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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괴담

익명
2026-09-16 12:42

고대했던 수시 발표날이 다가왔다. 이 날을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왜 평범히 수능을 치루지 않고 수시를 택했느냐고 묻는다면 낮은 퍼센테이지에 뭔갈 걸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우리 학교의 특성상 수시를 지향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거기서 뭔갈 해내고 싶은 약간의 반항심도 한 몫 했다.

애초에 난 실전에 강한 타입이 아니다. 지난 3년간의 공을 들여 한번의 수능으로 모든걸 걸기엔 내가 많이 부족했다. 요행? 그래 요행이라고 하면 되겠다. 우연히 담임에게서 들은건데 이번에 수시 지원률이 꽤 낮아서 난 할만할 거라고 했다. 게다가 난 상업고등학교다. 일반적인 인문계 아이들과 경쟁하는 구도가 아닌..

“인한아. 겜방가자.”

어느새 다가온 창수가 앵겨 붙었다. 세상 해맑은 얼굴로 웃고 있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지금까지의 걱정이 모두 날아가버릴 것만 같았다.

“야. 너 공부는 하고 있냐? 그러다가 재수한다.”

“공부는 무슨. 나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업할건데? 선생님이 연계시켜줄 기업이 있다고 했어.”

창수는 태평한 얼굴로 말했다. 대체 저런 여유만만한 태도는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는건지 원.. 가끔 녀석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긍정적인 것과 낙천적인 것은 꽤 다르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에휴. 그것도 어느정도 성적이 커버되어야 적당한 기업에 들어갈거 아니야. 너 같이 바닥을 치면 말야 골라갈 기업도 없다고. 그리고 면접 준비는 했어?”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야, 겜방 갈거야 말거야. 그것만 말해.”

애석하게도 창수는 실전에 강한 타입이다. 나와는 정반대로.. 나쁘게 말하면 입을 잘턴다는 건데 그게 사회에 살아감에 있어서 꽤 좋은 쪽으로 작용한다고 담임에게 듣곤 했었다. 담임은 나와 절친한 창수를 두고 비교 설명을 잘 해주곤 한다.

[인한이 같은 경우에는 이런 부분을 조금만 고치면 될 것 같아. 그래. 예를 들어 창수의 그런 부분 있잖니.]

비교 대상이 바로 지척이 있는지라 이해가 쉽게 되기는 한다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나쁜건 사실이다. 솔직히 난 녀석과 동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앞서면 앞섰지..

“야 너네 겜방가냐?”

어느새 다가온 상훈이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상훈이는 여러면에서 우등생이기 때문에 담임에게 기대를 받고 있는 놈이다.

“응. 왜?”

“같이 가자.”

“엥? 네가?”

“어. 스트레스 쌓인다.”

그 말에 창수는 세상을 다 가진 얼굴로 우리를 이끌었다. 서둘러 교문을 나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 상훈이가 진중한 얼굴로 우리에게 말했다.

“너네 그 소문 들었냐?”

“뭐?”

“우리학교 밤 12시에 귀신이 나온다고 하더라.”

전형적인 옛날 귀신 등장 패턴에 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창수도 마찬가지었는지 듣는둥 마는둥 하며 걸었다. 하지만 상훈이는 아니었나보다.

“진짜라니까. 근데 특이한게 뭔지 아냐?”

“뭔데?”

“1층 중앙 복도에 큰 거울 있잖아.”

상훈이의 말에 나와 창수는 몇 번 고개를 까딱거려야했다. 평소 잘 드나들지 않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1층..이라. 그래. 아주 가끔 교무실로 드나들 때 커다랗고 빛나는 거울 하나가 있었던 것 같은 기억이 난다.

“밤 12시가 되는 순간 그 거울 앞에 서면 귀신들이 보인대.”

그 말에 창수는 코웃음을 쳤다.

“무슨 신데렐라도 아니고. 상훈아. 너 아직도 그런거 믿냐? 대학은 붙었나보지?”

“아, 그거랑은 상관 없잖아. 가뜩이나 심난해 죽겠구만..”

“그래서 최근 괴담에 대해 공부하고 다녔냐? 어휴 화상아.”

창수는 듣는척 마는척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상훈이는 혼잣말로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곧 내게 다가왔다.

“인한아. 오늘 같이 가보자.”

“..뭐?”

태생이 집돌이인 나의 일과는 하교후 모든게 끝이 난다. 한번 집에 들어오면 정말 특이한 일이 아니고서야 나가는 일이 없는 내게 상훈이의 말이 와닿지 않았다. 더군다나 밤 12시? 가당치도 않는 소리지.

“그렇게 궁금하면 너가 가서 확인하면 될거 아니야. 괜히 엄한 사람 붙잡고 있어.”

“아, 무서우니까 그렇지.”

“무서우면 안가면 되지. 임마.”

“그래도 궁금하잖아. 괜히 괴담이겠어? 뭔가 신빙성이 있기 때문에 괴담이 생긴거라고. 너네들은 모르겠지만 내가 그동안 학교 다니면서 여기저기 소문을 모은게 있단 말야.”

상훈이의 두 눈이 반짝이고 있다. 이거 좋지 않은 징조다. 이대로 겜방에 가는건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사태가 일어날수도 있다. 물론 아쉬운건 어디까지나 창수겠지만.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겜 좀 하면서 얘기하자.”

묘하게 나와 창수의 마음이 통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상훈이의 말을 그대로 듣고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인생의 단 한번 뿐인 고3의 시간을 이런 미신을 흘려듣는거로 보내기엔 내 자신이 너무나 아까웠다. 물론 게임을 하는건 그와는 별개지만.

***

오늘은 운이 좋다. 특별히 창수와 게임을 해서가 아니라. 묘한 괴담을 들어서가 아니라 그동안 은근히 기대했던 수시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나름 수도권에 있는 4년제 대학교에 합격한 난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시 한번 합격 통보 문자를 훑어 보며 내 앞에 깔려진 치킨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남들에게는 평범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우리 집안에서는 경사에 속한다. 애석하게도 대학 출신이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최초로 대학교 진학에 성공한 아들이 나왔으니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가 기뻐하셨다.

“인한아. 이제 가서 열심히 해야 돼. 아, 용돈 올려줘야겠네. 그리고 옷도 좀 사야겠다.”

“당신도 참.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나중에 해도 돼.”

눈 앞에서 작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부모님을 보고 있자니 처음으로 효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이 좋은 기분 상훈이에게 베풀어주기로 했다. 적당히 치킨으로 배를 채운 뒤 집 앞 공터로 나와 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낮의 일 때문인지 목소리가 축 가라 앉아 있다.

[상훈아. 나 붙었다.]

[그래? 축하한다.]

놈의 목소리에서 영혼이 없다. 아마 조금 삐친것 같다.

[가자.]

[어디.]

[학교.]

내 말에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곧 활기찬 목소리가 달팽이관을 뒤흔들었다.

[진짜지? 진짜 가는거지? 너 거기서 기다려. 지금 갈테니까. 야 택시타고 가자. 내가 낼게.]

[빨리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는 상훈이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마음 변하면 안된다는 당부 아닌 당부의 말을 끝까지 했다. 이렇게 된거 창수도 불러보는건 어떨까. 아마 내켜하지 않겠지만..

[인한이~]

창수 목소리 너머로 게임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녀석은 항상 게임에 빠져 살곤 한다. 뭐 게임은 자기 인생에 전부라나 뭐라나.

[나 붙었다.]

[어? 진짜?]

[응. 상훈이랑 학교 가기로 했다.]

[엥? 너무 급전개잖아. 합격한거랑 학교가는거랑 뭔 상관이야.]

[이럴 때에 기분이라도 써야지.]

내 말에 창수는 잠시 침묵했다. 뭔가 녀석의 심기를 건드린건가?

[같이 갈래?]

[아, 나는 괴담 같은거 안키우는데..]

[뭐 어때 달밤에 운동하는 셈치지.]

[알았으. 갈테니까 기다려.]

이건 의외다. 창수가 게임을 마다하고 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마 상훈이 녀석 꽤나 좋아할거다.

공터에서 무료하게 기다리는 것도 잠시 헐레벌떡 뛰어오는 상훈이와 곧 이어 도착한 창수가 눈에 보였다. 상훈이는 의외의 창수 모습에 꽤 기뻐했다. ‘역시 넌 내 친구들이야.’ 하고 우리들에게 강한 포옹을 한 뒤 택시에 올랐다.

“00고등학교요.”

“00고등학교?”

운전 기사 아저씨는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거기에 우린 적당히 답했다. 곧 택시는 출발하기 시작했고, 상훈이는 어린아이처럼 마냥 웃어댔다.

“그나저나 의외다. 무슨 과랬지?”

“정보처리과.”

“너 그거 할 수 있어?”

“몰라. 되는대로 넣은거라.”

그 말에 상훈이가 말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냐. 다 배워가면서 하는거지. 인한이는 잘할거야.”

그게 눈에 보이는 칭찬임을 알고 있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다 왔어요. 학생들.”

곧 도착한 학교 앞. 느릿하게 택시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니 진득하고 컴컴한 어둠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곧 이어 대금을 치룬 상훈이가 우리들에게 다가와 들뜬 얼굴로 말했다.

“다들 준비는 됐지?”

그 말에 우린 대강 고개를 끄덕이는거로 답했다. 그게 잘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시간 여유는 있긴 한데. 어쩔래?”

상훈이의 말에 우린 ‘들어가자’ 라고 답했다. 남은 시간 동안 여기에 있어 봤자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고, 묘하게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밤의 학교 분위기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정말 소문의 괴담이 실화가 아닐까 할 정도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마 상훈이가 혼자서 학교에 가지 못한 이유 이 더러운 느낌 때문은 아니었을까.

학교의 정문은 생각보다 쉽게 열렸다. 단순히 문고리쇠만 위로 올리면 되는거여서 큰 난관에 부딪히진 않았다.

터덜. 터덜. 밤공기를 타고 퍼지는 우리들의 발소리가 유난히 크다.

“야. 몇시야?”

“11시.”

아직 1시간의 여유가 있는 셈이다. 우린 느릿하게 운동장 쪽으로 걸어가며 다음 행동을 정하기로 했다. 앞으로 1시간 여유가 있으니..

“야 우리 진실 게임 할까?”

잘 걷고 있던 창수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우린 말 없이 녀석을 바라보았다. 창수는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우리들에게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며 웃었다.

“상훈이 전에 그 애랑은 잘되가냐?”

그 말에 상훈이는 정색 하며 창수를 밀쳤다.

“그 얘기가 왜 나와?”

“어? 잘 안됐어?”

“....”

상훈이는 맥 빠진 얼굴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그 애라니?’

상훈이에겐 들리지 않게 최대한 조심스레 창수에게 물었다. 창수는 대답 대신 새끼 손가락을 내보이며 상훈이를 가리켰다. 상훈이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나? 하긴.. 티를 내지 않는 놈이라.

그렇게 무료한 시간을 죽여가고 있을 때 상훈이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뭔가 떠오른 듯 멍청한 얼굴로 입을 벌리고 있는 놈을 보며 나와 창수는 고개를 갸웃거려야만 했다. 곧 우리에게 다가온 상훈이는 다급한 얼굴로 말했다.

“그 생각을 못했다! 분명 학교 입구들이 다 막혀 있을거란 말이야. 교실로 들어가려면 지금부터라도 통로를 찾아둬야 해.”

“어..?”

“선생님들이 퇴근하면서 문을 다 잠갔을거라고.”

창수는 어이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아 정말. 그 정도는 네가 체크했어야지. 평소 준비성 철저한건 어디다 팔아먹었대.”

그 말에 할 말이 없는 듯 상훈이는 ‘미안하다.’ 라고 말하며 본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놈을 보며 남겨진 우리들도 남겨진 선택지는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천천히 상훈이를 따랐다.

운동장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사열대를 지나 학교를 상징하는 조형물들을 지나고 잘 가꾸어진 풀과 이름 모를 묘목들을 지나니 본관에 멈춰 있는 상훈이가 보였다.

“이거 비밀번호 모르냐?”

상훈이는 숫자형 자물쇠와 사투중이었다. 4개루 이루어진 랜덤한 숫자. 그 패턴을 지금 단기간에 깨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니, 이건 미련한 짓이다.

“그냥 가자. 내일 오면 되잖아. 비밀번호는 네가 알아서 알아오고.”

낑낑대는 상훈이에게 창수가 말했지만 놈은 듣는척도 안했다. 아쉬운 것이다. 여기까지 많은 기대를 안고 왔을 것이다. 이 날을 위해 많은 공부를 했다고 하니까.

묵묵히 자물쇠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상훈이를 보며 우린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상훈이를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벅.. 저벅. 저벅.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유심히 귀를 기울이며 정신을 집중하자 학교 내부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훈이 역시 그 소리를 들었는지 손에 쥐고 있던 자물쇠를 놓고는 우리들을 보며 턱짓을 했다.

현관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피신한 우리들은 작게 속삭였다.

“야. 이것도 그 미신에 일종이냐?”

“아니야. 이런건 없었어.”

“그럼 뭐야.”

그렇게 작은 실랑이를 하고 있을 때, 중앙 복도 쪽으로 환한 불빛이 보였다. 곧 느릿하게 다가오는 걸음을 보아하니 수위 아저씨가 분명해 보였다. 아저씨를 불빛을 이리저리 비춰보더니 살짝 벌려져 있는 문틈으로 손을 빼내 자물쇠를 간단히 풀고서는 밖으로 나왔다. 다시 자물쇠를 잠군 아저씨는 문의 상태를 대강 훑어 보고는 운동장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퇴근하시나?”

“그런가본데.”

아저씨의 모습이 어둠 속에 완전히 먹혀지는 것을 확인한 우리들은 조심스레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상훈이는 자물쇠를 조심스레 집어 들고서는 골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분명 이 하나만 바꿨을텐데.. 애매하단 말야.”

그렇게 말하는 상훈이를 보던 창수가 던지듯이 말했다.

“그냥 하나씩 위아래로 돌리면서 맞춰. 뭘 고민하냐.”

“..어?”

그 방법은 미처 생각지 못했는지 상훈이가 세상 의외라는 얼굴로 창수를 보며 감탄했다.

“역시 생각이 짧은 놈은..”

“뒤진다. 진짜.”

상훈이는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고 곧 이리저리 돌려보던 상훈이는 자물쇠를 풀어내는데 성공했다. 그에 맞춰 시간 역시 11시 57분경이었다.

“3분 남았어.”

내 말을 시작으로 우린 중앙 현관 쪽에 있는 커다란 거울 쪽으로 뛰어갔다. 다행히 바로 지척에 있어서 늦지 않을 수 있었지만 12시가 되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현상에 우리들은 작은 실망을 했다. 창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가자.’ 라고 말했지만 상훈이는 그 실망감이 매우 컸는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상훈아.”

내 말에도 놈은 들은체 만체했다.

“그렇게까지 실망할건 없잖아. 어린애도 아니고. 가자.”

하며 놈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데 뭔가 이상한 감각이 들었다.

“?”

차가운.. 그리고 매우 딱딱한 돌덩이를 만지고 있는 듯한 느낌. 하지만 분명 이건 상훈이가 맞는데.. 순간 소름이 돋아났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내면에 잠재된 뭔가가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라고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병신 같은 몸은 뭔가에 얽매이기도라도 하듯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어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상훈이. 아니, 상훈이라고 부를 수 없는 귀신이 눈에 보였다. 얼굴에 자리잡고 있어야 할 눈코입이 모두 없는 그 귀신은 곧 내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으, 으아.. 으아아아!”

상훈이의 말은 사실이었다. 정말 학교내에 귀신은 존재했다. 서둘러 현관문을 벗어나 정문 쪽으로 달려나가려는 찰나에 창수가 내 앞길을 막았다.

“어디가?”

하이톤의 목소리로 묻는 창수. 아니, 또 다른 귀신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그 귀신에 얼굴에는 눈코입이 모두 두 개씩이었는데 네 개의 눈동자를 굴리며 나를 쏘아보고 있는 귀신을 도저히 쳐다볼 수가 없었다.

“흐아.. 흐아아! 시팔. 시파알!”

다리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급격히 방향을 틀어대는 바람에 바닥에 몸을 구르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순간 온 몸을 강타하는 통증이 감각을 지배하는 듯 했지만 그보다 절박한 상황에 놓인 내 뇌는 서둘러 다리를 움직이게 해주었다.

“으아아아악!”

할 수 있는 것은 전속력으로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 뿐이었다.

“같이가. 같이가아~”

하지만 귀신들의 속도도 무시하지 못했다. 바로 뒤에서 속삭이는 듯 들려오는 귀신들의 목소리가 날 더욱 미치게했다. 왠지 이대로 붙잡히면 영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한발자국. 다음 발자국을 빠르게 뗄 떼에도 귀신들의 소리가 더욱 커져갔다.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

고막을 긁는듯한 소리에 난 맨 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간신히 마지막 숨을 내쉬며 학교 정문을 빠져나왔을 때 바로 앞에 느껴지는 인기척에 다시 한 번 놀라야했다.

“허억. 헉!”

헛바람을 들이키며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니 창수와 인한이었다.

“인한아!”

두 녀석은 약속이라도 한듯 내게 다가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너 정말 괜찮아? 아무일 없었어?”

“봤지. 귀신 봤지?”

정신없이 물어대는 녀석들에게 난 어떤 말을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아까전만해도 태연하게 같이 가던 놈들이 어째서..

“무.. 무슨 소리야. 니들? 어?”

“미안하다. 미안해.. 나 너무 겁나서 거기까진 못가겠더라.”

“그러니까. 그냥 가자고 했잖아. 네가 괜히 고집 부려갖고..”

두 녀석의 말을 이해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우선은 방망이질 하는 심장과 호흡을 가다듬으며 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상훈아. 네 말 사실이더라.. 그 거울 앞에 귀신들 정말 있었어.”

내 말에 상훈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무슨 소리야? 거울 앞에 귀신들?”

“아까 같이 갔잖아. 근데 니들 언제 도망갔냐? 수위 아저씨 뒤를 따라간거야?”

내 말에 창수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뭔 소리야. 너 혼자 확인하고 오겠다고 해서 들어간거잖아. 우리보고 기다리라며.”

“..어?”

“우리까지 따라오면 방해된다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해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구만..”

그렇게 말하는 두 녀석을 보니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평소 장난기가 많던 창수 녀석이 저런 얼굴로 내게 말하는 것을 보면..

“잘 들어.”

환한 가로등 불빛을 위안삼아 학교내에서 있었던 일들을 두 녀석에게 설명해주었다. 상훈이는 예상대로 귀신이 있다며 아주 흥미로워했고 창수는 그렇지 않았다.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 단순히 인한이가 겁에 질려서 헛것을 본걸수도 있잖아.”

“하지만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맨 얼굴의 귀신과 눈코입이 두 개씩 있는 귀신 말이야. 그리고 저기까지 도망쳐 오는데 계속 쫓아오더라니까.”

내 말에 창수는 돌연 웃음을 흘리며 내게 말했다.

“같이가. 이렇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다시 온 몸이 저릿해졌다. 눈 앞에 서있는 창수가 내가 알던 창수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순간 커다랗게 웃기 시작하는 창수를 보며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젠장.. 젠장!”

아직 악몽은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여기서 난 벗어날 수 있을까. 서둘러 다리를 놀리며 도로 쪽으로 이동하니 전에 이용했던 택시가 서있는게 보였다. 더 망설일 것 없이 전속력으로 택시에 탑승하는데 성공한 난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아저씨. 빨리요. 빨리 00동으로 가주세요.”

내 말에 아저씨는 움직이지 않았다. 곧 어깨를 들썩거리기 시작한 아저씨는 낮게 웃기 시작했다. 이럴순 없다. 이럴수는..

***

“..생? 인한 학생?”

귀로 들려오는 소음에 눈이 떠진다. 곧 전신에 가해지는 어마어마한 충격에 절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으으.. 으.”

내 신음소리에 누군가가 다급히 움직이는게 들린다. 곧 여러 사람들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학생 지금 교통사고나서 병원으로 이송된거에요. 정신이 들어요? 알아들을 수 있어요?”

그 말에 난 간신히 고개만 까딱였다.

“말할 수 있어요?”

“....”

“그럼 고개를 이렇게 하면 아파요?”

곧 가해지는 격통에 신음소리를 내야 했다. 아마 내 몸을 촉진하고 있는 사람은 의사일 것이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왜 내가 여기에 있는거지? 분명히 난 두 녀석과 그 학교에 있었던게 아니었나?

“치..”

“네?”

“친구..들.”

내 말에 의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답해줬다.

“창수 학생과 상훈 학생은 지금 혼수상태에요. 그 택시 기사분도 그렇고요. 현재 학생만 깨어난 상태에요.”

“..네?”

그럼 지금껏 내가 겪었던 일들은 다 뭐란 말인가. 인한이와 창수는? 그 택시 아저씨마저 모두 어떻게 된거란 말인가.

“지금은 우선 여러 가지 검사를 할거에요.”

그 말과 동시에 몸이 움직여지는게 느껴졌다. 천장의 불빛들을 보며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닫혀지는 문틈 사이로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상훈이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으로 상훈이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비통한 얼굴로 서있는게 보였다.

지금까지 난 대체 어디에 있었던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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