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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나는 오늘 어머니를 잡수셨다.

익명
2026-10-20 13:39

축일(祝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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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어머니를 잡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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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이상한가. 다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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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어머니를 잡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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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지 않다. 한국어의 문제다.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이 틀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문장에는 주어가 두 개 있다. '나는'의 나와, '잡수셨다'의 누군가. 잡수시다는 '먹다'의 존칭이니까, 나보다 높은 무언가가 어머니를 먹었다는 뜻이다. 나는 그것을 오늘 했다. 내가 한 것은 '잡수시게 한' 행위이고, 잡수신 것은 나보다 높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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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댓말이란 편리하다. 위계를 문법에 새겨 넣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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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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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3대째 같은 자리에 있다. 경기도 ██면. 도로명 주소가 생기기 전에는 번지가 있었고, 번지가 생기기 전에는 이름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이름을 알고 계셨다. 아버지도 아셨다. 어머니는 몰랐다. 어머니는 외부에서 시집온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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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마당 한가운데에는 느티나무가 있다. 수령 사백 년쯤. 군청에서 보호수로 지정하겠다고 왔을 때 할아버지가 돌려보냈다. 측량을 하겠다는 사람이 왔을 때는, 그 사람이 나무 아래에 서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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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밑동에는 구멍이 있다.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나는 한 번 그 앞에 가 본 적이 있다. 여섯 살이었다. 구멍 안에서 바람이 나왔다. 위로 부는 바람이 아니라 아래로 빨려드는 바람이었다. 내 머리카락이 구멍 쪽으로 당겨졌다. 할아버지가 뒤에서 내 어깨를 잡고 끌어당기면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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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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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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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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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내가 열일곱 때였다. 유언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아버지에게 한 것이고, 하나는 나에게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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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네가 넣어라."

​

나에게: "네가 닫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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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물었다. 뭘 넣고 뭘 닫느냐고.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밤 아버지는 마당에 나가서 느티나무 앞에 한 시간 동안 서 있었다. 들어와서는 소주를 석 병 마시고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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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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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물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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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어야 해. 떠나면 잊어. 잊으면 굶어. 굶으면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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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문장. 완벽한 논리. 전제 하나만 받아들이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따라오는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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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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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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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1년에 두 번 나무에게 밥을 줬다. 동지와 하지. 밥이라고 쓰긴 했지만 쌀밥은 아니었다. 면사무소 뒤편 도축장에서 가져오는 것이었다. 소의 것일 때도 있고, 돼지의 것일 때도 있었다. 한 양동이 분량. 아버지는 그것을 구멍 안에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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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을 때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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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깊은 곳에 떨어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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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받는 소리였다. 축축하고, 부드럽고, 능동적인 소리.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올라와서 맞이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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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부을 때 항상 고개를 돌렸다. 구멍 안을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한번은 내가 물었다. 안에 뭐가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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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한참 동안 나를 보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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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 할아버지도 모르셨다. 증조할아버지도 모르셨을 거다. 아는 건 하나야. 먹으면 가만있어. 안 먹으면 안 가만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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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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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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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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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찬장에서 낡은 장부 같은 것을 꺼내 보여줬다. 세로쓰기 한문이었다. 읽을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았지만, 반복되는 한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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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食. 먹을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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足. 넉넉할 족.

​

安. 편안할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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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이면 넉넉하고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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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 다른 글씨로, 아마 다른 세대가 쓴 것으로 ㅡ 이런 내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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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丑年。 不食。 村三十二口滅。 餘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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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 먹이지 않았다. 마을 서른두 명 멸. 남은 자 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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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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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가 죽은 건 3년 전이다. 사인은 간경화였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하지가 지나갔다. 나는 혼자서 처음으로 양동이를 들고 나무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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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은 기억보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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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커져 있었다. 어린 시절에 봤을 때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크기였는데, 지금은 두 사람이 나란히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벌어져 있었다. 나무가 자라면서 구멍도 커진 건가. 아니면 안에 있는 것이 커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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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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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가 달랐다. 예전에 아버지가 부을 때 들었던 소리보다 ㅡ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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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했다. 빨리 받아먹는 소리. 배고픈 것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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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동이를 다 비우고 돌아서려는데, 구멍 안에서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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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목소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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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사람 목소리를 '재생하는' 소리 같았다. 테이프를 너무 여러 번 틀어서 음질이 나빠진 것처럼, 원래는 말이었을 것이 의미를 잃고 소리로만 남은 것. 높낮이의 패턴은 한국어 같았다. 하지만 단어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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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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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이 마지막에 낸 소리는, 분명하게, 내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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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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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뒤로 양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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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이 하나로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두 개를 부어야 했다. 그 다음 하지에는 세 개. 올해 동지에는 다섯 개를 부었는데도, 구멍에서 바람이 빨려드는 것이 멈추지 않았다. 굶주린 바람. 아래로 당기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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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축장 사람이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이 가져가서 뭐 하느냐고. 나는 거름으로 쓴다고 했다. 그 사람은 믿지 않는 눈으로 나를 봤지만, 돈을 받고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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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하지. 6월. 나는 양동이 여섯 개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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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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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번째를 붓는데, 구멍에서 손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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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 말을 다시 써야 한다. 구멍에서 손이 올라왔다. 손이다. 사람의 손. 다섯 개의 손가락이 있고, 손톱이 있고, 손금이 있는 손. 하지만 색이 없었다. 흰 것도 검은 것도 아니고, 색이라는 속성 자체가 빠져 있는 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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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이 양동이의 가장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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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양동이를 놓고 세 걸음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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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양동이를 구멍 안으로 끌어당겼다. 양동이째 가져갔다. 스테인리스 양동이. 안에 남아 있던 것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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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구멍 안에서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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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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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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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나는 이해했다. 장부에 적힌 것의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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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가 왜 그런 유언을 남겼는지. 아버지가 왜 술을 마셨는지. 증조할아버지의 증조할아버지가 왜 이 자리에 집을 짓고 떠나지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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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가문은 사육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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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사육사라는 말도 틀리다. 사육사는 동물을 먹이는 사람이고, 저것은 동물이 아니다. 정확한 단어가 없다. 제관(祭官)이 가장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제사는 죽은 것에게 지내는 것이고, 저것은 죽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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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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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의 피로는 모자라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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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를 다시 읽었다. 기축년 기록 이전에, 더 오래된 글씨가 있었다. 먹이 번져서 겨우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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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以禽獸食之。久則不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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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짐승으로 먹였다. 오래되니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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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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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人食之。 足。 二十年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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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먹이니 넉넉하다. 이십 년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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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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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유언을 다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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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ㅡ "네가 넣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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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ㅡ "네가 닫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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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넣는 것과 닫는 것. 두 단계. 두 세대에 걸친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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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넣지 못하고 죽었다. 간경화. 술을 마신 이유를 이제 안다. 넣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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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나는 두 가지를 모두 해야 한다. 넣는 것과 닫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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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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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는 올해 일흔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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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치매 진단을 받았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어머니의 세계에서 나는 어떤 날은 아들이고, 어떤 날은 남편이고, 어떤 날은 모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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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어머니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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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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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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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가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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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사람이 산책을 가자고 해도 따라나서는 것. 치매란 그런 병이다. 경계가 무너지는 병. 안과 밖,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안전과 위험의 구분이 녹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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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당으로 나갔다. 느티나무 아래까지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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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멍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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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 바람이 빨려들고 있었다. 어머니의 흰 머리카락이 구멍 쪽으로 당겨졌다. 어머니는 구멍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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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이네. 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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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머니. 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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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더 가까이 다가갔다. 나는 어머니의 뒤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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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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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넣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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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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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어머니를 잡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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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은 처음부터 정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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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ㅡ 주체. 행위를 수행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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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ㅡ 대상. 행위가 향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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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수셨다' ㅡ 서술. 먹었다의 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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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높은 것이 어머니를 먹었다. 나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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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에 어머니가 들어간 뒤,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길었다. 3분 정도. 어머니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처음에는 비명이었고, 그 다음에는 아닌 것이 되었고, 마지막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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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구멍에서 바람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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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려들던 공기가 멈추고, 처음으로 바람이 나왔다. 따뜻한 바람. 6월인데도 이상하게 따뜻한 바람. 숨결 같은 바람. 배부른 것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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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흔들렸다. 바람 때문이 아니라. 나무 자체가. 밑동부터 꼭대기까지, 사백 년 된 느티나무가 한 번 크게 몸을 떨었다. 잎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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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구멍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밑동의 나무껍질이 안쪽으로 자라들며, 구멍의 가장자리가 좁아졌다. 실시간으로. 눈에 보이는 속도로. 나무가 상처를 아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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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닫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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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켜봤다. 구멍이 주먹 크기가 되고, 달걀 크기가 되고, 엄지손가락 크기가 되었다. 마지막 순간,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이 남았을 때, 안에서 목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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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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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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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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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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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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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를 다시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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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人食之。足。二十年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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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년. 이십 년 동안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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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년 뒤, 나는 쉰이 된다. 구멍은 다시 열릴 것이고, 아래에서 바람이 다시 빨려들 것이다. 그때 나는 무엇을 넣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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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아야 하나. 아내를 얻어야 하나. 이십 년 뒤에 넣을 것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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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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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의 마지막 페이지에, 아버지의 글씨로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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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베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나무가 아니라고. 나무는 마개라고. 나무가 없어지면 열린다고. 영영.

​

​

​

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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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백 년 된 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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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래에 있는 것의 크기를 나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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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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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밤이다. 마당에 나와 있다. 느티나무 아래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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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이 있던 자리는 매끈한 나무껍질로 덮여 있다. 손으로 만져보면 약간 따뜻하다. 나무의 체온이 아닌 것을, 안에 있는 것의 체온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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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무줄기에 귀를 대면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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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하는 소리인지, 자장가를 부르는 소리인지, 나는 구분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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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방에서 저녁을 차려 먹었다. 혼자서. 어머니가 해놓은 밑반찬이 냉장고에 아직 남아 있었다. 치매가 오기 전에 담근 깍두기. 그 맛은 정확하게 어머니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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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으면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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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면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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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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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면사무소에 가서 어머니의 실종 신고를 할 것이다. 치매 노인이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수색이 있을 것이다. 나무를 볼 것이다. 하지만 구멍은 이미 닫혀 있다. 아무것도 찾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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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집에 계속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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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년 뒤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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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들이 태어나면, 적당한 때에 장부를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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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도 장부에 끼워 넣을 것이다. 후대를 위해. 이런 식으로 우리 가문은 이어져 왔다. 먹이는 자의 가계. 제관의 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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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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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나무에 귀를 대었을 때, 소화하는 소리 사이로 한마디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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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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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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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어머니의 말인지, 그것의 말을 어머니의 목소리로 하는 것인지, 나는 구분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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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하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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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부의 빈 페이지에 오늘 날짜를 적고, 한 줄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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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年 夏至。 母。 食之。 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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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하지. 어머니. 먹였다.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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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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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祝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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