다. 그 기분 나쁜 것을 애써 참아내며 서서히 끌기 시작한다. 윤지후 역시 그 반대 쪽 다리를 잡고 사무실 밖으로 끌어낸다.
질질질.
생각보다 무거웠지만 아주 못 끌 정도는 아니었다. 유치장 안에서 두려운 얼굴로 자신들을 보는 이윤희를 힐끔 바라본 김창수는 말없이 녀석을 끌었다.
철컥.
사무실의 문을 열고서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의 녀석을 힘겹게 구겨가는 식으로 밖으로 빼내 1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걸음을 옮긴다. 어두운 복도 안에 순식간에 녀석이 내는 악취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그 냄새를 가만히 맡으며 김창수가 조용히 말한다.
“망설이지 않았나요?”
“예?”
윤지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김창수를 가만히 바라본다. 평소와 같은 얼굴에 김창수는 고개를 저으며 묵묵히 녀석을 끌기 시작한다.
“..망설임이라. 오랜만에 듣는 단어군요.”
질질질.
복도 내부에 길게 그어지는 액체의 길을 거닐며 윤지후가 말을 이었다.
“저는 언제부턴가 망설임이라는 단어를 아주 싫어하게 되었죠. 아, 원래 그런건 아니었어요. 저도 평범한 사람이니까요. 항상 무언가를 하기에 앞서 고민하거나 망설이는게 대부분이죠. 그저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그것이 싸악 사라지게 되었지만요.”
“..사건이라면..”
“제가 맡은 지역은 저급한 년들이 일하는 곳이에요. 어딘지 아시죠?”
김창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현장에서 일을 한 적은 없지만 그 명성은 소문을 들어 익히 알고 있었다. 하루에도 죽어나가는 사람이 수십명이며 그것을 저지하려는 경찰 역시 수 없이 죽어나가는 곳이라고.. 때문에 그 지역을 맡는 경찰들은 모두 엘리트급이거나 정신이 약간 이상한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그런 험악한 곳에 오래 있으면서 정신에 많은 충격을 받은 탓인지도 몰랐다.
“그곳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났죠. 어느 날은 신고 제보를 받고 동료들과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갔죠. 가보니.. 흔히들 일어나는 인질극이었어요. 불법 매매를 하는 새끼들이 일으킨거죠. 인질로 붙잡힌 것은 그 지역에서 일하는년이었어요. 아시잖아요. 그런 곳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제대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
“저는 망설였죠. 저 여자를 구해야 하는건가. 아니면 뒤의 범인을 우선 적으로 잡아야 하는건가. 그렇게 되면 두 가지의 길로 나뉘게되지요. 여자의 안전을 우선시 하느냐 그것을 버리고 범인을 잡는 것을 우선으로 하느냐. 그렇게 마음 속에서 옥신각신 하던 와중에 잔뜩 흥분한 범인이 인질을 앞세우며 무차별 적으로 총을 갈겨대기 시작했죠. 당연히 우리 대원들은 많이 다치거나 죽어나갔죠. 아, 거기서 느꼈죠. 내가 그때 바보등신처럼 멍하니 있지만 않았어도 내 동료들이 다치거나 죽지 않았을거라고. 어차피 거기에 있는 년들은 쏴도 우리에게 아무 말 못할테니까..”
1층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흔들거리며 손에 전해지는 감촉을 애써 무시하며 묵묵히 걷는다.
“당연히 인성이의 얼굴이 스쳐지나갔죠. 하지만 그 작은 연민의 감정으로 그것을 방치해두면요? 그땐 누가 책임질거죠? 물론 인성이의 사정은 안됐어요. 그래도 우린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를 살아가려면 이런 자그마한 감정 따위에 오락가락하면 안되는겁니다. 지금 세상에는 그저 살아야 할 사람은 살고 죽어야 할 사람은 죽는게 이치가 되버린거에요.”
김창수는 자신이 왕따 생활을 하며 집에서 외롭게 지낸다고 말하며 소개를 했던 박인성을 떠올리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윤지후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 뿐이었다. 김창수는 자신보다 강한 마음을 갖고 있는 윤지후를 힐끗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1층 중앙에 있는 문 쪽으로 걸었다.
드드득.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작은 틈 사이로 차가운 밤바람이 전신을 가득 에운다. 조심스럽게 문을 연 김창수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핀다. 곳곳에 켜진 가로등과 아직 생존하고 있는 듯 저 멀리 보이는 집이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아무것도 없어요.”
김창수의 말에 윤지후는 다른 쪽의 문도 활짝 열고 녀석을 질질 끌어 문에 오르기 직전인 계단 턱에 끌어다 놓았다.
“후우.”
가뿐 숨을 내쉰 두 사람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마치 각목처럼 딱딱히 굳어져가는 한때는 박인성이었던 녀석을 묵묵히 내려다본다.
위이잉-
그 잠시의 틈이 너무나 컸는지 허공에서 뭔가가 빠르게 스쳐지나는 것이 눈에 보인다. 다행히 두 사람은 액체를 뒤집어 쓴 상태인지라 빠르게 지나간 거대 모기가 둘을 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한 것 같다. 윤지후는 빠르게 날아다니는 거대 모기를 보며 말했다.
“밤에 모기들이 더 활동적이니까 조심해야겠군요.”
그리고 서서히 문을 닫은 두 사람은 몸에 가득 묻은 액체를 씻어내기 위해 1층에 있는 화장실로 걸음을 옮긴다.
“평소 같았으면 활발하게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을텐데 말이죠.”
“그렇겠네요. 한참 야간 순찰이나 잠복 근무를 하고..”
화장실로 들어선 두 형사는 2개의 세면대에 각각 붙어 물을 틀고 씻기 시작한다. 옷에 묻은 것 까지는 완전히 지워낼 수 없기에 대충 얼굴과 손을 씻은 두 형사는 화장실에 나와 천천히 중앙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드드득.
그러던 중 익숙한 소리에 기계적으로 발을 멈춘 두 형사는 오른쪽 벽 쪽에 바짝 붙어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
어두운 출입구 쪽에는 하나의 거대 모기가 문을 열고서 천천히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생각과는 전혀 다른 행동에 당황한 둘은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드드득.
불행히 안에 들어온 녀석은 하나가 아니었다. 이어 다른 쪽의 문이 열리며 또 다른 녀석이 들어오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런 두 녀석의 동태를 살피며 윤지후는 커터칼 하나를 김창수에게 내밀었다. 김창수는 그것을 조심스레 받아들고 잠바 안주머니에 있는 권총을 꺼냈다.
“총은..?”
“아까 인성이한테 줘버려서요. 위에 있는 사무실 쪽에는 여분이 있긴 해요.”
그렇다면 멀리서 치명상을 줄 수 있는 무기를 가진 사람은 김창수 한명이다. 순간적으로 나타나 선제공격을 해야하는지. 이대로 녀석들이 나가기만을 기다려야하는지 망설여지는 순간이다. 마음속으로는 녀석들이 저 곳에서 어서 나가기를 바라지만 녀석들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키이이-
키이-
마치 대화를 하기라도 하듯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서서히 앞으로 이동하는 녀석들. 가만히 지켜보는 두 형사. 녀석들은 특이하게도 방금 전 길게 새겨진 액체들을 따라 움직이기만 할 뿐 다른 쪽으로는 이동하지 않았다. 서서히 두 형사가 몸을 숨긴 곳으로 다가오는 두 녀석.
“일단 저기로..”
다시 화장실로 몸을 숨긴 두 형사는 고개만 살짝 내밀어 계단 쪽을 오르는 두 녀석의 옆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김창수는 그 행동에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며 작게 말했다.
“위에 윤희씨가..”
하지만 윤지후는 아무런 표정 없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김창수는 그런 태연한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무슨 방법이라도 있어요?”
“아뇨. 딱히.”
“윤희씨가 위에 있다니까요?”
“알아요.”
마치 제 일이 아니라는 듯 서있는 윤지후를 가만히 바라보던 김창수는 몸을 이끌고 천천히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윤지후는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저벅. 저벅. 저벅.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계단 오르는 김창수. 권총을 단단히 쥐고 앞에 있을지도 모르는 녀석들에 대비하기 위해 총구를 앞으로 겨눈다. 이대로 있다가는 이윤희가 녀석들의 식사거리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점차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저벅. 저벅.
2층에 다다라 사무실 쪽이 있는 곳에 고개를 힐끔 내민 김창수. 역시나 예상대로 두 녀석이 살짝 열려 있는 사무실 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눈에 잡힌다. 망설일 것 없이 그 뒤를 천천히 쫓는 김창수. 그가 알던 이윤희의 성격상 있는 힘껏 비명을 지를 가능성이 높았다.
“....”
하지만 들려오는 거라곤 자신의 작은 발소리 뿐. 김창수는 뭔가가 생긴거라고 확신하고서 살짝 열려져 있는 문 틈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그곳에는 두 녀석이 알이 깨진 자리에서 서로 대가리를 흔들어대며 대화를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고 다른 쪽에서는 이윤희가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바닥에 엎드려 있는 모습이 눈에 잡혔다. 평소와 다른 붉은 액체의 색이 그녀의 몸을 가득 덮고 있다.
“....”
상당히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본 김창수는 아직도 대가리를 흔들어대는 녀석들을 가만히 주시했다. 이대로만 지나간다면 녀석들이 나가기만을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 같기도 하다. 김창수는 죽은 듯이 엎드려 있는 이윤희를 살짝 보고서는 다시 몸을 돌려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빠르게 걸어 1층 계단 쪽으로 내려가려는 순간 낯설지만 익숙한 무언가와 맞딱뜨린다.
키이이-
어두운 공간 속에서도 빛나는 날카로운 침과 거대한 신장. 거대 모기였다. 김창수는 헛바람을 들이키며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워낙 당황한 탓에 계단 위를 잘못 디뎌 몸이 뒤로 넘어지는 불상사가 생겨 버리고 말았다. 그 순식간에 생겨난 틈을 잘 알고 있는지 녀석은 빠르게 움직여 권총을 쏘려고 하는 김창수의 사지를 3쌍의 다리로 단단히 고정시켜버린다.
키이이이-
이내 날카로운 침을 서서히 아래로 내리기 시작하는 녀석. 김창수는 있는 힘껏 손에 잡힌 권총을 쓰려고 애를 썼지만 너무나 강대한 힘에 어쩌지를 못했다. 꼼짝없이 당하게 생긴 김창수는 자신의 가슴 팍에 거의 꽂히려고 하는 침을 멍하니 바라봐야만 했다.
콰직.
하지만 녀석의 식사는 이어지지 않았다. 뒤에서 나타난 윤지후의 일격에 배에서 엄청난 양의 액체를 흘리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른 녀석은 김창수를 잡고 있던 다리를 풀고 파닥거리며 자신에게 엄청난 고통을 선사한 윤지후에게 돌진해갔다.
키이이-
상대적으로 좁은 공간에 거대한 공격을 완전히 피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윤지후는 아예 아래쪽 계단으로 몸을 날렸다. 당연히 녀석은 그대로 벽에 몸을 박아버릴 수 밖에 없었고 그 찰나에 순간을 놓칠 리가 없는 김창수는 얼른 권총을 들어 장전을 했다.
철컥.
아직도 액체를 흘리며 몸을 베베꼬던 녀석은 가까이 있던 목표가 사라지자 몸을 돌려 김창수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명을 단축시키는 행동이었다.
타앙-
한 번의 일격으로 대가리가 완전히 두 쪽이 난 녀석은 날개를 퍼덕거리며 바닥에서 빙빙 돌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김창수는 문득 사무실 쪽에 있는 두 녀석이 생각나 퍼덕거리는 녀석의 몸을 거침없이 밟아 계단을 내려갔다.
“으윽..”
1층에는 방금 몸을 던져 피했던 윤지후가 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김창수는 얼른 그의 몸을 일으켜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키이이-
이어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 김창수는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다. 가깝게만 느껴졌던 화장실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리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떨쳐내며 빠르게 화장실 안쪽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거친 숨을 내쉬며 아직 물기가 있는 바닥에 주저 앉았다.
“안올 줄 알았어요.”
“안가려고 했죠.”
“..어쨌든 고마워요.”
“일단은 여기서 대기하도록 하죠.”
윤지후의 말에 김창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면대에 있는 수돗물을 틀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 여자는요?”
“아직 살아 있어요.”
“..그렇군요.”
윤지후의 얼굴에서 작은 아쉬움이 스쳐지나갔지만 김창수는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다시 바닥에 앉았다.
“한 녀석이 더 있을 줄이야..”
“저도 몰랐어요. 가만히 있다가 걱정이 되어서 올라가는데 이상하게 거대한 그림자가 있지 뭐에요. 그냥 돌아가려고도 했는데 아래에 깔린 당신을 보고 바로 달려들었죠.”
“그렇군요.”
윤지후는 아직도 몸에 따른 고통을 이기기 힘든지 인상을 찡그렸다. 김창수는 그런 그에게 미안한 감정이 생겼지만 지금은 이윤희의 안위가 더 걱정되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문을 열고 고개를 내미는 김창수. 길게 뻗은 복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상황.
“후우...”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앉은 김창수. 두 형사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