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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도대체 뭔 말인지 모르겠네.

익명
2026-09-07 16:30

방학인데 하는 것도 없이 그냥 집에만 있던 나에게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이면서 같은 과 동기인 태성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가 하는 알바가 있는데 나도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하는데, 알바 소리를 듣자마자 귀찮아서 거절하려다가 태성이가 넌지시 말한 시급을 듣자마자 덥석 받아들였다.

태성이는 잘 생각했다고 하면서 나에게 알바에 대해 소개해주는데, 듣는 것 만으로는 이만한 꿀알바가 없어 보였다.

점점 기분이 들뜨기 시작할 무렵, 문득 태성이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근데 거기 가면, 일단 뭐든 아는 척해.”

무슨 소리냐고 묻는 내게 태성이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아, 나도 몰라. 나도 확실히 설명은 못 해. 그냥 거기 사람들, 아니 거기 분위기가 그래. 뭘 물어보든, 지들끼리 무슨 얘기를 하든 일단 무조건 다 알아듣는 척해. 고개를 끄덕이든, 적당한 타이밍에 웃든 하라고.”

“아니 그게 무슨 알반데 그래? 그래도 최소한 내가 무슨 정보라도 알아야 될 거 아냐?”

“아니, 절대. 오히려 알려고 하면 안 돼.”

태성이의 눈빛이 순간 묘하게 가라앉았다.

“진짜 중요한 건 이거야. 절대 그게 뭔지 알려고 하지 마. 알면 안 되는 거니까, 그냥 아는 척만 해. 어쨌든 아는 척하면서 앉아만 있어도 돈은 엄청나게 주니까.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사실 전혀 알 수 없었지만, 태성이 말대로 정말 시급이 내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 액수였기에 나는 찝찝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간판 하나 없는, 거무튀튀한 회색빛의 낡은 5층 짜리 상가 건물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평범해 보였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자, 피부에 닿는 공기가 뭔가 끈적하고 무겁게 느껴졌다. 

사무실 내 사람들은 저마다 무언가에 쫓기듯 일하고 있었지만, 눈동자에는 묘하게 초점이 없었다.

이 사무실에서 내가 맡은 업무는 특이했다.

아니, 특이한 걸 넘어서 기괴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일단 내 자리라고 알려준 곳에 그냥 앉아 있으면, 이따금씩 직원들이 서류철이나 정체불명의 도면 같은 것을 들고 찾아왔다.

그러면서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늘어놓고는 내게 뭔가를 물어봤다.

“이번 주기의 배율은 지난번 ‘침전’ 때와 동일하게 가는 게 맞겠죠? 각도가 조금 틀어지긴 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처음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침전이니, 각도니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일전에 태성이에게 들었던 말이 떠오른 나는 애써 표정을 굳히며 알지도 못하는 서류를 훑어보는 척했다.

“음... 네. 뭐, 저번이랑 큰 차이는 없어 보이네요. 그대로 가시죠.”

내 대답에 직원은 안도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행입니다. 역시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하고 돌아갔다. 

이런 식으로 ‘그날의 파장’, ‘세 번째 이명 현상의 처리’, ‘수집된 유실물의 탈각 기한’ 이라는, 분명 한국어지만 도대체가 전혀 알아 먹을 수 없는 기괴한 단어들이 내 앞에서 난무했다. 

나는 그때마다 때로는 턱을 괴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괜찮다”, “원래 매뉴얼대로 해라”, “조금 더 지켜보자” 같은 모호한 말들로 아는 척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이 기묘한 연극에 서서히 녹아들었다. 

처음에는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지만, 나중에는 제법 능청스럽게 서류를 툭툭 치며 “이 부분은 저번에도 지적하지 않았습니까?”라며 역으로 질문을 던지는 여유까지 생겼다.

사무실 직원들도 점점 나를 신뢰하는 눈치였다. 

처음에는 나를 두고 자기들끼리 미심쩍은 듯한 표정을 짓더니만, 이제는 “이건 이분께 여쭤보는 게 가장 정확하다”며 내게 결정을 미루기도 했다. 

태성이 역시 쉬는 시간이면 슥 다가와서는 “야 너 진짜 잘한다. 처음 맞냐?” 라며 감탄을 금치 못하며 지나갔다.

하지만 그런 사무실에서의 평판과는 달리 내 속은 철저하게 곪아가고 있었다.

매일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눈치와 감각 만으로 ‘절대 틀려서는 안 될 것 같은’ 대답을 지어내는 과정은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할 때마다 등에 소름이 돋았고, 

내가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그들의 얼굴에 스치는 기묘한 웃음이나 서늘한 침묵을 마주할 때면 끔찍한 위화감이 들곤 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나는 신발도 채 벗지 못한 채 침대에 쓰러져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리고는 거의 매일같이 가위눌림과 의미 모를 웅얼거림으로 꿈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보다 사무실 공기가 유난히 차갑던 날, 점심시간이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타자 소리와 전화벨 소리가 일제히 멎었다. 

적막이 내려앉은 사무실 안에서,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굳은 표정으로 내 자리로 다가왔다. 

그의 뒤로 사무실의 모든 직원들이 숨을 죽인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남자는 내 책상 위에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검은색 서류 봉투 하나를 올려놓았다.

“이건 정말... 중요한 사안입니다. 이전 단계에서 계속 보류되어 왔던 안건인데, 오늘 안에는 반드시 최종적인 결단을 내려야만 합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을 알아챈 나는 애써 침을 삼키며 여느 때처럼 태연한 척 봉투에 손을 얹었다.

“어떤 건이죠?”

“어젯밤에 들어온 ‘그것’ 말입니다.” 

남자는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기존의 폐기 규정대로 14번 소각로로 보낼까요, 아니면... 지난번에 넌지시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번에는 ‘분리’를 먼저 진행할까요? 방향을 정해주셔야 합니다. 모두가 당신의 대답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내가 지난번에 그런 말을 했던가? 

아니, 애초에 ‘그것’은 뭐고 ‘분리’는 또 뭔가?

내 대답 하나에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직감이 온몸의 털을 곤두서게 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정적이 길어지자, 남자의 얼굴에 서서히 당혹감과 함께 기묘한 불신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나를 지켜보던 수십 개의 눈동자들이 일제히 일그러지는 듯한 환각마저 들었다.

들키면 안 된다. 

모른다는 걸 들키는 순간, 모든 게 끝장날 것이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하얘진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문득 알 수 없는 안정감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나는 올려두었던 손으로 봉투를 가볍게 툭툭 치며, 최대한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분리부터 하시죠.”

내 목소리는 스스로가 듣기에도 놀라울 만큼 차분하고 능청스러웠다.

"흠......"

이번엔 중년 남성 쪽에서 긴 정적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남자가 긴 침묵을 깨고 마침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그렇게 가야 가장 확실하게 끝날 것 같군요.”

그 말과 함께 남자의 굳어 있던 얼굴이 기괴할 정도로 환하게 펴졌다. 

주위에서 숨을 죽이던 직원들 사이에서는 낮게 안도하는 탄성과 더러는 누군가 작게 박수를 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럼, 알겠습니다. 이번엔... 정말 끝내보도록 합시다.”

남자는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봉투를 챙겨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다시 타자 소리가 울리고, 사무실은 끔찍할 만큼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저쪽에서 태성이가 걱정스러운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태성이를 쭉 응시하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든 나는 노트를 펼치고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적는 손놀림은 거침이 없었고, 

그것이 무슨 말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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