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그믐에는, 상을 받아라.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나도 잘 모르겠다. 처음에는 순서대로 적어 보려 했다. 그러나 몇 번을 다시 써 봐도 순서가 자꾸 어긋나버린다. 어쩌면 나는 그 해의 일을 순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글도 순서보다는 그냥, 내게 남은 대로 적어 보려 한다. 능숙한 독자라면 이 글을 모두 읽고 나면,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전에, 부탁 하나만.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 혹시 내게 연락을 남기고 싶어진다면, 부디 종이 편지로 써 주기 바란다. 봉투에는 김기환, 석 자만 적으면 된다. 이메일은 도착하지 않을 것이고, 문자도 수신되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지는 차차 이해하게 될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시길.
지금은 그저,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이 곳에 머물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중간중간 물이라도 좀 마셔 가면서 따라와주기를 바란다.
준비가 되었다면, 지금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1.
내가 통계청 지역조사관으로 발령을 받은 것은 서른 살이 되던 해 봄이었다. 전까지 계약직으로 3년을 굴렀고, 그해 봄에야 겨우 정규직이 됐다. 나는 서울 사람이 아니다. 유년 시절 내내 대전에서 나고 자랐고, 대학 때문에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졸업반이 되던 즈음에 어머니는 나를 남겨두고 다시 시골로 내려가셨다. 요양원이 있는 마을이었다. 젊은 시절에 잠깐 간호조무사로 일하던 곳이라 했다. 나는 뭘 굳이 또 내려가냐며 반대했지만 결국 어머니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어릴 적부터 한 치도 변함이 없는 부분이었다.
기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어머니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 보자면...
어릴 때 살던 집에는 좁은 마루가 하나 있었다. 어머니는 밥때가 되면 마루 끝에 상을 내다 놓고는 마당을 향해 외치셨다.
- 기환아, 상 받아라.
그 소리가 나면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도 뛰어 들어갔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국그릇과 반들반들 닳은 숟가락이 상 위에 놓여 있던 장면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머니는 내가 첫술을 뜨는 것을 보셔야 당신의 숟가락을 드셨다. 서울로 올라온 뒤에도 밥 먹을 때가 되면 가끔 그 소리가 귓가에 맴돌고는 한다.
듣기로 나는 태어났을 때 몹시 약했다고 한다. 두어 달을 넘기기 어렵겠다는 말까지 들었다는데, 어떻게 고비를 넘겼는지는 끝내 듣지 못했다. 그 얘기가 나올 때마다 어머니는 행주를 찾거나, 불에 올려둔 것이 있다며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발령 두 달째, 그 해 5월 말에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았다. 천천히 숨을 옥죄는, 폐가 굳어가는 병이었고, 병마는 근 몇 년 간 어머니를 조금씩 짓눌러갔다.
요양원 담당자는 이번 달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서글펐으나, 그보다 더욱 무뎌진 감각이었다. 예정된, 예상된 끝은 정작 닥치기 전까지 끊임없이 희석되고 옅어지기 마련이다. 준비가 되었건, 되지 않았건 간에.
나는 상사에게 사정을 말하고 다음 주중에 사흘 휴가를 내겠다고 했다. 상사는 내 등을 토닥이며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틀 뒤, 나는 뜬금없이 발령서를 받았다.
명단리(名單里).
경상북도 봉화군의 산 안쪽에 있는, 인구 87명의 마을.
발령서에는 3주에 걸쳐 이 마을의 인구 조사와 실태를 파악하라고 적혀 있었다.
상사에게 어머니 상황을 아시지 않느냐고 따져들었다. 상사는 사정은 알지만 그래도 이 조사는 미룰 수가 없다고 했다. 이런 냉혈한이 다 있나 싶어 그 이유를 물었더니 난데없이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명단리는 30년 동안 사망 신고가 접수되지 않은 마을이었다.
30년, 사망 신고, 없음.
잘못 읽은 건가 싶어, 농담조로 혹시 이 마을 사람들은 불사신이냐고 물었지만 상사는 웃지 않았다. 도리어 그럴 리가 없지 않냐고, 그러니까 우리가 확인해야 하는 것이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되받아칠 뿐이었다.
왜 하필 나인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는 내 이력서를 보여주었다. 본적란에는 '명단리'라는 글자가 선명히 적혀 있었다.
아, 명단리.
나는 태어나서 한 순간도 명단리에 살았던 적이 없다. 어머니가 그곳 출신인 것은 어렴풋이 알았지만, 나는 태어난 적도 살아본 적도 없는 마을이었다. 내가 간다고 한들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알겠다고 답했다. 어째서였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저 어머니의 임종이라는 불가피한 미래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오히려 바라고 있었을지도.
출발 전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아 명단리를 검색해 보았다. 뉴스도, 답사기도, 사진 한 장도 나오지 않았다. 겨우 걸린 것이 오래된 게시판 글 하나였다. 사라진 옛날 방송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는데, 혹시 30년쯤 전에 봉화 산간에서 잡히던 <이달의 명단>이라는 방송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 글이었다. 저녁마다 노인이 나와서 이름만 읽다가 끝나는 방송이었다고 했다. 댓글은 셋이었다. 어릴 때 할머니 집에서 본 것 같다는 사람이 둘. 그런 프로그램은 당시 편성표 어디에도 없었다는 사람이 하나. 집에 테이프가 있을지도 모르니 찾아서 올려 보겠다던 글쓴이는, 그 뒤로 글을 쓰지 않았다. 마지막 댓글이 달린 것이 15년 전이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창을 닫았다. 방송 제목이 마을 이름과 닮았다는 생각을 잠깐 했을 뿐이다.
그날 저녁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는 며칠 전보다 더욱 숨이 가쁘셨다. 발령이 났다고, 3주쯤 산 안쪽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잠깐 아무 말이 없다가 물으셨다. 어디로 가느냐고.
명단리라고 대답하자, 어머니는 병으로 갈라진 목소리로 웃으셨다. 웃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 소리를 웃음으로 기억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 기어코 때가 왔구나.
왜 그러시냐고 여쭈었다. 어머니는 대답 대신 이렇게 말씀하셨다.
- 달력을 보아선 안 된단다, 아가.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어머니는 곧 거세게 기침을 하셨고, 요양보호사가 전화를 대신 받아 대화를 끊었다. 그것이 어머니와 나눈,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대화다.
2.
명단리에 들어선 것은, 6월 3일. 당신에게도 내게도 얼마 전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봉화군 소재지에서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종점에서 내려 다시 산길을 한참 걸었다. 6월인데도 산 안쪽은 꽤나 서늘했고, 골짜기에는 얕은 안개가 깔려 있었다. 안개는 골짜기 밑에서 피어오르지 않고 산 위에서부터 내려앉고 있었다.
명단리는 산과 산 사이 오목한 자리에 있었다. 서른 개 남짓한 지붕들, 논 몇 뙈기. 마을 한복판에 세 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 하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건물을 마을회관이라 불렀지만, 나는 보자마자 이 건물이 한때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앞에는 운동장이라 부를 만한 넓은 마당이 있었고, 마당가에는 국기 게양대가 서 있었다. 마당 한쪽에 시멘트 구령대, 그 옆에 오래된 감나무 세 그루. 현관 옆에는 허리께 오는 돌이 서 있었다. 학교마다 하나씩 있는, 교훈을 새긴 돌이었다. 세월을 직격으로 맞기라도 한 건지 꽤 닳아서 흐렸지만 읽을 수는 있었다.
[ 오늘도 빠짐없이. ]
현관 위의 벽에는 페인트를 여러 번 덧칠한 자리가 있었다. 볕이 비스듬히 들자 덧칠 아래의 글자 자국이 드러났다. 명단국민학교 명단분교. 폐교를 마을회관으로 쓰는 거야 어느 시골에나 흔한 일이겠지만, 건물 옆으로 전신주가 유난히 많았다. 건물 하나에 그렇게 많은 전깃줄이 들어가는 것을 나는 처음 보았다. 남몰래 마을회관에서 데이터센터라도 운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장은 '김노경'이라는 노인이었다. 아직 칠순도 안 됐다더니만 생김새만 보면 여든이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자글자글한 주름이 나무 나이테마냥 살갗 온 군데에 퍼져 있었다.
이장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대강의 자초지종을 말하자 어머니를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오래 전에 같은 학교를 다녔다고, 등 뒤의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 어릴 적에, 꼬맹이였을 적에 한 교실에서 다 같이 배웠지요. 에... 어머님이 이 마을을 떠나신 게 30년 전 쯤이었을 겝니다. 그 뒤에 한 번, 애 하나 들쳐업고 찾아왔었는데... 끌끌.
듣기로는 이장이 68살이고 어머니가 예순이니, 나이 차이가 꽤 있을 터인데. 어떻게 학교 친구였을 수 있는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시골 분교란 그럴 수도 있겠거니, 생각했다. 어머니가 업고 왔다는 아기에 대해 물으려는데, 이장이 몸을 돌려 나를 건물 안으로 이끌었다.
건물 안쪽 1층은 회의실이었다. 교실 두 칸을 터서 만든 방. 벽 한쪽에 뒤가 두꺼운 옛날 브라운관 TV가 놓여 있었다. 상표는 닳아서 읽을 수 없었다. TV 옆 벽에는 누렇게 바랜 상장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붓글씨였다.
[ 위 학교는 3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출석하였으므로 이 상을 줌. ]
학생도 아니고 학교가 개근상을 받는다는 게 웃겼지만 소리 내어 웃지는 않았다. 시골 감성도 꽤 귀여운 구석이 있구나 싶었다. 이장은 내 눈길을 따라 액자를 보더니, 두 손을 모으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 여기 오신 분들은 말이지요, 저녁 8시에는 꼭 저 TV를 보셔야 합니다. 잊지 마세요.
다 같이 모여 뭘 보는 거냐고 물었더니 이장은 작게 웃었다. 저녁 여덟 시가 되면 방송이 나온다고 했다. 잊지 마세요¹, 라고, 이장은 다시금 힘주어 말했다.
이렇게까지 강조하는데, 굳이 거스르고 싶은 마음이 딱히 들지는 않았다.
내가 지낼 숙소는 2층 복도 끝 방이었다. 문에 숙직실이라고 새긴 나무 패가 아직 붙어 있었다.
방 안 벽에는 액자가 하나 걸려 있었다. 사진 대신 누렇게 바랜 종이가 들어 있었고, 등사기로 민 듯한 흐린 글씨가 적혀 있었다.
[ 숙소 이용 수칙 ]
하나. 절대 저녁 8시 방송을 거르지 마시오.
둘. 대답은 자기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에만, 한 번만 하시오.
셋. 상에 올랐던 밥에는 손을 대지 마시오.
넷. 그믐날 저녁에는 1층으로 내려오시오.
다섯. 잊지 마세요.
규칙 괴담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뭣하러 이런 시골 회관에 이용 수칙까지 붙었나 싶어 웃고 말았다. 그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다섯 줄을 수첩에 그대로 옮겨 적어 두었다.
계단을 올라가야 나오는 3층은 강당이었다고 한다. 낮에 잠깐 올라가 보았는데, 창문이 없는 넓은 흰 방 뿐이었다. 벽에는 오래되어 보이는 달력이 하나 걸려 있었다. 멀쩡한 강당을 왜 이렇게 낭비되는 공간으로 만들었는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²
그날 첫 저녁은 이장 댁에서 먹었다. 김치찌개와 나물 반찬. 이장 댁에는 부인과, 손녀뻘 되는 열두 살 여자아이가 함께 살고 있었다. 이름은 지수라고 했다. 지수는 나를 힐끔거리기만 하고 말을 걸지 않았다. 밥을 먹기 전에 아이는 자기 밥그릇을 두 손으로 들어 창밖을 향해 잠깐 올렸다가 내렸다. 창밖에는 학교 건물이 있었다. 아무도 그것을 나무라지도, 시키지도 않았다.
- 헛, 흐흠.
괜히 무안해지는 기분이 들어, 간단히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그래도 당분간 머물게 되었는데 조사 목적 정도는 밝혀두는 것이 예의겠지.
인구 파악과 사망 신고 미제 건 실태 조사. 대강 이야기를 마치자, 이장은 밥을 삼킨 뒤 대답했다.
- 우리 마을에는 죽는 사람이 없답니다.
그때 내 상사가 그러하였듯 이장은 사뭇 진지했다. 부인도 마찬가지였다. 지수도 나를 힐끔 보고 다시 밥그릇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나는 젓가락을 잠깐 멈췄다가, 최대한 사무적으로 물었다.
- 그러면 이 마을 어르신들은... 어디로 가시는지요?
이장은 창밖을 잠깐 보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 올라가시지요.
어디로 올라가시느냐고 물었다. 이장은 나를 보면서 학교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3층으로.
이장은 다음 그믐밤, 그러니까, 이번 달 말일에 카드 교체식이 있으니 참석하라고 했다. 조사관 자격으로, 그리고 어머님의 아들 자격으로.
자격이라는 말이 참 거창하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이런 시골 마을에서 카드를 교체한다는 게 뭘 의미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슬쩍 카드가 무엇이냐고 묻자, 보면 안다는 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말일. 6월 30일. 지금으로부터 3주하고도 한참 더 남은 시점. 그때쯤이면 나는 이 마을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식사를 마치자 밖은 벌써 어둑어둑해진 이후였다. 숙직실로 돌아와 창밖을 내다보았다. 마을 정경이 한눈에 보였다. 그러나 어딘가 이상한 광경이었다. 집집마다 창이 하나씩만 노랗게 켜져 있었다. 창이 여럿인 집도 켜진 것은 하나뿐이었다. 마치 어느 집에나 한 사람만 살고 있는 것처럼. 나는 조용히 내 방의 불을 껐다.
밤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벌레 소리도, 개 소리도, 산짐승 소리도.
나는 오래 잠들지 못했다.
_______
¹ 이장은 그 순간 정말 "잊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선명한 기억이다.
² 3층의 문은 다른 문과 달리 안에서 잠글 수 없게 되어 있다. 밖에서 잠그는 자물쇠 걸이만 있다.
3.
말했지만, 기억이 뒤섞여 온전치가 않다. 아마 앞에서 건너뛴 이야기일 것이다. 첫날 저녁, 실은 나는 8시가 채 되기 전에 1층으로 내려갔던 것 같다.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려가보니 이장은 벌써 와 있었다. 처음 보는 노인 몇 분과 지수라는 여자 아이도 함께였다. 다들 마당 펌프에서 손을 씻고 들어온 모양인지 손등과 소매 끝이 젖어 있었다. 누구도 수건을 쓰지 않았다.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고, 물기가 저절로 마르기를 기다렸다.
사람들은 키 순서대로 앉아 있었다. 앞줄에는 키가 작은 이들이었고, 뒷줄에는 큰 자들이 있었다. 지수는 맨 앞이었다. 어른들이 낡은 의자에 꼿꼿이 앉아 있는 모양새가 꼭 조회를 기다리는 학생들 같았다. 텔레비전 한 번 보는 일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누구 하나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 벽시계 초침만 딱, 딱,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7시 59분.
그리고, 8시.
정각이 되자 TV가 켜졌다.
아무도 리모컨을 들지 않았다. 이제야 돌이키는 것이지만, 그 방에는 리모컨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브라운관 안쪽에서 파란빛이 천천히 차오르더니, 색이 바랜 파란 화면 위로 흰 궁서체가 떠올랐다.
<이달의 명단>
동사무소 공문 맨 위에 찍혀 있을 법한 글씨였다. 배경 음악도, 시작을 알리는 효과음도 없었다. 화면의 우측 상단과 좌측 상단을 한번씩 살폈으나, 그 어떤 방송사 로고도 보이지 않았다. 지역 방송이라면, 으레 있을법한 최소한의 표시는 보였어야 할 터인데.
화면이 한 번 흔들린 뒤 한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흰 벽을 등지고 정면으로 앉아 있었고, 두 눈은 감겨 있었다. 노인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는, 또박또박 말했다.
- 이달의 명단입니다.
그리고 이름을 읽기 시작했다.
김노경.
이장이 대답했다.
- 예.
박순자.
이장의 부인이 대답했다.
- 예.
김지수.
아이는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답했다.
- 예.
정용식.
뒷줄에 앉은 노인 한 분이 대답했다.
- 예.
이런 식이었다. 이름 하나마다 예, 하는 소리가 돌아왔다. 목이 굵은 노인이 대답해도, 열두 살짜리 지수도, 태연하게 자신의 차례에 대답하고 있었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소리였다. 놋그릇 가장자리를 손톱으로 살짝 건드리면 날 법한 소리. 대답할 때마다 사람들은 눈을 감은 채 상체를 조금 숙였다가 폈다. 나도 모르게 따라할 뻔 했지만, 긴장한 탓인지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어딘가 이상했다.
방 안에 있는 건, 세어 보진 않았으나 기껏해야 열댓명. 허나 TV 화면에서 이름은 계속해서 불리우고 있었다. 그리고, 대답도.
대답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스무 번을 넘어, 서른 번. 아니, 그보다도 한참 많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목소리는 들렸다. 부엌 쪽에서 하나, 열린 창 너머에서 하나. 조금 뒤에는 학교 담장 바깥 골목에서도 예, 하는 소리가 났다. 마을 사람들이 각자의 집에 앉아, 자기 이름이 들릴 때마다 같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의 공기가 지금도 기억난다. 방에는 백열등 하나가 켜져 있었고, 창밖은 새까맸다.
여든 명이 넘는 사람의 대답들이 이 작은 방을 드나들었다. 십 분 가까이 지났을까, 간신히 호명이 끝났다. 호명을 마친 방송 화면에서는, 마을 소식이 짧게 이어졌다.
- 저수지의 물이 낮습니다. 이번 달 그믐에는 카드 교체식이 있습니다. 감 서리를 조심하십시오.
직후, 방송은 별다른 인사도 없이 꺼졌다. 참으로 불친절한 진행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난데없이 꺼진 화면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이마가 마룻바닥에 닿도록 두 번. 어디선가는 쿵, 하는 소리도 들렸다. 두 번 절한 후, 다들 한참 동안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지수의 작은 등이 어른들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
나는 이해되지 않는 광경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서 있다가, 제일 먼저 몸을 일으킨 이장에게 다가가 물었다. 물어볼 말이 정말 많았지만, 가장 기이했던 건,
- 대체 절은 왜... 아니, 그보다, 절을 왜 두 번씩 하시는 겁니까?
이장은 무릎에 묻은 먼지를 손바닥으로 털었다.
- 선생님께는 두 번 해야지요.
- 선생님이요? 방금 그..., 방송하시던 노인 말씀이세요? 이거 어디서 만드는 방송입니까?
이장이 잠깐 나를 보았다.
- 우리도 몰라요.
- ...그럼 왜 선생님이라고 부르십니까? 아는 분이세요?
이번에는 웃었다.
- 우리도 몰라요.
- 허. 그럼 저 사람은 어떻게 마을 사람들 이름을 다 아는 겁니까?
이장은 다시 웃지 않았다. 대답하기 전에 한 번, 꺼진 TV 쪽을 돌아보았다.
- ...우리도 몰라요.
세 번 같은 대답을 들었다. 더이상 뭘 묻더라도 들려올 대답은 똑같을 것이 선명했다.
이해할 수 없다. 이곳에서 보았던 모든 것을.
방으로 돌아와, 불을 끄고 누워 창밖의 노란 불빛을 세었다. 집집마다 하나씩. 내 숙직실 창은 캄캄한데도, 세다 보면 자꾸 그중 하나를 내 방으로 짚게 되었다.
어디가 내 방이었더라.
4.
이튿날부터 본격적으로 인구 조사를 시작했다. 집집마다 찾아가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세대가 바뀐 일이 없는지 묻는 작업이었다. 조사표와 필기구, 통계청 신분증을 가방에 넣고 하루에 대여섯 집씩 돌았다. 명단리의 집들은 멀리서 보면 고만고만하니 비슷했지만, 가까이 가서 살펴보면 대문 색도 장독대 모양도 전부 달랐다. 적고 나니 당연한 일이겠으나, 그때는 꽤나 놀라웠던 것 같다.
조사가 다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최봉근이라는 노인은 대문을 반 뼘만 열고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통계 그거 다 어디다 쓰는 거냐고, 서울 것들은 종이 쪼가리부터 들이민다고, 문틈으로 한참을 빈정댔다. 나이를 여쭙자 노인은 그제야 처음으로 웃었다. 이번 달로 여든이오. 그러고는 문을 닫았다.
당시 메모했었던 특이사항들을 몇 가지만 적어 보겠다.
첫째. 이 마을 사람들은 자기 나이를 정확히 모른다.
처음에는 시골 어르신들이 으레 그러듯 한두 살쯤 흐리게 말씀하시는 줄 알았다. 허나 막상 생년월일을 물으면 대부분 입을 다물었다.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하면 어디에 뒀는지 모르겠다며 안방으로 들어갔고, 한참 뒤 빈손으로 나왔다.
-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 이번 달로 일흔이지요.
- 생년은요?
- 이번 달로 일흔이라니까요.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이번 달에 생일이 있다는 뜻인 줄 알고 조사표를 훑어 보았는데, 명단리의 6월생은 다섯뿐이었다. 그런데도 만나는 사람마다 이번 달로 예순, 이번 달로 일흔넷, 이번 달로 여든셋이라고 했다.³
둘째. 이 마을에는 사진이 없다.
어느 집에 들어가도 어딘가에는 액자가 걸려 있었으나, 정작 액자 안에 사진이 없었다. 누렇게 바랜 종이,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흰 종이, 사람 이름만 줄줄이 적힌 종이. 당최 왜 걸어두나 싶은 것들만 가득했다.
이장 댁 안방에도 오래된 나무 액자가 하나 걸려 있었는데, 사진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김노경, 박순자, 김지수라는 이름만이 적혀 있었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모양이었다. 나는 이장에게 왜 사진을 걸지 않느냐고 물었다.
- 오래 두면 얼굴이 지워지잖습니까.
잘못 들은 줄 알고 다시 물었다. 이장은 조금 귀찮다는 듯 같은 말을 반복했다. 사진을 오래 걸어두면 얼굴부터 지워진다고. 누구 얼굴이든 그렇고, 이유는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사진 대신 이름을 적어 둔다는 것이었다.
- 이름은 안 지워집니까?
- 예, 이름은요.
이장은 그렇게 말하고 액자의 유리를 소매로 한 번 닦았다.
셋째. 이상한 일이라기보다 자꾸 눈에 밟히던 일이 있었다. 어르신들 가운데 몇몇은 이마 한가운데에 동전만한 자국이 있었다. 거뭇하고 둥근 자국.
오래된 멍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고, 굳은살처럼 단단해 보이는 것도 있었다. 밭일하다 어디에 부딪힌 흔적이겠거니 했지만, 그 많은 사람이 전부 같은 자리를 다치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따로 묻지는 않았다.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기도 했거니와, 하나하나 따져묻기에는 이 마을에 이상한 것이 이미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넷째. 숫자가 맞지 않았다. 조사를 거의 마쳤을 때 내 표에는 85명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장이 첫날 건넨 주민 명단에는 86명. 발령서에는 87명. 한두명 차이나는 것이야 흔히 발생하는 오차였지만, 이렇게 숫자가 전부 달라서야 어디부터 잘못됐는지 짚을 길이 없었다.
집집마다 다시 찾아갔다. 창고와 별채까지 확인했고, 산 아래 혼자 떨어져 있는 집도 두 번 들렀다. 그래도 85명이었다. 이장의 명단과 내 조사표를 한 줄씩 맞춰 보다가, 아직 만나지 못한 이름 하나를 찾아냈다.
김명자.
우리 어머니와 같은 이름이었다. 그 나이대에는 드물지 않은 이름일 것이다. 동그라미를 치고 비고란에 미확인이라고 적었다.
나머지 한 명은 이름조차 알 수 없었다.
_______
³ 공교롭게도, 필자 역시 이번 달로 서른 하나다.
5.
그렇게 마을에서 경황 없이 시간을 보내던, 6월 11일 밤이었다. 그 무렵에는 조사 덕에 마을 사람들 이름이 꽤 귀에 익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날 방송에서는 불리는 이름 하나하나에 얼굴을 맞춰볼 수 있었다.
그날은 방송을 처음으로 휴대전화에 담아 볼 생각이기도 했다. 사망 신고 미제 건이야 서면으로 쓰면 그만이지만, 매일 저녁 8시에 이름만 부르는 방송이 나온다는 대목만큼은 나부터가 못 믿을 이야기였다. 증빙 삼아 찍어 둘 요량으로, 정각에 화면이 켜지는 순간부터 녹화 버튼을 눌러 두었다.
김노경.
예.
박순자.
예.
김지수.
예.
이순임.
예.
김명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방 안도, 부엌도, 창밖 골목도 조용했다. 그동안 사람들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조금 더 숙였다. 누가 시키기라도 한 양, 모두 같은 모양이었다.
노인이 다음 이름을 불렀다.
- 김기환.
나는 무릎 위에 올려둔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김기환은 내 이름이다.
분명 이 마을에 나와 동명이인이 한명 더 있는 모양이었다. 조사표에도, 명단에도 없었으나, 있다고 해서 이상한 건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왜? 통계나 자료는 으레 누락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방 안 사람들이 동시에 눈을 뜨고 나를 보고 있었다. 아무도 대답하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내 차례가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몇 초가 더 흘렀다.
화면 속 노인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웃은 것 같기도 했고, 낡은 영상이 일그러진 것 같기도 했다. 노인은 곧 다음 이름으로 넘어갔다.
- 최봉근.
- 예.
방송이 끝난 뒤 사람들이 절을 올리는 동안 이장 옆에 서 있었다. 절이 끝나자 곧장 물었다. 어째서 명단에 내 이름이 있습니까. 우리 어머니 이름은 또 왜 있습니까. 이장은 무릎을 털며 말했다.
- 내일 말씀드리지요.
더 따져 물으려다가, 관두었다. 피곤했기 때문이었는지, 내 이름이 불렸기 때문이었는지는... 글쎄, 잘 모르겠다.
이튿날은 6월 12일이었다. 아침에 숙직실에서 어젯밤 찍어 둔 것부터 돌려 보았다.
10분 남짓한 영상에는 꺼진 TV와 벽지만 찍혀 있었다. 소리도 비어 있었다. 내 숨소리와, 의자를 고쳐 앉는 삐걱 소리만 이따금 끼어 있을 뿐이었다. 그 많던 대답은 한 마디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영상을 세 번 돌려 보고,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15년 전에 테이프를 찾아 올리겠다던 그 게시판의 글쓴이가 잠깐 생각났다.
조사표를 정리하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벽에 걸린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6월의 달력이었다.
어라.
6월 30일에 붉은 매직으로 큼직한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방송에서 이야기한 그믐날이다. 카드 교체식이란 걸 한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쓰이는 사실이 있었다. 달력에는 '12일'이 통째로 빠져 있었다. 11일 다음 칸은 하얗게 비어 있었고, 그 다음 칸인 13일은 또 정상적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지워진 자국도, 종이를 덧댄 흔적도 없었다. 처음부터 그 날짜만 빼고 찍은 달력처럼 보였다.
휴대폰을 열어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6월 12일.
문득 어머니 말씀이 생각났다.
- 달력을 보아선 안 된단다, 아가.
휴대폰 신호가 끊겼다.
그날 저녁 어머니께 바로 전화를 걸었다. 학교에 한 대뿐인 유선 전화를 간신히 찾아낸 것이 다행이었다.
전화는 요양원 야간 담당자가 대신 받았고, 어머니는 주무시고 계신다고 했다. 아침에 다시 전화하겠다고 말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담당자가 잠깐만요, 하고 나를 불렀던 것도 같지만 통화가 길어지면 마을 사람들이 들을까 봐 먼저 끊었다.
왜 들리면 안 됐던 것이었을까.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아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무엇인지도, 어째서인지도 모르겠는 직감일 뿐이었으나, 내가 숨겼다는 사실은 변함 없이 남아 있다.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날 밤 이상한 꿈을 꾸었다. 어릴 적 살던 집 마루에 앉아 있었다. 부엌에서 어머니가 나를 부르셨다. 밥 시간이 된 것 같았다.
들어가 보니 어머니가 두 분 계셨다. 한 분은 내가 아는 모습이었고, 그 뒤에 서 계신 분은 조금 젊었다. 두 분 다 아무 말씀 없이 웃고 계셨다. 앞에 선 어머니가 파란 감 하나를 주셨다. 아직 익지 않아 단단한 감이었다. 마루로 돌아와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속이 과육이 아니라 종이였다. 종이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잠에서 깬 뒤 한참 동안 내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정말이었다. 지갑을 뒤져 신분증을 꺼내고서야 겨우 확인했다.
김기환.
그 석 자를 몇 번 읽고 다시 누웠다.
다음날 아침 요양원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어젯밤 담당자가 아직도 근무 중이었다.
하지만 담당자는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도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잠시 말을 고른 뒤에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어제 저녁에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듣기로는 밤 9시 20분경이었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큰 고통 없이, 주무시는 것처럼 가셨다고.
나는 그동안 돌봐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곧 내려가겠다고 했다. 담당자는 알겠다고 대답한 뒤 다시 나를 붙잡았다.
- 그런데... 그,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 게 하나 있습니다. 어제 8시쯤 어머님이 잠깐 정신을 차리셔서 아드님을 찾으셨어요. 아직 못 오셨다고 말씀드렸더니, 이미 왔다고 하시더라구요. 아까 우리 아들이 다녀갔다고. 병실에 들어온 분은 없었습니다. CCTV도 확인했습니다만...
- 정신이 많이 흐려지신 것 같아 저희끼리 그렇게 정리했는데... 그래도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다시 감사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벽에는 달력이 걸려 있었다. 12일 칸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어젯밤 여덟 시, 나는 뭘 하고 있었지?
굳이 되짚어보지 않아도 답은 정해져 있을 것이다. 분명 1층에서 <이달의 명단>을 보고 있었겠지. 화면 속 노인은 김명자를 불렀고,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한 뒤 내 이름을 불렀다. 형용하기 어려운, 참으로 좆같은 기분이었다.
바로 이장을 찾아갔다. 이장은 학교 마당 감나무 아래에서 떨어진 잎을 쓸고 있었다.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빗자루를 세워 놓고 먼저 입을 열었다.
- 이 마을에서 태어난 사람이 자기 이름이 새겨진 카드를 돌려주고 나가는 일은 드물지요.
- 그게 무슨...?
개소리하지 말고 알아듣게 말하라고 윽박지르려다가, 숨을 삼키고, 말을 다시 골랐다.
- 카드를 돌려준다는 게 대체 무슨 뜻입니까?
이장은 빗자루 끝으로 흙만 긁었다.
- 어제 제 이름이 왜 방송에 나온 거죠? 어머니 이름은 왜 이 마을 명단에 있고요?!
이장은 한참 뒤에야 빗자루를 멈췄다.
- 기환 씨는 무엇이 궁금하신 겁니까? 어머님 일을 묻고 싶으신 게요?
-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통 모르겠단 말입니다. 하나도 말이 되는 게 없잖습니까.
- 그렇다면 아직 답을 찾을 때가 아닌 겝니다.
이장은 다시 낙엽을 쓸기 시작했다. 더 캐물어 봐야 같은 말만 몇 바퀴 돌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런 시덥잖은 시골 풍습에 놀아날 때가 아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나는 그 말의 무게를 느끼기 위해 재차 곱씹었다.
나는 이장에게 오늘 안으로 마을을 나가겠다고 했다. 급한 일이 생겼다고도. 더 말을 얹고 싶지는 않았다.
내 말을 들은 이장의 빗자루가 멈추었다.
이장은 다시 내 쪽을 돌아보더니 손가락을 들어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손끝이 향한 곳은 마을 입구 쪽이었다.
이장은 그저께 밤 산사태가 나는 바람에 버스가 다니는 길이 막혔다고 했다. 큰길에도 흙이 쏟아져 차가 못 들어오고, 마을 뒤로 산을 넘는 오래된 샛길 하나만 남았다고. 큰길이 복구되려면 최소 몇 주는 걸릴 거라고 한다. 즉, 떠나고 싶으면 직접 걸어 나가야 한다는 소리다.
이장은 그러더니, 혼자 가면 길을 잃기 쉬우니 날이 밝기 전에 지수를 붙여주겠다고 했다.
...누굴 바보로 아는 건가. 어린 애를 새벽에 길 안내로 붙인다고? 기가 차 헛웃음을 내뱉으며 그대로 이장을 지나쳐 직접 버스 정류장까지 향했다.
하지만 이장의 말은 사실이었다. 산비탈 하나가 통째로 무너져 도로를 덮고 있었다. 젖은 흙 사이로 가드레일 윗부분만 조금 보였다. 버스 시간표는 비를 맞아 종이가 불어 있었고, 정류장 의자에는 흙탕물이 고여 있었다. 도저히 나아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걸어서도, 차를 타고도. 이 정도 규모라면, 휴대폰 신호가 먹통이 된 것도 이번 산사태랑 연관이 있을법도 했다.
학교로 돌아오니 이장이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다짜고짜 따졌다.
- 좋아요, 그렇다고 칩시다. 그래도 열두 살짜리 아이를 산길 안내로 보내겠다는 건 무슨 정신나간 소리입니까?
- 어려 보여도 지수가 밤길은 제일 밝답니다.
- 멀쩡한 어른은 없습니까?
- 우리는 마을 바깥에 나가지 않아서 말이요. 같이 간들 도움이 못 될 거요.
- 그럼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굳이 밤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 끌끌, 지수 그 아이는 낮 동안에는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지요. 시간을 내기 어려울 겝니다.
더 캐물으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밤의 산행을 아이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은 도통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나, 이 노인네와 말을 더 섞는다고 해서 다른 답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좋아. 기꺼이 어울려 줄 생각이다. 나갈 수 있다면야. 나가게 해 준다면야.
나가게 해 준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어쩌면 요근래 쓸데없이 괴담이니 공포 영화니 하는 것들이 알고리즘에 떴기 때문이리라. 괜한 상상력을 떨쳐내려 고개를 휘휘 젓고, 다시 숙직실로 향했다.
오늘도 저녁 8시가 되기 전, 나는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또다시, TV 속 노인은 어제와 같은 얼굴로 명단을 읽었다.
김명자.
대답은 없었다.
김기환.
이번에도 입을 다물었다. 방 안의 사람들은 나를 보지 않았다. 다만 내 이름이 지나간 뒤에야 조금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방송이 끝나고 모두 절을 올렸다. 나는 여전히 혼자 서 있었다.
6.
다음 날 동이 트기 전에 지수와 함께 마을을 나섰다. 아이와 함께 간다는 사실이 껄끄러웠지만, 그렇다고 나 혼자 길을 나서는 것도 어려웠으니 이 호의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손전등 하나와 보리차가 든 작은 물병을 들고 왔다. 나는 조사표와 노트북, 옷가지를 가방에 쑤셔 넣었다. 어머니 빈소에 도착할 때까지 씻을 틈이 없을 것 같아 양말도 여러 켤레 챙겼다.
마을 뒤편 산길은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만큼 좁았다. 지수는 돌이 솟은 자리와 진창을 능숙히 넘나들며 휙휙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뒤에서 숨을 몰아쉬면 돌아보지도 않고 보폭만 조금 줄였다. 열두 살짜리에게 뒤처지는 꼴이 민망해 처음 한 시간은 죽어라 따라갔다.
해가 산등성이 위로 올라올 무렵부터 머릿속이 서서히 탁해지기 시작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이 산을 넘어 밖으로 나아가면,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그리고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어야 할지가 점차 흐릿해지는 느낌이었다.
서울 원룸 현관문이 무슨 색이었더라. 사무실 책상 오른쪽에 늘 세워 둔 것이 텀블러였던가, 서류철이었던가. 상사 이름이 뭐더라, 나는 왜 여기 왔었지? 내 이름은-
- 잠깐만 쉬자.
털썩, 바위 옆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나는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냈다. 휴대전화 불빛으로 이름을 확인했다.
김기환.
소리 내어 읽었다.
- 김기환...
- 네.
지수가 대답했다.
- 왜 너가 대답하냐.
- 부르신 줄 알았어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물을 몇 모금 마시고 곧바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두어 시간을 더 가자 사람 키만한 넓은 바위가 길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바위 밑 풀 사이에는 작은 경계석이 박혀 있었다. 획이 반쯤 닳았지만 세 글자는 읽을 수 있었다.
[ 명단리 ]
- 여기부터는 마을 밖이에요. 바위 넘어가시면 돼요.
- 고맙다, 지수야. 혼자 돌아갈 수 있겠어? 원래는 아저씨가 데려다줘야 하는 건데... 미안하다.
- ...
대답 없이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는 지수에게서 손전등을 받아 들고 가방부터 바위 너머로 던졌다. 가방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위 너머 흙바닥에 떨어졌다. 바위를 오르기 위해 오른발을 들었다.
헌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상하다.
내 몸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산길을 걸었다지만 아직 허벅지에도 힘이 충분히 남아있었고, 무릎도 제대로 움직였다. 그럼에도 발끝이 경계석을 지나는 순간, 발목 아래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한 걸음 물러나 옆으로 조금씩 움직여 보았다. 이상 없음. 다시 앞으로 향했다. 그대로 정지.
이번에는 신발을 벗어 보았다. 그러나 맨발이어도 마찬가지였다. 뒷걸음으로도 가 보고, 바위를 짚고 몸부터 밀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내 다리는 꿈쩍도 않았다.
나를 아리송하게 바라보던 지수가 바위를 가볍게 넘었다. 바깥쪽에 떨어진 내 가방을 주워 들고 이쪽을 보았다.
- 지수야, 이쪽으로 다시 넘어와 볼래?
내가 묻자 아이는 가방을 든 채로 바위를 도로 넘어왔다. 작은 운동화가 경계 양쪽을 아무렇지도 않게 오갔다.
그치. 이게 정상이다. 내 쪽이 비정상이라는 건 더없이 확실했다.
- ...지수야. 이게 무슨 상황인지 혹시 아니?
- 저도 모르겠어요.
- 할아버지가 뭐라고 말씀하신 건 없어? 뭐라도 좋으니까.
- 저보고 끝까지 모셔다드리라고만 했어요.
- 저기 너머 읍내까지 혼자 갈 수 있겠어? 혹시 가서 사람 좀 불러와 줄 수 있을까?
- 저도 다른 마을로는 가 본 적이 없어서...
지수는 정말 모르는 얼굴이었다. 하긴, 그것도 그랬다. 당장 열두 살짜리 꼬맹이를 그대로 산 너머로 보낼 수는 없었다. 초행이라면 더더욱.
아찔하다.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달리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거니와, 여기서 더 버틴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 이 영문 모를 상황이 귀신인지, 도깨비인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모르는 미지의 자연 현상 탓인지에 대해서는 일말의 호기심조차 일지 않았다.
어서 이 마을에서 나가야 한다. 오직 그 생각만이 더더욱 굳게 다져지고 있을 뿐이었다.
지수와 함께 학교로 돌아온 것은 이미 해가 중천에 뜬 후였다. 이장은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알고 있었습니까?
-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희는 이 마을에서 나가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 그게 무슨...
- 김기환 씨도 이제 명단리에 돌아오신 게로군요.
그래,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대꾸하고 싶지 않아 이장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곧장 마을회관으로 들어섰다. 나는 일전에 찾아 두었던 유선전화로 112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차례 이어지다, 드디어 전화가 연결되었다.
- 안녕하세요, 저는 여기 명단리에 있는 김기환이라고
- 여보세요?
- 아, 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지금 명단리에
- 여보세요?
- 거기 경찰서죠?
- 네, 무슨 일이십니까?
- 제가 지금 여기 명단리
- 여보세요?
덜컥. 그대로 전화가 끊겼다.
창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유난히 파랗다.
그 이후의 기억은 잘 없다. 대신, 이메일을 한 통 받았었다는 것 정도만 어렴풋이 떠오른다.
이메일은 요양원에게서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⁴ 어머니의 발인은 6월 15일 아침, 나 없이 치러졌다는 내용이었다.
아마 그동안 돌봐 주셔서 감사하다는 식으로 답장을 보냈을 것이다. 혹은 아예, 아무 답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이메일을 어디서 확인했더라.
또 이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면, 왜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단 하나도.
_______
7.
그 뒤로 6월 30일까지의 기억은 여기저기 누락된 곳이 많다. 독자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한다.
조사표만 보면 그동안에도 나는 일을 했던 것 같다. 수정한 주소가 있고, 새로 받아 적은 주민등록번호가 있으며, 유선전화 통화 기록에는 군청과 경찰서 번호가 몇 차례씩 찍혀 있었다. 신발 밑창에는 산길의 붉은 흙이 말라붙어 있었다. 어딘가를 또 다녀온 모양인데, 어디까지 갔다가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숙직실 문을 두드린 것은 지수였다.
- 조사관 아저씨. 할아버지가 내려오시래요.
- 무슨 일인데?
- 오늘이 그믐이잖아요.
그믐.
- 지금 몇 시니?
- 곧 여덟 시요.
지수는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1층 회의실에는 마을 사람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반사적으로 머릿수부터 세었다. 85명. 내가 조사표에 적어 넣은 사람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와 있었다. 평소에는 각자 집에서 방송을 보던 이들까지 교실 두 칸짜리 방 안에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첫날과 마찬가지로 키가 작은 사람부터 앞에 앉아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모두가 흰 종이 카드 한 장씩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당 펌프에서 손을 씻고 들어온 모양인지 손끝은 젖어 있었고, 몇몇 카드의 가장자리는 물을 먹어 조금씩 휘어 있었다. 카드 앞면에는 각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7시 59분.
초침이 한 바퀴를 돌자 TV가 켜졌다.
화면 속 노인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김노경. 예.
박순자. 예.
김지수. 예.
그 뒤로도 이름과 대답이 차례대로 이어졌다. 나는 이름 하나가 불릴 때마다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총 85개.
화면 속 노인이 잠깐 입을 다물었다.
- 김명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 김기환.
나 역시 입을 다물었다.
평소라면 이쯤에서 저수지니 감 서리니 하는 마을 소식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노인은 허리를 조금 고쳐 앉더니, 전에 없던 말을 꺼냈다.
- 이달에 상 받으실 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7-1.
상.
어릴 적 마루 끝에서 어머니가 나를 부르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 김기환 씨입니다.
의자 끄는 소리가 한꺼번에 났다.
85명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앞줄의 지수가 먼저 무릎을 꿇었고, 이장과 박순자, 그 뒤에 선 사람들까지 차례로 바닥에 엎드렸다.
이마가 마룻바닥에 닿도록 두 번.
첫 번째 절에서는 옷자락이 바닥을 쓸고 무릎이 부딪히는 소리라도 났다. 두 번째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마을의 85명이 모두 이마를 댄 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의자를 걷어차듯 밀고 일어섰다.
- 지,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 일어나세요. 다들... 일어나 주세요.
내 목소리만 빈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TV는 어느새 꺼져 있었다.
한참 뒤에야 사람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켰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릎의 먼지를 털고, 자기가 앉았던 의자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그대로 이장에게 다가갔다.
- 방금 그건 뭡니까? 절은 왜 하고, 상은 또 무슨 상입니까?
- 올라가셔야지요.
- 올라간다구요?
이장은 학교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 상은 3층에 차려 두었습니다.
아하, 그렇구나.
7-2.
3층 문은 열려 있었다.
낮에 보았던 텅 빈 흰 방 한가운데에 낮은 상이 놓여 있었다. 향로와 촛대, 식어 굳은 밥 한 그릇.
밥 한가운데에는 숟가락이 곧게 꽂혀 있었다. 향은 피우지 않았는데도 방 안에는 눅눅한 향 냄새가 났다.
상 뒤에 흰 종이가 한 장 세워져 있었다.
[ 故 김명자 ]
내가 가 보지도 못한 어머니 빈소를,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학교 3층에 그대로 옮겨 놓은 꼴이었다.
-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저한테...
대답은 없었다.
상 뒤쪽 벽에는 첫날 보았던 그 달력이 걸려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한 장짜리였다. 넘길 다음 장 없이, 유월 한 장만 못에 걸려 있었다. 위쪽에 큼직하게 박힌 연도는 올해가 아니었다.
1986년.
- 달력을 보아선 안 된단다, 아가.
어머니 목소리가 떠올라 눈을 돌렸다. 날짜 몇 개가 손때로 거뭇하게 닳아 있는 것은,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했다.
계단에서 발소리가 이어졌다. 이장을 앞세운 마을 사람들이 한 줄로 올라오고 있었다. 모두 아까 들고 있던 카드를 그대로 받쳐든 상태였다.
방 안으로 들어선 이들은, 입구쪽에 쌓여 있던 비어 있는 흰 종이 카드 더미 앞에 일렬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장이 맨 먼저 자기 카드를 왼쪽에 내려놓고, 오른쪽에서 새 카드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그 뒤로 박순자, 정용식, 최봉근. 사람들은 한 명씩 똑같은 동작을 취하고는 벽 쪽으로 물러났다.
- 이게 다 대체 뭐냐니까요...!?
몇 번을 물어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누구 하나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마지막으로 지수가 카드를 바꾸어 들었다. 어른들은 하나둘 계단으로 내려갔고, 바닥에 쌓여 있던 흰 카드는 이제 한 장만이 남아 있었다. 아이만 내 뒤에 그대로 서 있었다.
누렇게 삭은 카드였다.
앞면에는 김명자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위를 가로질러 김기환이라고 한 번 더 쓰여 있었다. 아래쪽 이름은 먹물이 번져 획이 군데군데 흐렸고, 내 이름은 파란 볼펜이었다.
파란 글씨는 어머니 필체였다. 초등학교 때 준비물 목록을 공책 귀퉁이에 적어 주던 글씨. 받침을 유난히 작게 쓰고, '환' 자의 마지막 획을 길게 빼는 버릇까지 똑같았다.
카드를 집어 들고, 뒤집었다.
[ 6월 12일. 오후 8시. 207호. ]
띵.
복도 끝에서 종소리가 났다. 나는 홀린듯 방을 나서, 복도로 향했다.
이 낡은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복도 끝은 본래 외벽이었으며, 문이 들어설 깊이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까까지 흰 벽뿐이던 자리에 회색 접이문이 생겨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그리고, 병실이 있었다. 형광등 아래, 어머니가 침대에 누워 계셨다.
나는 카드를 손에 쥔 채 그쪽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이르자 지수가 뒤에서 내 소매를 붙잡았다.
- 아저씨.
- 이거 놔.
- 누가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마세요.
- 왜?
아이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손아귀를 더 강하게 쥘 뿐이었다.
- 잊지 마세요.
나는 지수의 손을 떼어내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등 뒤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8.
병실 벽시계는 7시 59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머니는 살아 계셨다.
숨을 쉴 때마다 얇은 이불이 조금씩 들썩였다. 코에 끼운 산소호흡기에서는 가느다란 바람 소리가 났다. 나는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어머니 손을 잡았다. 손바닥 안쪽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 엄마.
어머니가 눈을 떴다.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웃으셨다.
- 우리 기환이 왔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지만, 분명 그 목소리였다. 어머니는 내 손등을 몇 번 두드리고 물으셨다.
- 저녁은 먹었니.
먹었다고, 나는 거짓말을 고했다.
한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휴대전화를, 주머니를 뒤적여 꺼냈다. 화면에는 6월 12일 오후 7시 59분이라고 떠 있었다. 통화권 이탈. 나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침대 옆 서랍장에 내려놓았다.
8시가 되자 병실 한쪽에 달린 TV가 스스로 켜졌다.
<이달의 명단>.
파란 화면 위로 흰 글씨가 떠오르고, 곧 눈을 감은 노인이 나타났다. 이름마다 예, 하는 소리가 병실 벽 너머에서 들렸다. 천장 위에서도 났고, 굳게 닫힌 창문 바깥에서도 났다.
어머니가 내 손을 세게 잡았다.
- 가만히 있어라.
이유를 물을 틈이 없었다.
이름 85개가 모두 지나간 뒤, 노인이 어머니 이름을 불렀다.
- 김명자.
어머니의 입술이 조금 벌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어머니는 놀라지도 않았다. 내 손등 위에 자기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대답은 없었다.
- 김기환.
이번에는 어머니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나도 대답하지 않았다.
화면은 꺼지지 않았다. 눈을 감은 노인이 그대로 앉아 기다렸다. 8시 20분이 되자 병실 바깥에서 종소리가 났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문 너머에는 학교 3층의 흰 방이 보였다. 방금 전까지 보였던 장례상 위의 촛불만 켜져 있었고, 이장과 지수가 문 옆에서 우리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나는 곧바로 침대 난간을 내렸다.
- 나가자, 엄마.
- 너나 가라.
- 바로 앞이야. 내가 업고 갈게.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세우자 앙상한 팔이 내 어깨에 걸렸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가벼웠다. 성큼성큼, 한 발씩 문 쪽으로 옮겼다.
문턱까지 두 걸음 남았을 때 어머니 무릎이 꺾였다.
나는 어머니를 안은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이 갑자기 가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침대 쪽에서 산소호흡기 호스를 끌어와 어머니의 코에 끼워넣었다.
- 아저씨, 나오세요!
지수가 문 너머에서 소리쳤다.
- 잠깐만. 숨만 좀 돌아오면 나갈게. 잠깐만 기다려!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정확히 두세 걸음이면 문을 넘을 수 있었다. 어머니를 내려놓고 혼자 뛰었다면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품에는 어머니가 있다.
장례마저 치러드리지 못한, 어머니가.
문이 닫혔다.
어머니를 다시 침대에 눕히고 호출 버튼을 눌렀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휴대전화로 119를 눌러 보았지만 연결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째깍째깍, 벽시계만이 성실하게 움직일 뿐이었다.
어머니는 9시 20분에 돌아가셨다.
처음에는 잠든 줄 알았다. 가슴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뒤 침대 위로 올라가 심폐소생술을 했다. 몇 번이고 가슴을 눌렀고, 이름을 부르고, 제발 눈 좀 떠 보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무 대답도 없었다. 나는, 병상 옆에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병실의 형광등이 한 번 꺼지고, 다시 불이 들어온다.
벽시계는 7시 59분을 가리키고 있다.
어머니가 병상에서 말씀하신다.
- 또 왔니.
- ...뭐?
- 아까 갔다가 왜 또 다시 왔어?
방금 왔다고 대답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요양원 담당자는, 어머니가 아들이 다녀갔다고 말씀하셨다고 했었다. 불쾌했다.
침대 옆 식탁에, 아까는 없던 것이 놓여 있다. 놋그릇에 담긴 흰 밥 한 그릇. 모락모락 김이 오르고 있다.
3층 장례상 위에 있던 것과 같은 놋그릇이었다. 그릇을 들어 보자, 아래엔 흰 카드가 한 장 깔려 있었다.
[ 정용식 ]⁵
상에 올랐던 밥에는 손을 대지 마시오. 숙직실 액자의 셋째 줄이 스쳐 지나갔다.
- 배가 고프구나.
어머니가 베개에서 고개를 들고 계셨다.
숟가락으로 밥을 덜어 입가에 가져다 드렸다. 어머니가 첫술을 넘기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세 술을 뜨고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셨다. 산소호흡기에서 나던 쉬익, 쉬익 하는 바람 소리가 한결 낮아져 있었다.
8시가 되자 TV가 켜졌고, 노인이 이름을 읽기 시작했다.
김노경. 예. 박순자. 예. 김지수. 예. 이순임. 예.
정용식의 차례는 오지 않았다. 기다려도, 끝까지.
화면 속 노인은 김명자를 부르고, 김기환을 부르고, 기다리다가, 꺼졌다.
9시가 넘어 창밖의 어둠이 짙어졌다. 커튼을 걷자 학교 마당이 내려다보였다. 감나무 아래에 마을 사람들이 줄을 맞춰 서서 병실 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정용식의 집은 마을 초입에서 세 번째, 지붕이 낮은 집이었다. 기억을 되짚어 창 밖에서 그 집을 찾아보았다.
저기다. 창문이 캄캄한 집. 불이 들어와 있지 않은 집.
조사 수첩을 폈다. 정용식의 줄에 동그라미를 치고, 비고란에 적었다.
미확인.
_______
⁵ 정용식. 78세. 마을 초입 세 번째 집. 세대주. 6월 5일 조사. 툇마루에 방석을 내주었고, 조사가 끝나자 감나무 얘기를 오래 했다. 밤마다 감 서리를 도는 놈이 있어 마당에 나와 지킨다고 했다.
9.
그 뒤의 일이 몇 번이나 되풀이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7시 59분부터 9시 20분까지. 그 안에서 어머니는 매번 돌아가셨고, 형광등이 깜빡이면 다시 숨을 쉬셨다. 가슴의 검붉은 멍만은 지워지지 않고 계속 커지고 있다. 내가 심폐소생술을 했던 자리였다.
한번은 문이 열렸을 때 혼자 나가려 한 적도 있었다. 문턱에 한쪽 발을 올려놓자, 등 뒤에서 어머니가 기침을 하셨다. 뒤이어 침대 난간이 덜컹거렸다. 나는 결국 돌아갔다.
어머니를 업고 뛴 적도 있다. 방송이 시작되기 전부터 업고 문 앞에 서 있다가, 8시 20분에 문이 열리자마자 달렸다. 어머니 팔이 내 목에 걸려 있었고, 숨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들렸다.
문턱을 넘는 순간 형광등이 꺼졌다.
다시 불이 들어왔을 때 나는 침대 옆에 서 있었다. 품 안이 이상하게 가벼웠다. 내려다보니 흰 이불 한 장만 안겨 있었다.
- 그것 좀 덮어다오. 춥다.
어머니는 침대에 누운 채 나를 보고 계셨다.
그 뒤로는 나가려 하지 않았다.
그릇은 계속 들어왔다. 7시 59분에 눈을 뜨면 식탁 위에 놋그릇이 있었고, 밑에는 매번 다른 카드가 깔려 있었다.
[ 최봉근 ]⁶
한번은 그릇 밑에서 카드를 살며시 빼 보았다. 이름이 적힌 카드를 서랍에 넣자 어머니의 숨이 금세 가빠졌다. 손톱 밑이 파래질 때까지 두고 보다가, 도로 그릇 밑에 밀어 넣었다. 숨이 돌아왔다.
대문을 반 뼘만 열던 노인. 나는 그릇을 어머니 앞으로 밀었다. 어차피 다들 3층으로 올라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건 그들의 선택이다.
내 선택이 아니다.
그날 저녁, 최봉근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며칠인지 모를 며칠 뒤에는, 그릇 밑에서 다른 이름이 나왔다.
[ 박순자 ]⁷
첫날 저녁의 김치찌개. 지수의 숟가락에 나물을 올려 주던 손. 나는 그릇을 든 채로 오래 서 있었다. 김이 다 식도록 서 있었다.
- 안 줄거니?
드렸다.
다음 일들은 잘 이어지지 않는다.
눈을 뜨면 7시 59분이었고, 병실 구석에 쌓아 둔 카드는 그때마다 늘어나 있었다. 밤이 되면 창밖의 노란 불이 줄어 있었고, 나중에는 불빛보다 어둠이 넓었다.
어머니는 날로 상태가 좋아지셨다. 베개에 기대지 않고 혼자 앉으시는가 하면, 목소리가 더이상 갈라지지 않기 시작했다. 사과를 깎아 먹고 싶다고 하신 날도 있었다.
한번은 어머니께 물었다. 엄마, 박순자 아주머니 기억나? 같이 학교 다녔다며.
어머니는 나를 물끄러미 보셨다.
- 그게 누구니.
나는 수첩을 꺼내 지워진 이름들을 적기 시작했다.⁸ 어머니가 밥이 식는다고 하셔서, 중간에 덮었지만.
_______
⁶ 최봉근. 80세. 조사 사흘째까지 문을 열어 주지 않던 노인. 나흘째 되던 날 문틈으로 종이컵에 탄 믹스커피를 내밀었다. 뜨거우니 조심하라고 했다. 나이는 끝내, 이번 달로 여든이라고만 했었다.
⁷ 박순자. 74세. 김노경의 처. 처음 본 조사관의 밥그릇에 김을 얹어 주고, 저녁 내내 밥이 모자라지 않느냐고 연신 물었다.
⁸ 이순임. 강복례. 김말선. 정끝순. 조돈식. 오필녀. 이갑수. 한정순. 김유복. 이점례. 박노마. 최성만. 윤달막. 조복동. 임오목. 안순덕. 황부용. 진말녀. 백남수. 손귀례. 오세동. 곽만석. 나정님. 배일수. 심간난. 편옥분.
9-1.
서랍장 맨 아래 칸에는 어머니의 짐이 있었다. 요양원에서 옮겨 온 그대로였다. 성경책, 안경집, 비닐 지퍼백 하나.
지퍼백 안에는 조그마한 팔찌가 들어 있었다. 병원에서 신생아 손목에 채우는 흰 플라스틱 팔찌였다. 김명자 님 아기. 2.1kg. 그리고 날짜.
1986년, 6월.
3층 벽의 달력이 떠오른다.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보았다. 먹물로 쓴 김명자 위에, 파란 볼펜으로 쓴 김기환.
팔찌를 지퍼백에 도로 넣고, 서랍을 닫았다.
그날도 8시 20분에 그릇이 들어와 있었다. 나는 그릇을 어머니 앞으로 밀었다.
어느 저녁에는 노인이 명단을 읽다 말고 목소리를 바꾸었다. 어린이용 방송이라도 하듯 높고 둥근 소리였다.
- 여러분, 오늘도 빠짐없이 나오셨지요?
벽 너머가 조용했다. 노인은 제 목소리로 돌아와 다음 이름을 불렀다.
어느 8시 20분에는 문 너머 흰 방에 이장이 서 있었다. 두 손을 배 앞에 모으고, 가볍게 입을 열었다.
- 만약 4번 항목을 발견하셨다면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본 수칙에는 4번 항목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재확인하려 하지 마십시오.
이장은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두 번 절했다. 문이 닫혔다. 수긍이 가는 말이었다.
다음 저녁의 방송은, 나는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받아 적었다. 그야, 이제 부르는 이름이 굉장히 적어졌으니까. 손을 떨지 않으면서도 모두 받아적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김노경.
예.
김지수.
예.
서금자.
예.
우종달.
예.
하영순.
예.
표덕만.
예.
남계순.
예.
문정옥.
예.
국승태.
예.
김명자.
(대답 없음)
김기환.
(대답 없음)
저수지의 물이 낮습니다. 감 서리를 조심하십시오.
적고 계시지요. 계속 적으십시오.
나는 수첩을 덮고 그날 밤에는 다시 펴지 않았다.
9-2.
이윽고 방송이 부르는 이름이 셋뿐인 저녁이 찾아왔다.
- 김지수.
마당 어디선가 아이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 예.
- 김명자.
어머니는 창 쪽으로 고개만 돌리셨다.
- 김기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띵.
8시 20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문 너머 흰 방에 지수가 서 있었다. 장례상의 촛불이 아이의 얼굴 반쪽을 비추고 있었다.
- 아저씨.
- ...지수야.
- 이제 나오세요.
아이의 눈이 병실 안을 천천히 훑었다. 침대를, 식탁을, 구석에 쌓인 카드 무더기를. 다 보고 나서도 아이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 다들 어디 갔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식탁 위에는 놋그릇이 놓여 있었다. 다른 날보다 작은 그릇이었다. 밥도 반 그릇 뿐이었다. 누군가 밥을 1인분 덜 했다.
나는 그릇을 들었다. 아래에는 여지없이 흰 카드가 있었다.
[ 김지수 ]
고개를 들자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내 손의 카드를 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침대 난간을 잡고 두 다리를 바닥으로 내리는 소리가 났다. 혼자서. 처음으로.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지수는 물러서지 않았다. 문틈이 좁아지는 동안 아이가 말했다.
- 잊지 마세요.
문이 닫혔다.
등 뒤에서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 얘, 밥 안 줄 거니?
10.
눈을 떴을 때, 벽시계는 7시 59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8시에 TV가 켜졌다. 노인은 두 이름을 불렀다.
- 김명자.
- 김기환.
지수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침대에서 일어나셨다.
부축 없이, 난간도 잡지 않고. 침대 밑을 더듬어 슬리퍼를 찾아 신고, 창가까지 걸어가셨다. 산소호흡기 호스는 코에서 빠진 채 침대 위에 늘어져 있었는데, 숨소리는 고르고 깊었다.
안도했다.
창유리에 비친 내 얼굴에서 애써 눈을 돌렸다.
창밖은 캄캄했다. 노란 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학교 마당에도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8시 20분.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이번에 보인 풍경은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문 너머는 건물 3층이 아닌 불 꺼진 엘리베이터 안이었고, 천장의 전등 하나만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바닥에는 누렇게 변한 카드들이 발목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어머니가 창가에서 고개를 돌리더니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환자복 차림으로, 어머니는 문 앞까지 걸어가셨다. 빈손이었다.
- 엄마...?
어머니가 한 번 돌아보셨다. 입술이 움직였으나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대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셨다. 발밑에서 카드가 바스락거렸다.
나도 뒤따르려 했지만, 발끝이 문턱을 지나는 순간 다리가 굳었다. 경계석 앞에서처럼, 무릎 아래가 더는 나가지 않았다.
주머니 속에서 카드 모서리가 손끝에 닿았다. 손을 뻗어도 어머니 옷자락에는 닿지 않았다.
- 엄마, 잠깐만...!!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가 위로 갔는지 아래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움직이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기에.
이후 9시 20분까지 병실에는 나 하나뿐이었다.
형광등이 꺼졌다가, 다시 들어왔다.
7시 59분.
침대는 비어 있었다. 베개에는 누가 누웠던 자국도 없었고, 산소호흡기 호스는 처음부터 쓰지 않은 것처럼 가지런히 말려 있었다.
8시가 되자 TV가 켜졌다.
노인은 나를 불렀다.
- 김기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_______
⁹ 김지수. 12세. 세대주 김노경의 손녀. 부모 칸은 비어 있다. 조사 때는 끝까지 말이 없다가, 내가 마당을 나설 때 따라 나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잊지 마세요, 라고 했다. 인사성이 밝은 아이였던 것 같다.
11.
시계는 여전히 7시 59분으로 돌아온다. 8시에는 방송이 나오고, 노인은 한 이름을 부르고, 기다리다가, 꺼진다. 8시 20분에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문 너머는 다시 학교 3층의 흰 방이다. 상 위의 촛불도 그대로다. 그릇은 이제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몇 번이고 나가 보려 했다. 걸어서도 가 보고, 기어서도 가 보았다. 문턱을 넘으려는 순간에는 어느 자세로 있든 몸이 그대로 굳었다. 대신 의자와 이불, 약 봉투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건너갔다.
종이도 잘만 넘어간다.
어느 7시 59분에는 문틈에 종이가 한 장 끼워져 있었다. 등사기로 민 가정통신문. 학부모님께. 유월 급식 식단표. 날짜 칸마다 흰밥. 흰밥. 흰밥. 12일 칸만 비어 있다. 준비물: 숟가락. 결석생은 급식에서 제외됩니다. 급식에서 제외된다니, 매정하기도 해라.
접어서 카드 무더기 밑에 넣었다. 다음 7시 59분에 그것은 도로 문틈에 끼여 있었다. 접은 자국까지 그대로였다. 따라서 다시 접어서 카드 무더기 밑에 넣었다.
8시의 노인은 요즘 잡소리를 많이 한다.
- 힘드시지요. 저도 이 일을 오래 했습니다.
- ...
- 처음에는 다들 그릇을 엎습니다. 나중에는 다들 뭐라고 하는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모른다. 모른다고 대답할 뻔했다. 입을 다물고 속으로 외웠다. 하나. 방송을 거르지 마시오. 둘. 대답은 자기 이름 호명시에만, 한 번만, 셋. 상에 올랐던 밥에는-
넷.
넷은 없다. 넷은 없습니다. 재확인하려 하지 마십시오.
어느 저녁에는 노인이 말했다.
-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나도 잘 모르겠다. 처음에는 순서대로 적어 보려 했다. 그러나 몇 번을 다시 써 봐도 순서가 자꾸 어긋나버린다.
또 언젠가는, 8시 20분에 문이 열렸을 때, 문턱 안쪽에 카드가 쌓여 있었다. 앞면은 하나같이 낯익은 이름이었다. 뒷면은
예.
예.
예.
예.
예.
예.
예.
예.
예.
예.
예.
예.
예.
예.
예.
예.
예.
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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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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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예.
예.
예.
예.
예.
예.
예.
예.
예.
예.
내 글씨였다. 그러나,
[남양주중앙병원장례식장 이용 안내]
고인 성함:
빈소: 3층, 3호실
발인: 미정
상주: 김기환
(여기부터 몇 장은 받지 못한 채로 비어 있다. 정말 애석하게도.)
그릇은 들어오지 않는다. 밥은 1인분 덜 됐다. 어머니가 첫술을 뜨는 것을 보아야 나도 숟가락을 드는데, 어머니는 안 계시고, 그러면 나는 숟가락을 못 들고, 이치에는 맞는데, 배가 고프다. 배가 고픈 것은 누구일까?
(흰 방. 촛불.)
(작은 놋그릇.)
지수: 아저씨.
나:
지수:
여러분, 오늘도 빠짐없이. 오늘도 빠짐없이 출석하였으므로 이 상을 줌. 상은 3층에 차려 두었습니다. 올라가셔야지요. 기환아, 상
요즘도 눈을 감으면 마루가 보인다. 김이 오르는 국그릇, 반들반들 닳은 숟가락. 어머니는 내가 첫술을 뜨는 것을 보고 계셨다.
(지금 몇 시입니까.)
7시 59분이다. 7시 59분이었다. 7시 59분일 것이다.
(따라서 확인하지 마십시오.)
12.
오늘은 문이 열렸을 때, 상 위에 봉투가 하나 놓여 있었다.
누렇게 바랜 작은 편지봉투였다. 모서리에는 남양주중앙병원장례식장 보관 도장이 흐리게 찍혀 있었고, 앞면에는 내 이름이 파란 볼펜으로 적혀 있었다. 받침을 작게 쓰고, '환' 자의 마지막 획을 길게 빼는 글씨였다.
봉투를 뒤집자 뒷면에 날짜가 적혀 있었다. 올해 4월 19일.
내가 발령서를 받은 것은 5월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달력을 보지 말라는 전화를 받은 것은, 그날 저녁이었고.
봉투를 뜯는 동안 문 너머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85명이 한꺼번에 몸을 돌릴 때 나던 그 소리였다.
편지에는 오직 한 줄.
- 기환아, 상 받아라.
(대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