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누가 그녀를 죽였을까 2/2
안경을 벗은 준식은 땀이 흐르는 콧잔등을 닦았다.
아이스 커피를 연거푸 넉잔이나 들이킨 준식은 '두리 일출봉' 이라는 카페를 뒤지고 있었다.
'정모 모임후기' 라는 카테고리에서 '화악산 모임' 이라는 게시글을 찾아냈다.
게시글에는 카페회원들과 찍은것으로 추정되는 단체사진이 있었고 거기서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박철운..."
모니터를 보던 준식이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었다.
등산 모자를 쓴 여성과 다정히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박철운의 웃는모습을 보니 조금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런 감상도 잠시 , 준식은 게시글을 내려 댓글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 우리 미진이 철운이랑 다정하게 찍었네' 라는 댓글 밑으로 달린 이모티콘 댓글이 최미진인것 같았다.
역시 모자를 쓴 여성이 최미진이였다. 다시 스크롤바를 올려 사진을 보니
모자를 쓰고있음에도 그녀의 외모는 뛰어나 보였다.
그리고 그런 여성회원의 댓글 밑으로 남성회원들의 수십개의 댓글이 달린것을 보고 준식은 작게 웃었다.
댓글중에서도 존댓말보다 친근히 이름을 부르는 회원의 댓글이 실제로 어느정도 친분이 있는사람으로 판단되었고,
준식은 ' 밤새 ' 라는 회원에게 쪽지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가 평소 인터넷 쪽지를 확인하는지 준식은 알턱이없었지만, 방법이 달리 없었다.
" 안녕하세요 . 최미진씨 관련일로 이렇게 메시지를 드립니다. '밤새' 님이 미진씨를 잘 아신다고 들었습니다."
미끼는 먹음직스러워야한다.
물론, 당사자는 기분이 나쁠수 있겠지만, 인간의 감정이라는것은 언제든 풀어지기 마련이다.
상황을 만들고 그 다음 상대방의 감정을 받아내면 그뿐, 이것은 그간 준식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깨달은 하나의 혜안이였다. 그것은 살아오면서 황준식 자신에대한 이야기이기도했다.
자신의 감정을 절제할줄알면, 그 답이 보인다.
이제 답장을 기다리는 일만 남아있다.
준식은 아이스커피를 한모금 마시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를 천장에 뿜을때마다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연기가 구름이된듯 천장에 부딪혀 구름속에 있는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눈이 시큰한듯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감는 준식의 몸위로 새하얀 구름들이 머물렀다.
-
퍽 - 퍽-
모래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 너무 심하잖아 그만해!"
아이들 무리중 한아이가 외쳤다.
동그랗게 둘러싸고있는 아이들 무리안으로 한 소년이 엎어져있는 소년의 가슴팍에 올라타서
돌맹이로 엎어져있는 아이의 이마를 내려 찍고있었다.
버둥거리며 신음하는 아이의 위로 올라탄 독기 가득한 눈의 아이는 사정없이 이마를 내려찍었다.
많은 아이들은 그만 멈추라는 소리만 지를뿐 누구도 이를 선뜻 나서서 말리지 못하고있었다.
잠시후 아이들 무리를 뚫고나온 성인 남자.
남자 선생으로 보이는 이 남자는 이 끔찍한 광경을 보며 표정이 일그러졌다.
"황준식 그만해!"
선생의 외침에도 소년의 팔은 공격을 멈추지않았다.
"이 미친새끼야 그만하라고!"
남자 선생은 올라타있던 소년을 발로 걷어차버렸다.
선생은 다급히 누워있던 아이 이마에 흰장갑을 벗어 지혈했다.
"으으윽.."
아이는 신음했고 선생은 인상을 찡그렸다.
흰색 장갑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리고 피흘리는 아이를 부축하고 어디론가 데리고갔다.
그제서야 구경하던 아이들은 어디론가 사라져갔고 , 대짜로 누워져 아무렇게나 버려진 소년이
무표정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도 소년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않았다.
생기없이 운동장 한가운데 누워 있는 소년은 마치 영혼없는 밀랖인형인듯 가만히 누워있었다.
-
흰 가운을 입은 의사는 심각한 얼굴로 아이의 얼굴과 그 아이의 엄마로 추정되는 여자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사실 유전적인 요인도 있지만, 제가 봤을때는 어떠한 충격적인 사건으로인해서 발현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준식이가 아버님이 사고로 돌아가시는것을 목격했기때문에 어린아이의 정신으로는 버티기가 힘들었을수도
있겠지요. "
울먹거리는 여성은 떨리는 목소리로 의사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애를 치료할수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러자 의사는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머님 싸이코패스는 공감능력이 없지만, 준식이는 후천적인 영향을 받은 케이스입니다.
의학적으로는 잘쓰이지는 않지만 준식이는 소시오패스에 가깝습니다.
싸이코 패스와는 달리 사람과의 공감능력은 있지만, 어느정도 자신의 논리대로 행동하는 경향이있고,
지속적인 교육으로 차차 공감능력을 길러가면, 일반인과의 어울림도 문제없이 성장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모두가 그래요. 사람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항상 변화합니다. 상처가 나고 피가나면 딱지가 생기듯이
준식이도 자신의 정신을 보호하기위해서 그런겁니다. 이건 비정상적인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의사는 울고있는 여자를 잠시 안쓰럽게 쳐다보고 말했다.
"어머님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나이입니다. 그건 어느 아이들이나 당연한 이야기죠.
일을 하시느라 보살핌이 남들보다 부족할수있어요. 하지만 준식이가 혼자있는 시간에도
사고치지않고 얌전히 지낼수있게 우리 병원 상담의가 지속적으로 집에 전화를 드릴겁니다. 너무 염려치 마세요
잘 도와 드릴테니까..."
여자는 눈물을 닦고 의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의사는 그런 여자를 안쓰럽게 쳐다보다가 준식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준식이, 올해 몆학년이지?"
그러자 준식은 울고있는 엄마를 아리송하게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삼 학년이요."
"친구들이 아버지 안계신다고 놀려도 때리면 걔들이랑 똑같은 사람이 되는거야.
그럴땐 선생님한테 말씀드리고 참아야해 어머니가 마음아파하지 않게.. 이제 그럴수있지?"
아까의 표정과는 너무 다른, 천진난만하기만한 표정의 아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아이를 보던 의사는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엄마 잠깐 나갔다 올께"
준식은 그런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TV를 틀어 만화영화채널을 틀었다.
닫히는 현관문 소리가 들리자 준식은 고개를 돌려 다시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왜 그랬을까? 불안한 표정의 준식은 보던 TV를 끄곤 이불이 개어져있는 곳으로 머리를 대고 누웠다.
불안한 표정의 준식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얼마큼의 시간이지났을까 ,
누군가 계단을 오르는 소리에 준식이 황급히 일어나 현관문 쪽을 바라보았다.
철컥 -
열쇠를 꼽고 손잡이를 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엄마가 집에 들어왔다.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온 엄마는 준식을 보며 입을 열었다.
"준식아 TV도 꺼놓고 뭐하고 있어 , 자고있었어? 밥 먹자 엄마가 오늘 준식이가 좋아하는
비엔나 소시지 사왔어."
"응 ! "
크게 대답하며 활짝 웃는 소년.
읍내에 다녀오신 엄마의 장바구니는 요술보따리로 변해있었다.
-
"으앗, 뜨거!!"
꽁초까지 타버린 담배꽁초가 골아떨어져있던 준식을 깨웠다.
담배를 떨어뜨린 준식은 손가락을 확인하며 매만지다가 떨어진 꽁초를 주워 재떨이에 넣었다.
그와 동시에 컴퓨터 스피커에서 낯익은 알림음이 들렸다.
" 누구시죠 ? "
'밤새' 회원이였다.
어쨌든 결혼하라.
양처를 만나면 만족을 얻지만 ,
악처를 만나면 철학자가 된다.
- 철학자 소크라테스 -
준식은 타자를 치며 작은채팅창에서 대화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저는 박철운씨 변호사를 맡고있는 황준식이라고 합니다."
"변호사요? 무슨 소리인지 잘.. 미진이 관련일로 메시지 주시지 않았나요?"
"죄송합니다. 처음부터 변호사 신분임을 밝히면 연락이 어려울것 같았습니다."
"변호사가 왜 제게 연락을 한거죠? 저는 잘못한게 없습니다. "
"김미진씨가 죽었습니다. 그와 관련해서 몇가지 여쭙고 싶은게 있어서 메시지 드린겁니다. "
"와.., 죽었다고요? 어쩐지 카페활동도 , 모임에도 참석하지않아서 의아하긴 했습니다. 헌데 왜 죽은건가요?"
"현재로써는 정확하게 말씀드리기가 어렵고, 김미진씨와 박철운씨 관련해서 조사를 하고있습니다."
"박철운...박철운.."
그는 박철운의 이름을 조그맣게 말하기 시작하더니 이제야 생각이 난다는듯 대답했다.
"아..! 생각이 나네요 재작년인가 화악산 모임에 한번 참석했었던... 그런데 왜요? 박철운 그사람이 미진이를 죽인겁니까?"
"아직 정확하게는 아니고 그건 경찰에서 조사를 진행중입니다. 저는 박철운씨를 변호하는 변호사이구요."
"근데 제아이디는 어떻게 아셨어요..?"
"김미진씨나 박철운씨 지인들과 대화를 하다가 여기까지 오게되었구요 나름대로 제가 정보를 모아서 찾게 되었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물론 서에서 보관된 미진씨 핸드폰을 살펴보면 '밤새'님 연락처를 찾을수있겠지만,
그렇게 하기엔 부담스러우실것같아 이렇게 인터넷으로나마 연락을 드린겁니다. "
물론 거짓말이였다. 김미진 핸드폰을 조사해봐야 시간도 오래걸리고 그의 카페 닉네임도 알수없고,
불안해진 그가 인터넷 흔적을 지울수도있으니 원하는 정보를 알아내려면 이쪽이 더 용이했다.
"그렇군요... 미진이가 죽었다니 상당히 충격적이군요 그래도 가끔 연락하던 사이였는데.."
"네 놀라게해드렸다면 사과드립니다. 다만 어떻게보면 , 미진씨의 지인이시기도 하니까 미진씨의 와전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고 벌을 받아야할사람은 받게하고 그런게 법적절차의 일부분 이니까요. "
"뭐, 그렇죠... 그래서 뭘 물어보고 싶으신거죠?"
"미진씨와는 정확하게 어떤 사이셨습니까?"
"음... 그냥 알고지내기도하는데, 친하다고보기엔 좀 애매하고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모임 사람일뿐이죠."
"혹시 연인관계였다던가 만나면서 알아가던 사이라던가...?"
"아니요. 그렇진 않아요 잠자리를 같이 하긴했지만 , 그냥 서로 즐긴거죠. 서로에게 스쳐가는 사람들중 한명이였달까.."
"아, 그렇군요 솔직한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혹시 미진씨와 철운씨의 사이는 어떻게 알고계신가요?"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몆초간의 침묵이 이어지더니 다시 대답이 들려왔다.
"글쎼요 제기억으로는 박철운과 미진이가 함께있는모습을 본건 그때가 마지막이자 처음이였어요
음.. 근데 뭐랄까... 굉장히 의외였죠. "
"무엇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듯 준식이 말끝을 흐리자, '밤새' 는 대답을 이어갔다.
"솔직히 미진이 외모가 되게 예쁘거든요. 근데 그에 비해 박철운이는 미진이가 넘어갈정도로 대단하진 않아요.
그래서 상당히 의아하긴 했습니다. 미진이 정도면 상당히 괜찮은 남자들이 줄을 설텐데 잠시 즐기는 사이더라도
박철운이를 골랐다는게...좀 그렇죠.."
"아, 어울리지 않았다는거군요."
"네 이렇게 비교하기는 좀 뭐하지만, 철운이는 제가 처음봤지만 좀 내성적으로 보였었고 외모도 평범했거든요.
직업은 말을 하지않아서 잘 모르지만... 뭐 넉넉해 보이진 않았어요. 그렇다고해서 싹싹한 성격도 아닌것 같았고..
제가 알던 미진이는 그래도 그럭저럭 벌이가 괜찮고 외모도 반듯한 남성들만 만났거든요.
미진이가 워낙 예쁘니까...."
"아, 밤새 회원님은 미진씨가 만나오던 남자들을 모두 알고계신겁니까?"
"아니요 그게 아니라 , 그.. 이렇게 말하기 좀 그렇지만, 미진이가 평소에 남자를 혹 하게하는 무언가가 있어요.
팜므파탈 이랄까? 하하.. 잘 홀린다고 해야하나 그런게 좀 있어요. 굉장히 매력적인 여잔데, 같이 잠자리를 해도
사귀자는 말은 안해요. 몸은 쉽게 줘도 마음은 주지않는것 같아요.
여기 모임에서 남자들한테 인기도 많았었고 그러다 보니 이남자 저남자 만나고 다니기도
했고, 뭐 그래서 여기 여자회원들이 미진이를 좋게 보지는 않았어요. 질투 뭐, 그런? 하하.. 뭐 그런거죠.
저는 미진이랑 계속 만나볼 마음이 있었는데.. 한번 만나고는 언제한번 진지하게 만나자해도 거절하더군요."
준식은 '밤새' 회원의 댓글을 떠올렸다. ' 우리 미진이 철운이랑 다정하게 찍었네 ' 라는 글은 필시 질투였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얼추 아다리가 맞았다.
"근데 정말 미진이와 박철운이 실제로 사귀는 사이였나요?"
"뭐, 박철운씨의 말은 그랬습니다. 원래 사람은 자기 자존심을 보호하기위해서 그럴싸한 변명도 늘어놓기 마련이죠"
"음.. 그렇죠 남자에게있어서 여성에게 거절당하는것만큼 치욕스러운 상황은 없는거죠 저도 겪어봤으니..흐흐"
"혹시 최근에 만난적이나 연락을 했던적이 있습니까?"
"어... 마지막으로 본게 대충 두달 전 이고요 그때도 하루를 같이보냈습니다. 그냥 가볍게 만났죠.
뭐 그 이후로는 저도 연락을 잘 안했어요 거절당하니까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좀 자괴감이 들어서"
두달전이면 박철운이 사귀었다고 주장한 육 개월의 기간과 겹치게된다. 그렇다면, 김미진의 입장에서는 박철운과 사귀는 사이가 아니게되고, 박철운도 그냥 많은 남자들중 한명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감사합니다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귀찮고 부담스러우셨을텐데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변호사님도 저 배려하셔서 이렇게 인터넷으로 연락주신거고, 또.. 잠깐 즐긴사이라지만 , 미진이도 참
안됐고.. 괜찮은 여자였는데.. 혹시 장례는 치뤘나요?"
"아니요 아직 부검실에 있는걸로 알고있습니다."
"그럼 변호사님께 저도 부탁한가지만 하겠습니다. 미진이 부검이 끝나면 저에게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미진이는 가족도 없는걸로 알고있거든요. 저도 근근하게 먹고살고있다지만, 그래도 미진이를 알던 지인으로써
약소하게나마 장례를 치뤄주고 싶네요. 우리 등산 모임회원들도 같이."
"네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바쁘실텐데 쉬십시오"
"그럼..,"
전화를 끊은 준식은 이제서야 허리를 잔뜩 피고 양팔을 들어 기지개를 켰다.
남자들 특유의 암묵적인 의리가 잠깐 만난 사이에도 존재한다는건 준식을 조금 웃게했다.
뭔가 조금 짠내 난달까..
그러면서도 준식은 " 나도 동호회나 들어볼까 ? "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핸드폰 액정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연히 그와는 맞지 않을 터 였다.
-
'밤새' 회원과의 통화로 공책에 아무렇게나 글씨를 휘갈겨쓰며 준식은 생각을 정리하기시작했다.
철운은 미진과 사귀는 사이라고 주장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였다. 핸드폰 데이터로 보게된 연락패턴이나
등산 모임 회원인 '밤새' 의 말에따르면, 더더욱 그랬다. 둘은 등산모임에서 만났고 , 화려한 김미진은 남들이 보기엔 상대적으로 다소 부족한 박철운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를 받아들였고 가벼운 만남을 했다.
김미진의 입장에서는 그게 끝이였지만, 박철운 입장에서는 진지했다.
조금 웃겼다. 이런것이 멀리서보면 비극이고 가까이서보면 희극이라 했던가?
준식은 태식과의 통화를 떠올렸다.
그는 철운과 미진이 정말로 만나는사이인줄로만 알고있었던 것이다.
물론 , 친한사이가 아니였으니 철운이 그렇게말하는대로 알고있었을것이다.
다만, 박철운의 변호를 맡고있으면서도 그가 살인을 저질렀는지 아니면 무고하게 죄를 뒤집어 쓴것인지
무엇보다 박철운이 어떤사람인지 명료하게 답을 내릴수 없으면서도 자신과 비슷한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
준식은 이제 미지근해진 커피를 마셨다.
창밖을보니 한 바탕 소나기가 퍼붇고 있었다.
사무실 창에 흐르는 빗물을 쳐다보며 준식은 의자 다리받침대를 펴고 피로한 몸을 편안하게 의자에 뉘였다.
소크라테스의 말은 틀렸다. 박철운은 악처를 얻고 , 철학자가 되진 못했으니 말이다.
라고 생각하며 준식은 눈을 감았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요한복음8:44
어느새 비는 그쳤는지 더이상 빗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날씨는 벌써 어둑해져있었으며, 다행히도 준식의 사무실은 그가 잠을잘수있는 여건이 충분히 준비되어보였다.
지금까지 정보들을 모으고 퍼즐들을 맞추기 시작하자 복잡하지만 구색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박철운은 김미진을 죽였다. 사실을 들추어 보자면, 박철운은 김미진을 사랑했지만, 김미진의 입장에서는
박철운이 연인관계가 아닌, 잠시 가벼운 상대라고 생각을했고, 박철운은 혼자 집착했다 혹은 착각했다.
그 증거로 김미진의 핸드폰속 남자들과의 연락을 보거나 , 김미진의 지인인 '밤새' 회원의 증언이 나의 주장을
뒷받침해줄것이다.
하지만, 이를 재판부에서 단순한 치정살인으로 결론을 낼 확률이 농후하기에 나는 박철운의 무고한점을
입증하기위해 다음과 같은 '보기'들을 추려냈다.
첫번쨰로 박철운의 정신상태 , 그가 사람들과 많은 교우와 사회성이 결여된 점을 들어 정신감정을 받을것이고,
그로인해 재판을 유리하게 가져갈것이다.
두번째로 술을 많이 마신 박철운의 상태를 이유로들어 심신미약과 첫번째의 이유로 약한 정신상태를 근거로
감형 혹은 정신병원수감으로 이끌것이다.
지금으로써 그를 변호할 최선의 방법은 이것이 최선인듯 싶었다.
준식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창문앞에 서서 비가오고 난 촉촉한 거리풍경을 바라보며 연기를 들이켰다.
문득 준식은 이 모든것들이 쓸데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중간이나 남은 담배를 비벼끄고는
사무실의 하얀색 간이 침대로 몸을 뉘였다.
내일 있을 박철운과의 마지막 만남을 위해 충분히 잠을 자둘 필요가 있었다.
-
좀 어두운 방안, 준식이 처음 철운을 만났던 그 방에서 이제 그는 종이다발을 들추어 보지도않았고,
그저 테이블 위에 담배와 라이타 그리고 재떨이만이 덩그러니 놓여져있을뿐이였다.
사실상 처음부터 너무 확실한 살인 범죄였기에....
이제 준식이 박철운을 설득할 일만 남은것이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앉아있는 준식의 표정은 마치 ,박철운이 그가 원하는대로 잘 따라와주기를
바라는듯 걱정하는 표정의 모습 같았다.
철컥 -
문을 열어주는 경찰의 모습뒤로 박철운이 걸어들어왔다.
그는 익숙한듯 앉아있던 준식에게 가벼운 목례를 보이고는 전보다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문이 닫힌것을 확인한 철운은 준식을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군요 변호사님 "
"네 , 지내기 힘들진 않습니까 ? "
"뭐, 다 그런거죠 차차 익숙해지고 있어요."
준식이 철운에게 담배를 꺼내들어 보이고는 옅은 미소와 함께 준식쪽으로 밀면서 말했다.
"자 , 자유시간입니다."
그러자 철운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좋죠."
둘은 잠시 담배를 피우며 조용히 있었다
그리고 먼저 침묵을 깬건 황준식 쪽 이였다.
"철운씨,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나 증거들로보나 살인을 저지른것은 철운씨가 맞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제가 변호를 포기한것은 아니고, 몇가지 철운씨가 양형을 받을수있는 조건들을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자 편안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던 철운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준식씨 , 저는 죽이지 않았다고 말씀 드렸는데요 ."
준식은 미간을 구기고는 깊은 한숨과 함께 다시 입을 뗐다.
" 철운씨가 제게 거짓말을 한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나는 정확한 상황을 알 필요가 있었어요.
나는 철운씨의 무고함을 입증하려 노력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피할 방법은
언제든지 있는법이죠."
그러자 철운은 자신이 피우고있던 담배를 내동댕이 치더니 신경질적으로 의자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나,난 죽이지 않,않, 았다고 !!! "
"이봐요, 철운씨 진정하세요!"
당황한 표정의 준식을 전혀 개의치 않는듯 철운은 준식의 코앞까지 다가와 말했다.
"유일한 네편인 어머니는 죽었지만, 우리는 한팀이잖아 ? 준식씨? 우린 그동안 잘해왔다고! "
그는 놀란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있는 준식을 내려다보며 말을이어갔다.
" 니가 어렸을때 친구의 이마를 돌부리로 찍었던것 처럼 단순한거라고 그건 사고였었잖아. 그건 그자식이
너를 모욕한거였고 너는 그에 맞게 보답한것뿐이야 이것도 그뿐이라고 안그래 ? "
얼이빠진 표정의 준식은 대답했다.
"그,그걸.. 니가 어떻게..... 니가 나를 어떻게.. ,당신 누구야..?"
그러자 , 철운은 그런 준식을 어이없다는듯이 쳐다보더니 허탈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 내가 누구냐고?"
"난, 너야..... 바로 너라고...!"
철컥 -
뚜벅뚜벅 -
그때 갑자기 문이열리고 , 경찰 제복을 입은 남자 한명이 걸어들어왔다.
"그쯤 해둬라 박철운 , 황준식은 아직 준비가 안됐어. 받아들이기 힘들거야."
그러자 , 박철운은 그 남자를 힐끗 쳐다보더니 준식의 멱살을 쥔 손을 놓으며 대답했다.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구요. 이제 코앞까지 위기가 왔는데, 준식씨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는게..."
길길이 날뛰던 철운은 남자를 보자 주늑이든듯 눈치를보며 작게 말했다.
남자는 얼이빠진채 자신을 쳐다보는 준식에게 말했다.
"내가 설명해주지 , 이 모든 상황을..."
-
경찰 제복을 입은 남자는 말을 이었다.
"원래 자아의 주체는 박철운이야 , 나는 니가 친구의 이마를 돌부리로 찍을때부터 만들어진 놈이지,
그동안 오랜 잠을 자고있었지, 황준식 너는 우리가 정신병동에 갇히고나서 생긴 놈이니까 잘 몰랐을꺼야.
그래도 우리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공유하니까...
똑똑한 변호사 새끼라 이해가 빠를줄 알았는데, 눈치가 너무 없구만."
준식은 멍한 표정으로 머리를 매만지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는 너만의 '정의' 이고 모든걸 판단해서 행동으로 실천하지 하지만 좆같은 법 따위는 신경쓰지않아.
너는 나고 나는 너고 우리는 모두 하나였으니까.. 너에게는 먼저 말하지 않는 편이 나을것 같다고 판단했어
니가 이 사실들을 받아들이기는 힘들꺼고, 네 성격상 사실을 알면, 우리를 변호하려 하지 않을꺼니까."
남자는 빙긋 웃어보이며, 말을이어갔다.
"그래 , 널 이용한거고, 내가 미진이를 죽였다. 우리를 배신한 그 걸레같은 년을 죽여버렸지 근데 그게 잘못된거야?"
잠자코 듣고있던 철운이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여,역시.. 당신이...! "
남자는 철운을 한번 쳐다보더니 말했다.
"너의 분노가 나를 움직였지 박철운 너도 나와함께 그녀를 죽인거야."
그러자 철운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외쳤다.
"아니야..!! 난, 죽이지 않았어!!!! 난 그녀가 죽길 바라지 않았다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철운을 바라보던 남자는 다시 준식을 향해 말을 이었다.
"죄 의식이 만든 저 박철운이라는 쓸데없는 놈은 변명꺼리밖에 만들어내질 못해.
차라리 논리적인 넌 쓸모라도 있지 , 하지만 너희들보다 나는 훨씬 주체적이다.
나는 생존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기에 , 너희들이 잘 모르는 외부 위험상황에대한 판단을 내린다
바꿔말해서, 공격성은 생존과도 연결되있지 , 그러기에 지금 여기 내가 온것이고,
우리가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게 된 이유는 아마도 우리 외부에서 자아를 하나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중인것 같아."
남자는 잔뜩 미간을 찌뿌린채로 박철운을 잠깐 노려보다가 준식을 보며 말을이었다.
"이 멍청한 새끼가 글쎄 저 늙은 뱀같은 의사가 준 약이나 처먹고
군말없이 주사도 맞아가며 아주 말을 잘 들어준 덕택에 상황은 아주 좆같아졌고 ,
내 본능은 위험을 감지한거야,
내 생각에는.. 아마도 나를 먼저 제거하려 들꺼야. 당연히도 나를 위험분자로 봤겠지....
너희들도 그렇겠지만.. 나는 사라지고 싶지않아. 그리고 너희들만 없으면, 나는 이 상황을 벗어날 자신이 있지"
씨익 웃어보이던 남자의 표정이 서서히 무표정으로 바뀌더니
남자는 재빠르게 허리춤에 총을 뽑아 앉아있던 철운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 !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였다.
끔찍한 소음과 함께 , 철운의 뒤통수로 피가 솟구치며 철운은 그 자리에서 말없이 쓰러졌다.
바로 그때, 앉아있던 준식이 들고있던 담배를 남자의 얼굴을 향해 날렸다.
"으앗!
눈에 날라온 담배를 손으로 휘젓던 남자의 총부리가 준식이 앉아있던 의자로 향했으나
그자리에 준식은 보이지않았다.
두리번 거리던 남자가 다시 철운이 앉아있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준식이 휘두른 의자가 남자의 얼굴로 날아왔다.
퍼억 -
쿠당탕 -
휘리리릭 -
그대로 꼬꾸라진 남자의 손은 권총을 놓쳐버렸고 , 총이 바닥을 미끄러지듯 원을그리며 나뒹굴었다.
바닥에서 엎치락 뒤치락 하는 두남자 .
그리고 , 곧 누군가의 손이 총을 집었다.
타앙--!
폭죽이 터지듯 빨간 핏방울들이 흩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