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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던 날 버스정류장에 있다가 무진이니 곡성이니 그 사이 폐촌에서 겪은 썰

익명
2026-08-31 03:02
출처: https://scpko.wikidot.com/fogles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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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벌써 2년도 더 된 얘기임 나는 원래 가방 하나 메고 여기저기 떠돌면서 여행하던 타입이었고 그날도 그냥 걷다가 지쳐서 외딴 데 있는 낡은 버스정류장 의자에 잠깐 앉아 있었음 정류장이 사람 하나 없는 폐촌이랑 가파른 산 사이에 껴 있더라 이런 데도 버스가 다니네 하고 좀 신기했지 ㅋㅋㅋ 그래서 기대고 하늘만 멍하니 보고 있었음


근데 그날따라 졸음이 진짜 찝찝하게 들러붙더라 몸을 끈적하게 휘감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결국 순식간에 기절하듯 잠들고 해가 산마루에 걸리기 직전에 깼음 폐촌이랑 산 사이에 혼자 남아 있는데 마지막 햇빛마저 꺼질 판이라 갑자기 답이 안 나오는 거임 왔던 길 다시 가기엔 너무 멀고 폐가 들어가서 쉬기엔 그럴 용기도 없고 ㅋㅋㅋ 거기다 비까지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니까 멘탈 터짐 정류장 지붕 구멍 난 데를 우산 삼아서 의자 위에 쭈그려 앉아 그냥 아침만 기다리게 됐음


빗소리가 주변을 꽉 채우고 지붕 구멍에서 물이 홍수처럼 쏟아질 때쯤 멀리서 방울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음 듣자마자 폐촌 쪽에서 나는 것 같아서 어릴 때 들었던 귀신썰 다 떠오르고 그냥 벌벌 떨기만 했지 근데 그 방울 소리가 안 멈추는 거임 그렇게 한 20분 떨고 있으니까 갑자기 근원지가 궁금해지더라 나 원래 겁 많아서 차 없으면 짧은 터널도 잘 못 지났는데 그때는 무슨 배짱인지 겉옷을 우산처럼 들고 폐촌 쪽으로 가버림 손전등 들고 있어서 그나마 살았지 아니었으면 튀어나온 흙더미 같은 거에 계속 걸려 넘어졌을 듯


가면 갈수록 방울 소리가 더 가까워져서 급히 걷다가도 무서운 생각 들어서 멈칫하고 또 스스로 설득하면서 걷다가 갑자기 겁나서 뒤로 물러나고 이걸 계속 반복함 사람인가 귀신인가 폐가에 있는 뭔가가 방울 울리면서 나 부르는 건가 바람 소리를 내가 착각하는 건가 별 생각 다 했는데 어느 순간 방울 소리가 바로 근처에서 들리더라 착각이 아니고 진짜 방울 소리였음

그때 내가 멈춘 게 길가에 갑자기 팻말 하나가 튀어나와서임 그리고 거기 적힌 문구 때문에 멈춘 거고 "무진까지 앞으로 500m 남았습니다" 이렇게 적혀 있었음 누가 봐도 잔뜩 녹슨 팻말이라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뭔가 이상했음 나는 탁 트인 평지의 폐촌 쪽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뜬금없이 무진까지 남은 거리 알려주니까 진짜 땅에서 솟아올라서 나를 무진으로 끌고 가려는 느낌이 들더라


그냥 내가 못 보고 지나쳤던 거겠지 갑자기 이런 게 눈앞에 생길 리 없다 이렇게 최면 걸고 도망치듯 뒤로 돌아섰음 그 뒤로는 방울 소리도 안 궁금했음 아침까지 정류장에 박혀 있다가 날 밝으면 바로 떠나자 다짐하면서 다시 걸음 빨리 했지 근데 이상하게 방울 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거임 분명 근원지랑 반대 방향으로 가는 중인데 소리가 커진다고 ㅋㅋㅋ 느낌이 딱 방울 소리가 나 따라오는 것 같았음


그래서 뛰었음 그냥 미친 듯이 뛰었음 근데 아무리 뛰어도 방울 소리는 비웃는 것처럼 더 커지기만 하고 정류장은커녕 도로도 안 나옴 비는 세게 내려서 온몸 두들기고 어깨가 무거워지고 땅은 축축해서 발을 붙잡는 느낌이고 숨 넘어가게 헐떡이던 그 순간 뭐에 걸려서 앞으로 나뒹굴었음


내 발목을 잡은 게 그 팻말이었음 근데 아까 본 것보다 훨씬 더 녹슬어 있었음 모서리는 다 문드러져서 형태도 흐릿하고 여기저기 난 구멍은 내 꼴을 뚫어져라 보는 인영처럼 보이더라 근데 내용만은 미친 듯이 선명함 "무진까지 앞으로 200m 남았습니다" 이거 보고 온몸 털 다 섰음 그리고 더 무서운 건 그 팻말이 작은 흙더미에 꽂혀 있었다는 거임 분위기 탓인지 본능인지 그 흙더미가 무덤이랑 너무 비슷했음 크기는 좀 작아도 눅눅한 악취 올라오고 앞에 꽃 놓인 거 생각하면 답 나오지


그 와중에 그나마 위안이 된 게 손전등 불빛 너머로 정류장 근처에서 봤던 그 흙더미들이 조금씩 다시 보이기 시작한 거였음 빗물이랑 진흙이 온몸에 들러붙어서 끝까지 잡아끄는 느낌인데 남은 힘 다 쥐어짜서 벌떡 일어나 또 달렸음 비 피하는 건 이미 포기했고 우산 삼아 들고 있던 옷도 던져버리고 그냥 어둠 어딘가에 있을 정류장인지 뭔지 향해 미친 듯이 달림 이성은 진작 날아갔고 얼굴에 흐르는 게 비인지 눈물인지도 모르겠더라 결국 울어버렸음 그래도 계속 달렸음 다리 아파도 달렸음 근데 방울 소리는 더 커지면서 숨통을 조여왔고 그래도 난 계속 달렸음


달리면서 곁눈질로 별걸 다 봤음 나무 같은 거 가로수 같은 거 잔뜩 망가진 폐차 같은 거 죽은 사람 머리 같은 거 사형수 마지막 단말마 같은 거 그리고 나를 무진으로 안내한다는 녹슨 팻말들 같은 거 말이야


그리고 내가 멈춰 섰을 때 아직도 잊히질 않는 게 있음 "무진까지 앞으로 4m 남았습니다"라고 적힌 그 마지막 팻말임 너무 생생해서 뇌에 총알 박힌 느낌이었음 그건 분명 인간이었음 모양은 팻말인데 키는 내 키보다 한참 아래인데도 강한 인상과 의지가 느껴졌음 나 목을 짓누르고 머리 터트리고 싶어 하는 게 보였고 머리를 쥐어뜯고 망가진 몸을 춤추게 하면서 즐겁게 보고 싶어 하는 것도 알겠더라 그건 아래에 있는데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음 살면서 본 것 중 제일 녹슬었는데 동시에 제일 날카로웠고 제일 끔찍한 미소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음


뒤돌아 도망치면 됐는데 못 했음 아니 안 했음 아니 사실 할 수 있었고 해야 했는데 그러는 건 옳지 않은 일 같았음 옳고 그름이 무슨 의미냐 싶지만 결국 나는 처음으로 돌아온 거임 끝없는 지옥 굴레에서 공처럼 굴러다니고 늑대한테 쫓기는 토끼처럼 달렸는데 내 폭포 같은 눈물은 쳐다도 안 보는 늑대가 결국 내 목을 낚아채서 안개로 가득한 잿빛 강에 나를 던져버린 느낌이었음 눈 감고 숨을 세게 들이마셨지 팻말은 여전히 무진을 향한다면서 아마 내 것일 한마디 단말마를 기다리는 것 같았음


한 발 내딛었음 온몸을 휘감는 무력감 한쪽은 손으로 움켜쥐고 다른 한쪽은 입으로 물어뜯는 기분이더라 근데 그러면 그럴수록 무력감이 더 조여왔음 그래도 또 한 발 갔음 오른발엔 과거를 왼발엔 미래를 얹는 느낌 다시 오른발엔 들숨 왼발엔 날숨 그렇게 한 발 한 발 가는데 모순인데도 묘하게 아름다운 쾌락에 젖는 기분이었음 가면무도회 온 애를 대하듯이 걸어가고 있었고 곧 봐버렸지 그 우아하고 징그러운 자태를 ㅋㅋㅋ

무진까지 0m 남았습니다.


그 순간 등줄기 타고 거미가 올라가는 느낌이 확 들었음 분명 아무것도 없을 텐데 피부가 그렇게 느꼈지 그 거미가 하나가 둘 되고 둘이 넷 되고 넷이 여덟 되고 하면서 등을 기어다니다가 갑자기 강렬한 통증이랑 같이 등가죽을 찢어발기기 시작했음 그럴수록 팻말은 나를 비웃었고 거미가 뇌를 후벼파서 장기 다 먹어치우고 심지어 빈 눈구멍에서 기어 나오는 장면까지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음 근데 비명도 못 질렀음 그리고 이상하게도 꽤 기분 좋은 그 순간부터 나는 사람이 아니라 거미가 됐음 그리고 빗물이 됐음 그리고 방울소리가 됐음 그리고 무진의 안개가 됐음 그리고 팻말이 됐음 그리고 무진이 됐음

무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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