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미화
새벽마다 울리는 알람 소리에 뇌가 깨어난다. 곧 눈이 트이고 어둑한 방 안의 공기를 한 번 느끼고서는 몸을 일으킨다.
“후우..”
매번 정해진 시각에 일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더욱이 모든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새벽녘 같은 시간이라면 그게 더 힘들다. 서둘러 근무복으로 갈아 입고서 집을 나선다. 밖에 조용히 주차된 차에 올라타니 차가운 한기가 온 몸을 타고 스며든다.
부르르. 온 몸이 떨린다. 곧 시동을 틀고 잠시 예열을 해두기로 한다.
우우웅-
올해 운좋게 환경미화원에 합격한 난 새로운 생활패턴에 적응해야만 했다. 항상 새벽 4시에 일어나 30분까지 지정 작업소로 가서 도구들을 챙긴 뒤 거리의 청소를 함으로서 태양을 바라보는 일. 그게 바로 환경미화원의 일이다.
적당히 예열이 된 차에서 히터를 틀고 악셀을 밟는다. 새벽이어서 오고가는 사람과 차들이 없다. 이럴 때엔 복잡하지 않아서 참 좋지만..
서둘러 작업소에 도착한 난 가볍게 도구들을 챙긴 뒤 배정 받은 장소로 이동했다. 새벽녘의 밤공기가 유난히 차갑다. 폐속을 파고드는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공기를 한껏 받아들이며 걸음을 옮기니 잠이 조금씩 깨는 것 같다.
“음~ 음~ 음.”
도로에 놓여진 쓰레기들을 치우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이러지 않고서는 지루한 시간을 이겨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스윽. 슥. 슥.
곧 들려오는 소음에 고개를 돌린다. 항상 같은 시각. 이 주위를 맴도는 나이든 아저씨가 있다. 50대에서 60대로 보일법한 아저씨는 매우 초라한 행색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항상 담배를 입게 물고 있는데 아무렇게나 버리기 일쑤여서 내겐 좋지 않은 이미지로 남아 있다.
항상 저렇게 다리를 끌며 이동하는 탓에 이런 새벽녘에는 아저씨의 존재를 멀리서도 느낄 수가 있다.
“....”
말을 섞진 않았지만 아저씨는 노숙자가 분명해보였다. 항상 같은 차림의 옷과 조금만 다가가도 느껴지는 악취는 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줬다.
투욱. 오늘도 아저씨의 못된 버릇이 나왔다. 담배 꽁초를 아무렇게나 던진 그는 다시 다른 담배를 물더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아무리 내 일이 주변을 미화하는 일이라고는 하나 저렇게 몰상식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눈으로 보고 있자면 부아가 치밀곤 한다.
그게 오늘에는 한계에 다다랐다. 난 아저씨에게 다가가기로 했다.
“저기요. 선생님.”
내 말에 듣는둥 마는둥 아저씨는 느릿하게 걷고 있다. 무시하려는건가?
“잠시만요.”
다시 한 번 소리를 높여 그에게 다가가니 초점을 잃은 듯한 두 눈이 나를 향해 있다. 눈동자의 반은 완전히 백색으로 뒤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저씨의 눈은 매우 불편해 보였다.
“누구야?”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제서야 조금은 이해가 됐다. 그도 처음부터 쓰레기를 바닥에 버리진 않았으리라. 아마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쓰레기통을 찾아서 버리는게 더 힘들었을 것이리라.
“자꾸 꽁초 아무데나 버리시면 안됩니다. 요즘 같은 날씨에 낙엽에 불 붙을수도 있어요.”
그래도 할 말은 해야했다. 정말 운이 좋지 않아 불이라도 나는 날엔..
“이봐 청년.”
“예.”
“남 일은 상관 말고 갈 길이나 가.”
그렇게 말하며 다시 담배 연기를 내뿜는 아저씨. 곧 다른 곳으로 걷기 시작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답답함이 느껴졌다. 난 절대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실패한 인생을 살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하고서 청소를 이어나간다.
***
새벽 청소가 끝난 뒤 작업소로 돌아오니 먼저 작업을 마친 창수 형님이 나를 반겨줬다.
“고생했다.”
웃는 얼굴로 믹스 커피를 내미는 형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서 커피를 마신다. 식도를 타고 전해지는 따스하고 달달한 맛이 좋다.
“오늘도 봤어요. 그 아저씨.”
“그래?”
창수 형님은 내 장소를 담당하고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옮으로서 다른 곳으로 장소를 배정 받아서 청소를 하곤 있지만 인수인계를 받을 때 그 아저씨와는 되도록 엮이지 말라는 말을 하곤 했었다. 그게 처음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내 일이 되고 눈앞에 닥치니 피부로 와닿기 시작했다.
“여전히 꽁초 버리디?”
“예에. 정말 왜 그렇게 사는지 모르겠어요. 사지도 멀쩡해 보이던데 일이라도 좀 하지..”
“남 일에 너무 간섭하지마. 너만 피곤해진다.”
그렇게 말하며 연한 웃음을 짓는 창수 형님.
“참. 형수님은 괜찮아요?”
내 말에 창수 형님은 조금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창수 형님과 형수님은 꽤 늦은 나이에 아이를 얻었다. 그 덕에 난산을 해야 했는데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그게 꽤 최근 전의 일이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안 그래도 언제 같이 오래. 밥이라도 먹자고.”
“정말요? 저야 좋죠.”
“응. 연락할게. 그럼 난 눈 좀 붙일게. 이따 보자고.”
창수 형님은 휴게실로 걸어갔다. 미화의 일은 새벽에 시작해서 끝이 나는게 아니다. 하루에 총 3~4번 청소를 해야하는데 그게 시간의 텀을 두고 청소를 한다. 물론 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열기 때문에 퇴근도 그만큼 빨리 하지만 이게 생각보다 고역이긴하다.
남은 시간동안엔 막내들이 해야할 일들이 있다. 작업소에 구비된 도구들을 손보거나 필요한 비품들을 챙기는 일이 그것이다. 다음 막내가 들어오게 된다면 조금은 도와주면서 쉬어야겠다는 작은 다짐을하고서 창고로 발길을 돌린다.
***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아저씨를 만났다. 대체 저 담배 살돈은 어디에서 나는건지 원.. 아마 이 지역에 버려지는 대다수의 꽁초들은 저 작자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든다.
“저렇게 사는게 정말 좋은건가..”
그렇게 새벽 바람을 맞으며 미화를 하고 있을 때였다.
쿠당탕. 바닥을 강하게 내리치는 소음에 화들짝 놀라 서둘러 달려가보니 아저씨가 바닥에 쓰러져 발작하고 있는게 보였다.
“뭐, 뭐야.”
커억. 컥! 커.. 말을 잇지 못하는 아저씨는 사지를 강하게 떨고 있었다. 곧 입에서 흰색의 거품들을 물기 시작하는 그는 한 눈에 보아도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서둘러 아저씨에게 다가가 안위를 묻고 싶었지만 그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썩은내는 그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래도 최소한의 시민으로서 도리를 해야 했다. 서둘러 스마트폰을 꺼내 119에 신고를 하기로 했다. 전화를 받은 구급대원은 환자의 상태를 잘 지켜봐달라는 말과 함께 금방 도착하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저, 아저씨? 아저씨 괜찮아요?”
내 말에도 아저씨의 발작은 쉽게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가 정말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드는 순간.
“후우...”
무거운 숨을 내쉰 아저씨는 곧 비틀거리기 시작하며 몸을 가누었다. 방금전만해도 심한 발작을 일으켰던 사람이라고 전혀 생각지 못할정도로 멀쩡했다.
“..어?”
내 말에 아저씨는 나를 보았다. 그리고 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어제만 해도 희석이 가득한 것만 같은 두 눈은 몰라보게 맑아져 있었다. 거기다 특유의 악취 역시 말끔하게 사라진 상태였다. 이건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는 일이다. 도대체 어떻게?
“나에 대해 신경쓰지 말고 일이나 하세요.”
그렇게 말하며 걸어가는 아저씨의 걸음걸이도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내 눈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아저씨가 멀어지는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곤 얼른 전화를 들어 119 구조대의 출동을 중지시켜야만 했다.
***
작업소로 돌아와 창수 형님에게 보았던 것을 설명하니 형님의 표정이 썩 좋진 않았다. 형님은 뭐라도 숨기고 싶은듯 내게 뚜렷한 답을 해주진 않았다. ‘나 쉬러갈게.’ 라고 말하며 자리를 피해버린 형님에게서 난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신기하고도 미스테리한 일이다. 반병신 같은 사람이 한 번의 발작으로 인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는다는 것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다. 아님 내가 뭐라도 홀려 있는건가?
내일 다시 그 자리에 돌아간다면 아저씨와 얘기를 나눠봐야겠다. 아무래도 내가 알지 못하는 뭔가를 아저씨는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휴게실로 들어간 창수 형님 역시 내게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하다.
다음 날에도 그 아저씨를 볼 수 있었다. 그는 하루 만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예전의 그 불쾌했던 모습 그대로 말이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제 보았던 그 광경은 무엇이며 삽시간에 변한 아저씨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다시 한번 창수 형님에게 여러 가지로 캐물어봤지만 자리를 회피할 뿐 시원한 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럼 내게 남은 것은 아저씨에게 직접 듣는것 뿐인데.. 아주 짧은 만남으로 보건대 아저씨는 절대 내게 마음을 열 것 같지 않았다.
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바로 방송사에 제보하는 것. [매일 탈바꿈 하는 남자.] 로 제보한다면 이슈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게 컨택이 되던지 안되던지간에 다른 누군가가 이 광경을 본다면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리라.
어김없이 반복되는 패턴 속. 난 몰래 아저씨를 따라가본다. 스윽. 슥. 바닥을 청소하기라도 하는 듯한 그의 왼쪽 바짓단이 전부 닳아 있다. 무리도 아니지 매번 저런 식으로 걸으니..
미행은 어렵지 않았다. 매번 마주치기도 했고 그의 두 눈은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쉽게 식별하지 못했다. 설사 한다고 쳐도 난 한낱 미화원이기 때문에 그의 의심을 사진 않았다. 언제쯤 그 발작이 시작되려나.. 초조한 마음으로 아저씨의 뒤를 따르는 것도 잠시.
“그만하지 그래.”
돌연 걸음을 멈춘 아저씨가 나를 보고 있다. 백색의 투명한 막 같은 것이 덮여 있는 눈동자는 나를 향해 있지만 거기에 담겨 있는 혼은 빠져나간 상태 같았다.
“....”
“자네가 아무리 그래도 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전 그런게 아닙니다.”
내 말에 아저씨는 고개를 몇 번 흔들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 아버지가 아프구만.”
“..예?”
“다리를 심하게 절어.”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아저씨의 말에 난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우연히 때려 맞췄다고 하기엔 너무나 정확했기 때문이다.
“데려와. 그리고 날 귀찮게 하지마.”
그 말을 남기고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아저씨. 난 그 자리에 남아 그가 한 말을 다시 곱씹었다. 데려오다니? 누굴? 설마 아버지를?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건가?
쿠당탕. 익숙한 소음 소리. 재빨리 소리가 난 곳으로 뛰어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곧 발작이 한참 진행중인 아저씨를 화면 내에 담기 시작한다. 이건 내 소중한 제보 자료가 될 것이다.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된다.
“커억.. 컥. 컥!”
몇 분간의 격통 속에서 아저씨는 사지를 격하게 비틀어댔다. 이번에는 조금 심한 발작이다. 설마 이대로 죽는건 아닐까 하고 착각이 일 정도로.. 컥. 커억! 그렇게 몇 분의 발작이 더 이어지고 나서야 아저씨는 다시 일어나고는 흘깃 나를 보고서는 다른 곳으로 걸어가버렸다.
점차 멀어져가는 아저씨를 보며 입수한 동영상을 확인하기 위해 어플을 실행시켰다.
“뭐야..”
하지만 그 안에 담긴건 초라해 보이는 바닥만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카메라에는 아무것도 담아내지 못했었다. 아니, 아저씨를 어딘가에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
어제의 일이 확신이 생겼다. 아저씨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가 말한 것에 조금은 신빙성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 휴가를 낸 후 아버지를 당장 모시러 갔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본 나를 반가워했지만 내심 섭섭해하셨다. 더군다나 나가야 하는 시각이 이른 새벽이라니. 아버지는 여러모로 불평을 토해냈다.
“이런 날 움직이려면 다리가 저려서 못 나가.”
“아버지 조금만 가면 돼. 좀만 가자. 응?”
겨우 아버지를 달래며 문제의 장소로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곤 아저씨를 찾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아버지와 같이 움직일 수 없기에 적당한 벤치에 앉아 있으라고 한 뒤, 아저씨가 있을 법한 곳을 모조리 돌아다녔다.
“어? 인한아. 왜 왔어?”
그렇게 얼마 가지 않아 상훈 형님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휴가를 간 나 대신 대타로 지역을 맡은 것 같았다.
“형님 혹시 그 근방에서 이상한 아저씨 못 봤어요?”
적당한 인사치레와 함께 상훈 형님에게 묻자 형님은 ‘어.’ 라고 답하며 손가락으로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저리로 쭉 가더라. 야. 말도마라 사람 몸에서 어쩜 그렇게 냄새가 날 수 있는건지 원..”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작업을 시작하는 형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서 아저씨가 있는 곳으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곧 얼마 가지 않아 여전히 바닥을 질질 끌고 다니며 담배를 피고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허억.. 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폐와 심장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였다.
“됐어.”
그렇게 말한 아저씨는 미련 없이 다른 곳으로 걸어가버렸다. 그 짧은 말에 묘한 확신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 다시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가보니 놀랍게도 멀쩡하게 서있는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아버지! 이제 괜찮아?”
내 말에 아버지는 얼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하셨다.
“어? 오늘은 다리가 괜찮다. 이거 왜 이러지? 내가 몇 년만에 이렇게 걸어보는건지 모르겠다. 인한아 종종 이렇게 새벽 산책도 하고 그래야겠다.”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는 아버지를 보며 나까지 흐뭇해졌다. 그 아저씨는 아무래도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
다음날. 아저씨에게 조그만한 성의를 표하기 위해 조금 일찍 거리로 나왔다. 아저씨가 좋아하는 담배를 몇 보루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음~ 음음~”
찬란한 일출이 두 눈을 따갑게 만들며 온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준다. 오늘따라 이 느낌이 너무 좋아 미소가 절로 번진다.
스윽. 슥. 스으윽.
곧 익숙한 소음 소리가 들려왔다. 서둘러 작업을 마친 뒤 아저씨가 나타날 법한 장소로 가보니 멍한 얼굴로 여기저기 배회하고 있는 아저씨를 볼 수 있었다.
“선생님. 여기 별거 아니지만 태우세요.”
그에게 나는 악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내밀었다.
“....”
말 없이 담배를 받아든 그는 나를 힐끔 보고는 들릴듯 말듯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가만.. 이제 보니 아저씨의 안색이 많이 밝아져 있다. 눈동자 색 역시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는 듯 해보였다.
“오늘은 보기가 좋으시네요.”
그렇게 맘에도 없는 빈말을 하며 돌아서려는데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고맙지.”
그렇게 말하는 연유를 알 수 없었지만 난 그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서 미화를 시작했다. 적당히 미화를 마친 뒤 작업소로 돌아가니 창수 형님이 나를 반겨주었다. 따스한 믹스 커피를 나눠마시며 아버지와 아저씨에 대해 지나가듯이 말하니 창수 형님은 심각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너.. 그 아저씨한테 다시는 접근하지 마라.”
“예?”
“세상에 공짜는 없어. 인한아. 형 말 듣고 다시는 가지마. 아니다. 아예 작업 장소를 바꿔라.”
“그게 무슨 말이세요?”
내 말에 창수 형님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나도 설명할 수 없어. 하지만 이것만 알아둬. 그 양반과 섞이지 마.”
그렇게 말하는 창수 형님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거기에서 더 반항할 수 없었기에 ‘알겠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그 아저씨는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의 다리가 멀쩡해지는데 일조하지 않았는가. 모르긴 몰라도 그 아저씨에겐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
다음 날. 배정된 장소가 바뀌는 바람에 아저씨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 기존 출근지와는 완전히 반대편인 곳이라 가기에도 뭐하고 막상 가자니 귀찮아서 여러면으로 미루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될 무렵.
그 날도 작업소에서 비품을 정리하고 있을 때 우연히 듣게 되었다. 여기 미화반장님과 친하게 지내는 형님의 대화를 말이다.
“요새 그 00동에서 미화원이 자꾸 바뀐다면서요?”
“너도 그 소문 들었어?”
“예. 요새 그 얘기 때문에 아무도 그곳에서 미화를 안하려고 하잖아요. 대체 뭔일이래요?”
“이건 너만 알고 있어.. 들리는 소문으로는 말야. 그 노숙자 아저씨한테 잘못 걸리면 생기를 다 빨린대.”
“에이. 무슨! 지금이 어느 시댄데.”
생기? 노숙자 아저씨?
“얌마. 진짜야. 엊그제도 내가 아는 동생도 거기서 몇 주 청소하더니 몸져 누웠다니까? 걱정되서 병문안 가보니까 애가 글쎄 얼굴이 반쪽이 되었어.”
“진짜에요?”
“그렇다니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는데 무슨 소원을 빌었다나 뭐라나.”
소원을 빌었다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난 둘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반장님 그말 사실이에요?”
내 말에 반장은 난처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거짓말을 못하는 반장이 가끔식 보이는 긍정의 표시다. 소원을 비는 사람의 생기가 빠진다.. 문득 집에 계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 날 다리가 멀쩡해져서 아이처럼 기뻐하던 아버지가 말이다.
서둘러 차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조마조마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쯤 아버지는 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일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럼 되돌릴 방법이 있는건가? 다시 그 아저씨에게 다가가 원래대로 되돌려 달라고애원해야 하는건가?
부우웅-
다행히 새벽 무렵이어서 앞길을 막는 차들이 없다. 초조해지는 마음을 애써 달래며 악셀을 더 강하게 밟는다. 제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기를..
어릴적부터 그랬지만 내 감은 잘 틀리지 않는 편이었다. 어머니의 특유의 날카로운 감을 이어받아서 그런건지 몰라도 이게 좋은 쪽으로 작용하면 나름 얻어가는 것도 있지만 나쁜 일을 미리 예견하는 점에선 좋지 않다.
“지 엄마 닮아서 눈치 하난 빠르다니까.”
가끔 장난삼아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곤 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단점은 있다. 알아도 대비할 수가 없는.. 이미 일어나버린 일도 어느정도 예측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그걸 막을 방법이 내게는 없다. 그럴 때마다 무기력한 기분은 언제나 나를 비참하게 만들곤한다.
“아버지..”
두 달만에 찾아본 아버지의 모습은 많이 낯설었다. 이제 막 60 중반에 접어든 아버지의 모습은 80대라고 해도 믿을정도로 심하게 노화가 진행된 상태였다.
“왔냐? 인한아.”
가래가 잔뜩 끓은 목소리와 함께 나를 반기기 위해 일어나는 아버지를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러기 위해 이럴려고 그 아저씨에게 아버지를 데려간게 아니었는데..
“아버지 괜찮아? 이게 대체..”
“나이를 먹으면 다 그런거 아니겠냐.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설상가상으로 멀쩡했던 다리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고, 다른 한쪽 다리 역시 심하게 절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다시 그 아저씨를 찾아가는 것. 그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알고 있다. 아버지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대신 내게 따라오는 리스크가 어떤 것인지를. 그게 제대로 된다는 보장도 없지만 내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키고 싶었다.
“아버지 나 금방 올게.”
힘 없이 손을 흔들어주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다시 문제의 장소로 가기 위해 차를 몰았다.
***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문제의 장소로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간절히 찾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은 쉬이 보이지가 않았다. 점차 초조해진 난 온 거리를 배회했다. 아저씨가 갈만한 곳들을 모조리 뒤지고 다녔다. 하지만 그를 찾을 수는 없었다.
“하아..”
해가 지고 땅거미가 지자 다리가 풀려버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괴감과 허탈감이 나를 구속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시 무거운 한숨을 쉬며 스마트폰 액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지금 이 순간 유일하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 창수 형님이 생각났다. 지금 형님에게 전화를 건다고 한들 제대로 답해줄지 의문이었지만 내게 남은 동아줄은 이거 하나다.
오래 망설이지 않고 창수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더니 창수 형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한아. 무슨 일이냐.]
[..형님 실은요.]
난 그간의 일들을 모조리 창수 형님에게 털어 놓았다. 형님은 내 말에 무거운 한숨을 쉬고는 몇 분간 답이 없었다. 나를 무시하려는건지 더 이상 대꾸도 하기 싫은건지 알 수 없었지만 가끔씩 들리는 형님의 무거운 숨소리는 뭔가 말하기를 주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갈게. 기다려라.]
그 말과 함께 통화는 끝났다. 어디에 있다고 말하지 않아도 형님은 내 위치를 알고 있는 듯 했다. 곧 10분 정도가 지나자 형님이 나타났다. 두 달만에 본 형님의 모습은 조금 낯설었다. 30대 후반이지만 액면가로서의 그의 모습은 40대로 봐도 무방할정도였다.
느릿하게 걸어오는 형님을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형님도 설마?”
내 말에 창수 형님은 씁쓸히 웃으며 벤치에 앉았다. 조심히 형님 옆에 앉아 몇 번 입술을 달싹 거리던 창수 형님이 말했다.
“우리 마누라. 임신을 하지 못해. 아니, 못했었지.”
“....”
“그 때문에 시댁에 눈치보이고.. 여러 가지로 맘 고생이 심해서 말야. 우울증도 앓았었다. 그런 마누라를 난 도저히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양반에게 소원을 빈거지.”
“그 아저씨의 정체는 대체 뭐에요?”
내 말에 창수 형님은 고개를 힘 없이 저었다.
“나도 몰라. 미화원을 처음 일할 때 그 양반을 봤었지. 당시 나도 너처럼 호기심에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그리곤 그 양반과 섞이지 말라는 단단한 주의를 받았지.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그 양반이 다가와서는 글쎄..”
“네.”
“고민이 있냐고 묻더군. 그래서 그렇다고 했지. 아내가 임신을 못하고 있다. 지금 심신이 많이 지쳐있어서 나도 힘들다. 뭐 이런 식으로 말야. 그러더니 그 양반이 몇 번 눈을 껌뻑이더니 ‘됐다.’ 라고 하고는 가버리더라고.”
“그게 끝이에요?”
창수 형님은 허탈한 표정으로 긍정을 표했다.
“정말 간단하지? 그런데 놀라운건 아내가 바로 임신을 했다는거야. 물론 그 댓가로 내 모습은 이렇게 되었지만 내 경우는 좀 특이했어. 노화가 조금 느리게 진행되더라고. 아무래도 이건 개인차가 있는 것 같다.”
“그 아저씨.. 대체 언제부터 여기에 있던 거에요?”
“나도 몰라. 내 선배들도 모른다고 했어. 다만 확실한건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지. 아주 오래전부터 봤지만 그의 얼굴은 항상 같았어. 나도 그 양반에 대해선 아는게 없어. 이런 일이 생길까봐 너한테 그렇게 말했던건데.. 아무튼 일이 이렇게 되어서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 말을 끝으로 창수 형님은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다음에 보자.’ 라는 말만 남기고서 떠나버렸다. 휘이잉- 저녁의 찬 바람이 온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선택을 해야 맞는걸까.
***
다음 새벽까지 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것이 너무나 한정적이기도 했고 단 한 마디의 말로 아버지를 원래대로 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마음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삐리릭. 삐릭. 정해진 시간에 울리는 알람을 끄고서 옷을 갈아 입는다. 도저히 머리가 정리되지 않는다. 그 아저씨를 만나면 난 뭐라고 해야 할까. 모든 것을 되돌려도 결국엔 악 순환의 반복이다. 애초에 아저씨의 존재가 없었더라면 이렇게까지 피해가 확대되진 않았을텐데..
“그래. 차라리 그 싹을 없애버리자.”
마지막 내 소원을 빌고서 아저씨를 제거하면 되는 일이다. 항상 비슷한 시각에 발작을 하고 있을 때를 노리는거다. 그래. 그러면 될거다.
서둘러 밖으로 나가 지정 장소로 차를 몰았다. 항상 미화를 하는 루트로 조금 걷자 익숙한 소음 소리가 귀로 들려왔다. 슥. 스윽. 슥. 아저씨가 분명하다. 서둘러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이동하니 문제의 아저씨가 느릿하게 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음의 동요가 일었다. 과연 이 일이 맞는 것일까. 혹여 내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지는 않을까.
“되돌리고 싶다고?”
얼마가지 않아 아저씨가 그렇게 말했다. 과연 그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예.”
내 말에 아저씨는 말 없이 어느 한 곳을 응시했다. 그러기를 몇 초.
“됐네.”
그리고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아저씨. 조금은 허무해진 마음과 함께 품 속에 잘 숨겨두었던 부엌칼을 꺼내 들었다. 차라리 여기서 끝내버리는게 맞을지도 모른다. 내 공격에 그가 죽을지 심한 내상을 입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이게 전부다.
컥. 커억!
이번엔 발작이 조금 빠르다. 아저씨에겐 고통의 시간이지만 내게는 모든 것을 끝낼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서둘러 그에게 다가가려 발을 떼는 순간.
“나라면 그렇게 안할거야.”
아주 익숙한 목소리. 바로 어제 심각하게 고민을 털어 놓았던 창수 형님이 돌연 모습을 드러냈다. 형님의 뒤로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한 눈에 보아도 아저씨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건 좋지 않은 징조다.
“여기서 끝내야해요. 이 이상 악순환은 막아야 한단 말입니다!”
내 말에도 사람들은 듣는척 마는척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 중 선두에 선 창수 형님이 한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너도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알거야. 저 양반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 말이야. 인한아. 세상을 살아가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어. 불가능한 일이 내게는 절실해질 수가 있다고. 그걸 이루어주는게 바로 저 양반이야. 너도 그걸 알고 있다면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않는게 좋을거야.”
“형님.. 저도 알아요. 하지만 이러면 더 많은 희생자들이 생겨날거라고요! 인간은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건 욕심이라구요. 제발 제 말을 들으세요. 여러분들! 아무리 저 아저씨가 모든 일을 이루어준다고 해도 그건 공짜가 아니란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욕심? 방금 전만해도 이 양반에게 소원을 빈 네가 할말은 아닐텐데?“
사람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방금 아저씨에게 소원을 빌었다는 것을..
“이쯤에서 그만해라.”
잘 훈련된 군인들처럼 오와 열을 맞추며 내게 다가오는 그들의 모습은 하나의 꼭두각시 군단이었다.
커..억. 컥!
아저씨의 발작이 거의 멈춰가고 있다. 점차 내게로 다가오고 있는 사람들에게 저항할 힘이 없는 난 공격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올 기회를 잡기 위해 좀 더 면밀한 계획을 세워야만 할 것 같았다.
“좋아요. 알았어요. 내가 물러날게요.”
내 말에 창수 형님은 딱딱하게 말했다.
“그럼 그대로 가라.”
그 말과 함께 사람들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이건 마치 잘 길들여진 애완동물들 같았다. 모두가 아저씨에게 속해 있는건가. 아니면..
“..잠깐.”
이어 들려오는 아저씨의 목소리. 순간 사람들이 길을 열었다. 어느새 멀쩡해진 모습으로 변한 아저씨는 곧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렇게는 되지 않을거다. 청년.”
“!?”
“난 아직 여기가 즐겁거든.”
씨익. 아저씨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보이는 날카로운 송곳니는 사람이 가질 만한 것이 아니었다. ‘쳐라.’ 그렇게 말한 아저씨는 사람들 사이로 모습을 감췄고 곧 기세를 바꾼 사람들이 내게 달려오는데에는 정말 순간이었다.
“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