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옆집 할머니가 매일 새벽 3시에 우리 집 문에 귀를 댄다.
관리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매일 새벽 3시, 누가 우리 집 현관 앞에 10분씩 서 있다 간다고.
CCTV 속 사람은 옆집 할머니였다.
"윤서 씨, 잠깐 사무소 좀 들러 주시겠어요. 보여드릴 게 있어서요."
이사 온 지 2주째 되던 금요일이었다.
15층짜리 복도식 아파트. 1988년 준공. 엘리베이터는 하나뿐이었고, 복도 바닥 타일은 군데군데 깨져 있었다.
재건축 조합이 설립되면서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는 중이라 했다. 덕분에 월세가 시세의 절반이었다.
부동산 사장은 2년만 버티면 이사비까지 나온다고 했다.
관리사무소 소장님은 모니터를 내 쪽으로 돌렸다.
15층 복도 CCTV. 화면 구석에 디지털 시각이 붉게 떠 있었다.
[03:15:12.]
복도 끝 집 문이 열리고 작은 노인이 나온다.
내복 위에 얇은 분홍색 패딩을 걸치고, 슬리퍼를 끌면서. 노인은 천천히 복도를 걸어와 한 집 앞에 멈췄다.
1507호. 우리 집이었다.
노인은 현관문에 옆얼굴을 바짝 붙였다. 귀를 댄 채로, 그 자세 그대로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관리소 소장님이 영상 재생 속도를 올렸다.
화면 속 시각만 빠르게 흘러갔다.
03:10:40에 노인이 얼굴을 떼고, 왔던 길로 돌아가 옆집으로 다시 들어간다.
"14일입니다."
옆에 있던 관리소직원이 낮게 말했다.
"선생님 이사 오신 날부터 하루도 안 빠지고. 경비 아저씨가 야간 영상 정리하다 알았대요. 3시 딱 되면 나와서 10분."
"...누구세요?"
"1508호 할머니세요. 혼자 사세요. 치매 기가 있는 분은 아니신데..."
그가 말끝을 흐렸다. 나는 화면 속에 정지된 노인의 옆얼굴을 봤다. 눈을 감고 있었다. 무언가를 아주 열심히 듣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다음 날 아침,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1508호 철문이 열렸다.
할머니는 화면 속보다 더 작고 왜소했다. 허리가 굽어 내 가슴께에 정수리가 왔다. 두 손으로 빨간 뚜껑 김치통을 받쳐 들고 있었다.
"새로 온 아가씨지. 이사 떡도 못 돌렸지? 요즘 사람들은 안 하더라."
주름진 얼굴로 웃고 있었다. 나는 김치통을 받으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손마디가 저절로 굳었다.
"혼자 살아?"
"...네."
"몇 시에 자?"
"그때그때 달라요."
"늦게 자면 못 써. 잘 때 코는 골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탔다. 문이 닫히기 직전, 할머니가 고개를 갸웃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아가씨는 숨소리가 참 작더라."
문이 닫혔다. 1층까지 내려가는 동안 나는 김치통을 품에 안은 채 굳은 표정으로 숫자판만 봤다.
숨소리가 작더라. 들어 봤다는 거다. 문 너머로, 매일 밤.
회사 화장실에서 친구 혜진에게 카톡을 보냈다. 혜진은 3분 만에 답장을 보냈다.
'그거 빈집털이 사전답사 아니야? 요즘 노인 끼고 하는 애들 있대. 혼자 사는지, 몇 시에 자는지 다 체크하잖아. 너 진짜 조심해.'
그날 저녁 김치통은 뚜껑도 열지 않은 채 냉장고 맨 아래 칸 구석에 넣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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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밤, 새벽 2시 50분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고요한 현관문에 청각을 집중하고 있었다.
3시 정각. 옆집 문이 열리고 차가운 복도 바닥에 슬리퍼 끄는 소리가 다가왔다.
그리곤 정확히 내 집 현관문 앞에서 멈춰있었다.
그녀가 조용히 내 숨소리를 듣는 동안, 나는 숨죽여 현관문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기록을 남겼다. 명확한 패턴이 보였다.
내가 뒤척이거나, 기침을 하거나, 화장실 물을 내리면 본인 집으로 돌아갔다. 5분도 안 걸렸다.
반대로 내가 숨을 죽이고 깨어 있는 밤에는 오래 서 있었다. 10분, 15분. 그러다 문을 두드렸다. 손가락 마디로, 아주 작게, 두 번.
[똑. 똑.]
그리고 다시 문에 귀를 대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작은 인기척을 냈다. '흠 흠' 소리가 나면 현관 밖의 슬리퍼 소리가 천천히 멀어졌다.
결론은 하나였다. 저 노인은 내가 잠들었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잠든 게 확실하지 않으면 두드려서 확인했다.
혜진의 말처럼, 외부의 누군가에게 정보를 넘기려는 건지도 몰랐다. 이 집 여자는 몇 시에 깊이 잠든다고.
나는 그 일주일 동안 단 한 순간도 깊이 자지 못했다.
112에 신고한 건 토요일 오후였다.
지구대에서 경찰 한 명이 왔다. 마흔 중반쯤. 점퍼 어깨에 빗방울이 묻어 있었다.
나는 홈캠 녹화 파일과 관리사무소에서 받은 CCTV 캡처를 내밀었다.
그는 휴대폰 속 영상을 오래 봤다. 그리고 우리 집 호수를 한 번 더 확인했다.
"1507호요."
"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옆집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15분이 지났다.
나는 닫힌 현관문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며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돌아온 경찰의 얼굴은 들어갈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의 드렸습니다. 연세가 있으셔서요. 다시는 안 그러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다예요?"
"실제로 침입하신 것도 아니고, 문을 열려고 시도하신 것도 아니고... 지금으로선 경고 이상은 어렵습니다."
그는 내 현관문을 잠깐 올려다봤다. 무슨 말을 하려다 삼키는 것 같았다.
"보일러는 괜찮아요? 이 아파트가 오래돼서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명함 한 장을 신발장 위에 놓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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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사 온 뒤 처음으로 편히 잤다. 알람도 맞추지 않았다. 홈캠 앱의 알림도 꺼 두었다.
복도에서 할머니를 딱 한 번 마주쳤다. 수요일 저녁, 분리수거장 앞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보더니 걸음을 멈췄다. 인사를 하지 않았다. 대신 내 어깨 너머, 15층 복도 쪽을 유심히 올려다봤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고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그 눈빛이 무서웠다. 나는 분리수거 봉투를 든 채 엘리베이터가 15층에 멈추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다음 엘리베이터를 탔다.
금요일부터 매서운 한파가 왔다. 영하 14도. 아파트 방송에서는 각 세대별 수도를 조금씩 틀어서 수도관이 어는걸 방지하라고 했다.
이 집 보일러는 베란다 구석에 있는 낡은 가스보일러였다. 실내 온도를 아무리 올려도 바닥이 미지근했다. 나는 온도를 최대로 올리고, 베란다 창문 틈에도 방풍 비닐과 문풍지를 붙였다. 집 안이 처음으로 훈훈해졌다.
토요일 아침, 머리가 지끈거리며 깨어났다. 일어나려니 속이 울렁거렸다. 감기 기운이었다. 한파에, 일주일 내내 설치던 잠을 몰아서 잤으니 몸이 놀랄 만도 했다.
나는 종합감기약 두 알을 털어 넣고 다시 누웠다. 마른 기침을 몇번 쿨럭이고나서야 보일러가 우웅 거리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꿈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똑. 똑.]
아주 작게, 두 번. 손가락 마디로. 나는 꿈속에서도 그 소리를 알아챘다. 일주일 동안 이불 속에서 숨죽이고 들었던 소리였다.
[똑, 똑, 똑.]
소리가 빨라졌다. 커졌다. 손가락이 아니라 주먹이었다.
[쾅. 쾅.]
방음 문풍지와 스펀지를 뚫고 둔하게 울렸다.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몸이 침대에 녹아 붙은 것 같았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눈꺼풀이 쇳덩이 같았다. 무섭다는 생각보다 쏟아지는 졸음이 먼저였다. 조금만 더 자고 싶었다.
[쾅. 쾅. 쾅.]
이어 쇠가 쇠를 세차게 내리치는 소리. 깡, 깡. 현관 쪽에서 뭔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청테이프가 강제로 뜯겨 나가는 소리였다.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문 바로 밑, 우유 투입구에서.
"아가씨! 아가씨, 일어나! 대답 좀 해 봐! 아가씨!"
노인의 목소리였다. 울고 있었다.
그다음은 단편적인 조각으로만 기억에 남아 있다. 얼굴로 쏟아지던 찬바람. 찌르는 듯한 손전등 불빛. 낯선 남자들의 긴박한 목소리. 들것이 덜컹거리는 진동. 그리고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내복바지에 걸친 패딩안에서 어깨를 들썩이던 작고 왜소한 분홍색 사람의 형체.
눈을 떴을 때는 병원 응급실이었다.
일산화탄소 중독. 의사는 보일러 배기관 연결 부위가 빠져 있었다고 했다. 한파에 창문까지 전부 봉쇄해 놓았으니 가스가 갈 데가 없었다고. 아침에 머리가 아팠던 것도, 속이 울렁거렸던 것도 감기가 아니었다.
"30분만 늦었어도 못 깨어나셨을 겁니다."
입원 사흘째 되는 날, 그때 그 지구대 경찰이 찾아왔다. 손에 귤 한 봉지를 들고 있었다.
그는 의자에 앉아 한참 동안 귤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낮게 입을 열었다.
"그때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할머님이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아가씨가 무서워서 또 집을 나가 버릴까 봐."
"...또요?"
"아가씨 전에 두 사람이 더 들어왔다가 금방 나갔습니다. 둘 다 같은 이유로요."
그가 귤을 까기 시작했다. 껍질을 아주 천천히, 한 줄로 이어지게.
"2년 전 겨울에 1507호에서 사람이 하나 죽었습니다. 스물여섯 살 청년이요. 혼자 살았고, 가족이랑은 연락을 끊고 지냈어요. 회사도 그만둔 지 몇 달 됐고."
"발견까지 40일이 걸렸습니다. 제가 그 현장에 나갔었어요."
"처음 알아챈 게 옆집 할머니였습니다. 복도에서 냄새가 난다고 관리사무소에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다들 하수구 냄새라고 별거 아닌 것 처럼 얘기했다고. 결국 할머니가 직접 112에 신고하셨습니다."
그가 깐 귤 한 쪽을 내 손에 쥐여 줬다.
"그 뒤로 할머님이 잠을 못 주무셨다고합니다. 새 사람이 들어와도. 그 집에서 '사람 숨소리'가 들려야 마음이 놓여서 잠이 온다고. 그래서 매일 밤 3시에 나가서 듣고 오셨던 겁니다. 아가씨가 뒤척이면 안심하고 돌아가시고, 너무 조용하면 혹시나 해서 두드려 보시고."
나는 손에 쥔 차가운 귤을 내려다봤다.
"그날 제가 주의 드리러 갔을 때도 할머님이 딱 한 가지만 물으시더라고요."
[그럼 숨소리는 어떻게 들어요?]
"그날 저녁에 분명 사람이 있는 소리를 들었는데 새벽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니까... 할머님이 아가씨 집 문을 두드리고, 관리사무소에 전화하고, 아무도 안 받으니까 복도 소화기로 우유 투입구를 내리치셨대요. 거기다 대고 소리 지르시니 다른 세대에서 119를 부른겁니다."
경사가 한숨을 삼키며 덧붙였다.
"소방대원 말이, 테이프가 뜯겨 나간 그 우유 투입구 작은 틈으로 가스가 빠져나가지 않았으면 더 위험했을 거라고 합니다."
경사는 일어나며 의자를 제자리로 밀어 넣었다.
"퇴원하시면 인사 한번 드리세요. 그날 구급차 떠날 때까지 복도 바닥에 앉아 계셨습니다. 내복 바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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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 만에 퇴원했다.
15층 복도는 변함없이 차가웠다. 깨진 타일, 형광등 하나가 깜빡이는 천장.
우리 집 현관문 아래쪽 우유 투입구가 안으로 심하게 우그러져 있었다. 소화기 모서리에 찍힌 자국이 철판에 하얗게 패어 있었다. 문 틈새로 뜯긴 문풍지가 혓바닥처럼 늘어져 있었다.
나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나머지 문풍지와 방음 스펀지를 전부 뜯어냈다. 다 뜯어내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붙일 때는 이십 분이었는데.
냉장고 맨 아래 칸에서 빨간 뚜껑 김치통을 꺼냈다. 3주 동안 한 번도 열지 않은 통이었다. 뚜껑을 열자 시어 터진 김치 냄새가 확 올라왔다. 나는 그걸 다 먹지도, 차마 버리지도 못하고 그냥 깨끗이 씻어 엎어 놓았다.
저녁에 그 빈 김치통을 들고 1508호 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없었다. 다시 두드렸다. 조용했다. 우유 투입구 사이에 전기요금 고지서와 전단 몇 장이 끼워져 있었다. 자녀 집에 가셨나 보다, 생각했다. 그날 밤 내복 바람으로 복도에 앉아 계셨다니, 병원에 입원하셨을 수도 있었고.
김치통을 문 앞에 내려놓고 돌아왔다.
3시 정각. 슬리퍼를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복도는 생각보다 훨씬 추웠다. 발끝이 금세 아려 왔다. 나는 복도 끝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내 발소리가 깨진 타일 위에서 이상하게 크게 울렸다.
1508호 앞. 빈 김치통이 저녁에 놓아둔 그 자리에, 그 모양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나는 차가운 철문에 옆얼굴을 바짝 댔다. 쇠가 차가워서 귀가 아렸다. 눈을 감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코 고는 소리도, 뒤척이는 소리도, 텔레비전 소리도.
냉장고 모터 소리같은 우웅거리는 소리만 작게 들렸다.
나는 손가락 마디를 구부려 문을 두드렸다. 아주 작게, 두 번.
[똑. 똑.]
다시 귀를 댔다. 10분을 서 있었다. 15분을 서 있었다.
그날 밤 구급차가 떠나고 난 뒤, 복도 바닥에 내복 바람으로 앉아 있던 노인을 누가 일으켜 세웠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뒤로 누가 이 문 앞에 서 봤는지도.
할머니가 내 문 앞에서 3주를 서 있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이 문 앞에 서 본 적이 없었다.
문 너머는 조용했다.
2년 전 겨울, 할머니가 40일 동안 몰랐던 그 고요한 날들과 똑같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