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다
정미옥은 오늘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받으러 간다. 중학교 2학년인 아들 민호의 학교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 있는 날이었다.
오후 반차를 내고, 아침에 아들을 데려다준 학교로 다시 차를 몰았다. 정미옥의 얼굴에는 귀찮음이 역력했다. 번번이 미루다 한 번도 온 적 없는 학부모들에게, 이번만큼은 반드시 오라는 연락이 왔던 것이다.
작은 강당에 들어서자 이미 많은 학부모들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어, 민호 엄마 왔네?"
"어머, 민지 엄마! 오랜만이다."
“아우, 민호 어머니시구나. 안녕하세요, 저 유진이 엄마예요. …"
다른 학부모들과 인사를 나누고, 정미옥도 자리에 앉았다.
강당에서는 별 거 없는 영상 하나를 틀어줬다. 선생과 경찰이 나와 대사를 읊고, 연기자들이 학교폭력 장면과 가족 간의 대화, 신고 상황을 어색하게 재현했다.
‘바쁜데 이런 거 하나 보려고 여기까지…’
[ 부모의 관심보다 학교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
뻔한 말들의 나열이었다. 정미옥은 핸드폰을 켜고 문자나 확인하며 시간을 떼웠다.
[ 학교를 다녀와서 표정이 좋지 않다거나, 평소보다 예민해지기 시작했다거나, 뚜렷한 이유도 없이 학교 가기를 너무 싫어하고, 몸에 상처나 멍이 있다면,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럴 때는 부모님께서 먼저 나서서 아이들과 대화를… ]
그런데 문득, 정미옥의 머릿속에 지난 며칠이 스쳐지나갔다.
“엄마, 학교 안 가면 안되요…?”
“무슨 소리야. 학교 가야지. 애가 갑자기 왜 이래?”
요즘 들어 민호가 아침에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자주 했던 것도 같다. 그냥 아이들이 으레 부리는 투정인 줄만 알았는데.
‘아니겠지…’
정미옥은 그날 저녁 식탁 의자에 앉아, 민호가 학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학원 수업은 10시에 끝나 민호는 셔틀버스를 타고 돌아올 것이다.
11시가 조금 넘어서, 민호가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녀왔습니다.”
“어, 왔니? 별 일 없었고?”
“그쵸?”
“잠깐만 여기 앉아봐.”
혹시라도 정말 몸에 상처가 있을까, 정미옥은 방에 들어가려는 황민호를 멈춰세웠다.
민호에 목에 정말로 상처가 보였다. 손톱으로 긁힌 것처럼 얇은 자국이 두세 개 이어져 있었다.
“어, 목에 저건 뭐야? 다쳤어?”
“네? 뭐가요?”
민호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핸드폰 카메라로 자신의 목을 보더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엥, 이게 뭐지. 어디서 다쳤는지 모르겠는데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정미옥은 민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정말로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정미옥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말을 이었다.
“너 요즘 생각해보니까… 용돈을 왜 이렇게 자주 받아갔니?”
“말했잖아요. 문제집 사야 되고, 학원 쉬는 시간에 저녁 먹을 때 돈이 좀 많이 든다고요.”
집안 사정은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민호가 용돈을 바라면 정미옥은 웬만하면 넉넉히 주었다. 그런데 이제서야 이번 달에 용돈이 유독 많이 나갔다는 걸 깨달았다. 그 돈은 다 어디로 간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문제집 산 거 맞아?”
민호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네.”
“어디 서점?”
“그냥 학교 앞이요.”
“어떤 문제집?”
“수학이요.”
“영수증 있어?”
“…버렸는데요.”
"왜?"
"그냥요. 필요 없으니까."
정미옥은 더 물으려다 멈췄다. 다그치면 입을 닫아버릴 것 같았다.
“저 근데 지금 바로 과제해야 되요. 씻기도 해야되는데, 좀 방으로 들어가면 안 될까요.”
“그래, 그래.”
민호가 방으로 들어가자 정미옥도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출장 중이라 집에 없었다. 불을 켜지 않은 채 침대 끝에 잠시 걸터앉아 있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어~ 민혁이 엄마. 잠깐 전화 괜찮아?”
“응, 나야 괜찮지. 무슨 일이야? 아, 참. 뭐 오늘 학교에서 교육 있었다며?”
"다녀왔지. 근데 그게 아니라… 민혁이는 요즘 학교에서 별일 없어? 애들이랑 잘 지내고?"
"응? 갑자기 왜? 우리 민혁이야 뭐, 맨날 그렇지. 잘 지내는 것 같던데.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민호가 요즘 좀 이상한 것 같아서. 학교 가기 싫다고 하질 않나, 목에 상처도 있고, 용돈도 평소보다 많이 나가고."
"어머, 진짜? 근데 민호가 그럴 애야? 학교에서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근데 요즘 뭔가 좀 달라진 것 같아서. 학교를 찾아가봐야 하나…?"
"아니야, 좀 기다려봐. 정말 별일 아닐 수도 있잖아."
민혁이 엄마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근데 민호가 괴롭힘을…? 민호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하잖아. 학교에서 인기도 많을 텐데?"
“그래? 그런가…”
"혹시 민호한테 직접 물어는 봤어?"
"물어보려다가… 괜히 다그치는 것 같아서. 애들이 말을 잘 안 하잖아 요즘."
"일단 내가 민혁이한테 슬쩍 물어볼게. 같은 반은 아니지만 아는 애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고마워, 그렇게만 해줘도. 티 안 나게 물어봐줘."
"알겠어. 근데 너무 혼자 끙끙 앓지 마. 진짜 뭔가 있으면 학교에서 연락 오겠지."
"일단 알겠어. 늦은 시간에 고마워, 민혁 엄마."
정미옥은 전화를 끊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동안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핸드폰 화면이 꺼지자 방 안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별일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쉽게 일어나지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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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가 늦은 시간 집에 돌아올 때마다, 정미옥이 계속 민호를 붙잡고 대화를 시도하니 민호는 이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없다고요! 그냥 좀 냅두세요! 안 그래도 오늘 학원에서 시험보고 와서 피곤한데. 좀 쉬자고요!”
방문이 쾅 닫혔다. 정미옥은 그 앞에 잠시 서 있다가 돌아섰다.
정미옥은 점점 상황이 안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이러다가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면? 그 생각이 자꾸 들었다.
민혁이 엄마에게도 그 후 연락이 왔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민호는 잘 지내고 있고, 친구들과도 별 문제가 없다는 말 뿐이었다.
“엄마, 혹시 오늘 학교 안 가도 되요?”
조용히 아침밥을 먹던 민호가 말했다.
“또 그 말이야?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좀 아픈 것 같아서요."
"어디가 아파? 열 있어?"
"아니요, 그냥… 그냥 좀 그래요."
"그냥이 뭐야, 그냥이."
민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젓가락으로 반찬을 건드리기만 할 뿐이었다.
“민호야. 엄마가 이거 하나만 물어볼게. 혹시 학교에서 누가 괴롭히니?”
정미옥은 하는 수 없이 직설적으로 물었다. 민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네? 아니에요. 그런 거 없어요.”
“음… 그러니?”
“엄마, 그래서 학교 안 가도 되냐고요.”
“그래도 가야지, 민호야…”
“네…”
학교를 보내는 정미옥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내일도 학교에 가기 싫어하면, 그때는 민호의 말을 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미옥은 학교 정문에서 민호를 내려줬다. 곧바로 떠나지 않고 민호가 교문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한참 지켜봤다.
민호는 안으로 들어가면서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민호가 시야에서 사라졌을 즈음, 차에서 내려 지나가는 학생들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 중 민호의 명찰과 색깔이 같은 한 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저, 혹시. 민호 아니? 황민호."
“네?”
“이름이… 이강우구나. 명찰 보니까 강우도 2학년인 것 같은데, 아줌마가 민호 엄마거든.”
“아, 알아요.”
"다행이다. 아줌마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무작정 붙잡았네, 미안해."
정미옥은 목소리를 낮췄다.
"요즘 민호가 좀 이상한 것 같아서. 혹시 학교에서 무슨 일 있는지 알아?"
강우는 눈을 살짝 내리깔더니
"모르는데요”
라고 짧게 답했다.
"그래? 그럼 혹시 민호 좀 보이면 살펴봐줄 수 있어? 아줌마가 용돈 좀 줄 테니까."
강우가 머뭇거렸다.
”얼마나요?"
정미옥은 지갑을 열었다.
“20만원."
“네? 20만원이요?”
20만원이라는 액수에 강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응, 20만원.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사먹으라구 용돈 주는 거야. 요즘 애들이 많이 먹잖니.”
정미옥은 지갑에서 5만원권 4개를 꺼내 강우의 패딩 주머니에 무작정 밀어넣었다.
“착한 일 해주는 거니까. 강우야, 잠깐 핸드폰 좀 줄래? 아줌마 연락처 좀 적어줄게. 혹시 민호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연락 줘야해?”
강우는 주머니 속 돈뭉치를 의식하는 듯 잠깐 굳어 있다가,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꺼내 내밀었다.
정미옥은 번호를 저장하고 핸드폰을 돌려줬다.
"꼭 연락 줘. 알겠지?"
"…네."
"고마워, 강우야. 공부 열심히 해."
정미옥은 그렇게 부탁하고 차에 올라탔다. 백미러에 강우가 보였다. 그 자리에 서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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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던 정미옥에게 갑자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담임 선생님이었다.
‘무슨 일이시지?’
정미옥은 회사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인사를 채 건네기도 전에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님, 저 민호 담임입니다! 지금 얼른 병원으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구급차 타고 OO병원으로 가고 있는데, 어머님도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민호가요? 구급차요?”
“같은 반 친구가 민호를 창문 밖으로 밀어서요. 지금 민호가…“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어디 병원이라고요? 지금 바로 갈게요!”
정미옥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사무실로 돌아가 차키를 챙기고 주차장으로 뛰었다.
민호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왜 미리 알아봐주지 못했을까. 왜 이 사태까지 오게 놔두었을까. 민호는 왜 자신에게 힘든 상황을 말해주지 않았을까. 그동안 자신이 민호에게 얼마나 못했으면.
'괜찮겠지. 괜찮아야 해.'
병원까지는 차로 1시간 거리였다. 운전하는 내내 그 말만 되풀이했다. 앞차가 출발하지 않을 때마다 경적을 눌렀다. 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한 번, 바뀌고 나서 또 한 번.
운전하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문자를 남겼다.
[ 민호가 학교에서 떨어졌대. OO병원에서 수술. 빨리 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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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옥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민호는 이미 수술실에 들어가 있었다. 머리를 크게 다쳐 수술은 오래 걸릴 거라고 했다. 의사가 뭔가를 더 설명했는데, 절반쯤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수술실 앞에서 정미옥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담임 선생님과 한 학생이었다.
처음엔 몰랐다. 그냥 같은 반 학생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는 그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정미옥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맞아떨어졌다.
‘이 애가 왜 여기에…'
선생님은 아직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지만, 정미옥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 학생이 민호를 창문에서 밀었다는 것을.
“너, 너는!
정미옥의 목소리가 떨렸다.
“너, 너. 너였구나! 그동안 우리 민호를 계속 괴롭히던 게! 왜 우리 민호 밀었어! 어떡할 거야!”
“…”
강우는 정미옥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선생님은 알고 계셨어요? 민호가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거 말이에요!”
저렇게 못생기고, 말라 비틀어진 녀석이 감히 우리 아들을? 정미옥은 강우를 노려봤다.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어머니… 민호가 학교폭력을 당하던 건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애들한테 관심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거겠죠! 분명 계속 괴롭힘을 당하던 흔적이 있었는데, 내가 미처 몰라보고… 저 새끼가 우리 아들을…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담임 선생이 정미옥의 말을 끊으며 대변했다.
“오히려 강우가! 그동안 민호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해왔습니다. 아까 사고가 난 이후에야 알게 된 거지만, 학생들 진술도 다 일관되고요. 강우가 그동안 당하기만 하다가, 이번에 참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강우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였다. 낡아빠진 패딩 주머니 속에서 손을 꽉 쥐고 있었다.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이.
“아니야! 당신이 뭘 안다고! 학생한테 관심이 얼마나 없으면 이 지경까지 오냐고! 야, 너 부모 어딨어. 니 부모 면상 좀 보자! 고개 좀 들어봐! 어디 너 같은 새끼가 우리 민호한테.”
“어머님…”
담임 선생이 강우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정미옥을 제지하며 말했다.
“강우는 부모님이 안 계십니다…”
저런 냄새 나는 새끼. 저딴 새끼가 우리 아들을? 우리 아들은 피해자다.
만약 우리 아들이 괴롭혔다고 해도, 저런 새끼는 당해도 싸다. 우리 아들은 너 같은 새끼와는 다르다.
남편은 곧 올 것이다. 저 애를 반쯤 죽여놓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