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딧 베스트 - 아내가 찾아냈다
익명
2026-08-01 01:01
25
아내 린과 나는 6년 연애 후 결혼한지 11개월차 이다.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은 지극히 평범해서 그동안 어떤 이상행동도, 경고신호도 감지하지 못했다. 이 모든게 얼마나 그녀답지 않은 일인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듯하다.
린은 아주 다정하고 지적이며 사려깊은 사람이다. 허튼 짓은 하지 않는 타입이라 유치하게 굴거나 나를 놀래키려 드는 일은 평소의 그녀라면 할리가 없는 행동이다.
공포영화를 보는것도 싫어했다. 데이트를 막 시작했을때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날 위해 같이 샤이닝을 봐준적이 있기는 하지만 너무 무서워해서 반도 못보고 꺼버려야 했을 정도다. 무서운거라면 다 싫어했고, 장난을 즐기지도 않는다. 린의 취향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게의치 않았다. 그래서 너무 이상하게 느껴지는것이다. 이 모든게 너무나 그녀답지 않아서.
린에게 정신과적 문제가 없다는 점도 덧붙여야 하겠다. 내가 아는 한 그녀 집안 자체에 그런 기질은 없다. 문제가 있어도 숨기는 사람이 있기야 하겠지만 6년을 같이 지냈는데 그런 징후가 있었다면 나도 알아채지 않았을까.
두 달 전 어느 날 아침 나는 부엌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그 날은 준비가 좀 늦어져서 평소 아침 루틴대로 던킨에서 커피를 살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며 서둘러 복도를 지나 현관으로 향할 때였다. 앞쪽 모퉁이 너머에서 린이 얼굴만 내민 채 나를 훔쳐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의 눈과 길고 검은 머리카락만 보일 뿐, 나머지 부분은 모퉁이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린을 보자마자 커피를 쏟을 뻔 했다. 입술은 제대로 데어버렸다.
"세상에, 린" 바지에 튄 커피 몇 방울을 문지르며 내가 말했다. "완전 놀랐잖아."
린은 술래에게 잡힌 어린아이처럼 즉시 모퉁이 뒤로 몸을 쏙 숨겼다. 곧 이어 거실 쪽으로 후다닥 달아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현관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너무 이상한 행동인데다 전혀 그녀답지 않기도 했지만 평소의 진지한 모습을 벗어나 좀 더 장난기 많은 그녀를 보게 된 것 같아 재미있기도 했다. 나는 린에게 사랑한다고 소리치고 괴짜라고 한마디 덧붙였다. 문을 닫는데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린의 행동이 좀 기괴하긴 했어도 신부님을 불러올 정도는 아니었다. 점심때쯤 난 이미 그 일을 잊어버렸고 집에 돌아왔을때 린은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나도 그녀도 더는 그 일을 언급하지 않았고, 일상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두번째 사건은 3일 뒤 일어났다. 새벽 2시쯤 목이 말라 눈을 떴다. 오렌지 주스 한 컵을 들고 주방 아일랜드 뒤에 서있는데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시선이 바닥을 향했고, 린의 웃는 얼굴과 마주쳤다. 린이 아일랜드 반대편에서 눈을 크게 뜬채 깜박이지도 않고 환히 웃으며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체셔 고양이 같이 입이 쭉 찢어진 웃음이었다.
인정한다. 난 비명을 질렀다. 짜증이 나서가 아니라 무서워서였다. 그땐 왜 인지 너무 무서웠다.
내 비명소리에 린은 엎드린 자세 그대로 후다닥 뒷걸음질을 쳤다. 네 발로 기어 부엌을 빠져나가는 그녀의 손과 발이 타일 바닥에 탁탁탁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녀를 쫓아가지도, 고함을 지르지도 않았다. 충격으로 얼어붙은 채 대체 뭔 귀신에 씌였길래 저런 짓을 하나 생각할 뿐이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위층으로 올라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그래도 결국 우리 침실에 도착했을때 린은 옆으로 누워 자고 있었다. 아니면 자는 척을 하는거였던가. 나는 가만히 서서 린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모습을 한참 쳐다보며 정말 잠든게 맞는지 확인했다.
내가 침대에 누우면 그녀가 왁 하고 벌떡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침대로 기어올라갔지만 린은 미동도 없었다. 그녀의 깊고 편안한 숨소리를 듣고있자니 그 모든일이 다 꿈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린이 커피를 마시러 내려오길 기다렸다. 그녀의 볼에 키스하고 커피잔을 쥐어준 후, 그 일에 대해 물어보기로 맘을 먹었다.
"어젯 밤엔 왜 그랬어?" 린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무안을 주지 않도록 가벼운 말투로 물었다.
린은 커피잔 너머로 미간을 찌푸리더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기서 나 또 쳐다봤잖아." 나는 주방 아일랜드 쪽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다시 내 얼굴을 본 린이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심하게 웃어서 나도 모르게 덩달아 웃음이 났다.
"너 가끔 개 소름끼쳐 그거 알아?" 그녀는 키득 거리며 컵을 주방 카운터 위에 올려놓고 내 목에 손을 감았다.
"넌 항상 소름끼쳐. 그러니까 비겼네." 린이 놀리듯이 말했다.
우리는 작별인사를 나누곤 직장으로 향했다. 운전을 하면서도 머리속엔 아일랜드 뒤에서 날 향해 웃던 그녀의 섬뜩한 모습이 가득했다. 기어가면서 손바닥이 바닥에 부딪치던 그 소리가 계속 떠올랐다. 그냥 바보같은 장난을 친 것일 뿐일거다. 공포물 덕후인 나에게 맞춰주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린이 무서운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런 일은 더 자주 일어나기 시작했다. 소파 뒤나 거실 커튼 뒤에서 린이 날 보고 있었다. 한번은 침대 발치에 놓아 둔 린 할머니의 낡은 트렁크에 비집고 들어가 있기도 했다. 트렁크 경첩이 삐걱거리며 그녀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면, 나는 그녀가 거기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뚜껑을 딱 얼굴 반만 나오게 들어올린 채로 잔뜩 흥분한 어린아이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웃고 있는 모습에 겁이 났다. 뭐라고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바라보기만 했을 뿐. 마침내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해 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고 물었지만 린은 대답 대신 천천히 트렁크의 뚜껑을 닫고 안으로 몸을 숨겼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방에서 나와버렸다.
린이 왜 그런 짓을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 장난을 무척 즐기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나는 그저 빨리 싫증이 나서 그만해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다음 2주간은 린이 날 훔쳐보는 일이 없었다. 드디어 기괴한 장난이 끝났나 싶어 맘이 놓이기 시작했다. 어느날 밤 같이 넷플릭스를 보다가 농담삼아 요즘은 왜 안훔쳐보냐고, 스파이 게임도 끝난거냐고 물었다. 그녀는 날 올려다보며 작게 미소지었다. "이제 안 들키게 된 걸 수도 있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농담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다음 며칠 간 머리속에 그녀가 한 말이 계속 맴돌았다. 내가 안보고 있을때나 눈치채지 못할때 계속 훔쳐보고 있는건가? 만약 그게 맞다면 대체 뭘 위해서 그런 짓을 하는걸까? 생각은 점점 집착적으로 변해가서 나는 모퉁이 너머나 문 뒤에서 린이 날 보고 있는건 아닌지 끊임없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집에 왔는데 린이 보이지 않으면 조마조마했다. 내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미친놈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 일 없이 다음 몇 주가 지나가자 마음이 놓였다. 가구나 벽 뒤를 확인하는 일도 그만두었다. 다 나쁜 기억일 뿐이니 잊자고 스스로를 달래면서..
하지만 며칠 전, 상황이 한층 악화 되버리고 말았다.
린이 친구네 집에 간다고 해서 나는 소파에 반쯤 누워 랩탑으로 게임을 몇 판 했다.
저녁 9시쯤엔 샤워를 하러 들어갔고, 머리에 묻은 샴푸를 헹구고 있는데 누가 쳐다보는 것 같은 그 끔찍한 느낌이 또 들기 시작했다. 천천히 눈을 떴다가 하마터면 심장마비로 쓰러질 뻔 했다.
린이 샤워 커튼 뒤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머리는 샤워실 안으로 쑥 집어넣고 몸은 커튼 뒤로 뺀 상태였다. 샤워 커튼에 달라붙은 그녀의 길고 검은 머리카락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린의 입은 기괴한 미소를 그리며 쫙 벌어져 있었고 크게 뜬 눈은 한참동안 깜박이지 않았던 것처럼 빨갛게 충혈된 채였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다가 벽에 등을 부딪쳤다. 린은 움직이지도, 미소를 지우지도 않았다. 눈화장이 검은 두 줄기로 볼까지 번져내렸다. 그녀는 잔뜩 흥분했는지 들떠 보였고, 무엇보다 완전히 미친사람 같았다. 나는 완전히 겁에 질렸다.
우리 둘 다 아무런 말 없이 한참을 그 상태로 서있었다. 영원처럼 느껴진 침묵끝에 린이 마침내 샤워실 밖으로 머리를 뺐고, 나는 린의 흐릿한 형체가 뒷걸음질로 욕실 문 쪽을 향해 움직이는 모습을 커튼 너머로 바라봤다.
잠시 후 거울이 흔들릴만큼 세게 욕실 문이 닫혔다. 나는 다시 비명을 지르며 샤워실에서 뛰쳐나와 욕실 문을 잠궜다. 한 시간 넘게 욕실에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내가 오바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장난이건 아니건간에 더는 이 짓거리를 견딜 수 가 없었다. 욕실 안을 초조하게 서성거리며 내내 그 생각만 했다. 몇 분마다 한번씩 욕실 문에 귀를 대고 무슨 소리가 들리지는 않나 확인하면서.
갑자기 희미한 소리가 들려와 욕실 문에 귀를 바짝 갖다대고 들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문 반대편에 서서 재밌다고 키득거리는 린의 모습을 상상해 버렸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내 집인데 공포에 떨어야 하는것도, 욕실에 한 시간씩 갇혀 있어야 되는것도 참을 수 없을만큼 화가 났다. 대체 무얼 위해 이래야 하는거지? 장난 치려고? 장난이라면 정말 거지같은 장난이다.
"대체 씨발 뭐야 린?" 나는 고함을 질렀다. " 점점 존나 짜증난다고!" 그녀가 사과를 하거나 맞서기를 기다렸지만 희미한 신음소리만 들려왔다. 너무 작은 소리라 들었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리곤 완전한 침묵이 뒤따랐다.
"린?"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고도 하지않고 린을 소리쳐 불렀다.대답이 없었다. 내 거친 숨소리만 들릴뿐.
"제발 좀 그만하라고!" 욕실 문을 주먹으로 치며 소리질렀다.
린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게 처음이라 욕이라도 돌아올 줄 알았다. 그녀에게 소리를 지른 적은 한번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샤워헤드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제외하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잔뜩 겁에 질렸다는걸 부정하지는 않겠다. 너무 무서워서 문을 열고 내 와이프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30분쯤 더 기다렸다. 무서울땐 그마저도 평생 같기만 하다. 마침내 욕실 안에서 밤을 새지는 않겠다 결심하곤 무릎을 꿇고 문 밑의 틈을 내다봤다. 문틈으로 린의 얼굴이라도 마주칠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아니었다. 복도 끝 계단 꼭대기까지 훤히 보였지만, 린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기뻐해야 할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층계참 꼭대기로 린의 머리가 불쑥 튀어나올지 몰라 몇 분 더 지켜봤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손잡이를 더듬으며 문을 열 마음의 준비를 했다.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잠금을 풀고 문을 벌컥 열려했던 그때 그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속이 메스꺼워지는 그 소리가.
아까 보다 더 커진 신음소리였다. 다만 이번엔 그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알 것 같았다. 슬로우모션으로 재생하는 것처럼 천천히 욕실 한쪽에 위치한 길다란 벽장쪽으로 고개를 돌렸을때 벽장 문의 좁은 틈으로 나를 쳐다보는 아내의 눈과 마주쳤다.
린은 여전히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쫙 벌린 채 지금껏 살면서 한번도 본 적 없는 그로테스크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너무 무서워서 비명을 지를수도 없었다. 그녀는 가슴께에 손을 모으고 순수한 기쁨에 몸을 떨고 있었다. 흥분을 감당할 수 없다는듯이. 린의 목구멍에서 짧고 거칠게 터져나오는 깊은 날 것의 신음소리에 내 온 몸이 덜덜 떨려왔다.
어찌어찌하여 욕실 문을 열고 할수 있는 한 빠른 속도로 계단을 구르듯 내려가 거실 테이블 위에 있던 차 키와 핸드폰을 낚아챈 후 밖에 세워둔 차까지 달렸다. 뒤에서 린의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내 쪽으로 다가오는 기색은 없었다. 현관문을 닫는 수고는 하지 않았다. 제한속도보다 더 빠르게 운전하는 내내 추위 때문인지 무서워서 인지 몸이 떨렸다. 아마 둘 다 일 것이다. 코트도 챙기지 못했고 신발도 짝이 맞지 않았다. 아직도 팬티 바람에 머리엔 땜빵이 그대로였다.
걸려오는 전화와 문자를 다 무시하면서 40분 떨어진 동생 크리스네 집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동생네 집 진입로에 무사히 주차할때까지 폰을 확인하지 않았다. 린에게 온 부재중 전화가 4건이었고, "그런식으로" 집을 나가서 어딜 간거냐고 묻는 문자가 몇개씩이나 와있었다.
린의 태연한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폰을 대쉬보드에 집어던져 버렸다.
동생과 동생 와이프는 팬티만 입고 나타난 나를 보고 놀라는 듯 했지만 얼마든지 머물다 가라고 말해주었다. 크리스가 내게 입을 옷을 챙겨주며 무슨 일이냐 물었다. 린과 싸웠다고만 말하고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좀 이상한 장난일지라도 장난일뿐인데 와이프를 두고 달아나다니 과잉반응 아니냐 할까봐서였다. 나 역시도 매사에 진지하게 굴지말고 밝게 좀 살아보자고 몇년씩이나 린을 부추기지 않았던가?
린이 긴장을 풀고 편안해지기를 원한건 맞지만 이런걸 말한걸 절대 아니었다.
그 집 소파에 누워 잠을 청해보았지만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 눈을 감을때마다 벽장 안에 숨어 날 쳐다보던 린의 얼굴이 떠올랐다. 애초에 그 엿같은 화장실을 나간적이 없는거였다. 나가는 대신 벽장 속에 기어들어갔으면서 나를 속이려고 나간 척 화장실 문을 꽝 닫기까지 했다.
집에 간다는 생각만 해도 불안했다. 밤새 뒤척거리기만 했을뿐 잠은 오지 않았다. 결국 크리스가 준 수면제를 먹고서야 살짝 잠이 들었지만 자는 내내 악몽을 꿨다. 린의 웃는 얼굴로 도배된 꿈이었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할때 눈이 딱 떠졌다. 소파에서 잔 탓에 온 몸이 쑤셨고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언젠가는 린에게 전화해야 하겠지만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린이 다시는 그런 소름끼치는 미친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는 한 집에 돌아갈 수도 없었다.
내 아내를 돌려받고 싶었다. 평소 아내의 진지한 모습이 그렇게 그리울 수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린에게 전화를 할까 고심하던 그때 익숙한 느낌이 엄습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가만히 천장만 바라봤다. 천장에서 눈을 떼고 싶지 않았지만 무시하려 애쓸수록 그 느낌은 더 강해지기만 했다.
천장을 향하던 시선이 저절로 옮겨갔다. 소파 옆 창문에 린이 얼굴을 바짝 들이민채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예의 그 찢어질듯한 미소를 지은채로. 그녀의 입술에서 줄줄 흘러나온 침이 창문에 길다란 두 줄을 남겼다. 얼마나 오래 거기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긴 시간, 아마도 밤새 있었을거란 느낌이 들었다.
무섭긴 했지만 비명을 지르진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두려움보다 분노가 훨씬 컸다.
나는 소파에서 튀듯이 일어나 손바닥으로 창문을 쿵쿵 때렸다.
"린! 너 미쳤어? 대체 왜 이런 또라이 같은 짓을 하는건데? 꺼져! 집에나 가!" 나는 소리쳤다.
"당장!"
린은 미동도 없었다. 그 끔찍한 표정도 그대로였다. 달라진게 있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적은 없었다는듯이 미소가 점점 커진다는 것 뿐이었다.
윗층에서 크리스와 그의 아내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창 밖에 서 있는 린에게도 그 소리가 들렸는지 린의 고개가 그 쪽으로 살짝 돌아갔고, 이내 천천히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크리스가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2층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니 크리스와 아내 레베카가 서둘러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다시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떄 린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린이 거기에 있었다는 유일한 증거라곤 창문에 흘러내린 침 두 줄기 뿐이었다.
크리스와 레베카에게 아침에 일어나 창 밖을 보니 거기 린이 있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누군들 안 그러겠는가? 크리스와 함께 밖으로 나가 창문 앞을 살펴보았지만 진흙탕 위에는 발자국 대신 살짝 패인 자국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크리스는 아마 동물의 발자국일거라 했고 나도 토를 달지 않았다. 크리스와 레베카는 그 모든게 꿈일거라 생각했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납득 시키기엔 나도 너무 피곤했다.
회사에 하루 쉰다고 이야기하고 휴대폰을 꺼버렸다. 린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것조차 버거웠다. 린의 어딘가가 돌이킬수 없을만큼 망가져 버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가 어떤 말을 하건간에 우리 관계가 예전으로 돌아갈 순 없을 것 같았다. 그 생각에 맘 속 깊이 슬픔이 찾아와 오전 내내 울기만 했다. 오후 쯤이 되어서야 린과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서 그녀에게 변명할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했다. 6년이나 함께했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라고 내 자신을 타이르면서.
폰을 켜니 린으로부터 수십개의 문자가 와 있었다. 누가 봐도 걱정에 빠진 와이프 같은 모습이었다.
"얘기 좀 하자."
"사랑해."
"제발 전화 좀 해줘."
"나 너무 걱정 돼."
"대답해줘."
"집으로 와."
죄다 그런 식이었다. 문자마다 날 사랑한다고, 집에 돌아오라고 너무 걱정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자신이 저지른 미친 짓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다. 스티븐 킹이 쓴 책 속 주인공 같은 짓은 한 적도 없다는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 문자마저 달랐다. 평소 린은 '오는 길에 식빵 하나 사 와.' 같은 부탁 하나 하려고도 소설 한 편은 될 만큼 긴 문자를 보내던 사람이었다. 그런 기괴한 짓을 벌인 뒤에는 오히려 할 말이 훨씬 더 많아야 정상 아닌가.
멀리서 보기엔 이 모든게 애들 장난 같이 여겨질 수도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린이 날 바라보던 모습, 무슨 야생동물처럼 네 발로 빠르게 기어가던 모습, 벽장 안에 숨어서 날 보고 미치광이처럼 웃던 모습을 직접 보게 된다면 내 반응도 이해가 갈 것이다.
결국 크리스와 레베카의 집에서 하루를 더 묵기로 결정했다. 어제는 오후까지 잠을 잤고 고맙게도 창문 밖에 서서 날 쳐다보는 린의 모습도 보지 못했다.
" 내 일도 아닌데 캐묻고 싶진 않지만 이 부부싸움 해결이 되긴 하는거야?"
레베카가 물었다. 막 점심으로 우리가 먹을 샌드위치를 준비해 준 참이었다. 오지랖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그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모르겠어. 그냥..... 린 완전 다른 사람같아." 단어를 신중히 고르며 내가 말했다. 그녀나 크리스가 내가 겪은 이 미친 사건을 전부 알게 되는건 아직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사람은 변하게 마련이야 벤. 그래도 린은 여전히 니가 결혼한 그 여자잖아. 너희 둘 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좀 해.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다 잘 풀릴거야." 항상 중재자 역할을 했던 레베카가 말했다.
"지금 이건 그 수준이 아니야. 대화로 해결될 것 같지않아. 린을 못 믿겠어." 그 말을 하고 나니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내 아내를 여전히 사랑하고 그립기도 했지만 그런 사람과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매일을 공포속에 살 자신은 없었다.
"린은 널 사랑해. 지금 엄청 속상해 하고 있을걸." 그녀가 말했다.
"잘 모르겠는데." 내가 말했다.
"글쎄 나한텐 그래 보이던데. 린이 그렇게 힘들어 하는건 첨 봤어. 내가 알던 린 같아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레베카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는데만 한참이 걸렸다. 이해가 가고나니 두려움이 살갗위를 꿈틀거리며 지나가는게 느껴졌다.
"잠깐만, 무슨 말이야? 내 와이프 봤어? 린 만났어?" 갑자기 입이 바짝 말랐다.
레베카는 그렇게 놀랄 일이냐는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아침에 크리스 출근하고나서 린이 들렀었어." 레베카가 테이블위의 접시를 치우며 말했다. "차는 안보이던데 우버 같은거 타고 왔나보더라."
"레베카. 린이 뭐래? 안에.. 집 안에 들어왔어?" 갑작스레 이마 위로 땀이 솟아올랐다. 마치 그들 뒤에 맹수라도 도사리고 있는 양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내가 물었다.
"아니. 너 일어났냐고 물어보길래 아니라고 했지. 깨워줄까 물어봤더니 됐다고 하더라고. 그냥 자게 두라면서." 레베카가 접시를 닦으며 말했다.
"그게 다야? 또 뭐라고 안해?" 내가 물었다.
"응. 근데 엄청 안좋아 보이더라. 며칠은 못 잔것 같던데. 전화 해봐."
나는 레베카에게 잘 먹었다고 인사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린이 집 안으로는 들어온적이 없다고 하니 기분이 살짝 나아졌다.그래도 문이 다 잠겨있는지는 한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궁리하며 한참을 앉아있었다. 집에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할 수 있다면 린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아플때나 건강할때나 사랑하고 공경하겠노라고 서약하지 않았던가? 린은 어디가 아픈게 분명하고 말이다.
만일 린이 아프다면, 아픈게 틀림없다고 믿긴 하지만, 그녀에게 필요한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경찰을 부르기는 싫었다. 경찰한테 대체 뭐라고 해야한단 말인가? 내 와이프가 날 훔쳐본다고? 소름끼치게 군다고? 기괴한 짓들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범죄를 저지른것도 아니다. 어쨌든 아직은 말이다. 경찰도 과잉반응이라고 할게 뻔했다. 하지만 이건 그냥 장난 정도가 아니다. 뭔가 잘못된거다. 위험하기까지 했다. 린의 미소 아래 뭔가 사악한게 도사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린의 남편으로서 그녀를 정신병동에 입원시킬 권리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사람들 앞에서는 또 멀쩡하게 굴면 어쩐단 말인가? 상심한 아내인척 하면서 레베카를 속여넘겼듯이 말이다. 린이 그녀 자신에게나 주위사람들에게나 위험하다는걸 의사가 알아채지 못한다면, 72시간 후에는 풀어주는 수 밖에 없다. 나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 같은 상황에 처한 남편이라면 으레 할 말한 일을 했다.
린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러고 싶진 않았다.
린의 엄마 마리안과 내 관계는 그리 원만하지 않았다. 싸운적은 없었다. 그저 마리안이 품성이 따뜻하다거나 어울리기 쉬운 사람이 아니었을 뿐이다. 마리안은 좀처럼 웃는 일이 없었는데 어쩌다 한번 웃을때면 눈은 텅빈 채 입꼬리만 올라갔다. 늘상 싸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같달까.
마리안과 만난건 딱 두번이었고 그마저도 아주 짧은 만남이었다.
내가 받은 인상이라곤 그녀가 나를 린의 신랑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느낌뿐이었다. 내가 불편해하는걸 알고 항상 서둘러
자리를 파하는 린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곤했다. 마리안과 함께하는 시간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유리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3개 주 너머로 이사가게 됐을떄도 마리안을 덜 봐도 된다는 생각에 기쁠 지경이었다. 그 여자를 피할 수 있어 행복했지만, 이젠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다.
마리안과 대화를 나누고픈 마음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나보다 린을 더 잘아는 누군가와 대화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이를 악물고 전화를 걸었다.
"네?" 그녀의 목소리에는 벌써 짜증이 묻어있었다.
"마리안, 저 벤이예요. 잠시 통화 가능하세요?" 잠깐의 침묵 끝에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수표 쓰는 중이긴 한데 꼭 그래야 한다면 잠깐 시간을 낼 수는 있어. 무슨 일이야 벤자민?"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
"린 일이예요. 린이 좀... 이상하게 굴어서요. 그래서 혹시 짚이는데가 있는지 여쭤보려고..." 그녀가 바로 내 말을 잘랐다.
"횡설수설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벤자민, 뭘 원하는거지?" 그녀가 물었다. 얇은 스웨터에 슬렉스를 걸치고 서서 테이블위에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두드리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혹시 린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걸 본적이 있으세요? 아니면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던가요." 내가 물었다. 길고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그녀가 내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건지 아니면...다른 뭔가를 생각 하는건지 알 수 없었다. 마침내 마리안이 입을 열었다.
"이걸 농담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벤자민, 하나도 안웃기는데. 이미 말한것처럼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괜찮다면 이만-" 마리안이 날 치워버리기전에 먼저 끼어들었다.
"마리안, 농담 아니예요. 린이 정신이 이상해진건 아닌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구요. 린이 요즘 너무 엉뚱하게 굴어요. 저도 이렇게 걱정이 되는데 엄마인 마리안은 얼마나 걱정할까 싶었어요. "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지 그래. 나한테 뭘 기대하는지 모르겠네." 그녀가 쏘아붙였다. 전화를 끊어버리기 직전이라는게 느껴졌지만 나는 매달릴 정도로 절실했다. 뭔가를 숨기고 있는게 분명했기에.
"제발요. 저를 위한 게 아니라 린을 위한거예요."
들이키는 숨소리가 희미하게 떨리는걸 보니 철의 여인같은 페르소나를 유지하는데 실패한 모양이었다.
"마리안? 무슨-"
"벤자민,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네. 전문가를 찾아봐. 다시 전화할것없어. 잘있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 했지만 전화는 끊어진 뒤였다.
그녀의 거절을 이해하려고 애를 써봤다. 암만 나를 싫어한다고 해도 자기 딸을 돕지도 않는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놓친건 없는지 대화를 복기해 보았다.
한참 뒤 막 포기하려던 때 전문가를 찾아보라던 마리안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을 할때 살짝 긴박한 감이 있었다. 완전 잘못 짚은것일수도 있지만 아니다, 분명 그 얘기를 할때 목소리가 살짝 바뀌었다.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이야기하듯이.
그 말이 무슨 의미일까? 의사를 찾아가보란 말이라 생각했지만 그게 아닐수도 있다. 어떤 이유로든 직접 언급하기엔 불편한 누군가일수도 있는것이다. 아니면 그냥 내가 너무 절박한것이거나.
크리스가 퇴근할때까지 기다렸다. 크리스,레베카와 아주 길고 진빠지는 대화를 나눈 끝에 린에게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함을 납득시킬 수 있었다. 모든걸 말하지는 않았다. 그럴 준비가 되어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린을 봤을때의 상황은 이야기했다. 욕실 안 벽장속에서 날 훔쳐봤던 일 말이다.
그들은 당연히 충격을 받았지만 고맙게도 나를 믿어주었고, 린을 돕고자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일을 그닥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이상할수는 있어도 위험하다고는 생각치 않는것이다. 린이 좀 짜증나는 장난에 심취한 것 아니냐는 말을 계속 하기도 했다. "유튜브 할라고 그러는거 아냐?" 레베카가 건성으로 말했다.
크리스는 지금 당장 경찰에 신고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대신 나와 함께 가주겠다고 했고 나는 바로 동의했다. 그는 차분히 대화를 통해 린을 잘 설득해서 자발적으로 치료를 받도록 하는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했고, 나는 그가 하자는대로 하기로 했다. 최소한 그 집에 혼자 돌아가지는 않아도 되니까.
오늘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밤에는 도저히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입로에 차를 대는데 속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린의 차는 안보였지만 아직 방심하기는 일렀다,
현관문은 살짝 열려있었다. 찰나의 순간 그 틈으로 린의 눈동자를 본 것만 같았다. 몸이 떨리고 땀이 나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어째서인지 태연하기만 했다. 내가 문을 열기를 기다리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모습이 어디 산책이라도 나온 놈 같았다. 그 무지함이 부러울 뿐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즉시 썩은내가 코를 강타했다. 크리스도 냄새를 맡았는지 내 뒤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서며 코를 움켜쥐었다.
"바닥을 똥으로 닦았어? 어우 씨" 크리스가 웅얼거렸다.
"닥쳐" 린의 흔적을 찾아 잽싸게 눈을 굴리며 내가 말했다.
오전 10시임에도 집안은 무덤처럼 고요하고 어두웠다. 햇살 한줄기 들어오지 못하도록 모든 커튼이 꼭 닫혀있었다. 이틀전까지 이 집에 살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영락없이 폐가인줄 알았을 것이다.
우리는 한번씩 린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며 혹시 린이 어디 숨어있지나 않을까 방마다 꼼꼼히 살펴보았다.
"대체 소파 밑은 왜 처보는데?" 마침내 크리스가 물었다. " 와이프 찾는거 아니야 지금?" 그가 병신보듯이 날 바라보았다.
"위층에나 가보자." 고개를 젓긴 했지만 크리스는 욕실과 여분의 침실을 체크하기 위해 날 따라 2층으로 올라왔다. 계단에 흩어져있는 유리조각들이 발 밑에서 바스락 대는게 느껴졌다.
계단참에 걸려있던 우리 웨딩사진 하나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유리는 온데간데 없고 프레임만 비스듬히 걸려있었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목구멍으로 덩어리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서약을 주고받은 뒤 교회를 나서자마자 찍은 사진이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린의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나는 린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 얼굴이 공포를 불러일으키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한채로.
남은 계단을 마저 올라 침실을 확인했지만 아무도 들어온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 밤의 공포가 한번에 되살아나 욕실안을 들여다보기가 망설여졌다. 크리스가 눈치챘는지 혼자 들어가겠다 했지만 그러라 할 수가 없었다. 그와 함께 들어가 벽장과 샤워실 안을 확인했다. 욕실은 내가 떠난 이후 건드린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린 없는 것 같은데. 옷 좀 챙겨. 내일쯤에나 다시 와보게."크리스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우리 침실로 들어가 더플백안에 옷가지를 챙겨넣으려고 옷장 안을 들여다보다가 냄새가 어디서 나는지 발견하고 말았다. 헛구역질이 나왔다.
크리스도 한번 보곤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냄새와 그 광경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건지 그가 계단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충격에 빠진 채 침실 옷장을 내려다 보았다. 카펫을 흠뿍 적신 그것은, 정성스럽게 짝을 맞춘 적어도 6쌍은 되보이는 눈알들이었다. 어떤 것은 25센트짜리 동전만큼 컸고, 어떤 것은 구슬만큼 작았다. 작은 동물들 것 같은 그 눈알들을 바라보며 대체 저걸 어떻게 구했을까 생각하다가, 그 생각에 치를 떨었다.
“레베카 구두 중독 때문에 내가 고생이 심한 줄 알았더니만, 형 와이프는 눈알을 모으고 있네.” 크리스가 구역질을 하며 말했다."벤, 이제 나가자." 그가 복도에서 소리쳤다."나 속 안좋아."
"알았어." 나는 더플백을 집어들곤 내 새로운 악몽이 되어버린 옷장 문을 닫았다. 복도쪽으로 나와선 깊게 공기를 들이마셨다. 혀에서 썩은 맛이 느껴졌고 어쩔 수 없이 구역질이 났다.
"어떤 미친년이 옷장에다가 눈깔들을 전시해 놓냐고?" 크리스가 중얼거렸다.
"그러게 린한테는 어쨌든 도움이 필요하다고 내가 그랬잖아" 내가 말했다.
"도움이 필요한게 아니고 퇴마가 필요한거지 미친." 그가 말했다.
"올거야 말꺼야? 냄새 더는 못 참겠-" 크리스는 말을 잇지 못한 채 공포에 질린 눈을 크게 떴다.
왜냐고 묻지 않았다.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보고있다. 옷장안에 전시된 눈알들이 아닌 무언가가. 나는 돌아서서 천천히 침실안을 흝어보았다.
"주여" 마침내 우리가 뭘 놓쳤었는지 발견하자 절로 속삭임이 나왔다. 침대 밑에서 몸을 옆으로 말고 크리스마스 아침을 맡은 아이라도 된 양 흥분한 채 우리를 훔쳐보고 있는 것은 내 와이프였다.
턱 밑에 가지런히 모은 그녀의 양 손이 기대감에 들떠 떨리는게 보였다.
우리가 봤다는 걸 눈치챈 그녀가 작은 신음을 흘렸다. 흥분을 주체할 수 없는지 딸꾹질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소리였다. 린은 눈을 크게뜨고, 예의 그 커다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 온몸이 도망치라 외쳤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이건 내 아내다.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라 할지라도 여전히 내가 결혼한 그 여자 그대로이다. 그녀를 도와야만 했다.
"린...."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린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머리를 앞 뒤로 재빠르게 까닥거렸다.
"자기야. 난 그냥 돕고싶은거야. 내가.. 내가 돕게 해줄래?" 위험한 야생동물 이라도 되는 양 한발짝 앞으로 다가가며 내가 물었다.
"사랑해, 린" 한발 더 내딛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린이 쫙 벌린 입으로 작은 신음소리를 흘리자 도망가고 싶은 욕구가 다시 치솟았지만 꾹 억눌렀다. 린의 어깨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눈은 접시만큼 커진 상태였다.
린을 더 잘 보려고 몸을 숙이자마자 피가 보였다. 린의 양 손이 피에 흠뻑 젖어있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자신을 억제할 수 없는 사람마냥 그녀의 손이 더 심하게 떨렸다.
"린, 어디 다쳤어? 피 나잖아." 린이 다시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녀의 피묻은 손은 보이지 않는 피아노라도 치는 것 처럼 위 아래로 움직였고, 그러다 한번씩 턱을 스치며 얼굴에 길다란 핏자국을 남겼다.
역겨움에 몸을 뒤로 빼고 싶었다. 린에게서 구역질 나는 냄새가 났다. 목구멍을 타고 토사물이 올라오는게 느껴졌다. 잔뜩 부르튼 린의 입술 사이에 피가 맺혀있었다.
린이 자기 의지로 나올리가 없다는 건 알았지만 그대로 놔둘수는 없었다.
더 가까이 다가가 그녀 쪽으로 몸을 뻗었다. 흥분에 찬 딸꾹질 소리가 더 커졌고, 굽은 손가락들이 덜덜 떨렸다. 그제서야 손가락 사이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게 보였다.
" 린! 피 나잖아." 본능적으로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닿기도 전에 그녀의 손이 확 뻗어나왔다. 팔뚝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고, 나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팔이 타는듯이 아파왔다. 카펫위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충격에 빠진 채 뒤를 돌아보니 린이 날카롭고 커다란 유리조각을 쥔 채 미친사람처럼 웃고 있었다.
"형 괜찮아?' 크리스가 내 뒤쪽에서 물었다.
살짝 고개를 돌려 끄덕여 보이고 다친 팔을 가슴쪽으로 감싸안았다. 린 쪽을 돌아보니 그녀는 이미 내게 관심이 없었다. 더는 날 쳐다보지도, 웃고있지도 않았다. 배고픈 사자가 사슴을 보는듯한 그 강렬한 시선은 나를 지나쳐 크리스를 향하고 있었다. 린의 커다랗게 벌린 입이 비뚤어지더니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일어서서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않은채 복도쪽으로 뒷걸음질쳤다.
"형.. 피 나?" 크리스가 물었다. 크리스가 입을 떼자마자 린이 침대 밑에서 빠른 속도로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손에는 여전히 유리조각을 꼭 쥔채였다.
"크리스!! 뛰어!! 도망쳐!!!" 고함을 질렀지만 곧 등 뒤로 크리스의 몸이 느껴졌다. 너무 무서워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크리스는 여전히 계단 꼭대기에 선 채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내 아내를 바라보기만 했다.
침대 밑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침실 문가에 서 있는 린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의 온 몸이 떨리는게 보였다. 손가락을 타고 떨어지는 피가 바닥을 적셨다.
"세상에, 린....." 크리스가 말했다. "지금... 어... 숨바꼭질 하는거야?" 그에게 다가가 계단 쪽으로 밀었다.
"빨리 가라고 크리스" 조용히,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린은 날카로운 동작으로 빠르게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녀의 입이 열리더니 점점 더 커져 턱이 가슴에 닿을만큼 벌어졌다. 그리고 으르렁 거리기 시작했다. 크리스가 기도문을 웅얼거리며 계단을 달려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자기 보호본능과 내 아내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계단 꼭대기에 서있었다. 그녀에겐 도움이 필요했다.
"그냥 도와주고 싶을 뿐이야." 눈물을 삼키며 내가 말했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나를 향했다. 린이 천천히 유리조각을 들어올려 몸 앞에서 그러쥐었다. 그리곤 잔뜩 흥분한 채 으르렁거리며 나를 향해 휘둘렀다. 다행히도 몸이 먼저 반응했고 나는 한번에 두세칸씩 건너뛰며 날듯이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간신히 현관에 도달한 순간 린이 내 등으로 뛰어올라 팔로 목을 감았다. 그녀의 입이 내 귀에 닿을듯이 가까워서 그 끔찍한 딸꾹질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나는 몸을 흔들어 그녀를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등에 타는듯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미친듯이 현관문을 열고 차를 향해 돌진했다.
크리스가 정원에 서서 경찰과 통화 하고있는게 보였다. 나는 말 없이 차를 향해 달려가 뛰어들었고, 크리스도 눈치챘는지 911과 통화를 끊지 않은 채 내 뒤를 따랐다.
나는 룸미러를 주시했다. 분명 우리를 뒤쫓아 달려오는 린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응급실로 직행해 팔은 11바늘, 등은 3바늘을 꿰맸다. 경찰은 질문세례를 퍼부은 끝에 우리 집을 조사했지만 당연히도 린은 거기 없었다.
경찰에선 최대한 빨리 접근금지명령을 신청하고 그동안 친구나 친적집에 머무르라고 했지만 그래봤자 소용없을게 분명했다. 왜인지 모르지만 그냥 알 수 있었다.
크리스를 집에 내려주고 1시간 거리에 있는 모텔로 향했다. 린과 할 수 있는 한 거리를 벌리고 싶어서였다.
지난 4시간동안 모텔에 머물렀다. 그 정도면 경찰이 린을 찾아내 그녀에게 필요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생각이 틀렸다는걸 안다. 40분전에 발신자 미상의 문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딱 한 문장이었다.
"찾았다"
사진 한장이 첨부되어 있었다. 어둡고 거칠었지만 그게 뭔지 즉시 알 수 있었다. 내 아내의 눈을 못알아볼리가 없지 않은가.
문자를 받자마자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달리 뭘 해야 할지 몰라서이다. 나는 혼자다. 너무 무섭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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