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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손님

익명
2026-09-12 09:38

딸랑. 종소리와 함께 40대 초반의 남자 손님이 들어온다. 덥수룩하게 기른 턱수염과 깊게 눌러쓴 모자. 언제적 옷인지 시대을 분간하기 힘들정도로 해진 옷가지들을 대충 걸치고 있는 남자다. 사장님과 난 이 남자에 대해 내기를 했는데 그건 즉 방금 자리에 앉은 저 남자가 흔히 볼 수 있는 기러기아빠인가 혹은 절실한 독신인가에 대해서다. 

사장님은 전자에 걸었고 난 후자에 걸었다. 내기의 보상은 5만원. 거의 하루의 시급이 걸려있는 중요한 내기지만 남자에 대해 추가적인 정보를 알아낼 방법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매일 이 시각. 밤 11시에서 12시 사이로 출몰하는 남자는 항상 저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게임을 하곤 한다. 우리 피시방은 낮장사가 주류라서 밤에는 손님들이 현저히 줄기 때문에 얼마 되지 않는 손님들과는 안면을 트고 왠만해서는 친하게 지내곤 한다. 

밤에 일하는 건 체력적으로도 힘들기도 하지만 의외로 외롭기도 하다. 물론 사장님이 좋아서 밤에도 얼마든지 게임을하며 시간을 죽일수도 있지만 그것도 한두달이다. 그것마저도 지나면 사람이 그리워진다. 햇빛이 그리워지게 된다. 

“인한아. 형 왔다.”

딸랑.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창수 형이 나를 보며 서있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양손에 커피를 들고 있는 형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형 어서오세요.”

창수 형은 조금 불쌍한 케이스다. 벌써 사수를 넘어 오수를 하고 있는데 슬슬 힘들어 하는 기색이 보인다. 그걸 잘 내색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매일 피시방에 찾아와 게임을 하는 걸 보면 어느정도 한계점에 다다른게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처음엔 스트레스를 풀러 왔다고는 하지만 그게 시간이 길어지고 찾아오는 날도 잦아지고 있다. 아마도 창수 형은 그런 답답한 현실 속에서 도망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 아주 가끔 사장님이 걱정스런 마음에 창수 형에게 뭐라고 조언을 하지만 그럴 때마다 형의 표정이 좋지 않게 변하곤 한다.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이대로 시간을 죽이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난 형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괜히 아픈 곳을 건드려봐야 서로가 좋지 않다. 창수 형도 치유받고 싶을 것이다. 



"자."

"고맙습니다." 

창수 형은 언제나 그랬듯 카운터 석으로 들어와 커피를 나눠주며 홀짝 거리기 시작한다. 카운터 석은 다른 피시방과는 다르게 조금 넓은 공간에 티비에 알바생 전용 피시까지 있는 아주 좋은 곳이다. 원래는 손님이 들어오면 안되는 공간이지만 창수 형은 조금 예외다. 

“저 아저씨 또 왔구만..”

후룩.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넘기며 창수 형이 말했다. 그 소리가 너무나 맛있게 들려서 나도 따라 커피를 마신다. 

“매일 그렇죠 뭐.”

“내가 생각해 봤거든? 저 아저씨 일용직이 분명해.”

“..그래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아저씨들이 대개 저렇거든. 저 봐. 내일에 대한 근심 걱정 없는 저 마우스 손짓을 보란 말야.”

그걸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난 적당히 맞장구 쳐주기로 했다. 그렇게 의미 없는 수다로 30분정도 보내던 창수 형은 본격적으로 스트레스를 풀러 갔다. 

“하암.”

밀려오는 졸음을 참으며 피시방 내부를 가만히 훑어 본다. 30~35평 남짓한 피시방 내부. 작다면 작지만 나름 아담한 크기의 피시방이다. 낮에는 시끌벅적한 아이들로 가득채워지는 피시방은 참 정신 없었는데.. 

“온도가 전혀 다르구만.”

지금은 4~5명의 손님들이 전부인 이 곳에서 내가 하는 일은 간단하다. 카운터를 보는 것과 청소를 하는 것. 요즘은 계산이 무인 정산기로 되기 때문에 크게 신경쓸 일이 없다. 다른 피시방처럼 먹거리를 주로 파는 곳도 아니기 때문에 할 것도 조금 없는 편이었고, 이 시각대에는 더욱이나 뭘 먹는 사람들이 없다. 

먹어봐야 마실것들이 전부. 외로운 밤이나 상처받은 마음을 가끔 치유하러 오는 곳이 야간 피시방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나 역시 적당히 시간을 죽여야했기 때문에 피시에 앉아 이런저런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뉴스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뉴스. 그리고 우리 지역 사회 뉴스를 하나하나 훑어 볼 때, 꽤 충격적인 기사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벌써 5명을 죽인 연쇄살인마. 과연 잡을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문구다. 그 파랑색으로 빛나는 글을 본능적으로 클릭했고, 거기에는 여러 가지의 헤드라인과 간략한 내용들로 가득차 있었다. 

[00동. 연쇄살인마. 경찰들의 무능함이 지속될수록 피해자들만 늘어난다.]

관련 기사로는 온통 연쇄살인마에 대한 글들만 가득했다. 평화로울 것 같던 우리동네에 살인이라니.. 언제부터인지 살인이나 자살에 대해 유독 많은 뉴스들이 뜨는 것 같다. 그만큼 세상이 살기 각박해졌다고 해야할까. 어려워졌다고 해야할까. 

[연쇄살인마가 남긴 살인의 흔적들로 보아 남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며 그의 범행 패턴으로 볼 때, 사회와 단절된 사람일 가능성도 큽니다. 또한 그는 중년의 남자일 수 있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진 않을 것입니다.]

프로파일러인지 뭐시긴지가 남긴 말이다. 흐음.. 과연 범행 패턴과 현장을 보고서 그런 것까지 유추해낼 수 있는건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추에 지나지 않는거니까. 

툭. 

너무 모니터에 빠져든 탓에 손님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카운터에 올려진 음료와 군것질거리가 눈에 보일 때쯤 예의 남자가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피곤해서..”

되도 않는 핑계를 대며 계산을 해주니 남자는 말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멍하니 서서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을 때 창수 형이 다가왔다. 

“야, 안졸리냐?”

그 말과 함께 내 모니터를 보던 창수 형이 중얼거렸다.

“너도 이거 보고 있냐? 요즘 이게 화제야. 그래서 경찰들이 밤에 순찰하러 다니잖아.”

“그정도에요?”

“그래 임마. 사람이 몇이나 죽었는데.. 이거 동네에 전혀 관심이 없구만?”

“저야 뭐..”

창수 형은 그 자리에서 이것저것 기사를 찾아보며 흥미로운 눈으로 중얼거렸다. 곧 고개를 내쪽으로 돌린 창수 형이 말했다.

“야. 인한아 우리 이 놈 잡을래?”

“..예?”

어이없다는 듯 반문하자 창수 형은 작게 웃었다.

“농담이지 임마. 야, 그나저나 배고픈데 뭐 먹을래?”

“라면 드실래요?”

“맨날 먹는거잖아. 좀 더 색다른건 없냐?”

“제가 사줄때 드세요.”

그 말에 창수 형은 별말 없이 라면을 고르기 시작했다. 

**

다음날 무거운 몸을 이끌고 근무 피시방으로 향했다. 야간에 일하면서 느낀거지만 이 놈의 피로는 자도자도 풀리지가 않는다. 역시 사람은 낮에 일하고 밤에 자야 한단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조만간 이 일도 정리하고 다른걸..

“꺄아악!”

하늘을 찌르는 듯한 높은 비명 소리에 몸이 절로 움찔했다. 비명소리의 여파가 저 멀리 퍼지는 것을 보아하니 꽤나 큰 소리 같았다. 얼른 고개를 돌려 이리저리 훑어 보지만 집중하여 듣지 못한 탓에 소리가 들리는 곳을 캐치하지 못했다. 

“..뭐야.”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가 않았다. 비명소리는 다른 사람들도 들었던 모양인지 상가의 여러 사람들이 나와 밖을 이리저리 훑어 보고는 다시 들어가버렸다. 

찜찜한 기분을 애써 떨치며 피시방 건물로 향하는데 아주 익숙한 인영과 마주쳤다. 

“....”

그 남자다. 오늘도 어김 없는 옷차림. 정말 몸만을 가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을 충분히 이행하고 있는 단순한 천조각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남자는 정말 주위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뭐 묻었나?”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아마 지난 날중에 이렇게 나에게 말했던 적은 오늘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아, 아뇨..”

내 말에 남자는 말 없이 나를 지나쳤다. 하지만 그와 함께 풍겨져 오는 냄새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비릿한 뭔가.. 그래. 마치 피냄새와 같은 냄새에 머리가 조금 아찔해졌다. 

“....”

말 없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자니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같이 타면 위험할 것 같은 더러운 예감이 드는 것을 왜일까. 그렇게 멍하니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 그도 그 시선을 느꼈는지 곧 고개를 돌리곤 손짓했다.

타라는 것이다. 그 호의를 거절할까도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에 난 남자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5층입니다.]

목적지인 피시방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역시나 좁은 공간에 둘이 있으니 그 냄새가 확연히 느껴졌다. 이건 분명 피냄새가 맞다. 선천적으로 코피가 잘 나는 타입이라 몇 번 피를 흘려봐서 아는데 이건.. 그래. 조금 굳어진 피를 뭔가로 닦아낸 후 신경 써서 씻지 않을 때 나는 그것과 약간 비슷하다. 

곧 5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서둘러 내리자 남자는 내리지 않고 나를 빤히 보기만 했다. 

“안가세요?”

내 말에 남자는 말 없이 버튼을 누르고는 내려가버렸다. 뭔가 느낀 것일까? 싸한 기분을 애써 떨치며 피시방으로 들어와 적당히 인수인계를 하고서 가볍게 청소를 끝으로 자리로 돌아왔다. 다시 지역 뉴스를 검색해보니 헤드라인의 제목이 달라져 있었다. 

[이어 터진 연쇄살인. 정말 막을 방도는 없는 것인가?]

단 하루 사이에 살인이 또 터졌다고? 어마무시한 살인마가 동네에 들어온게 틀림 없다. 이러다 정말 밤중에 돌아다니는게 불가능해질지도 모르겠다. 대체 경찰들은 뭘 하고 있는건지 원.. 

30분 뒤 그 남자가 피시방에 들어왔다. 적당한 인사로 환대해주자 그는 말 없이 해당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사회성이 조금 떨어지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창수 형을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해당 시간에 모습을 비추는 창수 형이 나타나지 않았다. 

“뭔일이라도 났나.”

매일 찾아오며 기분 좋은 미소와 따뜻한 커피를 내미는 창수 형의 존재가 꽤 크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나와 처지가 비슷해서인가.. 

곧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혹시 창수 형일까 싶어 고개를 돌리자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들 세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중 가장 가운데에 선 남자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실례합니다. 최근 수상한 사람 보지 못했습니까?”

수상하다라.. 거기를 딱 충족시키는 한 남자가 있기는 한데. 하지만 무턱대고 그 남자를 말하기에도 조금 뭐하고.. 

“혹시 아십니까?”

이어지는 말에 힐끔 같은 좌석에서 앉아 게임을 하고 있는 남자를 봤다. 그는 언제나 같은 표정과 자세로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니야. 그럴리 없지. 생각을 정리하고 대답을 하려는데 내 시선을 그대로 따라간 경찰들이 곧 남자에게 다가가는 것은 순간이었다. 

“아, 그게 아니라요.”

당황한 나머지 그들의 앞을 가로 막자 경찰들은 딱딱한 사무적인 투로 말했다.

“확인만 하는 겁니다.”

적당한 힘으로 나를 밀어내는 경찰들을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은 곧 남자에게 다가가 신분증을 제시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남자는 묵묵히 손을 저었다. 없다는 표시인가? 허나 그 제시처는 그리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확인이 되지 않으면 서까지 가셔야겠습니다.”

꽤 세게 나가는 경찰. 그도 그럴 것이 남자의 행색은 정말 수상하다고 여겨도 이상하지가 않았다. 정말 전형적인 범죄자의 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액면가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됐지만 남자는 ‘수상한’ 이라는 수식어에 절묘하게 부합될만큼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 상황이 상황인지라 살인으로 예민해져 있을 경찰들에게 저런 식의 태도를 보였으니.. 

“그럴 시간 없소.”

다시 묵묵히 게임을 하는 남자. 경찰들은 곧 남자를 강제로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장정 셋을 당해낼리 없는 남자는 힘 없이 끌려 나갔다. 

“아..”

경찰들에게 끌려나가는 남자는 곧 나를 보며 말했다.

“조심해라.”

그게 협박인지 충고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남자의 두 눈은 맑게 빛나고 있었다.

남자가 잡혀 있는 동안 사장님과 창수형은 분명 살인마가 분명하다고 단정지었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연달아 사람이 죽어나간 것을 보아하면 진범은 따로 있는게 분명했다. 이젠 지역을 넘어 전국구에서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전봇대에는 수상한 사람에 대한 적극적인 제보를 기다린다는 것을 시작으로 어두워지기 전에 안전히 귀가하라는 당부의 말들이 적힌 전단지들이 붙혀지기 시작했다. 

일순간에 바뀐 동네 분위기에 사람들 모두가 불안해했다. 그건 나 역시 같았다. 더욱이 밤에 일하고 피시방에서 홀로 카운터를 지켜야하는 게 무서워졌다. 

“인한아. 요새 힘들지? 시급 올려줄게.”

사장님은 나보다 먼저 액션을 취했다. 과연 그는 먼저 쌓은 사회경험을 토대로 내게 매력적인 제안을 했다. 기존 시급에서 무려 천원이나 오른셈이다. 이쯤이면 살인보다 돈이 더 무서워지는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한다. 

“고맙습니다.”

난 받아들였다. 거부할 생각이 들지가 않았다. 그야 밤엔 항상 찾아주는 단골 손님들도 있었고, 제 집 안방처럼 드나드는 창수형도 있었기 때문이다. 

“으음..”

어김없이 울리는 알람소리에 눈이 떠진다. 천근이 된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가서 대강 세면을 하며 굴러다니는 빵으로 끼니를 떼운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지도 벌써 6개월째다. 난 언제쯤 그들에게 당당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멍한 얼굴로 핸드폰 액정을 바라본다. 밤 9시 30분. 슬슬 일어나야한다. 적당한 옷을 챙겨입고서 집에서 나와 매번 지나는 루트로 걸음을 옮긴다. 

동네에 가득 깔린 전단지의 효과 때문인지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순찰을 하는 경찰들의 수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대체 범인은 어떤 놈이길래 저 포위망들을 뚫고서 무차별로 살인을 하는 걸까. 

노골적으로 나를 훑어 보는 경찰들을 뒤로 하고 익숙한 동네로 접어들자 또 다른 하이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악!”

피부를 따갑게 만드는 듯한 비명소리에 다리가 굳어지는 것 같았다. 서둘러 경찰에게 알려야하나? 아니면 빨리 피시방으로 대피하는게 맞는건가? 지금 저 정도의 소리라면 범인의 위치는 분명..

“괜찮으십니까?”

어느새 다가온 경찰이 내게 말했다. 경찰은 의아한 얼굴로 나를 이리저리 훑어 보고는 다시 물었다.

“어디 가시는 겁니까?”

“예..? 혹시 저 소리 안들리셨나요?”

“무슨 소리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경찰을 보며 순간 환청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동안 너무 예민하게 있었던 탓인가. 

“아, 아닙니다. 알바가고 있었어요.”

“예에..”

경찰은 한동안 나를 보더니 ‘수고하세요.’ 라는 말과 함께 다른 쪽으로 걸어가버렸다. 

**

무사히라는 말이 웃기지만 여느 때와 같이 피시방에 도착하니 전 근무자가 피곤한 얼굴로 나를 반겨줬다. 인수인계 때 말고는 별로 말을 섞지 않아서 친하지가 않은 사이다. 언젠가 몇 번 친해지려고 다가갔는데 귀찮은 듯이 거리를 벌리는 근무자에게 조금 상처 받은 난 적절한 거리를 유지 중이다. 

“이상없네요. 고생하셨어요.”

그렇게 말하면 나의 근무가 시작된다. 카운터 피시에 로그인 되어 있는 손님들의 수를 보니 평소보다 반이나 줄어있다. 아무래도 살인의 여파가 크긴 큰 것 같다. 이러면 내게 더 잘된 일이다. 그만큼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어차피 시급도 올랐겠다 할 일도 줄면 그만큼 내게 이득이 아닌가?

딸랑- 얼마나 지났을까. 익숙한 종소리가 들렸다. 평소엔 잘 하지 않는 환대의 인사를 하려 자리에서 일어나니 오랜만에 볼 수 있는 남자가 나를 보며 서있었다. 

“....”

남자는 말이 없었다. 그 날에 대한 보복을 생각하고 있는걸까. 작은 소용돌이가 마음 속에서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이대로 어떻게 행동을 해야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남자는 말 없이 자리로 걸어갔다. 

“후..”

안도의 숨인지 기쁨의 숨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차가운 커피를 연달아 들이켜야했다. 남자 입장에서도 억울한 면이 없지 않을거다. ‘나도 스트레스 풀러 게임이나 하러 온건데 졸지에 범죄자 취급을 해서 뺑이 치고 왔어. 이거 어쩔꺼야?’ 라고 물어도 난 그에게 할 말이 없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곧 익숙한 자세로 게임을 시작하는 남자를 보며 제대로 사죄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 때문에 피해를 본건 엄연한 사실이니까. 물론 그의 액면가가 명백한 살인을 저지를만한 위인으로 보인다는게 문제긴하다. 

식품코너에서 남자가 자주 사던 음식들을 챙기고서 그에게 걸어갔다. 곧 내 인기척을 느낀 남자는 의아한 얼굴로 나를 봤다.

“?”

감정이 메말랐다면 아마 저런 눈을 하고 있지 않을까. 남자의 눈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저번 일은 죄송했습니다. 사과의 의미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어줍잖게 내민 내 작은 성의를 빤히 보던 남자는 말 없이 받아들었다. 그리곤 다시 묵묵히 게임을 하기 시작하는 남자를 보며 머리를 긁적이자 내 행동을 느꼈는지 그가 입을 열었다.

“너 괜찮냐?”

그건 의외의 말이었다. 남자가 그런 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난 적당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예?”

그건 확인차 묻는 말이었지만 의문도 섞여 있었다.

“아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묵묵히 게임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남자와 친해지기는 힘들 것 같다. 

**

다음 날. 여느 날과 다름 없는 피시방 출근길. 오늘도 어김 없이 깔린 경찰들을 보며 마지막 피시방으로 향하는 골목길로 진입하는 순간 커다랗고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캬아아악!”

그건 어제의 비명소리와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바로 지척에서 들리는 듯한 착각이 일정도로 강한 환청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냐면 바로 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묵묵하게 제 갈 길을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겠다..”

그동안 피로가 쌓인 탓이라며 그동안 열심히 달려온 내 자신을 위로하며 피시방으로 향한다. 반복되는 일정을 모두 치루고서 카운터 석에 앉아 뉴스를 검색한다. 어느새 살인마의 얘기는 지역 신문이 아닌 인터넷 실시간 검색에 오르락내리락 할정도로 큰 화두가 되어 있었다. 

이리저리 링크를 타며 지상파 방송에 보도된 뉴스를 보니 살인마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었다. 놈은 영리하게도 이리저리 포위망을 뚫고 하루에 1명이라는 경이적인 살인 기록을 세우고 있는 중이었다. 놈은 바로 오늘까지만해도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었고 내일도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뉴스가 전해지고 있었다. 

딸랑-

곧 종소리가 들리자 창수형이 밝은 얼굴로 나타났다. 

“형. 요즘 조심하래요.”

“알어. 그래도 내가 인한이 보려고 여기까지 행차한거 아니겠냐.”

그 말에 적당한 화답을 해주며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요즘 동네가 흉흉하다는 둥. 어디 돌아다니는게 갑갑해졌다는 둥. 실 없는 얘기를 할 때 창수형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작은말로 속삭였다.

“야. 그 남자 풀려났던데?”

“범인이 아니니까요.”

“그럼 대체 누구라는거지. 진짜 불안해죽겠네.”

“조심해야죠 뭐..”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다. 곧 지겨울 것만 같던 시간이 흘러가려는 찰나.

지직. 지지직. 

카운터의 컴퓨터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상한 소음을 내며 몇 번 껌뻑이던 모니터는 곧 꺼져버렸고, 그와 동시에 피시방에 켜져 있던 모든 전기가 꺼져버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뭐야.”

눈만 껌뻑이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간신히 핸드폰을 들어 후레쉬를 키자 사람들이 천천히 나오는게 보였다. 

“죄송합니다. 정전인가봐요.”

그렇게 말하며 사람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곧 1층에 내려 사장님에게 간단한 보고를 한 뒤 창수 형과 거리에 서서 한가로이 수다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야. 저거 그 남자아니야?”

창수 형이 손짓하며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조금 어둡고 멀리 떨어져 있어 확실히 분간을 할 수는 없었지만 특유의 옷차림을 통해 대강 그가 누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게요. 이쯤이면 피시방에 올 시간인데.”

“어디 가는거 아니냐?”

그렇게 말하며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사냥꾼처럼 눈빛을 빛내고 있는 창수 형을 보며 살짝 망설여졌다. 그 다음에 튀어나올 대사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난 거절해야 할까..

“가보자. 따라가보자.”

그렇게 말하며 서둘러 이동하기 시작하는 창수 형을 가만히 본다. 이미 손님들은 뿔뿔히 흩어진 상태. 사장님이 곧 오신다고는 했지만 꽤 거리가 되기 때문에 금방 오기는 힘들거다. 

“조금이라면 괜찮겠지..”

창수형과 서둘러 이동한다. 얼마가지 않아 남자가 사라진 골목길에 멈춘 난 뭔가에 가로막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

온 몸을 옥죄어 오는 듯한 꺼림칙한 이 기분. 이건 비단 나만이 느끼는 것이 아닐 것이다. 왜 그렇게 느꼈냐하면 바로 옆 창수 형도 나처럼 굳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솨아아- 어두운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걸목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요상하게 그지 없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뭔가가 있는 듯한 이 기분. 

“형. 돌아가요.”

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창수 형은 그렇지 않은 듯 했다. 저벅. 저벅. 천천히 발을 떼기 시작하는 형을 보며 난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망설여졌다. 이대로 같이 창수 형과 같이 이동하는게 맞는건지 아니면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는게 맞는건지 고민하고 있을 때. 

“형!”

돌연 창수 형의 몸놀림이 빨라졌다. 곧 어둠속으로 삼켜진 형을 보며 난 도저히 따라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여기서 뭐하나.”

곧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헛바람을 들이키며 옆을 바라보니 무덤덤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남자가 서있었다. 

“저..”

남자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적당한 말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릴 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같이 온 그 청년은 어딨어.”

“예?”

그걸 어떻게 안거지? 혹시 따라오면서 뒤를 본건가? 아니면 우리의 미행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나?

“귀 먹었어? 같이 온 청년 어딨냐고.”

“..저기요.”

마지막으로 창수 형이 사라진 곳을 가리키자 남자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가라.”

남자는 그 말과 함께 창수형이 사라진 곳으로 걸어가버렸다. 곧 어둠속으로 사라진 남자를 보며 난 어떠한 것도 물을 수가 없었다. 아니, 따라갈 용기조차 나질 않았다. 

**

정전은 무사히 일단락 되었다. 그 골목길에서 돌아오니 사장님이 난처한 얼굴로 서있다가 나를 보고는 매우 기뻐하는 얼굴로 다가왔다. 

“인한아. 어디갔었어. 걱정했잖아.”

환하게 미소를 짓는 사장님을 보자 그게 가식이란걸 알 수 있었다. 여지껏 일을 하면서 사장님이 웃은걸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 강제적으로 올린 입꼬리. 파르르 떨리는 저 살을 보면 단순한 연기에 지나지 않는..

“오늘은 손님들 다 갔어. 아마 더 오지 않을거 같으니 이만 들어가봐라. 내일 보자.”

사장님도 내심 걱정 했었나보다. 최근들어 동네에 연쇄살인마 효과로 상권들의 밤매출이 줄어들고 있었으니까. 거기다 밤에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거의 그만두는 사태가 발생하게 됐다고 한다. 그 중 소수는 여전히 나와 같은 입장이긴 했지만. 

사장님들 입장에서는 애가타고 속이 쓰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 다른 쪽으로 이들의 원한을 사고 있지는 않을까. 연쇄살인마라는 작자는?

“내일 뵐게요.”

번쩍이는 고급 세단차를 몰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사장을 보며 서둘러 돌아가려는데 뭔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창수 형과 그 남자가 걸어오고 있는게 보였다. 

“어? 창수형.”

걱정되는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 창수 형에게 다가가니 어딘가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있는게 한눈에 보아도 정상인 상태가 아니었다. 

“이 형.. 왜 이래요?”

내 말에 남자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대신 창수 형을 이끌고 가던 길을 계속 가기 시작했다. 방금전만해도 생기발랄한 창수형은 어디에도 없었다. 뭔가가 분명 잘못된게 틀림 없었다. 아까와 같은 실수를 조금은 만회하고자 내면 속에 있는 용기를 끄집어 내었다.

“잠시만요. 지금 뭐하시는거에요?”

서둘러 남자의 앞길을 막았다. 남자는 귀찮다는 듯 내게 손짓했다.

“이게 어찌된 거냐고요. 해명을 좀 해주세요.”

“내가 한게 아닌데 어떻게 해명을 해?”

“그럼 누가 한건데요?”

내 말에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말해도 넌 몰라.”

“무슨 소리에요. 경찰 불러요?”

그 말에 남자는 혀를 차며 하는 수 없다는 듯 대꾸했다.

“따라와라.”

곧 이동하기 시작하는 남자와 창수 형. 그 보폭이 크고 빨라서 따라가는데 조금 애먹었지만 무리 없이 그들을 따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10분에서 20분. 체감적으로 30분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낄 무렵 인가가 드물어 보이는 빌라단지 내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

한 밤중이라 그런지 빌라단지는 매우 조용한 상태였다. 헌데 뭔가 이상했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일반적으로 빌라단지 내에 비치된 쓰레기수거함이라던가 주차장. 또 밤에 거리를 비춰주는 그 흔한 가로등이 하나 없었다. 

“여기 사람 사는데 맞아요?”

“아니.”

그 말이 다였다. 남자는 곧 가까운 빌라로 움직였다. 조심히 그를 따라 이동하니 이층 부근에 활짝 열려진 문을 볼 수 있었다. 

“....”

그 열려진 공간에 흘러나오고 있는 미세한 기운이 느껴졌다. 순간 골목길에서 느꼈었던 그것과 유사한게 아닐까 하고 뒷걸음질쳤지만 곧 느껴지는 따스함에 안도할 수 있었다. 조심히 집안에 발을 들이니 아무 가구도 장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빈집에 남자와 창수 형이 보였다.

환한 촛불들의 사이로 창수 형은 거실 가운데에 누운 상태였는데 그 안색이 매우 창백해보였다. 남자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서는 창수 형의 앞에 앉았다. 곧 고개를 돌린 남자는 내게 물었다.

“너. 이거 다 볼 수 있겠어?”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이걸 다 보고도 감당할 수 있겠냔 말이야. 이제부터 난 이 놈한테 의식을 할거야.”

의식이라니? 창수 형이 어디가 아픈가?

“이해가 하나도 되지 않는데요. 아니, 애초에 아저씨는 누구고 창수 형은 왜 저런 꼴이에요? 그거나 좀 설명해주세요.”

“설명하면 길어져. 그럼 시간 끌리고 이 놈은 위험해진다. 다 끝난 후에 설명해줄테니까 잠자코 있어라.”

곧 의식을 시작하는 남자를 보며 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말로 중얼거리기 시작한 남자의 몸에서 은은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꿈인가 싶어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고 눈가를 비볐지만 그 빛은 여전했다. 

처음 이 집에 들어올 때도 그랬지만 따스하고 뭔가가 어루만져주는 듯한 이 기운에 마음이 놓였다. 험상궃은 얼굴과는 다르게 남자가 갖고 있고 내뿜고 있는 저 기운은 분명 사람들을 돕는 무언가가 있는게 분명해 보였다. 

“크르르르.”

그렇게 얼마가지 않아 커다란 짐승의 낮은 울음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다시 한 번 그 짐승의 소리가 들렸다.

“캬아아악!”

폐부에 가득 들어차고 귀를 얼얼하게 만드는 그 소리. 그건 창수 형의 몸에서 빠져나온 어둡고 강대한 ‘무언가’ 였다. 모습을 갖고 있진 않았지만 허공에서 꾸물거리며 연신 움직여대는 그것을 보니 소름이 끼쳤다. 

“꺄아아악!”

‘무언가’는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워낙에 커서 양귀를 막을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이 듣는 다면 영락없이 여자가 내는 비명소리라고 생각할테지만.. 가만? 그럼 지금껏 내가 들었던 비명소리들은 전부?

“후우..”

무거운 숨을 내쉬며 땀이 범벅이 된 남자는 창수 형에게 다가가 이리저리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곧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나를 보고서는 말했다.

“앉아.”

“..네.”

“방금 네가 본 건 ‘악’ 이다.”

“악이요?”

남자는 긍정을 표했다.

“사람들 모두가 갖고 있는 거지. 그 악이 커지고 광폭화됨으로서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해를 입힐수가 있다. 최근들어 이 동네에 그런 현상이 잦아져 조사하러 왔다.”

“그게 무슨.. 혹시 그것과 연쇄살인도 관계가 있다는 건가요?”

“그래. 경찰 측에서는 동일범이 저지른 연쇄살인이라고 했지만 실은 범인들이 모두 제각각이다. 그 중에서는 이 광폭화에 전염이 된 사람들이 저지른 돌발살인이라고 할 수 있다. 평소 불만이 많고 부정적인 사람들이라면 거기에 휩쓸리기가 쉽다.”

그 말에 순간 그 골목길에서 느꼈던 음침한 기운이 떠올랐다. 하지만 남자의 말이 사실이라고 단정짓기엔 무리가 있었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이 세상엔 말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무수히 많다.”

“그럼 왜 저번에 괜찮냐고 물어보신거에요?”

“광폭화에 휩쓸리는 사람들 대다수의 초기증상이 이명을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처음 네 놈을 보는 순간 알았지. 마음 속에 응어리가 아주 많은 놈이라는 것을 말야. 그건 곧 광폭화에 시달릴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계속 그 피시방에..?”

내 말에 남자는 약간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있지만 나도 사람이라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서 그랬다. 거기에 네가 우연히 있던거고.”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거죠? 저나 다른 사람들은요?”

“간단해. 마음의 안식을 찾으면 되는거야.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도록 해라.”

“그런..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간단 말이에요.”

“네 말대로다. 다만 이번 건은 문제의 그 골목길 때문이었어. 거기에 잠식되어 있는 뭔가가 악의 기운을 크게 깨우며 광폭화를 시키는 것 같다. 아까 그 골목길을 정화시켰으니 괜찮아질거야.”

그렇게 말하며 일어서는 남자를 보니 이제껏 내 눈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남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싸우고 있는 한줄기 빛과 같은 사람이었다. 

“고맙습니다.”

내 말에 남자는 말 없이 집을 나가버렸다. 순간 해가 뜨기 시작했다. 남자가 행했던 의식이 그렇게도 길었었나? 거실을 통해 들어오는 따스한 햇빛을 가만히 보니 창수 형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으..”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킨 창수 형은 곧 나를 보고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인한아. 왜 여깄냐?”

“아 형..”

난 간밤에 있었던 일을 모두 창수 형에게 설명해주었다. 내 설명을 듣고 있던 창수 형은 ‘남자’ 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내 손을 거칠게 잡아 끈 창수 형은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형! 왜 그래요? 형?”

어제 골목길에 들어갈 때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남자의 정화가 잘못되기라도 한건가? 창수 형이 설마..? 이런저런 생각이 들자 불안감이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허억.. 헉..”

곧 인가가 많은 곳에 도착한 우리들은 적당한 벤치에 앉았다. 거칠게 숨을 고르던 창수 형이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말했다.

“어제 봤다..”

“뭘요?”

“그 남자 말야.”

“예?”

“마지막에 그 골목길에 어떻게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들어가서 눈을 떠보니까 말야. 그 남자가 나를 데리러 왔더라고 그래서 고맙다고 말하려는데 남자의 모습이..”

아직도 그 장면이 생생한지 창수 형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영락없는 악마였다니까? 날카로운 뿔에 뱀처럼 긴 혀를 날름거리며 나를 보며 웃는데.. 나 거기서 바로 기절한 거 같다.”

“무슨 소리에요. 그 남자가 형을 데리고 와서 이렇게 원래대로 돌려놓은건데.”

“아니야! 네가 속고 있는거야. 분명히 봤다니까? 그건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었어. 괴물!”

아무래도 창수 형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다. 간밤의 후유증이라고 해야하나.. 이대로는 창수 형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일단은 형을 집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창수 형은 가는 순간까지도 남자에 대해 조심하라고 누차 당부를 했다. 

“하지만 형 제가 봤어요. 그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절대 그런게 아니에요.”

“인한아. 네가 몰라서 그래 정말 악마들은 사람들을 홀릴 때 고통을 주지 않아. 오히려 편안함을 줄 수도 있다고.”

“솔직히 어제일도 지금까지의 일도 모두 꿈 같아요. 그러니까 이제 잊고 살아요. 네?”

“네가 당해보지 않아서 그래.. 사람들은 모두 보고싶어하는 것만 본단 말이야.”

그렇게 말한 창수 형은 힘 없이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마지막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

오늘도 마찬가지로 아르바이트가 계속 된다.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고서 피시방으로 향하는데 사장님이 입구 쪽에서 서있는게 보였다. 

“어? 사장님.”

내 말에 사장님은 무거운 얼굴로 답했다.

“인한아. 그 창수 어제 못봤어?”

“..창수 형이요?”

“그래.”

심각한 얼굴로 묻는 사장님에게 마지막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끝으로 본적이 없다고 둘러댔다. 물론 남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 창수 녀석이.. 글쎄. 주위 이웃들을 모조리 살해했다.”

“뭐, 뭐요?”

뭔가 잘못돌아가고 있다. 아니면 내 귀가 망가진건가? 

“아무튼 정황히 그렇다. 오늘이나 내일 경찰이 너한테 서로 오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마지막으로 봤던 사람이 너라고 하니까 그냥 솔직하게 말하고 오면 돼. 나참..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사람을 죽이긴 왜 죽여?”

그렇게 말하며 사라지는 사장님의 뒷모습을 보니 왠지 모를 허망함이 느껴졌다. 지난 밤 그 남자가 창수 형에게 했던 의식은 대체 뭐였단 말인가? 창수형 말대로 그 남자는 악마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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