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딧 베스트 - 매일 새벽 3시 3분,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익명
2026-06-1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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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날씨가 어떻든간에, 뭔가가 부드럽게 휘파람을 불면서 우리 집 앞을 지나간다. 휘파람 소리는 거실이나 부엌에서만 들을 수 있다. 정확히 새벽 3시 3분이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카슨네 집 근처, 골목 초입쯤에서 시작된 희미한 휘파람 소리는 거리 중간쯤에 있는 우리 집을 지나쳐 막다른 길 쪽으로 멀어지다가 사라진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때, 나와 여동생은 밤이면 가끔 부엌으로 몰래 숨어들어 그 소리를 듣곤 했다. 엄마 아빠는 물론 탐탁치 않아 했고 숨어 있다가 걸리면 된통 혼나긴 했지만 크게 나무라진 않으셨다. 무슨일이 있어도, 가장 중요한 하나의 규칙은 지켰기 때문이다.
휘파람을 부는 존재를 보려 하지말라.
내가 사는 동네는 좀 묘한 곳이다. 나는 여섯 살 때부터 여기 살았고, 이 동네가 좋다. 집들은 작지만 관리가 잘 되어있고 마당 크기도 딱 적당했으며, 탐험할만한 곳도 많다. 나는 지난 10월에 13살이 됐는데 또래 아이들도 많다. 어린시절부터 함께 자란 친구들과 골목길에서 포스퀘어(네 명의 사람이 각각 바닥에 그려진 네 개의 사각형 안에 들어가 공을 주고받는 게임)를 하거나, 여름이면 이 집 뒤뜰에서 저 집 뒤뜰로 쏘다니곤 했다. 내가 자라기엔 좋은 동네였다. 이제는 나도 그걸 알 만큼은 컸다. 이상한 건 딱 두가지뿐이다. 밤이면 들리는 휘파람 소리와 이상할 만큼 따라주는 행운.
휘파람 소리 때문에 그렇게 괴롭진 않았다. 아까 말했듯이 내 방에선 그 소리가 들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아빠 모두 그 얘기는 피했기 때문에 나 역시 질문을 더 하진 않았다. 우리 아빠는 키가 크고 성격이 차분한, 강한 남자이다. 어린시절에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아빠의 영어에는 특유의 악센트가 있다. 아빠의 가족, 그러니까 내 조부모님은 섬 출신이다. 아빠의 가족들은 고향을 섬이라고 불렀다. 아빠가 차분함을 잃을때는 그 휘파람꾼 이야기가 나올때 뿐이다.
그럴때면 아빠의 말이 빨라지고 눈동자도 더 빠르게 움직인다. 그리고 우리에게 깊이 생각하지 말고 단 하나의 중요한 규칙만 기억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휘파람을 부는 존재가 지나갈땐 바깥을 내다보지 말라.
사실 보고싶어도 볼수가 없긴 했다. 모든 창문 안쪽에 블라인드가 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아래로 끌어내려 창틀 아래쪽에 걸어 잠글 수 있는, 두껍고 무거운 캔버스 천으로 만든 블라인드였다. 심지어 다이어리를 잠글때 쓰는 류의 작은 자물쇠도 달려있다. 아빠는 매일 밤 모든 블라인드를 잠그고 열쇠를 아빠의 침실에 보관한다.
엄마로 말하자면... 휘파람 소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휘파람이 들리기 시작하는 3시 3분에 거실에 나와있는 엄마의 모습을 몇번 본 적이 있다. 방문을 아주 살짝 열면 거실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거실에 자주 나와있는건 아니지만, 아니 내 눈에 띈게 몇번 안된건지도 모르지만, 한 달에 한두번은 커다란 빨간 소파에 앉아 휘파람 소리를 가만히 듣고있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매일 밤, 같은 곡조의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그 선율은... 발랄했다.
다 다 다다 다 덤. 다 다 다다 다 덤.
우리 마을에 이상한 점이 2가지 있다고 했던걸 기억하는가? 밤의 휘파람꾼을 제외하면 우리 마을 사람들은 정말 운이 좋았다. 설명하기 어렵기도 하고, 아빠가 이 주제 역시 좋아하지 않긴 하지만 이 동네 사람들에겐 좋은 일이 참 많이 일어났다. 보통은 라디오 이벤트에 당첨된다거나 직장에서 예상치 못한 승진을 한다거나, 혹은 마당에 묻혀있던 화살촉 유물을 발견하는 등의 사소한 일이다.
날씨도 좋고 범죄도 없는데다 가을이면 집 정원마다 꽃이 만개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축복들"
여기서의 삶에 대해 엄마는 그렇게 표현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 사는 제일 큰 이유이자 이 곳에 이사온 이유는 내 여동생 놀라 때문이다. 놀라는 태어날때부터 많이 아팠는데 폐쪽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태어났을때도 병원에서 집으로 데려오지 못하고 병문안을 가야만 볼 수 있었을 정도다. 놀라는 다른 아기들에 비해서 너무 작았고, 기계를 부착해야만 호흡 할 수 있었다.
병원이랑 가까워서 이 집에 들어왔는데, 이사를 오자마자 놀라의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의사들도 이유를 알아내지 못한건 마찬가지여서 자기들이 하던 치료가 효과를 본 거라고 설명했지만, 우리 모두는 그들도 당황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부모님도, 심지어 나도 알았다. 놀라가 나아진건, 이 동네에 살면서 받은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축복들 중 하나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에 머물렀다. 매일 작은 기적들이 일어나는 대신, 가끔은… 나쁜 일도 벌어진다는 걸 알게 된 뒤에도. 하지만 그 나쁜 일도 휘파람꾼을 찾아 나설때만 일어난다.
우리 마을에는 환영위원회가 있다. 새로운 사람이 이사올때마다 위원회에서 마카로니 캐서롤과 선물 바구니, 마닐라 폴더를 들고 방문한다. 아주 친절한 사람들이다. 7년 전 우리가 처음 이사왔을때는 4명의 위원회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부모님과 사소한 잡담을 나눈 후 나에겐 스니커 바를 주었다. 그 다음엔 돌아가며 놀라를 안아보았다. 놀라가 병원에서 나온 첫 주였기 때문에 극도로 조심하면서 말이다.
부모님과 긴밀히 할 이야기가 있다하여 난 방으로 보내졌지만 조금만 애쓰면 거의 모든 말을 엿들을 수 있었다. 환영위원회는 부모님께 이 동네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이야기했다. 정말 특별할 만큼,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좋은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나서 더 설명하기 힘든 휘파람 소리에 대해 말했다. 매일 새벽 3:03에 시작해서 3:05분에 딱 끝난다고 말이다. 환영위원회, 우리의 새로운 이웃은 휘파람 소리는 아주 조용하다며 우리가 소리의 근원지를 찾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 해를 끼칠일은 없을거라고 경고했다.
이 부분을 강조하는 바람에 나는 들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문에 귀를 바짝 갖다댔다. 휘파람꾼을 찾아나선 사람들은 운이 바뀌었다고 했다. 가끔은 아주 비극적으로 바뀐 사람도 있었다. 바깥을 내다본 사람에게는 검은 먹구름 같은 불운이 따라붙었다. 틀어질 수 있는 일은 모조리 틀어졌다. 위원회가 가져온 마닐라 봉투 안에는 차 사고나 삶이 송두리째 무너진 사람들의 이야기,인명피해, 기이한 사고에 대한 신문기사 스크랩이 들어있었다.
"모든 사람이 다 사망한건 아니었어요." 위원회장이 아빠에게 말했다. "하지만 살아도 산게 아니었어요. 살아는 있되 그 사람들한테는 생기라는게 없었어요. 존재하지를 않았죠."
우리 엄마는 그닥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다. 새로 온 이웃한테 치는 장난이냐고 계속 물어보는걸 보면.
한번은 새 집에서 겁줘서 쫓아내려고 이러냐, 아빠가 섬 출신이라 인종차별 하는거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아빠가 이 분들은 진심이고 우리를 도우려 하는 것 뿐이라며 엄마를 진정시켰다. 아빠는 어린시절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그 때문에 인간세상에 이상한 존재가 섞여 살고있음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어떤건 선하고 어떤건 악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인간과 다를뿐이라며.
위원회가 떠난 뒤, 아빠는 철물점에서 캔버스 블라인드, 걸쇠, 자물쇠를 사와 저녁식사 후 집안 모든 창문에 설치했다. 새 집에서의 첫날 밤, 나는 새벽 3시에 방에서 몰래 빠져나왔다. 아빠가 여동생을 안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아빠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아빠 자리 옆을 두들겼다. 나는 아빠 옆에 앉아 기다렸다.
그리고 정확히 3시 3분,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다 다 다다 다 덤. 다 다 다다 다 덤.
이웃이 말한대로 소리가 다가왔다가 멀어졌다. 휘파람은 매일 밤 들려왔지만 우리는 절대 창 밖을 내다보지 않았고, 매일 쏟아지는 작은 축복들을 즐겼다. 놀라는 자기 힘으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고 튼튼하고 영리한 아이로 자라났다. 아빠는 환영 위원회에 가입하기까지 했다. 새 이웃이 이사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런 동네를 누가 떠나겠는가? 간혹 새 가족이 이사오면 아빠와 위원회 사람들은 마카로니 캐서롤과 선물 바구니, 마닐라 봉투를 들고 방문했다. 돌아오는 아빠의 표정을 보면 새 이웃이 위원회의 설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아니면 금방 또 새 이웃을 맞이하게 될지 알수있었다.
얼마 전 우리집 맞은편에 새 가족이 이사를 왔다. 전 주인인 매디씨가 105세까지 장수한 끝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새 이웃은 순조롭게 적응하는 것 같았다. 위원회의 말도 믿었고, 아이가 있으니 블라인드를 잠그라는 아빠의 조언도 받아들였다. 아빠는 그 마닐라 봉투 안에 든 뉴스 스크랩과 증거들을 절대 보여주지 않았지만 이웃이 첫 한달간 아무 문제없이 어울리는 걸 보니 뭔지는 몰라도 엄청 설득력이 있었던것같다.
어느 날 밤, 이웃집 부부가 마을 밖으로 외출을 한다며 자신들의 아들 홀든을 우리 집에 맡겼다. 홀든은 12살로 나보다 한 학년이 어렸다. 그 날밤 전까지는 홀든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었지만 홀든의 부모님이 저녁 식사 후 그 애를 우리집에 데려다 주자 마자 좋지않은 예감이 들었다.
"맨날 밤마다 누가 휘파람 부는지 알아?" 어른들이 방을 나가자마자 홀든이 물었다.
우리 셋은 방에 앉아있었고 티비에선 아무도 보지않는 디즈니 영화가 플레이되고 있었다.
동생과 나는 눈짓을 주고 받았다. "우린 그 얘기 안해." 내가 말했다.
"저 길모퉁이 노란색 큰 집에 사는 그 이상한 사람이 부는 것 같아." 홀든이 말했다.
"토레스 아저씨?" 동생이 물었다. "말도 안돼. 그 아저씨 진짜 착해."
홀든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사이코 살인마가 그러는거겠지 뭐."
놀라가 긴장하는게 보였다.
"우린 그 얘기 안한다고." 내가 다시 말했다. "내 방 가서 닌텐도나 하자."
다음 몇 시간을 게임을 하고 팝콘을 먹고 영화를 보면서 보냈다. 친구네서 하루 잘때면 늘 하는 일들이었지만 홀든이 안절부절 못 하는게 보였다.
우리 부모님이 잘 자라고 인사 한 뒤 블라인드를 잠그고 잠자리에 들자 홀든은 빈백 의자에서 일어나 나와 놀라가 앉아있는 침대 쪽으로 다가왔다.
"누군지 보려고 한 적은 있어?" 홀든이 물었다. "이제 시간 다되가네."
친구네서 잘 때면 항상 그렇듯이 가서 자라는 말은 간단하게 무시한 후였다. 홀든의 말이 맞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벌써 새벽 3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우리는 그 얘기-"
"들어봐. 나는 못 봐. 보고 싶어도 아빠가 맨날 블라인드 잠그고 열쇠도 숨긴단 말이야."
홀든이 내 말을 끊었다.
"우리 아빠도 그래." 놀라가 말했다.
"아니," 홀든이 대답했다. "아니야 너네 아빠 안그래."
"우리아빠가 잠그는거 봤잖아." 의도한 것보다 살짝 날카로운 말투로 내가 말했다.
홀든은 활짝 웃었다. "그래 너네 아빠가 잠그긴 했는데 열쇠는 안 숨겼어. 열쇠꾸러미에 달아놓던데."
"그래서?" 홀든이 뭐라고 말할지 알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다. 몇년씩이나 지난 탓에 아빠가 더는 열쇠를 숨기지 않는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우리가 이 일을 진지하게 여긴다는 걸 알고있었다.
"뭐냐면 너네 아빠가 블라인드 잠그고 자러 들어가기전에 내가 화장실을 갔거든? 가면서 안방을 좀 봤는데 열쇠꾸러미가 침대 옆 탁자에 있을수도 있겠지? 그래서 내가 들어가서 블라인드 열쇠만 좀 빌려왔을수도 있지않아?"
놀라와 나는 더 크게 웃는 홀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거짓말 하지마." 내가 말했다.
홀든이 어깨를 으쓱했다. "확인해봐. 안방 문 열면 침대 옆 탁자에 열쇠꾸러미 있다니까."
"여기서 기다려." 둘에게 말했다. "꼼짝말고."
서둘러 안방으로 갔지만 문 앞에서 망설였다. 홀든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빠는 화를 낼 것이다. 화만 내면 다행이다. 생각만 해도 무서웠다. 하지만 그보다 휘파람꾼이 밖에 있는데 창문이 열려있는게 더 무서웠다. 방문을 아주 살짝 열고 안을 들여다 봤지만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나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어둠속으로 두 발짝 들어간 후 나는 얼어붙었다. 휘파람이 시작됐다. 안방에서는 너무 선명하게 들렸다. 나야 지금껏 몰랐지만 부모님은 이사 온 후 매일 밤 이 소리를 듣고 있던 거였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 나라면 이 소리를 들으면서 잘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점점 가까워지는 휘파람 소리를 들었다. 불을 켜야할지, 아빠를 소리쳐 불러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그러다 거실에서 작은 소음이 들려왔을때에야 현실로 돌아왔다.
"놀라!!" 나는 고함치며 안방에서 뛰어나갔다.
홀든과 놀라가 창문 옆에 있는 현관 근처에 서 있었다. 홀든은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다. 그가 블라인드 자물쇠를 더듬거리고 있는게 보였다. 달칵 소리가 들렸다. 그 애는 정말 키를 가지고 있었다.
홀든이 킥킥거렸다. 홀든 옆에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서 있던 놀라는 무서우면서도 궁금한 모양이었다. 이제, 휘파람 소리는 우리 집 바로 밖에서 들렸다.
내가 뭐라고 소리를 지른 것 같긴 하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계바늘조차 정지한 것 같았고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빠른 편도 아니고, 운동을 잘해 본 적도 없다. 그런데도 어떻게 된 일인지, 순식간에 나와 놀라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내 시선은 놀라에게 고정되어 있었지만 홀든이 블라인드를 끝까지 잡아당겨 풀리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딱 하며 블라인드가 들어올려지는 소리가 이어졌고, 창문 바로 밖에서는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나는 놀라를 끌어안고 그 애가 창문을 마주보지 못하도록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 눈을 꽉 감았다. 블라인드가 휙 소리를 내며 위로 올라갔다.
휘파람 소리가 멈췄다.
내 품안에서 떨고있는 놀라가 느껴졌다.
"보지마. 알았지?" 놀라에게 말했다. "돌아보지마."
놀라는 뒤쪽 복도를, 나는 창문을 보는 자세였지만 내 눈은 여전히 꼭 감겨있었다. 놀라가 내 어깨 위에서 고개를 끄덕이는게 느껴졌다.
놀라를 안고있지 않은 팔을 홀든 쪽으로 뻗었다. 내 손끝에 닿은 홀든의 팔은 놀라보다 훨씬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홀든?"
대답은 없었다.
여전히 눈을 꼭 감은 채, 홀든 너머로 조심스럽게 팔을 뻗어 창문을 더듬었다. 손가락 끝에 닿은 유리의 감촉이 서늘했다. 이맘때치고는 말이 안 될 만큼 차가웠다. 손을 위쪽으로 올려 블라인드 줄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손을 더 뻗을수록 유리의 감촉이 따뜻해지더니 손끝에 부드러운 진동이 전해져 왔다. 나는 창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마침내 줄을 찾아 확 잡아당겨 블라인드를 닫았다.
눈을 떴다. 주방에서 새어나오는 흐릿한 조명 아래 이제는 닫힌 창문을 빤히 응시하고 있는 창백하고 자그마한 홀든이 보였다.
"홀든?"
홀든이 나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모든것이 시작되었다. 복도 조명이 파직거리며 켜지고, 뒤이어 거실 조명에도 불이 들어왔다. 단단한 나무 바닥을 쿵쿵거리며 뛰어오는 부모님의 발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볼수가 없었다. 내 시선은 홀든에게 풀로 붙인듯 고정되어 있었다.
입술을 너무 세게 문 탓에, 홀든의 턱 위로 가느다란 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하얗게 질린 홀든의 바지춤도 젖어있었다.
"무슨일이야?" 내 뒤에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간신히 홀든에게서 눈을 돌려 아빠를 돌아보았다. "홀든이 봤어."
아빠가 뭔가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그 밤 그 순간 처음 보았다. 오래된, 험악한 공포의 흔적이 아빠의 얼굴에 가득했다. 부모의 공포였다.
"홀든만?" 아빠가 입모양으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의 흔적이 역력해서 환호성이라도 지르는 줄 알았다. 하지만 바로 홀든을 확인한 아빠의 표정이 변했다. 창밖을 내다본게 홀든뿐이라는 사실에 안심한것이 미안했던걸까.
그때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얼어붙었다. 홀든은 훌쩍거렸다.
"열지마."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복도 입구에 서 있었다. 나는 늘 엄마가 회의적인 사람이고, 창문과 휘파람꾼 문제에 대해서는 그냥 아빠 장단에 맞춰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밤, 우리는 모두 그 이야기를 믿었다. 그제야 부모님 두 분 모두 침실에서 챙겨온 야구 방망이를 쥐고 있는게 보였다.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좀 더 크게.
"제발 문 열지 마세요." 홀든이 속삭이듯 말했다.
아빠가 홀든 쪽으로 걸어가 그애를 꼭 안아주었다.
"안열거야." 여전히 야구 방망이를 쥔 채로, 아빠가 말했다. "오늘 밤 이 집엔 아무것도 못들어온다."
쿵 쿵 쿵
이번엔 문이 흔들릴 정도로 소리가 컸다. 홀든은 다시 비명을 질렀고, 놀라는 내 목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엄마가 다가와 우리 곁에 무릎을 꿇고 나와 동생을 감싸안았다.
쿵 쿵 쿵
"경찰에 전화해." 엄마가 아빠에게 속삭였다.
즉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멈췄다. 아빠가 어깨 너머로 우리를 돌아보았다.
"어쩌면-"
미친듯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아빠가 말을 멈췄고, 쿵쿵쿵 소리는 이내 정중한 똑똑똑으로 잦아들었다.
"경찰" 문 건너편에서 뭔가가 말했다.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엄마와 완전히 똑같았다. 주인의 말을 따라하는 앵무새처럼.
"경찰. 전화해. 경찰." 똑 똑 똑 "경찰"
엄마가 우리를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경찰. 경찰. 경찰. 경찰."
"제발 그만해." 엄마의 속삭임이 들렸다.
"경찰에 전화한다고 도움이 될 것 같지않아." 아빠가 말했다. "경찰이 와도 그게 진짜 경찰인지 어떻게 알아?"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한층 더 격렬해졌다. 문이 흔들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소리가 멈췄다.
한참 후 다시 노크소리가 이어졌지만 이번엔 뒷문쪽에서 들려왔다.
모두가 뒷문쪽으로 몸을 돌린 순간 즉시 앞 문에서 다시 노크소리가 들렸다. 앞문에서 뒷문으로, 뒷문에서 다시 앞문으로. 커졌다가, 잦아들었다가, 다시 커졌다. 그리고 한순간, 노크소리가 앞문과 뒷문에서 동시에 들리기 시작했다. 크고 무거운 대형망치로 깨부수는듯한 소리였다. 이어서 집 안 모든 창문을 빠르게 톡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는 벽에서도 들려왔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연주하는 북 속에 들어가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그만해!" 홀든이 고함을 질렀다.
노크소리가 멈췄다.
"말 안할께." 홀든이 문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본 거 아무한테도 말 안한다고 맹세할게. 그러니까 제발 그만 좀 가."
1분 정도가 흘렀을까. 우리 모두가 들었다. 홀든이 아까 내다봤던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자그마한 똑 똑 똑 소리를.
교수대 앞에 선 사형수처럼 흐느끼는 홀든을 아빠가 꼭 안아주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모든게 괜찮아질거라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밤새 계속되었다. 모두 거실에 모여 끌어안고 있기를 몇시간일까 마침내 엄마가 우리를 데리고 내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동안 아빠는 계속 문을 감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노크소리가 거세졌다. 문이 부서질까봐 겁이 날 정도였다.
다시 거실로 돌아오니 노크소리도 멈췄지만, 창문을 두드리는 똑똑똑 소리는 계속 되었다. 그날 밤, 아무도 잠들지 못했다.
똑똑똑 소리는 아침 7시쯤이 되어서야 멈췄다. 우리 지역에서는 그쯤되야 해가 뜨기 시작한다. 2시간을 더 기다리고서야 아빠가 블라인드 하나를 걷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를 안방으로 보내는 걸 잊지 않았다. 아빠가 문을 열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오케이." 아빠가 말했다. "이제 됐다."
홀든의 부모님이 돌아온건 점심때쯤이었다. 우리 부모님이 홀든을 집까지 바래다 주었고, 집 안에 들어가 한참을 머물렀다. 놀라와 나는 그 모습을 창문으로 지켜보았다. 놀라는 종일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고, 가끔은 내 손을 꼭 쥐었다. 부모님은 어두운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왔지만 홀든 가족에게 뭐라고 말했는지는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그 날은 일요일이라 모두가 피자를 시켜먹고 영화를 보며 하루를 함께 보냈다.
그리고 밤이 되자 모두가 내 방에서 잠을 청했다. 놀라와 엄마, 그리고 내가 침대를 차지했고 아빠는 의자 하나를 침대 옆으로 끌어왔다. 그 날밤도, 그 이후에도 다시는 노크소리를 듣지 못했다.
남은 한 주 동안 홀든가족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다 목요일이 되자 홀든 집 진입로에 이사트럭 한 대가 나타났고, 놀라와 나는 하교 후 돌아와 그들이 짐을 싸는 모습을 오후 내내 지켜보았다. 지금까지도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건 홀든가족의 지친 얼굴이다. 셋 다 창백하게 질린 어두운 얼굴에 생기라곤 없는 눈빛이었다. 길 건너편에서 봐도 뭔가 잘못되었다는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홀든 가족은 해가 지기도 전에 떠났다.
우리가 처음 이사왔을때 환영 위원회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휘파람꾼을 본 모든 사람이 죽는건 아니지만, 살아남은 자들도 생기를 잃고 남은 삶을 불운속에서 보내게 되리라던 그 말. 셀수없는 작은 불운 말이다.
홀든의 부모님도 창 밖을 내다봤을것이다. 휘파람꾼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면 홀든을 안심 시키기 위해서 봤을것이고, 믿었다면 홀든의 짐을 나눠지기 위해서 봤을것이다. 행복하고 어리고 멀쩡히 살아있는 놀라를 보면서 가끔은 그날 밤 내가 조금만 더 느렸더라면, 그래서 놀라가 창밖을 보고 말았다면…… 나도 따라 봤을까? 생각한다. 놀라를 안심시키기 위해, 혹은 놀라의 공포를 함께하기 위해.. 그 답을 알 필요가 없으니 다행이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동네 같은 집에 산다. 여전히 매일 새벽 집을 지나는 그 휘파람 소리를 듣는다. 작은 축복들, 행운들을 두고 떠날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상 조심한다. 더는 친구를 하룻밤 재워주지도 않는다. 아빠는 블라인드를 잠그는 열쇠를 아주, 아주 철저하게 숨긴다. 물론 나 역시도 찾지 않는다. 세상엔 찾을 필요가 없는 것들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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