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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누나가 변했다

익명
2026-09-02 14:56

누나가 변했다.

 

말 그대로다. 누나가 약간 달라졌다.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콕 집어 말할 수 없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행동은 내가 알던 누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습게 들릴지는 몰라도,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누나가 변했다는 것을. 아니, 지금 우리 집 식탁에 앉아 내 옆자리에서 밥을 먹고 있는 ‘저것’은 내 누나를 흉내 내는 무언가라는 것을.

 

지금 누나(일단 ‘누나’라고 표기하겠다)의 모습은 상당히 수상스럽다.

 

아빠가 던진 농담에 소리 내어 웃는 것도 작위적인 것 같고, 밥을 먹는 속도도 약간 빨라진 것 같다. 어쩌면 식사를 마치고 얼른 방으로 들어가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위해 혼자 있어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내 관찰을 향해 코웃음을 칠 수도 있다. 이런 사소한 것들로 누나를 의심하는 거냐고 빈정거리며. 하지만 사소한 것들도 쌓이면 증거가 되고, 증거가 되면 효력을 발휘한다. 나는 식탁 위에서의 증거 말고도 다른 여러 증거를 이미 확보했다.

 

첫째, 최근 누나는 학교에 갈 때 평소에 가지 않던 길로 간다. 이건 사소한 단서가 아니다. 단순히 어디를 들렀다가 간다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으니까. 원래는 출근하는 아빠랑 같이 걸어가다가 중간에 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졌으니까.

 

그리고 둘째, 이것이 가장 유효한 증거이다. 얼마 전에 내가 한밤중에 얼핏 잠에서 깼을 때였다. 닫힌 방문 너머인 부엌에서 날붙이가 부딪치는 듯한 챙챙 소리가 어슴푸레하게 났다.

 

처음에는 강도라도 들어온 줄 알았다. 하지만 누군가 다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작게 들리던 날붙이 소리도 점점 잦아들었다. 가만히 숨을 죽이면서 기다리자, 날붙이 소리는 아예 멎었다. 대신 누군가가 부엌과 거실 쪽을 돌아다니는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마 15분 정도가 흘렀을 것이다. 그쯤 되자 내 호기심은 공포심을 추월했다. 결국 물을 마시러 가는 척 방문을 연 나는, 곧바로 부엌에 있는 누나와 눈이 마주쳤다. 달빛을 받아 끝이 새하얗게 빛나는 식칼을 든 누나를.

 

하지만 그 자리를 먼저 벗어난 쪽은 의외로 누나였다. 누나는 나를 보자마자 황급히 식칼을 칼꽂이에 꽂고 아무 말 없이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도 한밤중에 잠에서 깨면, 방문 너머에서 칼날이 부딪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이래도 수상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낌새를 눈치챈 건 나뿐인 것 같다. 사흘 전이 마침 우리 중학교의 개교기념일이라 엄마와 내가 단둘이 점심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내가 조심스레 누나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말하자 엄마는,

 

“누나가 이상하고 자시고 간에 네 수학 성적부터 어떻게 해 볼 생각 없니?”라고 대답했다.

 

울컥하는 마음에 나는 “그래서 이번 기말고사에서 95점 맞아 왔잖아!”라고 반문했고, 엄마는 “어머, 그랬나?” 하면서 호호 웃었다.

 

나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엄마는 누나를 씨알만큼도 의심하지 않고, 그래야 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지금도 부모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누나에게 저녁밥을 차려주고 교복 셔츠를 다려준다. 심지어 믿었던 초코마저도 여전히 누나랑 산책 가는 걸 가장 좋아한다.

 

어쩔 수 없다. 저것이 지금 누나처럼 가장(假裝)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만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가장에는 빈틈이 없다. 얇은 풀잎 하나 끼어들 수 없을 정도로. 그렇다면 어떻게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아니, 진실을 밝혀내도 되는 걸까.

 

 

 

*

 

 

 

한 달 전, 그날을 기점으로 누나가 변한 게 틀림없다. 그날은 전국적으로 태풍 경보가 발령된 날이었다.

 

나는 아직 태풍이 불던 저녁을 선명히 기억한다. 비가 우박처럼 창을 때리며 북소리를 냈고, 강풍이 나무를 무너뜨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창문이 산산조각 난 가구도 있었다.

 

그때 나는 거실에서, 그것도 소파 끄트머리에서 바르르 떠는 초코를 끌어안고 있었다. 부모님은 부엌 식탁에 앉아 울상을 지은 채 핸드폰을 붙들고 있었다. “얘는 도대체 어디에 가 있는 거야……”라는 엄마의 끝없는 중얼거림은 빗소리를 뚫고 다가와 나의 몸을 쿡쿡 찔렀다.

 

그렇다. 그날 누나는 늦저녁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아무런 연락도 남기지 않은 채.

 

 

 

휴교령이 떨어지지 않은 그날, 오후 5시쯤이 되자 거센 바람이 비를 몰고 오기 시작했다. 마침 그때는 고등학생인 누나가 평소 하교하는 시간이었고, 엄마는 그 시간에 맞추기라도 한 듯 부엌을 이리저리 오가며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엄마가 초조한 이유는 분명했다. 가족 단톡방에서 누나를 불러봐도 아무 대답이 없고, 설상가상으로 전화는 신호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얘는 이 날씨에 어딜 간 거야……”

 

엄마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자 보다 못한 아빠가 위로하듯 말했다.

 

“에이, 연희도 다 컸는데 알아서 안전한 곳에 가 있겠지. 너무 걱정하지 말고 우선 저녁이나 먹어요.”

 

하지만 아빠의 위로와는 달리, 바깥이 시꺼먼 어둠으로 뒤덮인 오후 11시가 되어서도 누나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평소 누나가 집에 도착하던 오후 6시는 이미 훌쩍 넘은 상태였다. 물론 연락도 되지 않았고, 심지어 비바람은 더욱 거세진 상태였다. 그쯤 되자,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도 초조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경찰서에 가요, 우리.” 문득 엄마가 말했다. “가서 실종 신고를 하는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아빠가 한숨을 내쉬었다. “바깥 날씨를 봐. 지금 나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그럼 이대로 가만히 있어요? 연희가 지금 어디 위험한 곳에 고립된 걸지도 모르고, 지금 당장 빗물에 떠내려가는 중일지도 모르는데!”

 

“그건 과장이 너무 심하잖아…….”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엄마가 고개를 홱 돌렸다. “아니, 됐어요. 차라리 나 혼자 갔다 오고 말지.”

 

말을 마친 엄마는 식탁에서 박차고 일어나더니 그대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이마를 짚던 아빠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 한숨을 삼키다가 결국 엄마를 뒤따라갔다.

 

이윽고 간단한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부모님은 안방에서 나와, 쿵쿵거리는 발걸음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신발장으로 향했다.

 

“연우, 너!” 나가기 직전에 엄마가 신발장 앞에 있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엄마 아빠 올 때까지 계속 112에 전화 걸고 있어. 혹시라도 전화가 연결될지도 모르니까.”

 

“아, 알았어…….”

 

엄마의 목소리에 눌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선 엄마의 말대로 연신 112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누나에게 전화를 걸 때도 신호가 가지 않는 마당에 112라고 통화가 가능할 리 없었다. 애초에 우리 지역에 대규모 정전이 일어났으니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나는 “서비스 지역을 이탈하여……”라는 아무런 쓸모없는 내용만 몇 번이나 듣다가, 마치 슬레이트가 쳐진 것처럼 끔벅 잠에 들고 말았다.

 

잠에서 깬 건 대략 새벽 1시였다.

 

쿵 소리가 나더니 현관문이 열렸다. 이어서 구두를 질질 끄는 듯한 소리가 들렸으나 현관 센서 등이 켜지지 않아,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두 명이라는 걸 신발장 문이 열린 뒤에야 알 수 있었다.

 

물론 집으로 들어온 건 부모님이었다. 누나는 없었다. 엄마 아빠 모두 비를 쫄딱 맞은 상태였고, 들고 나갔던 우산도 보이지 않았다. 낯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어두웠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어째서인지 소름이 돋았기 때문이다.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고 싶지 않았고, 물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엄마 아빠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지나쳐 그대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 후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운명의 장난이란 게 바로 이런 걸까?

 

새벽 6시, 가족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누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집에 돌아왔다. 교복은 깔끔하고 머리칼도 전날 나갈 때 그대로였다. 고생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가방에서 젖은 흙냄새만이 은은하게 날 뿐이었다.

 

“미안, 학교에서 가까운 친구 집에서 자고 왔어. 걱정했지? 전화를 걸려고 해도 신호가 가지를 않으니……”

 

부모님과 나는 망연히 누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어이가 없었다. 누나 때문에 엄마 아빠가 그 날씨에 경찰서를 갔다 왔는데, 라는 말이 입안에서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아빠가 크흠, 소리를 내며 헛기침을 하자 그만 맥이 빠지고 말았다. 엄마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아무튼 아무 일도 없었다면 그걸로 좋은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 가족은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하루이틀이 지나며 집에 돌아온 누나가, 누나가 아닌 무언가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 누나가 점차 원래는 하지 않던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우리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처럼.

 

 

 

*

 

 

 

“그런 케이스, 들어본 적 있어. 사람의 몸을 뺏는 존재.”

 

방학식 날이었다. 곧 있으면 집 안에서 꼼짝없이 누나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입안이 바싹 마르던 나는 결국, 아버지가 무속인으로 활동한다는 한 친구에게 누나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외, 외계 생명체 같은 거야?”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렇게 보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우리 쪽에서는 보통 ‘혼’이라고 부르지.”

 

“그럼 우리 누나의 몸에 누군지 모를 혼이 들어 있다는 거야?”

 

“네 말대로라면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아.” 친구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우선 태풍이 오던 날 하룻밤 동안 사라졌었다는 것—혼이 인간의 몸을 빼앗기에는 최적의 타이밍이지. 목격자도 없을 거고(보통 혼이 타깃의 몸에 처음으로 들어가면 마치 거부 반응처럼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고 했어), 몸을 빼앗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거든.

 

그리고 또, 행동이 교묘하게 바뀌었다는 점도 그런 혼들의 특징 중 하나야. 그놈들은 다른 악귀들과는 달리 무슨 일을 벌이려 하지 않아. 오히려 자기들의 존재를 꼭꼭 숨기려 하지.

 

그래서 한번 타깃의 몸에 들어가면 마치 자기가 원래 그 사람이었던 것처럼 행동하려 해. 타깃의 삶을 자기가 살고 싶은 거겠지. 뭐, 가끔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풍문이고.”

 

친구의 설명을 들을수록 손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나 혼자만이 단언할 때와는 달리, 누나에 관한 문제가 더욱 실감이 난 것이다.

 

누나의 몸에 누군가의 혼이 들어와 있다고? 그 혼은 계속해서 우리 누나처럼 행동할 거고? 엄청 심각한 상황인 거 아냐?

 

“그, 그럼!” 얼떨결에 내가 외쳤다. “어떻게 해야 돼? 정말로 우리 누나의 몸에 혼이 들어와 있는 거라면?”

 

“일단 진정해 봐.”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말한 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거야. 사실 실제로 몸에 혼이 들어오는 경우는 많지 않아. 아니, 아예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지. 그러니까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이런 건 보통 관찰자가 예민한 케이스가 많거든.”

 

“그래도 내가 불안해서 그런데,” 나는 손톱을 깨물다가 말했다. “혹시 구분하는 방법 같은 건 없어? 누나의 몸 안에 다른 혼이 있는지 없는지.”

 

“……있어.” 잠시 뜸을 들인 친구가 말했다. “내가 알기로는 간단해. 타깃의 몸에 들어간 혼은 그때까지 타깃이 살아온 기억에 의존하며 살아간다고 들었어. 뒤집어 말하면, 혼이 들어온 시점 이후부터는 기억이 업데이트되지 않는다는 거지.”

 

나는 고개를 살짝 갸울였다. 기억의 업데이트?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친구는 내 반응을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쉽게 말해, 고등학생의 몸에 들어온 혼은 고등학생 때까지의 기억밖에 없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 졸업하게 돼도 여전히 고등학교에 등교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거야. 그러니까 정 불안하면 누나한테 최근의 일, 태풍이 지나간 날 이후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 물어봐. 정말로 혼이 몸에 들어와 있는 경우라면 아마 쉽게 답하지 못할 테니까.”

 

 

 

*

 

 

 

방학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이전보다 유심히 누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누나가 방에서 나올 때마다 하는 행동을 몰래몰래 지켜봤다. 혹시라도, 친구의 말대로 그저 내가 예민했던 것일지도 모르니까.

 

그러자 생각을 고쳐먹어서인지, 신기하게도 누나의 행동이 멀쩡해 보였다.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화장실에 가고,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따라 마신다. 방 안에서 공부를 하는 듯 하다가도, 깔깔거리며 친구와 통화를 한다. 이런 모습은 분명 과거의 누나와 똑같다.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로.

 

단순히 내가 예민했던 걸까?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금 보이는 모습이 멀쩡하다고 해서 이전과 달리 아빠를 피해 삥 돌아서 등교했던 것과, 한밤중에 부엌에 나와 날붙이를 부딪는 것이 멀쩡하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건 누나의 몸에 깃든 혼이 아주 교묘한 유형의 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 시간에 누나는 여전히 어색한 모습을 보였다. 식탁 위에서 억지로 입꼬리를 당기고, 수저를 빠르게 움직였다. 밥그릇을 비운 뒤에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도 않고 얼른 방 안으로 사라졌다. 그러고선 문을 굳게 닫고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 한다.

 

더 이상의 의심이 필요할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봐도 누나의 몸에는 누군가의 혼이 들어온 게 분명했다. 이로써 나는 결심했다. 오늘 밤에 누나의 정체를 꼭 밝혀낼 거라고. 누나의 몸에 들어간 혼을 어떻게든 빼낼 거라고.

 

 

 

깊은 밤이 찾아오자, 마치 태풍이 불던 날처럼 비가 창문을 때리기 시작했다. 가끔가다 사방이 새하얘지더니 천둥소리가 온몸을 흔들었다.

 

마치 물속에 있는 것처럼 공기도 눅눅해진 지금, 나는 침대 위에서 감기는 눈을 떠가며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가 부엌에서 칼날을 부딪기를.

 

하지만 최근에 신경을 너무 곤두세운 채로 시간을 보내서인지, 어느새 나는 깜빡 잠에 들고 말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닫힌 방문 너머에서 어슴푸레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날붙이끼리 부딪치는 챙챙 소리가.

 

역시, 라고 나는 생각했다.

 

시각은 오전 12시 28분. 보통은 모두가 잠들어 있을 때. 나는 슬며시 침대에서 나와 어둠을 뚫고 방문 중앙에 귀를 갖다댔다. 그러고선 눈을 감고 집중했다. 소리가 선명히 들리기 시작했다.

 

누나—저 혼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자세히 들어봐도 누나가 날붙이를 만지고 있는 건 분명했다. 하지만 무엇을 하는지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날붙이끼리 부딪는 것 같기도 하고, 식탁이나 바닥에 던지는 것 같기도 하고, 숟가락으로 유리 접시를 때리는 것 같기도 하고……

 

방문 너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었다. 다만, 지금 부엌에서 저런 소리가 나는 게 멀쩡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문득 문에 붙은 손에서 땀이 배어 나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막상 문을 열고 나가 누나와 일대일로 마주하려 하니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며칠 전에 누나가 식칼을 들고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들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 그럴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번에는 도망가는 게 아니라 나를 향해 칼을 휘두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문손잡이에 손을 올려놓고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런 와중에도 날붙이 소리는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그럴수록 내 머릿속은 더욱 뒤죽박죽이 되어 갔다.

 

이윽고 날붙이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자, 대신 둔탁한 발소리가 문틈으로 스멀스멀 들어왔다. 어느새 나는 입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발소리는 그때처럼 부엌에서 멀어져 갔다. 거실까지 간 건 알겠는데 그 이상은 알 수 없었다. 아마 누나가 방으로 들어간 듯했다. 거실에서 가까운 방은 누나 방과 안방이니까.

 

그제야 침묵만이 귀를 메웠다. 나는 침묵도 소리를 가졌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대략 5분 정도가 지났을까.

 

다시금 미약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여전히 문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땀 때문에 손이 자꾸 미끄러졌다.

 

발소리는 지체 없이 거실에서 부엌으로 오더니 부엌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날붙이 소리가 사라지고 발소리만이 들렸기 때문에 이번에도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때였다. 지금이다, 라는 생각이 든 것은. 지금이라면 위험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은.

 

마른침을 삼킨 나는 방문을 벌컥 열고 나갔다. 얼른 부엌을 향해 핸드폰 플래시를 비췄다. 예상했듯이, 누나가 부엌에 있었다.

 

다만 예상치 못한 것도 함께 있었으니, 식탁부터 시작해 싱크대 위에까지 수많은 종류의 날붙이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식칼, 과도, 가위, 커터 칼……

 

집에 있는 온갖 날붙이가 오와 열을 맞춰 가지런히 펼쳐져 있었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운반되는 물건처럼. 핸드폰 플래시에 비친 새하얀 날붙이들은 거대한 짐승의 이빨 같았다.

 

우리집에 칼이 이렇게 많았나……?

 

나는 그 장면에 압도되어 입술을 깨물었다. 다리도 잘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방 안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공포를 억누르며 플래시로 누나를 비췄다. 누나는 평상시의 하늘색 파자마를 입고 있었으나, 표정은 이미 완전히 굳은 뒤였다. 나를 똑바로 노려보는 채로.

 

“……여기서 뭐 해? 이건 다 뭐고?”

 

긴장을 지우듯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오히려 누나가 한 발짝 뒤로 가며 되물었다.

 

“너야말로 안 자고 뭐 해?”

 

“목말라서 깼는데. 물 좀 마시려고.”

 

내 대답이 자연스러웠는지 알 수 없었기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고선 시선을 내리깔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누나와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누나도 고민하는 듯 입술을 잘근잘근 씹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야, 오늘이 며칠이야?”

 

나는 당황했다. 날짜 이야기는 왜 나온 거지?

 

“그건 왜?”

 

“며칠이냐고.”

 

“7월 21일. 아니, 12시 지났으니까 이제 7월 22일이겠네.” 누나가 다그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그럼, 너 이번 기말고사에서 수학 몇 점 맞았어?”

 

입안에서 혀가 굳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일까, 라고 속으로 몇 번이나 되물었다. 하지만 답을 전혀 알 수 없었던 나는 결국 억지로 혀를 움직여 사실대로 말했다. 그게 제일 나은 방안인 것 같았다.

 

“……95점. 왜? 엄마가 하도 닦달해서 수학만 열심히 공부했는데.”

 

내 대답을 들은 누나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약 10초 동안 나를 노려보았다. 금방이라도 나를 향해 달려들 것 같았다. 칼을 휘두르든 목을 조르든 위해를 가할 것 같았다.

 

그러나 긴 응시 끝에 누나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어깨에 힘을 빼고, 잔뜩 고여 있던 숨을 코로 길게 내쉰 것이다. 척 보기에도 알 수 있는, 의아할 정도로 안도의 빛을 띤 숨을.

 

“……아무래도 너는 멀쩡한 것 같으니까 잘 들어.”

 

이윽고 누나는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가 이상해. 태풍이 지나간 날 이후에 있었던 일을 잘 기억 못하는 거 같아. 아침에 넌 학교에 갔으니까 모를 텐데, 오늘 엄마가 나한테 기말고사가 언제냐고 물었어. 말이 돼? 기말고사를 본 건 20일도 더 지났는데. 이것만 해도 문제가 있어 보이지? 근데 진짜 문제는 저 질문이 벌써 다섯 번째라는 거야.”

 

조용히 한숨을 내쉰 누나는 식탁 위에 놓인 식칼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얼마 전부터 엄마랑 아빠가 밤마다 이렇게 날붙이를 꺼내 놓기 시작했어. 소름 돋지 않아? 이게 도대체 무슨 짓거리냐고. 의미를 모르겠어, 진짜.

 

그리고 집에서 이렇게 많은 칼이 도대체 어디서 난 거냐고. 웬만한 음식점도 이렇게 많진 않을 텐데…… 그래도 그냥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지금까지는 꾹 참고 내가 계속 정리해 놓긴 했지만.”

 

나는 꼼짝하지 않고 누나의 말을 들었다.

 

말을 마친 듯한 누나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안방 문이 닫힌 걸 확인하더니 몸을 숙였다.

 

그러고선 나의 귀에 속삭였다.

 

“……내 생각인데, 저건 우리 엄마 아빠가 아닌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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