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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두억시니

익명
2026-07-20 13:21
30

저 포졸나으리들이 날 찾아온 건 내가 막걸리를 한 세 사발쯤 마셨을 때였소.

사냥을 다니는 동료들과 마시고 있었지.

원래 나는 술은 잘 마시지 않지만 요 근래에 계속 허탕을 치고 있어서 동료들과 기분이나 풀고자 내가 사는 거였소.

어제 밤새 내내 호랑이를 쫓고 있었거든. 놓쳐버렸지만, 어쨌건 아침부터 술을 먹었던 건 그 이유 때문이오.

설마하니 내가 아침부터 술을 마셨다 하여 날 잡아온 것이라면 정말 섭섭한 일이오. 나라에서 금주령을 내린 것도 아닌데...

그러고 보니 우리가 자주 가는 주막을 알고 찾아왔단 것은 저기 있는 박사령의 주둥이가 가벼워서 일 테지? 이보시오 관리양반, 심문이 끝나거든 박형에게 말해주시오. 이제 서로 빛 진 것이 없다고 말이오.

궁금한 게 하나 있소. 여기 포졸들은 왜 저렇게 눈알을 한시도 가만히 두질 못 하는 거요. 이곳 포도청의 기강이 해이한 것이오? 아니면 오랑캐들이라도 쳐들어온 것이오? 저들은 꼭 여우에 쫓기는 토끼 같은 모습을 하고 있구려, 껄껄껄.

아....아니 그것을 어찌 알고 있소? 나만이 본 것이라고.... 허... 그 말이 사실이오? 큰일이구려. 그게 사실이라면 포졸들이 제자리에 주저앉아 오줌을 지려도 이상할 것이 없지. 그것이 어디까지 왔소. 어쩌면 이 마을에도 있을지 모른다라... 좋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지만 내가 보았던 것을 얘기해 드리리다.

나는 필부의 자식으로 여덟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소.

내 고향은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었으나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었지. 일찍이 농사일엔 관심이 없어서 스무살 쯤에 봇짐장수들을 따라서 떠돌이 생활을 했소.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식견도 넓히고 돈도 제법 모았으나 중간에 도적놈들을 만나 가진 것을 홀라당 뺏기고 간신히 목숨만 건질 수 있었소. 도적놈들을 피해 도망치다보니 웬 마을이 나왔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악운이었지. 마을 이름도 똑똑히 기억나는데 그 마을 이름이 무진이었소. 무진.

그때 당시엔 무진촌은 일이 일어나기 전이라 평화롭고 번창한 마을이었지.

마을 뒤에는 산이 있고 마을 앞에는 강이 흘러 정말 살기 좋아 보이는 곳이었소. 마을의 규모가 규모이다 보니 마을은 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고 대문엔 포졸들이 드나드는 사람들을 검시하고 있었소 출입 통제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나는 별 제제 없이 마을에 들어갈 수 있었지. 처음엔 관아에 신고하여 도적놈들을 잡으려고 했소.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포도청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더이다. 처음엔 도적놈들이 이 근방에서 세력이 세서 그런지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더군. 입구를 지키던 한 포졸이 나에게 넌지시 말하는 말에 마을 사정을 알았소.

" 이 마을 초짜인가 본데 거 정 급하면 김대감 댁에 찾아가보시오"

나는 더 물으려고 했으나 포졸은 더 대답하지 않고 날 쫓아내더이다. 마치 더 입을 놀렸다가는 경이라도 치를 것처럼 말이오.

김대감의 집은 찾기 쉬웠지. 관청과 그리 멀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척 봐도 으리으리하게 커다란 집이 보였거든.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엄청 컸소. 아마 그 집이 관청을 뺀다면 마을에서 가장 중앙에 있었을 것이오. 그때 당시에 나는 천둥벌거숭이였기에 집의 크기에 압도되어 여기 주인이라면 뭐든 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헌데 관리양반, 그거 아시오? 왜 부자들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지?

가진 사람이 더 가지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거요.

나도 그리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내 경험에 보통 베푸는 사람은 가진 사람들이었소.

창고에 쌓아둔 쌀가마니가 되었건 인덕이 되었건 말이오. 당연한 얘기지만 없는 것들이 더 가지려고 하는 법이거든. 그렇소, 김대감은 돈은 많이 가진 사람이었소. 다른 것이 부족한 자였지. 그가 가진 주머니는 돈만 넣기엔 너무 컸거든.

너무 다급한 마음에 무턱대고 김대감의 집대문을 두드린 내가 등신이었기도 했지만,

김대감의 하인들은 주인을 닮아 며칠 굶은 쥐새끼 같았지. 대문을 두드리자 쪽문이 열리면서 날 반긴 것은 몽둥이를 든 머슴들이었소. 멀리서 웬 각설이타령이 들리는 것이 직감적으로 방금 전에 거지들을 쫓아냈다는 걸 알았지. 힘을 써서 핏물이 올려서인지 머슴들의 얼굴과 드러난 팔뚝을 보니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는데, 어찌나 무섭던지. 오냐 잘 걸렸다는 듯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서 나를 내려다보는데 눈알이 튀어나올 듯 해보였소

다행인 건 그 놈들도 내가 거지가 아닌 것은 알아봐서인지 당황하더이다.

머슴들은 바로 몽둥이를 내리면서 가장 앞에 있던 머슴이 툭 던지듯 뉘시냐고 물었소 나는 약간 놀라서 대답을 바로 하지 못 하자 한 머슴이 댁도 밥을 얻으러 왔냐고 묻더구려. 그러면서 빌어먹는 놈들에겐 매가 답이지 하면서 팔을 걷어 부치는데 그땐 정말 오줌을 지릴 뻔했지. 급한 데로 아무 말이나 지껄인다는 게, 대감집에 돈 좀 벌러 왔다고 말했소. 아마 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튀어나간 것 같은데 맨 앞에 있던 머슴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쪽문을 활짝 열어주더구려, 운이 좋게도 마침 김대감집에서 머슴을 구하고 있더이다. 아마 나를 방을 보고 온 일꾼쯤으로 보았었던 것 같소.

대여섯명 되던 머슴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제일 앞에 나서던 머슴이 간단하게 상황설명을 하며 어디론가 데려갔소. 대감집은 과연 넓더군. 궁궐에 가보진 않았지만 비교하자면 정말 궁궐 같았소. 사잇문을 몇 개나 지난지도 모르겠소. 집들은 모두 아주 검고 매끄러운 기와가 얹어져 있고 새로 지은 집인 마냥 기둥들에서는 은은한 나무향이 났소. 땅바닥은 고르고 깔끔했고 연못이나 꽤 큰 나무들도 있더군.

한참을 걷다 걸음을 멈춘 곳은 그 화려한 건물들 한켠에 있는 헛간이었소.

대감집이 산 거의 바로 앞에 있었는데 이 헛간은 거의 산 입구에 있었지, 산에서 쓰는 물건들을 모아놓은 곳이었소. 하지만 나는 볼 일이 없는 물건들이었지. 해서 날 데려온 머슴에게 원래 온 이유를 말하려고 했는데, 그 자는 기다리라는 말만 해놓고는 바로 떠나더군. 불러도 바쁘다며 무시하더이다.

지금이라면 불같이 화를 냈겠지만, 어수룩하고 어렸을 적이었기에 오히려 주눅 들었소.

쑥쓰러운 얘기지만 내가 있던 헛간을 벗어나면 집이 너무 넓어서 길을 잃을까 걱정까지 했으니 무엇을 더 말하겠소

해가 어둑어둑해져가니 식모 한 명이 와서 밥을 주는데, 다 식은 선밥에 말라비틀어진 절인 무한 조각만 덜렁 있었소. 선밥은 그나마 반은 쭉쩡이라 먹다 남은 찌꺼기를 모아놓은 듯 했지. 이미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있던 터라 식모에게 뭘 물어볼 생각도 못 하고 허겁지겁 밥을 먹었소. 젊은 것을 감사히 여겨야할지 시장기를 감사히 여겨야할지 그걸 먹고도 별 탈은 없었지.

밥을 먹고 나니 더 이상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소. 지금 와서 생각하건데 아무래도 김대감은 나를 안중에 두지 않은 듯 싶소. 어쩌면 그 머슴 놈이 알리지도 않았을지도 모르오. 그 주인에 그 하인이었으니까. 별로 돈이 되어 보이지 않았던 거지.

날은 어둡겠다. 밥도 먹었고, 아직 만나서 얘기를 하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제법 큰 세도가의 집에 몸을 맡겼다는 생각을 하니 헛간도 사랑방 아랫목 같더이다. 나는 쏟아지는 피로감과 안도감에 자리도 제대로 깔지 않고 등만 뉘이고 잠에 들었소.

정말 꿀 같은 단잠이었지. 잠자리만 편했으면 말이오. 한참 잠을 자다보니 등에 담이 걸린 듯 아파오더구려.

그때 내가 아무리 젊었다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이 딱딱한 맨바닥에 자는 것은 몸이 견디질 못 했소. 해서 바닥에 깔 것이 있나하고 잠에서 깬 것이 천운이었지. 참말로 천운이었소.

유난히 달이 밝은 밤이었소 거짓말을 보태서 눈이 부실 정도로 밝다고 생각이 들었소. 천장을 보니 일부러 뚫어놓은 건지 커다란 구멍이 나있더군. 그 구멍을 통해서 달빛이 마치 칼날같이 떨어지고 있었소.

밝아서 잘 됐다 싶어 헛간을 둘러보고 있었소. 그런데 문득 너무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었소. 올빼미 소리는 제쳐두고서도 벌레소리 하나 들리지도 심지어 바람조차 불지 않았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오직 발자국소리만 들렸다고 하는 게 맞겠지. 사람발자국 소리는 아니었고 무언가 커다란 것이 뛰는 듯한 둔중한 소리였소 아까도 말했지만 이게 이상한 것이 오직 그 소리만 들렸다는 점이오. 마치 온 세상에 그 발걸음만이 있는 듯 했소.

내 몸은 긴장감에 굳어갔지. 손끝에서 어깨로 닭살이 올라왔소. 그리고 발걸음 소리가 헛간으로 다가올수록 난 그 소리에만 신경이 쓰였소. 타다닥 타다닥하며 서서히 커지는 소리였는데 마치 발바닥에 털뭉치를 매어놓은 듯이 소리가 흐트러졌소. 그렇게 고요하지 않았다면 나는 전혀 눈치 채지 못 했겠지.

그 때 나는 그리 아는 것이 많진 않았지만 밤 중에 산 속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을 딱하나 알고 있었지. 바로 범이요.

범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온 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리며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소. 이 헛간은 아무리 봐도 범을 막아내지 못할 것 같았소. 지금이라면 별로 놀랄 것도 아니지. 드문 일이지만 범이 시끄럽게 소리를 내며 뛸 때는 오직 도망갈 때만 그렇거든. 다시 말해서 아마 그 범은 무언가에 쫓기고 있었다는 소리고

아무튼 그 당시엔 그 생각을 못 했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헛간엔 날카로운 도구들이 많아서 무기로 쓸 법한 것들이 많았지. 굳어버린 몸으로 쇠스랑을 집으러 기어가는데, 정말이지 그때만큼 시간이 천천히 흐른 적이 없었소. 소리만으론 범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니 당장이라도 범이 헛간을 덮칠 것만 같았지.

요행이었고 천운이었지. 내가 쇠스랑을 잡고 몸 앞 쪽으로 당기자마자 범이 헛간을 덮쳤으니 말이오. 아마 범은 산에서 내려가다 갑자기 나타난 헛간을 보고 뛰어넘으려 했던 것 같소. 근데 그게 안 된 거지. 엄청난 소리를 내며 헛간이 무너졌소. 나는 그와 동시에 정신을 잃었지. 아마 헛간이 무너지며 통나무에 머리를 부딪쳤던 것 같소

다시 깼을 땐 나는 사랑방에 있었소.

이미 날은 밝아있었지. 내 몸엔 아무 상처가 없었고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옷도 갈아입혀져 있었소.

옆을 보니 밥상만 떡 하니 있었는데 어제보단 나은 밥상이었소. 최소한 밥은 제대로 지은 밥이었거든.

시장기가 돌아 밥을 먹고 있으니 한 사내가 들어오더군. 물론 김대감이었소.

나이는 마흔 끝물쯤이고 제격은 나보다 좀 왜소한 편이나 다부진 느낌이었소.

다만 앞니가 조금 튀어나오고 코 오른쪽에 커다란 점이 하나 있어서 매우 심술궂어 보이더군.

옷은 때깔 좋은 살구빛 비단 옷을 입고 갈지자 걸음으로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더니 밥 상 앞에 앉더군.

잡설을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오.

앞말 뒷말 없이 바로 해줄 것을 말하더군. 그러면서 나를 범 잡은 장사라고 불렀소.

그리고 소매에서 비단 주머니를 하나 소반 위에 올렸소.

많은 돈이 들어있진 않은 것 같았지만 김대감이 시킬 일에 비해선 많은 것 같았소

내가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으나 김대감은 마을을 위해 큰 행사를 치를 예정이었던가 보오

워낙 큰 행사여서 굿판을 크게 벌여 무탈하길 기원하려 했다고 하오.

그게 칠일 전 일이라 했소

무슨 생각이었는지 굿을 주관했던 만신당은 시종 몇을 남겨두고 모두 내려가라고 했었나보오.

그 뒤로 깜깜무소식이라 사람을 보내려 했는데, 어쩐지 사람들이 산에 오르길 거려했다는 것이오.

한마디로 나에게 시킬 일이란 것이 고작 뒷산에 올라간 만신당을 데려오란 것이었소.

어처구니가 없지.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쉬운 일이라 받아들인 것도 있었지만,

그때 나는 여러 가지로 급하기도 했거니와 김대감의 사탕발림에 내가 정말 범을 잡은 줄 알고 우쭐해있던 것이 사실 크게

김대감은 사람을 잘 다룰 줄 알았던 게지. 굳이 하인을 보내지 않고 자기가 직접 온 것도 잔머리를 굴린 탓이었을 것이오

김대감이 나에게 잘 대해주자 심술궂어보이던 인상도 나쁘지 않아 보였소.

김대감이 나의 진가를 알아주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가 시킨 일을 잘 해서 내 물건을 강탈해간 도적놈들을 혼내주고 싶었지

김대감은 내 대답을 듣기 전에 소매에서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며

"이것을 꼭 만신당에게 전하게, 행사에 관한 사항이 적인 두루마리라 범잡이 장사인 자네가 아니면 맡길 수 없으니 꼭 부탁하네"

라고 말했소.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던 것 같소.

그렇지 않고서야 내 대답도 듣지 않고 김대감이 돈주머니와 두루마리를 내 쪽으로 쭉 밀어 줄 리가 없거든.

김대감은 밥을 다 먹는 대로 바로 출발해달라는 말과 함께 다시 갈지자 걸음으로 어슬렁어슬렁 나가더군.

끝에 헛기침을 한 번 하고서 말이오.

나는 밥을 마저 먹고 밖으로 나갔소.

어쩐지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약간 거드름을 피우며 하인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밖으로 안내하라고 시켰지.

그 사람은 어쩐지 묘한 눈빛으로 날 보더군. 물론 그때는 부러워서 그러는 줄 알았소

김대감의 집 밖으로 나오니 벌써 일이 다 끝난 느낌이더군.

겨우 뒷산에 오르는 일인데 무엇이 어렵겠소?

혹시나 김대감의 기밀을 훔치려는 자가 있으면 범을 때려잡은 이 손으로 단단히 혼내주리라 마음먹었지.

분명히 우연하게 범이 죽었을 텐데도, 김대감의 한마디에 꼭 내가 분투 끝에 범을 잡은 것 같았지.

'나는 범잡이 장사다.

나는 김대감의 말이 계속 떠올라 자신감에 잤소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거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소. 내가 어제 밤에 지른 놀라운 일에 대해서 떠들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소. 한낮에 가까워서 모두 논밭에 나가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으나 규모가 있는 마을이라면 응당 상인들이나 심부름꾼이라도 많이 지나다니기 마련인데 그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소. 마치 마을 전체가 숨죽이며 웅크린 느낌이었지.

작은 초가집 몇 채쯤 지나가다 우연히 지나는 사람을 보게 되었소. 열 살 쯤 되어 보이는 아이였지. 잘 됐다 싶어서 뒷산 가는 길을 묻는 척 하며 자랑 좀 하려고 했소. 아이들은 본디 소문을 잘 내니까 말이오. 헌데 아이에게 다가가 뒷산 얘기를 꺼내자 크게 놀라는 것이었소. 그리고 걱정하는 투로 말했소.

"아저씨, 뒷산엔 산신이 노해서 요괴를 내렸대요. 그래서 올라가는 사람마다 미쳐서 내려 온데요. 그래서 엄마가 올라가지 말라고 하셨어요"

나는 뚱딴지같은 소리에 아이에게 꿀밤을 한대 쥐어박았소. 세상에 요괴 같은 것이 어딨냐고 말이오. 그랬더니 아이가 울면서 진짜라며 요 며칠 사이에 산에서 안개가 끼고서 없어지지 않는다는 거였소.

나는 당연히 콧방귀를 뀌었지.

나는 그런 시시한 얘기보다는 내가 해주는 얘기를 한 번 들어보라고 했지만 아이는 울면서 갈 길을 가버리더군.

나는 아이를 쫓아가려고 했으나 그건 너무 한심한 것 같고, 뒷산에 가는 길을 모르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가던 길을 갔소. 아이의 말을 아예 흘릴 순 없었소. 실제로 뒷산엔 안개가 끼어있었거든. 그 안개는 무언가 말로 설명하지 못할 느낌을 주었소 마치 계곡 사이에서 누군가 연기를 뿜는 것처럼 괴이한 모양으로 꿈틀대고 있었소. 어찌 보면 살아있는 것 같았소.

불안감은 산 입구에서 더욱 커졌소 산 입구엔 분명 어제 나를 덮쳤던 게 분명한 범의 시체가 있었소. 범의 대가리는 잘려서 장대에 꽂혀 있고 대가리의 방향은 산을 향해 있었소. 마치 누군가가 보라는 듯이 전시되어있었지.

안개 때문인지 산 입구는 무척 어두웠고 매우 깊어 보였소. 김대감이 왜 나에게 이 일을 맡겼는지 알겠더군. 나는 입구를 보고 있자니 막연하게 무서웠소 정말로 산 속에 무언가가 있어서 나를 노리고 있을 것만 같았지.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둠 속에 나 홀로 있는 것 같았소.

그리고 다시 전날 밤처럼 산 속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소. 바람 소리나 새소리, 벌레 소리 따위도.

그때 불현듯 내 꼴을 보면 웃길 거란 생각이 들더군.

한 낮에 사람도 많이 있을 이런 커다란 마을에서 혼자서 서서 벌벌 떨고 있으니 말이오. 나는 괜히 큰 소리를 내면서 산으로 올라갔소 무섭지 않은 척하며 말이오.

김대감이 알려준 대로라면 만신당이 판을 벌여 놓은 곳은 그리 멀지 않았소. 산도 그리 높은 것도 아니어서 이 식경이면 산마루에 오를 수 있어 보였소. 만신당이 판을 벌린 곳이 산중턱보다 아래였으니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지.

안개가 짙게 내려앉아서 산길을 모두 가렸지만 김대감의 말을 믿고 열심히 올랐소 사람들이 제법 다니는지 돌멩이도 별로 없고 잘 다져진 흙길이더군.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가도 가도 제자리인 것이었소. 아니 오르고는 있었으니 제자리는 아니었을 것이오. 아니, 어쩌면 제자리였을지도 모르오, 어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소. 안개 때문에 주변이 잘 보이지도 않았을 뿐더러 안개가 잔뜩 끼어있는데도 이상하게 밝았으니 말이오. 내가 알던 산의 모습이 아니었지.

아이가 한 말이 계속 떠오르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산 속에서 마치 미친 사람의 웃음소리만 들리는 듯 했소. 마치 나를 노리고 주변을 맴돌며 웃는 것 같았지. 아마 분명 나의 착각이었을 것이오. 내가 느낀 소리대로라면 그 소리는 땅 속에서도 났었고 하늘에서도 났었거든.

이대로 계속 오르다가는 정말 미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갑자기 안개가 옅어지며 너른 공간이 드러났소. 한쪽엔 산신당이 있고 터 가운데엔 커다란 나무가 있었소. 그리고 그 앞에 제사상이 있었소. 마치 막 차려 놓은 듯 먹음직스런 음식들도 있더군. 단지 사람만이 없었을 뿐이었소.

나는 도착했다는 생각에 잠깐 기뻤으나 곧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소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소.

커다란 나무 밑에는 그림자가 하나도 없었소. 마치 햇빛이 나무를 통과하는 것처럼 말이오. 또 젯밥이 이상했는데, 김대감의 말에 거짓이 없다면 그 젯밥은 무려 칠일이나 지난 것이었소. 당연히 새로 음식을 해 올리진 않았다고 했소.

무엇보다 굿을 하고 있어야할 만신당이나 그의 하인들이 보이지 않은 것이 제일 신경 쓰였소 마치 그곳에는 처음부터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았지.

유일하게 사람이 들어가 있을 만한 곳은 산신당뿐이었소. 나는 이 터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지만 산신당을 확인해야만 했소. 내가 겁쟁이가 될까 겁나는 것보다는 김대감에게 믿음을 잃어 혹여나 내 용건을 거절당할까 두려웠소

내가 산신당에 다가갈수록 내 살갖이 따끔해지는 것을 느꼈소. 마치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기도 했고 몸이 말라가는 것 같기도 했소 나무 옆을 지나는데 우연히 바닥을 보다 벌레 한 마리를 보았소. 정말 괴이하게 생긴 벌레였는데 전체적인 모습은 풍뎅이와 같았는데 다리가 너무 많이 있었소. 지네인 줄 알았으나 아예 머리가 없는 벌레였소.

나는 께름직한 느낌이 들어 산신당을 얼른 확인하고 쏜살 같이 산에 내려갈 생각으로 산신당의 문을 벌컥 열어 재꼈소 허, 그 안의 풍경은 정말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소 덜컥 문을 열어 버린 나를 스스로 원망했지.

문을 열자마자 본 것은, 아니 느껴진 거라고 말하는 게 더 맞겠소.

정말이지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소

무언가 내 다리부터 머리끝까지 감싸 안는 느낌이었소

감싸 안으면서 서서히 내 살갗을 파고드는데 눈으로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소.

이어서 냄새가 냈소, 마치 콧등을 뚫고 곧바로 콧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지.

어떤 냄새라고 말할 순 없었지만 코가 시큰 한 것이 코피라도 터질 것 같았소. 정말 역겨웠지.

낯선 느낌에 앞을 보지 못하다가 서서히 눈에 초점이 잡혀갔소

내가 그때 주저앉지 않은 것은 정말 살아야겠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소. 정말로 흉측한 것이 있었소이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으나 사람은 아니었지. 복장을 보아하니 만신당이었던 것 같았소. 어쩌면 만신당을 죽이고 뺏어 입은 것일지도 모르지. 아니지... 그 놈의 생김새로 생각했을 때 처음부터 입고 있었을 거요.

그 괴물은 팔이 여러 개가 자란 모습을 하고 있었소

팔 끝에 손이 있고 손바닥 끝에 손가락이 달려있지 않소? 그 괴물은 손가락 끝에 또 손이 있고 다시 그 끝에 손이 있는 그런 모습이었소. 더욱이 괴물의 위쪽은 사람의 머리라 부를 만한 것이 있었는데 그 머리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모두 팔들이 자라 있었소. 그 팔들은 모두 축 쳐져 있어서 마치 선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 같았지.

산신당 벽에는 피칠갑이 되어있었소.

하인의 것이라 짐작했지만 그들의 시체는 어디에도 없었소. 다만 알 수 없는 덩어리 들이 손발의 형상을 한 재 바닥에서 쭈그러들고 있었소.

괴물은 귀나 눈이 없어서 인지 꽤 큰소리가 나도록 문을 열었는데도 반응이 없었소. 나는 괴물이 눈치 채지 못 하길 바라면서 천천히 문을 닫으려 했소. 그런데 문을 닫으면 닫을 수록 다를 감싸던 느낌이 점점 몸 깊숙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소 마치 누군가 내 몸속으로 들어오려는 것처럼 말이오. 놀라서 반사적으로 문에서 떨어졌소.

그 이상한 느낌도 같이 내 몸에서 떨어지더구려.

살갖 위로 저릿한 느낌이 들더니 갑자기 괴물이 꿈틀거렸소.

마치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것처럼 괴물의 팔들이 하나 둘 씩 곧추세워지더니 사방으로 뻗혔소. 그리고 어디서 내는지 모르는 낮고 음울한 울음소리가 나는 것이었소. 마치 땅 속 깊은 곳의 염라국 귀졸들이 내는 소리 같았지.

그땐 이미 나는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소. 그

괴물은 분명 나를 찾고 있는 게 분명했거든.

그리고 눈에 보이는 저 괴물이 진짜 괴물이 아니란 생각도 들었소. 살갗에 닿았던 이상한 느낌이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이 들었소.

내가 어떻게 내려왔는지는 잘 기억 나진 않소

얼핏 기억나는 것은 그 기괴한 안개가 사라져있었고 순식간에 김대감의 집에 도착해있었다는 거요. 마치 늘어났던 길이 줄어든 것처럼 말이오. 단지 정신없이 뛰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정신을 제대로 들었을 땐 나는 김대감집 대문을 손에 피가 나도록 두드리고 있었소. 쪽문이 열리면서 머슴들이 우르르 나왔소. 나는 머슴들의 부축을 받고서 김대감을 만날 수 있었소.

김대감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하인들을 이미 모아 놓고 날 기다리고 있었소. 지금 내가 심문당하고 있는 것처럼 그때의 하인들도 날 둘러싸듯 서있었고 김대감은 대청마루에 멋들어진 의자를 하나 놓고 앉아있었지. 마치 나를 심판하려는 듯 말이오.

다만 내가 너무 정신이 나가있었소

김대감이 무어라 말을 꺼내기 전에 나는 횡설수설 내가 본 것에 대해 떠들어댔소, 마치 허공에 있는 누군가에 소리 지르듯 마구 내뱉었소. 당장 산에 병사들을 데려가 괴물을 처단해야한다고 말이오. 내가 느낀 괴이함과 섬뜩함을 얘기했소

하인들은 내가 아이에게 들었던 소문을 이미 알고 있었던지 웅성대기 시작했소. 분명 김대감은 당황하고 있었을 것이오. 그러나 나는 그러든 말든 내가 본 것을 얘기해야만 했소. 머리 속에 가득한 괴물의 모습을 어쩌면 그 이상의 것을 토해내고 싶었던 거요.

김대감이 크게 소리치며 장내를 진정시키려 했소.

쉽게 가라앉지 않자 김대감은 몇 번 더 큰 소리로 호통을 치더군. 김대감은 큰소리로 혀를 차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소.

"쯧쯧, 아랫것들이란!"

김대감이 앉아 있던 의자에 일어서자 대청마루 아래에 서 있던 한 사내가 다가가 무어라 귀엣말을 하더이다. 아마 김대감의 심복이었을 것이오. 김대감을 그 말을 다 듣더니 나를 앞세워 관청으로 갔소. 내가 한 말이 사실이 아니면 큰 치도곤을 당할 것이라면서 말이오. 김대감은 관청에서 일단의 포졸들을 데리고 뒷산으로 올라갔소.

산은 내가 올라갈 때와 확연히 달랐소

아까 말했듯이 안개가 없어져있던 거요. 산은 이미 보통의 산으로 돌아와 있었소 새소리나 벌레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간간히 부는 바람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는 들려왔소.

여러 생각이 들면서 식은땀이 나더군. 혹시 내가 잘못 본 것이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들었소.

산신당 터에는 금방 도착했소.

나무의 그림자는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소 그러니까 다시 나무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단 소리요. 그 아래 제사상에는 잿밥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여전히 오늘 지은 것 같았소, 하지만 김대감의 눈엔 그것이 들어오지 않았소.

산신당의 문은 활짝 열린 그대로였소.

물론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소. 이상한 느낌도 사라져 있었소. 단지 산신당 벽 여기저기에 묻은 피들은 그대로였소.

김대감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나에게 물었소. 그 괴물이 어디 있냐고 말이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소. 낸들 알겠소. 그 괴물이 어디 있는지.

'헛것을 본 것인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김대감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소. 만신당이 어디 있냐고 말이오. 당연히 그것도 말 할 수 없었소. 내가 얼빠진 채 가만히 서있자 김대감의 심복이 앞에 서서 나를 범죄자로 몰아갔소. 마치 내가 만신당의 사주를 받고 마을에 저주를 내린 것처럼 말이오. 김대감을 시샘한 만신당이 김대감을 해하기 위해서 마치 주술을 부린 것처럼 심복을 떠들어댔소

이 얼토당토안 한 이야기를 같이 온 포졸들과 포도대장은 참말인양 맞장구까지 쳐주었소. 그러면서 포졸들이 나를 포박하는 것이었소. 그렇소. 나는 함정에 빠진 거였소.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나에게 일을 맡겼던 것이오. 김대감은 마을에 도는 소문을 이용해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자 한 것이었소.

후에 들은 얘기지만 김대감은 욕심이 많았소. 돈만으로는 마을 사람들의 인심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던 모양이오.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는 인심은커녕 오히려 욕을 먹기 일쑤였겠지. 아니 돈으로는 관리를 살 수 있었으나 마을을 가지진 못 했나보오. 해서 인심을 얻기 위해 심복으로 있던 만신당을 이용해 한바탕 연극이라도 할 요량이었나 보오. 하지만 굿을 시작한 날부터 해서 산에서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보고 오자 굿을 그만 하려고 했나보오. 그런데 만신당을 부르러 간 사람마다 족족 정신이 나가서 돌아오자 김대감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나보더군. 그러던 차에 내가 왔던 거요. 나를 속인 거였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김대감이 욕심이 많은 덕에 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소. 관에서는 마을에 큰 혼란을 준 죄로 능지처참을 내렸으나 김대감이 마치 성인군자처럼 나타나 나를 먹으로 감복시키겠다며 나를 살려준 것이었소. 물론 그것도 다 계산된 행동이었소. 김대감의 말이라면 꿈뻑 죽는 포도대장은 당연히 김대감의 혜안에 감탄하면서 허락했고 나는 다시 김대감의 집으로 돌아가 노비가 되었소.

당연히 나를 가까운 곳에서 감시하기 위함이었고 나는 언제든지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소. 마을 사람들의 지지가 충분하다 싶으면 소리 소문 없이 나는 죽을 운명이었지.

김대감은 그 일로 단번에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소. 마을의 우환을 없앴을 뿐더러 인덕을 보였기 때문이었소. 지나가는 사람마다 김대감의 인품에 대해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지. 기괴한 안개가 사라지자 다시 마을엔 활기가 띄었소. 허나 김대감의 집에는 오히려 괴이한 일이 늘어갔소

아마 그 괴물이 누군가에게 들러붙어서 김대감의 집에 들어온 것이 틀림이 없었소. 왜냐하면 내가 노비가 된 직후 산신당에서 느꼈던 이상한 느낌이 김대감의 집에서도 똑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오. 꼭 누군가가 전염병을 달고 온 것 같았지.

내가 노비가 되고 며칠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소. 나는 실의에 빠진 채 잡동사니를 옮기고 있었지.

유난히 강렬한 저릿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자 금접시 하나가 벽에 박혀있는 것 아니겠소?

더 놀라운 것은 금접시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벽을 타서 올라가는 것이었소. 나는 놀라서 다른 하인을 불렀는데 금접시는 그대로 천장을 뚫고 올라가 하늘로 사라졌소 다행이 같이 본 사람들이 꽤 있어서 금접시 도둑은 면했소.

또 다른 괴이한 일은 어느 날 밤에 일어났소. 한 밤 중이었는데 나는 오줌이 마려워 잠깐 밖으로 나왔을 때였지.

달빛조차 구름에 가리어 매우 어두웠었소. 대강 감으로 길을 찾아 가는데 앞에 누군가 서있는 것이 보였소.

다가가면 갈수록 나는 무서움에 떨어야 했소. 무당이 있었던 거요

무당이 만신당인지 아님 다른 무당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괴이하게 달려있던 팔들은 모두 사라지고 제법 사람같은 모습으로 있었소

하지만 한순간 구름이 사라지며 달빛이 비춰지자 나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소.

무당은 마치 거죽만 남아있는 사람처럼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까맣게 뚫려있었던 거요.

부엌에서 사람의 몸 일부분이 튀어나와있다든지 괴이한 소리가 들린다든지 하는 이상한 일들이 계속 일어났소. 나뿐만 아니라 다른 하인들도 많이들 겪은 것 같더군. 하지만 김대감은 계속 하인들만을 나무랄 뿐이었소. 이제야 마을에 평안이 왔는데 자꾸 헛것을 보고 헛소리를 한다고 말이오. 김대감은 이 소문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철저하게 단속했소. 심하게는 머슴들을 시켜 곤장까지 쳐가며 말이오.

괴이한 일은 그뿐만 아니었소.

이건 나에게만 보이는 것 같았는데, 그 커다란 김대감의 집이 서서히 안개에 싸이기 시작한 거였소 단순히 안개가 짙게 끼는 것이 아니라 마치 마을로부터 대감의 집이 도망치듯이 어쩐지 멀어지고 있다는 거였소. 그 허연 안개에서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끊임없이 들려왔소. 몇 번이고 김대감의 집에서 도망치려 했으나 안개 때문에 두려워서 담을 넘지 못했소 정말 내가 미치광이가 되어가는 것 같았지. 나를 빼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김대감의 집을 왕래했거든.

나는 몇 번이고 김대감에게 경고를 하였소. 내가 보았던 괴물이 지금 김대감의 집에 있다고 말이오 하지만 김대감은 믿지 않았소. 아니 믿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오. 그래서 일까 김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나에게 심한 벌을 주더 나는 정말 죽을 지경까지 맞았소,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 하고 헛간에 처박혔지. 김대감에게 사단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거기서 그대로 죽었을지도 모르오.

나를 크게 벌한 것이 오히려 다른 하인들을 동요하게 했던 모양이오.

실제로 몇 몇 여종년들은 실성한 듯 헛소리를 지껄이는 사람들도 있었소. 김대감은 궁여지책으로 결국 용한 무당을 불러 잡귀를 쫓는 굿판을 벌리기로 했소.

양기가 가장 강한 날과 시를 골라 판을 벌렸소

나는 헛간에서 간신히 몸을 끌고 나와 굿판을 보았지. 모든 하인들과 김대감의 내외 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굿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더군.

하지만 그들은 허연 안개가 보이지 않았나 보오. 안개가 이상하리만큼 굿판 위로 모여들었지.

마치 수많은 벌레들이 꿈틀거리듯 움직이며 말이오. 무당이 굿을 시작하기 위해서 큰 소리로 귀신들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시작되었소.

괴물이 현신하기 시작하는 거였소. 아니 무당에게 빙의되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이오.

산신당에서 보았던 괴물을 다시 보게 되었소. 다만 무당이 그 괴물이 되어가는 것을 보아야만 했지.

무당의 눈알과 혓바닥을 파내며 사람 팔뚝들이 솟아올랐소.

손에서 손이 자랐고 무당이 쓰고 있던 모자도 벗겨지며 살덩어리들이 자라났지. 그리고 음울하고 낮은 기성을 내었소.

사람들이 놀라고 있는 사이에 하인들 사이사이에서 그것과 똑같이 생긴 괴물들이 또 생겨났지. 대체로 여자들이었던 것 같았소.

그 괴물은 손 끝에 걸리는 것은 무엇이든 움켜쥐려고 하였소

힘이 어찌나 쌘 지 마치 범새끼 따위가 사람을 베어 문 것처럼 살점이 뜯겨나갔소. 그 참혹한 광경을 어찌 다 설명하겠소.

김대감의 행동이 더 가관이었지.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은 내팽겨 치고 문 쪽으로 도망치려 하는 거였소.

처음엔 저 혼자 살려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소. 오히려 사람들이 도망을 못 치게 하려는 것 같더군.

문 쪽이나 담을 넘으려는 사람들을 밀쳐내며 도망가지 못 하게 했소.

이미 김대감은 미쳐있었던 것일지도 모르오, 괴물이 되지 않았을 뿐,

그는 끝까지 체면치례를 걱정하느라 사람들을 단속하려고 했던 것이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사방에 진동했으나 이상하리만큼 마을에서는 반응이 없었지.

한 낮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오. 정말 안개가 김대감의 집과 마을을 떨어트려 놓은 것 같았소

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 김대감의 집의 담을 넘었소.

나는 안개가 두려웠지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던 탓에 용기가 났었소. 안개로 뛰어 내렸을 때 나는 무저갱의 아가리로 뛰어들어 영원히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금세 짜릿하고 고통이 온 몸으로 느껴졌 소. 보통의 흙길에 나는 엎어져 넘어져 있던 거요.

마치 방금 본 것이 꿈인 양 평화로운 마을만이 나를 반겼소.

김대감의 집에선 어떤 소리도 이상한 징후도 보이지 않더군. 평소와 같았소.

하지만 나는 담 넘어 무엇이 있는지 확인할 용기는 없었소.

나는 지나가는 소몰이 수레를 얻어 타고 무진촌에서 도망치듯 빠져 나왔소. 멀리서 무진촌을 바라보니 여전히 평화로워 보이더군.

다만 그 괴이한 안개가 조금씩 조금씩 마을 전역으로 퍼지고 있었다는 점을 빼면 말이오.

그 후엔 나는 여기저기 떠돌며 살았소.

나는 그 괴물을 두억시니라 부르는데, 어찌 보면 그 후의 내 삶은 두억시니로부터 도망치 것일지도 모르오. 지금은 보시다시피 짐승들을 잡으며 살고 있지. 사냥을 한지는 꽤 오래 되었지만 그 무엇을 잡더라도 두억시니와는 비교할 수 없더군. 도대체 그 괴물을 대처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거요. 그것이 지척에 있다니 하늘을 원망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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