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밖에 나가지 마시오 번외 2/2
이젠 실망하지도 않는다. 애초에 기대도차 하지 않은 일이었다. 송병헌은 옷장에서 적당한 가운을 꺼내 입고는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결과는 어떻게 됐나?”
“변하는 단계입니다만…… 샘플의 양이 너무 많은 탓인지 꽤 진전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살아있군. 즉시 데이터를 수집하도록 해. 소거의 날은 언제지?”
“다음 주 입니다.”
“가지.”
생생한 악몽이었다. 송병헌은 애써 머리를 휘저으며 방을 나섰다. 조수 둘은 서둘러 파일 철들을 챙기고 그를 따랐다.
2년 가까이 이런 일을 해왔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1~2주를 간격으로 충원이 되는 피 실험자들과 검은 생물이 되어 불에 타버리는 ‘실패작’ 들이 반복됐다.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어도 완벽한 내성이란 생길 수 없는 법이었다. 멀쩡했던 사람들이 변하고 그것들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없애는 일. 그들의 고통 섞인 비명 소리를 들으며 실험을 재개해 나가는 일. 점점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나날 속에서 충격적인 사건을 맞았다. 다른 팀 조수의 실수로 유리관 몇 개가 오픈되어 버린 것이다. 고의적인 행동은 아니었으나 그가 한 행동으로 인해 2명의 연구원이 치명상을 입게 됐다. 물론 그들에게 해를 가한 ‘생물’들은 처리한 상태였다.
**
어쩔 수 없이 치명상을 입은 연구원들을 비어버린 유리관 안에 넣어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들도 자신의 처지를 인지한 모양인지 반항이나 거부를 하지 않았다. 최소 그들이 인간다운 면모를 보이며 애원했더라면 그때 내가 내린 결정이 조금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유리관 속에서 힘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두 조수를 보며 나도, 유리관 속에서 울부짖은 생물들도 어느새 동화가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이 가장 허망하고 씁쓸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한 명은 온연한 ‘생물’로 변해버린 상태였지만 다른 한 명은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유지한 상태였다. 우리는 거기서 작은 희망의 불씨를 잡을 수 있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조수의 상태를 며칠 더 지켜본 후 그의 신체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를 덮쳤던 괴물의 신체 역시 낱낱이 해부하여 데이터를 수집했다.
우리들의 탈출구가 원하지 않았던 때에 발견이 되었다. 조수의 체질도 체질이지만 생물의 몸 안에서 아무런 감염체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감염체가 사라져도 온전히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생물. 그리고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던 조수.
그러나 우리는 다시 제자리걸음을 하기 시작했다. 희망 따위는 없는 것인가. 그렇게 며칠이 지나 조수는 우리에게 자신이 앓고 있는 병에 대해 털어 놓기 시작했다. 그건 세간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매우 희귀한 병이었다. 앞으로의 생명이 1년 남짓 가량 남은 시한부 인생이었다.
우리는 거기서 또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생물의 몸 안에 있는 감염체를 없앨 만한 강력한 바이러스 균이 있다면, 생물들을 원래의 모습으로 변환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결론. 충분히 해볼 만 했다. 우리는 즉시 연구에 착수하게 되었고 머지않아 그 결과물이 나타나게 되었다.
녹색의 진한 액체 속에서 검은 알갱이들이 꾸물거리며 움직였다. 그 액체를 바로 실험에 사용했고 곧 성공했다. 허나 문제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이들이 모두 조수와 같은 희귀병을 앓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회의를 시작했다. 이렇게 된다면 생물의 균과 조수의 바이러스 균에 면역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세워졌다. 그런 몸이라면 분명 ‘백신’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시 움직였다. 조수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깨달은 우리는 그의 가족들을 모조리 잡아들였다. 죄책감 같은 것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저마다 같은 심정이었고 인간의 정을 느끼기에는 이미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실험을 했다. 그 중에는 갓난쟁이도 있었지만 우리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딱히 힘을 쓰지 않아도 뒤에서 봐주는 정부가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실험을 하는 도중 조수의 가족력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그들 모두 같은 희귀병을 앓고 있는 상태였지만, 그것에 대한 면역력이 대를 이어오면서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했다. 그 대의 마지막이라면 갓난쟁이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광기에 물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말은 사실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내가 한 일들을 알게 됐고 후회했다. 하지만 우리는 인류를 구하는 일이라며 각자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소수의 희생으로 다수가 살아남는다면 그게 더 이득이 아니겠는가.
조수의 가족들에게 처음 만들었던 샘플을 모조리 주입했다. 2~3일이라는 과정에서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이들은 단 하나,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갓난아이 뿐이었다. 결국 아이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악마의 실험을 시작하게 됐다.
고막을 찢는 듯한 아기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생생했다. 그때 우리는 모든 걸 멈췄어야 했다. 그러나 멈추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아기가 죽고 나서야 실험은 성공했다. 죽음에 대한 슬픔을 느끼기에는 우리 모두가 둔감해져 있었다. 마침내 온연한 녹색의 액체를 얻게 된 우리의 뒤에는 검은 생물들이 아닌 멀쩡한 가족들의 시신과 조수의 시신이 쌓여 있었다. 거기서 최소한의 예를 갖췄어야 했다. 우린 시신들을 생물들과 같이 태워버렸고 녹색 액체로 실험에 들어갔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온연한 모습으로 돌아온 인간들 몇몇을 잡아 같은 방식의 실험을 시행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우리는 액체를 받아들이는 데에도 특이한 체질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는 바이러스 균과 감염 균을 모조리 견뎌낼 만한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체질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으며, 설사 발견되더라도 바이러스 균을 이기지 못해 죽어나가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더 이상 실험에 응하는 자들이 생겨나지 않자 우리는 2억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며 사람들을 모았다. 결과는 상당했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실험이지만 2억이라는 금액에 눈이 뒤집힌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지원했다.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감염균을 온전히 버틸만한 체질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지칠 수밖에 없었다. 지친 몸을 달래며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 여자 아이를 만났다. 곧 쓰러질 것 같은 연약한 몸과 멍한 눈…… 문득 우리의 손에서 죽어나간 아기의 얼굴이 여자 아이와 겹쳐졌다.
연구원과 피 실험자의 관계에서 사소한 감정이 개입되면 곤란하다. 어차피 이들은 곧 죽어버릴 운명에 처한 이들이고, 나는 그런 그들을 실험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여자 아이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은혜라고 했다. 19살이 된 은혜는 고아원에서만 지내다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여기에 온 것이라고 했다. 부득이한 사정이라…… 분명 이 아이와 2억을 바꾼 것이 틀림없겠지. 정신지체아를 데리고 있어봤자 시설에 도움이 되는 것은 하나 없으니 ‘처분’ 을 한 것이 분명했다.
문득 필리핀에서 살고 있는 마누라와 딸이 생각났다. 잘 지내고 있을까. 연락이 두절된 이곳에서는 가족에게 안부를 물을 수도, 전할 수도 없었다. 그저 잘 있기만을 바라고 기도할 뿐이었다.
이대로 은혜를 실험대에 오르게 할 수는 없었다. 지난 세월 동안 내 지위도 상승했기 때문에 은혜를 빼돌리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실험히 계속 되던 해에 덩치가 큰 남자를 발견하게 됐고, 그 남자를 끌어 들였다. 요즘 세대에서 찾아볼 수 없는 거구. 분명 남들과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도 잠시. 남자는 엄청난 사고를 치며 검은 생물이 되어버렸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을 나갈 희망도, 방법도 모두 사라진 것이었다.
오늘은 3회차 실험의 마지막 날이었다. 전처럼 은혜의 신변을 빼돌릴까 하다 어제 일어난 일로 더욱 분명해졌다. 더 이상 은혜를 방치하는 것 역시 좋은 일이 아니라고. 나는 피 실험자들에게 일반적으로 주입되는 액체가 아닌 온전한 백신을 주입하기로 했다. 물론 불법이지만 괴물의 모습으로 죽어가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나았다. 설사 실험이 잘 되도 바이러스 균에 의해 죽어나갈 테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런저런 핑계로 밖으로 빼돌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처분하게 된다면 내 곁에 두고 돌봐주고 싶었다.
유리관에서 멍한 눈으로 몸을 크게 움찔거리는 은혜를 바라봤다. 작고 핏기가 없는 입술이 위 아래로 움직였다.
“아…… 파.”
“…….”
주륵. 그 말에 바보처럼 눈물을 흘렸다. 아직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감정이 남아 있는 것인가. 짧은 시간 동안 큰 고통에 시달리던 은혜는 그대로 혼절했다. 시술이 완료된 것을 알리며 바늘이 다시 들어갔다. 유리관에 주입되는 작은 병에 담긴 액체를 꺼냈다. 혼절해 버린 탓에 시술이 멈춰 액체가 조금 남아버린 것이다.
‘아…… 파.’
힘없는 목소리가 뇌리를 강하게 흔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 액체를 단숨에 들이킨다.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액체가 식도를 타고 뱃속으로 내려갔다. 잘하고 있는 것일까. 회의감이 들었다.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나가서 남들과 같은 평범한 인생을 살고 싶었다.
“…….”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익숙한 방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정신을 잃었던 것인가…… 느리게 상체를 일으키는 도중 낯선 느낌이 들었다. 왼쪽 손목에 꽂힌 주사 바늘과 위로 이어진 링거가 보였다. 언제 이런 걸 맞고 있었지? 대충 주사 바늘을 뽑아내고 다리에 힘을 줬다.
“?”
하지만 자리에 서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무의식적으로 허우적거린 탓에 링거가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축축한 물기가 서서히 웃옷을 적셨다. 멍하니 그것을 느끼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이잉. 문을 열고 나와 중앙 홀 쪽으로 걸어갔다. 이렇게 길었던가. 드륵. 드르륵. 지지대를 바닥에 끄는 소리와 질질 끌리는 슬리퍼 소리만이 복도를 울렸다. 평소 소비하는 시간의 배를 투자하고 나서야 홀에 다다른 나는 엘리베이터에 오르기 위해 이동했다.
띵-동.
운 좋게 문이 열리며 조수 한 명이 나타났다. 조수는 나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짓고는 내게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얼마나 지났지?”
“5일 정도 됐습니다.”
“……5일이나?”
그때 마셨던 백신 때문에 내 몸도 이렇게 망가져가는 것인가. 마지막 은혜의 얼굴이 생각났다. 그 아이는 살아 있을까.
“결과는 어떻게 됐지?”
“대성공입니다. 그 정신지체아 여자아이가 백신을 완벽히 소화했습니다.”
조수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잘됐…… 군.”
이건 내 예상을 훨씬 벗어난 결과였다.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니. 은혜의 몸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인가? 은혜는 이제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는 것인가?
“왜 그러십니까?”
“그냥 좀 놀라서 그래. 그 아이는 어디 있나?”
“추출 중에 있습니다.”
“……5일 내내 그 작업을 한 건가?”
“어쩔 수 없습니다. 다만…….”
“다만?”
조수는 약간 망설였다.
“그 아이. 더 이상 피를 생산해내지 못할 겁니다.”
“……부작용인가.”
“예. 앞으로 추출을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습니다. 길어야 10일…… 15일입니다.”
“그런가. 그리로 안내해주게.”
조수는 놀란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대체 뭘 하려는 속셈이냐고 묻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내 성격을 아는 이상 선뜻 물어보지는 못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했고 조수는 별 다른 제제 없이 나를 부축했다. 5층에 도착한 나와 조수는 샘플실로 이동했다.
곧 여자 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낯설지만 익숙한 목소리였다. 내 만행으로 인해 실험대에 오른 은혜의 소리가 분명했다. 서둘러 가고 싶지만 빌어먹을 두 다리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었다.
“꺄아아아악!”
수개월 동안 은혜를 지켜봤지만 저런 소리를 내며 고통스러워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먹먹하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이를 꽉 깨물고 샘플실의 문을 거칠게 열었다. 침대 위에 사지가 묶여 있는 상태에서 피를 강제적으로 뽑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을 지키는 두 명의 조수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며 서 있었다.
귀를 찢을 듯한 가련한 비명소리를 더 이상 듣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돌아가고 싶지만 두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박사님?”
“송 박사님?”
두 조수가 나를 보며 다가왔다. 번뜩. 그들의 허리에 있는 권총이 빛나기 시작했다.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 나를 부축하는 조수를 뒤로 밀쳐내고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러자 두 조수가 나를 자연스럽게 부축했고, 그 틈을 이용해 권총을 순식간에 빼들었다.
“무슨……?”
“박사님?”
두 사람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들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모르겠다. 정확한 것은 두 조수의 얼굴에 작은 구멍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흐아아아!”
순식간에 당한 두 사람을 보고 공포에 질린 조수가 어이없게 넘어졌다. 나는 그 작은 틈을 내주지 않고 그의 이마에 총알을 박았다. 간신히 내 몸을 일으켜 은혜의 사지를 풀어주고는 몸에 박힌 바늘들을 모조리 뽑아냈다.
그제야 잠잠해진 은혜는 굵은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바라봤다. 역시 이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은혜를 강제로 일으켰다. 지금은 여기를 빨리 벗어나야만 했다.
“은혜야, 걸을 수 있겠니?”
은혜를 보며 간절한 마음을 담아 물었다. 머지않아 다른 팀이 들이닥칠 것이다. 일 분 일 초가 아쉬운 시점이었다.
“……응.”
은혜가 나를 보며 말했다. 멍했던 눈의 초점이 돌아와 있었다. 그 눈을 보며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은혜를 지키겠다고. 이곳에서 빼내겠다고 말이다.
“가자. 밖으로 가자.”
은혜를 밀다시피 샘플실을 벗어났다. 위급한 순간이라 그런지 두 다리가 조금씩 움직여주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고 엘리베이터에 오른 후 은혜의 상태를 간단히 살폈다.
군데군데 붉은 바늘 자국을 제외하고는 큰 이상은 없어 보였다. 이제 무사히 빠져나가기만 하면 된다. 띵-동. 1층에 다다른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고요하고 넓은 홀이 보였다. 묘하게 불안한 기분이 들어 은혜에게 말을 걸었다.
“은혜야, 아저씨 좀 부축해줄래?”
은혜는 어설픈 동작으로 내 왼손을 자기의 어깨에 두르고는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거면 족했다. 비록 빠른 걸음은 아니지만 이대로라면 문제없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면 우선 몸을 숨길 곳이 필요했다. 도시와 꽤 떨어져 있어서 걸어가기엔 불가능 했다. 게다가 내 몸 상태와 은혜의 상태라면 얼마가지 않아 잡힐지도 모른다.
“큭…….”
하지만 여기서 주저할 수는 없었다. 홀을 벗어나 회전문을 통과하자 넓은 공터가 눈에 들어왔다. 몇 걸음 못가 그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피 실험자들을 데리고 오는 작업을 하던 두 명의 경호원들이 나를 보며 서 있었다.
“…….”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을 터. 여기만 벗어나면 돼.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두 경호원에게 외쳤다.
“안에 소동이 일어났소! 빨리 가서 지원해주시오!”
물론 내 눈은 그들 옆에 조용히 주차되어 있는 중형 세단에 가 있었다. 노련한 그들이지만 눈치는 그렇게 빠르지 못했다. 피 범벅이 된 내 상태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은혜의 상태 덕에 그들은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차키를 건넸다.
“조심하십시오.”
예의상 그렇게 건넨 후 세단을 거칠게 몰았다. 부우응. 부드러운 엔진소리와 함께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크아아아아!”
뒤에서 들리는 어마어마한 포효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바보처럼 세단을 세우고 창문으로 몸을 빼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
3~4층 높이의 백색 건물에 검은 색의 거구가 눈에 들어왔다. 꿈속에서 보았던 그 거구와 너무 흡사했다. 하늘을 향해 길게 포효하던 검은 생물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인가.
타앙- 탕. 탕.
경호원들은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검은 생물에게 총알을 퍼부어댔다. 그러나 큰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다. 뒤로 몇 걸음 물러난 검은 생물은 그대로 나를 직시했다.
상당히 멀리 있음에도 붉은 색의 두 눈이 정확히 나를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런 검은 생물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미안합니다…….”
그게 전부였다. 검은 생물은 곧 모습을 감췄고, 나는 서둘러 세단을 몰기 시작했다.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던 간에 일단 은혜를 살리고 봐야 했다.
“크워어어!”
검은 생물의 비명 소리가 점차 작아져 갔다.
**
“아하하하.”
은혜는 하얀 들판 위에서 긴 흑발을 흩날리며 뛰어다녔다. 한 없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뭐라고 말했다. 그러나 들리지 않았다. 다가가고 싶지만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몸을 기울이며 다리에 힘을 주지만, 땅은 끈적끈적한 진흙으로 되어 나를 점점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끈적끈적하고 축축한 감촉이 너무 낯설었다. 급격히 빨려 들어가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손을 뻗었다.
검은색. 길고 강렬해 보이는 털들이 내 손을 완전히 뒤덮었다. 손을 내리고 빨려 들어가고 있는 상체를 바라봤다.
“…….”
내가 알고 있던 내 모습이 아니었다. 이건 마치…….
“안녕.”
어느새 내 앞에 다가온 은혜가 나를 보며 말했다. 손을 뻗어 은혜의 손을 잡고 싶었지만 흙과 털로 더럽혀진 내 몸으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나를 보며 미소를 짓는 은혜는 다른 곳으로 멀리 사라져버렸다.
쿵. 허억.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곧 머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자 살랑거리며 흩날리는 검은 색의 얇은 털들이 떨어져 내렸다.
“!!”
손을 뻗어 떨어지는 털들을 잡아냈다. 하지만 곧 놓쳤다. 내 손은…… 아니, 내 손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곰이나 늑대와 비슷한 했다. 사람의 손이 아니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투명한 유리관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다. 슬쩍 팔꿈치를 들어 가볍게 두드렸다.
쿠웅. 약간의 마찰음만 날 뿐 깨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다시 손과 발, 몸을 훑어봤다. 이것이 실험의 결과라는 것인가? 이런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인가? 쿠웅. 옆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
나와 비슷한 공간 속에 있는 검은 생물이 나를 보며 서 있었다. 늑대와 곰을 반반 섞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역시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 모습도 역시…… 그 생물은 아니,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존재는 느리게 입을 열었다.
“신입인가?”
놀랍게도 말을 했다. 그러나 딱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가만히 있었다. 그 존재는 가늘게 눈을 뜨며 나를 관찰했다.
“다른 놈들과는 다르군. 대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해 미쳐 버리고 마는데 말이야.”
“……미친다고?”
“그래. 네 상태를 보면 알 텐데? 나와 같은 모습이라는 것을.”
“당신은 그렇지 않은 쪽에 속하는 것 같군.”
내 말에 그 존재는 작게 웃었다. 하얗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번뜩였다.
“난 복수해야할 놈들이 있거든. 이대로 허망하게 죽을 수는 없다고.”
복수라…… 그게 과연 옳은 일인 것인가. 복수는 복수를 나을 뿐임을 알지 못하는 건가.
“댁은? 사정이라도 있나?”
“딱히 없지만…….”
문득 꿈속에서 나를 보며 웃었던 은혜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시 돌아갈 수는 있을까. 앞으로 내 처지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인가.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내 말에 그 존재는 나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그리고는 크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봐. 지금 이 상태에서 통성명이나 할 때인가? 어떻게 하면 여기를 빠져나갈지 궁리나 잘 해두라고.”
“빠져나가면 복수할 겁니까?”
“말이라 고하나. 날 이렇게 만든 놈들인데 자네라면 용서할 수 있겠어? 이런 몰골로 어떻게 가족에게 돌아간단 말인가?”
가족…… 그러고 보니 꽤 오랜 시간동안 들어보지도, 입 밖에 내뱉지도 못한 단어였다. 가족이 있다면…….
“그나저나 대단하군. 그런 상태로 온전히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허나, 앞으로 나타날 녀석들을 보면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를 거야.”
“싫어합니까?”
“그것보다는 더 원초적인 것이지. 두고 보면 알게 돼.”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지만 때가 되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몸을 훑어봤다. 살짝 더듬거리며 얼굴의 형태를 대강 생각했다. 입을 벌려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 송곳니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했다. 이런 몰골이 되었음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왜 이러는 것일까. 태연하게 현실을 받아들일 정도로 심신이 강한 것일까. 아니면 그것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마음이 굳어져버린 것일까.
쿵. 쿠궁. 다른 유리관 안에서 나를 노려보는 존재가 보였다. 송곳니 사이로 흐르는 침을 뿌려가며 나에게 적의를 보였다. 가만히 바라보자 더 발광을 하며 괴성을 질러댔다.
“크아아!”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무시해.”
“나를 싫어하는 겁니까?”
“아니, 허기가 진거야.”
그 말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좁은 곳에 가둬두는 것도 모자라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이건 실험자로서 부당한 대우가 아닌가? 이런 몰골이라고 해서 완전히 버려두는 것인가?
“이해가…….”
“안 되지. 하지만 두고 봐. 자네 같이 순수해 보이는 ‘괴물’이 급변할 때는 더 무서운 법이니까.”
“……괴물이라고 하셨습니까.”
그 존재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몸에 있는 털들을 골랐다.
“이런 형태의 사람을 본적이 있나?”
“…….”
“괴물의 모습이야. 이런 꼴로 거리를 활보한다고 생각해 봐. 어느 누가 반겨주겠나. 아, 아니지. 아마 자네는 그러지 못 할 거야.”
“예?”
“다…….”
그 존재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곧 여러 명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이내 5명의 사람들이 유리관 너머로 보였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유리관 안에 있는 생물들은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사파리. 그 말이 맞을 것이다. 먹이를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야수의 모습이 딱 그 꼴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다른 곳으로 바쁘게 이동했다. 그리고 다른 유리관 앞에 서서 이런저런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지?”
내 옆의 존재가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나도 사람들의 행동을 자세히 보기 위해 눈매를 모아 그들의 행동을 감시했다. 그들은 여러 버튼을 누르며 조작했고, 유리관 앞에서 들뜬 표정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서로 상의를 마친 사람들은 유리관 옆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저 안에 놈은 변하지 않은 건가?”
언뜻 보이는 검은 색의 흑발이 보였다. 흰색 피부. 사람들은 ‘그것’을 조심스레 꺼내 다른 사람 등에 업히게 한 후 이동하기 시작했다.
“뭐야.”
그 존재는 실망한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난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은혜. 은혜가 등에 업힌 채 지나가고 있었다. 나가고 싶었다. 은혜를 데리고 이곳에서 완전히 나가고 싶었다. 양손을 크게 휘둘러 유리관을 강하게 가격했다. 콰앙. 크게 요동만 칠 뿐 깨지지는 않았다.
“어이, 그만해. 저놈들 자극해봤자 좋은 거 없어.”
콰앙. 쾅. 콰광. 거칠게 유리관을 두드렸다.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점차 커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은혜가 다른 곳으로 끌려가는 걸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리도 무능한 존재였었나.
“중요한 사람인가?”
“예.”
“지키고 싶은가?”
“예.”
그 존재는 유리관에 몸을 바싹 밀착시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나와 통하는 구석이 있군. 자네의 힘 정도면 쓸 만 할지도 몰라.”
붉은 두 눈이 빛나며 입 꼬리가 올라갔다. 이미 인간의 범주를 지난 생김새였다. 나도 저 존재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왜 이렇게 마음이 찝찝한 것인가. 그저 말없이 그 존재를 바라봤다. 그의 웃음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쿠궁. 쿠구궁. 다른 생물들이 거칠게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캬오오!”
나와 같은 생물들의 괴성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그 정도로 이 존재가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큰 것인가.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크크크큭.”
그의 모습은 늑대 무리를 다스리는 우두머리와 비슷했다. 그리고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곧 그의 두 눈이 타오르듯 빛나며 번뜩였다.
“자, 움직일 때다.”
“?”
“녀석들은 한 번 나가면 꽤 오래 자리를 비워두거든.”
“하지만 이 유리관이 너무 단단합니다.”
그는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자네보다 오랜 시간을 갇혀 지내면서 쌓은 노하우가 있지.”
“노하우?”
“녀석들은 내가 정신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지대한 호기심을 가졌기 때문에 소각시키지 않았어. 그게 오늘 날의 화를 불러올지 녀석들은 꿈에도 몰랐을 거야. 끌끌끌.”
광기. 두 눈은 완전히 광기로 물들어 있었다. 차분하고 강인해 보이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었다. 커다랗게 웃어넘기며 유리관의 작은 모서리 부분을 강하게 걷어차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소용없는 짓이었다.
“갇혀 지내는 동안 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한 덕에 이렇게 금이 가게 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지. 아, 물론 녀석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적절한 연기가 필요했어. 이젠 그럴 필요도 없지만 말이야.”
콰앙. 쾅. 콱. 낯선 소음과 함께 모서리 부분에 균열이 가게 시작했다. 충격이 가증 될수록 그 균열은 유리관의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그는 더 빠르게 가격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잔뜩 흥분한 나머지 녀석들은 유리관을 마구 두드려대며 응원했다. 퍽. 콰직. 계속되는 가격에 완전히 구멍이 뚫렸다. 그는 머리통만한 구멍을 물끄러미 보더니 크게 기합을 지르고는 완전히 뚫어냈다.
쨍그랑. 유리 조각들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대충 조각들을 걸러낸 그는 여유로운 동작으로 밖으로 걸어 나와 내 앞에 섰다. 곧 가까이 다가와 예리한 손톱으로 유리관을 톡톡 두드렸다.
“나와 함께하겠나?”
“…….”
“여기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해. 불에 타죽을 뿐이야. 정말 그러길 바라나? 이대로 개처럼 죽어버릴 텐가?”
딱히 나갈 이유도 없었다. 이런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누가 반겨주겠는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이상 그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아까 끌려가던 계집.”
“!”
“티가 너무 잘나는군. 그 계집이 저런 놈들한테 죽는다고 해도 상관없나? 최근 저 계집만 데려가는 게 영 찜찜한데 말이야. 혹 노리개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몰라.”
“그건…….”
그럴 수 없다. 은혜만은 내 손으로 지켜주고 싶었다. 그의 얼굴이 바짝 다가왔다.
“어쩌면 오래 못 살지도 모른다고.”
그 말은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데 충분했다. 오래 생각하지 않고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 머리로 생각하고 있을 때는 몸이 이미 반응해버렸다. 그만큼 은혜가 각별한 존재로 다가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연약한 소녀는 내 삶의 이유가 되어버렸다.
“좋아. 기다려보라고.”
그는 양손을 살살 비벼가며 유리관 옆에 있는 버튼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게 바로 이 부분이지. 내가 온전히 생각할 수 있는걸 간과하고 적나라하게 버튼들을 눌러대니 말이야. 어느 것들을 눌러야 하는지 눈 여겨 보기를 잘했어.”
마지막 버튼을 누르자 유리관이 서서히 열렸다. 취이익. 바깥 공기가 온 몸을 강타했다. 나쁘지 않았다. 이게 자유라는것인가.
“환영하네. 동지.”
그는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동지라…… 그의 손을 강하게 잡고 바닥을 내딛었다. 그리고 은혜가 사라진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잠깐.”
“?”
“우리 둘만 가서 개죽음 당하는 건 사양이다. 이 녀석들을 충분히 이용해주자고.”
그는 다른 유리관 속에서 발광을 하고 있는 생물들을 가리켰다. 천천히 검은 생물들을 바라봤다. ‘꺼내줘.’, ‘도와줘.’ 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길게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생물들 역시 자유로운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바로 옆 유리관에 다가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그가 얼른 다가와 방법을 알려줬다.
“자, 이렇게 해서 누르는 거야.”
간단했다. 여러 가지 버튼을 조합하면 열리는 구조였다. 삐빅. 비비빅. 몇 번의 조작 끝에 아까 전 나를 노려보던 생물의 유리관이 열렸다. 취이익. 생물은 나를 죽일 듯 노려봤지만 공격을 하지는 않았다. 쓸데없는 분쟁은 사양이기에 다른 유리관으로 이동해 버튼을 조작했다.
삐비빅. 삑. 요령이 생기자 속도가 빨라졌다. 생물들은 풀려났다는 흥분감 때문인지 마구 괴성을 질러대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오래 관찰할 시간이 없었다. 이어 다른 유리관의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마치 ‘고맙다.’, ‘서둘러.’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째서 저들의 의사가 분명히 전달되는 것일까. 그렇게 쉴 새 없이 버튼을 누르는 도중 낯선 소리가 들렸다.
띵-동.
엘리베이터의 소리였다. 일제히 고개를 홱 돌려 시선을 집중했다. 문이 열리자 3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크와아아!”
“크와우!”
그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생물들은 앞뒤 다퉈가며 사람들에게 돌진했다. 놀란 사람들은 뒤로 물러나며 총을 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생물은 가장 왼쪽에 있는 사람의 머리를 강하게 뜯어내고는 입 안 가득 베어 물었다.
“으아아악!”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하지만 생물들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사람들의 사지를 완전히 잡은 생물들은 거칠게 뜯어 먹었다.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렸다.
“우리의 충실한 개들이지. 먹을 것만 주면 목숨 아까운줄 몰라.”
그 존재는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단순한 복수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나는 이곳에 사는 인간들을 모두 멸종시킬 것이야.”
“……멸종?”
“그래. 어서 하던 일을 계속하게. 나는 녀석들을 다독이고 있을 테니.”
그는 남은 고깃덩어리를 갖고 싸우는 생물들에게 다가갔다. 차분히 걸어가는 그의 모습과 광기에 젖은 생물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내가 한 일이 과연 잘한 것일까. 그저 은혜만 안전히 빼내면 되는 일이었는데……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삐비빅. 삐빅. 생각에 잠겼지만 손은 계속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그렇게 30분 정도 지났을까. 완전히 유리관을 벗어난 검은 생물들이 한 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 중앙에는 단연 그가 서 있었다.
“크와아아!”
길게 포효를 마친 그의 명령에 생물들은 여러 방면으로 갈라졌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생물들이 있는가 하면 한쪽에 마련된 비상구 쪽으로 이동하는 생물들도 있었다. 검은 물결과도 같은 움직임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니 문득 답답함이 느껴졌다.
벽 쪽으로 걸어가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봤다. 푸르고 넓은 숲과 그 너머에 있는 민가들이 보였다. 이 생물들이 모조리 빠져나간다면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멍하니 밖을 바라봤다. 부르릉. 이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에 살짝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내려봤다. 그리고 그곳엔…….
“은…… 혜.”
낯선 사람에게 끌려가는 은혜의 모습이 보였다. 단숨에 뛰어내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빠른 동작으로 차에 은혜를 태운 사람은 곧 차를 끌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부드득. 잡고 싶다. 은혜를 빼내고 싶다.
“크으…….”
창틀을 강하게 움켜쥐고 있는 힘껏 밀어냈다. 우두둑. 우둑. 뼈가 부러지고 갈리는 소리와 함께 조금씩 벽의 균열이 생겼다.
“크아아아!”
내가 낸 소리가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거대했다. 이미 내 몸은 제어가 되지 않았다. 우두두둑.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낸 내 몸은 잔재들을 앞으로 밀어버리고는 차를 가만히 바라봤다. 멈춰줘. 은혜를 지키게 해줘.
“…….”
강렬한 염원이 닿았을까. 차가 멈췄다. 문이 열리며 낯선 사람이 고개를 내밀었다. 눈매를 좁히고 그 사람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 사람은…….
‘안녕하십니까. 이곳 연구 담당자 송병헌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처음 나에게 임상 실험을 권했던 그 사람이었다.
‘아하하하. 이거 원, 사람을 민망하게 만드는 재주도 있군요.’
기분 좋은 웃음으로 나를 반기던 그 사람이었다.
‘은혜를 잘 부탁합니다.’
나에게 은혜를 맡기던 남자, 송병헌이었다. 차라리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괴물의 모습인 나보다 그가 은혜를 보살피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 그라면 분명 은혜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주 잠시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타앙- 탕. 처음 나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던 총소리가 들렸다. 뒤로 조금씩 물러났다. 은혜의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금세 떠나버리는 차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크아아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으아아악!”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검은 생물들의 포효소리가 섞여 내 귀를 괴롭게 했다. 이곳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피비린내 나는 이곳이 너무 낯설었다. 빠르게 걸어 비상계단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나를 이곳에 데려다 줬던 남자들은 이미 고깃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으적대며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검은 생물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검은 생물들의 곁을 지나쳤다. 넓게 퍼진 풀숲을 가만히 보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난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이들과 어울려야만 하는 것인가. 사람으로는 역시…… 이런 몰골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으적으적.
저들처럼 먹어대고.
“크아오우!”
저들처럼 울부짖으며 생활해야하는 것인가. 정녕 나는 괴물의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인가.
“어이.”
뒤를 돌아보니 그가 검은 생물들을 이끌고 서 있었다. 그의 양손에는 진한 녹색의 혈액 팩이 있었다.
“이게 꽤 중요한 물건 같더라고. 이걸 갖고 도망치려던 놈을 간신히 잡긴 했지만, 영 찜찜하단 말이야.”
달랑 거릴 때마다 소량의 녹색 액체가 넘실거렸다. 검은 생물들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조심스럽게 혈액 팩에 손을 뻗었다. 그는 이내 결심했는지 혈액 팩에 작은 구멍을 뚫고 녹색 액체를 입에 넣기 시작했다. 꼴깍대며 완전히 삼킨 그는 별 볼일 없는 표정으로 비어버린 팩을 휙 던져버렸다.
“크아우!”
저마다 떨어진 팩을 줍겠다고 몸싸움을 했다. 그는 피식 웃으며 곧장 내게로 걸어왔다.
“이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돼. 조금만 더 가면 민가가 나올……?”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검은 색의 피를 토하던 그는 비틀거리며 내 팔목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콰악. 날카로운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제길…… 쿨럭. 쿨럭.”
줄줄 흐르는 내 피가 그의 왼손 팔 전체를 덮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에도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두터운 털들이 연하게 날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와 검은 생물들은 처음 보는 광경에 바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사라락.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처음 패기가 넘치던 그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었다.
“으…… 으?”
두터운 털가죽을 벗어버린 설인처럼 그는 사람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 놀라운 광경에 할 말을 잃어버렸지만 뒤에 있는 검은 생물들은 아니었다.
“크아아!”
괴성을 지르며 두 손으로 땅을 쳐댔다. 명백한 공격 의사 표현이었다. 그는 완전히 바뀌어버린 자신의 몸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점차 거세지는 괴성에 현실 파악이 된 그는 나를 조심스럽게 올려보았다.
두근. 두근. 그 처량한 모습에 내 심장이 점차 빨리 뛰기 시작했다. 화가 나지 않지만 뭔가 풀고 싶어졌다. 그것보다 더 원초적인…… ‘배고픔’이었다. 허기를 인식한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버둥거리며 나에게 벗어나려는 남자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두 손에 제멋대로 힘이 들어갔다.
“으아아악!”
그는 거칠게 반항하며 비명을 질렀다. 쩌억. 커다란 내 입이 크게 벌어졌다. 내 몸은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순식간에 그의 머리통을 뜯어버린 내 입은 그대로 그것을 씹어대기 시작했다.
“끄…… 끄…… 끅.”
연약하게 들리는 소리와 입 안 가득 퍼지는 쇠의 맛이 느껴졌다. 남은 팔을 뜯어내고는 크게 베어 물었다. 남은 살점들을 다 먹어치운 나는 멀리 보이는 민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풀숲이 푹푹 꺼졌다. 그만큼 내 몸무게가 육중해진 것인가.
“크으우.”
얼마 가지 않아 식사를 마친 검은 생물들이 내 뒤를 따랐다. 가야할 곳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을 보며 낯선 목소리가 가슴에서 울렸다.
거대하고 낯선 소리에 나 자신도 놀랐다. 하지만 검은 생물들에게는 큰 자극제였는지 빠르게 앞으로 뛰어갔다. 이대로 있으면 민가가 쑥대밭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멈추고 싶지만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런 것일까.
으드득. 힘을 줘서라도 걸음을 더디게 했다. 허나 이미 내 몸은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대체 왜…… 내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거지? 나의 본능이 이렇게 강했었나? 이미 본능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인가?
어떻게든 멈추게 하고 싶었다. 마지막 힘을 다해 큰 소리를 냈다.
“크아아아아!”
그 거대한 소리에 일제히 멈춰섰다. 다행이다. 그제야 몸도 제 말을 듣기 시작했다. 일단 저 생물들을 한데 모아야 했다. 이런 말을 하면 웃길지도 모르겠지만 더 이상 인간을 해치고 싶지 않았다.
“크아악!”
하지만 검은 생물들은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밖으로 나온 주민 몇몇이 검은 생물들의 눈에 걸린 것이었다. 낭패였다. 이 거리라면 아무리 빨리 간다고 해도 검은 생물들을 완전히 막지 못할 것이다.
“괴, 괴물이다!”
“도망쳐!”
사람들은 살기 위해 도주했다. 하지만 검은 생물들의 속도에는 미치지 못했다. 빠른 속도로 뛰어가 주민들의 뒤를 덮친 검은 생물들은 주민들을 게걸스럽게 뜯어 먹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초토화가 됐다. 고통스러운 사람의 비명소리와 검은 생물들이 내는 포효소리가 귀를 벙벙하게 했다. 당장에 달려가 막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무언가가 감지됐다. 이건 분명…… 육체를 원하는 본능이 분명했다.
“큭…….”
이를 악물고 서둘러 자리에서 벗어났다. 민가와는 정 반대 방향인 숲 쪽으로 이동했다.
“크아아아아!”
뒤에서 들려오는 포효소리에 잠시 멈췄다. 안 돼. 다시 힘을 주고 몸을 이끌었다.
몸을 이끌어 그곳에서 벗어났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귀신같은 감각으로 내가 있는 곳을 찾아낸 검은 생물들은 어느새 내 곁에 모여 울부짖었다. 왜 나를 따르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신장이 다른 생물들보다 월등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게는 이성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인가.
이틀 째, 아무것도 입에 넣지 못하자 뱃속에서 아우성을 쳐댔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검은 생물들은 길길이 날뛰며 나를 재촉했다. 그들과 함께 지내오면서 꽤 많이 동화가 된 것 같았다. 작은 몸짓과 표정에도 그들이 뭘 원하고, 싫어하는지 대강 구별하게 됐다.
하지만 난 사람들을 살해하는 것이 싫었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몸을 일으켜 다시 연구가 행해졌던 건물로 이동했다.
“크르르르.”
검은 생물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연신 으르렁대며 내 뒤를 따랐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좋지 못했다. 사태 수습에 나선 연구 기관 사람들이 보였다. 뒤에 있던 수백의 검은 생물들은 내 통제를 무시하고 그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살기 위해 권총을 무작정 갈겨댔지만, 허기에 이성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들의 위협은 통하지 않았다.
내 몸도 슬슬 통제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배고픔을 잊고 억지로 누른 탓에 그것을 잃어가는 속도도 상당히 빨라졌다.
“크아오!”
낯선 괴성을 흘리며 사람들의 몸을 잘라냈다. 양 옆에서 총질을 하던 사람들은 두꺼운 가죽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떨어져버렸다. 운이 좋아 몇몇 총알이 연한 살을 뚫었지만, 신기한 재생 능력 덕에 움직이는데 지장은 없었다.
사람들의 표정에는 당혹과 절망이 깊게 서려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느낄 시간도 없었다. 수백의 검은 생물들은 곧 바로 그들을 덮쳤고, 상황은 순식간에 종료됐다. 비릿한 피 냄새와 화약 냄새가 났다. 내 몸은 고기 덩어리를 허겁지겁 삼키고 있는 상태였다.
탕. 탕탕탕. 타앙.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유리 창문을 깨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총질을 하며 나타났다. 그 총알에 평범한 생물들은 뒤로 자빠졌지만, 우리에게는 단순히 ‘먹이’로 인식될 뿐이었다. 나는 가장 선두에서 서서 사람들을 공격했다.
부우웅. 휘웅. 사람들은 한 두 번의 휘두름으로 절명했다. 붉고 끈적끈적한 액체들이 온 몸을 수북하게 덮었다. 이런 끔찍한 광경에 이성도 잃어버렸으면 좋겠지만, 가혹하게도 정신만은 말짱했다.
그렇게 몇 차례 사람들의 공격이 이어졌지만, 내 활약으로 인해 그들은 모두 고깃덩어리로 되어 버렸다.
“크아아아!”
이제 완전히 이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 내게 말을 걸었던 그도 모든 걸 받아들이고 적응해냈기 때문에 그렇게 즐거워하고 힘이 넘쳐났던 것이다. 그래, 더 이상 몸을 속이지 않기로 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순식간에 몸에 힘이 돌아왔고,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됐다.
“크크크크.”
주위가 피바다로 변해 있을 때 즈음 나는 완전히 ‘괴물’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 뒤부터는 순조로웠다. 나를 따르는 충성스러운 괴물 녀석들 덕에 매일 매일 고기로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개체를 늘려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우연히 발견한 ‘감염’이라는 점을 이용해 사람들을 적당히 모아 살짝 상처를 주고 난 뒤 그들을 풀어주는 방식으로 개체를 늘려나갔다. 그 중에서 정신을 잃지 않고 이성을 유지한 놈들은 꽤나 큰 도움을 주었다. 나 정도는 아니지만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그들은 여러 재주를 통해 사람들을 긁어모았다.
물론 정부에서 대응을 아주 안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가진 무기와 인력은 상당히 위험했지만, 우리의 존재가 알려지는 것이 더 두려웠던 정부의 행동으로 인해 행동반경을 크게 넓힐 수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사는 도시에 잠복하고 활동할 때쯤엔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괴물들의 수를 불려나간 후였다. 죽어나가면 다시 채우면 됐다. 나만 죽지 않으면 되기 때문에 뒤에서 괴물들을 조종하며 인간들의 동태를 살폈다.
그렇게 생활을 즐기고 있었지만, 은혜의 대한 갈망은 처음과 같았다. 아니,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그 감정은 단순한 사랑과 호기심이 아닌 증오와 원망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내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변해있었다.
먹고 싶었다. 그 연약해 보이는 살결을 크게 물어 씹고 싶었다. 은혜의 얼굴과 사지를 모조리 뱃속에 넣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하나가 되어 완전히 행복해질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잊지 못할 향수를 맡았다. 내 머릿속을 절대 떠나지 않는 은혜의 냄새. 체취. 그리고 희망이었다. 그것에 사로잡힌 나는 직접 은혜를 찾으러 헤맸지만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은혜 때문에 그곳에 오래 정착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느껴지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그래, 은혜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다시 향수를 쫓아 밤을 나서던 도중, 아주 우연히 낯선 집 위에서 나를 보고 있던 은혜를 발견했다. 처음과는 다르게 생기와 활력을 되찾은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저 상태 그대로 뱃속에 넣으면 전보다 더 행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옆에 떡하니 자리 잡은 인간 놈 때문에 내 속이 뒤틀렸다.
최대한 좋은 말로 그 놈을 회유했지만 듣지 않았다. 어쩔 수가 없었다. 은혜를 잡는데 저런 더러운 놈들을 없애고 싶지 않아 주변 괴물들을 모조리 모아 그곳을 공격했다. 인간들 치고는 꽤나 거센 공격을 퍼부어대 많은 수의 괴물들이 죽어나갔다. 그러나 내 목적이 바로 앞에 있는 한 머뭇거릴 시간조차 아까웠다.
그런 과정에서 왠지 낯설지 않은 인간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강인하게 생긴 얼굴과 은혜를 아끼는 마음이 상당히 강해보였다. 어디서 봤지? 잘 생각나지 않았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목표와 희망이 저기 있는데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하지만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간들이 도망쳐 버린 것이다. 내 통제를 따르지 않는 기이한 괴물이 있는가 하면 숨겨 두었던 통로로 멀리 도망가 버린 인간들의 변수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아직 남은 날들은 많았고 은혜와 다른 인간들의 체취를 모두 머릿속에 박아 넣은 후였다.
그렇게 얼마나 찾았을까. 넓은 시내에서 은혜 무리들을 찾을 수 있었다. 거기서 뜻하지 않게 다른 녀석과 싸움을 해야만 했다. 일반 녀석들과는 다른 차원의 속도에 밀려 팔 하나를 잃었지만 녀석이 방심한 틈을 이용해 죽여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은혜는 멀리 도망간 후였다. 하는 수 없이 몸을 돌려 다음을 기약했다. 나를 보며 사시나무 떨 듯 공포에 지린 인간들에게는 아무런 흥미도 없었다.
다시 은혜의 행방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지만 이상하게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 일주일째가 되니 점점 초조해져갔다. 귀신 같이 사라져버린 은혜와 인간들의 흔적을 다시 찾기란 정말 힘든 일이었다. 온 도시를 샅샅이 뒤지며 배회했지만 두 번 다시 은혜의 체취를 맡을 수 없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루를 무료하고 무의미하게 보내던 찰나, 뜻 밖에 소식을 전해 들었다. 습격에 살아 돌아온 녀석이 전해 준 말은 내 심장을 빠르게 강타했다.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강 설명이 된다. 그 배신자의 체취로 은혜의 것을 완전히 지워버린 것이다. 뒤를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그 길을 추적에 나섰다.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명백히 살아 있는 은혜를 찾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얼마 가지 않아 한 곳에 정착한 은혜 무리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대로 괴물들을 이끌고 이동했다. 꽤 많은 함정들로 인해 괴물들이 죽어나가긴 했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전보다 진해지고 확연해지는 은혜의 체취가 났다. 나는 그것을 잊지 않았다. 빠르게 이동해 지하 비슷한 곳에 다다랐을 때에는 배신자로 보이는 녀석들과 다른 인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거기에는 은혜가 나를 보며 서 있었다.
오랜 갈망을 해결할 때가 되었다. 잔뜩 흥분한 탓에 몸이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버렸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그만큼 은혜를 원하고 있었다. 서둘러 은혜를 손안에 넣고 싶었다. 하지만 단숨에 은혜를 취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처음 은혜를 얻기 위해 싸웠던 그날처럼 인간들의 반격은 실로 대단했다.
거기에 배신자 두 놈의 힘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내 갈망은 그보다 더했고, 집념은 그들의 수십, 수 백배였다. 나를 멈출 수 없었다. 눈앞에 고지가 있는데 어느 누가 포기한단 말인가. 다행히 인간들은 상당히 지쳐 있었고, 곧 승기를 거머쥘 수 있었다.
‘조금이면 된다. 은혜야.’
언제부터 이토록 은혜를 원했던 것인가. 손 안에 넣고 싶었다. 내 손에…….
사라락. 착각이었을까. 처음 나에게 먹힌 남자의 털들이 눈에 보였다. 가늘고 얇은 검은 색의 실타래들이 공중을 떠다녔다. 스르르. 몸에 힘이 빠졌다. 어찌된 상황이지?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몸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야아아!”
처음 은혜의 곁에 있었던 인간이 달려왔다. 그리고는 내 살갗을 뚫기 시작했다. 낯선 느낌에 미처 대응하지 못한 몸은 그대로 축 늘어져버렸다. 이것이 죽는다는 느낌인가? 왜? 왜 이렇게 된 것인가. 사람들을 해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내 다짐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크…… 쿨럭.”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은혜를 보고 싶었다. 내 유일한 존재의 이유. 나를 여기까지 움직이게 해줬던 원동력이 되었던 이유. 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이를 악물고 마지막 힘을 짜내 은혜가 서 있는 곳을 바라봤다. 처음 볼 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생기 있는 얼굴로 은혜가 다가왔다.
그 느린 동작이 마치 나비와도 같아 멍하니 그것을 바라봤다. 내 위에서 연신 난도질을 해대는 인간의 모습 따위는 들어오지 않았다. 마침내 내 곁으로 다가온 은혜는 손을 뻗어 나를 어루만져주었다. 아, 아아. 뜨거운 무언가가 눈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한 번의 손길을 위해 달려왔을 뿐인데 왜 이렇게 죽어야만 하는 것인가. 단지 은혜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뿐인데.
“잘 가.”
분명한 은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온전히 말을 하는 그 모습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무언가 내뱉고 싶었지만 혀와 목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를 어루만지는 그 손길에 보답하기 위해 가슴 속에서 뭉쳐 있던 말을 천천히 내뱉었다.
“지…… 키…… 고 싶었다…….”
은혜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아아, 이제 된 것이다. 여기까지 왔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 은혜는 환하고 찬란한 미소로 나를 보며 웃었다. 그때보다 더 아름다운 미소였다. 나는 이대로…… 이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