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그날의 복지관
00동 00복지관에서 있었던 일이 아주 기묘하다. 별안간 어마어마한 화재가 일어나 그 커다란 복지관이 먼지 한톨 없이 전소되는 것도 신기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화재 속에서 티끌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 남은 이 5살 상훈이라는 아이가 유독 신경쓰인다.
뭐랄까. 단순한 형사의 감이라고 해야하나. 거기에 있는 직원들과 공익 근무자. 그리고 봉사하러 왔던 사람들이 빠짐 없이 새까맣게 타서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는데 이 아이는 어째서 무사한걸까.
아이의 부모가 들으면 굉장히 섭할 말이겠지만.. 참, 이 아이는 가족이 없다. 아주 묘하게도 전에 아이가 머물던 집 역시 화마에 휩싸였고 거기서 가족들 모두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 모든게 한달 사이로 일어났다. 정말로 이상하지 않은가.
“선배 뭐하고 계세요.”
올해 들어온 신입 형사가 내게 다가왔다. 김창수. 이제 곧 30에 접어든 녀석은 국가대표로 활동하다가 특채로 합격되어 내 밑으로 들어온 놈인데 꽤나 에이스 노릇을 하고 있다.
“그냥.. 왜?”
“반장님이 잠수타라고 하시는데요?”
“뭐, 발바리인가 발바닥인가 그 새끼 잡으라고?”
내 말에 창수는 대답하기 어렵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발바리. 최근 들어 이 동네에서 여성들 상대로 성폭행을 일삼는 아주 악질인 놈이다. 벌써 신고 접수된게 수차례라서 이 놈을 잡아야 우리가 반장에게 바가지를 덜 긁힌다.
“쩝.. 가자.”
일어나기전 책상 위에 놓여진 커피를 들이키고서 기지개를 켠다. 움직이기 전에 근육들에게 신호를 줘야 담에 걸리지 않는다. 소싯적에는 그래도 이정도까진 아니었는데..
“그나저나 그 사진은 뭐에요?”
궁금한 얼굴로 내게 다가온 창수. 난 대수롭지 않게 그것을 녀석에게 건넸다.
“왠.. 아이 사진입니까? 선배님 혹시..”
“그런거 아니야. 새꺄. 너 이 사건 모르냐? 지금 이 일대에서 아주 떠들썩한데.”
“..전 요새 발바리놈에 대해 좀 공부 하느라..”
“쯔쯔. 요즘 놈들은 그냥 아주 이론에만..”
“에헤~ 선배 또 그 버릇 나오시네. 그러면 인기 없어요.”
눈을 가늘게 뜨며 검지 손가락을 양쪽으로 흔드는 창수 녀석의 머리를 가볍게 때린 후 서에서 나왔다. 한쪽 구석에 방치되듯이 오래된 세단 차량에 몸을 싣고서 하던 얘기를 계속 했다.
“요번에 아주 큰 화재 있었잖아. 00복지관.”
“아~ 알죠.”
“거기서 어린애만 살아 남았어.”
내 말에 창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예? 그럼 좋은일 아닌가요? 왜 그런 표정을 지으세요.”
“좋은일인데 뒤가 구려.”
“무슨 말씀이신지.. 잘. 하하..”
“잘 봐.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 아이만 살아 남았어. 이번에도 그 아이만 유독 멀쩡해 그 커다란 화염 속에서 말야. 기도 화상도 입지 않았다구.”
내 말에 창수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듯 되받았다.
“거기에 뭐 구조용품이라도 있었나보죠. 요즘에 그런거 다 되어 있잖아요.”
“뭐 그런게 있다쳐. 근데 그걸 사용한 흔적이 없다는거야. 게다가 그 많은 사람들이 어째서 그 한 방에서 있었냐는거지. 보통 그런 상황이면 나가려고 발버둥 쳤을텐데 말야.”
“..포인트가 뭡니까.”
“그 아이 뭔가 있다.”
내 말에 창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녀석은 묵묵히 운전을 하다 잠복지에 주차를 하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선배. 그런걸 기적이라고 하는거에요. 예?”
“넌 새꺄. 기적이랑 뒤가 구린거랑 구분 못하냐.”
“참나.. 그 어린애가 뭘 할줄 안다고 그러세요. 몇 살인데요.”
“5살.”
“5살이면 한참 젖 먹을 나이지 원.. 선배도 그런거에 일일이 신경 쓰시니까 동료보다 진급 못하는거 아니에요.”
“야! 그 얘기가 왜 나와?!”
역린을 건드린 댓가를 후하게 치러야한다. 양팔 소매를 걷으며 놈을 노려보자 창수가 몸을 숙이며 말했다.
“떴어요. 떴어.”
그 말에 난 강제적으로 몸을 숙이며 밖을 살펴야 했다. 우선은 팀을 위해 공을 세워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달 실적이 다른 팀에 비해 현저히 떨어져 반장의 심기가 이만저만이 아닌 상태다. 이거라도 해내야 아침 회의 때 얼굴이라도 들수가 있다.
발바리. 170cm 의 호리한 체구를 가진 놈이다. 얼굴은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피해 여성들의 토대로 옷차림이나 그 특유의 휘적거리는 걸음걸이가 놈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얘기해 주고 있었다.
어두운 골목길 안 발바리는 빠르게 걸음을 걸으며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사냥감을 찾는건가.. 나와 창수는 무언의 눈빛을 교환 후 그 타이밍을 잡기 위해 조금 숨을 죽이기로 했다. 덫을 놓아 볼까. 그것을 잽싸게 무는지 안무는지..
우리의 차량을 지나쳐간 발바리는 곧 한 골목으로 들어가는 여성을 보자마자 기계적으로 멈춰섰고 몸을 숙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사냥을 앞두기 전 맹수의 그것과도 같았다. 타이밍은 지금이다. 얘기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와야 놈도 당황할 것이다.
나와 창수는 긴 시간동안 맞춰온 파트너쉽을 발휘해 동시에 차문을 열었고 곧 발바리에게 달려들었다.
“허억!”
대경한 얼굴로 뛰어가기 시작하는 발바리. 하지만 창수 녀석의 피지컬은 발바리의 다리를 훨씬 상회했다. 마치 바람 같은 속도로 발바리의 발목을 강하게 쳐내 중심을 잃게 하는데 성공한 창수의 공격. 곧 발바리는 짧은 단발마를 외치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럼 마무리는 내가 하면 된다. 바로 미란다의 원칙을 천천히 읆어주며 수갑으로 발바리의 손목을 단단히 채운다.
“후.. 생각보다 쉽네.”
이번엔 운이 좋았다. 다른 동료들도 잠복하다가 놓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닌 발바리였다. 인정하긴 싫지만 창수의 젊은 피는 과연 다르긴 했다.
“선배. 저 잘했죠?”
그렇게 말하며 애교 있게 웃어보이는 창수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워주며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축을 하며 탄산 음료 하나씩 사들고 서로 돌아오니 반장과 다른 형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반장님. 오셨습니까.”
내 말에 반장은 시큰둥한 얼굴로 대강 손을 흔들었다. 매번 같은 태도지만 뒤에 데려온 발바리를 보면 그것도 달라질거라는 기대감에 반장에게 다가가며 발바리를 가리켰다.
“잡았어요. 이새끼.”
내 말에 반장은 뚱한 얼굴로 보더니 말했다.
“일단 조사해봐야 하니까 유치장에 둬.”
“..예.”
이상하다 평소의 반장이 아니다. 이 뭐라 말할 수 없는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는 뭐란 말인가. 발바리를 대강 유치장에 넣은 뒤 반장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험.. 험.”
몇 번 헛기침을 한 반장은 곧 우리를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아.. 이번에 좀 큰게 터졌다.”
“....”
큰거라는 말에 모두가 수군거렸다. 경찰 인생이 길진 않았지만 큰거라는 단어를 사용할 땐 정말 소화하기 힘든 일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거기에 몇 번 데인 팀원들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 이번에 집단으로 자살을 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
“특이한게 뭐냐면 그.. 몸에 죄다 손바닥 모양의 화상 자국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화상 자국요?”
“일단 정확한 부검결과를 기다려야겠지만 정황상 그렇다. 지금 청장님도 거기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계시니까 이런 큰 건일수록 우리가 따내야 한다. 니들도 진급해야할거 아냐. 나도 좀 반장에서 졸업좀 하고.”
그 정도로 큰건인가. 어지간해서는 반장들을 진급시켜주지 않기로 유명한 우리 청장인데?
“우선 피해자들 이동 정보 따는거부터 시작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털끝 하나도 놓치지 마. 수첩에 다 적어가면서 모레까지 조사해오도록. 그리고 파일로 만들어서 모레 저녁에 발표하면서 정리한다. 이상.”
그렇게 말하며 빠르게 걸어나가는 반장.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팀원들. 나와 창수 그리고 다른 두 명의 팀원들은 조금 멍한 얼굴로 빠르게 빠져나가는 팀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 발바리 잡아왔는데 이게 뭡니까. 오늘 회식하나 했더만..”
창수의 말에 다른 팀원이 혀를 찼다.
“그보다 더 큰 물에서 놀아야지 임마. 기껏 추행범 잡았다고 니 커리어가 올라가냐. 선배 우리도 가죠.”
“..그래.”
절레 저어가며 말했다.
“혹시 이런 말을 들으면 제가 미친놈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요.”
그 말이 이토록 반갑게 들리던 적이 있었던가? 살짝 웃음이 새어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답했다.
“괜찮습니다. 저도 미친놈이거든요.”
내 말에 소방관은 약간 놀란 눈치였지만 곧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사실.. 00소방서의 대원들이 모두 죽어나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게 참.. 미묘해서 말이죠.”
“그 사건이라면.. 저희 팀이 지금 다루고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사실 여기에 온것도..”
나는 차분하게 소방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한참 이야기를 듣던 중 소방관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형사님도 제 생각과 같군요.”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내며 말하는 소방관. 우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목적은 상훈이라는 꼬마 아이다. 이건 과학적으로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기이한 일임은 분명하겠지만 어째서 그 꼬마 아이와 엮이고 관련된 사람들이 죽어나갔는지도 궁금했다.
“설마 우리도 죽어나가는건 아니겠죠?”
농담 삼아 그렇게 뱉은 말에 소방관은 말 없이 파이프를 쥐고 앞으로 걸어갔다. 어두운 병원 복도. 얼마전만해도 중앙 부분 데스크에 환한 불빛이 보였지만 지금은 그 빛도 사라져 매우 어두웠다.
보통 병원에는 불이 꺼져도 바닥이나 장애물을 식별할 수 있게 지시등 같은 것을 켜두기 마련인데 여기엔 그것도 없었다. 대신 우리들은 어둠 속에서 익숙해진 시야를 발판삼아 한걸음씩 내딛기로 했다.
저벅. 저벅.
어둠 속에서 울려퍼지는 우리의 발소리. 그리고 목적지에 다다르기까지 묘한 압박감이 점차 거세져만 갔다. 그렇게 식은 땀을 훔치며 걸어가는데 돌연 병실 문들이 하나하나 열리기 시작했다.
드르륵. 드륵.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었다. 순간 위험하다는 신호가 척추를 타고 전신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모습을 드러낸 환자들은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나와 소방관은 무거운 공기를 잔뜩 들이키며 그들을 가만히 주시했다. 아무래도 호랑이 굴에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았다.
“준비됐어요?”
내 말에 소방관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환자들의 고개가 들렸고 그들은 야수와 같은 울음 소리를 내며 우리들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선택지가 없었다. 최소한의 인원에게 공격을 가하며 길을 뚫는 것으로 이곳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왠지 이곳에서 한시라도 지체되면 왠지 이들처럼 변해버려 영영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크으!”
환자들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정신 없이 길을 뚫으며 전신에 가해지는 충격에 이를 악물고 있을 때였다.
“큭큭큭.”
소란스러운 현장에서도 유독 그 웃음소리가 달팽이관을 자극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우리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그마한 체구의 인영 하나가 우리를 보며 웃고 있는게 보였다. 상훈이었다. 분명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눈빛이며 풍기는 아우라가 그것이 인간의 범주를 훨씬 벗어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제길.. 제기랄!”
당장이라도 그 악마에게 다가가 모든걸 퍼부어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는 현실이 분했다. 정말 간신히 소방관과 힘을 함쳐 비상 계단까지 이동할 수 있었던 우리들은 황급히 계단으로 대피해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허억.. 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불이 꺼진 커다란 병원을 보던 나와 소방관은 얼른 차에 올라타 무작정 앞으로 달려나갔다.
**
다음 날 아침. 소방관이 나를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그는 심각한 얼굴로 티비를 보고 있었다. 졸린 눈을 부비며 긴급속보라는 타이틀의 뉴스를 가만히 보니 어제 우리들이 있었던 그 병원이 틀림 없었다.
[어제 4층에 있던 환자들에 의해 병원이 소실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인명 피해가 있었으며 현재 생존자를 파악하는 중에 있습니다. 경찰은 아직 직접적인 원일을 찾지 못했다고 하며..]
“후우..”
꿈이 아니었다. 어제의 그 홀린 환자들이며 악마의 모습은..
“참. 저는 이석훈입니다.”
“아..”
워낙 정신이 없던 터라 소개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석훈씨 이제 어쩌죠?”
“..그게.”
그렇게 말한 석훈은 옆구리 살을 내게 보여줬다. 그리곤 거기엔 잊혀지지 않을 손바닥 자국이 깊게 패여져 있었다.
“이, 이게 왜? 석훈씨 설마?”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실 어제 형사님이 오기 전까지만해도 그 꼬마아이가 있던 병실에 있었거든요. 마침 지키는 사람들이 없어서 기회다 싶었는데 형사님 발소리를 듣고 나온게..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젠장.”
어제 나로 인해 석훈의 계획이 틀어진 것이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저 손바닥 자국이 의미하는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우리 두 사람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게 남은 시간은 아마 없을겁니다. 그러니 마지막 가는길 뭐라도 하고 가겠습니다.”
“하지만 그 악마가.. 어디있는지 어떻게 알아요.”
“느껴져요. 그냥.”
그렇게 말하며 나갈 채비를 하는 석훈을 홀로 보낼 수 없었다. 서둘러 그의 뒤를 뒤따르며 ‘도와주겠다.’ 라고 말하니 그는 서글픈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했다.
**
대강 배를 채운 우리들은 어제의 병원으로 이동했다. 석훈은 아직 그 병원에 악마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미 병원은 전부 소실되어 원래의 형태와 색을 잃어버렸지만 겉으로 풍기는 불길한 기운은 어제보다도 더 강해져 있었다.
“저기서 대체 뭘 하려는거지.”
“..글쎄요. 그게 중요한게 아니니까요.”
우리는 차분히 기다리기로 했다. 아직은 낮이라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단은 해가 지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해 보여 우리는 주변의 지형이나 왕래하는 사람들의 틈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모았다.
그리고 서서히 해도 지고 사람들이 슬슬 빠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칠흑 같은 어둠만이 병원을 잠식하려 할 때 우린 서서히 움직이기로 했다.
“잠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우린 돌처럼 굳어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가만히 바라보았고, 거기에는 40대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우리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말했다.
“이거.. 이거 가지고 가세요.”
“이게 뭡니까?”
석훈의 질문에 여자는 슬픈 눈으로 답했다.
“그게.. 도움이 될겁니다. 악마로부터 당분간 몸을 숨겨줄거에요. 유효시간이 길지 않으니 꼭 필요할 때만 쓰세요.”
“..예?”
우리가 반신반의 하며 노랑색의 부적을 가만히 보자 여자가 말했다.
“내 아들도 저 악마에게 목숨을 빼앗겼어요. 그러니 당신들에게 미력하나마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부디..”
그렇게 말하는 여자를 가마히 보았다. 아무래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아 나는 다른 질문을 했다.
“저 악마를 물리치려면 어떻게 해야하죠?”
“일단 육신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게 되면 악마는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럼 다른 그릇을 찾아 갈수도 있고 그냥 사라질수도 있죠.”
“..네? 악마는 못죽이나요?”
내 말에 여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악마는 죽일 수 있는게 아닙니다. 우리들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하질 못해요.”
“그럼 어째서 저 꼬마에게 깃들어 있는거죠?”
“단순한 재미죠. 악마에겐 그저 재미있는 놀이일 뿐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여자는 왔던 곳으로 돌아가버렸다. 우린 손에 쥐어진 부적을 꽉 쥐고서 병원으로 이동했다.
“석훈씨.. 그 아이한테 공격할 수 있겠어?”
“사활이 걸린 문제에요.”
그것으로 우리의 대화는 끝이었다. 우린 병원 내부에 잠입했다. 예상대로 사람들의 흔적이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매캐하다 못해 역겨운 냄새와 온통 불에 그을린 자국들이 병원 내부에 가득했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2층을 지나 3층. 4층을 지나 옥상에 오르니 정 가운데에 아직 남은 사람들과 작은 인영 하나가 섞여 있는게 보였다. 그들은 몸을 흔들거리며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그게 정확히 무슨 말인지 들리지가 않았다.
우린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필코 임무를 완수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뒤 그들에게 섞여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 사람. 두 사람의 곁을 지날때마다 느껴지는 더럽고 꺼림칙한 기분에 당장이라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내게 남겨진 실낱 같은 사명감이 내 몸을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헤쳐나가며 정 가운데에 악마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어린 모습을 한 악마는 연신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무언가를 먹고 있는 듯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때맞춰 반대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석훈씨는 한 손에 들린 파이프를 내게 내밀었다.
나 역시 한손에 들린 망치를 내밀며 천천히 악마에게 다가갔다.
“큭큭큭.”
순간 들려오는 웃음 소리에 발이 멈춘 우리들은 그대로 악마를 바라보았다. ‘큭큭.’ 웃음을 흘리며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거리는 것으로 보아 아직 우리들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후..”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석훈씨와 동시에 악마에게 달려드려는 찰나 돌연 엄청난 타격이 내 몸에서 일어났다.
퍼억-
옆구리에 깊게 박힌 듯한 무거운 타격에 난 그대로 바닥에 처박히듯 쓰러졌고 고개를 들어보니 석훈씨가 나를 보며 이를 악물고 있었다.
“어, 어째서?”
“이.. 이번 한번만 도와주면 살려주겠다고 했어요. 미, 미안해요.”
저 짧은 찰나에 딜을 순식간에 끝낸건가? 아까 그 아줌마가 건넨 부적은 전혀 효과가 없는거였나?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오가며 홧김에 부적을 찢어버리자 석훈과 다른 존재들이 나를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사용법을 터득한 나는 빠르게 악마에게 다가갔다. 망치를 들고 악마의 머리를 향해 휘두르는 찰나 악마의 신형이 급하게 내 쪽으로 쏠렸다.
“냄새가 나..”
그렇게 말하며 검은 색의 안광을 빛내는 악마의 모습에 난 반쯤 질려버렸다. 거칠게 악마를 떼어내고 다시 망치를 고쳐 잡은 나는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존재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직 시간은 유효하다. 그럼 어떻게..?
철컥-
그때 옥상의 문이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손들어!”
반장의 목소리였다. 어떻게 여길 알고 찾아온건지 여러 가지 묻고 싶었지만 지금 내게 천군만마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곧이 곧대로 들을 존재들이 아니었다.
“햐아악!”
야수의 울음 소리를 내뱉으며 그대로 반장 팀에게 달려들기 시작하는 존재들. 반장 팀들은 잠시 허둥거리더니 이내 총을 격발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존재들이 보였고 가운데에는 작은 악마가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아마 이게 마지막 찬스일 것이다. 서둘러 악마에게 달려가는데 석훈의 존재가 돌연 내 앞에 다가왔다. 그를 온전히 따돌릴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내게는 뒤를 봐주는 팀이 있었다. 한 걸음씩 크게 내딛으며 석훈에게 달려들어 그를 넘어뜨리고는 바로 악마에게 다가가려는데
“그만 둬!”
어느새 존재들을 모두 정리한 반장 팀들이 내게 총을 겨눴다.
“반장님! 왜.. 어째서?”
“보면 몰라? 너 지금 어린애를 죽이려 하고 있어. 제정신이냐?”
“..이게 어째서 어린애입니까? 얘는 악마라구요. 악마!”
답답한 마음에 발악하듯 소리를 질렀지만 반장은 무덤덤한 얼굴로 총구를 들었다. 그리곤 들리는 악마의 웃음소리.
“이래서 어린애를 먹는게 편하다니까.”
그렇게 말하며 순간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한 악마. 그 정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는 차마 망치를 내려 놓을 수 없었다.
“김영호! 야, 이 새꺄. 너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고 있는거 잘 알고 있어. 그러니까 그거 내려놔. 내려 놓고 말해.”
“..반장님 이 모습에 속아선 안됩니다.”
“두 번 말 안한다. 너 그거 내려놔.”
“여기서 제가 멈추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 겁니다.”
내 말에 반장의 눈은 결단을 한 듯 총구를 내게 보이듯이 흔들었다.
“하나.”
“반장님..”
“둘.”
“여기서 제가 멈추면..!”
“셋!”
“으아아아!”
마지막 사력을 다해 악마에게 달려들은 나는 간과 하고 있던 석훈에게 그것을 저지다했고 이어지는 충격에 그대로 바닥에 누워야만 했다.
**
“..고생했네.”
경찰청장은 보고서를 읽은 뒤 사무적인 어투로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곧 이 사건을 해결한 김반장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감사합니다!”
김반장은 악수를 하며 앞으로 있을 승진에 대해 달콤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청장은 그런 그를 보며 의아한 듯 되물었다.
“자네.. 그 목쪽에 화상자국은 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