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좀 태워줄래요?
어릴때 달동네 판자촌에 살았다.
가난했거든...
판자촌이다 보니 옆 집 뒷 집 일상이 우리집에 다 생중계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특히 뒷집은 ....
그집 아저씨는 술꾼이었고 만취하면 아줌마를 때렸다.
"이 괴물같은 년아. 역겨운 쌍판 치워"
아줌마는 화재로 얼굴 반이 흉칙한 상처 투성이었고 아저씨는 그걸 욕하며 때렸다.
그러다 결국 큰 사고가 났다.
그날 늦은 밤이었는데 경찰과 구급대원이 동네에 쫙 깔렸었다.
뒷집 아줌마가 계단에서 굴러 전신마비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밤에 아줌마가 발을 헛딛었다고 했는데 몇몇 사람들은 만취한 아저씨한테 맞아서 굴렀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결국은 아줌마의 실족으로 처리되었다.
분명 누군가 신고로 아줌마가 맞는것 같다고 했지만 증거가 없었고 아줌마도 입을 다물기만 했다.
아줌마는 얼마 뒤 돌아가셨다. 아줌마와 친했던 우리 엄마도 그때 엄청 우셨고, 아저씨에게 욕을 하기도 했지만 아저씨는 여전히 술에 취해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년이 지났을 때 우린 그 동네를 떠났다.
이사를 가는 날 수정이 아줌마가 우리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잘 살고, 자주 놀러와."
수정이 아줌마는 우리 옆집에서 살았고 엄마와 거의 친자매처럼 지냈다.
이사 후 우린 달동네의 기억을 점점 잊어갔다.
그러다 10년 정도가 흘렀을 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수정이 아줌마였다.
"언니 축하해요. 고생하며 그렇게 버티더니 드디어 빛을 보네."
"빛은 무슨... 그 돈으로 어디 가서 아파트 한 채도 못사."
"어유 그래도 4억이 어디에요. 그 동네 집 4천 준다고 해도 안 팔렸을텐데..."
"하긴 그건 그래."
사연인즉, 우리 옛 동네가 재개발이 되어 수정이 아줌마가 비싼 값에 집을 팔았다는 것이다.
아줌마는 하루 자고 갔다.
그날 밤 난 아줌마와 엄마가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양씨 그 미친 인간 이야기는 모르지?"
"양씨요? 그 미친 인간 아직도 거기 살아요?"
"말도 마. 그 인간 때문에 동네 조용할 날이 없었어. 집에 귀신이 나온다고 술 먹고 난리난리를 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냐."
"난 아직도 그 인간 이야기 들으면 심장이 벌렁거려요. 영미 죽고, 화장해서 그 유골을 이불 밑에 깔고 잤다잖아요. 그런 미친놈이 어딨어요."
"그래 맞아 분명 영미도 그놈 때문에 계단에서 넘어졌을거야. 근데 그런 놈이 이번에 한몫 제대로 챙겨 이사갔잖아. 고생은 영미가 다 했는데..."
"에휴... 세상 참 불공평하지..."
두 분은 뒷집 아저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나와 언니는 우리가 살던 옛 동네를 찾아가게 된다.
재개발로 철거되기 전 마지막으로 옛 추억을 되새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곳으로 간다니까 엄마가 말했다.
"야 가는 김에 수정이 아줌마 집에 들러봐. 거기 부엌 찬장 위에 보면 앨범 하나 있다더라. 이사 나올때 잊고 와서 다시 가지러 갈거라던데 너네가 가는 김에 가져와."
"네"
우린 그렇게 옛날 달동네로 갔고, 새삼 어린날의 추억에 잠겨 감회가 새로웠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 우린 엄마의 미션을 수행했다.
수정이 아줌마 집 부엌에서 앨범 하나를 찾아 가져왔다.
그리고 차에 올라 출발하려는 순간....
갑자기 언니가 내게 말했다.
"어? 저분 저기서 뭐하시지?"
언니가 가리킨 곳은 어느 집의 담벼락 아래였다.
거기엔 젊은 여자 한 명이 서성이고 있었다.
"저기.. 어디 찾으세요? 여기 철거해서 아무도 없을텐데..."
우리가 묻자 그녀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좀 태워줄래요?"
"네?"
우린 당황했다.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태워달라니까.
그녀가 말했다.
"남편집을 찾아가야 하는데 남편이 혼자 가버렸어요."
뭔가 이상한 말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때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고 언니와 난 측은지심에 결국 그녀를 차에 태웠다.
"어디로 가세요?"
"천호동요..."
"다행히 우리가 가는 경로네요. 거기 내려다 드리면 되죠?"
"네"
우린 그녀를 태우고 출발했다.
가는 동안 언니와 난 계속 눈짓을 주고 받았다. 뒷좌석의 그녀가 아무래도 이상했으니까.
더군다나 그녀는 차에 탄 이후에 말이 없었다. 가끔 내가 뭔가 물어도 묵묵부답이었다.
그렇게 천호동에 도착했고 그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인사를 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순간 난 뭔가 잘못 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면 그녀가 이렇게 말했으니까.
"잘가... 만나서 반가웠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난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들었어?"
"뭘?"
"아까 마지막에... 그분이 갑자기 반말을..."
"그래? 난 모르겠는데..."
언니는 내가 잘못 들은게 아니냐고 했다.
"근데 언니. 그분 어째 좀 낯이 익지 않았어?"
"뭐가?"
"아니.... 뭔가 우리가 아는 사람 같은..."
난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언니는 크게 신경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날 밤 우린 수정이 아줌마의 앨범을 보며 옛 추억에 잠겨 웃고 울었다.
앨범 속에는 우리 식구의 모습도 많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리운 그 달동네의 전경와 그곳의 사람들까지도...
"어머어머... 너 어릴때 모습 봐라. 어쩜 이렇게 귀엽니..."
"지금은 안 귀엽다 이 말이야?"
"아 우리집 푸세식 화장실... 진짜 여기 냄새 장난 아니었는데... 하하...."
"화장실 뿐이냐? 비만 오면 양동이 가져다가 빗물 받던 기억 안나? 지붕에 빵구나서..."
"그래 그랬지. 그래도 그때가 참 재밌었는데..."
우리 식구는 추억에 잠겨 즐거워했다.
그때 언니가 문득 사진 한 장을 보며 엄마에게 물었다.
"근데 엄마? 이분은 누구셔?"
"누구?"
"여기 엄마랑 수정이 아줌마 옆에 계신분..."
그 사진은 엄마의 젊었을때 모습 같았다.
수정이 아줌마도 엄마도 이십대 초반의 아가씨...
그런데 젊은 한 분이 더 계셨다.
눈이 크고 맑으며 피부가 곱고 흰 젊은 여인.
엄마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너네 모르겠구나. 저 아줌마가 바로 영미 아줌마잖아."
"영미 아줌마?"
언니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난 바로 기억해냈다. 우리 뒷집에 살던 아줌마...
"그 아줌마 화상 때문에 얼굴에 상처 있으셨잖아."
내가 묻자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영미네 불나기 전에 찍은거야... 우리 영미 이렇게 예뻤는데... 에휴...."
엄마는 한숨을 쉬시며 더 이상 앨범을 보지 않으셨다.
그런데 그때 언니와 난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우린 몰랐다. 영미 아줌마를...
하지만 곧 우린 마침내 생각해내게 되었다.
사진 속 밝게 웃는 아름다운 젊은 영미 아줌마의 얼굴...!
놀랍게도 조금 전 우리가 뒷좌석에 태운 이름 모를 그녀와 너무나 똑 닮아 있었던 것이다.
방으로 돌아온 언니와 난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창문을 꼭꼭 잠궜다.
그리고 이불을 푹 눌러쓴 채 서로 손을 꼭 잡고 잠을 잤다.
잠결에 난 언니의 찬송가 흥얼거리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다음 날, 우린 엄마에게 간밤에 겪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하지만 엄마는 믿지 않으셨다.
몇년 후 수정이 아줌마가 다시 우리집으로 놀러오셨을 때 우린 놀라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망할 인간 죽었다며?"
"그렇다더라. 이사간 곳에서도 귀신 타령 하다가 미쳐서 집에 불지르고 타서 죽었데."
"벌 받은거지...쯧쯧..."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