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MOS.Q (part.5)
자신의 시야를 가득 채우는 단단한 돌에 윤지후는 눈을 감는다. 그간 자신이 저질러온 일들을 보면 응당 치러야할 대가임을 아는지 그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그 여유로운 표정이 미묘하게 이윤희의 신경을 긁어 놓았다.
“개새끼..”
목숨을 건 추격 끝에 얻는 결과.. 그야말로 예상치 못한 반전임은 틀림 없다. 상황은 분명 그녀를 향해 웃어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앞에서 여유로운 듯 눈 감고 있는 빌어먹을 작자를 용서할 마음은 없었다. 인과응보다.
퍼억!
그러나 이윤희의 뜻과는 달리 단단한 돌이 윤지후의 이마에 제대로 박히지 못하고 그 옆을 살짝 빗나가 땅에 박힌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은 처음이거니와 사람을 죽이는 것 역시 익숙치 않은 그녀에게 있어서 마음 속의 작은 동요를 일게 했다.
그러나 스친 것만으로도 윤지후의 이마에서는 얕은 피가 흘러 내리고 있었다. 상당히 따갑고 고통스러워보이지만 눈 하나 꿈쩍 않은 그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다.
“왜, 막상 하려니 못하겠어?”
유들거리며 웃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보던 이윤희는 도저히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고 자리에서 일어나버린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윤지후가 말했다.
“뭐하는거야? 너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 이렇게 깔려 있다구? 언제까지 천사인척 할거야?”
“....”
“싸구려 년 같으니라고..”
그 말이 이윤희의 신경을 건드렸지만 애써 무시하며 앞으로 주욱 걸어나갔다. 수풀 사이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윤지후는 쓴 웃음을 짓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르고 깨끗한.. 지금 이 상황과는 너무나 반대되는 모습에 왠지 모를 허탈감에 낮게 소리를 내어 웃기 시작한다.
“하..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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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갑작스럽게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뜨거운 액체. 이윤희는 더러워질대로 더러워진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며 쉼 없이 걸어나간다. 죽여야만 했을까. 지금 저대로 방치하고 가는게 정말 옳은 일일까. 아니다. 이런 죄악감에 젖어 있을 필요가 없다. 자신은 옳은 일을 한 것이다.
“후우..”
심호홉을 하고 천천히 걸어나간다. 그럴수록 뒤를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거대한 수풀 사이 너머 바닥에 누워 있는 윤지후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그녀의 도덕성을 자꾸만 시험하게 했다.
부스스.
그러던 중 앞에서 들려오는 수풀 소리에 이윤희는 헛바람을 들이키고 걸음을 멈췄다. 점점 다가오는 소리. 수풀들이 양 갈래로 갈라지는 것으로 보아 거대 모기는 아니다. 사람의 형상이다. 드디어! 이윤희는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을 받은 것처럼 그 곳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겨갔다.
부스스.
다가가면 갈수록 점차 빨라지는 소리. 앞으로 몇 걸음만 더. 거대한 수풀들이 하나씩 걷혀질 때마다 이윤희는 알 수 없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부스스.
수풀 사이를 헤치고 그 틈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하나의 사람이 그녀의 두 눈을 촉촉하게 젖게 했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그의 몸과 피곤에 찌든 듯한 얼굴 윤지후라는 자에게서 쫓기는 동안 오랫동안 염원했던 김창수. 그 사람이었다. 그간 겪어 왔던 고초 때문인지 이윤희는 김창수를 보자마자 그의 품에 천천히 안겼다.
“윤희씨..”
자신의 품에 안겨 흐느끼는 이윤희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리는 김창수. 못 보는 사이에 더 많이 여위었다. 온 몸이 흙으로 더럽혀져 있고 몸 여기저기에 묻어 있는 특유의 붉은 액체. 분명 무슨 일이 있던 것이 분명하다. 묻고 싶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김창수는 말 없이 그녀를 꽈악 안아 주었다.
“....”
그렇게 10분 정도가 흘러 어느 정도 안정을 취한 이윤희는 여전히 젖어 있는 두 눈으로 김창수를 올려다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여린 모습을 보며 김창수가 조심스레 물었다.
“..윤지후 그 사람이?”
윤지후라는 말에 살짝 어깨를 움츠린 그녀. 그 행동에 모든 것이 설명이 된다. 차에서 내려 얘기치 않던 추격전을 벌이며 얘기치 않은 거대 모기의 변수로 인해 윤지후에게서 도망칠 수 있었을 것이다. 여자의 몸으로 숙련된 형사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것도 그녀에게 많은 운이 따라주었기 때문이다.
“윤지후..”
순간 마지막 자신에게 보였던 윤지후의 냉혹한 표정에 피가 거꾸로 역류하는 듯 몸을 부르르 떠는 김창수는 굳은 얼굴로 이윤희에게 물었다.
“그 사람.. 아니, 그 새끼 지금 어딨어요.”
“....”
이윤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김창수는 그녀의 여린 어깨를 조심스럽게 쥐고 물었다.
“윤희씨가 이렇게 된 것도 다 그 자식 때문이에요. 어딨어요? 이렇게 윤희씨가 제게 온것도 그 자식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그런 것 아니에요?”
“..네.”
“어딨어요?”
여린 마음의 이윤희와는 달르 김창수의 눈은 분노로 뒤덮여가고 있었다. 분명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감한 이윤희는 윤지후가 있을 공간과는 정 반대로 김창수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윤희씨..”
이윤희에게 끌려가며 안타까운 눈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잠깐 보던 김창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사람 소리에 눈매가 다시 매서워졌다.
“으아아아아!”
그것은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아닌 분한 감정이 가득 실린 하나의 포효였다. 그 소리에 기계적으로 몸을 멈춘 이윤희.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김창수는 감을 잡은 듯 소리가 나는 곳으로 빠르게 뛰어가기 시작한다.
부스스.
거침없이 수풀들을 헤치며 사라지는 김창수의 모습을 가만히 보던 이윤희는 체념한 듯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그 뒤를 따랐다.
“개자식..”
이를 바득바득갈며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가는 김창수. 지금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윤지후라는 작자를 자신의 손에 죽여놓는 것 뿐이었다. 가뜩이나 어지러운 판국에 서로 협력해도 모자랄 지경인데도 생존자를 해하려고 하다니.. 그것도 김창수에게 소중한 존재로 각인되어 버린 하나의 여자를..
부스스.
기나긴 수풀들을 헤치고 나서야 역겨운 냄새와 함께 검은 색의 거대 몸체가 김창수의 눈에 들어왔다. 그 몸집이 워낙 거대해 아래 깔린 윤지후를 발견하지 못한 김창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여기서 들렸었다. 그 짧은 사이에 괴물을 죽인 것인가.
“후우..”
짧게 숨을 뱉으며 거대 모기 근처로 이동하는 김창수는 그 아래에 깔린 무언가를 보고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두 주먹을 강하게 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윤지후.. 너 이 개새끼..”
그 소리에 눈을 감고 있던 윤지후가 슬며시 눈을 뜨고는 분을 못이겨 부들부들 떨고 있는 김창수를 보고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용케 살아 있었네요? 형사님.”
이런 상황에서도 여유만만한 그의 모습과 일전 자신에게 가했던 태도에 화를 참지 못한 김창수는 오른쪽 발로 윤지후의 뒷통수를 강하게 까버렸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고개가 휙 옆으로 돌아가는 윤지후. 상당한 고통인지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한 채로 희미하게 웃는 윤지후가 말을 이었다.
“반갑다고.. 인사를 너무 과..격하게 하시네요.”
“너.. 너. 이 개새끼야!”
“말했잖아요. 형사님.. 후회할거라고..”
김창수의 가격으로 인해 생긴 상처.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윤지후의 눈가에 서서히 고이기 시작한다. 그것을 귀찮다는 듯 고개를 살짝 털어버린 그는 이어서 말했다.
“뭐, 결과적으로는 이렇게 봤으니 제가 진 것 같군요.”
“..미안하다고..”
“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널 데리고 가려고 했어.”
“푸.. 풉.”
윤지후는 웃음을 참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다가 이내 커다랗게 웃어 제끼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하! 푸하하하!”
발작적으로 웃어대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김창수. 그렇게 얼마나 웃었는지 눈가에 맺힌 눈물을 꿈뻑거리며 없앤 윤지후가 말했다.
“형사님.. 성인군자 노릇하려고 온겁니까? 예? 그럼 재미가 없잖아요. 어차피 난 죽어요.”
“..끝까지 너는.. 개새끼마냥 그 자리에서 천천히 뒈져라.”
환하게 웃고 있는 윤지후의 얼굴을 뭉개기 위해 발을 들어 내리찍으려고 순간 뒤에서 안겨오는 작은 몸짓에 김창수는 행동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는 김창수는 발을 천천히 내리고는 윤지후를 내려다 보았다.
“휘유~”
휘파람을 불며 김창수 뒤에 나타난 이윤희를 힐끔 본 윤지후는 웃으며 말했다.
“극적인 상황에서 형사님과 만난 기분이 어때?”
“..빨리 가요.”
이 자리에 있기가 불편한 듯 이윤희가 김창수를 이끌었다. 그 미약한 힘에 실타래처럼 끌려가던 김창수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웃고 있는 윤지후를 힐끔 보고는 이윤희의 뒤를 따랐다.
“후우..”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두 사람을 가만히 보던 윤지후는 아직도 흐르고 있는 피를 느끼며 힘없이 웃었다. 마지막 김창수가 보여주었던 표정은 정말 볼만했다. 세상에 그런 표정으로 자신을 떠나가는 사람을 쉽게 잊는다면 저승에서도 분통을 터트릴 일일지도 모른다.
“쿨럭..”
거대 모기 몸체에 여기저기 부러진 뼈들 때문에 윤지후의 뱃속은 엉망진창으로 되어버린 상태다. 살아날 확률은 제로다. 크게 한숨을 쉰 윤지후는 서서히 흐려지려는 의식을 가만히 느끼며 문득 자신의 몸 위에 굳은 듯 움직이지 않는 거대 모기의 몸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
마르지 않는 강처럼 붉은 액체가 대가리를 잃은 구멍을 통해 꾸역꾸역 흘러내려오고 있다. 그 액체를 가만히 보던 윤지후는 할 수 있는 힘을 짜내어 입을 크게 벌리고는 흘러내려오는 액체를 한가득 삼켰다. 비리고 익숙치 않은 액체에 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켰지만 눈을 부릅뜨고 그것을 삼켜낸 윤지후.
“푸아..”
크게 호흡을 하던 윤지후는 이내 흐려지는 의식의 끈을 놓아버렸다.
김창수와 이윤희는 오래전에 알던 사람들처럼 손을 꼭 잡은채 수풀을 헤쳐나간다. 주차가 되어 있는 곳과 거리가 조금 되기 때문에 최대한 신속하게 걸어야만 했지만 절뚝거리는 이윤희 때문인지 제 속도가 못 나오고 있다. 뒤따라오던 그녀를 안쓰럽게 보던 김창수는 업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 거대 모기가 나타난다면 둘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무리가 안가는 선에서 걷기만 했다.
“무서웠어요..”
침묵 속에 내뱉는 그녀의 말.
“미안해요.. 괜히 저 때문에.”
“아, 그 뜻이 아니라.. 창수씨를 봐서 다행이라구요.”
“그.. 그래요?”
그 말에 웃음기를 감추지 못하는 순수한 그의 표정에 이윤희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부스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수풀들이 지나자 도로에 우두커니 주차가 되어 있는 차량 한 대가 눈에 들어온다. 이제 서울로 가는 일만 남았다는 안도감인지 빠르게 차 쪽으로 다가가려는 김창수. 하지만 이윤희는 차 근처에 뭔가를 느꼈는지 앞으로 나아가려는 김창수의 허리를 잡아 끌었다.
“왜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김창수의 말에 이윤희는 말없이 차 주위를 가만히 주시했다. 그 심각한 태도에 김창수 역시 긴장한채로 이윤희의 시선을 쫓았다.
키이이-
희미하게 들려오는 작은 소리. 틀림 없이 차 근처에서 나는 소리다. 아까 그대로 갔었더라면 큰 화를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두 사람은 다시 수풀 사이로 들어가 몸을 최대한 낮춰 전방을 주시했다.
부스스.
그제서야 거대한 수풀들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더니 이내 3마리의 거대 모기가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것이 눈에 잡혔다. 녀석들은 눈 앞에 미동도 하지 않는 차량을 유심히 관찰하는가 싶더니 기다랗고 튼실한 다리로 툭툭치기 시작했다.
파각. 파각.
그런 힘의 강도를 이기지 못했는지 차량이 옆으로 점점 기울어지며 충격이 가해진 곳이 미약하게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시선을 돌려야 한다. 이대로 있다가는 차를 온전히 쓰지 못한다. 김창수는 주위에 떨어진 짱돌 여러개를 집어 한 녀석의 몸 쪽으로 던졌다.
휘이잉.
빠르게 날아가는 짱돌. 그리고 그 작은 충격에 소스라치게 반응하는 한 녀석.
키이이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당했다는 당황스러움 때문인지 옆에서 차를 조사하고 있는 동료 녀석들의 뒤로 숨어 버린다.
“..생각보다 겁이 많네.”
“사람들도 각자 성격이 있듯이.. 녀석들도 마찬가지인가 봐요.”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두 사람. 김창수는 다시 짱돌을 집어 다른 녀석에게 던졌다. 빠르게 날아간 짱돌에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녀석은 이쪽을 힐끔 보기만 할뿐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해가고 있었다.
파각. 파각.
그렇게 몇 번 들춘 끝에 건질 것이 없다고 생각한 녀석들은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피더니 이내 다른 곳으로 날아가버렸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두 사람은 한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잠잠해지자 차 쪽으로 걸어가 재빨리 좌석에 앉았다.
“휴우..”
안심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거대한 수풀에서 이동하는 것보다야 낫다고 생각한 둘은 숨을 골랐다. 좌석에 편히 기댄 김창수는 문득 생각이 난 듯 벌떡 일어나 뒷좌석에 있는 구급용품을 꺼내 이윤희에게 간단히 처방을 해주고는 차를 조심스레 출발시켰다.
부우웅.
다행히 성능이 나쁜 차는 아니었는지 엔진음을 내며 서서히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끝 없이 펼쳐진 도로 위를 빠르게 이동하는 차량. 다행히 거대 모기들의 습격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대로 계속 가게 된다면 머지 않아 서울에 당도할 것만 같다.
“조금만 버텨요.”
옆 좌석에서 묵묵히 앉아 있는 이윤희에게 말하는 김창수.
“네.”
짧게 대답하고 다시 전방을 주시한다. 만약을 대비함이다. 그 모습에 김창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운전에 집중한다. 일단은 살고 봐야 나중을 생각할 수가 있다.
ㅡㅡㅡㅡㅡ
김창수와 이윤희가 떠나간 자리. 홀로 남은 윤지후의 모습은 바람처럼 사라져 있었지만 그 자리를 대신하기라도 하듯 거대한 알이 힘차게 숨을 쉬고 있었다. 살색 빛깔의 굵은 핏줄들이 혐오스럽게 엉켜 있는 꼴이란.. 아무리 비위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금방 구토를 유발하는 모습일 것이다.
키이이-
그런 알 주위에 거대 모기 하나가 근처를 기웃거린다. 새로 생긴 동료를 받아들이기 위함인가. 먹이 쟁탈에 새로 생긴 경쟁자를 애초에 자르려는 의도인가. 다리를 들어가며 침을 이리저리 흔드는 것으로 보아 호감적인 태도는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키이-
세차게 숨쉬는 알을 가만히 보던 거대 모기는 이내 결심을 한 듯 날카로운 침을 거대한 알의 가운데에 찔러 넣었다.
푸욱.
깊게 박히는 침. 그리고 그 침을 서서히 아래로 내리려는 거대 모기. 이대로 있다가는 제대로 부화하지도 못한채 알의 내용물이 그대로 죽게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찌이익.
이내 길게 갈린 알. 그리고 폭포처럼 흐르는 액체. 이내 땅으로 튀어나오는 보통 녀석들과는 반정도 크기의 거대 모기의 몸체. 제대로 부화하지 않은 탓인지 꿈쩍 않고 바닥에 늘어져 있다. 그것을 빤히 보던 거대 모기는 만족스러운 듯 대가리를 흔들며 다른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키이이-
하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미약한 소리에 이동을 멈춘 거대 모기는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키이-
무엇을 보았는지 작은 대가리를 갸웃거리며 자신 앞에 조용히 서있는 또 다른 ‘동족’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자신들과는 확연히 다른 신장. 대체로 몸이 호리호리 하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까. 분명 같은 냄새를 풍기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수상쩍었다. 그래, 마치 하나의 사람을 보는 것 같다.
키이이-
호기심이 강한 녀석인지 대가리를 갸웃거리며 ‘동족’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키이-
그리고 자신과 완전히 다른 구조에 기괴한 소리를 내며 대가리를 더욱 세차게 흔들어댄다. 없다. 자신과 같은.. 인간들을 빨아댈 때 써야할 기다란 침이 없다. 그 침이 있는 자리에는 양 옆으로 길게 찢어진 보기 흉한 입이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그것을 아는지 ‘동족’은 입을 작게 열고는 거대 모기와 같은 소리를 냈다.
키이이이-
전혀 알 수 없는 주파수에 거대 모기는 혼란스러운 듯 그 곳에서 부동자세로 서있기만 했다. 그런 녀석을 가만히 주시하던 ‘동족’은 이내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찰박. 찰박.
바닥 가득 고인 액체 위를 걷는 ‘동족’의 모습에 뭔가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한 거대 모기는 서서히 뒷걸음질치며 ‘동족’에게서 멀어지려고 했다. 그 동작을 유심히 보던 ‘동족’은 날카로운 괴성을 지르며 빠른 속도로 거대 모기에게 다가간다.
키이이-
빠르게 다가오는 ‘동족’을 쳐내기 위해 앞발을 들었지만 그것을 유연히 피해낸 ‘동족’은 몸을 반달모양으로 말아 거대 모기의 뒤로 접근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동족’의 굳게 다문 입이 순식간에 크게 벌려지더니 이내 거대 모기의 대가리를 통째로 뜯어버렸다.
콰드득. 콰득.
그리고 그것을 천천히 씹으며 음미하는 듯 미동도 하지 않는 ‘동족’.
푸드드드. 푸드득.
순식간에 대가리를 잃은 거대 몸체는 바닥에 이리저리 발광을 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입안에 있는 내용물을 완전히 삼킨 ‘동족’은 성이 차지 않는지 바닥에 발광을 하고 있는 몸체 중 다리 하나를 크게 베어 물고는 오물거리기 시작한다.
콰드득.
그렇게 몇 번 십고 삼킨 ‘동족’은 몸체의 다른 부위를 입에 가져간다.
콰득. 콰득.
마치 ‘동족’에게 바쳐지는 것 같이 완전히 움직임을 멈춘 몸체. 그것을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동족’. 생각지도 못한 이변이 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거대한 수풀이 무성한 숲속에 큰 원이 그려져 있다.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검은 색의 살점들과 붉은 액체가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다. 그 원 가운데에는 170cm은 되어보이는 검은 색의 단단한 각질을 가진 뭔가가 한창 식사를 하고 있다.
콰드득. 콰득.
소리만 들어도 그것이 얼마나 단단한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정말 엄청난 식성과 단단한 치아를 가진 것이 틀림 없다.
키이이-
그 ‘뭔가’의 아래 깔린 거대 모기는 자신의 몸이 차례대로 뜯겨져 나가는 것을 멍하니 보고만 있다. 힘을 쓸 수 없게끔 투명한 날개는 진즉에 찢겨져 나간지 오래였고 팔 다리 모두 험하게 뜯겨져 나간 상태다. 꼼짝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 모기는 살아보겠다는 강한 의지 때문인지 몸통을 들썩 거리지만 자신의 몸 위를 누르고 있는 ‘뭔가’를 약간 움직이게만 할 뿐 헛수고였다.
키이-
콰드득.
거대 모기의 남은 다리마저 먹어치운 ‘뭔가’는 자신의 아래 놓인 거대 모기를 두리번 거리며 훑기 시작한다. 어느 부위를 먹을지 망설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던 시선이 문득 위로 올라가 멈춘다.
키이이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의 얼굴을 가진 ‘뭔가’와 직접적으로 시선이 교차된 거대 모기는 죽음을 직감했는지 몸통을 이리저리 굴리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럴수록 ‘뭔가’의 심기를 건드리기만 했고 그 행동은 곧 죽음으로 이어졌다.
키이-
보기 흉할정도로 크게 입을 벌린 ‘뭔가’는 이어 모기의 대가리를 순식간에 뜯어버렸다.
뿌드득. 뿌득.
‘뭔가’의 입안 사이에서 미약하게 녀석의 소리가 들리지만 날카로운 이빨에 의해 그것마저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우물거리며 추욱 늘어진 몸통을 감흥없이 바라보던 ‘뭔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솨아아.
싸하고 날카로운 바람이 ‘뭔가’의 몸을 가볍게 뒤흔든다. 그 바람을 기분 좋게 받아들인 ‘뭔가’는 다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바닥에는 붉은 액체가 흥건히 고여 있는 것이 보인다.
찰박. 찰박.
아니나 다를까. 그 주위에 거대 모기가 죽어나간 원들이 수없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수많은 몸체에서 나오는 붉은 액체들이 모이고 모여 바닥을 완전히 뒤덮어버렸고 끝내에는 ‘뭔가’의 무릎까지 올라오는 지경에 이른다.
찰박.
생각보다 디뎌지는 걸음을 느꼈는지 ‘뭔가’는 붉은 액체를 물끄러미 보다가 문득 자신의 등에 달린 날개를 느끼고는 천천히 날개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푸드드득.
매서운 바람소리와 함께 점차 몸이 뜨기 시작하자 앞으로 나아간다. 수풀 한쪽이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버릴 만큼 ‘뭔가’의 힘은 강대했다. 물론 처음부터 거대 모기들을 죽여나갔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단순히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키이이-
처음 거대 모기를 죽이고 나서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 2마리의 거대 모기와 조우하게 되었다. 그 녀석들 역시 자신과 같은 냄새와 비슷한 형태를 한 ‘뭔가’를 유심히 보고는 격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 반응은 곧 공격으로 이어졌고 ‘뭔가’는 그것에 맞게 대처한 것 뿐이었다.
키이이-
인간들에게는 한없이 강대한 거대 모기들이었지만 동등한 입장. 아니, 그보다 더 위인 ‘뭔가’에게는 거대 모기들을 죽이는 일은 손쉬운 작업이었다. 거대 모기들을 하나하나 죽일 때마다 쉼 없이 움직이며 자신을 노려보는 대가리들을 먹어치웠다.
키이이-
그 과중에서 점차 식성이 익숙해져 갔고 종래에는 보이는 족족 거대 모기들의 대가리 부분만을 노리고 다녔다. 물론 수많은 거대 모기들이 한 번에 덮친다면 당해낼 방도가 없겠지만 소수의 녀석들에게 접근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녀석들 대부분이 신기해하는 눈치였고 악의는 크게 비치지 않았다.
키이이-
그 부분에서 선제공격을 쉽게 취할 수 있었고 덕분에 수많은 거대 모기들이 바닥에 눕는 지경에 이르렀다.
푸드드드.
날개를 쉼 없이 움직이며 숲을 벗어난 끝에 도로에 도착한 ‘뭔가’는 바닥에 내려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키이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광활하기만 한 도로. 그 옆으로 펼쳐진 아직은 가보지 못한 숲. 어느 곳을 가야할지 망설이는 듯 앞과 옆을 쉼 없이 두리번거린다.
키이-
앞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중 고개를 갸웃거린 ‘뭔가’는 도로에 길게 새겨진 검은 색의 타이어 자국을 보고서는 걸음을 천천히 떼기 시작한다. 자신과 비슷한 존재일까. 그 생각이 미치자 다시 날개를 좌악 펼쳐든 ‘뭔가’는 빠르게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파다다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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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거대 모기들이 잠잠했다. 덕분에 제 시각 보다 약간 이른 시간에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환영합니다.’라는 간판을 보며 뭉클한 감정이 들 것만 같다. 김창수는 어느새 잠든 이윤희를 힐끗 보고는 차를 조심스레 몰았다. 괜한 소란으로 곤히 자고 있는 이윤희를 깨우기 싫은 모양이다.
부우웅.
느리게 차가 미끄러지며 서울 시내에 접어든다. 김창수의 예상대로 활발하던 시내는 폐허나 다름 없을 정도로 황폐해져 있었다. 더 이상 꿈과 희망도 찾아보기 힘든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지하벙커라는 하나의 안식처가 있었기 때문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후우..”
생각해보면 여러 일들이 있었다. 긴 세월은 아니었지만 30평생 가까이 살아오면서 이렇게 숨막히고 긴장감 넘치던 순간이 있었던가.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삶에 찌들어져 살고 있었지 않은가. 죽을 용기조차 없어서 그럴 듯한 변명거리나 찾아 헤매며 겨우 살아 있었지 않았던가.
“그래..”
어쩌면 자신에게 벌을 내리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구가 망한다고 해도 남은 여생을 미련 없이 깨끗하게 보내야만 했거늘. 쓸데없는 생각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의미없게 보낸 것이 한심해 벌이 내린 걸지도 몰랐다. 한숨을 크게 내쉰 김창수는 다시 라디오를 틀었다.
치직. 치지지직.
볼륨을 최대한 작게 하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지만 아까 들었던 그 구원의 방송은 들리지 않는다.
‘일이 잘못된건가. 아니다. 그렇게 쉽게 당할 리가 없다. 무장한 군인들이 있고 지하에 있다면 분명 안전하게 쉴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 마지막 남은 희망 줄마저 놓친다면 그대로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는 홀몸이 아니라 이윤희라는 사랑하는 여인을 책임지고 있었다.
부우웅.
서울시내 중심부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본다. 창문을 완전히 내리고 몸을 빼내 이리저리 둘러본다.
고오오오-
들리는 것은 빈 건물에 맴도는 강한 바람 소리 뿐..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이쯤 되면 뭔가가 나타나야 정상이기라도 할텐데.. 오랜 형사 생활로 다져진 그의 감이 뭔가 좋지 않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때로는 생사를 넘나들며 악전고투를 한끝에 익혀왔던 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절대로 자신을 배신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김창수는 다시 차를 몰기 시작한다.
부웅-
슬쩍. 표지판을 보니 시청까지의 남은 거리는 약 5km. 이대로 조금만 있으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으음..”
그제서야 서서히 눈을 뜬 이윤희는 놀란 토끼눈을 하고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제.. 제가 잤어요?”
“조금요.”
“아..”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붉은 눈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에게 살짝 웃어준 김창수는 시청으로 차를 몰았다. 간단히 사과를 한 그녀는 서서히 보이는 시청의 모습에 안색이 서서히 밝아져갔다. 그토록 바라고 기다렸던 안식처가 서서히 가까워지자 두 사람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고생했어요.”
“..네. 정말..”
이내 시청에 다다른 차. 김창수는 조심스럽게 내리고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청 앞. 그러니까 김창수가 지나왔던 직선의 도로 위로는 길게 놓여진 육교가 있었고 시청 주위로는 어깨 높이만한 담과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 있었다. 그 깨끗했던 시청 역시 거대 모기의 습격을 견뎌내지는 못했는지 여러군데가 파손되어 있었고 창문이란 창문들은 모조리 깨져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둘에게 필요한 것은 지하벙커다.
“어디있다는거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벙커의 위치 표시를 찾으려고 했지만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좀 더 안쪽에 있지 않을까요?”
이윤희의 말에 군말 없이 차에 다시 오르고서는 시청 내부 깊숙한 곳으로 차를 몰았다.
부우웅.
차를 몰면서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고요하다. 이상하리만큼 고요하다. 직감적으로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 더 답답하다. 그런 김창수의 표정을 읽었는지 이윤희 역시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
“왜 그래요?”
“아.. 그게.”
“....”
분명 여기에 뭔가가 있다고 말하고는 싶지만 피로에 찌든 이윤희을 보자 그 마저도 사악 날아가버린다. 김창수는 아무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고는 말했다.
“좀 피곤한가 봐요.”
“..그래요?”
그녀는 워낙 빠르게 바뀐 김창수의 표정에서 뭔가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괜히 도착지점에서 사소한 감정 다툼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욱 들어간 끝에 ‘지하벙커’라고 새겨진 표지판을 발견한 김창수는 지체없이 그 쪽으로 차를 몰았다.
부우웅.
1~2분 정도 차를 몰자 정면에 2미터 가량의 높이의 터널이 아래로 뚫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차를 몰아 그 앞에 주차한 김창수는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솨아아아.
바람소리가 유독 신경을 자극한다. 온 몸에 찌르르 전기가 오는 것 같지만 여기까지 와놓고 돌아가기도 뭐한 상황이다. 혹시라도 모를 거대 모기의 습격이 이어진다면? 망설이면 안된다. 서둘러야만 한다.
철컥.
이어 이윤희 역시 차에서 내려 어두운 터널 앞에 서서 그 안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안보이는데요?”
그녀의 말대로 높고 어두운 터널에는 육안으로는 구분이 힘들 정도로 어두웠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약한 바람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꽤 깊게 이어진 곳 같다. 김창수는 마른 침을 삼키고 이윤희의 손목을 잡고서 어두운 공간속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