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딧 베스트 - 내 직업은 방에 감금된 여자를 지켜보는 일이다 part3.
익명
1일전
48
그녀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다가 이내 미소지었다. "날 레이첼이라고 부르나요? 좋네요. 내 진짜 이름은 멜라니이긴 하지만요."
얼굴이 달아오르는게 느껴졌다. 그녀의 이름이 레이첼일리가 없다. 내가 상상속에서 만들어낸 이름이니까. 그래도 여전히 창피함보다는 혼란스러움과 기쁨이 더 컸다. "진짜 그 사람 맞아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맞아요."
레이첼... 아니 멜라니는 내가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 그녀를 끌어안자 가볍게 끙 소리를 내며 웃다가 잠시 나를 마주 안아주고서는 귀에 대고 속삭였다. "토마스, 할 얘기가 있어요. 여기서는 안되고 집에 들어가도 되나요?"
나는 포옹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려고 애쓰며 다른 손으로는 눈물을 훔쳤다. 심장은 쿵쾅거리고 여전히 이상하고 환상적인 꿈 속에 있는 기분이었지만 집 안에 들어가 거실 소파에 자리를 잡자 가장 큰 의문거리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멜라니는 소파에 앉을때까지만 해도 웃고 있었지만 지금은 걱정스럽고 슬퍼보였다. "토마스. 그걸 말해주러 온거예요. 모든게 당신 생각과는 많이 다르거든요. 사실 애초부터 당신이 생각한 것과 달랐어요."
행복감을 뚫고 새로운 공포가 피어오르는걸 느끼며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예요?"
그녀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하듯 콧잔등을 짚었다. "토마스... 당신은 심리실험의 일환이었어요. 나는 당신보다 더 오래 연기자로 참가했지만 아직도 모든 세부사항을 알진 못해요. 아마 정부 부처에서 하는 실험인 것 같은데 목적은 알 수 없지만 돈과 시간을 많이 투자했더라구요."
나도 모르게 손을 비틀고 있었다. 아니 그럴리가 없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멜라니가 장난을 치는 것일거다.
멜라니는 말을 이었다. "내가 아는 건 당신이 장기 관찰 대상으로 감시당하고 있다는 거예요. 내가 갇혀 있다고 믿고 몰래 나를 지켜보도록, 이 모든 상황을 그들이 꾸며낸 거예요. 당신에게 지시를 내리고 선택을 하게 만드는 장치까지 줬죠?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 버튼 같은게 있잖아요. 맞죠?"
나는 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혀가 목구멍에 딱 달라붙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맞아요. 빨강이랑 초록 버튼."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당신이 어디까지 복종하는지 테스트하는 것 같아요. 당신의 도덕관과 지성, 공포심에 기반해 어떤 선택을 하는지.. 흥미롭죠. 적어도 6년전 처음 합류했을때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세부사항은 주는 법 없이 대략적인 골조만 알려줬거든요. 하지만 사람들 말이 있잖아요. 다른 연기자들이나 저나.. 가끔은 듣는게 있었고 우리끼리 떠들기도 하니까요." 그녀는 지친 미소를 지었다. "그런것때문에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어요."
내가 끼어들었다. "다른 연기자?"
멜라니가 눈을 크게뜨며 말했다."아, 네, 맞아요,. 죄송해요. 아마 여전히 솔로몬씨라고 부르고 있겠죠? 다른 사람들도 있구요." 내가 멍하니 쳐다보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어쨌건, 한동안은 평범해보였어요. 하루 6시간씩 그림 그리는 척을 하거나 티비를 보거나 뭐 그런 지루한 일을 하면서 갇혀있는 연기를 하는거죠."
상처받아 떨리는 내 목소리가 싫었지만 참지 못하고 또 끼어들었다. "그리는 척을 했다구요? 그 엄청 잘 그린 그림들 직접 그린게 아니었어요?"
멜라니는 창피해 하는 것 같았다. "아니예요. 미안해요. 그림은 전혀 그릴 줄 몰라요. 그래도 노래는 꽤 잘해요." 그녀는 웃어보이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몸을 앞으로 뻗어 내 팔에 손을 얹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항상 그림을 반대로 들어서 당신이 못 보게 했던거예요. 이미 완성되어 있었거든요.
당신이 볼 수 있었던 건 텅 빈 캔버스 아니면 그 사람들이 보여주기로 한 것들 뿐이었어요."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그녀의 말투도 어두워져 갔다.
"그래서 내가 룰을 깨고 여기 온거예요. 그 사람들이 그림 속에 메시지를 숨기고 마인드게임 같은 짓을 하기 시작하니까 걱정이 됐거든요. 당신이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스스로를 다치게 할까봐 두려웠어요. 오늘 당신이 퇴근하자마자 비디오 부서에 있는 사람한테 찾아갔어요. 그 사람이 당신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이야기 하더니 빌딩 근처에 주차된 당신 차를 보여주더군요. 침실 세트는 마을 밖에 있는 빌딩에 있어서 차를 몰고 당신 차 까지 갔어요. 차에 앉아있는 당신을 보곤 가까이 갈까 하다가 걸려서 해고될까봐 겁이 나서 당신이 움직일때까지 기다렸다가 내가 괜찮다는 걸 알려주려고 한거죠."
그녀는 눈을 깜박이며 눈물을 삼켰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몇번이나 그냥 갈뻔했어요. 해고되기 싫은 마음에 하루이틀 지나면 당신도 괜찮아 지지 않을까 스스로를 속이려고 했죠. 그 사람들한테 말해서 스크립트를 수정하면 내가 무사하다는걸 당신도 알거고 크게 걱정하지 않을거라구요."
가슴속에 분노의 불길이 이는 것이 느껴졌다. "참 고맙기도 하네요."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알아요. 나 쓰레기죠. 너무 미안해요. 겁쟁이에 이기적이고.. 그래도 진짜 가버리진 않았잖아요. 그러다가 찰스가 건물을 나서고 당신이 그 사람한테 뛰어가는걸 보면서 그 사람들이 일을 더 키웠다는걸 알았죠."
"찰스?"
멜라니가 눈을 굴렸다. "아, 네. 미안해요. 찰스 제프리스. 그 사람도 연기자예요. 실험 초기 버전에서는 그 사람이 솔로몬씨를 연기했는데 생각만큼 무섭지 않다고 해서 정장 차림의 요원들 중 한명이 된거죠. 당신 버전에서도 여러번 등장했는데 그 복장에 가려서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예요."
나는 무릎 위에 놓인 손을 계속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받아들이기 버거웠다. 분노와 안심, 수치심과 혼돈속을 오가는 핀볼이 된 것 같았다. "그럼 그 사람이 말한 거 다 나 겁주려고 그런거예요?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려고?"
그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미안해요. 그래서 더는 기다리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당신이 차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걱정하고 무서워 하는지 느껴졌거든요."
나는 그녀의 손길을 피해 팔을 치웠다. "고마워 죽겠네요. 적어도 경찰서에서 개망신 당하는건 피하게 해줬으니." 그녀가 동정에 찬 그 눈길을 거두고 이 집에서 나가줬으면 했다. "여기까지 들러서 내막을 다 알려줘서 고맙네요." 무심한 척 하려했지만 울먹이고 말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녀가 우는 나를 알아차리 못하도록 등을 돌렸다. "괜찮다면... 혼자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요. 너무 버거워요."
몇 분이 흘렀을까 어깨에 그녀의 손길이 느껴졌다. "토마스, 부끄럽게 여길거 전혀 없어요. 그 사람들이 이런 일에 얼마나 능한데요. 당신은 옳다고 믿는대로 행동했을 뿐이예요. 좋은 사람이니까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당신이 곤경에 처한줄 알고 돕고 싶었을 뿐이예요."
그녀는 부드럽게 나를 돌려세웠다. 그리고는 다시 코를 훌쩍이며 미소지었다. "알아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돕고자 하는 맘이 없다는 걸 알아야 되요. 직업과 자기 안위를 걸면서까지 낯선 사람을 위해서."
나는 시선을 돌리며 얼굴을 닦았다. "아직 바보가 된 기분이긴 하지만 그 모든일들이 다 진짜가 아니라니 다행이네요. 당신이 괜찮아서 다행이예요. 우리 둘다." 나는 말을 멈추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우리 둘 다 안전한거, 맞죠?"
그녀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거라고 생각해요. 말했듯이 이 뭔지모를 일에 그 사람들이 투자를 많이 했거든요. 게다가 당신한테 이 정도까지 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불안하긴 해요. 그래도 누가 다칠 것 같다는 느낌은 못 받았어요. 최악이래봤자 우리 둘 중 한명, 아님 우리 둘 다 해고되는거겠죠."
얼굴이 다시 벌게지는게 느껴졌다. "아 그 걱정은 말아요. 내일 그만둘거거든요. 그 뭣같은 버튼을 드디어 눌러볼 수 있게 됐네요. 버튼 두개 다요." 나는 미소 지었지만 멜라니의 표정은 어두웠다.
"토마스, 제발 그러지 말아요. 그 사람들이 우릴 헤칠것 같지는 않지만 당신이 갑자기 그만두면 우리가 이야기 했다는 걸 눈치챌거예요. 그 사람들이 우릴 항상 지켜보는 건 아니라해도 뭘 찾아낼지 모르잖아요. 휴대전화 추적도 있고 스파이 인공위성도 있고 뭐 그런거요. 여기 오는것만으로도 큰 위험을 감수했어요. 걸리기 싫어요."
나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럼 당신은 계속 나 같은 사람들을 속이면서 돈 벌거예요?"
그녀가 다가와 내 오른손을 쥐었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있었지만 그녀의 손길에 힘이 풀어졌다. "아니요. 그러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이런 일을 예상하진 못했어요. 실험이 이렇게 되서 당신을 실제로 만나게 될 줄이야.. 오래 일하진 않겠지만 돈을 모으려면 한 두달 정도는.. 이제 당신도 사정을 알게 되서 겁을 먹지도 상처 받지도 않을 테니까요." 그녀가 미소지었다. "그렇다면 할수있죠. 우리 둘 다 할 수 있어요. 아무 일 없었다는듯이 그 사람들 돈이나 더 챙기자구요. 그리고 한 명이 그만두면 다음달에 남은 한명이 그만두구요. 어때요?"
나는 애매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어느 정도 말이 되는 것 같았고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고 나니 더 말이 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내 손을 꼭 쥐었다.
"이 모든게 다 끝나면 당신을 더 알고싶어요. 내가 연기를 하긴 했지만 당신이 늘상 지켜보던 나는 거의 내 모습 그대로였으니까요. 나도 그만큼 당신을 더 알아가야 공평한거 아닐까요."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당신도 흥미가 있다면 말이죠."
심장이 요동치며 그녀의 손에 잡힌 내 손이 축축해지는걸 느꼈다. "네,뭐.. 네.그렇죠. 그러고 싶어요." 침을 삼키며 덧붙였다. "다시 만나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될까요?"
멜라니는 환하게 웃어보였다. "한 두달 정도 더 일하면서 돈을 모으고 그만두세요. 난 2,3주 뒤에 그만둘게요. 그 다음엔..." 그녀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천장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다시 사로잡혀 있었다. 실제로 만나보니 내 상상과는 좀 다르긴 했지만 말이다. "...3달 뒤 오늘 여기서 다시 만나요. 내가 이리로 올게요. 그땐 서로를 더 알아가는 거예요. 어때요?"
그녀의 미소에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좋아요."
몇분 뒤 그녀가 떠났을땐, 보내기 싫은 반면 안심이 되기도 했다. 너무 지쳐 있었다. 그녀가 무사하고, 우리가 드디어 만났다는 건 정말 기뻤지만, 나는 마치 오래된 전구 안에서 다 타버린 필라멘트처럼 완전히 소진된 기분이었다. 혼자일 필요가 있었다. 생각하고 진정할 시간, 무엇보다 쉴 시간이 필요했다.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깨어났을땐 알람이 30분 넘게 울리는 중이었다. 튀듯이 일어나 직장으로 달려갔다. 어젯밤 떠나면서 멜라니가 재차 강조했듯 완전히 평소처럼 행동해야했다. 패닉에 빠질 필요는 없지만 모든게 괜찮은 척 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었다. 갑자기 그녀에 대한 걱정을 멈추면 그 또한 그들에게 힌트를 줄 여지가 있었다. 나는 약속했고 그녀는 내게 가벼운 포옹와 키스를 남겼다. 전날 밤의 피곤함이 남긴 안개 속에서 그걸 떠올리자니 마치 꿈만 같았다.
그래도 관제실에 들어설땐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그녀를 돕지 못한데서 오는 걱정이나 죄책감도 사라졌고 그토록 오랫동안 날 속여왔던 사람들을 마침내 한 방 먹였다는 일종의 만족감도 들었다. 게다가 3개월 뒤면 여기서 벗어나 레이첼..아니 멜라니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실제로 말이다.
출근해서는 그녀의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잠든 그녀를 보며 그녀도 나처럼 여전히 피곤한지 궁금해졌다. 잠시 후 깨어난 그녀가 책을 읽기 시작하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져 입을 꾹 다물었다. 걱정하는 척 연기를 해야지 첫눈에 반한 사람마냥 웃고 있으면 안되니까. 멜라니가 곤경에 처하지 않도록 내가 더 잘해야 했다.
1시간쯤 후 그녀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모든게 얼마나 리얼해 보이는지 감탄 할 뿐이었다. 내 각도에서 전체를 보긴 힘들었지만 그녀가 직접 붓을 쥐고 캔버스 위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다고 맹세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가 자랑스러웠다. 실로 대단한 연기자였다.
우리가 만나서 대화를 했다는 어떤 낌새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내 집에서 만났던 그 사람과 완전 다른 사람 같았다. 그녀가 말했던 "역할극"이란게 이런거지 싶었다.
근무시간 끝무렵이 되자 그녀와 헤어지긴 싫었지만 잠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종일 내 반응을 숨기려 애쓰느라 기진맥진했고 남은 몇 주도 두렵기만 했다. 그리고 그때, 그녀가 그림을 다 그렸다는걸 깨달았다. 평소처럼 다른 일을 하러 갈거라 생각했지만 대신 그녀는 캔버스 가장자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소파 쪽으로 옮겼다. 처음엔 그녀의 몸이 그림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녀가 비켜서자 거대한 나무를 그린 캔버스가 보였다. 어두운 붉은색을 띈 거대하고 뒤틀린 나무 몸통이 여러갈래의 가지로 갈라졌다. 가지를 감싼 나뭇잎은 아주 짙은 녹색이라 나뭇잎이라기보다 폭풍우속의 구름 같았다. 다른 그림들과 마찬가지로 그 그림도 여전히 내 마음을 건드렸다. 멜라니가 그린게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미지 그 자체와 색 조합, 작은 디테일까지 대단했다.
이번에도 디테일이 있었는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나뭇가지에 여러마리의 검정 새가 앉아있는게 보였다. 이상하게도 그 새들은 마치...
어떤 단어를 이루고 있는 듯 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해 침착하려고 애를 써야만 했다. 바보 같이 굴어선 안된다. 이 모든게 다 게임일뿐이니 내 역할을 좀 더 연기하면 된다. 하지만 '걱정하는 나'라면 그 단어가 뭔지 알고싶어핱테니 읽어보려 노력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새를 따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시선을 옮겼다.
그 여자
내가 아니야.
그림에서 눈을 떼니 레이첼이 날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녀는 공포에 질려있었다.
아, 이럴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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