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도저히 방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문이 잠긴 것은 아니다.
문이 막혀 있는 것도 아니다.
당연히 문이 아예 사라져 버린 것도 아니며, 문은 멀쩡하게 제 위치에 있다.
그러나 방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휴일답게 낮잠이나 늘어지게 잘 생각이었다.
내가 불성실한 성격은 절대 아니지만, 전역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사람이라면 게으름을 좀 피워도 되는 법이다.
나는 작은 방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이 방은 베란다의 창고 공간을 리모델링해 만들었다.
추울까 봐 두껍게 시공한 단열재 덕분인지, 방에 들어와 있으면 온 세상으로부터 떨어진 듯이 조용하다.
그 잡음 하나 들어오지 않는 일종의 폐쇄성이 나름 중독적이었다.
특히 낮잠을 잔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푹 자게 되는 최고의 장소이다.
금방 잠에서 깼던가, 허기가 졌다.
지난번에 사둔 간식거리가 남아 있었을 것이다.
나는 비몽사몽 한 채로 부엌에 가서 간식을 꺼내 먹고 다시 이불에 드러눕는다.
곧 다시 일어난다.
여전히 배가 고프다.
손바닥만 한 빵을 두 개나 먹고 왔던 것 같은데.
아니, 도넛이었던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고리를 쥔 채로 나는 잠시간 내가 밖에 나가서 무엇을 했는지를 떠올려 본다.
간식을 입에 넣어 배를 채우는 아주 일상적인 장면은 머릿속에서 멀쩡하게 재생이 된다.
다만 내가 방을 나가는 모습을 떠올릴 수가 없다.
이상하다.
문고리에 힘을 주어 아래로 당긴다.
문을 열고 방 밖으로 나가 간식을 먹고 오려고 한다.
돌아오니 슬슬 졸려서 다시 잠에 든다.
이상하지 않다.
다시 방 밖으로 나가 화장실에 가려고 해 본다.
개운하게 방으로 돌아온다.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문에 기대앉은 채로, 아무런 이상 없이 지극히 일상적이라는 신호를 보내오는 본능을 무시한 채로, 골똘히 고민해 본다.
지금 배가 고픈가?
그렇다.
이상하다.
설마 아직 꿈속이기라도 할까 괜히 볼을 한 번 꼬집어 보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떠올린다.
그중 간단한 방법을 바로 실천한다.
휴대폰을 꺼내 스톱워치를 켜고, 반대쪽 손으론 문고리를 잡는다.
시작 버튼을 누르는 동시에 문을 열고 나갈 것이다.
정말로 간식을 먹고 왔다면 최소 몇 분은 지나 있겠지.
하나, 둘, 셋…… 일곱. 아니, 문 열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다시. …… 여덟, 이런, 내가 이렇게 박자감이 없던가.
다시, 이번에는 정말 하나를 세자마자 나가는 것이다.
하나, 여섯, 일곱. 그리고 나는 엄지로 정지 버튼을 꾹 누른다.
휴대폰을 들고 있지 않은 반대쪽 손을 본다.
손바닥으로 문을 밀어 닫고 있다.
찰칵.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힌다.
방금 뛴 듯이 숨이 약간 가쁘다.
심호흡을 하며 떠올리려고 한다.
떠올릴 수 없다.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방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정확히는,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을 떠올릴 수조차 없다.
방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사실보다 더욱 기묘한 것은, 명백한 이상 속에서도 아무 일 없다는 듯한 감각이다.
내 감각은 나른한 오후를 보내는 휴학생의 그것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다.
몇 번을 봐서 익숙한 광고가 넘어가길 기다리는 기분, 약간 식은 집밥을 데워 먹을 때의 기분.
억지로나마 이성을 채찍질해 본다.
스톱워치는 고작 몇 초만의 공백을 보여줬다.
간식을 먹기 위해 부엌까지 가긴커녕 기껏해야 문 앞에서 돌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방 밖으로 나갈 때마다 방 앞의 무언가가 내 뇌를 헤집어 기억을 지우기라도 한다는 것일까.
까끌까끌한 머리를 더듬어 본다.
물론 수술 자국 따윈 없으며, 실밥 조각 같은 흔적 하나 찾지 못한다.
원인을 추측하려 할수록 잘못된 길에 접어드는 느낌이다.
하는 수 없이 다른 불길한 가정들은 잠깐 미뤄둔다.
당장 원인을 찾을 수 없다면 새로운 탈출구라도 고안해 봐야 할 것이다.
아쉽게도 이 방엔 창문이 없다.
있었어도 몸을 빼기엔 충분히 크지 않았을 것이다.
벽을 부숴볼까 잠깐 생각했지만, 연장도 없이 굶어 죽기 전에 벽을 뚫어낼 자신은 없다.
저 문을 통하지 않고 나갈 방법은 없다.
어쩔 수 없이 문을 통해 나가는 것을 한 번 더 시도해 보기로 한다.
내 기억을 확실히 믿지 못하게 되었으니, 어딘가 기록이라도 남길 필요가 있겠다.
마침 바닥엔 쓰다 만 달력이 뜯겨 있다.
뒷면에는 낙서가 조금 있어서 그것을 지우고 문장을 써낸다.
우선 나가려고 하지 않고 문만 열어볼 것.
다 적은 뒤에야 난 깨닫는다.
방금 적은 문장 위에 같은 문장이 하나 더 있었다.
또다시 기억이 잘려 나간 뒤 이질감 하나 없이 자연스럽게 용접되었다.
그렇다면 방금의 시도에서, 문을 열어놓는 것도 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아주 조금의 틈만.
기껏해야 손가락 하나 정도 나갈 공간만큼만 열어보기로 한다.
달력에 다시 계획을 적는다.
무의식적으로 지워버리지 못하게, 빨간 색연필로 최대한 크게 적는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문고리를 쥔다.
힘을 주어 당기되, 아주 조금만.
긴장 때문인지 심박 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 불길한 북소리의 횟수를 세어 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내 참지 못하고 문을 쾅 닫아버린다.
도저히 문을 열어둘 수가 없다.
문의 바로 앞에서 견딜 수 없는 불길함이 전해져 온다.
머릿속에서, 본능 깊은 곳에서 말하는 것만 같다.
저것을 이성 아래 두려는 시도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속삭여온다.
자연스럽게 덧붙여진 기억이 최소한의 배려였음을 속삭여 온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의 무심함을 꾸며내 머릿속 깊은 구석에 덮어 두는 것뿐이다.
단단한 울타리를 세운다.
넘어와선 안 되는 것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제대로 작동하질 않는 일말의 이성이라도 지켜낼 수 있도록.
이성이 점점 갉아 먹히는 것 같다.
방 밖으로 나갈 방법을 떠올릴수록, 문밖의 장애물을 떨쳐낼 방법을 떠올릴수록 울타리가 흔들려버린다.
문 앞의 그것을 제대로 마주한다면 어떻게 돼버릴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은 채 꼼짝없이 갇혀 굶어 죽는 결말만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배는 점점 고파오고, 판단은 흐려져 간다.
이번이 가능한 마지막 시도일지도 모른다.
약간은 무모하고 멍청한 방법 하나를 떠올린다.
문 바깥의 것을 인지하려는 시도가 불가능하다면, 아예 모든 감각을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
눈을 꽉 감고, 귀에는 귀마개를 꽂고.
이불과 옷을 피부에 몇 겹으로 감은 채로.
집 안의 구조는 익숙하니, 어떻게든 현관 밖으로 전속력으로 달려 나간다.
우스운 꼴이겠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잠깐의 시간이라도 벌 수 있다면.
그래서 어떻게든 집 밖으로 나간다면.
더 나은 수단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떠올릴 여력도, 의지도 남아 있지 않다.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바로 실행에 옮긴다.
겉옷을 대충 벗어서 구석에 뭉쳐 둔 과거의 나를 욕하며, 팔과 다리, 목, 머리에 옷을 감싼다.
테이프를 붙여 단단히 고정한다.
옷이 잘 둘러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거울을 본다.
먼지가 자꾸 눈을 찔러 앞이 잘 안 보인다.
먼지가 아니다.
손으로 잡아당겨 본다.
내 앞머리이다.
무척 길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숨이 약간 가쁘다.
울타리가 터질 것만 같다.
울타리 안쪽에 너무 많은 것을 욱여넣어 왔다.
왜 다른 사람에게 연락할 생각도, 도움을 구할 생각도 하지 않아 왔는지.
작은 창문이 있던 반대쪽 벽은 왜 테이프로 덕지덕지 덮어 놓았는지.
빨간 펜으로 달력에 표시해 놓은 날짜는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오른쪽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움은 무엇 때문인지.
내 뱃속을 채우고 있는 게 무엇인지.
연약한 울타리를 위해 나는 더는 궁금해하지 않을 생각이다.
맨바닥에 누워버린다.
게으름을 좀 피워도 괜찮을 것이다.
이 방의 세상에서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나는 좋아한다.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다행히 아직은 배가 그리 고프지 않다.
아직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