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괴담] 물이 불어차면, 건너오지 말거라.
나는 다리를 점검하는 일을 한다.
다리는 무너질 이유를 안고 늙는다.
콘크리트는 속에서 천천히 갈라지고,
철근은 물을 먹어 부풀고,
무엇보다 강바닥이 파인다.
물살이 교각 밑동의 흙을 한 줌씩 쳐 내려 가는 걸 세굴이라고 부른다.
겉은 멀쩡한데 발밑이 비어 가는 다리가 의외로 많다.
그런 다리는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서 있다가 큰물 한 번에 통째로 주저앉기에,
나는 그런 걸 미리 찾아내 점수를 매긴다. A부터 E까지.
E를 매긴 다리는 사람을 막아 못 다니게 한다.
내 고향에는 E를 받아야 마땅한 다리가 있다.
그런데 그 다리는 여태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
마을 사람들은 그걸 그냥 세월교라고 불렀다.
원래 세월교는 비가 많이 오면 잠기도록 일부러 낮게 놓은 다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난간도 없이 강을 가로질러 상판만 길게 깔아 둔, 시골에 흔한 그 잠수교 말이다.
평소엔 건너고, 물이 불면 잠긴다. 잠겼다가 물이 빠지면 다시 드러난다.
우리 마을 세월교는 1934년에 놓였다. 일제가 상류에 기둥을 만들면서 같이 깐 거라고 들었다.
철근이 없다. 그 시절 산골에 철근이 넉넉했을 리 없다.
무근 콘크리트다. 그런 다리가 아흔 해를 버텼다.
그사이 이 지역에 기록적인 큰 물이 다섯 번 들었고,
상류의 그 기둥은 1972년에 한 번, 1998년에 한 번 떠내려갔다.
기둥이 떠내려가는 동안에도 세월교는 그대로 있었다.
기둥보다 낮고, 기둥보다 약하고, 기둥보다 오래된 다리가.
나는 그게 줄곧 마음에 걸렸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은 건 가을이었다.
향년 아흔하나.
서울에서 차로 세 시간을 내려갔다.
고향을 떠난 게 열아홉이었으니 얼추 이십 년 만이었다.
명절에도 잘 내려가지 않았다. 핑계는 많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강이 싫었다.
빈소는 면 소재지의 작은 장례식장이었다.
문상객은 대개 노인이었고, 다들 나를 알아봤다.
성태 어른 손주 아이가. 마이 큿네.
그런 말들. 그런데 나를 보는 눈이 반가움만은 아니었다.
안쓰러워하면서 동시에 어딘가 마음을 놓는 얼굴이었다. 오래 미뤄 둔 일을 드디어 넘기게 된 사람들의 표정.
아버지 얘기를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했다.
아버지는 내가 여덟 살 때 강에서 죽었다. 시신은 못 찾았다.
큰물이 졌던 여름이었고, 다리를 건너다 휩쓸렸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 이듬해 나를 할아버지에게 맡기고 마을을 떠났다.
다시 오지 않았다. 그러니 나를 키운 건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에게는 평생 거르지 않는 일이 하나 있었다.
매일 새벽, 아직 어두울 때 일어나 부엌에서 밥을 차렸다.
당신 잡술 밥이 아니었다.
작은 양은 도시락에 밥을 담고,
보온병에 국을 붓고,
반찬 몇 가지를 신문지에 쌌다.
그걸 보자기에 싸 들고 강으로 갔다.
세월교를 건너 강 건너편으로. 돌아오는 건 해가 뜬 뒤였다. 빈 도시락을 들고.
어릴 때 나는 그게 할머니 산소에 가는 건 줄 알았다.
한참 뒤에야 할머니 산소는 강 건너가 아니라 뒷산에 있다는 걸 알았다.
물어보면 할아버지는 어른 일이다, 하고 말았다.
딱 한 번,
따라가겠다고 떼를 쓰다가 회초리를 맞았다.
나를 때린 적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날만 그랬다.
그래도 강 건너에 가 본 적이 한 번 있다.
아버지가 죽기 전 해였다.
아버지가 나를 데려갔다. 할아버지 몰래, 였던 것 같다.
강을 건너고,
둑을 따라 한참 걷고,
콘크리트 덩어리 옆구리에 난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리 끝이 둑에 박히는 자리에 큰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는데,
우리는 그걸 교대라고 부른다.
다리의 무게를 받아 땅에 전하는 부분이다.
그 안이 비어 있었다. 원래는 기둥의 수문을 손으로 돌리던 시절,
사람이 들어가 일하던 조작실이었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 전동 펌프가 들어오면서 쓸모를 잃은 방.
아버지는 손전등을 들고 있었다.
안은 좁고 축축했고, 시멘트 냄새와 물 냄새가 났다.
아버지가 어둠 속 어딘가에 대고 나직이 말을 건넸다.
대답이 돌아왔다. 무슨 말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목소리가 아버지의 목소리와 너무 닮아 있었던 것만 기억난다.
형제라도 그렇게 같을 수는 없을 만큼.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말했다.
오늘 본 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특히 할아버지한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아버지와의 거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해 여름에 아버지가 강에서 죽었으니까.
삼우제까지 지내고 올라가려는데,
이장이 나를 따로 불렀다.
칠순 넘은 노인이었다.
담배를 한 대 붙이고 한참 뜸을 들이다 말했다.
"인자 니가 해야 된다."
뭘요, 하고 묻자 그는 강 쪽으로 턱짓을 했다.
"느그 할배가 하던 거. 아침마다."
나는 웃었다. 그 새벽 밥 나르는 일 말이냐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일이냐고.
강 건너에 누가 사느냐고.
노인은 웃지 않았다.
"사람은 안 살제."
그럼 누구한테 밥을 줬다는 거냐고 묻자,
노인은 담배만 빨았다. 한참 있다 한마디 했다.
"안 주면 다리가 망가지그든."
미신이라고 생각했다.
무근 콘크리트 다리가 아흔 해를 버틴 게 새벽밥 때문일 리 없다.
나는 그걸 직업으로 아는 사람이다.
다리가 안 빠진 건 운이 좋았거나, 아직 안 빠진 것뿐이다. 모든 다리는 결국 빠진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차에 올랐다.
그런데 마을을 빠져나가다가 세월교 앞에서 차를 세웠다.
왜 세웠는지는 모르겠다. 강물을 한참 봤다.
가을 가뭄이라 수위가 낮았고, 교각 밑동이 평소보다 많이 드러나 있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다리를 살폈다. 직업병이다.
밑동을 보고 나는 잠깐 멈췄다.
세굴이 심했다.
교각 발밑의 흙이 한참 파여 들어가 있었다.
내 기준으로는 통행 금지를 매겨야 할 상태였다.
이 정도면 다음 큰 물살에 무조건 빠진다.
공학에는 예외가 없다.
그런데 이 다리는 아흔 해 동안 이런 상태를 몇 번이고 넘겼을 것이다.
빠질 이유를 다 갖추고도 빠지지 않았다.
나는 그날 올라가지 않았다. 할아버지 집에서 하룻밤을 더 잤다.
이튿날 새벽, 나는 부엌에 섰다.
쌀독에 쌀이 있었다.
작은 양은 도시락이 싱크대 위에 엎어져 말라 있었다.
보온병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쓰던 그대로.
나는 밥을 안치고,
국을 끓이고,
김치와 멸치볶음을 신문지에 쌌다.
손이 알아서 움직였다. 어릴 때 옆에서 본 게 몸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그걸 보자기에 쌌다.
강은 새벽안개에 잠겨 있었다.
세월교를 건넜다.
난간이 없어서, 안개 속에서는 발밑의 콘크리트만 믿고 한 발씩 디뎌야 했다.
둑을 따라 걸었다.
교대의 철문은 기억보다 작았다.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는데, 할아버지 유품에서 나온 열쇠 꾸러미 중 가장 낡은 것이 맞았다.
문을 열자 이윽고 어둠과 냄새가 먼저 나왔다.
손전등을 켰다.
방은 좁았다.
두어 평쯤?
벽은 콘크리트였고,
바닥에는 마른 신문지가 깔려 있었다.
오래된 신문지 위에 더 오래된 신문지. 그 위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남자였다. 젊었다.
서른 안팎으로 보였다.
빛을 피하느라 얼굴을 옆으로 돌렸지만,
마른 몸에 낡은 옷을 입은 평범한 남자였다. 괴물이 아니었다. 그게 더 이상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느렸다. 오래 말을 안 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성태 어른은."
"돌아가셨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남자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더 돌렸다.
"그라믄 니는 가라."
밥을 내려놓았다. 남자는 받지 않았다.
손도 대지 않았다. 가져가라, 하고만 했다.
나는 도시락을 그대로 두고 나왔다. 문을 잠그고 강을 다시 건너오는데,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다리는 멀쩡했다.
다음 날도 갔다.
의무감 반, 그 남자가 마음에 걸려서 반이었다.
남자는 여전히 밥을 받지 않았다.
사흘째에도, 나흘째에도.
그런데 빈 도시락을 가지러 가 보면 밥이 줄어 있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먹은 것이다.
내 앞에서는 안 먹었다.
자존심인지.. 다른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말은 조금씩 늘었다.
남자는 바깥일을 궁금해했다.
기둥이 어떻게 됐는지,
읍면에 다방이 아직 있는지,
버스가 하루 몇 번 들어오는지.
묻는 것들이 하나같이 오래된 것이었다.
다방은 없어진 지 십오 년이고,
버스 노선은 폐선됐다고 하자 남자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이상한 건 그다음이었다.
남자가 나를 너무 잘 알았다.
내가 일곱 살에 강에 빠져 죽을 뻔한 일을 알았다.
그건 나도 거의 잊고 있던 일이다. 그날 나를 건져 준 사람이 누군지도 나는 모른다.
남자가 내 왼쪽 무릎을 보더니,
거기 흉터 아직 있나, 하고 물었다.
자전거 타다 넘어져 꿰맨 흉터. 바지를 걷어 보여 줬더니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아주 잠깐,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봤다.
나는 그 얼굴을 어디서 본 것 같았다.
어디서 봤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며칠 뒤 남자가 꼬깃한 지폐 한 장을 내밀었다.
천 원짜리였는데, 지금 안 쓰는 옛날 지폐였다.
군것질이라도 해라, 하고 남자가 말했다.
나는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라고 했다. 남자는 어색하게 손을 거뒀다.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집을 정리하다 사진첩을 찾았다.
오래된 흑백사진과 색이 바랜 사진이 섞여 있었다. 그중에 아버지 사진이 있었다.
아버지가 죽기 얼마 전에 찍은 사진이었다.
마당에서, 어린 나를 목말 태우고 웃고 있었다. 사진 뒤에 할아버지 글씨로 날짜가 적혀 있었다. 아버지 나이 서른다섯.
나는 그 얼굴을 한참 봤다.
강 건너 방에 앉아 있는 남자의 얼굴이었다.
같은 얼굴이 아니라, 같은 사람이었다.
사진 속 아버지와 지금 그 방의 남자는 나이가 같았다. 서른다섯.
나는 서른여덟이다.
나는 아버지보다 세 살 더 먹은 채로, 아버지에게 밥을 나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당숙을 찾아갔다.
집안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른이었다.
멱살을 잡을 뻔했다. 당숙은 놀라지 않았다.
올 것이 왔다는 얼굴로, 술을 한 잔 따르고 천천히 말했다.
다 말해 주지는 않았다. 그 양반들은 끝까지 다 말해 주는 법이 없었다. 토막토막, 내가 알아서 잇도록 던졌다.
한 사람이 그 방에 들어가 있어야 다리가 안 빠진다고 했다.
들어간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했다. 강이 그 사람의 세월을 가져가는 대신,
다리를 세워 둔다고.
들어간 사람을 누가 거두지 않으면,
밥을 들이지 않으면,
그 사람은 죽지도 못하고 말라 가고, 그 자리가 약해지면서 다리가 빠진다고 했다.
그리고 들어간 사람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단, 다른 사람이 대신 들어갈 때만.
나온 사람은 그동안 강이 가져갔던 세월을 한꺼번에 돌려받는다.
당숙은 그 대목에서 술을 비웠다.
느그 할배가 당신 형님을 꺼냈을 때,
그 형님이 사흘 만에 백발이 되어 돌아가셨다고 했다.
들어갈 때 서른이었던 사람이, 나와서 사흘 만에 아흔 노인의 주검이 되었다고.
그 빈자리에 느그 아부지가 들어갔다고 했다.
내가 여덟 살이던 여름에.
큰물에 휩쓸려 죽었다는 건 마을이 지어낸 말이었다.
시신을 못 찾은 게 아니라,
시신이 없는 거였다.
아버지는 강에 빠진 게 아니라 강 건너로 들어간 거였다.
그날부터 할아버지는 삼십 년을, 매일 새벽,
그 방에 밥을 날랐다.
당신 아들에게.
늙지 않는 아들에게. 당신은 늙어 가면서.
이제 그 할아버지가 죽었다.
밥을 들일 사람이 없어졌다.
그래서 마을이 나를 부른 것이다.
밥을 나르라고.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들어가면 아버지가 나온다.
그리고 사흘이면 죽는다.
서른다섯 해를 강에 저당 잡힌 사람이,
바깥 햇빛을 사흘쯤 보고.
그날 밤은 비가 내렸다.
가을 들어 처음 오는 큰비였다.
나는 아버지에게 그 모든 걸 안다고 말하러 갔다.
우산도 없이 강을 건넜다. 물이 불고 있었다.
세월교의 상판 위로 물이 찰랑거리기 시작했다. 곧 잠길 것이다.
방에 들어가자 아버지가 먼저 알았다. 내 얼굴을 보고 알았던 것 같다.
아버지는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알았구나."
네, 하고 나는 말했다.
"가라."
"저를 꺼내려고 부르신 거 아닙니까.
제가 들어가면 아버지는 나올 수 있는 거잖아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애썼다.
아버지는 한참 말이 없었다.
"내가 너를 꺼내려고 너를 데려왔겠나."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돌아보지 않았다.
"느그 할배가 죽기 전에 나한테 약속을 받았다.
절대 너를 들이지 마라.
다리가 빠지든 마을이 떠내려가든,
그건 우리가 알 바 아니라고.
그 양반이 평생 후회한 게,
나를 이 자리에 넣은 거다.
당신이 형님을 꺼내겠다고 나를 들인 거.
그래서 삼십 년을 매일 새벽 여기 왔다.
빌러 온 거지, 밥 주러 온 게 아이라."
그럼 왜 마을에서는 나를 불렀냐고 물었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돌아봤다.
"마을이 부른 거지, 내가 부른 게 아이다.
나는 너 안 들인다. 내가 여기서 안 나가면 그만이다.
너만 안 들어오면."
밥은요. 할아버지 돌아가셨으니 이제 밥 들일 사람도 없는데. 그럼 아버지 말라 죽잖아요.
나는 그렇게 물었다.
아버지는 다시 등을 돌렸다.
"말라 죽는 데 한 삼십 년 걸린단다.
그동안 너는 멀리 가서,
장가도 가고,
애도 낳고,
늙어라. 늙어서 죽어라.
그라믄 들어올 사람이 없어진다.
우리 집에 장남이 없어지면, 이 일도 끝난다."
물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방 안까지 강 냄새가 들이쳤다.
아버지가 내가 가져온 도시락을 열었다.
밥을 절반 덜어 다른 칸에 옮겨 담았다.
그러고는 도시락을 내 쪽으로 밀었다.
"가져가서 묵어라. 비 그치기 전에 건너고."
나는 그 도시락을 봤다.
내 몫의 밥을 덜어 주는, 떨리는 손을 봤다.
아버지는 나를 들이지 않으려고,
자기가 삼십 년을 더 어둠 속에서 말라 갈 작정이었다.
그게 자식한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손이었다.
오글거리게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 집안 남자들은 원래 그런 말을 할 줄 모른다.
나도 못 한다. 나는 도시락을 받아 들고 방을 나왔다.
강은 이미 잠겨 있었다.
세월교는 물 밑에 있었다.
어디가 다리고 어디가 강인지 분간이 안 됐다.
건너편 마을의 불빛만 비에 번져 멀리 보였다.
나는 둑에 서서 그걸 한참 봤다.
건너면 못 돌아온다.
잠긴 세월교를 무리해서 건너다 휩쓸린 사람이 우리 집에 한둘이 아니다.
아니, 한 명도 없다. 휩쓸린 게 아니라 건너간 거니까.
나는 도시락을 들고 있었다.
아버지가 덜어 준 내 몫의 밥이 식어 가고 있었다.
여기서 돌아서면 된다.
차를 몰고 서울로 가서,
장가를 가고,
애를 낳고,
늙으면 된다.
우리 집 장남을 내 대에서 끊으면 된다.
그러면 아버지 말대로 이 일은 끝난다.
"..."
아버지는 삼십 년쯤 더 어둠 속에 있다가, 아무도 모르게 말라 가겠지.
다리는 어느 큰물에 빠질 거고,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공학에는 예외가 없으니까. 모든 다리는 결국 빠지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한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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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 천장이 낮았다.
콘크리트였다. 시멘트 냄새와 물 냄새가 났다. 신문지가 깔린 바닥에 내가 앉아 있었다.
언제 건넜는지,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이후로 시간이 잘 흐르지 않는다.
아침인지 밤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며칠인가 지난 어느 새벽, 그게 새벽이었던 것 같다.
철문이 열렸을 때, 빛 속으로 한 사람이 걸어 나가는 걸 봤다.
마른 등이었다. 비틀거리며 둑을 오르는 그 등이,
햇빛을 받자 빠르게 굽어 갔다.
검은 머리가 세는 게 멀리서도 보였다. 그 사람은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그게 누군지 안다. 그가 돌아보지 않은 것도.
이제는 내가 여기 있다.
세월이 가지 않는 쪽에.
가끔 철문이 열린다.
손전등 불빛이 먼저 들어오고,
누군가 도시락을 내려놓는다.
처음엔 늙은 손이었다가,
언젠가부터 젊은 손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 손을 잘 안다.
내 핏줄의 손이다.
얼굴을 보면 더 잘 알 것 같아서,
나는 빛을 피해 고개를 돌린다.
그 애가 묻는다.
바깥은 어떤지 궁금해서가 아니라,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해서 묻는 거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는 짧게만 답한다.
밥은 받지 않는다.
그 애가 가고 나면 먹는다.
앞에서는 안 먹는다.
그게 무슨 자존심이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언젠가 그 애가 다 알아챌 날이 올 것이다.
사진을 보든, 누가 말해 주든.
그러면 그 애는 나를 꺼내겠다고 할 것이다.
자기가 들어오겠다고. 우리 집 남자들은 다 그렇게 멍청하다.
그날이 오면 나는 등을 돌리고 앉아서,
내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해 줄 것이다. 밥 한 칸을 덜어 도시락을 밀어 주면서.
비 오는 날이면 더 자주 그 생각을 한다.
물이 불어 다리가 잠기는 소리가 천장 너머로 들려오면,
나는 그 애가 오늘은 오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만에 하나 둑에 또 서 있을 그 애에게,
들리지도 않을 말을 한다.
물이 불어차면, 건너오지 말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