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누워 있는 연기.
0.
시체를 연기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다.
감독이 컷을 외치기 전까지는 절대 움직이지 않는 것.
신인 시절 야산에 버려진 피해자 역을 하다가 콧등 위로 개미가 기어가는 것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흔든 적이 있다.
그 작은 뒤척임 탓에 스태프들은 바닥의 흙을 다시 고르고 조명과 반사판의 각도를 처음부터 다시 맞춰야 했다.
당연하지만 조감독은 30명 넘는 촬영진 앞에서 내 부모의 자질까지 들먹이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 덕에 컷 소리가 나기 전까지는 내 몸을 사물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야 함을 깨달았다. 뭐,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배우다. 굳이 따지자면 단역, 그것도 엑스트라 전문 배우.
연기과 지망생들에게 발성을 가르치는 개인 과외와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병행해 간신히 월세와 식비를 벌어먹는, 무명 배우.
그마저도 요즈음은 제대로 돈 내고 수업을 들으려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자취방 월세가 밀리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 전화를 받은 것은 멍하니 침대에 누워 천장의 곰팡이 얼룩을 세고 있을 때였다.
1.
전화기 너머의 남자는 굉장히 정중했다. 그는 내게 개인 과외를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자기 아들에게 연기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보통 과외 문의를 받을 때면 에이전시를 통하거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연락이 오고는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러지 않고서야 내게 연락을 할 수단 자체가 없으니까.
연이 닿았던 감독님이 지인에게 나를 추천해 주었을 리도 없다. 그랬다면 지금 내가 이렇게 곰팡이 얼룩이나 세고 있지는 않았겠지.
어떻게 알고 연락했는지 묻자, 남자는 저번 주 드라마 방영분에서 내 연기를 인상 깊게 보았다고 답했다. 수소문 끝에 연락처를 구해 전화를 한 것이라고.
하지만 내가 최근에 촬영한 드라마는 하나밖에 없었다.
스크린타임도 기껏해야 몇 초가 전부였다. 머리가 깨진 채 쓰러져 있는, 범죄 현장의 피해자 역할.
설마 그 장면을 보고 내게 연락한 건 아닐 테고.
- 어떤 작품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가 최근에 찍은 게...
- 피해자 연기가 굉장히 와닿았습니다. 선생님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런. 뭔가 착오가 있는 건 아니었을까, 불안한 마음이 스친다. 혹시 남자 주인공이 쓰러진 장면과 헷갈렸다든가.
애당초 표정 연기도 확인할 수 없는 그 장면을 보고 내게 연락했다는 상황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않았지만,
- 그렇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아드님 나이가 어떻게 되실까요?
- 28살입니다. 문제가 될까요?
-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냥 미리 파악해 두려고요.
이것저것 따지면서 재고 있을 때가 아니었기에, 일단 냅다 수락해 버리고 말았다.
남자는 내게 오늘 바로 찾아와 달라고 부탁하며, 주소와 시간을 문자로 보내왔다. 아무래도 급한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스물여덟이라. 배우 지망생치고는 나이가 꽤 되네.
2.
주소에 적힌 곳은 번듯한 단독주택들이 늘어선 동네였다.
대문 앞에 서서 다시 전화를 걸자,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남자가 나와 나를 맞이했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멀끔한 차림의 남자였다. 현관에서는 와이프로 보이는 여자가 인사하며 슬리퍼를 내왔다.
부부는 내가 신발을 벗는 동안에도 연신 내게 감사를 표했다. 와 주어서 고맙다나.
이런 대접을 받아 본 것이 처음인 터라, 어떻게 화답해 드려야 할지 참 곤란해진다. 조금이지만 죄책감마저 일고 있었다.
다 떠나서, 잘 사는 집임은 틀림없어 보였다. 경제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허나 거실과 복도 곳곳에 커다란 공기청정기가 놓여 있었는데도 정체 모를 냄새가 났다. 텁텁하고 찌르는 듯한, 하수구에서 날 법한 냄새. 이렇게 반질반질하게 잘 닦인 집 안에서 날 법한 악취는 아니었다.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나는 심란한 마음으로 응접실에 들어섰다.
여자는 마실 것 좀 내오겠다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나는 남자에게 물었다.
- 혹시 아드님이 준비하고 계신 쪽이 따로 있나요? 연극이라든가, 영화라든가...
- 우선 누워 있는 연기부터 배우려고 합니다.
- 누워 있는 연기요?
- 맞습니다.
-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 누워 있는 연기라는 게 무엇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선생님께서는 아주 훌륭히 하셨는걸요. 그 비법만 잘 전수해 주시면 그걸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이상한 대답이다.
나를 놀리는 건지, 무시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어느 쪽이건 쉬이 납득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다고 가르쳐 달라는 사람 앞에서 그걸 당최 왜 배우려 하냐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돈까지 준다잖아.
나는 여자가 내온 차를 몇 모금 마신 뒤 남자를 따라갔다. 남자는 계단을 내려가더니 아들을 만나게 해 주겠다고 말하며 지하실의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아까부터 풍겨오던 냄새가 확 짙어졌다.
방 한가운데에는 병원에서 쓰는 것 같은 좁은 침대가 놓여 있었다. 한쪽 난간이 내려가 있었고, 그 위에 잠옷 차림의 청년이 앉아 있었다. 방 안은 이상하리만치 서늘했다. 에어컨 바람이 닿는 곳에 오래 서 있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 인사해라. 선생님 오셨다.
청년이 고개를 들었다. 볼에 살이 거의 없었고, 눈 밑에는 짙은 그늘이 져 있었다. 두 손으로 침대 가장자리를 짚고 몸을 일으키려 하기에, 나는 앉아 계셔도 된다며 손을 내저었다.
- 처음 뵙겠습니다.
음.
나는 청년과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 혹시 건강이 안 좋으신 분인가요?
- 네. 좀 오래됐습니다.
- 그럼, 연기를 배우신다는 건...
- 아픈 티를 내지 않고 누워 있는 모습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선생님이 하셨던 것처럼요.
맙소사.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다.
이게 정녕 연기 과외가 맞기는 한 걸까. 나는 명배우도 아닐뿐더러, 심리치료사나 테라피스트는 더더욱 아니란 말이다.
내가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해서, 눕는 연기를 가르쳐 준다고 해서 저 사람에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아무리 사정이 궁해도 이런 식으로 돈을 뜯어내는 건 좀 곤란했다.
- 저기, 제가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 수업은 제가 맡을 게 아닌 것 같네요. 이만-
남자가 내 팔을 붙잡았다.
- 선생님, 시급 20만 원으로 쳐 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양복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그 안에서 노란색 지폐 8장을 빼내 내게 불쑥 내밀었다.
나는 하려던 말을 끝맺지 못했다.
- 하루에 딱 2시간만 봐주시면 됩니다. 오실 때마다 선불로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자그마치 한 회차에 40만 원.
편의점 야간을 네다섯 번은 뛰어야 만질 수 있는 액수이자, 한 달 치 월세를 해결할 수 있는 돈이다.
게다가 나의 연기를 알아봐 주고 그 가치를 높게 사서 이렇게 간절하게 부탁하고 있는데, 굳이 마다할 필요까지야 없지 않을까.
- 선생님.
침대에 앉아 있던 청년이 나를 불렀다.
- 저, 시키시는 것 뭐든 다 하겠습니다.
- 제발 가르쳐 주세요.
나는 청년을 보았다. 청년은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가 돈을 도로 넣어 건넨 봉투를 받아 들고, 천천히 침대 쪽으로 향했다.
- 일단 한번 봅시다.
3.
누워 보라고 하자, 청년은 상체를 도로 뉘더니 두 손을 배 위에 올리고 천장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깨는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고, 깍지 낀 손에는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대로라면 누가 봐도 굉장히 불편한 사람이었다.
- 우선 몸에 힘을 쭉 빼 보죠. 어깨 좀 내리시고, 손도 깍지 풀고 편하게 늘어뜨려 보세요.
- 이렇게요?
- 네. 고개는 조금만 사선으로요. 자연스럽게.
청년은 내가 시키는 대로 자세를 바꾸면서도 자꾸만 턱을 들었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목덜미가 배겨서 그렇다고 했다.
나는 접어놓은 수건을 집어 목뒤에 받쳐 주었다.
- 이제 괜찮으세요?
- 오. 훨씬 낫네요.
- 이제 눈 감아 봅시다. 그냥 평소에 주무실 때처럼, 편하게.
청년이 눈가를 찌푸렸다.
- 그렇게 꽉 감지는 마시고요.
조금 지나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사람은 '자연스러움'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것 같았다.
힘을 빼라고 하면 눈가가 조금씩 벌어졌고, 다시 감으라고 하면 눈가에 주름이 잔뜩 잡혔다.
몇 번 반복하고 나니 본인도 적잖이 당황스러웠겠지만, 언어적으로 그 중간 지대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나도 참 난감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가 뜨는 시범까지 보여 주었다. 청년은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켜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 그냥 감으신 것 같은데요. 특별한 비법이 있나요?
- 아뇨, 말씀하신 것처럼 그냥 눈 감은 거예요.
- 으음, 왜 어려운지 모르겠네요.
청년이 민망한 듯 웃었다. 나는 괜찮다며 다시 누워 보라고 했다.
그렇게 한참을 연습했다. 눈가가 조금 편안해지면 이번에는 입에 힘이 들어갔고, 입을 다물게 하면 발가락이 움츠러들었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제법 나아 보였다. 이 정도라면 돈을 받아도 되지 않을까, 슬슬 그런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 불을 끄고도 해 볼 수 있겠습니까?
멀찍이 의자에 앉아 우리를 지켜보던 남자가 물었다.
나는 청년의 얼굴부터 살폈다. 아까까지는 제법 말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대답이 없었다.
- 괜찮으시겠어요?
- 네, 해 보겠습니다.
청년은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올리더니 내게 물었다.
- 선생님은 어디 계실 건가요?
- 여기요. 바로 옆에 있겠습니다. 제가 컷이라고 하면 눈을 뜨시면 돼요.
남자가 불을 껐다. 계단 쪽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빛만 남았다. 나는 침대 곁에 의자를 당겨 앉았고, 청년은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불이 부스럭거렸다.
타닥.
탁.
탁.
침대 난간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 선생님?
- 네, 여기 있습니다.
- 죄송한데, 불 좀.
나는 곧바로 컷을 외쳤다. 남자가 불을 켜자, 청년은 난간을 움켜쥔 채 옆으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얼굴이 온통 일그러져 있었다.
여자가 달려와 청년의 손을 감쌌다.
- 괜찮아. 엄마 여기 있잖아.
여자는 난간에서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 냈다. 나는 옆에 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수건만 만지작거렸다. 조금 전까지 시급을 떠올리고 있었던 게 괜히 부끄러워졌다.
- 죄송합니다. 제가 더 잘 지도했어야 했는데.
청년이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 다음에도 와 주실 거죠?
4.
- 으음.
얼떨결에 다음에 다시 보자고 답해버렸다. 대강 인사치레만 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그만 말이 헛나와 버린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만 해도 정말 두 번 다시 갈 생각은 없었다. 옷에서는 내내 꿉꿉한 냄새가 났고, 제대로 가르친 것도 없이 민간요법 따위에 동참하고 거액을 받아 왔다는 찝찝함이 도무지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뒤 남자에게서 다음 수업 시간을 묻는 문자가 왔을 때, 나는 또다시 수락해 버리고 말았다. 아직 월세 한 달 치가 밀려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수업에서는 내가 직접 바닥에 누웠다. 말로 설명해 봐야 서로 답답하기만 하니, 차라리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보여 주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청년은 침대에서 내려와 내 곁에 쪼그려 앉았다. 내가 손을 배 위에 올리면 자기도 그렇게 해 보고, 턱에 힘을 풀면 손끝으로 자기 턱을 만져 보았다. 너무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통에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다.
그래도 내 연기를 이토록 열심히 봐 주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 나로서도 썩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 선생님은 주로 어떤 연기를 하시나요?
내가 몸을 일으키자, 문득 청년이 물었다.
- 다양한 배역을 가리지 않고 맡는 편입니다.
- 예를 들면요?
- 음, 작년에는 편의점에서 행패 부리는 손님 역할을 했었죠. 영화 촬영이었어요.
물론 분량은 거의 없긴 했지만.
- 한번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 갑자기요?
- 네, 궁금해져서요.
나는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수업 시간은 넉넉하게 남아 있었다.
- 상대역이 있어야 하는데, 으음.
- 선생님만 괜찮으시다면... 제가 해 보겠습니다.
- 그래요, 그럼. 따로 대본은 없고, 자연스럽게 응수해 주시면 됩니다.
우리는 방 안의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섰다. 나는 손에 동전을 쥔 것처럼 손가락을 오므렸다가 테이블 위로 내던지는 시늉을 했다.
- 얌마! 그거 말고 내가 맨날 사는 거 있잖아. 그걸로 달라니까?
- 어떤 담배 피우시는데요?
- 이야, 이놈 싹퉁바가지 봐라. 아직도 그걸 몰라?
- 저는 오늘 첫 근무라서요.
낭패다. 원래는 여기서 상대가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여야 하는데.
청년은 사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내가 무슨 담배를 피우는지 말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가, 편의점에서 실제로 마주쳤던 손님 하나를 떠올렸다.
- 됐고. 사장 나오라고 해.
- 지금 안 계십니다.
- 그럼 전화를 하든가!
내가 탁자 너머로 몸을 기울인 순간, 청년에게서 역한 냄새가 끼쳐 왔다.
숨이 막혔다. 나는 얼른 뒤로 물러나 종아리를 움켜쥐었다.
- 잠깐만요. 다리에 쥐가 나서...
청년이 테이블을 돌아 나오려 하기에, 나는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멀쩡한 다리를 주무르고 있자니 청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 혹시 연기 끝나신 건가요?
- 네?
- 아픈 척하면서 그냥 가려는 손님인 줄 알았거든요.
나는 얼떨결에 웃음을 터뜨렸다.
- 아직 계산도 안 했잖아요!
- 그러니까요. 붙잡아야 하나 싶어서.
청년도 따라 웃었다. 나는 다리를 몇 번 더 주무르다가 일어났다. 여전히 냄새가 났지만, 테이블 건너편에 서 있으면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 한 번만 더 해 봅시다. 이번에는 제가 알바 해 볼게요.
청년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5.
그 뒤로 수업은 자꾸만 옆길로 새고는 했다.
나는 예전에 받아 둔 대본들을 찾아 가방에 넣어 갔다. 이미 끝난 작품이니 다시 꺼내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것들이었다. 어떤 대본에는 내 대사가 한 줄밖에 없었지만, 청년은 그걸 보고도 아무 말 없이 상대역의 대사부터 읽어 주었다.
그렇게 시작하면 슬슬 누워 보는 연습으로 돌아가야 할 때에도 내가 한 번만 더 해 보자며 붙잡곤 했다. 어느샌가부턴 당최 누구의 과외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청년은 대사를 읽을 때와 누워 있을 때가 사뭇 달랐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을 때는 제법 짓궂은 말도 툭툭 던졌는데, 침대로 돌아가기만 하면 손부터 꽉 말아 쥐었다. 마치 긴장이라도 하는 양.
내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언제나 비슷했다.
- 너무 의식적으로 최선의 자세를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조금 불편해도 일단 가만히 있어 보는 겁니다. 저는 촬영 중이면 돌멩이가 등에 박히는 중이어도 그냥 가만히 누워 있어요.
- 아파도요?
- 그럼요. 그렇다고 그때마다 일어날 수는 없으니까요.
청년은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곁에 앉아 눈을 감고 힘을 빼도록 도왔다. 그러다 몸이 움직이면 잠깐 쉬었고, 다시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청년의 아버지의 요청에 따라 간간이 불을 끄고 누워 있는 연습도 조금씩 이어 갔다.
집에 돌아오면 겉옷부터 빨았다. 처음에는 냄새가 덜 배는 옷을 골라 입고 갔지만 나중에는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청년의 얼굴에 입혀진 화장은 점점 두꺼워지고 있었다. 수업 도중 여자가 들어와 청년의 입가를 닦아 주는 날도 있었다. 청년은 그럴 때마다 미안하다며 대본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했다.
6.
그날도 가방에 대본을 챙겨 갔다.
지난번에 청년과 합을 맞추다가 시간이 다 되어 멈춰 두었던 부분부터 다시 시작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청년이 오늘은 누워 보는 연습부터 하겠다고 했다.
- 바로요?
- 네. 오늘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외였다. 누워 있는 연기 연습을 먼저 자청하는 일은 꽤 드물었는데.
나는 침대 곁으로 의자를 당겼다. 청년은 혼자 자세를 잡았다. 어깨를 내리고,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손을 배 위에 올렸다. 엄지손가락끼리 맞물려 있어 그 부분만 살짝 풀어 주었다.
- 불도 꺼 주세요.
청년이 말했다.
- 그럼 3분만 해 봅시다. 끝나면 제가 말씀드릴게요.
불이 꺼졌다.
나는 시계를 보고, 침대에 누운 청년의 흐릿한 윤곽을 살폈다. 이불이 가슴까지 덮여 있었다. 청년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벌써 말을 걸어왔을 시간이었다. 아니면 난간을 두드린다든가.
나는 자세를 고쳐 앉으려다가 도로 멈췄다. 괜히 자리를 뜨는 것으로 오해를 살 것 같아서였다.
여전히, 청년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3분이 되었을 때, 나는 컷을 불렀다.
남자가 불을 켰다. 청년은 조금 전의 자세 그대로 누워 있었다. 주먹을 쥐지도, 몸을 웅크리지도 않았다.
- 끝났습니다. 이제 눈 뜨셔도 돼요.
눈꺼풀이 조금씩 올라갔다. 청년은 멍하니 천장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찾았다.
- 저, 어땠어요?
- 잘하셨어요. 한 번도 안 움직이시던데요?
- 아파 보이지는 않았어요?
나는 잠시 망설였다. 어두워서 표정까지 제대로 본 건 아니었지만, 여기서 굳이 초를 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 네. 편하게 주무시는 것 같았습니다.
청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알겠다며 도로 눈을 감았다.
문가에 서 있던 여자가 다가와 침대 곁에 주저앉았다. 울고 있었다. 남자는 내 두 손을 붙잡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했다.
나는 어쩔 줄 몰라 서 있다가 가방을 챙겼다. 어쩐지 내가 끼어들 자리가 아닌 것 같았다.
가져온 대본은 꺼내지 않았다.
7.
며칠 뒤 남자에게서 문자가 왔다.
[장례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동안 우리 아이를 가르쳐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장례라니. 며칠 전만 해도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이다. 아무리 몸이 안 좋았다지만, 이렇게 갑자기?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묻는 답장을 쓰다가 지웠다.
나는 그 사람이 무슨 병을 앓았는지도 몰랐다. 왜 눕는 것을 연습해야 하며, 불 끄는 것을 두려워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단지 마지막 수업에서 괜찮아 보였다고, 잘하셨다고 일러준 것. 그리고 청년이 이에 안도했던 것.
그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따라서, 내 역할은 여기까지인 것이다.
결국 명복을 빈다는 짧은 답장만을 보냈다.
내 방 책상에는 다음 주 있을 오디션의 대본이 놓여 있다.
나는 한동안 가만히 대본을 바라보다가, 내 대사에 밑줄을 치며 읽어 나갔다.
상대역의 대사도 소리 내어 읽어 보았다. 대개 그렇게 연습하고는 했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자꾸만 중간에 읽기를 멈추게 됐다.
8.
부부가 내 자취방을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저녁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어떻게 주소를 알아냈는지를 따져 물으려 했다.
하지만 여자가 품에 안고 있는 것을 본 순간 다른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 장례, 치르셨다면서요.
- 네. 다 끝났습니다.
여자는 작은 유골함을 안고 있었다. 두 손으로 단단히 감싸고 있었는데도, 그 안에서 무언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타닥.
탁.
탁.
여자가 뚜껑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 엄마 여기 있어.
현관문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문을 닫고 싶었다.
- 선생님, 염치없지만 한 번만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 선생님 덕분에 장례는 잘 치렀습니다. 마지막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요.
남자는 아내가 안고 있는 함을 내려다보았다.
- 그런데 집에 오고 나니까 또 이래서요.
여자는 지난번보다 훨씬 수척해져 있었다.
- 잠깐 보기만 해 주셔도 괜찮아요. 부탁드립니다. 시급은-
나는 내 신발을 발로 밀어 구석에 치웠다.
- 일단 들어오세요.
9.
남자가 이부자리 곁에 하얀 천을 펼친다. 여자는 그 위에 유골함을 내려놓고 뚜껑을 연다.
함 안에는 크기가 제각각인 뼛조각들이 들어 있다. 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가,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자 도로 그쪽을 바라본다. 가장 위에 놓인 작은 조각 하나가 옆의 조각을 밀어내고 있다.
여자가 함에 손을 넣어 뼈를 꺼낸다. 조각들을 천 위에 하나씩 내려놓고, 남자는 그 옆에서 뼈를 가지런히 정렬한다. 기다란 조각들을 양옆에 놓는 것을 보고 나서야 사람의 몸 모양으로 늘어놓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군데군데 빈 곳이 너무 많다.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둥글게 휜 조각이 몇 개 모여 있고, 그 아래는 또 한참이나 비어 있다.
나는 그 앞에 쪼그려 앉는다.
- 어깨에 힘부터 빼 볼까요?
말을 꺼내 놓고도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겠다. 보통은 이쯤에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이렇게 하는 게 맞느냐고 물어왔을 텐데.
천 위의 작은 조각들이 조금씩 움직인다. 서로 부딪쳐 소리가 난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가 무릎 위에 도로 올려놓는다. 자세를 고쳐 주겠다고 함부로 손을 댔다가는 부스러져 버릴 것만 같다.
- 제가 한번 보여 드리겠습니다.
나는 이불 위에 눕는다. 매일 아침 바라보던 익숙한 천장이 보인다.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두 손을 배 위에 올리고, 어깨에서 힘을 뺀다.
옆에서 무언가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난다.
고개를 조금 돌려 보니 길쭉한 뼛조각 하나가 들썩이고 있다. 천에 걸려 잘 움직이지 않는 듯하더니, 몇 번 더 힘을 주어 내 팔과 나란한 방향으로 놓인다. 내가 손을 조금 아래로 내리자 그 끝에 있던 작은 조각들도 따라서 밀려 내려온다.
나는 잘하고 계시네요, 하고 말하려다가 도로 입을 다문다. 지금은 끝까지 한번 보여 주는 편이 나을 것이다.
천장을 향해 고개를 바로 놓고 눈을 감는다. 조각들이 자리를 옮기는 소리가 한동안 이어지다가 조금씩 잦아든다.
그러다 오른쪽 종아리에 쥐가 났다.
갑자기 근육이 뻣뻣하게 뭉치면서 발끝이 아파 온다. 나는 반사적으로 발목을 꺾으려다가, 옆에서 무언가가 따라 움직이는 소리를 듣는다. 바닥을 긁는 소리가 거칠다.
발을 도로 내려놓는다. 종아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다. 자세를 풀고 잠깐 쉬자고 하면 될 텐데, 곁에서 내 발을 따라 움직이던 조각들이 겨우 멈춘 참이다. 참아야지.
- 이제 좀 편해진 모양이네요.
여자가 속삭인다.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이를 악물면 턱에 힘이 들어갈 테니, 그것도 참는다. 종아리에서 발바닥까지 통증이 길게 뻗어 오는 동안에도 두 손은 배 위에 얌전히 포개 둔다.
나는, 컷 신호를 기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