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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도깨비 터에서의 10년”

익명
2026-09-20 11:38

내 나이 8살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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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우리집은 암울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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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경영하던 포목상을 접고 조상님들 뵐 낯이 없다며 실의에 빠져 술로 날을 보내던 할아버지는

어느날 주무시듯 돌연히 가버리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도 뒤를 따르듯 조용히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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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나를 업어주고 안아주기만 하던 다정한 할머니의 죽음에 나는 울고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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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시기 전날, 언제나처럼 나를 불러 무릎에 앉히고는 네가 이 집 장손이니 정신차리고

어머니 아버지 잘 도와드리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던 그 말이 유언이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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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슬퍼하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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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를 그만두었으니 나와 2살 위의 누나, 그리고 또 동생을 가진 어머니를 어떻게 먹여살릴지 막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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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집을 팔아 포목상을 정리할 때 들었던 빚을 갚고 나면 곧 5식구가 될 가족이 갈 곳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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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버지에게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오랜 친구분이 찾아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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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이긴 하지만 값도 아주 싸고 좋은 집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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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동앗줄이라도 부여잡고 싶었던 아버지는 두말없이 그 분을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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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서울 모처에 있는 그 곳은 그 당시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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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집은 꽤나 크고 깨끗했고, 가격이 헐값이나 거저없는 가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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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놓칠세라 재빨리 이 집을 샀다.

며칠 뒤 할아버지 친구분은 이사 준비를 시작한 우리집에서 술을 마시며 귀띔을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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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집은 도깨비터에 지어진 도깨비집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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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집은 집주인이 잘하면 주인을 부자로 만들어주지만 주인이 제 분수를 모르고 헛되이 살면

주인의 가세를 기울게 해 주인을 내친다고 한다.

허나 아무리 선량하고 좋은 주인이라도 그 주인이 10년만 그 집에 머물 수 있고,

10년이 지나면 새 주인이 들어오게끔 주인을 내쫓는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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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인이 도깨비터라는 말을 듣고 그 땅을 사 거기에 집을 지었는데,

돈을 좀 만지게 되자 도박판을 전전하고 기생을 데려와 축첩을 하자 4년이 채 안되어 집이 망하고

종손이 급사하여 그 집을 팔고 떠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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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은 전 주인이 쫓겨난 것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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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술김에 그저 웃기만 하셨단다.

노인의 부질없는 이야기로 흘려버리기엔, 한편으로는 새 집에서 그것을 시험해보고 싶으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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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집에 오고 나서 어머니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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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에서 이상하게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키가 엄청나게 크고 덩치도 큰 사람이 다짜고짜 안채 문을 열고 들어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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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어머니한테, '맏며느리야, 이제 너희 집안이 실(絲)장사는 운이 다 했으니 먹는 장사를 해라.

사람이 헐벗어도 서럽지만 굶는 게 더 서럽지 않겠니' 하더니 갑자기 여닫는 사람도 없는데

온 집안 문짝이란 문짝들이 쾅 하고 일제히 닫히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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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쾅 소리에 깬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꿈 이야길 했더니 아버지가

'그러잖아도 밥장사하자고 하려고 했더니만 잘 되려나보다' 고 좋아하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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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밥장사를 제대로 시작할 여력이 안되어 어머니가 새벽마다 두부를 만들어

아버지가 내다팔았는데, 이상하게도 두부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잘 만들어졌고 또 잘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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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일일이 불을 때어 요즘처럼 화력이 일정치 않아 자칫 끓이다 거품이라도 잘못 생기면

두부가 잘 만들어지지 않고 쉬어버리는 일이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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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새 집에 와서는 콩을 불려 두부를 만들면 백발백중, 실수하거나 상하는 일이 없이

두부가 어찌나 잘 만들어지는지 아버지는 늘 남들보다 가장 이른 시간에 장에 나가셨고,

누구보다 빨리 두부를 몽땅 팔고 들어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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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에 두부가 너무나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우리집에 두부 만드는 법 좀 알려달라고 아주머니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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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요령도 없다며 손사래를 치는 어머니의 환한 얼굴이 가장 많이 기억나는 나에 비해,

훗날 시집도 못 가고 20살에 손말명(처녀귀신. 뒤에 나오지만 누나가 일찍 돌아가셔)이 된 누나는 부뚜막 위에

치마 속 고쟁이를 다 내어놓고 걸터앉아 눈만 마주치면 히쭉히쭉 웃는 얼굴붉은 아주머니가 제일 많이

기억이 난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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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인지 할머니인지 애매한 얼굴에, 부엌을 휘적휘적 돌아다니며 아무 것도 들지않은 빈 솥뚜껑이며

그릇들을 수시로 만지작 거리고 밥을 하거나 물을 끓이면 뜨겁지도 않은지 그 솥 뚜껑 위에 앉아서

벙싯벙싯 웃기만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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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중에야 그 아주머니가 조왕신이겠느니 생각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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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어머니 배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던 동생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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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태어난 후 아버지는 두부장사는 접고 본격적으로 밥장사를 시작하셨다.

바깥채 건물을 트고 부뚜막을 하나 더 만든 뒤, 그 앞으로 담장을 치고 밥상을 여러 개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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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드는 손님을 더 이상 어머니 혼자 힘으로는 감당을 할 수 없어, 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들을 셋이나

썼는데도 그들은 해만 떨어지면 녹초가 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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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누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기 동생을 업었다.

그러고 집안 일을 돕기도 했지만 누나는 왕왕 동생을 업고 동네 밖을 돌다가 해가 떨어질 무렵 집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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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너무 멀리 나가지 말라고 늘 누나를 타일렀지만 누나는 막무가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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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아기업은 누나를 학교 돌아오는 길에 만났다.

누나는 '너 집에 가기 무습지 않니?' 하고 조용히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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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집이 시끌시끌한데 뭐가 무습느냐' 고 하자, 누나는 그 이상 말을 안 했다.

한참 후에나 들었지만 누나는 온 집안에 귀신이 드글드글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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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지붕 위에 사람 발바닥 손바닥이 보이는데 그 크기가 너무나 크고 사람 몸통은 보이지 않고 손발만 뵈고,

손님들 앞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봉두난발의 남녀들이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데 이들이 자세히 보면

손발이 없고 옷자락만 질질 끌면서 안 들어가는 곳이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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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틈에 섞여서 낄낄대고 웃고 좋아하는데 그 소리가 나면 어김없이 손님이 떼로 더 들어온단다.

그것도 비슷한 무리들이 잔뜩 섞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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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해가 지면 거의 대부분은 나가는데, 이들이 나가고 나면 수염을 배꼽까지 기르고 코가 시뻘건 영감이

대문 단속을 하고 마당 한가운데에 주저앉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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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감이 나오면 낮에 들어왔던 것들이 열어달라고 대문을 두들기고 난리를 치는데 영감은 그럴 때마다 해뜰 때까지

기다리라며 호통을 고래고래 쳤단다. 호통을 칠 적마다 집이 울리고 문 밖의 것들이 비명을 지르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고 '바람이 심하게 분다' 며 그냥 잠자리에 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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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나가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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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원체 나보다 몸이 약해 밥을 먹다 체하기도 잘했고 열이 나서 드러눕기도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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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누나가 남들보다 그렇게 일찍 가려고 그랬던 건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갈 운명이기에 도깨비집의

요사스런 것들을 전부 볼 수 있었는지.....그 집을 일찌감치 떠났으면 누나가 시집도 가고 잘 살지 않았을까

하는 회한에 종종 잠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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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나는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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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그 옛날 이사갈 곳을 찾지못해 발을 동동 굴렀었다는 말을 누구든 거짓말이라 할만큼 부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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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잘 먹고 잘 자란 동생은 그 나이 때의 나보다 힘도 세고 키도 크고 덩치도 컸으며,

또래 아이들에 비해 가진 물건이 많아 늘 골목대장 노릇을 도맡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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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동생이 가끔 또래 아이들과 싸움을 하거나 때렸다고 다른 아이들 어머니가 집에 찾아오는 것,

그리고 하나뿐인 딸의 몸이 약한 것이 어머니의 걱정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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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내게 좋은 대학에 가도록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잔소리를 많이 하셨다. 고등학교를 가지 못했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일을 해야하는 친구들이 더 많다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의 공부하라는 잔소리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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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 나이 열 일곱이 되던 섣달 그믐, 어머니는 10여년 만에 괴이한 꿈을 다시 꾸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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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 이사온 해의 꿈에 나온 그 괴물같은 사람이 안채로 성큼성큼 들어와 '맏며느리야,

이제 보따리 싸거라. 1년이 남았어도 1년 안에 가야한다. 멀리 가되 남산(서울의 남산이 맞다)을 꼭 넘어가야만 한다,

그래야 거지들이 따라오질 못해' 라고 했단다.

처음엔 온 집안 문을 다 닫아제끼더니 이젠 문을 다 열어제껴놔서 깨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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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모골이 송연해지셨다. 이제 이 좋은 운이 다한 것이로구나. 이렇게 잔뜩 받았으니

말을 듣지 않으면 사정없이 빼앗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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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불안감에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집을 옮기자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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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달랐다. 1년이 남았지 않냐. 1년 안에 더 벌고 나가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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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버지는 다시 포목점을 열고 싶어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내 대에서 끝을 낸 게 송구스러워 저승갈 낯이 없다'며 우셨던 게 가슴에 박히셨던 걸까,

밥장사를 그만두지 않아도 작게나마 포목점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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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은 이 문제로 싸우셨다.

하던 장사나 더 열심히 하자는 어머니와, 이제 하던 장사는 손이 덜 가니 포목점을 같이 하면

더 잘 되지 않겠냐는 아버지.

무어라 할 수 없는 마음에 나는 책상 앞에 돌부처처럼 앉아 책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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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툼이 이어지며 지리하게 1년이 가고 나는 열 여덟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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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 온지 정말 꼭 10년이 넘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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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결국 고집대로 포목점을 냈다. 작게 낸다더니 생각보다 가게는 컸다.

장에서 제일 컸다는 옛날 그 가게를 재현하고 싶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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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포목점에 발길도 하지않고 원래 하던 장사에 몰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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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꿈을 꾸셨단다. 안채에 들어오지도 않고 귓가에 조곤조곤 속삭이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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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놓쳤으니, 알아서 해라. 이 집 덕 볼 생각 말아라. 장독의 장이며 곳간의 쌀들이 배 속에 들어가기도

전에 죄 똥으로 변할 거다' 라는데 끝 말미에 낄낄대는 음성이 어찌나 소름끼치는지 일어나서는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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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는 여전히 잘됐다. 그런데 누나는 그 때부터 자꾸 아프면서 더 무서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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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해가 지면 수염긴 영감이 낮에 들어오던 것들을 못 들어오게 막아줬는데 그 영감이 어디로 갔는지

이젠 대문을 잠그지도 막지도 않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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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이 동이 틀 무렵까지 어찌나 온 집안에서 시끄럽게 난리를 치는지 잠을 잘 수가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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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것들이 들어올 때 왠 꺼뭇꺼뭇한 것들이 섞여 들어와서는 서까래를 물어뜯고 갉아먹는데

그런 다음 날에는 꼭 누가 다치거나 와야할 물건이 못 오거나 재수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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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포목점이 장사도 잘 안되는데 기껏 밥장사로 벌어놓은 돈이 그리로 자꾸 샌다며 짜증을 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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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어머니의 싸움이 일상적으로 변한 지 반년, 가을로 들어서던 초입에 누나는 감기에 걸려 눕더니

일어나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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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 폐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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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까지 의식을 못 차린 누나는 유언조차 남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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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꿈자리가 사납더니 이렇게 하나 뿐인 딸을 데려갔다고 외할머니를 붙잡고 내내 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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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푸른 저고리에 머리를 다 풀어헤친 여자 둘이 방에 누운 누나의 발목을 한 쪽씩 잡고 질질 끌고

대문 밖으로 나가면서 깔깔 웃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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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초상을 치르며 어머니는 딸 잡아먹고도 정신 못 차렸냐며 이사를 가자고 다시 아버지에게 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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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누나의 초상과 집 이야기를 연관짓지 않으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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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버지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게 되었다. 포목점을 도와주던 직원이 돈과 돈될 만한 물건을

모조리 가지고 도망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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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두 분의 싸움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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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옮기기로 했다. 그 무렵 막내가 늦은 홍역을 앓았다. 막내마저 잃을 수는 없다는 일념이

두 분의 마음을 이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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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을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두 분은 장사를 정리하고 집을 구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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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에 갈 곳이 없었던 우리는 옛날 이 집을 구하기 전처럼 여기저기 백방으로 뛰어서 다른 집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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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이 흘러 내 나이 열 아홉 봄에야 우린 그 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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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장사는 이상하게 도깨비집에서 살 때만큼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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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저냥 먹고사는 정도였지만 두 분이 이미 너무나 큰 성공을 해보셔서인지, 내내 서운해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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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은근히 도깨비집을 그리워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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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서 보낸 10년이 가장 금전적으로 승승장구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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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른 요즘 듣기로 도깨비터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다르다. 사람이 사는 가택이 아니라 장사만 해야 한다는둥,

부적을 쓰고 굿을 해야 한다는둥, 터만큼 기가 센 사람이 거주해야한다는 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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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제 지천명의 나이를 앞둔 내가 회상하기로는, 사람이나 귀신이나 정말로 공짜가 없다는 것만이

도깨비터에 대한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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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의 운은 10년을 퍼주고 나면 더 이상 받을 수 없고, 그 집에 드나들던 수많은 귀신들은 부를 주는 대신

부모님의 마음을 얼크러뜨리고 누나의 목숨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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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그저 같은 사람들끼리 제 몫껏 사는 것이 최선이라는 나를 다른 사람들은 너무나 욕심이 없고

그릇이 작다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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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누가 뭐래도 그 귀신 그릇의 밥을 먹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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