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MOS.Q (part.3)
어두운 사무실 안쪽. 대가리를 흔들어 대던 거대 모기들이 뭔가를 감지했는지 문쪽으로 빠르게 이동한다.
다다다닥.
3쌍의 다리로 바닥을 기어다니는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완전히 모기들이 나간 것을 확인한 이윤희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는 울렁거리는 속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노란 액체를 게워내기 시작한다.
“우욱. 우웩.”
비위가 약한 그녀가 이 정도로 참은 것도 용한일이었다. 확실히 인간은 죽음의 순간에 강해진다고 했던가. 자신을 위협할만한 생명체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그녀의 몸이 다시 정상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한다.
타앙-
그리고 들려오는 총소리. 이윤희는 몸을 크게 움찔하며 입가에 흐르는 노란 액체를 대충 닦고서 서서히 몸을 일으켜 문 쪽으로 걸어간다. 찰박거리며 바닥에 닿는 발바닥의 감촉이 여간 찜찜한게 아니다. 하지만 총소리가 났다는 것은 분명 무슨 일이 생긴거라고 감각이 말해주고 있다.
“설마..”
방금 전에 나간 거대 모기들에게 두 사람이 당할거라는 상상을 하자 저절로 다리가 떨려온다. 하지만 이윤희는 멈추지 않고 문쪽으로 계속 걷는다. 활짝 열린 한쪽 문에 살짝 고개를 내밀어 밖을 살핀다.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전방에 뭔가가 서있다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
가만히 전방을 주시하는 이윤희.
키이이-
그런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전방에서 한 녀석의 소리가 들려온다. 이윤희는 당황하지 않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몸을 옆으로 틀어 혹시나 모를 녀석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기로 했다.
키이이이-
이어 꽤나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 이윤희는 다시 고개를 살짝 내밀기 위해 몸을 천천히 틀기 시작한다.
키이이-
하지만 이윤희의 행동은 주욱 이어지지 않았다. 어느샌가 나타난 거대 모기의 다리가 다시 사무실 쪽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곧 이어 거대 몸짓도 들어올 것이다. 그녀는 헛바람을 들이키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아 버렸다. 그와 동시에 사무실 내무로 들어오는 거대 모기.
키이-
대가기를 이리저리 흔들며 뭔가가 이상하다는 듯 사무실 가운데 쪽으로 이동하는 모기. 그런 거대 모기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던 이윤희는 슬금슬금 기어 나온다. 왠지 이대로 있다가는 녀석의 눈에 띄어 공격을 당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차디찬 바닥을 기어 중앙의 계단 쪽으로 서서히 걷기 시작한다. 그러는 와중에도 수시로 뒤를 돌아 사무실 안쪽에 있는 녀석의 동태를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행히 그녀가 중앙 쪽 계단에 다다름에도 녀석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후우..”
안도의 숨을 내쉬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는 이윤희.
찰박. 찰박.
아직 미약하게나마 들리는 액체 소리에 이윤희는 오싹함을 애써 잠재우며 서서히 내려간다. 한 계단 한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 뒤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기운에 이윤희는 몸을 멈춰 선다. 왠지 이대로 고개를 돌린다면 그대로 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다.
“....”
아직 1층까지의 남은 계단은 꽤 남은 상태다.
키이이-
그런 그녀의 망설임을 읽고 있었는지 녀석의 소리가 그녀의 귀에 강하게 꽂힌다. 그리고 서서히 뒤를 돌아보는 이윤희. 하지만 보이는 것은 어두컴컴한 공간이다. 자신의 귀를 의심한 그녀는 이어 3층으로 향하는 계단의 작은 부분으로 시선을 옮긴다.
키이이-
녀석의 소리. 작은 부분으로 뭔가가 뾰족하게 튀어 나와 있는 그것. 이리저리 흔들어 대며 두 눈을 빛내기라도 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녀석의 존재가 점점 거대하게 느껴진다. 망설일 것 없이 계단 아래 쪽으로 몸을 날리다시피 달리는 이윤희. 그런 그녀의 행동에 빠르게 반응한 거대 모기는 3쌍의 다리를 유용하게 이용해 계단 하나하나를 빠르게 건너 뛰다시피 그녀의 뒤를 쫓는다.
“꺄아아악!”
순식간에 좁혀지는 것이 느껴진 이윤희는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날카롭게 소리를 지른다. 빠르게 1층에 도달한 이윤희는 돌아볼 것도 없이 열려 있는 출입구 쪽으로 내달린다.
키이이이-
이제 바로 지척에서 들릴 정도로 그 소리가 가깝다. 힐끔 뒤를 돌아 녀석의 위치를 살피는 이윤희.
키이이-
거대한 몸집과 작은 대가리가 자신의 몸을 금방이라도 꿰뚫듯이 다가올 것만 같다. 이대로 죽기 싫다고 머릿속에서 말하고 있지만 그녀의 연약한 신체로는 저 거대한 녀석을 이길 턱이 없다. 파다닥. 녀석이 날개를 펴고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기세다.
타앙-
그리고 들려오는 커다란 총소리.
키이이이이-
이어지는 녀석의 고통스러워하는 비명소리.
파다다닥.
이리저리 날갯짓을 해가며 고통스러운 몸부림을 쳐대는 녀석을 멍하니 보던 이윤희는 총 소리가 난 곳으로 무작정 뛰었다.
키이이이-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자신 옆을 지나쳐가는 이윤희의 몸을 잡고자 다리를 뻗었지만 이어서 들려오는 총소리에 타격을 입은 녀석은 몸을 축 늘어트릴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을 힐끔 바라본 그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다리를 지탱해가며 뛰었다.
“빨리!”
그리 멀지 않은 전방에 김창수가 그녀를 보고 초조한 표정으로 서있다. 이윤희는 마라톤의 골인지점이라도 되는 양 양손을 뻗어 김창수에게로 빠르게 뛰어간다.
키이이이-
하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생생한 소리에 김창수의 얼굴은 단번에 굳어졌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며 오직 눈 앞에 서있는 김창수에게로 다가간다. 하지만 둘의 상봉을 지켜보고만 있을 녀석이 아니었다.
파다다닥.
거대하고 투명한 날개를 핀 녀석은 맹렬한 기세로 이윤희의 뒤를 바짝 쫓는다. 그 엄청난 속도에 김창수는 권총을 들어 녀석을 조준하려 했지만 눈 앞에서 다가오는 이윤희 때문에 제대로 조준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두다가는 녀석에게 그녀가 당한다. 김창수는 오래 생각하지 않고 옆으로 주욱 나와 빠르게 다가오는 녀석의 대가리 쪽을 조준했다.
철컥.
그러나 이윤희는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듯한 심장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넘어져버렸다. 그 절호의 찬스를 놓칠 리가 없는 거대 모기는 그대로 덮치듯이 이윤희의 몸 위로 착지했다. 김창수는 망설일 것 없이 녀석의 대가리 부분에 총알을 날렸다.
타앙-
키이이이이-
그러나 김창수의 일격은 완전히 명중한 것이 아니라 스치기만 한데에서 그쳤다. 붉은 액체를 흘리며 자신을 공격한 인간을 향해 표적을 바꾼 거대 모기는 이윤희를 지나 김창수에게로 빠르게 다가간다. 자신을 금방이라도 덮칠 듯한 거대 모기를 보며 재장전을 한 김창수는 다시 권총을 들었지만 빛처럼 이어지는 녀석의 공격에 몸이 붕 뜨는 것을 느끼며 벽에 그대로 쳐박혀버린다.
“크악!”
전신에 가해지는 엄청난 충격에 곧 바로 일어나지 못한 김창수. 그런 무기력한 모습을 보며 서서히 그에게로 다가가는 거대 모기.
“총!”
그 소리에 살짝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니 화장실에서 나온 윤지후가 서있는게 보인다. 김창수는 오른손에 들린 권총을 모기의 다리 사이로 강하게 밀어 넣었고 재빠른 슬라이딩으로 그 총을 건네 받은 윤지후는 장전이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키이이이-
뒤에서 가해진 치명타에 녀석의 대가리가 그대로 터져버린다. 그리고 서서히 앞으로 기우는 거대 모기의 몸체. 김창수는 얼른 그것을 피하기 위해 옆으로 몸을 굴린다.
“허억.. 헉.”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바로 옆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는 거대 모기의 몸체를 멍하니 바라보는 김창수.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윤지후는 긴장한 얼굴을 풀고서 김창수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고생했습니다.”
“후우.. 후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그 손을 잡은 김창수는 몸을 일으켜 바닥에 앉아 무릎을 안고 있는 이윤희에게 다가갔다. 몸 군데군데 묻어 있는 붉은 액체가 그녀의 모습을 더욱 처량하게 보이게 한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내미는 김창수.
“괜찮아요?”
그 손을 물끄러미 올려다 본 그녀는 이내 고운 얼굴을 찡그리고는 고개를 파묻고서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한다. 멋쩍은 얼굴로 손을 흔든 김창수는 격하게 떨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내려다 볼 뿐이다. 하지만 윤지후는 그런 그녀를 싸늘한 시선으로만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버린다.
“흐윽. 흑흑..”
김창수는 그녀 옆에 앉아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일단 들어가요. 여기 있으면 위험하니까.”
그 말에 이윤희는 힘없이 몸을 일으켜 화장실 쪽으로 걸어간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김창수는 완전히 죽은 모기의 몸체를 바라보고서는 고개를 젓고 화장실 안으로 걸어갔다.
“흐윽.. 흑.”
울음을 간신히 삼키며 수돗물로 몸을 씻기 시작하는 이윤희의 모습을 말없이 본 김창수는 화장실 한켠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윤지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저도..”
윤지후는 주머니에서 꾸깃한 담배각을 꺼내 엉망진창인 담배 하나를 간신히 꺼내 내밀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 일일이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김창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받아들고 담배를 물었다. 윤지후는 다른 손에 들린 라이터로 불을 붙여주었고 김창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후우.”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담배 연기를 느끼며 조금은 긴장감이 풀리는 것을 느낀 김창수는 말 없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담배를 피워댄다. 모락모락. 흰 색의 두 연기가 서로 엉켜 천장에 맴돈다. 기계적으로 뻐끔거리는 두 사람. 먼저 입을 연것은 윤지후였다.
“이곳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아요.”
“..그렇군요.”
“답답하네요. 어디로 가야 저런 녀석들이랑..”
두 사람은 마음이 착잡한 듯 말없이 담배만 피워댈 뿐이다. 어느새 액체들을 모두 씻어낸 이윤희는 온 몸에 흐르는 물기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채 윤지후에게 다가가 말했다.
“나도 하나 줘요.”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윤지후는 아예 담배각채로 그녀에게 내밀었다. 잔뜩 구겨진 담배각 사이에 손을 뒤적거린 그녀는 그나마 필만한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낚아채듯 윤지후의 손에서 라이터를 잡은 그녀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 모습이 꽤나 의외라는 듯 놀란 듯한 김창수와 아무렇지도 않게 그 모습을 보는 윤지후.
“윤희씨 담배도 펴요?”
김창수의 말에 이윤희는 말 없이 담배만 피워댄다. 괜히 머쓱해진 김창수는 윤지후에게 말했다.
“아, 어찌되었건 날이 밝는 대로 여기서 떠나야겠어요.”
“위층 사무실에 총과 총알들이 있으니.. 일단 여기서 챙길 수 있는 것은 다 챙기도록 합시다. 떠나는 건 그 다음이에요.”
“그러지요.”
아직 밖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세 사람은 날이 밝을때까지 화장실에서 보내기로 했다. 차가운 바닥에 옹기종기 몸을 뉘운 세 사람 중 가장 먼저 잠이든 것은 당연 이윤희였다. 불과 몇 십분 전에 생긴 일이지만 그 일로 인해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는 탓인지도 몰랐다. 오히려 잠이 안오는 것은 두 형사였다.
“....”
김창수는 자신의 잠바를 벗어 골아 떨어진 그녀의 몸을 덮어주었다. 윤지후는 그저 바닥에 누워 멀뚱히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김창수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세상이 이렇게 된건지.. 안그래도 살기 힘든데 왜 이런 일까지 생기는 걸까요.”
“글쎄요..”
“윤희씨가 그러더군요. 어차피 몇 년 안에 죽을 걸 왜 살아가느냐고. 그때 딱히 할말이 생각 나지 않아서 아무 말도 못했었는데 이제야 조금은 알 것도 같네요.”
“그래도 남은 여생 해볼 건 다 해보고 가야죠. 평생 살아오면서 못하던 것들 다 하고 가야 죽어서도 여한이 없어요. 물론 범죄는 안되지만.. 어쩌면 자살이란 것이 다른 해결책이 될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러기 싫어요. 그럴 용기도 없고 일단은 살아보고 싶으니까요.”
윤지후의 말에 김창수는 생전 박반장이 말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구한다는 것.’ 경찰의 신분으로서 위기에 처해진 사람들을 한명이라도 더 구해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몇 년 후면 사람들은 죽게 되어 있다. 지금 죽는 것과 나중에 죽는 것이 과연 큰 차이가 있을까.
“최소한 자신이 죽을 장소는 정하고 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죽는 장소가 도로 위가 되었건 이런 바닥이 되었건 살아 있음으로 인해 생기는 여러 일들과 자그마한 추억거리들을 안고가야 저승에서도 외롭지 않겠죠.”
“..그런 걸까요.”
“그렇게 생각해요 전. 선택할 수 있지만 그것이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 앞으로 계속 살아보고 싶거든요.”
“역시 그렇겠죠?”
“네.”
그 대화를 끝으로 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만 감았다.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과 생각들이 겹쳐서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지만 김창수는 일단은 살기 위해서 당장 해야할 일들을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한다. 왠지 이대로 밤을 샐 것 같은 기분이든다.
그렇게 꼬박 날을 샌 두 사람은 아침이 되어서야 슬슬 몸을 일으켰다. 밤새 차가운 바닥에 지낸 탓에 온 몸에 한기가 들었지만 밖에 도사리고 있을 위험을 생각하면 이마저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김창수는 아직도 자고 있는 이윤희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
얕은 숨을 내쉬며 잠을 자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깨우기가 망설여진다. 윤지후는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화장실의 문에 서서 김창수에게 말했다.
“다 챙기고 데려가도 되잖아요. 일단은 그대로 둡시다.”
“그게 낫겠죠?”
그 말에 김창수는 곤히 자고 있는 그녀를 한 번 더 보고서는 윤지후를 따라 나섰다. 조용히 문을 연 윤지후는 먼저 고개를 살짝 내밀어 전방을 살폈다. 어제의 흔적을 나타내주기라도 하듯 바로 앞에는 차갑게 굳어버린 거대 모기의 몸체가 있었고 그 전방으로는 붉은 색의 연한 액체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됐어요.”
조심스럽게 몸을 내밀고 나서는 윤지후의 뒤를 김창수가 바짝 붙는다. 고요한 실내 천천히 그 실내를 걷는 두 사람.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쪽에 오르기 전 출입구 쪽을 가만히 바라본다. 활짝 열려 있는 문 사이로 굳어버린 듯한 거대 모기의 몸체.
“후우.”
문득 박인성의 생각이 난 김창수는 애써 고개를 저으며 계단을 오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각을 찌르는 고약한 냄새에 두 사람은 눈살을 찌푸린다. 하나하나 계단을 올라 어제 총알을 맞아 죽어버린 녀석의 몸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밟고서 사무실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저벅. 저벅.
어제 밤과는 달리 복도와 사방에 보이는 물체들이 눈에 쉽게 잡힌다. 서둘러야 한다. 언제 어디서 놈들이 들이 닥칠지 모르는 일이다. 빠르게 사무실로 이동한 두 사람. 윤지후가 물품들의 위치를 훤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필요한 물품들만 챙길 수 있었다.
“잊은 거 없죠?”
권총에 총알들을 장전하며 김창수가 묻는다. 윤지후는 주위를 한번 훑고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사무실 밖으로 나간다. 서둘러 계단 쪽으로 이동하는 두 사람. 김창수는 화장실에서 곤히 자고 있을 이윤희에 대한 생각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모기들도 낮엔 잠을 잔다고 들었어요.”
“그래요?”
“밤 보다는 덜 활동적일거에요.”
윤지후의 말에 어느 정도 안심이 된 김창수. 1층 복도 쪽에 내려온 윤지후는 먼저 밖에서 차를 준비시켜두겠다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김창수는 빠르게 뛰어가는 윤지후의 뒷모습을 잠깐 보고는 화장실 쪽으로 뛰어가 아직도 바닥에 곤히 자고 있는 이윤희를 깨웠다.
“일어나요. 윤희씨.”
“....”
하지만 이윤희는 약하게 숨을 쉴 뿐 일어나지 못했다. 김창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을 뻗어 이윤희의 이마에 손을 가져간다.
“이런..”
손 끝에 전해지는 열이 엄청나다.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서 밤을 지낸다는 것은 애초에 무리가 있었는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그녀는 액체를 씻고 제대로 물기도 닦지 않은 채로 잠들었다.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윤희씨.”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윤희를 보며 안절부절하던 김창수는 뭔가 결심을 한 듯 이윤희를 단번에 안아 들었다. 생각보다 가벼운 그녀의 체중에 감사하며 빠르게 윤지후가 있을 출입구 쪽으로 걸어간다.
“조금만 참아요. 윤희씨.”
같은 말만 반복하며 초조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는 김창수. 그 모습을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윤지후가 차를 몰고 그에게 다가왔다. 김창수는 조심스럽게 뒷좌석의 문을 열고 이윤희를 눕히고서 조수석에 탔다. 미약하게 숨을 쉬는 그녀를 힐끗 보며 윤지후가 물었다.
“감기에요?”
“네. 어쩌다보니..”
“나 참..”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윤지후는 차를 출발 시켰다. 빠르게 서를 벗어나는 차. 윤지후는 당장 어디로 핸들을 돌려야 할지 망설이다가 왼쪽으로 주욱 뻗은 상가거리로 핸들을 돌렸다.
“어디로 가야할까요.”
“글쎄요.. 일단 저 여자 해열제나 좀 구하고 정하도록 하죠.”
빠르게 차를 몰아 주욱 뻗은 상가들을 지나쳐간다. 하나같이 온전한 상가들을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이 망가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곳곳에는 거대 모기의 습격 흔적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심하게 말라 비틀어진 사람들의 시체가 간간히 눈에 보인다. 그렇게 얼마 가지 않아 불이 꺼졌지만 빨간 글씨로 ‘약’이라는 간판을 본 윤지후는 그 앞에 차를 멈췄다.
“제가 갈게요.”
그렇게 말한 김창수는 차에서 내려 바로 앞에 있는 약국으로 들어간다. 약국 안에는 아무렇게나 어지럽혀져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해열제와 감기약을 찾기란 쉽지가 않았다. 전문지식이 없는 김창수는 어쩔 수 없이 바닥에 즐비하게 늘어진 조그만한 약 통 하나하나를 들춰 보며 설명을 읽어볼 수 밖에 없었다.
“제길..”
하지만 그 종류와 가짓수가 너무나 많다. 쉽게 찾아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우물쭈물거리는 모습을 가만히 보던 윤지후도 차에서 내려 그를 거들었다.
“이왕 온 김에 나중에 쓸지도 모를 약들을 챙기죠.”
“네.”
그 밖에 반창고나 밴드, 연고 등을 챙긴 윤지후는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정수기로 다가가 물을 두어번 들이켰다. 그 동안 간신히 해열제와 감기약을 찾은 김창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물이라도 마셔요. 먹을 것은 앞으로 가면서 구해보도록 하죠.”
김창수는 사양하지 않고 물을 마신 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바닥에 떨어진 커다란 약통 여러개를 집어 알약들을 모조리 비워낸 후 거기에 물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윤지후는 더 이상 건질 것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먼저 차로 돌아가 구한 약품들을 잘 정리했다.
"후..“
3개의 약통에 물이 가득 찬 것을 확인한 김창수는 얼른 조수석에 앉아 뒷좌석 아래 쪽에 통들을 조심스럽게 내려다 놓았다. 그리고 이윤희의 상체만 일으켜 구해온 약들을 어렵싸리 먹였다.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윤지후는 다시 차를 서서히 몰기 시작했다. 고요하고 폐허로 변해버린 상가를 바라보며 김창수 역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열심히 눈을 굴리며 사방을 둘러보던 중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거대 모기 여러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윤지후도 같이 발견했는지 차의 속도를 현저히 줄였다. 모기들은 각자 벽에 붙어서 미동도 하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조금이라도 건드린다면 곧바로 깨어날 것이 분명했다. 김창수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뒤로 돌릴까요?”
“어딜 가나 똑같을 거에요. 피할 수 없으니 조심스럽게 전진해보죠. 잠을 자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럴까요?”
자신 없는 말투로 중얼거린 김창수는 권총을 꺼내었다. 윤지후 역시 긴장한 표정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거대 모기들을 바라보며 차를 천천히 몰았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차량 안에서 둘은 식은땀을 흘리며 제발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만을 빌었다.
쉬익. 쉬익.
다행히 하늘이 도왔는지 벽에 찰싹 붙은 거대 모기들은 일정하게 숨만 쉴 뿐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긴장의 끈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었다. 서서히 차를 몰아 녀석들의 사이를 완전히 지나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 나서야 둘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식은땀을 닦으며 윤지후가 말했다.
“제가 자주 가던 낚시터로 갈까요?”
“낚시터요?”
“예. 아무래도 모기들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많이 몰려 있을 것 같거든요. 낚시터라면 인적도 드물고 조용하니까요.”
“그래요. 딱히 갈데도 없으니.”
윤지후는 다시 차량의 속도를 높이며 핸들을 강하게 잡았다. 김창수는 아까와 같은 상황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쉬지 않고 사방을 경계해야만 했다.
“이상하게 수가..”
“적죠?”
“네. 다 숨기라도 하나..”
“오히려 좋죠. 뭐.”
긴 상가거리를 지나 고속도로에 진입한 차. 하지만 눈 앞에 꽉 들어찬 차량들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제길..”
주인이 있는 차들이 아니었기에 끝없이 펼쳐진 고속도로를 무작정 걸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성한 차량이 없을 정도로 심하게 으스러져있거나 깨져있는게 대부분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뻗은 차량들의 행렬이 그대로 멈춘 것으로 보아 거대 모기들의 수가 대강 짐작이 갈 정도다.
“엄청나네요.. 왜 번화가 쪽에 녀석들이 안보이는지 알겠군요.”
“사람이 많은 곳은 정말 따로 있었으니까요.”
“하아..”
“어쩔 수 없죠. 국도로 가는 수 밖에.”
차를 돌린 윤지후는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 고속도로를 타기 직전의 옆길로 차를 몰았다. 보이는 거라고는 주택 단지 여러개와 넓은 육교가 전부다. 사람들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을 정도로 고요하다. 혹시나 모를 정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김창수는 차 안에 있는 라디오를 조심스럽게 켰다.
치직. 치지직.
그 많던 방송을 중계하던 채널들이 모두 먹통이다. 김창수는 차분하게 채널들을 돌려가며 혹시나 방송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라디오의 주파수를 찾아낸다.
치직. 칙.
[지금 현재 서울에서는 피난민들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거대 지하 벙커가 구비되어 있으며 피난민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병력과 음식들이 있습니다. 이 방송을 듣는 여러분들은 서둘러 서울 시청 앞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지금 현재 서울에서는...]
거짓말처럼 들려오는 소리에 두 사람은 멍한 얼굴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이어 두서번 반복되는 방송 끝에 퍼뜩 정신이 든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갈 곳이 생겨서 다행이군요.”
“서울이라면.. 얼마나 걸리죠?”
“국도로 가면.. 3~4시간?”
“오늘 안으로 도착하겠네요.”
“그렇죠.”
조그만한 희망이 생긴 탓일까. 두 사람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서서히 차의 속도를 높이며 차를 운전하는 윤지후. 김창수는 그런 그를 잠시 보다가 뒤에서 죽은 듯이 자고 있는 이윤희를 힐끔 보고서 생각에 잠겼다. 처음 자신을 구해주던 쌀쌀맞던 그녀의 모습. 차라리 죽겠다며 방으로 들어가던 모습. 거대 모기에게 물릴 뻔한 위기의 순간을 수차례 넘겨오며 살아가고 있는 꿋꿋한 그녀의 모습.
“김 형사님.”
“예?”
윤지후는 앞을 보며 운전하면서 말했다.
“저 여자 좋아해요?”
“아..”
“좋아하는거 맞구만.”
“그렇게 보이나요? 하하하.”
“워낙 티가 나야지 말이죠.”
김창수는 뒷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요. 본지 얼마 안됐지만 윤희씨는 제 생명의 은인이고 이상하게 처음 봤는데도 남 같지가 않더라구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김창수에게 윤지후는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후회할텐데요.”
“뭐가요?”
“저 여자 그렇게 좋은 여자 아니에요.”
“..예?”
“그냥 그렇다구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는 윤지후. 김창수는 두 사람 사이에 뭔가가 얽혀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제 막 알게 된 사이고 실제로 말도 여러번 하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과거에 알던 사이인가? 그렇다고 둘의 사이가 그렇게 자연스럽지도 않았다.
‘아무렴 어때.’
일단은 지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김창수는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앞과 옆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그 탓에 김창수는 씰룩 거리며 일그러지는 윤지후의 표정을 전혀 보지 못했다.
“됐어! 다 왔어!”
여러 명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어느 한 곳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서울 시청의 가운데에 부자연스럽게 뚫려 있는 2미터 정도의 통로가 그들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다. 바로 라디오에서 방송을 했던 그 지하 벙커일지도 몰랐다. 마지막 힘을 짜내어 통로 앞에 도착한 여러 사람들은 서로를 보며 그간에 겪었던 일들을 회상하듯 눈망울이 촉촉해졌다.
“모두 수고했어요.”
그 말을 시작으로 여러 사람들이 모두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대피소에 도착한 이들은 이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지하벙커에 부푼 기대를 안고 어두운 통로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다. 주욱 이어진 통로에서 미약하게 빛나는 불빛들을 보며 묘한 흥분에 젖은 사람들.
“아아. 이제 두발 뻗고 잘 수 있는 건가?”
“그러게요. 차 안에서 자는데 정말 이골이 났어요. 도착한 다음에 바로 대자로 누워서 자야지 이거 원.”
“하하하하. 그동안 정말 고생했어요.”
이런저런 얘기를 오가며 주욱 이어진 통로를 걷는 사람들. 마침내 통로 끝에 다다른 사람들은 굳게 닫혀져 있는 철문을 열고 하나둘 들어가기 시작한다. 마지막의 사람까지 들어간 후 다시 닫히는 철문. 그리고 안에서는 미약하지만 분명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새어져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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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김창수는 저절로 눈이 떠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옆에는 윤지후가 굳은 얼굴로 묵묵히 운전을 하고 있다. 괜시리 미안해진 김창수는 헛기침을 하고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뇨. 괜찮아요.”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는 김창수는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양 옆으로는 우거진 산이나 수풀이 전부였고 저 멀리 보이는 곳에는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보인다. 그간의 거대 모기들의 습격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흐음.”
차 안에 있는 시계를 보니 족히 2시간은 지났다. 김창수는 자신만 눈을 붙인게 미안하여 윤지후를 보며 말했다.
“제가 운전할게요. 잠깐이라도 쉬세요.”
“아..”
윤지후는 선뜻 핸들을 맡기기 힘든지 꾸물거렸다. 하지만 그의 눈 밑으로 생긴 진한 다크서클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몇 번 김창수의 설득에 넘어간 윤지후는 잠시 차를 멈추었다. 그리고는 옅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부탁합니다.”
“네.”
김창수는 얼른 조수석의 문을 열고 나와 운전석으로 걸어가 그 앞에 섰다. 하지만 그 순간 윤지후의 피로했던 눈빛에 살기가 돌기 시작했다. 뭔가가 잘못 됐다고 느낀 김창수는 급한 마음에 뒷좌석에 올라타기 위해 문을 열었지만 앞에서 잠궜는지 열리지 않았다.
철컥.
“이, 이봐요!”
김창수가 다급한 목소리로 운전석의 유리창을 두드려댔지만 싸늘한 윤지후의 얼굴에서는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부우웅.
그리고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차량. 김창수는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서 자신의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한 대의 차량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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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러 사이로 멍하니 서있는 김창수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은 윤지후는 이어 뒷좌석에서 죽은 듯이 자고 있는 이윤희를 보고는 다시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후회할거라고 했잖아요. 형사님..”
그렇게 말한 윤지후는 다시 전방을 신경 쓰며 운전을 하기 시작한다. 그 탓에 미약하게나마 떠지는 이윤희의 눈꺼풀을 전혀 보지 못했다. 천천히 반쯤 눈을 뜬 이윤희는 깨어나기 전 들리는 목소리를 통해 대강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마음속으로 물으며 이 상황을 빠져나갈 궁리를 하지만 뾰족이 떠오르는 방법이 없다. 분명 그녀에게 있어 모기 만큼 위협적인 존재는 윤지후임이 틀림 없다. 그와는 직접적으로 연관된 적은 없지만 유흥가 쪽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대한 혐오, 아니 증오가 엄청난 그로서는 그녀의 존재가 눈엣가시와 다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보다 원활한 처리를 위해 김창수는 멀리 떼어 놓았는지도 몰랐다.
‘창수씨..’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그의 얼굴에 이윤희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그녀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가버릴지도 모른다.
부우웅.
점차 속도를 높이며 빠르게 이동하는 차량. 윤지후는 처음과 같은 차가운 표정으로 차분히 핸들을 잡으며 운전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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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당혹스러움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김창수는 한동안 멍하니 서서 이제는 보이지도 않는 차량이 사라진 곳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후회할텐데요..’
순간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윤지후의 한마디. 그것을 떠올린 김창수는 손아귀가 부셔져라 꽈악 주먹을 쥐고서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에게는 여분의 총알과 권총이 있었다. 아무것도 무장하지 않은 것보다야 낫지만 이대로 서울까지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꽤 될 것도 같다.
‘윤희씨..’
게다가 마지막 윤지후의 그 표정은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윤형사님도 윤희씨를..?’
아니다. 그렇다면 김창수에게 그런 표정을 지으면서까지 이런 도로 한복판에 떼어 놓고 갈 리가 없다. 분명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두 사람 사이에서 있다고 판단한 김창수는 크게 숨을 내쉬며 빠르게 앞으로 걸어갔다. 차를 타고 있을땐 몰랐지만 막상 내리니 이 넓고 길게 이어진 도로 위에서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미약한지 새삼 깨달은 김창수는 갑자기 다가오는 한기에 팔짱을 껴야만 했다.
“후우우.”
주위를 주욱 둘러보니 울창한 나무와 수풀들이 시야에 가득 잡힌다. 만약 저기에서 녀석들이 동시에 튀어나오기라도 한다면 꼼짝 없이 당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침착해. 녀석들은 사람이 많은 곳에 몰려 있을거야. 이런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많아야 한 두마리 정도일거야. 침착하자.”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걸음을 옮기지만 떨려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자신을 덮칠 것만 같은 극도의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주위에 폐차처럼 찌그러진 차들을 이용할 수도 없는 상황. 여러모로 김창수 그에게 불리한 환경조건인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김창수는 꿋꿋히 불안과 공포를 견뎌내며 앞으로 걷기만 했다. 오감을 모두 곤두세운채 사방을 경계하며 이동하는 김창수.
위이잉-
그런 그의 행동을 시험하기라도 하듯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낯설지 않은 죽음의 날개 소리가 달팽이 관을 뒤흔들었다. 김창수는 차분히 호흡을 유지하며 소리가 나는 곳 반대 방향 수풀로 몸을 숨겼다. 차갑고 풀 특유의 향이 그의 후각을 가득 채운다.
위이잉-
머지 않아 그가 있던 자리에 거대 모기 한 마리가 내려 앉아 대가리를 이리저리 흔들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김창수의 땀 냄새를 맡은 것이다. 김창수는 수풀 사이로 바짝 엎드려 자신을 찾고 있는 듯한 모기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키이이-
분명 뭔가를 감지한 듯 거대 모기는 한 동안 그 자리에서 떠날 줄 몰랐다. 녀석과 김창수가 숨어 있는 수풀 사이의 거리는 불과 10미터. 녀석의 속도라면 우스운 거리다. 절대 방심할 수가 없는 상황. 김창수는 어서 빌어먹을 모기 놈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를 바랬지만 모기도 상당히 굶주려 있는 듯 하다.
키이이-
이내 방향을 정한 듯 김창수와는 정 반대 방향의 수풀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는 거대 모기.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던 김창수는 이내 완전히 수풀 사이로 사라진 모기를 잠시 바라보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그대로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후우..”
그동안 차를 타면서 녀석들의 습격을 받지 않았던 것은 정말 천운인지도 몰랐다. 이렇게 거리에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녀석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리 쉽게 도로 위를 주행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 김창수는 서서히 몸을 일으켜 도로 한복판 보다는 우거진 수풀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고는 수풀 사이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스락. 바스락.
김창수가 이동할 때 마다 무성한 수풀들이 갈리며 내는 소음이 유독 크게 들린다. 그 소리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진 김창수는 눈 앞에 죽어 있는 고목 나무를 보고서는 헛바람을 들이키기도 했다.
“하하..”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걸음을 옮긴다. 공포 영화를 봐도 눈 하나 꿈쩍 않던 그였다. 곤충들을 보아도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때려 잡던 그였지만 완전히 변해버린 상황 속에서는 그 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었다. 공존 관계가 완벽히 뒤바뀐 상황. 김창수에게 있어 거대 모기들은 무자비한 살육자와도 같았다.
“끼이.. 끼잉.”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약한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김창수는 걸음을 멈추고서 주위를 훑어 보았다. 울창한 숲 말고는 눈에 보이는 것은 없다. 주위가 안전하다고 판단한 김창수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차분차분 걸음을 옮겼다.
“끼잉.. 낑.”
걸음을 옮길 때마다 커지는 신음 소리. 분명한 것은 사람이 내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는 동물이라는 소리인가? 김창수는 그냥 지나갈까도 했지만 워낙 들려오는 소리가 애처로워 그냥 가지 못하고 소리를 따라 주욱 걸어갔다.
“끼잉..”
얼마나 갔을까. 무성한 수풀 사이 한 가운데가 푹 꺼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조심스럽게 그곳을 다가간 김창수는 눈을 찌푸렸다.
“낑..”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낯선 이를 경계하는 한 마리의 고라니. 하지만 고라니의 몸은 보기 흉할 정도로 말라 비틀어져 있는 상태였다. 목 위로 완전히 비틀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거대 모기가 식사를 도중에 마쳤거나 이대로 두고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는 말이 된다.
“불쌍한 놈..”
이제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올려다 보는 고라니 눈망울을 가만히 보던 김창수는 천천히 고라니에게 다가갔다. 반항할 기력도 없는지 신음 소리를 내며 멍하니 김창수를 올려다 보는 고라니. 그 고통 속에서 빨리 해방시켜줘야한다고 생각한 김창수는 고라니의 숨통을 끊어주기 위해 그 앞으로 바싹 다가갔다.
“끼이! 끼이!”
그러다 갑자기 발작적으로 소리를 내는 고라니. 그 행동에 살짝 당황한 김창수는 어느 한 곳을 보며 목을 이리저리 뒤흔드는 고라니를 보고는 뭔가가 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얼른 다른 수풀 속으로 몸을 숨겼다. 바닥에 바짝 엎드리고는 수풀 사이를 갈라 고라니의 상태를 살피던 김창수의 눈에 이윽고 여러 쌍의 다리가 고라니를 압박해가는 거대 모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키이이-
“끼이!”
죽기 싫다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지만 이미 정해져버린 상황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고라니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듯 가만히 보던 거대 모기는 이내 날카로운 침을 서서히 고라니의 목에 꽂기 위해 대가리를 조금씩 숙여갔다.
‘지금..?’
무방비 상태다. 고라니를 돕기 위해서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지만 과연 다 죽어가는 생명을 구한다고해서 저 생명이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다. 이미 반은 죽은 상태다. 죽지 못해 사는 이제 곧 죽을 거라는 것을 아는 고라니다.
“끼이.”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열심히 발악질을 해대는 고라니의 모습에 괜시리 마음이 쓰려진 김창수는 가만히 침을 내리 꽂으려는 거대 모기의 대가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찰나의 순간. 고라니의 피부에 날카로운 침이 박히기 전에 김창수는 뭔가를 결심한 듯 그 자리에서 일어나 권총을 들었다.
키이이-
갑자기 시야에서 나타난 또 다른 먹잇감에 놀란 듯 대가리를 찬찬히 드는 거대 모기를 향해 거침 없이 총알을 날리는 김창수.
타앙-
퍼걱.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대가리가 완전히 터진 거대 모기는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있다가 고라니의 몸을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 김창수는 ‘아차.’ 하는 얼굴로 얼른 고라니에게 다가가 거대한 몸집에 깔려 있는 고라니를 간신히 빼내었다.
“제길..”
붉은 액체로 뒤범벅이 된 고라니는 제대로 숨도 쉬기 힘든 듯 약하게 눈을 껌뻑이며 김창수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에 괜히 김창수는 가슴이 울컥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 고라니는 서서히 눈을 감아버렸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고라니의 목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 놓은 김창수는 그 자리에 서서 곤히 잠든 고라니를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수풀 사이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