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레딧) 러시아의 얼음 도로에선 서로 도와야만 해
사람들이 내 아내가 러시아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장을 보러 갈 때도 항상 하이힐을 신고 다니는 키 큰 금발에 웃긴 억양을 가진 여자를 떠올리곤 해. 하지만 현실은 그 고정관념과는 거리가 멀었어. 라나는 흑발이고, 영어는 나보다 더 잘하고, 운동화를 완전 좋아하거든. 그래도 딱 하나, 고정관념에 맞는 게 있긴 했어. 그녀는 절대 추위를 타지 않았지. 열여덟 살까지 러시아에서 살았으니까.
물론 모스크바는 아니었어. 모스크바가 사실 꽤 따뜻하다는 거 알고 있었어? 미국에는 모스크바 사람들이 겪는 그 어떤 겨울보다 훨씬 더 추운 겨울을 겪는 주들도 많았어. 아니, 내 아내는 러시아 북쪽 끝자락, 툰드라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 출신이었어. 북극권 안에 있는, 어둡고 음침하고 우울한 몹시 추운 곳이었지. 겨울은 극도로 혹독했고, 사람들은 그보다 더 거칠었어. 말 그대로 고정관념에 딱 들어맞는 곳이었지.
나는 결혼식을 포함해서 장인장모님을 딱 두 번밖에 만난 적이 없었고, 두 번 다 그분들이 미국으로 왔을 때였어. 솔직히 말하면, 라나의 고향을 방문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 9일 전, 그 운명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야. 장모님이 뇌졸중을 겪으셨다는 거였어. 당장은 상태가 안정적이었지만, 현지 의사는 언제라도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했어. 더 좋은 병원으로 옮기는 건 불가능했는데, 앞으로 설명하게 될 그런 여정을 견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지.
아내는 즉시 이동 준비를 했어. 나는 몇 주 전에 모스크바로 출장을 다녀온 덕분에 유효한 러시아 비자가 있었고, 그래서 그녀와 함께 가기로 했지. 그런데 아내의 고향으로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 먼저 모스크바로 비행기를 타고 가고, 거기서 러시아 툰드라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인 노릴스크로 환승해야 했어. 거기서 다시 예니세이 강을 따라 한 시간 정도 이동해야 하는데, 여름에는 바지선을 타고, 겨울에는 얼음 위를 차로 달려야 했지.
급하게 모스크바까지 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어. 하지만 거기서부터 문제가 생겼지. 우선, 나는 외국인이라 노릴스크로 라나와 함께 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어. 그걸 이해할 새도 없이, 이번엔 노릴스크 공항이 악천후 때문에 모든 항공편이 중단됐고, 그 주 내내 날씨가 나아질 기미도 없다는 말을 들었지. 나는 최대한 라나를 위로하려 했지만, 어머니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에 그녀는 거의 미쳐가고 있었어. 그러다 라나가 “대안”을 제시했지. 노릴스크보다 꽤 남쪽에 있어서 폭풍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도시로는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거였어. 적당한 비용만 내면, 거기에 사는 가족 친구가 얼음 도로를 따라 하루 동안 차를 몰아 라나의 고향까지 데려다줄 수 있다고 했지. 정확히 말하면 하루라기보다는 밤새는 여정이었는데, 그 사람 말로는 희미한 낮빛보다는 자동차 불빛에 의지해 밤에 이동하는 게 더 낫다고 했거든.
나는 아내한테 미쳤냐고 말했어. 하지만 그녀는 자기 계획을 완강하게 밀어붙였지. 아버지랑 함께 짐니크(러시아에서 겨울철에 강이 얼거나 해서 임시로 쓰이는 길을 부르는 말)를 여러 번 다녀봤고 완전히 안전하다고 했어. 내가 아무리 설득해도 꿈쩍도 안 했고, 모스크바에 남고 싶으면 혼자 남아도 된다고 하더라. 당연히 그건 선택지가 아니었고, 결국 내가 포기했어.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비행기를 탔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추위가 나를 덮쳤어. 전혀 다른 종류의 추위였지. 파고들고, 무자비했고, 내가 껴입은 여러 겹의 스웨터나 양말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어. 앞으로 얼마나 더 추워질지를 상상하니 몸이 절로 떨렸어.
우리는 북쪽으로 데려다줄 트럭 운전사를 만났어. 그는 자기 이름을 콜랴라고 했고, 내 아내는 그녀의 러시아식 이름인 “스베타”라고 불렸지. 나는 아예 이름으로도 안 불렸어. 대신 그가 아내에게 말할 때마다 나를 경멸적으로 “미스터 미국노므스키”라고 불렀지. 라나는 웃으면서, 콜랴에게 내가 러시아어를 알아듣는다는 걸 일부러 말 안 했다고 했어. 솔직히 말해, 그가 알았어도 신경은 안 썼을 것 같았지만.
콜랴는 아내보다 몇 살 어리다고 했지만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였어. 그의 피부와 자세는 고향의 혹독한 환경에 완전히 닳아 있었지. 그는 우리의 미국산 신발과 코트를 비웃으면서, “혹시 모르니까”라며 여분의 재킷이랑 양말, 발렌키를 챙기겠다고 했어. 그의 형이 소련 붕괴를 직접 겪은 것처럼 보이는 트럭에 짐을 싣는 걸 도와줬고, 그다음 콜랴는 보드카 한 잔을 들이켰어. 길을 나서기 전에 한 잔.
아내는 내가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걸 봤어.
“여긴 뉴욕도 아니고, 모스크바도 아니야.” 그녀가 조용히 말했어. “여기 사람들은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이 좀 뒤처져 있어. 걱정 마, 운전 못 할 정도로 마시진 않을 거야. 도로에서 그게 사람을 죽이는 걸 직접 봤거든.”
그래, 뭐.
정말로 첫 잔이 마지막이었고, 콜랴는 트럭에 올라탔어. 그는 아내에게 조수석을 권했는데, 내가 이해한 러시아식 마초 문화로 보자면 그건 거의 내 얼굴에 장갑을 던지는 거나 다름없었지. 뭐 어때. 우리만 목적지에 데려다주면 됐어.
도로는 어둡게 뻗은 얼음과 단단히 눌린 눈으로 덮여 있었고, 그 위에는 아침에 내린 새 눈이 살짝 뿌려져 있었어. 길 양옆에는 눈더미가 쌓여 있었고, 그게 도로 위로 조금씩 흘러들어와 있었지. 그 외에는 수 킬로미터씩 이어지는 황량하고 평평한 풍경뿐이었어. 처음 몇 시간 동안은 반대 방향으로 가는 차 몇 대를 봤고, 그러다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가던 차 한 대가 우리를 추월해서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어. 녹이 다 슬어버린 조그만 스바루였지. 나는 그 순간 러시아인을 이해하려는 걸 포기했어.
그 스바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내리기 시작했어. 처음엔 조금이었지만 점점 심해졌지. 콜랴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고, 나도 최대한 침착하려고 했어. 바람이 끼어들기 전까지는 거의 잘 버텼지. 눈과는 달리, 바람은 시작부터 거셌어.
바람이 휘몰아치는 소리를 듣고 괜히 마음이 불안해진 적 있어? 이제 그걸 상상해봐. 자동차 헤드라이트만이 비추는 새까만 밤 한가운데서 말이야. 우리 차 말고는 주위가 완전히 조용했고, 생명이라고는 전혀 없는 것처럼 봄이 올 때까지 얼어붙어 있었어. 그나마도 지금은 바람의 장난감이 된 두꺼운 눈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았지. 눈보라가 차 주위를 휘감고, 창문을 덮어버리고 있었거든.
콜랴가 러시아 욕을 퍼붓는 사이, 우리의 속도는 거의 기어가다시피 느려졌어. “잠깐 멈춰서 지나가길 기다리는 게 어때?” 내가 불안하게 제안했지.
“안 돼.” 라나는 운전자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듯 말했어. “멈추면 차가 다시 안 걸릴 가능성이 커. 그러면 누가 와서 데려가 주길 기다리며 여기 갇히는 거야. 그리고 오늘은… 너무 차가 없어.”
우리가 얼어 죽을 수도 있다는 아주 현실적인 가능성이 망치처럼 머리를 때렸어. 나는 좌석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은 채, 말없이 잘 되길 빌었지. 돌아온 대답은 거센 바람소리뿐이었는데, 그 소리가 너무 이상했어. 처음엔 낮고 조용하게 시작했다가 점점 커지면서, 고양이 울음 같은 절정으로 치닫다가 갑자기 뚝 끊겼어. 그리고 다시 시작됐지. 소리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서로 다른 타이밍으로 들려왔고, 마치 늑대 떼가 울부짖는 것 같았어.
눈을 뜨자 차 안의 긴장이 그대로 느껴졌어. 라나와 콜랴 둘 다 몸을 앞으로 숙이고, 도움이 되든 말든 유리창 너머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지. 콜랴가 나를 힐끗 돌아봤어.
“걱정 마, 안심해!” 콜랴가 끔찍한 러시아식 억양으로 외쳤어. “다 괜찮아! 걱정 마, 아메리카!”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어. 나는 얼음 도로에서는 쓸모없었지만, 형사 변호사였고, 그것도 꽤 잘하는 편이었지. 그리고 콜랴는 거짓말을 정말 못했어. 그의 얼굴과 목에는 땀이 맺혀 있었고, 목소리는 부자연스러웠어. 그는 몹시 겁에 질려 있었고, 그게 나까지 겁먹게 만들었지.
콜랴는 아내에게 뭐라고 중얼거렸는데, 너무 빠르고 조용해서 정신없는 내 머리로는 알아들을 수 없었어. 라나는 고개를 끄덕였지.
“뭐라고 했어?”
“지금 속도로 가면, 한 삼십 분쯤 앞에 마을이 하나 있어. 거기까지 가서 아침까지 버티는 거야.”
“알겠어. 지연돼서 미안하네.” 사실 나는 그 말을 듣고 엄청 안도했어. “바람이 심하네, 그치?”
라나는 뱀처럼 빠르고 갑작스럽게 내 손을 잡았어. “바람 얘기. 하지 마.”
폭풍 속에서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어. 길고, 쇳소리 나는 울음이었고, 등골이 서늘해졌지. 익숙한 소리라는 걸 깨닫는 데 몇 초가 걸렸어. 바람이 벽이나 굴뚝 사이로 불 때 나는 휘파람 소리였거든. 그리고 또 몇 초 뒤에야, 주변에 그런 벽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머리를 때렸어.
내가 뭐라고 말하려 입을 여는 순간, 아내가 내 팔을 꽉 잡았어. 그 순간, 조용히 해야 한다는 걸 알았지.
우리는 폭풍 속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들의 불협화음 속을, 팽팽한 침묵으로 달렸어. 울음과 비명, 울부짖음과 외침들—이 모든 걸 바람이 만들어낸다는 건 말도 안 됐어.
소리들은 점점 가까워졌고, 점점 커졌어. 우리는 필사적으로 앞을 응시하며 서로의 손을 꽉 잡았지. 눈보라 사이로 간신히 뭔가가 보였어. 커다란 어두운 형체가 우리의 불빛을 반사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스스로 빛을 내며 어둠을 찢고 있었는지…
콜랴가 욕을 내뱉으며 급히 핸들을 틀었어. 우리는 눈에 빠져 멈춰 선 다른 차 옆을 지나고 있었어. 그 차의 비상등이 깜빡이고 있었지.
“멈춰.” 라나가 갑작스럽고 날카롭게 말했어.
“뭐?” 콜랴가 러시아어로 물었어. “미쳤어?”
“멈춰.” 아내가 반복했어. “얼음 도로에서는 도와야 해. 그게 규칙이잖아, 기억하지?”
콜랴는 내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눈빛으로 그녀를 오래 빤히 봤어. “그건 도로의 규칙이지.” 그가 되뇌듯 말하고는, 완전히 멈추지는 않은 채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였어. 나는 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지. 눈에 빠진 차의 운전자는 이미 우리 쪽으로 뛰어오고 있었어. 그 차는 아까 우리를 추월해 갔던 바로 그 스바루였어.
“세상에, 당신들이 있어서 정말…” 그 운전자가 말하려 했어. “타, 이 멍청아!” 콜랴가 소리쳤고, 그 남자는 입을 다물고 뛰어들어왔어. 스무 살도 안 돼 보이는 애였고, 짙은 붉은 머리에 듬성듬성 난 수염이 있었지. 그는 얼어붙을 듯 떨고 있었고, 공포에 질려 있었어.
“정말 다행이에요!” 그가 다시, 숨죽인 속삭임으로 말했어. “저 놈들한테 잡히는 줄 알았어요.”
“저 놈들?” 내가 혼란스러워서 물었어. 콜랴와 라나는 동시에 그 애를 돌아봤고, 그 눈빛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았지.
“아, 저 놈들요, 그러니까 바람이랑 눈이요.” 그 애가 급히 말을 고쳤어. 나는 그 순간, 이미 너무 늦었다는 느낌이 갑자기 들었어… 여전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전혀 모르면서도 말이야. 우리는 다시 달렸고, 차 밖에서 울부짖음과 비명이 뒤엉키는 소리는 침묵 속에서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됐어.
“이름이 뭐야?” 내가 최대한 또박또박 러시아어로 물었어. 그가 눈을 깜빡였지.
“세르게이요. 세르게이 몰차노프요. 제 부모님은… 아무튼간에, 운전하면 안 됐는데, 여자친구 생일에 맞춰 가고 싶어서…”
“둘 다 입 닥쳐.” 아내가 꾸짖듯 말했고, 우리는 즉시 조용해졌어. 그러자 주변 소리가 바뀐 게 바로 느껴졌지. 훨씬 더 커졌어. 가장 날카로운 비명 같은 소리가 귀를 찔렀고, 낮고 집요한 울부짖음이 차를 둘러싸는 것 같았어. 그리고 가끔씩, 진짜 포효처럼 들리는 소리가 밤을 갈랐지.
차는 속도를 올렸어. 나는 콜랴를 봤고, 그가 시야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고 있다는 걸 알아챘어. 그의 트럭은 이 상황에서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로 덜컹거리며 달리고 있었지만, 점점 다가오는 소음은 우리가 전혀 충분히 빠르지 않다는 걸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어.
그러다 차가 무언가에 부딪혔어. 트럭이 휘청이며 급정거했고, 우리는 모두 앞으로 튕겨 나갔지. 나는 아내 좌석 등받이에 관자놀이를 세게 부딪혔어.
“뭐야... 방금?” 내가 신음했어.
“얼음 덩어리 같은 걸 친 것 같아.” 라나의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먹먹하게 들렸어. 나는 그녀의 입술에 시선이 고정됐던 걸 기억해. 창백하고, 얇아 보였지. 머릿속에서 둔하게 울리던 통증이 뜨겁고 압도적인 고통으로 터져 나왔고, 나는 그대로 뒷좌석으로 쓰러졌어.
“기절했어요!” 세르게이가 외쳤어. 아니라고 바로잡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말을 듣질 않았어. 눈꺼풀이 하나에 한 톤씩 나가는 것처럼 무거워서, 겨우 눈을 조금 떠서 깜빡이는 차량 불빛 아래 창백한 얼굴로 서로 모여 있는 러시아인 셋을 볼 수 있었지.
“이제 어떡하죠?” 세르게이가 불안하게 물었어.
“음, 어디 보자.” 내가 그런 상태에서도 알아들을 수 있었던 건 라나가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거야. 억양 하나하나까지 너무 익숙한 목소리였거든. “밖에 나가서 우리가 뭘 친 건지, 어떻게든 치울 수 있는지 확인해보는 게 어때?”
“뭐라고요?!”
“우리가 널 도와줬잖아, 그렇지?” 차 불빛 속에서 라나의 초록색 눈은 아주 파랗게 보였어. “그러니까 너도 우리를 도와주는 게 어때. 결국 얼음 도로에서는 서로 돕는 거잖아. 그게 규칙이야.”
콜랴가 투덜거리며 동의했어. 그러더니 몸을 뻗어 소총을 꺼내 세르게이를 겨눴지.
세르게이는 흐느끼듯 말했어. “저것들이 밖에 있는 거 알잖아요!”
“글쎄.” 라나의 목소리는 흠잡을 데 없이 침착했어. 차갑기까지 했지. “그럼 그들에 대해 큰소리로 말하지 않는 게 좋겠네. 생각도 하지 않는 다면 더 좋고.”
내 눈은 의지와 상관없이 감겼어.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확 밀려들어오는 게 느껴졌지. 그리고 마침내 나는 진짜로 의식을 잃었고, 무의식 속에서 공포에 질린 비명과 밤을 가득 채우는 하나의 끔찍한 포효를 꿈꿨어.
나는 낮에 정신을 차렸어. 약간의 돈을 받고 우리를 재워주기로 한 현지 가족 집의 소파 위였지. 아내는 나를 살뜰히 돌보고 있었어. 내가 의식이 또렷하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낮에는 나머지 길을 갈 수 있다며 나를 서둘러 차에 태웠고, 아내 고향에 가면 진짜 의사가 나를 봐줄 수 있다고 했어.
나는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어. 희미한 기억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지.
“그 애는 어디 있어? 세르게이?”
“무슨 애?” 라나가 진심으로 놀란 듯 물었어.
“애는 없었어, 우리는 둘이서만 이동했어.” 콜랴가 러시아어로 덧붙였지. 나는 그가 내가 뭘 묻는지, 또 내가 그의 대답을 알아들을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의아했어.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고작 이거였어. “빨간 머리의 젊은 남자 말이야…”
“여보, 나 진짜 걱정돼. 생각보다 머리를 훨씬 세게 부딪힌 것 같아. 미국 돌아가자마자 꼭 검사받아야겠어. 어쩌면 모스크바에서 제대로 한 번 더…”
그 이후로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
나머지 길은 아무 일 없이 도착했어. 안타깝게도, 장모님은 우리가 이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의식을 잃으셨고, 우리가 도착한 지 몇 시간 뒤에 돌아가셨어. 라나는 제대로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했지. 지금 그녀는 완전히 무너진 상태라, 나는 그저 그녀를 위로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어. 우리는 장례식까지 여기 머물 예정이고, 돌아오는 길이 전혀 기대되지 않아.
장인어른은 친절하게도 제대로 된 러시아 겨울 코트를 나에게 선물해주셨어. 그래서 날씨 앞에서는 형편없이 무력했던 내 미국산 캐멀 코트를 접어서 짐에 넣고 있었지. 그러다 연한 베이지색 천 위에 붙어 있는 구불구불한 붉은 머리카락 몇 가닥을 발견했어.
그리고 나는, 너무 춥다고 느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