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어느 날, 내 주변에서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나도 정확히 모른다.
어쩌면 점진적으로, 눈에 띄지 않게 아주 천천히, 상황은 진작에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마치 10년 된 컴퓨터가 어제까지 멀쩡하게 돌아가다가, 오늘 갑자기 푸른 화면만 반복해서 띄우는 그런 상황.
돌이켜 보면 가끔씩 화면이 버벅거리는 등 이상 징후가 있었지만, 나라는 무딘 인간은 그것을 미처 적신호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오랜 과거에서부터 발원한 일이며, 단지 내가 둔감하여 이제서야 눈치챈 것이다.
아니면, 그저 한순간에 강림한 재앙일 수도 있다.
경보 없이 들이닥치는 거대한 해일과도 같이, 해안가의 부표처럼 떠도는 내 삶 위로, 그것은 갑작스레 몸집을 커다랗게 부풀리며 덮쳐온 것이다.
그 와중에 나는 허우적거리며 필사적으로 내가 무엇을 놓쳤나 찾아 헤매고 있지만, 본디 자연재해란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불청객이다.
그러니 이것은 내 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시작된 일이며, 나는 그저 전조 없는 폭풍우를 맞닥뜨린 것이다.
둘 중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이 정답이어도 상관없다. 지금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래, 당장 중요한 것은 사건은 이미 터졌고, 나는 거센 물살에 휩쓸렸으며, 서둘러 내 몸부터 건져 올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나는 사건의 시작점과 원인뿐만 아니라 해결 방법 또한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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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사무실, 텅 빈 옆자리를 지그시 응시했다.
"강민철 과장님은 어디 가셨죠?"
"글쎄요. 화장실이라도 간 거 아닐까요?"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사무실 내에 분명 존재했던 옆자리의 동료는 한여름 밤의 꿈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조퇴를 한 것도 아니고, 카톡 방에 일언반구 메시지도 없었다.
아무도 그가 문을 열고 나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기이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 입술 위에 검지를 얹고 쉿.
누구도 이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 무언의 압박에 짓눌려 더는 따져 묻지 못했다.
그저 사무실 분위기를 따라 업무에만 몰두했다.
사라진 강민철 과장이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약 2시간 정도가 지난 뒤였다.
그는 조금 전 행색 그대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에 앉아 일을 하기 시작했다.
물어보고 싶은 질문은 많았지만, 다들 한마디의 말도 꺼내지 않았기에 나 또한 그렇게 했다.
그러던 와중 갑자기 지독한 악취가 코끝을 찔러왔다.
음식물 썩은 내 혹은 비릿한 쇠 냄새와 닮은 아주 고약한 냄새.
악취는 옆자리의 강민철 과장한테서 나고 있었다.
악취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자칫 말을 잘못했다가는 얼굴을 붉히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만 맡을 수 있는 냄새는 아닐 테니, 다른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끝내 내가 바라던 상황은 오지 않았다.
퇴근 시간에 다다르도록 누구 하나 이야기를 꺼내지를 않은 것이다.
나는 눈동자를 굴려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서는 사람들의 면면을 훑었다.
그들의 안색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해 보였다.
뭘까. 왜 다들 아무렇지도 않아 하지. 이렇게나 악취가 풍기는데.
저들도 나처럼 겉으로 내색하지 않을 뿐, 불편하고 귀찮은 일을 남에게 떠넘기는 중일까.
그러다 마침내 시선이 벽걸이 시계에 가닿았다. 시곗바늘은 어느새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 나도 퇴근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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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회사로 출근하기 위해 현관문을 여는 순간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들고 있는 앞집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의 얼굴만 알 뿐 대화도 나눠본 적 없어 이름조차 모르는, 딱 그 정도 사이, 딱 그 정도 관계.
우리는 가벼운 목례를 주고받은 뒤 입술을 굳게 닫고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여기서부터는 상대방에게 시선을 두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배려이므로, 남자는 거울을 향해, 나는 손에 들린 휴대폰을 향해 눈동자를 고정했다.
띵-.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음을 알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올리는 순간 무언가 허전하다고 느껴졌다.
두리번거리자 바로 이유를 찾아냈다.
앞집 남자가 사라졌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그가 존재했던 마지막 흔적, 시뻘건 국물이 담긴 비닐봉지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상황이 이해가 안 갔다.
그가 갑자기 증발했다면 손에 든 봉지는 바닥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충격으로 내용물이 넘쳐흘렀어야 정상인데, 정작 바닥은 깨끗했다.
그렇다고 내가 휴대폰에 몰두하는 사이 내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늘 그의 외출 목적은 누가 봐도 저 봉지였고, 저것을 남겨두고 중간에서 내릴 이유 따윈 생각이 안 나니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은 재촉하듯 닫히기 시작했고, 나는 열림 버튼을 연타한 뒤 재빨리 밖으로 빠져나왔다.
돌아본 순간, 좁아지는 문틈 사이로 보인다.
여전히 지독한 악취를 풍기고 있는 음식물 쓰레기 봉지가.
쿠웅-.
이윽고 그것은 내 시야에서 자취를 감춘다.
계단 쪽을 쳐다보며 앞집 남자를 찾아 움직여볼까 하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손목시계의 시곗바늘이 나를 재촉했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다간 지각한다.
출근해야 한다.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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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회사 사무실.
현재 사무실 내부에는 나랑 강민철 과장 둘밖에 없다.
그와 나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출근을 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어··· 강민철 과장님······."
그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건가요?"
내 말에 그는 넋 나간 사람처럼 입을 헤 벌렸다.
그리고 죽은 생선 같은 눈깔로, 머리를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이고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까딱거린다.
방금 들은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제스처.
"아니······ 그, 오늘 행사가 있다든가,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이 아니라든가, 뭔가 들으신 바가 있나요······."
그는 내 거듭된 질문에도 초점 없는 눈으로 다시 한번 고개만 까닥, 그걸로 끝.
답답해서 속이 탔다. 동시에 이 사람한테 더 물어봐도 뭔가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다면 해답을 다른 쪽에서 찾아보자.
이번에는 회사 카톡 방에 메시지를 남기고 다른 직원들한테 직접 전화까지 걸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 메시지를 읽지도,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상황이 이쯤 되니 답답함을 넘어서 미치도록 불쾌했다.
이게 대체 뭐지. 몰래카메라인가. 아니면 혹시 저 멀리 바다 건너에서 들여온 신종 이지메 방법 중 하나인가.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나. 동료들의 증오를 살 정도로.
깊게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한다 하여도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나는 체념했고,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업무를 시작했다.
그나마 유일한 위안거리는 강민철 과장이 더 이상 악취를 풍기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이후 우리는 한마디의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그리고 퇴근 시간이 될 때까지 누구도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8시간 동안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절여졌다. 정말로, 오후 6시가 이토록 반가웠던 적은 손에 꼽을 것이다. 드디어 해방이다.
그는 오늘 잔업이 있기에 나만 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먼저 퇴근해 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과장님."
뻘쭘하게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 인사를 받아주지도 않고 모니터 화면만 응시하는 강민철을 보고 있자니, 그가 오늘 하루 동안 내 말에 단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조금 화가 났다.
문득, 머릿속에 어떤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고, 큰 용기를 내어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딸각-.
밖으로 나가기 전, 사무실의 불을 꺼버렸다.
강민철 과장은 여기서 어떤 행동을 할까.
일하고 있는데 불을 왜 끄냐며 호통을 치고 꾸짖을까.
아니면 이전처럼 불쾌한 표정으로 말없이 째려볼까.
그러나 이어진 그의 행동은 둘 다 아니었다.
그는 내게 화를 내지 않았다. 나를 향해 돌아보지도 않았다.
타닥. 타닥. 타다닥.
여전히 목소리는 없었다. 차디찬 적막 속에서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만이 울렸다. 그는 차가운 기계처럼 어둠 속에서 빛나는 네모난 창만을 응시했다.
그 광경이 소름 돋을 만치 섬뜩했고, 나는 도망치듯 사무실을 뛰쳐나와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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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로비에 도착하자, 그래도 나의 보금자리로 돌아와서 그런지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괴상한 하루였다. 정말로.
빨리 집으로 들어가서 쉬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내가 사는 층으로 향하던 와중.
쿵. 쿵. 쿵.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아주 작게,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갈수록 점차 거세게.
뭘까. 어디서 공사라도 하는 걸까. 그런 안내문은 못 봤는데.
쿵-. 쿵-. 쿵-.
마침내 16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소리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복도에는 아침에 사라졌던 앞집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사는 1602호 현관문에 이마를 부딪히고 있었다.
쿵-. 부딪혀서 뒤로 튕겨져 나와 땅에 나자빠졌다가 일어선 뒤, 마치 그곳에 문이 없는 것처럼 뚜벅뚜벅 망설임 없이 걸어가서 다시 한번 더 쿵-.
저게 뭐 하는 짓이지.
그는 옆에 서 있는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하던 짓을 반복했다.
쿵-. 쿵-. 쿵-.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고 있자니, 지독한 냄새가 훅 치고 들어왔다. 아주 익숙한, 아침에 맡았던 음식물 쓰레기 냄새랑 똑같은 악취.
더는 이곳에 서 있고 싶지도 않았고, 그와 엮여서는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빠르게 도어록 비밀번호를 입력해 문을 열고 집안으로 숨어들었다.
뭘까. 저 사람. 원래 저런 사람이었나.
이곳에 꽤 오래 살았지만 앞집 남자가 저러는 모습은 처음 본다.
쿵-. 쿵-. 쿵-.
문을 닫고 들어와도 소리는 계속 들렸다.
······.
계속 저러고 있으면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 아니다. 이런 사소한 일로 경찰을 부르는 건 조금 그럴지도. 먼저 경비실에 연락해 볼까.
그리 생각하며 거실로 향하던 발걸음은 우뚝 멈춰 섰다.
어째선지 어슴푸레 밝아야 할 창밖이 너무 어둡게 느껴졌다. 아직 저녁 7시밖에 안됐는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았다.
쿵-. 쿵-. 쿵-.
새까맣게 칠해진 수십 개의 창문들을.
맞은편 아파트의 불빛이 전부 꺼져 있었다.
고작 7시다. 상식적으로 불이 전부 꺼질 시간이 아니다. 그리고 설령 새벽녘이라 하더라도 한두 집 정도는 불이 켜져 있는 게 정상이다.
혹시 정전인 건가. 그렇다기엔 아파트 로비 쪽에는 불이 들어오고 있는 게 보이는데.
정확히 확인해 보고 싶었다. 나는 경비실에 전화를 걸었고, 현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잠시 후 답변이 돌아왔다.
"예, 직접 확인해 봤는데, 그냥 잠자느라 불을 끈 거라 하는데요? 아무튼 아파트 로비 센서 등도 정상이고, 복도 불도 들어오고 있고, 정전은 아닙니다."
"그래도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이 시간에 다들 잠을 자는 건?"
"그렇긴 한데, 그 사람들한테 깨어 있으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
쿵-. 쿵-. 쿵-.
통화는 그렇게 종료됐다.
자택 내 취침의 자유, 반론 자체가 불가능한 완전무결의 논리,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반박하지 못했다'와 '받아들인다'는 다르다.
눈앞의 상황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차라리 도망칠까. 현관문을 박차고, 집 밖으로 나가, 어디든 좋으니 멀리.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쿵-. 쿵-. 쿵-.
문 앞에서 연신 울려 퍼지는 소리가 나를 가로막는다.
경비실에 연락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방금의 좌절이 떠올랐다. 그들은 아마도, 이 문제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갈 곳 없는 발걸음은 동동 구르다 침실로 향한다.
쿵-. 쿵-. 쿵-.
침대에 누워 이불을 목덜미까지 끌어당긴다.
쿵-. 쿵-. 쿵-.
부디 이 밤이 빠르게 지나가기를 소망하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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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거대한 기계장치다. 개인이라는 톱니바퀴가 하나쯤 빠져버려도 아무런 문제 없이 굴러가는 정교하고 튼튼한 기계장치.
하지만 개인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지정된 위치에서 이탈한 부속품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면 필사즉생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탈한 채로 지내는 것은 그보다도 더욱 고되다.
그러한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나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최근 들어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에 몰두하거나 파고들지 못했다.
그리하여 오늘도 정장의 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넥타이를 꽉 조여매고는 출근길에 나선다.
끼이익-.
"······."
현관문을 반쯤 열다 멈췄다.
앞집 문 앞에 마네킹이 뉘어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저것이 시체인 줄 알고 놀랐다.
검붉은 액체를 뒤집어쓴 마네킹.
이제는 찐득하게 눌어붙어, 그 원액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검은 자국들.
이상하다. 일반적인 가정집에서 가지고 있을 만한 물건은 아니다.
게다가 익숙한 냄새가 났다. 아주아주 지독하면서도 낯익은 악취가.
나는 마네킹 앞에 쪼그려 앉아 코를 파묻고 킁킁거렸다.
그것은 그날 오후 강민철 과장에게서 나던, 그리고 어제 앞집 남자에게서 나던 냄새와 똑같았다.
삐리릭-.
갑작스레 도어록 소리가 울려 퍼지며 문이 열렸다.
커다란 종량제 봉투를 손에 들고 현관에 서 있는 앞집 남자가 보였다. 그는 싸늘한 눈동자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혹은 살의가 담긴 듯한, 커다란 동공, 새까만 심연.
봉투에는 음식물 쓰레기도 같이 처박아뒀는지, 아래에 새빨간 핏물 같은 국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아니······ 그게··· 저···."
당황스럽다. 뭐라 말해야 할까. 뭐라 변명해야 할까. 마네킹을 집 앞에 놓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 냄새를 맡고 있는 것 또한 만만치 않게 이상하다. 내 행위의 정당성을 그에게 설명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이라 해야 할까. 변론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나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탑승했고, 곧 내 앞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회사로 향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타지 않았다.
혹여 그와 다시 마주칠까 봐, 출근 시간에 조금 늦는 걸 감수하면서 나는 계단을 통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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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으로 내려가지 말 걸. 한 끗 차이로 전철을 놓쳤다. 지각이다. 지각.
사무실 문고리를 잡아당긴 순간, 나를 제외한 모든 직원들이 자리에 착석해 있는 것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약간 안심했다. 어제 비워져 있던 자리들이 모두 채워져 있어가지고.
다들 돌아왔구나. 사라진 게 아니었구나.
"······."
고개 숙이고 대답을 기다렸다. '다음부터 늦지 마세요.' 혹은 '어쩌다 이렇게 늦은 거예요?' 따위의 질책을.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어떠한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리자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때, 강민철 과장이 내 의자를 뒤로 빼주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자리에 앉으라는 제스처.
뭐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이라,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정확히는 하려고 했다.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얼굴로 화악 치고 들어오는 무언가.
몹시 지독하고 토악질이 나올 만큼 불쾌한 냄새.
일전에 강민철과 앞집 남자에게서 맡았던 그것이다.
참고 앉으려고 해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해도, 악취는 이전보다 몇 배는 짙어서, 도저히 참기가 힘들어서, 그래서.
"저기···. 사무실에서 이상한 냄새 나지 않아요?"
내게서 막 흩어지려던 시선들이, 다시금 나를 향해 쏟아진다.
"그······. 문을 열어 환기라도 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그들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미동조차 하지 않는 입꼬리, 동그랗게 커진 동공, 마치 마네킹처럼.
저렇게 컸었나. 사람 눈동자의 검은자위가 저렇게 컸었나. 아니면 압박감 때문에 커 보이는 건가.
그들과 눈을 마주하고 있자니 그 시커먼 어둠 속으로 내가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더는 버티지 못했다. 항복하고 먼저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대로 있다가는 계속되는 침묵과 차가운 시선들 속에서 질식해 죽을 것만 같았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연차 처리해 주세요."
그렇게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회사를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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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면 마음이 편해질 거라 생각했건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째깍거리는 시곗바늘을 보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시침이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내 가슴은 더욱 초조해졌다.
그러다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창밖이 어슴푸레하게 물들 때쯤.
눈동자가 맞은편 아파트로 향했다.
오늘도 저 아파트의 창문은 전부 새까말까.
째깍째깍. 마침내 7시가 된 순간, 창밖이 밝아진다.
나는 환희했다. 환희했다가 다시 절망했다.
맞은편 아파트에 불빛이 들어왔다. 그것도 모든 창문의 불이 동시에.
단 한 집도 빠짐없이 밝은 빛을 내뿜고 있는 창문들.
커튼 너머에서 그림자로 화하여 움직이는 사람들.
어느 누구는 꽃에 물을 주고 있었다.
어느 누구는 기지개를 켜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어느 누구는 소파 위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나는 바로 경비실에 전화를 걸어 눈앞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잠시 뒤, 답변이 돌아왔다.
"예, 저도 확인해 봤는데,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잖아요? 자기 집에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도 있는 거죠······. 불을 언제 켜고 끄고···. 그런 거까지 뭐라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
이전과 마찬가지로 반박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오늘만큼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경찰에 연락해 봤다.
"선생님, 장난 전화 걸지 마세요."
휴대폰을 쥔 채로 멍하니 창밖을 응시했다.
커튼 너머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실루엣들.
하나하나가 일상적이고, 사람다운 움직임이었으나, 그 모든 것이 지나치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옷을 쟁여 입고 현관으로 향했다.
신발을 신고 문고리를 잡아돌리려는 그 순간.
기우라고 해야 하나,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무언가 문 앞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확신감.
그것에 이끌려 투시경에 눈을 붙였다. 그리고 간신히, 소리 지르는 것을 참았다.
앞집 남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서 눈동자만 끔뻑거린다.
············.
나는 조용히 신발을 벗었다.
소리 죽인 발걸음은 침실로 향했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정수리 끝까지 끌어올려 덮었다.
부디 이 밤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도하며 눈을 감았다.
---
귀를 찌르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그 자세 그대로 한동안 가만히 눈만 끔벅였다.
장담컨대 살면서 오늘만큼 상체가 무겁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다.
일어나고 싶지 않다.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
고작 사흘이다. 사흘.
이 모든 일이 휘몰아친 시간은 기껏해야 3일 남짓.
압도적인 시간의 밀도, 폭압적인 사건의 농도.
도저히 견디기가 힘들었다. 침대 위에 나자빠져 도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삶의 관성이란 실로 대단한 힘을 지녀서, 나는 기어코 돌덩이 같은 몸을 일으켜 세워 평소처럼 화장실로 향했다.
쏴아아아-.
찬물로 세수를 하자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온다.
······뭘 어쩌자는 건데.
만약, 내 걱정이 사실이라면 집에 틀어박힌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나는 영웅도, 천재도 아닌 평범한 소시민이다.
사건의 해결은 언제나 비범한 이들의 몫이니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출근을 하지 않으면 회사에서는 반드시 잘리게 될 테고,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이자 단순한 나의 착각이었을 뿐이라면, 직장을 잃어버린 내 일상은 개박살이 난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긴 하다. 정말로 무언가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면 뉴스는, 인터넷은, 다른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잠잠한 건가. 세상이 이토록 고요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 어쩌면 전부 별거 아닌 일인데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일지도 모른다.
딱히 내게 위해가 가해진 적도 없지 않나. 지금도 내 몸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다.
진실이 무엇인지, 한번 가정해 보자.
강민철 과장이, 그리고 회사 사람들이 그랬던 것은 순전히 나를 골려주기 위해서이다.
내가 그들에게 딱히 잘못한 것은 없지만, 사람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저 내가 만만하여, 아무 이유도 없이 샌드백 삼아 짓궂은 장난을 친 거다.
앞집 남자는 어쩌면 정신이 조금 아픈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가 갑자기 중간에서 내리거나, 자기 집 문에 머리를 박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문 앞에 버려놓은 마네킹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고 있었으니, 저쪽도 당연히 나를 미친놈이라 생각했을 거다.
그래서 어제 내 집 앞에 서 있었던 거다. 그 일에 대해 따져 묻기 위해서, 단지 나처럼 소심했던 그는 끝내 초인종을 누르지 못하고 되돌아간 거다.
그리고 저녁에 모든 층의 불이 꺼진 아파트, 모든 층의 불이 동시에 켜지며 커튼 너머 넘실거리던 실루엣들은······.
그건···. 그건······. 그건·········.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거다···.
살다 보면 사람은 피곤한 날이 있는 거고, 일찍 집에 들어오는 날이 있는 법이니···.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그렇게 된 것이다.
"후우······."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다.
그래, 이게 맞다. 받아들이자.
순응하고 따르는 법만큼은 학교에서, 군대에서, 사회에서 질리도록 배웠으니까. 그것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이 상황을 그저 평범하게 받아들이자.
손끝으로 넥타이를 꽉 조여맸다.
이제 출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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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열었을 때, 문 앞에는 마네킹도, 앞집 남자도, 악취도 없었다.
묘하게 안심이 됐다.
아파트 로비를 나서는 순간, 카톡이 울렸다.
강민철 과장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오늘은 정상적으로 출근해 주세요.'
고작 그 메시지 하나에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어쩌면, 정말로, 전부 내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그럴 것이다. 내 착각이 맞을 것이다.
출근길 지하철은 언제나처럼 북적였다.
운 좋게도 때마침 빈 좌석이 있었고, 그곳에 앉아 조용히 생각했다.
따지지 말자고.
사무실로 돌아가면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묻지 말자고.
혹시라도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냥 내 가슴속에서 삭히자고.
그러던 와중 갑자기 눈꺼풀이 천근만근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제야 생각난다.
아, 어젯밤 나는 두려움에 떠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구나.
긴장이 조금 풀려서일까?
더는 감기는 눈동자를 제어하기 힘들었다.
잠깐만, 아주 잠깐만 잠을 자자······.
······.
컴컴한 어둠 속에서, 귓가로 '이번 역은······.'이라는 안내 문구가 희미하게 파고들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올리며 눈을 떴다.
설마 잠깐 조는 사이 내가 내려야 할 역을 놓친 건가?
확인해 보니 이번 역이 내가 내려야 할 역이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지각은 면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
지하철 칸 안에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
그럴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 칸에 탑승한 사람들은 다들 이전 역에서 내려야 할 사람들이라 내렸을 뿐이다.
현재 이 전철도 정상 운행 중이지 않나. 기관사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결코 나 혼자가 아니다.
마침 지하철이 멈춰 서고 문이 열렸다. 나는 서둘러 역에 내렸고, 그리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출퇴근 시간, 그 어느 때보다 북적어야 할 승강장 내에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철컹-. 철컹-.
전철이 내는 둔탁한 소음이 아스라이 멀어져 간다.
곧, 승강장은 완전한 침묵에 잠긴다.
내 발은 땅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았다.
받아들이려 해도, 어떻게든 평범하게 받아들이려고 해도, 눈앞의 세상이 너무나도 비정형적인 모습이라, 그것이 나라는 틀에는 도저히 끼워 맞춰지지를 않아서.
그럼에도 후들거리는 다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무릎을 손으로 짚으며, 어떻게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 화재경보기가 울린 것이다.
그것이 경보기의 오작동이든, 아니면 누군가의 악질적인 장난이 됐든, 그래서 실제로 불이 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대피한 것이다.
그래, 이것이 맞다. 이것이 현실적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나는 간신히, 무너지지 않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내 발은 여전히 땅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고 있다.
왜? 어째서? 가야 하는데, 회사로 가야 하는데, 이제는 움직여야 하는데, 마치 돌덩이가 짓누르고 있는 듯, 발은 조금도 들어 올려지지 않았다.
답을 찾으려는 듯 주위를 둘러보던 순간, 저 멀리서 조그맣게 보이는 계단에 시선이 고정된다.
지상으로 이어지는 출구, 내 발걸음이 향해야 할 곳, 저 너머에 있을 사람들······.
아······.
그렇구나.
만약에, 정말 만약에, 내가 저 계단을 올라 지상 위에 도착하는 순간, 나를 맞이해주는 것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인파, 자동차의 바퀴 소리가 아니라면.
그때 나를 맞이해주는 것이 텅 빈 거리를 나뒹구는 낙엽과 쓰레기들, 공허한 바람의 울림뿐이라면.
나는 비로소 완전히 무너져 내릴 테니까. 그것만큼은 도저히 현실로서 받아들일 자신이 없으니까.
············.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모르겠다.
이것이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벌어진 일인 건지.
아니면 정말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는 건지.
저 계단 너머에는 사람들이 존재할까?
만약, 모두가 사라진 거라면 그들은 어디로 간 걸까?
그들은 여태껏 그러했듯, 다시 되돌아올까?
그렇게 되돌아온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그 사이에서, 나는 과연 어제와 같이 무사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다.
나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내 발은 여전히 땅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