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괴담] 당신들은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찬성했습니까?
그날 내가 그 강당에 앉아있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자, 거절하지 못한 부탁 때문이었다.
본래 심사를 맡기로 했던 교수가 급성 맹장염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주최 측은 토론 시작 30분 전에 급하게 대타를 구해야 했다.
나는 마침 그 대학 근처 카페에서 빈둥빈둥대며 있었고, 주최 측의 간사인 내 대학 후배는 내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형, 그냥 앉아만 있으면 돼요. 채점표에 숫자만 적어주면 된다니까요. 결승이라 학생들 수준이 높아서 형이 듣기에도 심심하진 않을 거예요."
후배는 내 손에 미지근한 생수 한 병과 심사위원 명패를 쥐여주고는 무대 뒤로 사라졌다.
나는 엉겁결에 강당 맨 앞줄, 중앙 심사위원석에 앉게 되었다.
강당은 꽤 컸다.
500석 규모의 객석은 각 학교에서 응원을 온 학생들과 학부모들로 꽉 차 있었지만, 기이할 정도로 조용했다.
웅성거림조차 없는 침묵.
그것이 이 대회의 권위를 증명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긴장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내 양옆에는 이미 다른 심사위원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왼쪽은 교육청 장학사라는 중년 여성, 오른쪽은 지역 신문사 논설위원이라는 노신사였다.
우리는 가볍게 눈인사만 나누었다.
그들은 몹시 피곤해 보였거나, 혹은 이 상황에 지나치게 익숙해 보였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부터 제24회 전국 고교생 시사 토론 대회 결승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양측 토론자들은 입장해주십시오."
무대 왼쪽과 오른쪽에서 각각 세 명의 학생이 걸어 나왔다.
교복은 단정했고, 표정은 비장했다.
긍정 측은 S고등학교, 부정 측은 H고등학교였다.
아이들은 훈련받은 병사들처럼 각 잡힌 동작으로 자리에 앉아 서류 뭉치를 정리했다.
나는 심사 기준표를 내려다보았다.
논리성 30점, 전달력 30점, 반박의 적절성 20점, 태도 20점.
흔한 기준이었다.
그리고 맨 위에 [논제]라고 적힌 칸이 있었다.
그런데 그 칸이 비어 있었다.
인쇄 오류인가 싶어 고개를 들어 스크린을 보았다.
무대 중앙의 대형 스크린에는 거대한 파란색 바탕화면에 흰색 고딕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 논제 : 본 의회는 이것을 즉각 시행해야 한다. ]
이것.
'이것'이라니.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스크린을 다시 보았다.
혹시 '이것'이 지칭하는 바가 이전에 공지되었거나, 내가 늦게 도착해서 놓친 문맥이 있는 것일까?
나는 조심스럽게 오른쪽의 논설위원에게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
"저, 위원님. 죄송하지만 제가 급하게 오느라... 오늘 논제의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겁니까? 탄소세 도입인가요? 아니면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설위원은 안경 너머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탁했고, 내 질문의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권태로움이 묻어 있었다.
"논제에 적힌 그대로입니다, 위원님. '이것'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내용이..."
"쉿, 입론 시작합니다."
그는 내 말을 자르고는 정면을 응시했다.
사회자가 긍정 측 제1 발언자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S고등학교의 남학생이 단상으로 나왔다.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낭랑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긍정 측 첫 번째 발언자입니다. 저희는 '이것'을 즉각 시행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현대 사회는 불확실성의 시대입니다.
데이터는 넘쳐나지만, 결단은 부족합니다.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가 겪은 세 번의 구조적 정체 현상은 바로 '이것'의 부재에서 기인했습니다."
나는 볼펜을 든 채 멍하니 학생을 바라보았다.
서론은 훌륭했다.
문장은 매끄러웠고 발성은 완벽했다.
하지만 내용은 공허했다.
'이것'이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은 채, 그는 '이것'의 필요성만을 역설하고 있었다.
"통계청의 2023년 자료에 따르면, 시행하지 않았을 때의 사회적 비용은 연간 4조 원에 육박합니다. 반면, '이것'을 시행했을 때 발생하는 초기 비용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않습니다. 비용 편익 분석에서도 명백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비용? 무슨 편익? 어떤 정책이길래 4조 원이나 든다는 건가?
나는 답답함에 목이 탔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았다.
객석의 청중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하고 있었다.
왼쪽의 장학사는 '논리적 타당성' 항목에 높은 점수를 매기고 있었다.
내가 이상한 것인가?
'이것'이라는 대명사가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있는 것인가? 예를 들어 최근 이슈가 된 법안의 별칭이 '이것'인가?
긍정 측의 입론이 끝나고, 부정 측 H고등학교의 여학생이 반론을 위해 나왔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부정 측이라면 당연히 개념을 정의하고 공격할 테니까.
"긍정 측 잘 들었습니다. 4조 원의 사회적 비용을 언급하셨는데, 이는 '이것'이 가진 비가역성을 간과한 수치입니다."
여학생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우리는 '이것'을 시행한 뒤에 벌어질 윤리적 딜레마에 주목해야 합니다. 시행된 이후에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과 직결된다는 점을 긍정 측은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습니다."
나는 볼펜을 떨어뜨릴 뻔했다.
부정 측마저 '이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투명한 조각상을 가운데 두고, 그 조각상의 그림자에 대해서만 격렬하게 토론하는 사람들 같았다.
"하지만!"
긍정 측이 반박했다.
"존엄성은 생존이 보장된 이후의 문제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유보함으로써 고통받는 계층이 있습니다. 3분기 지표를 보십시오. 하위 20%의 곡선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습니다. '이것'만이 유일한 반등의 기회입니다."
"그 반등이 거품이라면요? 만약 시행 결과가 시뮬레이션 모델 B와 같다면, 그 책임을 누가 집니까? 정부입니까? 아니면 긍정 측이 말하는 '사회적 합의'입니까?"
토론은 점입가경으로 치달았다.
학생들의 얼굴은 상기되었고, 목소리에는 열기가 더해졌다.
그들은 각종 논문, 통계, 전문가의 견해를 인용했다.
"하버드 대학교의 샌델 교수도 지적했듯이..."
"KDI 보고서 14페이지를 보면..."
인용은 구체적인데, 대상은 없었다.
문법적으로는 완벽한 한국어였지만, 의미론적으로는 거대한 블랙홀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것은 고도의 언어 게임인가? 아니면 나만 모르는 전국적인 은어인가?
나는 심사표를 작성할 수 없었다.
'이것'이 원자력 발전소 증설이라면 긍정 측의 논리가 타당했지만, '이것'이 안락사 합법화라면 부정 측의 윤리적 지적이 더 적절했다.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논리의 정합성이 완전히 달라지는데, 어떻게 심사를 한단 말인가?
그때였다.
긍정 측 두 번째 발언자가 감정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심사위원 여러분, 그리고 청중 여러분. 우리는 언제까지 망설여야 합니까? 제 친구의 아버지는 작년에 '이것'이 시행되지 않아서... 결국..."
학생은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객석에서 낮은 탄식과 훌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내 옆의 장학사도 눈시울을 붉히며 휴지를 꺼냈다.
도대체 친구의 아버지는 왜? 수술을 못 받은 건가? 파산을 한 건가? 아니면 재개발 구역에서 쫓겨난 건가?
나는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 집단적인 슬픔과 분노, 그리고 열광.
이 모든 감정이 '빈칸'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그들은 빈칸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각자가 보고 싶은 것을 빈칸에 투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정말로 '이것'을 알고 있는데, 나만 인지 능력의 일부가 거세된 것일 수도 있다.
자유 토론 시간이 되었다.
분위기는 더욱 과열되었다.
"그럼 긍정 측은 부작용으로 발생할 '소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겁니까?"
"방음벽 설치 예산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음이 물리적인 소리만을 의미합니까? 사회적 소음은요?"
"그건 궤변입니다. 지금 중요한 건 속도입니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다 죽습니다!"
다 죽는다고? 무엇이? 우리가?
나는 참다못해 손을 들었다.
심사위원이 토론 중에 개입하는 것은 금기였지만,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내 행동에 장내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학생들은 놀란 토끼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사회자가 당황하며 나를 보았다.
"저... 심사위원님? 무슨 문제라도...?"
나는 마이크를 켰다.
내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웅웅거렸다.
"잠깐만요. 학생들의 열의는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하나만 명확히 합시다. 지금 양측이 정의하는 '이것'의 범위가 서로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싶군요.
긍정 측, 학생이 생각하는 '이것'의 정의를 한 문장으로 말해보세요."
정적.
완벽한 정적이 흘렀다.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만이 윙윙거렸다.
긍정 측 학생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당황함? 아니다.
그것은 공포였다.
마치 금기어를 말하라고 강요받은 사람처럼, 그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심사위원님... 그건..."
그때, 오른쪽의 논설위원이 내 팔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그의 악력은 노인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셌다.
"이봐요,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그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학생을 시험하지 마세요. 다들 알고 있는 걸 왜 굳이 입 밖으로 꺼내서 '확정' 지으려 합니까?"
"확정이라니요? 토론에서 용어의 정의는 기본 아닙니까?"
"정의하는 순간,"
논설위원의 눈이 내 눈을 똑바로 파고들었다.
"그것은 책임이 됩니다. 아무도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이것'이라고 부르며 토론하는 겁니다. 합의된 절차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나는 그의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압도적인 분위기에 눌려 마이크를 껐다.
사회자는 서둘러 토론을 재개시켰다.
"네, 심사위원님의 날카로운 지적 감사합니다. 양측은 개념의 모호성을 줄이고 논리를 강화해주시기 바랍니다. 계속하세요."
토론은 다시 흘러갔다.
하지만 분위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학생들은 더 이상 구체적인 수치나 사례를 들지 않았다.
대신 더욱 추상적이고, 더욱 관념적인 단어들로 문장을 채워나갔다.
"본질적인 가치는..."
"시대적 소명이..."
"우주적 질서의 회복이..."
말은 유려하게 흐르지만, 내용은 점점 희박해져 갔다.
마치 공기 중에 흩어지는 연기처럼.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용이 사라질수록 청중들의 반응은 더욱 뜨거워졌다.
그들은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였고, 누군가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들은 아무 의미 없는 소리의 나열에서 거대한 진리를 발견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소름 끼치는 가설 하나를 떠올렸다.
이곳에 있는 누구도 '이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학생들도, 심사위원들도, 청중들도.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고 말할 수 없다.
모른다고 말하는 순간, 자신이 이 거대하고 진지한 시스템에서 탈락한 낙오자,
혹은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취급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가 아는 척 연기를 하고, 그 연기에 맞춰 상대방도 연기를 하고, 그것이 쌓여 거대한 가상의 탑을 쌓아 올린 것이다.
아니면, 정말로 '이것'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만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되는 어떤 금기인가?
논설위원이 말한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토론이 끝났다.
최후 발언까지 마친 학생들은 탈진한 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이제 투표의 시간이었다.
심사위원들은 각자 점수를 합산하고 승패를 결정해야 했다.
내 양옆의 위원들은 거침없이 펜을 놀렸다.
나는 백지상태인 채점표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이것'은 시행될 수도 있고 폐기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만약 '이것'이 누군가를 해치는 일이라면? 반대로 누군가를 구하는 일이라면?
"심사위원님, 빨리 제출하세요. 집계해야 합니다."
진행 요원이 내 옆에서 재촉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볼펜을 쥐었다.
긍정? 부정? 논리? 감성?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나는 결국 기권표를 던질 생각으로 점수 칸을 비워두고 서명란에 이름만 적으려 했다.
그 순간, 긍정 측 학생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그 아이는 입모양으로 나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제발.'
간절함. 살려달라는 듯한 눈빛.
그것은 승리를 갈구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이것'이 시행되어야만 자신들이 살 수 있다는, 혹은 이 연극이 끝나야만 살 수 있다는 절박함이었다.
반대로 부정 측 학생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경고였다. '이것'을 허용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경고.
나는 숨이 막혔다.
이 선택은 단순한 토론 대회의 승패가 아니다.
나는 지금 알 수 없는 세계의 트리거 위에 손가락을 얹고 있다.
"심사위원님!"
재촉하는 소리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펜이 가는 대로, 거의 무의식적으로 한쪽 편의 점수란에 체크를 했다.
긍정인지 부정인지 나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종이를 뒤집어 건넸다.
사회자가 집계 결과를 받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제24회 전국 고교생 시사 토론 대회, 영예의 우승팀은..."
그가 결과를 발표하는 순간, 강당 안의 모든 공기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환호성은 없었다.
대신 안도의 한숨과 깊은 절망의 탄식이 뒤섞인 기묘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누가 이겼는지 듣지 못했다.
귀에서 삐- 하는 이명이 들렸기 때문이다.
대회가 끝나고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나는 도망치듯 강당을 나왔다.
건물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후배가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형! 수고했어요. 어때요? 요즘 애들 말 잘하죠?"
후배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물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야, 너 오늘 논제가 뭐였는지 아냐?"
"네? 당연히 알죠. 팜플렛에 쓰여 있잖아요."
후배가 팜플렛을 건넸다.
나는 급하게 그것을 펼쳤다.
[ 논제 : 본 의회는 이것을 즉각 시행해야 한다. ]
여전히 똑같았다.
"그래, 그러니까 '이것'이 뭐냐고."
"아, 형도 참. 농담도."
후배는 시동을 걸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이것'이잖아요. 형도 잘 아는거 아닌가? 우리가 늘 고민하는 그거."
후배는 엑셀을 밟았다.
차가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창밖을 보았다.
거리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건물들, 간판들.
갑자기 세상 모든 것이 낯설게 보였다.
저 사람들은 '이것'을 알고 있을까?
저들은 '이것'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까?
아니면, 우리 모두는 그저 거대한 빈칸을 중심에 두고,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척하며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오늘 내가 던진 표가, 내일부터 이 세상에 '이것'을 시행하게 만들었다는 사실만이 명백했다.
그리고 나는 내일 아침 뉴스를 보는 것이 두려워졌다.
앵커가 무표정한 얼굴로 "오늘부터 '이것'이 전면 시행됩니다."라고 말할 때, 나는 고개를 끄덕여야 할지 비명을 질러야 할지 알 수 없을 테니까.
차는 어둠 속으로, '이것'으로 가득 찬 세상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