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위험한 호기심 part.3 last
"이 녀석들!"
뒤돌아보니 그곳에는 야간 회진 중인 간호사가 꽤 화난 기색으로 서 있었다.
"내가 못 살아, 준!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어! 소등 시간 지나서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했잖니! 그리고 친구도 말이야. 면회 시간은 한참 지났잖아!”
"네, 네…. 야, 그럼 조만간 또 와!"
간호사는 준이 앉은 휠체어를 밀고 병실로 돌아갔다.
“그래! 일단 조심하고!”
나도 일단 집에 가려고 들어올 때 지났던 응급실 출입구로 향했다.
역시 밤에 보는 병원은 으스스했다. 아까까지 그 여자 얘기를 해서 그런가, 생각하며 걷던 도중…
응?
복도 끝에 누군가가 있다.
저건… 청소부 아줌마…? 아니…
중년 여자인가?
중년 여자 같은 사람이 뭔가 하고 있다…
틀림없어! 중년 여자다!
저 앞에 있는 출입구 근처에서 뭔가 하고 있어!
나는 바로 몸을 숨기고 중년 여자를 주시했다.
아무래도 내가 있는 줄 모르고 뭔가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뭔가 하고 있다.
눈을 부릅뜨고 잠깐 계속 중년 여자를 관찰했다.
큰 봉투를 뒤적거리더니 다른 쪽으로 소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중년 여자는 아직도 내가 있는 줄 모르고 필사적으로 뭔가 하고 있었다.
혹시 병원에서 수거한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고 있나? (우리 동네는 쓰레기 분리수거가 필수였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아직도 있었니? 나도 여기 놀러 온 거 아니니까 적당히 좀 하렴!”
아까 그 간호사였다.
"아, 아니, 갈게요! 죄송합니다…"
깜짝 놀라 엉겁결에 대답한 뒤 출입구로 눈을 돌리자, 중년 여자가 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지그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간호사는 나 참, 하고 투덜거리더니 다시 회진하러 돌아갔다.
아니, 그럴 때가 아니지! 중년 여자한테 들켜버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도망갈까?
아까 그 간호사한테 도와달라고 해야 하나?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고, 심장은 기세를 올리며 쿵쿵 뛰었다.
한동안 중년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는데, 중년 여자는 오히려 내게서 시선을 떼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쓰레기를 분리 수거하기 시작했다.
‘어!?’
망설여졌다. 생각지도 못한 행동 때문에…
'나한테 덤벼든다.'
'날 계속 쳐다본다.'
‘날 보며 히죽 웃는다.’
머릿속에서는 이렇게 저쪽이 나랑 관련된 행동을 취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잠시 우뚝 선 채 중년 여자를 보고 있었지만, 묵묵히 쓰레기를 분리 수거할 뿐 날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무슨 전략인가?’
그런 의심이 든 순간, 내 뇌리에 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중년 여자랑 청소부 아줌마는 다른 사람이다?’
역시 닮았을 뿐인 타인인가…?!
준이랑 내가 너무 의심이 많은 건가?! 역시 중년 여자랑은 완전히 다른 사람인가?
그렇게 혼자 고민하는 동안에도 그 여자는 묵묵히 일하고 있었다.
큰맘 먹고 출입구 쪽으로 걸어 나갔다. 다시 말해, 그 여자 근처로…
여자와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졌지만, 나를 쳐다볼 기색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걸었다…
순식간에, 아무 일도 없이, 나는 그 여자의 등 뒤까지 다다랐다.
여자는 열심히 쓰레기를 분리 수거하고 있었다.
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대량의 쓰레기를 ‘타는 쓰레기’, ‘안 타는 쓰레기’, ‘페트병’으로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역시 다른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여자가 확 이쪽을 쳐다봤다.
"많이 컸구나~."
내게 말을 걸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많이 컸구나?? 많이 컸구나 라고????’
이 사람, 내 과거를 알고 있어?
이 사람, 누구야??
이 사람, 중년 여자인가???
이 자식, 역시 중년 여자야!!
그 여자는 일을 멈추고 고무장갑을 벗으며 내게 다가왔다. 싱글벙글 웃는 표정이었다.
난 대체 무슨 반응을 해야 하지??
분명 엄청나게 공포에 질린 반응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여자는 내 눈앞까지 다가와 물었다.
“잘 컸구나… 지금 몇 살이니? 고등학생인가?"
이 여자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뭐야?
지금 장난치자는 거야?
공포에 질린 나를 갖고 노는 건가?
대체 뭐야?
내 반응을 즐기고 있는 건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여자는 다시 말을 이었다.
"친구도 많이 컸더라…준… 불쌍하게도 뼈가 부러졌다고… 거기 오빠도 평소에 조심하도록 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몇 년 전에 우리한테 한 짓을 잊어버린 거야?
우리에게 공포의 트라우마를 심어준 장본인의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여자는 더욱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또 한 명 있었는데…걔는 잘 지내니? 피부가 까만 아이 있었잖아?”
!! 분명 신이다!
대체 뭐야 이 자식!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처럼 굴고 있어…
제정신이 아니야…일부러 이러는 건가?
뭔가 목적이 있어서 이러는 건가?
나는 중년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그 여자의 동향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 자식…자기가 무슨 말 하는 건지 알고는 있는 건가?’
"그때는 미안했어… 용서해 줄래?"
중년 여자가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말없이 조금 뒤로 물러섰다.
"원래는… 좀 더 일찍 사과하는 게 맞는데…"
나는 귀를 의심했다.
이 자식, 진심으로 사과하는 건가…? 아니면 뭔가 꾸미고 있는 걸까…?
마침내 중년 여자는 손 뻗으면 닿는 범위까지 다가왔다.
"3명 모두에게 제대로 사과하고 싶었어… 정말이야…"
그러면서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내 키가 20cm 정도 더 컸고 체격도 당연히 내가 더 좋았다.
만약 중년 여자가 내게 손가락 하나라도 닿으면, 냅다 때려눕히겠노라 생각했다.
중년 여자는 날 올려다보는 듯한 모습으로 내 눈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 눈에는 어떤 원한, 증오, 분노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어, 끔찍한 일을 저질렀지…"
중년 여자는 사과의 말을 늘어놓았다.
나는 더 이상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달려 나가 그곳을 떠났다.
뛰어가다가 ‘만약 쫓아오면 어쩌지…’ 하고 뒤를 돌아봤지만, 중년 여자는 없었다.
어떻게 보면 맥 빠지는 상황이었다.
달리기를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생각했다.
아까는 정말 진심으로 사과하고 있었던 걸까?
중년 여자를 믿을 수가 없었다. 의심밖에 할 수 없었다. 뭐, 그 사건도 있었으니 당연하다만.
나는 종종걸음으로 방금 있던 곳까지 돌아갔다.
그곳에는 다시 고무장갑을 끼고 대량의 쓰레기를 분리 수거하는 중년 여자가 있었다.
이 자식, 정말로 개심한 건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 옛날의 그 중년 여자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그날은 그냥 집에 갔다.
내 방 침대에 누워 혼자 생각했다.
인간이 저렇게까지 변할 수 있을까…?
옛날에, 요괴 같은 모습을 한 채 해피와 터치를 죽이고, 나를, 신을, 준을 몰아붙이고, 심지어 방화까지 하려고 했던 녀석이…
‘미안해’라며 속죄의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는 걸까…
아니, 혹시 그 사건을 계기로 내가 변해버린 걸까…?
의심이 많고 다른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차가운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중년 여자의 사죄를 믿음으로써, 그 사건의 족쇄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중년 여자를 다시 한번 만나 직접 얘기해봐야 했다…
나는 중년 여자를 다시 만나기로, 그리고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날은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르바이트를 쉬고 병원에 갔다.
먼저 준의 병실에 들어가 어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리고 오늘은 중년 여자를 만나 직접 얘기해 볼 생각이라고 전했다.
처음에 준은 중년 여자는 변하지 않았다며 반대했다.
“그럼 이대로 평생 중년 여자의 존재에 겁먹고 평생 트라우마를 안은 채 살 거야?”
나의 말에 준은 생각이 바뀐 듯 대답했다.
"...중년 여자랑 만나서 얘기할 거면, 나도 같이 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시시각각 시간은 흘러 면회 시간 종료를 알리는 벨 소리가 울렸다.
“드르르르륵…”
동시에 복도 안쪽에서 쓰레기 운반 대차 소리가 들려왔다.
“…왔다…”
준이 중얼거렸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병실 문을 쳐다봤다.
“드르르륵.”
대차 소리가 병실 앞에서 멈췄다.
병실 문이 열렸다.
작업복 차림의 중년 여자가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고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나랑 준은 그 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중년 여자는 안쪽 침대부터 차례로 쓰레기통에 있는 쓰레기를 수거하기 시작했다.
“수고하십니다.”
환자의 말에 웃으며 고개 숙여 인사하는 중년 여자. 도저히 예전의 중년 여자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중년 여자가 준의 침대까지 쓰레기를 수거하러 왔다.
중년 여자는 우리와 일절 눈을 마주치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한 뒤 쓰레기를 수거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잠시 중년 여자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준이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
"아줌마! 대체 무슨 꿍꿍이야?"
중년 여자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 채 그 자리에 멈춰있었다. 준이 계속 말했다.
“당신 나 기억하고 있지? 나한테는 사과 한마디도 안 해?”
가슴이 두근거렸다. 설마 준이 갑자기 화난 어조로 말할 줄은 몰랐다.
중년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가느다란 목소리를 냈다.
"……미안해……"
준은 그 솔직한 대답에 놀랐는지 멍하니 날 바라보았다. 나는 중년 여자에게 다시 물었다.
"…아줌마… 정말 반성하고 있는 거지?"
그러자 중년 여자는 이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정말 미안해요. 내가 그런 짓을 하는 바람에 준이 사고를 당해서…… 내가 그런 짓을 하는 바람에……정말 미안해!"
나랑 준은 그 말에 더욱 어안이 벙벙했다. 뭔가 얘기가 안 맞지 않아?
나는 다시 말했다.
“아니, 내 말은, 당신 옛날에 개한테 몹쓸 짓도 했고, 우리 집에 찾아오기도 했잖아…그거 다 통틀어서 반성하냐고!”
그러자 중년 여자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말 미안해요! 내가, 내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사고는…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 태도를 보고 대화를 듣고 있던 병실 내 환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을 주목하고 있었다.
조용한 병실에 중년 여자의 목소리만이 울렸다.
"미안해!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준은 약간 부끄러운 듯이 내뱉었다.
“이제 그만해! 애초에 내가 사고당한 건 당신이랑 아무 상관 없어!”
중년 여자는 굽신굽신 고개를 숙이며 준의 쓰레기를 수거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얼거린 뒤 허둥지둥 병실을 나갔다.
주변 환자들까지 그 광경을 전부 보고 만 바람에 잠시 병실에 이상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준은 베개를 퍽 때렸다.
'뭐야 저 아줌마!! 난 그냥 사고당한 것뿐이야…뭘 착각하고 앉아 있어!"
나는 중년 여자의 언행을 보고 들으며 확신했다.
역시 중년 여자는 조금 이상하다.
진심으로 사과한 건 맞겠지만 그 자식은 저주의 의식을 치른 것을 사과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저주를 믿는 듯했다.
준은 마치 앓던 이를 뽑은 것처럼 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나한테는 엄청나게 무서운 존재였고,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서 조금 쫄긴 했지만… 아까 얘기해보고 느꼈는데 그냥 단순히 오컬트 신봉자인 이상한 아줌마더라고!"
나 또한 준의 말에 맞장구쳤다.
“맞아, 어렸을 때랑 달리 지금 우리가 몸집도 더 크고 말야!”
"자, 일단 문제는 해결됐고, 나 집에 간다!"
"그래! 또 한가할 때 놀러 와라!"
나는 병실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는 길에 신 생각이 났다.
이 사실을 그 녀석한테도 말해줄 것이다.
그 녀석한테도 이번 이야기를 들려주면 분명 그날의 트라우마가 사라지지 않을까.
집에 오자마자 신이랑 같은 축구부였던 놈한테 전화를 걸어 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물었다.
그러고 나서 신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오! 오랜만이다!"
그리운 신의 목소리.
신이랑 잠시 안부를 물은 후, 준이 사고가 나서 입원했고, 그 병원에서 중년 여자가 청소부로 일하고 있고, 중년 여자가 옛날과는 다른 사람처럼 개과천선했다고 이야기했다.
신은 중년 여자가 사과했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이 말했다.
"준이 퇴원하면, 우리 셋이서 회복 축하 파티하자."
물론 나도 찬성했고, 준이 퇴원하는 대로 연락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병원에 가서 준에게 전했다.
“신이 그러더라. 너 퇴원하면 모여서 같이 회복 축하 파티하자고!”
준은 매우 기뻐했다.
그 이후로 일주일 정도 병원에 문병 가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어서 갈 시간이 없기도 했다.
게다가 중년 여자는 갱생한 것 같았으니 예전처럼 걱정되지도 않았다.
무슨 일이 있으면 준이 나한테 전화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준한테 전화가 왔다.
다음 주에 퇴원한다는 것이었다.
다행이라는 축복의 말과 함께 중년 여자의 동향을 물었지만, 그냥 쓰레기 수거 일을 하고 있으며 딱히 아무 일도 없다는 답을 받았다.
그리고 일주일이 더 지나, 준은 퇴원했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준의 집에 들렀다.
초인종을 누르자 준이 목발을 짚고 나왔다.
“야! 들어와!”
다리에는 여전히 깁스를 하고 있었지만, 완전히 건강해 보였다.
나랑 준은 방에서 잠시 잡담을 나눴다.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신에게 전화했다.
"야, 준 퇴원 했다!"
"진짜?! 그렇구나. 그럼 회복 축하 파티해야지! 당장이라도 가고 싶긴 한데, 동아리 활동 때문에 바빠서 내가 이번 달 말쯤에 그쪽으로 갈게!"
그리고 월말 토요일.
나랑, 신이랑, 준…
초등학교 이후로 오랜만에 세 사람의 재회였다.
낮에 역 앞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신은 겨울인데도 거무스름하게 살이 타서 약간 남자 갸루 같았다.
뭐, 어쨌든 우리는 저녁까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 고등학교 이야기.
사랑 이야기.
옛날 추억 이야기…
물론 중년 여자 이야기도 나왔다.
그때 우리 모두 무서워했던 중년 여자도 지금은 그냥 청소부 아줌마.
나랑 준이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자, 신은 웃어넘겼다.
"그때랑은 달라. 지금은 그 자식이 우릴 공격해도 바로 날려버릴 수 있잖아!"
이제 우리한테 중년 여자는 과거의 인물, 아주 먼 옛날이야기였고 더 이상 트라우마도 아니었다.
저녁이 되어 우리는 노래방에 갔다.
정말 오랜만에 세 사람이 만나는 것이기도 했고, 재회를 축하할 겸 술을 주문했다.
뭐, 술이라고 해봤자 고작 츄하이였지만…
그래도 그때의 우리가 취하기에는 충분했다.
각자 4, 5잔 정도 마셨고, 모두 알딸딸하게 취해 있었다.
기분 좋게 노래를 불렀고, 상당히 흥이 오른 상태였다.
그리고 두 시간 후, 노래 부르는 것도 질려가던 참에 신이 제안했다.
“좋았어, 지금부터 비밀 기지로 간다! 그때 버리고 간 해피랑 터치를 위해 공양하러 가는 거야!”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나랑 준 둘 다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그래도 그곳에 가자니…예상치 못한 발언이었으니까.
신은 그런 우리를 도발하듯이 약간 술주정을 부리고 있었다.
"니들 진짜 여전하구나! 진짜로 쫄았냐?! 하핫!”
그 말에 술 취한 준이 화를 냈다.
"뭐? 쫄긴 누가 쫄아! 신, 니 지금 시비 거냐?”
나 또한 취했지만, 우선 눈치를 보며 둘을 말렸다.
“야야, 그만해! 애초에 준 아직 목발 짚고 있잖아.”
하지만 신은 기다렸다는 듯 마구 술주정을 부렸다.
"아, 맞네…목발 짚고는 못 도망가지? 하하하!"
준은 점점 더 화를 내고 있었다.
"닥쳐라! 가고 싶으면 가자, 그래! 니야말로 중간에 쫄아서 튀지나 마라?”
마치 어린애 싸움처럼 되어버렸고, 결국 해피랑 터치의 명복을 빌러 가자는 구실로 그곳에 가게됐다.
신이랑 준은 둘 다 꽤 취하기도 했고, 물러날래야 물러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해피랑 터치의 공양은 언젠가 해야 하긴 했으니, 조금은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셋이면 덜 무서울 거고.
노래방을 나와 편의점에 들러 해피랑 터치가 제일 좋아했던 과자랑 콜라를 샀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일단 우리 집에 들러 조명도구를 챙긴 뒤 초등학교 뒷산으로 향했다.
우리는 택시 기사의 의아한 시선을 받으며 산 입구 앞에서 내렸다.
셋이서 자주 놀곤 했던 뒷산에 대한 그리움과 동시에 그날의 사건이 떠올랐다.
이렇게 늦은 밤에…다시 들어가게 된다니…
“자, 이제 들어가자!”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준은 의기양양하게 목발을 짚으며 성큼성큼 나아갔다.
그 뒤에서 신이 히죽히죽 웃으며 랜턴을 들고 따라갔다.
"준, 발밑 조심해라!"
나는 신의 뒤를 따라갔다.
막상 산에 들어가 보니 옛날과 많이 바뀐 풍경에 놀랐다.
아니, 풍경이 바뀐 게 아니라 우리가 컸기 때문에 다르게 보이는 건가?
“중년 여자 있으면 어쩔 거냐? 난 너 두고 도망갈 건데~."
신이 산을 오르면서 준을 놀리듯이 농담을 던졌다. (물론 나는 진짜로 도망갈 거지만)
생각보다 순조롭게 나아간 끝에 30분 정도 걸려 그곳에 도착했다.
그곳, 우리가 처음 중년 여자를 마주쳤던 곳…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랜턴을 비추며 그 나무에 다가갔다.
그날, 중년 여자가 저주 의식을 하고 있던 나무…
가까이 다가가 빛을 비췄다.
지금은 아무것도 박히지 않은, 평범하게 커다란 나무였다…
하지만 오래된 못 자국은 남아있었다.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아마 경찰이 다 뽑아낸 거겠지.
우리 셋은 잠시 못 자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이 땅에 불빛을 비췄다.
“여기 근처에서 해피가 죽었지…”
당연히 더 이상 해피의 사체는 없었지만, 그 장소만큼은 확실히 기억한다.
나는 그 자리에 과자랑 콜라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셋이서 손을 모아 기도하고, 다음은 터치 곁으로…비밀 기지가 있었던 공터로 향했다.
비밀 기지로 가는 길에 준이 넌지시 말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역시 추억이네……”
그러자 신이 대답했다.
"맞아……만약 그날 밤 비밀 기지에서 자고 가지 않았다면, 나쁜 추억은 없었을 텐데."
그러게, 정말로……
만약 이 산에서 중년 여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곳은 우리의 성지가 되었을 것이다.
"이 근처였지……"
신이 멈추어 섰다.
비밀 기지 공터.
이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날 뿔뿔이 흩어져 있던 나무 한 조각조차 없었다.
준은 말없이 쪼그리고 앉아 과자랑 콜라를 놓고 손을 모았다.
나랑 신도 손을 모아 기도했다.
잠시 묵념한 후에 신이 말했다.
"만약 해피랑 터치가 없었다면……우린 지금쯤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몰라."
“맞아……”
"그렇지……결국 중년 여자도 개과천선하고…… 뭔가 드디어 악몽에서 벗어난 것 같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신은 주변이랑 눈앞에 있는 연못 부근을 랜턴으로 쓱 비추고 있었다.
“여기, 그때는 우리만의 비밀 장소였는데, 지금은 꽤 오는 사람들 많나 보다.”
신이 빛을 비춘 곳을 보니 과자 봉지랑 빈 깡통이 여기저기 꽤 떨어져 있었다.
“진짜네. 그때는 쓰레기 하나도 없었는데. 요즘 초등학생 애들도 여기 알고 있나?"
“그때 우린 착실하게 쓰레기는 집까지 가지고 갔잖냐……”
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신의 비명이 들렸다..
"으아악!! 뭐야 이거!!"
준이랑 나는 그 목소리에 놀라 신이 들고 있던 랜턴이 비추는 곳을 바라보았다.
나무 한 그루에 쓰레기 같은 게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무수한 과자 봉지랑 빈 깡통, 잡지가 나무에 못으로 박혀 있었다.
"이게 뭐야?!"
신이 랜턴을 비추며 다가갔다.
나랑 준도 뒤를 따라갔다.
"누가 장난친 건가?"
나는 못 박힌 쓰레기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순간.
"아아아아……이거……내……쓰레기…………아아아아아……”
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경직되었다.
“뭐?!”
나랑 신이 되묻자 준은 뒷걸음질 쳤다.
"아아아아……내가, 병원에 버린……아아아……"
"야!! 준!! 정신 차려!! 그럴 리가 없잖아!!"
신이 고함을 지르며 못 박힌 과자 봉지 한 장을 뜯어냈다.
"아아, 아아아…"
그걸 본 준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랑 신은 그 행동에 놀라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으아악!!”
신이 손에 든 봉지를 던졌다.
"뭐야?!"
내가 봉지로 시선을 옮기자, 봉투 뒤에 그것이 있었다.
[ 준 저주해 죽인다 ]
매직으로 쓴 글씨.
설마 하는 생각에 못 박힌 쓰레기들을 닥치는 대로 뜯어내 그 뒤를 살펴보았다.
[ 준 저주해 죽인다 ] [ 준 저주해 죽인다 ] [ 준 저주해 죽인다 ] [ 준 저주해 죽인다 ]…
모든 쓰레기에 쓰여 있었다.
준은 입을 뻐끔거리며 엉덩방아 찧은 상태 그대로 굳어 있었다.
"!! 야!! 이거 봐!!"
신이 주변에 떨어져 있던 쓰레기를 줍더니 보여주었다.
[ 준 저주해 죽인다 ]
놀랍게도 주변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에까지 쓰여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중년 여자는 애초에 갱생한 적 없었다. 계속 우리한테 원한을 품고 있었다.
병원에서 고무장갑을 끼고 필사적으로 분리 수거하고 있던 것도, 준의 쓰레기만 골라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한테 미안하다고 한 것도 전부 거짓말이었다.
갑자기 엄청난 한기가 느껴졌다.
‘여기 있으면 안 돼!’
본능적으로 떠오른 생각에 준에게 말을 걸며 다가갔다.
“야!! 정신 차려!! 가자!!"
하지만 준은 이미 망가져 있었다.
"내…쓰레기…내 쓰레기……"
제정신이 아니었다.
일단 신이랑 내가 준을 부축하고 산에서 내려갔다.
…
……
…………
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물론 그날 이후로 산에 가본 적은 없다.
중년 여자를 본 적도 없다.
아직도 우리를 원망하고 있을까?
어디선가 감시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 셋은 멀쩡히 살아있다.
다만,
아직도 준은 걷지 못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