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나는 오늘 어머니를 잡수셨다.
축일(祝日)
***
나는 오늘 어머니를 잡수셨다.
문장이 이상한가. 다시 쓴다.
나는 오늘 어머니를 잡수셨다.
이상하지 않다. 한국어의 문제다.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이 틀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문장에는 주어가 두 개 있다. '나는'의 나와, '잡수셨다'의 누군가. 잡수시다는 '먹다'의 존칭이니까, 나보다 높은 무언가가 어머니를 먹었다는 뜻이다. 나는 그것을 오늘 했다. 내가 한 것은 '잡수시게 한' 행위이고, 잡수신 것은 나보다 높은 것이다.
존댓말이란 편리하다. 위계를 문법에 새겨 넣으니까.
ㅡㅡ
우리 집은 3대째 같은 자리에 있다. 경기도 ██면. 도로명 주소가 생기기 전에는 번지가 있었고, 번지가 생기기 전에는 이름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이름을 알고 계셨다. 아버지도 아셨다. 어머니는 몰랐다. 어머니는 외부에서 시집온 사람이니까.
우리 집 마당 한가운데에는 느티나무가 있다. 수령 사백 년쯤. 군청에서 보호수로 지정하겠다고 왔을 때 할아버지가 돌려보냈다. 측량을 하겠다는 사람이 왔을 때는, 그 사람이 나무 아래에 서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나무 밑동에는 구멍이 있다.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나는 한 번 그 앞에 가 본 적이 있다. 여섯 살이었다. 구멍 안에서 바람이 나왔다. 위로 부는 바람이 아니라 아래로 빨려드는 바람이었다. 내 머리카락이 구멍 쪽으로 당겨졌다. 할아버지가 뒤에서 내 어깨를 잡고 끌어당기면서 말씀하셨다.
"아직 아니다."
아직.
ㅡㅡ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내가 열일곱 때였다. 유언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아버지에게 한 것이고, 하나는 나에게 한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네가 넣어라."
나에게: "네가 닫아라."
어머니가 물었다. 뭘 넣고 뭘 닫느냐고.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밤 아버지는 마당에 나가서 느티나무 앞에 한 시간 동안 서 있었다. 들어와서는 소주를 석 병 마시고 내게 말했다.
"대학 가지 마라."
이유를 물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있어야 해. 떠나면 잊어. 잊으면 굶어. 굶으면 나와."
네 개의 문장. 완벽한 논리. 전제 하나만 받아들이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따라오는 구조.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ㅡㅡ
아버지는 1년에 두 번 나무에게 밥을 줬다. 동지와 하지. 밥이라고 쓰긴 했지만 쌀밥은 아니었다. 면사무소 뒤편 도축장에서 가져오는 것이었다. 소의 것일 때도 있고, 돼지의 것일 때도 있었다. 한 양동이 분량. 아버지는 그것을 구멍 안에 부었다.
부을 때 소리가 났다.
물이 깊은 곳에 떨어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뭔가 받는 소리였다. 축축하고, 부드럽고, 능동적인 소리.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올라와서 맞이하는 소리.
아버지는 부을 때 항상 고개를 돌렸다. 구멍 안을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한번은 내가 물었다. 안에 뭐가 있냐고.
아버지는 한참 동안 나를 보다가 말했다.
"모른다. 할아버지도 모르셨다. 증조할아버지도 모르셨을 거다. 아는 건 하나야. 먹으면 가만있어. 안 먹으면 안 가만있어."
"뭘 해요?"
"나온다."
"나와서요?"
아버지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찬장에서 낡은 장부 같은 것을 꺼내 보여줬다. 세로쓰기 한문이었다. 읽을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았지만, 반복되는 한자가 있었다.
食. 먹을 식.
足. 넉넉할 족.
安. 편안할 안.
먹이면 넉넉하고 편안하다.
그 옆에, 다른 글씨로, 아마 다른 세대가 쓴 것으로 ㅡ 이런 내용이 있었다.
己丑年。 不食。 村三十二口滅。 餘七。
기축년. 먹이지 않았다. 마을 서른두 명 멸. 남은 자 일곱.
ㅡㅡ
아버지가 죽은 건 3년 전이다. 사인은 간경화였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하지가 지나갔다. 나는 혼자서 처음으로 양동이를 들고 나무 앞에 섰다.
구멍은 기억보다 컸다.
아니, 커져 있었다. 어린 시절에 봤을 때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크기였는데, 지금은 두 사람이 나란히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벌어져 있었다. 나무가 자라면서 구멍도 커진 건가. 아니면 안에 있는 것이 커진 건가.
부었다.
소리가 달랐다. 예전에 아버지가 부을 때 들었던 소리보다 ㅡ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급했다. 빨리 받아먹는 소리. 배고픈 것의 소리.
양동이를 다 비우고 돌아서려는데, 구멍 안에서 소리가 났다.
사람 목소리 같았다.
아니, 사람 목소리를 '재생하는' 소리 같았다. 테이프를 너무 여러 번 틀어서 음질이 나빠진 것처럼, 원래는 말이었을 것이 의미를 잃고 소리로만 남은 것. 높낮이의 패턴은 한국어 같았다. 하지만 단어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한 가지만 빼고.
구멍이 마지막에 낸 소리는, 분명하게, 내 이름이었다.
ㅡㅡ
그 뒤로 양이 늘었다.
양동이 하나로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두 개를 부어야 했다. 그 다음 하지에는 세 개. 올해 동지에는 다섯 개를 부었는데도, 구멍에서 바람이 빨려드는 것이 멈추지 않았다. 굶주린 바람. 아래로 당기는 바람.
도축장 사람이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이 가져가서 뭐 하느냐고. 나는 거름으로 쓴다고 했다. 그 사람은 믿지 않는 눈으로 나를 봤지만, 돈을 받고 줬다.
올해 하지. 6월. 나는 양동이 여섯 개를 준비했다.
부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번째를 붓는데, 구멍에서 손이 올라왔다.
나는 그 말을 다시 써야 한다. 구멍에서 손이 올라왔다. 손이다. 사람의 손. 다섯 개의 손가락이 있고, 손톱이 있고, 손금이 있는 손. 하지만 색이 없었다. 흰 것도 검은 것도 아니고, 색이라는 속성 자체가 빠져 있는 표면.
손이 양동이의 가장자리를 잡았다.
나는 양동이를 놓고 세 걸음 물러났다.
손이 양동이를 구멍 안으로 끌어당겼다. 양동이째 가져갔다. 스테인리스 양동이. 안에 남아 있던 것과 함께.
그리고 구멍 안에서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모자라다."
ㅡㅡ
그때부터 나는 이해했다. 장부에 적힌 것의 의미를.
할아버지가 왜 그런 유언을 남겼는지. 아버지가 왜 술을 마셨는지. 증조할아버지의 증조할아버지가 왜 이 자리에 집을 짓고 떠나지 않았는지.
우리 가문은 사육사였다.
아니, 사육사라는 말도 틀리다. 사육사는 동물을 먹이는 사람이고, 저것은 동물이 아니다. 정확한 단어가 없다. 제관(祭官)이 가장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제사는 죽은 것에게 지내는 것이고, 저것은 죽어 있지 않다.
모자라다고 했다.
가축의 피로는 모자라다는 뜻이다.
장부를 다시 읽었다. 기축년 기록 이전에, 더 오래된 글씨가 있었다. 먹이 번져서 겨우 읽을 수 있었다.
初。以禽獸食之。久則不足。
처음에는 짐승으로 먹였다. 오래되니 부족하다.
다음 줄.
以人食之。 足。 二十年安。
사람으로 먹이니 넉넉하다. 이십 년 편안하다.
ㅡㅡ
할아버지의 유언을 다시 생각했다.
아버지에게ㅡ "네가 넣어라."
나에게ㅡ "네가 닫아라."
넣는 것과 닫는 것. 두 단계. 두 세대에 걸친 작업.
아버지는 넣지 못하고 죽었다. 간경화. 술을 마신 이유를 이제 안다. 넣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두 가지를 모두 해야 한다. 넣는 것과 닫는 것.
ㅡㅡ
어머니는 올해 일흔셋이다.
작년에 치매 진단을 받았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어머니의 세계에서 나는 어떤 날은 아들이고, 어떤 날은 남편이고, 어떤 날은 모르는 사람이다.
오늘 아침, 어머니가 물었다.
"누구세요?"
나는 대답했다.
"산책 가요, 어머니."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사람이 산책을 가자고 해도 따라나서는 것. 치매란 그런 병이다. 경계가 무너지는 병. 안과 밖,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안전과 위험의 구분이 녹는 병.
마당으로 나갔다. 느티나무 아래까지 걸었다.
구멍 앞에 섰다.
아래에서 바람이 빨려들고 있었다. 어머니의 흰 머리카락이 구멍 쪽으로 당겨졌다. 어머니는 구멍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우물이네. 물 있어?"
"네, 어머니. 깊어요."
어머니가 더 가까이 다가갔다. 나는 어머니의 뒤에 서 있었다.
할아버지의 유언.
"넣어라."
ㅡㅡ
나는 오늘 어머니를 잡수셨다.
이 문장은 처음부터 정확했다.
'나는' ㅡ 주체. 행위를 수행한 자.
'어머니를' ㅡ 대상. 행위가 향한 곳.
'잡수셨다' ㅡ 서술. 먹었다의 존칭.
나보다 높은 것이 어머니를 먹었다. 나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구멍에 어머니가 들어간 뒤,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길었다. 3분 정도. 어머니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처음에는 비명이었고, 그 다음에는 아닌 것이 되었고, 마지막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구멍에서 바람이 멈췄다.
빨려들던 공기가 멈추고, 처음으로 바람이 나왔다. 따뜻한 바람. 6월인데도 이상하게 따뜻한 바람. 숨결 같은 바람. 배부른 것의 숨결.
나무가 흔들렸다. 바람 때문이 아니라. 나무 자체가. 밑동부터 꼭대기까지, 사백 년 된 느티나무가 한 번 크게 몸을 떨었다. 잎이 쏟아졌다.
그리고 구멍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밑동의 나무껍질이 안쪽으로 자라들며, 구멍의 가장자리가 좁아졌다. 실시간으로. 눈에 보이는 속도로. 나무가 상처를 아무는 것처럼.
"닫아라."
나는 지켜봤다. 구멍이 주먹 크기가 되고, 달걀 크기가 되고, 엄지손가락 크기가 되었다. 마지막 순간,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이 남았을 때, 안에서 목소리가 났다.
어머니 목소리였다.
"아들."
"밥 먹어."
구멍이 닫혔다.
ㅡㅡ
장부를 다시 편다.
以人食之。足。二十年安。
이십 년. 이십 년 동안 편안하다.
이십 년 뒤, 나는 쉰이 된다. 구멍은 다시 열릴 것이고, 아래에서 바람이 다시 빨려들 것이다. 그때 나는 무엇을 넣을 것인가.
아이를 낳아야 하나. 아내를 얻어야 하나. 이십 년 뒤에 넣을 것을 위해.
아니, 그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장부의 마지막 페이지에, 아버지의 글씨로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나무를 베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나무가 아니라고. 나무는 마개라고. 나무가 없어지면 열린다고. 영영.
마개.
사백 년 된 마개.
그 아래에 있는 것의 크기를 나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ㅡㅡ
지금은 밤이다. 마당에 나와 있다. 느티나무 아래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구멍이 있던 자리는 매끈한 나무껍질로 덮여 있다. 손으로 만져보면 약간 따뜻하다. 나무의 체온이 아닌 것을, 안에 있는 것의 체온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가끔 나무줄기에 귀를 대면 소리가 들린다.
소화하는 소리인지, 자장가를 부르는 소리인지, 나는 구분하지 못한다.
어머니의 방에서 저녁을 차려 먹었다. 혼자서. 어머니가 해놓은 밑반찬이 냉장고에 아직 남아 있었다. 치매가 오기 전에 담근 깍두기. 그 맛은 정확하게 어머니의 것이었다.
먹으면서 울었다.
울면서 먹었다.
ㅡㅡ
내일 면사무소에 가서 어머니의 실종 신고를 할 것이다. 치매 노인이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수색이 있을 것이다. 나무를 볼 것이다. 하지만 구멍은 이미 닫혀 있다. 아무것도 찾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 집에 계속 살 것이다.
이십 년 뒤에도.
그리고 아들이 태어나면, 적당한 때에 장부를 보여줄 것이다.
이 글도 장부에 끼워 넣을 것이다. 후대를 위해. 이런 식으로 우리 가문은 이어져 왔다. 먹이는 자의 가계. 제관의 혈통.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까 나무에 귀를 대었을 때, 소화하는 소리 사이로 한마디가 들렸다.
어머니 목소리로.
"맛있다."
그것이 어머니의 말인지, 그것의 말을 어머니의 목소리로 하는 것인지, 나는 구분하지 못한다.
구분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장부의 빈 페이지에 오늘 날짜를 적고, 한 줄을 쓴다.
甲辰年 夏至。 母。 食之。 足。
갑진년 하지. 어머니. 먹였다. 넉넉하다.
붓을 놓는다.
축일(祝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