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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세차장

익명
2026-09-12 09:34

타향살이를 시작한지 5년째. 매번 얻어타는 카풀에 눈치가 보여 새차를 뽑기로 했다. 표현은 안했지만 5년이란 세월동안 나와 함께 출퇴근을 같이 해준 김대리가 꽤나 불편했을거다. 회사까지 30~40분정도 거리를 차로 이동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난다면 보험이 들어저 있지 않은 내 몫까지 책임져야한다는 심리적 압박감과 퇴근 시간이 조금만 달라져도 상대방을 기다려줘야 한다는 다른 압박감이 김대리를 많이 힘들게 했을거라 생각한다. 

물론 나도 염치라는게 있는지라 매달 김대리에게 기름값과 담배값 정도는 주곤 있다. 그래도 그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눈치고 보이고 불편해지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본인은 괜찮다고 말하지만 기류로 알 수 있다. 

남들이나 가족에게 말하면 오히려 나를 욕한다. 5년이란 세월동안 도대체 차를 사지 않고 뭐했느냐고 말이다. 이런면에선 나도 참 둔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리고 그들은 또 입을 모아 말한다. 그동안 성실하게 봉사해준 김대리를 칭찬하는 것이 그것이다. 

“오 사원. 이번에 차 뽑는다며? 같이 가줄까?”

그래도 그간 미운정 고운정이 들대로 든지라 김대리와 난 회사에서 제일 각별한 사이다. 

“대리님도 같이 봐주시면 좋죠. 보고나서 점심이나 드시죠.”

대리점까지 거리는 대략 30분남짓. 이동은 물론 김대리의 차다. 이번에 새차를 뽑게 되면 김대리에게 태워주겠다는 약속 아닌 약속을 하며 대리점으로 향했다. 

신차들은 많았다. 그중에서도 내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차와 연비가 어느 정도 나와주는 차량을 골랐다. 차는 3일 이내로 나온다고 한다. 기분 좋게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서 김대리와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차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운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험은 어떤걸 들어야 하는지 세금을 얼마나 나오는지 등등. 

차를 갖기 전엔 몰랐지만 막상 내 것이 되고 난 후의 일을 생각하니 꽤 머리가 복잡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부담이 가는건 하나하나에 돈이 들어간다는 점이었다. 

꽤 많은 금액이 들어간다는 것을 새삼느끼게 되니 그간 김대리에게 주었었던 돈이 작은 편이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한 번 김대리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

차를 받는 날이다. 이상하게 떨리고 떨려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에 원하던 선물이 내 방안에 놓여 있을 때보다 더 두근거렸다. 나름 어른이라고 자부했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부득이 하게 차가 평일에 오는 바람에 연차를 써야만 했다. 부장님에게 새차가 와서 인수 좀 하고 싶다고 말하니 흔쾌히 승낙을 해줬다. 

“여기 키 있습니다. 기본적인 버튼 설명은 다 해드린 것 같습니다. 그럼 즐거운 운전하십시오.”

정중히 인사를 하며 사라지는 딜러와 내 손에 들려진 차키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드디어 나도 오너가 된건가. 하고 차에 올라타려는 순간. 

부웅- 익숙한 차가 눈 앞에 보였다. 김대리 차였다. 

“어? 김대리님.”

김대리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차에서 내리고는 트렁크를 열고는 꽤 부피가 있는 상자를 내게 내밀었다. 

“세차 용품이야. 원래 처음 차 사면 이런거는 다 혼자서 하더라. 부장님이랑 같이 가서 산거야.”

그들의 배려에 무한한 감사를 느끼며 연신 감사 인사를 표현했다. 곧 김대리에게 시승 시켜주겠다고 말하며 차를 끌고 운행을 시작했다. 김대는 연신 차가 좋다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게 빈말인지 참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1시간정도 운행을 한 후 느닷없이 세차장에 가서 세차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김대리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시간날 때 배워두는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집 근처에 있는 셀프 세차장으로 이동했다. 

“자, 여기에 동전을 넣고 최대한 빨리 해야 해. 그리고 거품을 낼 때는 내가 사준 용품 저거로 하고. 세차장에 있는 솔로 아무렇게나 닦지 마. 기스 많이 생긴다.”

친절히 알려주는 김대리의 말을 경청하며 세차의 단계를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을 때였다. 차 거품을 전부 두른 상태에서 세척기를 작동하는 순간.

취이익- 소리와 함께 빨간 액체가 차를 그대로 뒤덮는 것은 정말 찰나였다. 진한 물감으로 칠해 놓은 듯 온통 붉은 색으로 뒤덮여 버린 차를 보니 어안이 벙벙해져 어떤말도 할 수 없었다. 

“왜 그래?”

이상한 듯 내게 되묻는 김대리를 보며 난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아니, 그보다 이 차의 상태가 보이지 않는건가? 다시 눈을 깜빡이며 차를 보니.

“어..?”

이럴수가. 모든 거품이 말끔히 사라진 차가 눈에 들어왔다. 그럼 아까 본 것은 뭐였지? 너무 피곤한 탓인가? 

“아, 아니에요.”

헛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여기며 다시 한 번 고압 세척기를 작동하는 순간.

취이이익- 이번에도 역시 붉은 색의 액체가 차를 뒤덮기 시작했다. 이건 헛것이 아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보일 정도면 분명 뭔가 이상이 있다는거다. 

“....”

하지만 김대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세척을 마치고 내게 세척기를 건넸다. 

“해 봐. 생각보다 쉬우니까.”

“김대리님..”

조심스레 세척기를 받아들고 차에 물을 분사하려는 순간.

“허억..”

선루프 위에 앉아 있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1미터 남짓하는 작은 체구지만 몸 여기저기가 떨어져나가기 직전처럼 덜렁거리고 있는 상태였다. 

뚜욱. 뚝. 찢어질대로 찢어진 사지에선 붉은 색의 진한 핏물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세척기에서 나온 붉은 색 액체의 장본인이 바로 저 ‘무언가’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대리님.. 김대리님.”

사람이 너무 놀라면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병신처럼 난 김대리만 애타게 부를 뿐이었다. 허나 김대리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그대로 서서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찰박. 

그런 내 두려움을 알고 있는지 ‘무언가’ 는 그대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가벼운 걸음이지만 사지가 덜렁거리고 있어 좌우로 뒤뚱거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는지 연신 뒤뚱거리며 진한 액체를 흘리고 있었다. 

정신이라도 잃었으면.. 눈이라도 감겼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찰박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무언가’는 이내 내 사지를 천천히 올라타기 시작했다.

“..으아.. 으아아아.”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이었다.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차갑고도 끈적이는 더러운 기분. 그리고 난 어두운 ‘무언가’와 눈이 마주쳤다. 

“!!”

해골 모양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듯한.. 살점이 여기저기 붙다가 떨어지고 있는 괴상한 얼굴이었다. 두 눈동자는 파여져 없어져 있었는데 정말 무서운 것은 그 ‘무언가’가 나를 보며 웃고 있다는 것이었다. 

“허억!”

순간 눈을 감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온 몸이 가벼워지는게 느껴질 때쯤 눈을 떠보니 아까의 세차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게.. 이게..”

김대리는 여전히 스마트폰 삼매경이었다. 다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차를 바라보니 처음과 같은 모습의 차가 눈에 보일 뿐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게 가능한건가? 짧은 찰나 이루어진 지독한 광경에 절로 구토가 몰려왔다.

“우웩.. 우욱!”

힘 없이 바닥에 흰색의 액체들을 토해내고 나니 김대리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너 괜찮아? 갑자기 왜 그래?”

난 김대리에게 모조리 털어 놓았다. 차 위에 어린 아이 같은 귀신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김대리는 쉽사리 믿지 않았다. 

“너 미쳤냐?”

그걸로 날 미친 사람으로 취급한 김대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 등을 두드려줬다. 

“네가 기가 많이 약해진거 같다. 가서 보약이나 지어 먹어.”

“..그런가요.”

그러기엔 너무나 생생했다. 단순한 환상이 아닌 것 같았다. 분명 저 작은 귀신은 내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는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일단은 여기서 김대리와 헤어지기로 했다.

이젠 내가 김대리를 위해 카풀을 할 차례가 되었다. 그간 적당히 운전 연습을 해뒀기에 주행에는 딱히 어려운 문제는 없었다. 매일 같은 시각 출근길에 오르지만 오늘은 반대의 입장이다. 묘했다. 이제 내가 김대리의 안전을 책임져야하는구나. 

김대리와 내 집은 10분거리다. 흘러나오는 라디오 방송을 무심히 흘겨 들으며 카풀장소로 거의 도착하니 김대리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허나 그건 평소에 봤었던 김대리의 모습이 아니었다. 

분명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지만 그의 어깨 위에 앉아 웃고 있는 귀신은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대로 김대리를 태우기엔 무리다. 아마도 내 차에 있던 귀신이 김대리에게 옮겨간게 아닌가 싶었다. 다시 내 차로 옮겨지지 않으려면 김대리를 지나쳐야하는게 최선일수도 있었다. 

“어이. 오대리~”

나를 부르는 김대리를 보며 내적 갈등이 생겼다. 그리곤 오른쪽 발에 힘을 주어 악셀을 밟았다. 도저히 나를 보며 웃고 있는 귀신을 태울 자신이 없었다. 

***

회사에 도착하니 마음이 천근 같았다. 김대리에게서 전화가 수십 통 걸려왔지만 받지 못했다. 지금 상황에서 김대리와 조그만한 연관이라도 생기면 그대로 귀신이 내게로 올 것 같은 더러운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 너 혼자왔어? 김대리는 어쩌고?”

사무실에서 초조히 앉아 있자 조금 나중에 출근한 부장이 내게 물었다. 난 적당히 둘러낸 후 회사 정문에서 김대리를 기다리기로 했다.

“....”

초조했다. 이렇게 사람 하나를 기다리는 일이 오늘처럼 초조했던 적이 있었을까. 10분. 20분정도가 지난 후 김대리의 차가 눈에 보였는데 역시나 선루프 쪽에 예의 귀신이 서있는게 보였다. 거센 바람의 저항을 받지 않는 모양인지 어제의 봤던 끔찍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아아..”

사지가 저려왔다. 오금이 후달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그대로 서있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 있으면 저 귀신이 내게로 곧장 달려들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빳빳히 굳어져가는 몸을 간신히 움직여 정문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우우웅- 거센 엔진 소리와 함께 김대리의 차가 내 쪽으로 오는 것은 정말 찰나였다. 

“으아악!”

시야 가득히 메워지는 김대리의 자동차. 아무리 빨리 움직인다 해도 그걸 온전히 피해낼 재간은 내게 도저히 없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몸을 날려야만 했다. 

우웅- 간신히 왼쪽으로 몸을 틀어 몸을 날리는 순간.

빠아아앙-

거대한 크락션 소리가 달팽이관을 거세게 흔들어댔다. 질끈 감았던 눈을 뜨니 김대리 차의 앞바퀴가 내 옆구리에 아슬하게 멈춰있는게 보였다. 

“야! 너 미쳤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내린 김대리가 소리쳤다. 그러면서 나를 일으켜주는 그의 자상함에 난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환상이었나. 모든게 저 귀신이었나. 

“김대리님.. 어떡해요. 김대리님.”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것 같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 앉아 김대리의 다리를 붙잡자 김대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나를 부축해줬다.

“오사원.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그.. 전에 봤던 귀신이요. 자꾸 저를 따라다녀요. 미치겠어요. 아까도 뭐에 홀렸는지 제 몸이 멋대로..”

내 말에 김대리는 딱딱한 표정으로 나를 정문에 세우고서는 차를 몰았다. 곧 빠르게 주차한 김대리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일단 오늘은 들어가. 부장님한텐 내가 말해 놓을게. 가서 쉬고 병원 가봐. 그거 스트레스성일수도 있다.”

그렇게 말하는 김대리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였기도 했지만 그의 옆구리에서 인형처럼 붙어 있는 귀신을 보니 어떠한 말도 꺼낼수가 없었다. 

대체 저 귀신은 뭘까. 뭐길래 저렇게 껌딱지처럼 김대리 옆에 붙어 있는거지? 

“들어가라.”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리는 김대리. 그와 동시에 사라진 귀신. 정말 내가 미친건가. 무거운 숨이 절로 내쉬어지는 찰나. 팔쪽에 느껴지는 더럽고 찝찝한 기운이 느껴졌다. 직감적으로 난 그게 귀신이란걸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강하게 팔을 뿌리치는 일이었다. 있는 힘껏 팔을 휘두르며 두려움에 젖은 소리를 지르자 귓가로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넌 내가 보이지?]

우뚝. 그 소리에 내 몸은 돌처럼 굳어버렸다. 샤삭. 팔을 타고 올라오는 촉감이 느껴졌다. 곧 그 촉감은 어깨를 타고 귀에 뜨거운 바람을 넣었다. 

[날 도와줄 때까지 널 평생 괴롭힐거야.]

이건 협조가 아니다. 여기서 귀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평생 이렇게 살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뭐야.. 용건이 뭐..”

[간단해.]

“말해.”

[저 김대리. 저 새끼를 죽이면 돼.]

그렇게 말하며 킬킬대는 귀신. 난 차마 귀신의 눈도 마주치지 못한채 그대로 정문에 서서 서있어야만 했다.

그렇게 말하며 홀연히 사라지는 귀신. 이대로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외할머니를 찾아가기로 했다. 외할머니는 과거 신이 내려 무당일을 오래하셨는데 이젠 연로해지고 신기도 빠져나간 후라 평범한 시골에서 소일거리로 살아가고 계시다. 혹시 이런 고민을 말한다면 해결책을 제시해주진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안고서 차를 몰았다.

시골길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아무래도 비포장 도로를 연신 달려야 하는 환경이다 보니 급히 몸이 피로해졌다. 그렇게 무료하던 길을 1~2시간 운행하니 익숙한 공간이 보였다. 00마을. 30가구가 살까말까한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다시 악셀을 밟아 예전 기억을 의존하며 외할머니 댁에 다다르니 정자 마루에 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외할머니를 볼 수 있었다. 사실 외할머니와 유대는 그리 깊지 않다. 아주 어릴적 엄마를 따라 외할머니를 만난적이 있었는데 나를 자세히 훑어보던 그 눈빛이 너무나 무서워서 그뒤로 가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분명 사람의 눈이지만 사람의 것이 아닌 느낌. 그 눈이 내 몸과 마음을 모조리 헤집어 놓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것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지긴 했는지 오랜만에 본 외할머니의 모습은 정말 외소한 체구를 가진 노인으로 변해 있었다.

“..할머니.”

적당한 공간에 주차를 하고서 떨리는 마음으로 할머니를 부르자 허공을 응시하던 할머니의 고개가 내쪽으로 잠시 향하더니 입을 다물었다. 곧 허공을 응시하기 시작하는 외할머니를 난 어떤 식으로 대해야할지 막막해졌다.

사실 이렇다할 관계도 아닐뿐더러 남만큼이나 멀어진 관계인지라 솔직히 내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뭐 달고 왔구만.”

그게 할머니의 첫마디였다. 그걸로 내 마음이 모두 열려지는 듯 했다.

“할머니..”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먹먹한 마음을 달래며 그 단어를 간신히 내뱉을 뿐이었다. 할머니는 별다른 말 없이 내게 손짓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할머니는 내 몸 이곳저곳을 만져보시고는.

“으음.. 옮겨 붙었구먼.. 어떤 사람한테 옮겨 붙은게 확실혀..”

“네? 어떤 사람이라면..”

“그건 나도 몰러. 근디.. 너랑 가까이 지내는 사람 중 하나여.”

“그럼 어떡해요? 저 귀신이 저한테 그랬어요..”

내 말에 할머니의 눈썹이 심하게 꿈틀거렸다. 그리곤 허망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말하면 안될것인디.. 혹.. 너 눈도 마주쳤어?”

“..예.”

“큰일이구만.. 큰일이여. 눈을 마주 친다는 것은 영적으로 통한다는 말이 된단 말여. 그럼 꼼짝없이 귀신이 하라는대로 해야 혀. 안그람 어떤 해코지를 할질 몰러.”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으로선 할머니에게 의지하는 게 최선이다.

“보아하니.. 원혼이구먼 그래. 아마 그 인간과 밀접한 관계에 있을거여. 필시 억울하게 죽었어. 그 원을 달래주지 않는 한 힘들거여.”

“그럼 전 어쩌죠? 그 귀신이 김대리를..”

아. 그제야 생각났다. 왜 귀신이 그토록 김대리와 밀접하게 붙어 있었는지를. 왜 김대리를 죽이라고 내게 시킨건지.

“아마.. 김대리가 그 귀신을 죽인게 아닐까요?”

“그럴 수 있지. 어찌 하다가 보게 된건가?”

할머니의 물음에 난 그동안의 일들을 모조리 털어 놓았다. 그러자 할머니는 곧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나도 예전같지 않아서 잘 몰러. 하지만 이건 확실해. 그 양반이 뺑소니를 한게 분명혀.”

“그럼.. 사람을 죽였다는거에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그건 땅을 파봐야 알어.”

“하지만 전 그 장소를 모르는데.”

내 말에 할머니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말했다.

“같이 가. 내 알려줄게.”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이동하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갈등해야만 했다. 정말 할머니의 말이 맞을까. 원혼을 달래주면 모든게 끝나는걸까.

“안와?”

나를 보며 묻는 할머니. 시간이 지나도 나를 걱정해주는 그 마음은 여전한 것 같았다. 난 길게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예. 가요.”

**

할머니를 태우고서 차를 몰았다. 장소는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저 할머니의 말대로 ‘절루 가.’, ‘열루 가.’ 라고 말할 때 마다 핸들을 돌리는게 전부였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자주 오가는 출퇴근길 근처에 다다르자 할머니는 ‘세워.’ 라고 말했다.

천천히 차를 몰아 갓길에 세우니 할머니는 문을 여시고는 느릿하게 걸음을 떼셨다. 조금 불편해해서 곁에서 걸으며 부축해드리니 할머니가 말했다.

“넌 잘 못없어. 그냥 재수가 안좋은거여.”

“예..”

“그동안 무탈했지?”

그렇게 말하며 웃는 할머니를 보며 나도 모르게 죄악감이 들었다. 말은 안했지만 할머니 역시 정상적인 삶을 벗어나 힘든 삶을 살아왔었을텐데.. 손주라는 놈이 그간 코빼기 하나 비치지 않고 지내다 무슨 일이 생기니 돌연 나타나 도와달라는 꼴이.. 생각하면 할수록 부끄러워졌다.

“죄송해요. 할머니 사실 어릴적에 할머니가 너무 무서워서..”

“안다. 알어. 그 말은 안해도 돼.”

그렇게 말하며 걸음을 뗀다. 평탄했던 도로를 지나 제법 경사가 있는 굽이진 길을 지난다. 그리고 얕은 산등성이에 다다르지 할머니가 잠시 숨을 고르고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을 가리켰다.

“저기. 파.”

울창한 소나무가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유독 진해 보이는 땅이 있었다. 비옥진 토지라고 하면 맞을까. 할머니의 말대로 서둘러 그 땅으로 다가가 손을 넣는 순간.

“뭐하는거야?”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건 분명히 할머니의 목소리였지만 지금까지 들었던 음성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일어나니 거기에는 흰자만이 가득한 백안을 드러내고 있는 할머니가 자리에 서있었다.

“너도 죽여줘?”

씨익. 웃으며 내게 다가오는 귀신. 그 모습에 난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성큼성큼 발을 디디며 내게 다가온 귀신은 곧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커. 컥!”

“넌 내가 시키는대로 하면 돼. 그럼 된다구우! 키키킥. 킥.”

뱀처럼 기다란 혀를 낼름 거리며 웃는 귀신의 얼굴이 순간 돌기 시작했다. 빙글. 빙글 돌때마다 뭔가 부숴지는 소리가 내 귀를 자극해댔다.

“살려.. 살려줘.”

분명 가느다란 팔로 내 목을 조르고 있지만 거기서 나오는 힘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허나 귀신은 애초에 나를 봐줄 생각이 없었는지 더 크게 웃었다. 곧 다리가 뜨는 기분이 들었다. 허우적거리며 벗어나려 했지만 그게 쉽게 되지 않았다. 아니, 불가했다.

숨이 막혀오고 목에는 커다란 고통이 전신을 지배했다. 더 이상 숨을 쉴 수가 없어 눈이 감기려는 찰나.

퍼억. 무언가가 내 몸을 강하게 걷어차는게 느껴졌다. 그 강한 발길질에 내 몸은 그대로 옆으로 구를 수 밖에 없었고, 거짓말처럼 숨통이 트이며 시야가 확보되니 놀랍게도 거기엔 김대리가 격한 숨을 내쉬며 나를 보고 있었다.

“야. 오대리.. 너.”

“김대리님?”

“중요한 얘기가 이거였냐? 너 이건 어떻게 안거야? 어? 어떻게 안거냐고!”

잔뜩 흥분한 김대리가 그렇게 외쳤다. 그 모습을 보며 천천히 일어서서 김대리에게 물었다.

“대리님 정말 저기에 뭐가 있기라도 합니까?”

내 말에 김대리는 ‘뭐?’ 라고 되묻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너 이 개새끼. 이제 날 아주 갖고 노냐? 알어? 난 죽어도 자수 안해. 안한다고!”

그렇게 말하며 땅을 마저 파기 시작하는 김대리. 어? 내가 언제 저 땅을 파고 있었지? 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외할머니가 느릿하게 걸어와 내 손을 잡아줬다.

“저런 놈은 천벌 받게 되있어. 냅둬.”

곧 땅에서 커다란 포대 자루를 꺼낸 김대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와 할머니를 번갈아 봤다.

“네가 무슨 말을 해도 증거가 없으니까 난 잡히지 않을거야. 그러니까 너도 뻘짓하지말고 집에나 가라.”

그렇게 말하며 빠르게 이동하는 김대리를 보며 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

다음 날. 외할머니를 무사히 데려다 드리고 회사에 출근하니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았다. 복잡한 마음에 커피를 마시며 로비에서 쉬고 있으니 부장님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오 사원. 혹시 김대리한테 뭐 연락 받은거 없었어?”

“아, 아뇨.”

“이상한데.. 아니 차는 분명히 회사 주차장에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김대리가 안보인단 말야.”

“김대리님 출근했어요?”

내 말에 부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왠일로 일찍 와있더라. 근데 아무리 찾아봐도 안보이는거야. 이따 미팅해야하는데. 아무튼 보면 얘기해 줘.”

“예.”

부장님에게 인사를 하고 사무실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순간 커다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나와 부장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움직였다. 화장실 쪽. 다시 한 번 소리가 들렸다. 여자화장실인가? 굳게 닫힌 문을 보며 노크를 해야하나하고 망설이는 중에 부장님이 먼저 들어가버렸다.

“어.. 어.”

화장실에 들어서니 세면대에서 놀란 얼굴을 하고서 공포에 젖은 여직원이 우릴 보고 말했다.

“부장님! 여기.. 여기 핏물이.”

“..뭐?”

그 말대로였다. 줄줄줄 흘러나오고 있는 수도꼭지에는 붉은 색의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단순한 붉은 색의 물이라고 하기엔 그 농도가 진득해보였다. 부장님은 한숨을 쉬며 다른 곳에 전화를 했다.

“어. 박부장님 여기 물탱크가 어딨죠? 아 거기요? 알겠습니다.”

위치를 접수한 부장님은 서둘러 이동했다. 왠지 이대로 있으면 안될 것 같아서 부장님의 뒤를 바짝 쫓았다. 물탱크는 공장 지하 쪽에 있었다. 입사이례 공장 지하로 가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묘한 공포감이 몰려왔다.

정화조 기계를 지나 회사의 수도를 담당하고 있는 커다란 물탱크가 보였다. 부장님은 그대로 물탱크 사다리를 향해 올라가셨고 곧 물탱크의 뚜껑을 연 부장님은 비명을 질렀다.

“오 사원! 어서 구급차 불러. 어서!”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내게 말하는 부장님. 그리곤 난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물탱크 안에 뭐가 있는지를. 그리고 난 볼 수 있었다. 물탱크 위에서 나를 보며 킬킬대고 있는 작은 귀신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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