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목매다는 마을 part.1
1화
꽤 오래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겪은 이야기입니다.
신문에 실리기도 한 사건이었으므로, 신변이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어느정도 거짓이 섞여 있습니다.
저는 규슈의 한 동네에서 태어났습니다.
대도시까지 전철로 1시간정도 걸리는 작은 마을입니다.
산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큰 간선도로가 지나고, 어째서인지 큰 병원도 있고 해서 나름대로 활기가 있는 마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
봉오도리(8월 15일 즈음의 일본의 명절이며 지역마다 날짜가 조금씩 다릅니다.
행사장에서 일반인들이 춤을 추고, 신사에서 무녀나 신관이 춤과 음악을 신에게 봉헌하는 것이 주된 행사입니다.)
가 열리고 있는 신사에 형과 함께 놀러갔을 때의 일.
저와 형은 한 살 차이가 나는 형제로, 분명 여동생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잘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아무튼 초등학생이전의 기억은 애매모호해서,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일은,
우리 형제는 어머니와 조부모님 이렇게 다섯이서 살고 있었던것입니다.
아마 어렸을 때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혼을 했을 때, 여동생은 아버지가 데리고 가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봉오도리 행사장에는, 작은 마을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망루가 있고,
장단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오바Q선창(1966년 발표된 곡) 같은 노래에 맞춰 모두가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저는 형과 함께 야시장을 둘러보고, 어머니가 주신 용돈을 어떻게 쓸지 고심하면서 즐겁게 놀며 돌아다녔습니다.
솜사탕이나 타코야키, 전병 등으로 배를 불린 뒤, 저는 춤추는 무리에 끼고 싶었습니다만,
형이 싫어했기 때문에 야시장 옆에서 곁눈질하며 춤추고 있었습니다.
한참 정신없이 춤을 추다가 문득 어디선가 시선을 느꼈습니다.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보니, 벤치에 앉은 할머니가 나를 보며 싱글벙글 웃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할머니는 앉은 채로 양손만 봉오도리 안무에 맞춰 움직이신 뒤 저를 향해 오라고 손짓을 했어요.
할머니 가까이로 가니, “할머니를 따라해봐”라며 봉오도리 안무를 손으로 보여줬어요.
좌로우로, 양손을 빙글 돌리면서 우아하게 움직이는 춤동작은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저도 열심히 따라하며 손을 흔들었어요.
“잘 했다. 자, 다리도 움직여봐”
그 말을 듣고 할머니를 보니 할머니는 앉은 채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리가 불편하셨을 거라 알 수 있습니다만,
당시의 어렸던 저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고 “할머니도 해봐요”라고 말해 할머니를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문득 할머니가 춤추는 무리를 향해 크게 손을 흔들어 누군가를 불러들이는 듯한 행동을 했습니다.
뒤돌아보니 이쪽으로 달려오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춤추는 무리에서 빠져나와 이쪽으로 달려온 사람은 저와 동년배이거나 조금 연상인 여자아이였습니다.
예쁜 유카타를 입고 춤을 췄기 때문인지 땀투성이가 된 그 여자아이는, 나와 할머니를 번갈아보며,
“글쎄?”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사츠키, 이 아이에게 춤 좀 가르쳐 줄래?”
할머니는 싱글벙글하며 사츠키에게 말했습니다.
“좋아! 넌 누구야?”
사츠키는 저에게 만면에 웃음을 지어주었습니다.
저는 자기소개를 하고, 멀리서 금붕어 잡기를 하고 있는 형을 가리키며 함께 축제에 왔다고 말했습니다.
“흐-응.”
사츠키는 형을 보고 말했습니다,
“그럼 해볼까!”
하며 그 자리에서 춤을 선보였습니다.
마침 스피커에서 탄갱절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기 때문에,
그 소리에 맞춰 좌로 우로 아래로 손을 흔들며 발걸음을 옮겨 안무를 보여줍니다.
야시장의 불빛에 비친 그 모습은 정말 예쁘고,
나는 마침 망루를 등지고 신사 밖으로 향하는 형태로 사츠키를 보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어둠이 뒤로 펼쳐진 가운데 불빛에 떠오른 사츠키의 모습은 환상적으로 보였습니다.
“어때? 알겠어?”
탄갱절에 맞춘 춤을 추고 난 사츠키가 활짝 웃으며 묻습니다.
멍하니 사츠키를 보고 있던 저는 “어… 아…”와 같은 말도 안되는 이상한 소리를 낸 것 같습니다.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았어요.
“뭐, 한 번으로는 알기 어렵지! 처음부터 알려 줄게!”
사츠키는 괜히 씩씩하게 활짝 웃습니다.
이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서, 저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신사에 다니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안무를 배워, 상당히 시간이 걸렸지만 탄갱절을 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잠깐 기다려봐!”
그렇게 말하고 사츠키는 어딘가로 달려갔습니다.
옆을 보니 할머니가 싱글벙글하며 보고 있었어요.
“잘한다 잘한다. 이제 출 수 있게 됐네.”
그렇게 말하며 손뼉을 치며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기쁘고 쑥스러워서 말문이 막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츠키가 돌아왔어요.
“마지막으로 탄갱절을 틀어 달라고 부탁했으니까, 다음에 탄갱절이 나오면 같이 춤추자.”
하고 제 손을 끌며 춤추는 무리 쪽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형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는데, 사츠키에게 손을 잡혀 끌려가는 저를 보고 놀랐어요.
“시노미야잖아, 뭐하는 거야?”
형을 아무래도 사츠키를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고바야시잖아, 얘가 네 동생이야? 춤이 늘었어!”
사츠키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참고로 시노미야라고 하는 것은 사츠키의 성, 고바야시가 우리들의 성입니다.
잠시 무리 밖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스피커에서 탄갱절이 흘러나왔습니다.
짝짝짜작짜자작 손벽을 치는 무리안에 들어가, 사츠키 뒤에서 긴장하며 춤이 시작되기를 기다립니다.
형이 신기하게 보고 있었어요.
“달이~ 떴다~ 떴다~ 떴다~ 달이 떴다~ 아 좋아 아 좋아 좋아!”
노래에 맞춰 외운 안무를 정신없이 췄습니다.
도중에 실수하여 당황할 뻔했습니다만,
자세히 보면 주위사람들도 꽤 엉터리로 춤을 추고 있고,
이런 정도라도 되는가 하고 납득하고 나니 즐겁기 짝이 없었습니다.
시야 가득히 켜진 초롱불.
그 붉은 빛과 뒤의 어두운 밤하늘 가운데에서 선창에 맞추어 정신없이 춤을 췄습니다.
그 형언할 수 없는 고양감과 일체감에 도취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치 꿈속에 있는 것 같았어요.
실제로 그 후 봉오도리의 무리 안에서 춤추는 꿈을 여러 번 꾸게 됩니다.
그 일로 완전히 사츠키에게 빠진 저는 종종 사츠키에게 부탁해 신사에서 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사츠키는 신사 분가의 딸로 신사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 자주 신사의 심부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축제 때 말을 걸어 주신 분은 본가의 할머니, 현재 신주의 어머니에 해당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할머니가 상당한 걸물로 시즈님, 시즈할머니로 불렸습니다.
선대 신주의 집에 시집온 것은 좋았습니다만, 가정을 지키는데 열심히인가 했더니,
정작 선대 신주 이상의 역량으로 액막이나 기도를 하게 되어,
신주가 아닌 신에게 시집온 새 며느리라고 규슈의 신사계에서 평판이 자자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대단한 사람인 줄도 모르고, 신사에 갈때마다 시즈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에도 방문하여 손수 우려낸 보리차를 대접받곤 했습니다.
형과 사츠키는 동급생으로 봉오도리를 계기로 학교에서도 대화를 하게 됐다고 합니다.
둘이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고, 사츠키는 한층 더 여성스럽고 예뻐졌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한 것이 계기였는지, 형과 사츠키가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저로서는 실연을 당한것이지요.
하지만 전과 같이 셋이서 잘 놀았습니다.
이따금 형과 사츠키가 서로를 의식하여 잠자코 있거나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고,
너무 두 사람이 순진했기 때문에 저는 조바심을 내며 “됐으니까 빨리 손이나 잡아”라거나 “적당히 키스해”라며 놀리기도 했습니다.
“케이! 아 진짜!”
하고 사츠키는 화를 내는데, 그 화난 모습 또한 귀여워 보여서 나로서는 착잡한 기분이었습니다.
“케이타, 너 이따가 죽일거야.”
형도 빨갛게 상기되면서 불만의 뜻을 표명했습니다.
그날은 셋이서 모여 신사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주의 봉오도리에 대비해 경내의 잡초 뽑기라든가 무엇인가를 하는거죠.
사츠키는 분가의 딸이며,
중학교 졸업 후 무녀가 되기로 결정하였으므로 당연히 견습 소승 같은 느낌으로 용돈을 받아 신사의 심부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몇 시간 동안 빈틈없이 청소하고 그날 할 일은 끝났어요.
시즈할머니께서 끓여주신 보리차를 툇마루에 앉아 대접받고 있는데, 두 사람이 경내에 들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두 사람은 그대로 참배길을 벗어나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윽고 오라! 야라아!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싸움입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왠지 싸움을 할 때는 신사에서 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체육관 뒤가 아닌 신사입니다.
당시 학교에는 아직 불량배 같은 것이 있었고, 불량배들 중에 우두머리가 있는게 보통이었어요.
“카나모리 선배다.”
형이 말했습니다.
카나모리 선배와는 나도 형도 잘 아는 인물로 형보다 한 살 위입니다.
어렸을 때는 짱구라고 부르며 자주 놀았던 기억이 나는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불량해지기 시작했고, 왠지 소원해져버린 친구입니다.
2학년인 카나모리 선배가 당시 짱이었던 3학년 학생에게 싸움을 신청한 것 같았습니다.
카나모리 선배는 현지 폭주족 집회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고 하는데, 부모님들의 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폭주족이라고 해도 마을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폭주족과 항쟁을 시작하거나 세력권 다툼을 하거나 하는 것도 없고,
굳이 말하자면 오토바이를 탈 때 헬멧을 착용하지 않는다고 하는,
지금 생각하면 정말로 귀엽고 이상한 모임이었습니다.
싸움은 3학년의 승리로 끝난 듯, 성큼성큼 걸어가는 3학년의 모습을 배웅하고나서 우리는 카나모리 선배에게 달려갔습니다.
“다쳤으면 데려오너라.”
하고 뒤에서 시즈할머니가 말했어요.
싸움에서 진 카나모리 선배는 땅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가가자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혀를 찼어요.
“쯧, 보는 거 아니다.”
힘없이 중얼거리는 카나모리 선배 곁에 형이 다가와 어깨를 빌려 일으켜 세웁니다.
“아파, 잠깐, 천천히…”
카나모리 선배는 아무래도 다리를 삐어 아픈 듯 일어섰습니다.
선배가 말하길 다리를 삐지 않았다면 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걷는 것이 힘들 것 같아서 저도 형의 반대편에서 선배를 부축해서 시즈 할머니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시즈할머니는 즉시 찜질과 붕대를 준비하고 치료를 해주셨어요.
카나모리 선배는 시즈할머니에게 허리를 굽혀 돌아갔습니다.
불량배인 주제에 예의바른 카나모리 선배였습니다.
“앗짱은 싸우면 안 돼.”
사츠키가 형에게 말했습니다.
앗짱이며 아키오인 형은 “난 그런 바보 같은 짓은 안해”라고 말했지만, 날것의 싸움을 보고 조금 흥분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 평범한, 아주 흔한 시골의 여름, 기이함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2화
회람판을 든 어머니가 형과 저에게 조심하라고 하셨어요.
“들개가 활발해지는 것 같으니 너희들도 조심해라. 길거리에도 나오고 있대.”
곤란하-네-라며 소 같은 소리를 내고 어머니는 옆집으로 회람판을 돌리러 가셨습니다.
당시 우리 마을을 둘러싼 산 속에는 야생화된 들개가 많이 있어서,
산나물을 캐러 산에 들어갈 때는 충분히 주의하는 것이 철칙이었습니다.
가끔 사냥회에서 몇 마리씩 솎아 내기도 하지만, 들개는 전혀 수가 줄지 않고,
또 옛날부터 변함없는 지방의 골치거리여서,
걱정을 하면서도 들개와는 공생하고 있었습니다.
들개가 산에서 마을로 내려왔다.
지금까지도 가끔 일어나는 일입니다만, 그때마다 보건소 사람들이 정신없이 움직였습니다.
들개뿐 아니라 원숭이 등도 가끔 거리에 나타납니다.
하굣길에 포획용 큰 그물을 가진 집단을 발견하고,
그대로 대형 포획물을 구경하는 것이 작은 마을의 큰 행사이기도 했습니다.
언제나처럼 형과 신사로 향하고 있을 때,
전신주에 “위험 동물 주의! ◯월 ◯일, 이 부근에서 들개가 목격되었습니다.
위험하오니 접촉을 지양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목격 정보는 ◯◯시청 담당 ◯◯에게”라는 벽보가 붙어 있었습니다.
집근처에 위험한 동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불안을 가슴 한구석에 안고 우리는 신사로 서둘렀습니다.
신사에 도착하니 어른들이 여럿 모여 시끌벅적하였습니다.
축제때와 비슷한 어른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귀에 들려옵니다.
아무래도 사냥회의 사람들이, 지금부터 산에 들어가기 위해 모여 있는 것 같았어요.
신사는 산으로 통하는 산기슭 부근에 있어 마을에서 산으로 들어가려면 필연적으로 신사 앞을 통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집합 장소가 신사가 되는 것은 평소와 같은 일이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사냥회 사람들이 산으로 들어가 들개 등을 구제할 것입니다.
가끔 사슴 따위를 쏜 날에는 흥분이 식지 않은 모습으로 소란을 피우며 개선하고는 합니다.
그런, 늘 하던 대로의 광경이, 지금부터 시작될 공포의 시작이었습니다.
본전에 참배하고 사냥회 사람들이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것을 배웅한 우리는 언제나처럼 신사의 심부름을 하며 눈앞에 다가온 봉오도리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망루에 쓸 목재를 준비하기도 하고,
초롱불이 도착했는지 일일이 점검하기도 하며,
어른들 틈에 섞여 우리도 일하고 있었습니다.
사츠키는 올해 처음으로 추는 무녀의 춤의 안무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가르치고 있는 것은 시즈할머니입니다.
저와 형은 무녀복으로 카구라(일본에서 신에게 제사지낼 때 연주하는 무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츠키를 곁눈질로 힐끔힐끔 쳐다보며 일하고 있었습니다.
봉오도리까지 3일.
그날 산에 들어갔던 사냥꾼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고, 다음날이 되어도 누구 하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익숙한 산속입니다.
사냥꾼들이 조난을 당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조난당했다고 해도 이 기온에서 죽지는 않겠지만, 어떠한 원인으로 사고를 당했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었습니다.
준비에 쫓기는 우리들은 그런 이상사태의 와중에도, 손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신사의 경내에서 신주와 순경, 게다가 사냥회의 가족들이 산쪽을 보면서 상담하고 있었습니다.
준비를 하면서 들은 대화의 내용은, 화산가스가….,, 들개의 무리일지도…., 굴러떨어졌다….,
같은 느낌으로, 모두 불안한듯 계속해서 서로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순경 외 몇 명의 어른이 산에 들어가보게 되었습니다.
큰 소리로 외치며 순경과 다른 사람들이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막연한 불안이 경내에 가득했습니다.
우리는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해가 기울기 시작했어요.
순경과 어른들이 산에 들어간지 수시간,
산길 쪽을 보니 조금전에 산에 들어간 어른들이 헉헉거리며 산길에서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어요.
“순경 아저씨들이 돌아왔어요!”
라고 큰 소리로 모두에게 전하고, 신주를 부르러 본전으로 향했습니다.
돌아온 어른들은 모두 얼굴이 창백했고, 필사적으로 달려온 듯 헤엑헤엑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땠습니까?”
신주가 순경에게 물어봤습니다.
순경은 무릎을 짚고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는데,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리며,
“죽었어요. 목을 매달았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후, ◯◯현 경찰이라고 쓰여진 경찰차와 구급차가 여러 대 경내에 들어왔습니다.
그날 다시 산에 들어가, 산중턱에 목을 매고 있던 사냥꾼들의 시신을 수습해왔습니다.
신주는 정장을 하고 산에 동행해 주위를 불제하면서 모두를 보호하듯 이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사냥꾼들은 산길 양 옆에 줄을 서서 목을 매고 있었다고 합니다.
들개를 잡으러 산에 들어간 사냥꾼들의 집단 자살.
정성스럽게 새 밧줄까지 준비해서요.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습니다.
타살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 듯, 산길에 노란 테이프가 붙여져 산은 봉쇄되었습니다.
봉오도리 전날.
사건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사냥꾼들이 집단으로 죽은 것을 아는 사람은 어제 산을 들어간
어른들과 경찰, 동네 의사들, 면사무소 사람들, 유족, 그리고 경내에 있던 우리들뿐이었습니다.
사냥꾼들을 살해한 범인이 근방을 서성거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가운데,
과연 봉오도리를 개최해야 하는지가 논의되었습니다.
밤늦게까지 경찰, 동사무소 사람들과 상의하여 봉오도리를 중지하지 않기로 결정한 신주는
다음날 아침에는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겨있었습니다.
아마 한숨도 못잔 것 같았습니다.
아침부터 어른들이 망루를 올리고 초롱에 불을 붙입니다.
스피커니 쓰레기통이니 하는 것을 다 설치하자 우리가 할 일은 없어졌습니다.
시각은 오후가 지나 어제까지의 준비가 탄탄했던 덕분인지 봉오도리 전날은 매우 느긋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무녀의 춤을 추는 사츠키는 귀기가 도는 모습으로 시즈할머니 앞에서 카구라를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저와 형은 사츠키의 연습을 처음으로 가까이서 지켜봤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기에 좀 쑥스러워했지만,
“내일은 신의 앞에서 춤을 추는 거다. 인간 상대로 움츠러들 때가 아니지”
라고 시즈 할머니에게 야단맞고 있었습니다.
산길쪽을 보니 경찰들이 산길 주위를 살피며 산으로 들어갔어요.
내일의 봉오도리.
죽은 사냥꾼들.
잇따른 들개 목격 제보.
어제는 원숭이까지 마을에 나왔다고 합니다.
산이 이상하다.
너무나 큰 상상할 수 없는 사태에 대한 불안감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임박한 위협이라고 느끼는 것도 아니고, 일상과 다름없는 시간 속에서,
마치 배앓이를 할 때와 같은 불쾌감으로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봉오도리 당일.
우리는 아침부터 경내에 모여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것은 어떠냐 저것은 어째서냐 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뿐입니다만.
어른들도 들떠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노점상의 사람들이 느긋이 포장마차를 조립하고,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봉오도리의 개최를 알리는 불꽅놀이가 시작됐습니다.
신당의 툇마루에 앉아 쉬고 있는데, 사츠키가 찾아왔습니다.
이미 무녀복을 입고 있었지만, 머리만 아직 묶지 않은 생머리 상태였습니다.
지금은 코스프레같다고 느껴지지만,
당시 우리는 무녀복 차림의 사츠키를 넋을 잃고 바라볼 뿐 ‘아’라든가 ‘오’라고 밖에 말 할 수 없었습니다.
“우우우-…. 긴장된다.”
사츠키는 안절부절못하며 어슬렁어슬렁거렸습니다.
동물원의 곰처럼 왔다가 갔다가.
이제 진정하라고 몇번이나 말했지만, 진정할 수 있을리 없다는 것은 나도 형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사츠키의 공식적인 무대에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반주가 시작될 무렵에는, 마을 사람들이 경내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유카타를 입은 부녀회 아줌마들이 빠르게 춤을 추며 원을 만들었습니다.
모여든 사람들도 춤의 원에 가담해 갔고, 이윽고 익숙한 봉오도리의 경치가 완성되었습니다.
“아키오, 케이타. 수고했네.”
뒤에서 시즈할머니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나머지는 어른들께 맡기고 너희들은 축제를 즐기고 오너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저희에게 용돈을 주셨어요.
중학생과 초등학생에게는 상당히 큰 금액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크게 기뻐하며 포장마차를 끝에서부터 돌았습니다.
순경 등 경찰관련 사람들이 사복차림으로 경내를 순회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순간 불안했지만 주위에는 아는 어른들의 얼굴로 넘쳐나서 곧 정신을 차리고 포장마차 돌기를 계속했어요.
드디어 사츠키가 나갈 차례가 되었습니다.
봉오도리의 음반이 일단 멈추고,
제구전(카구라에 쓰는 악기를 보관하는 곳)에서 무녀의 춤을 봉납한다는 것을 알립니다.
본전 옆에 있는 제구전의 맨 앞에 진을 치고 있던 우리는 사츠키의 등장을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제례음악의 소리와 함께 사츠키가 조용히 제구전에 나타났습니다.
아까까지의 긴장한 표정은 아니고, 조금 턱을 들어 투명한 표정으로 앞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손에 쥔 벼이삭 모양의 뭔가를 흔들며, 방울을 울리고, 부채를 팔랑팔랑 흔들며, 사츠키는 우아하게 춤을 추었습니다.
그때 저는 사츠키가 처음으로 춤을 보여줬던 그 광경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환상적이고 뇌리에 박혀있는 그 모습이 지금 제구전에서 춤추고 있는 사츠키의 모습과 겹쳐졌습니다.
사츠키는 신이 되어버렸다.
왠지 그렇게 느껴졌어요.
챠륵..하고 방울 소리가 울리고, 사츠키가 춤을 끝냈습니다.
박수를 치려고 손을 마주 쳤는데, 뒤에서 머리를 철썩 때렸습니다.
뒤를 보니 집 근처의 아저씨였어요.
“주위를 봐라. 아무도 박수를 안 치지? 사츠키는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신을 위해 춤을 추는 거란다. 우리가 박수칠 일이 아니야.”
과연,하고 납득하며 사츠키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다시 춤을 추기 시작한 사츠키는 먼 곳으로 시선을 보냈습니다.
거리상으로 우리가 있는 근처가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신께 춤을 바치고 있는 줄은 알았지만,
아무래도 조금전의 사츠키 자신이 신이 되어 춤추고 있다는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카구라 가면을 쓴 사츠키가 춤추기 시작할 때 그곳에 있는 것은 분명 사츠키일텐데, 저에게는 사츠키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마치 사츠키의 모습을 흉내내며 춤추고 있는듯한, 그런 이상한 광경으로 저는 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모든 춤을 마친 사츠키가 조용히 제구전 뒷편으로 사라집니다.
그때, 후-하고 한바탕 바람이 경내에 휘몰아쳤습니다.
나무를 흔든 그 바람은 모두의 몸을 어루만지고 산으로 넘어갔어요.
모두가 후하고 숨을 내쉬며 봉납의 종료를 알리는 방송이 나왔고 다시 봉오도리 음반을 틀었습니다.
그날 밤, 고열을 내며 가위에 눌리고 있는 사츠키가 누운 이불 옆에서, 저와 형은 병간호를 하고 있었습니다.
신에게 바치는 춤을 추고 난 사츠키는 비록 피곤하기는 했지만,
씩씩하게 웃고 있었지만, 점차 비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쭈그려 앉아 끙끙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다급하게 시즈할머니를 부르러갔습니다.
우리에게 이끌리며 찾아온 시즈할머니는 사츠키를 보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신이 내렸을 때는 가끔 이렇게 열이 난단다. 나도 경험이 있어, 괜찮을게다.”
사츠키를 위해 이불을 깔며 시즈할머니는 사츠키와 우리에게 설명해주었어요.
“그나저나 사츠키, 너는 특별한 재능을 가졌구나. 본가의 양자가 되면 분명 신이 너를 도울거야.”
“에… 싫어… 엄마…”
사츠키는 가쁜 숨을 쉬며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후후후, 물론 사츠키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말이야.”
시즈할머니는 싱글벙글 웃으며 이불 위에 누운 사츠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자아, 오늘은 그만 자렴. 여기에 있다고 어머니께 연락해 놓을게.
너희들도 축제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어. 사츠키는 곧 좋아질 테니 오늘은 들어가서 쉬어라.”
그렇게 말하며 우리에게 귀가를 재촉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시즈할머니의 말을 되새기고 있었습니다.
신내림.
그때 사츠키는 신에 들려있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가장 다른 사람같았던 인상이 강한 카구라 가면을 쓰고 있었을 때.
사츠키는 틀림없이 신에게 몸을 빼았겼던거야.
빼았겼다는 표현은 너무 강한 표현이지만 당시의 저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다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무사히 끝난 봉오도리의 다음날,
우리는 뒷정리를 위해 아침부터 신사에 갔습니다.
신사에 도착하니 이미 신관들이 망루를 해체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인사를 드리고는 옆으로 달려나가 시즈할머니 댁에 갔습니다.
초인종을 누르니 사츠키가 나왔어요.
어제의 고열이 거짓말처럼, 원기왕성한 사츠키는 활짝 웃으며,
“이제 괜찮아! 걱정하게 했네.”
라고 V자를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정리를 하면서, 어제 사츠키는 굉장했었느니,
시즈할머니에게 용돈을 받고 아직 남아있다느니,
오늘은 어디로 갈거냐느니 하며 어제의 흥분을 되새기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리도 일단락되었을 때 자동차 한 대가 경내로 들어왔습니다.
앞유리 안쪽에 붉은 램프가 놓여 있기 때문에 경찰마크가 없는 경찰차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의 우리들은 알수 없었습니다만, 나중에 조사해 알게된 것으로,
원령들에 의해 알게된 이 마을의 역사와 가공할 만한 업적들,
그리고 제가 아는 범위에서의 사건의 진상을 바탕으로,
시간순으로 써나가겠습니다.
3화
봉오도리 당일에 경찰에서 부검한 결과, 산에서 죽은 사냥회 사람들의 사인이 판명되었습니다.
사인은 뇌출혈에 의한 돌연사.
목을 맨 것에 의한 질식사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즉, 모두가 같은 증상으로 돌연사한 후에 목을 매달았다는 것이 됩니다.
이 시점에서 경찰은 완전히 속수무책.
외상 없이 뇌출혈을 일으켜 살해하는 것은 전대미문이며, 그러한 방법도 독극물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경찰은 피해자의 과거 병력과 통원이력을 샅샅이 조사했고,
유가족에 대한 청취도 신중하게 실시하고, 그 결과 계속 수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서류에 기록했지만,
무엇을 조사해야 할지 감도 못잡은 상태에서 계속되는 수사의 담당자조차 정해지지 않은 채 신주님께 상담을 받으러 왔습니다.
사인이 판명된 시점에서 수사관의 머릿속에는 ‘이거 재액이지?’라는 생각이 거의 굳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렇다고 해서 그런 미신적인 내용을 보고서에 기재할 수 있을리 도 없고, 지속적인 취급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현대의 과학에서도 의도적으로 단시간에 동맥류 등을 만들어 뇌를 파열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고,
당시의 기술로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재액이라고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됐기에,
그러한 역사가 과거에 없었는가 하는 것을 신주애게 물은 경찰은,
그런 역사는 없다는 신주의 대답에 매우 곤란한 모양으로,
어떻게든 도와달라고 호소하며 돌아갔다고 합니다.
한편 과학적인 설명을 전혀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오자 신주와 유족들은,
이것 또한 재액이라든가 신을 거슬리게 했다든가 하는 방면으로 진상 규명에 나섰습니다.
봉쇄된 산에 들어가서, 먼저 사냥꾼들이 목을 매고 있던 곳에서 액막이가 거행되었습니다.
그 후 산을 돌아다니며 산 전체를 깨끗하게 하겠다는 계획이었다고 하는데,
최초의 액막이 시점부터 벌써 이상했다고 합니다.
산길의 목을 맨 현장에서 신주가 액막이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준비해둔 제사상의 야채를 보니 이미 상해있었습니다.
술은 탁해지고, 소금은 검게 변색되어, 큰 제물에 이르러서는 갈기갈기 찢겨져있었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축사의 소리를 하며, 일단 의식을 하고 산을 내려온 신주의 얼굴은 녹초가 되어있었습니다.
신사에 모셔진 신의 가호에 아랑곳하지 않는 부정한 생물이 산속에 있다.
혹은, 부정한 물건이 있다.
그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시 산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또 다른 괴이한 일이 마을로 닥치게 됩니다.
들개가 대량으로 온 마을에 나타났어요.
주민 몇 명이 들개에게 습격당하고, 집단 하교중에 습격당한 초등학생이 큰 부상을 입는 사태로까지 발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원숭이나 멧돼지도 대량으로 마을로 내려와 농작물을 망쳤습니다.
야채가게의 야채도 마음대로 훔쳐 먹었습니다.
마치 산에 있는 모든 동물들이 온 마을로 내려온 것 같았어요.
실제로도 그대로, 산에 나타난 뭔가를 두려워한 야생동물들은 산에서 도망쳐 나왔고.
인근의 산으로 도망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을에 적응할 수 있는 동물은 마을로 식량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과거 유례없는 야생동물의 대량 발생은 전국 신문에도 다루어져 인근 관공서로부터도 협조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 후 몇 개월에 걸쳐 야생동물은 구제되어 갔지만, 괴이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여름이 끝나가며 태풍의 계절이 되었습니다.
유례없을 정도의 대형 태풍이 마을을 직격.
태풍이 지나가고 불어난 강에서 부주의하게 놀고 있던 대학생 집단이 모두 행방불명되었습니다.
당시 지진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해지던 큐슈를 덮친 큰 지진으로,
진원지에 가까웠던 우리 마을은 당연히 진도가 높았고,
태풍에 의한 큰 비로 지반이 느슨해져 있던 곳에,
최대 진도 5도의 흔들림으로 산사태가 발생해 몇 채의 민가가 떠내려가 몇 사람의 주민이 사망.
게다가 원인 불명의 고열에 의한 사망이나 불가해한 목매다는 자살이 연달아 발생.
봉오도리의 날 이후 마을을 습격한 재액은 멈추지 않고 맹위를 떨쳐,
규슈 전지역과 시고쿠의 신사나 절 등에서 신관과 승려가 파견되었습니다.
우리 신사에 모여든 각지의 신관들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들은 봉오도리때보다 더 열중했습니다.
인근의 숙소를 마련하여, 본전 이외의 시설에서 숙박할 수 있도록 간이 숙박시설을 마련하고,
그 밖에도 식사 준비와 회합때 차 시중 등 할 수 있는 일은 무수히 많았고,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형도 귀찮은 마음으로 돕고 있었지만,
점차 신관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이게 예삿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해져,
굳은 얼굴로 모인 신관들을 앞에 두고 신주와 시즈할머니가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볼 때쯤에는
여기가 최전방이라는 긴장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인사를 하는 신주의 표정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피로의 빛이 짙어 혹시나 어린 마음에 신주가 죽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사츠키도 숙부인 신주의 초췌한 모습에 충격을 받아,
우리가 신사에서 심부름을 도운 것도 사츠키가 친구였기에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는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신관들이 세그룹으로 나뉘어 삼교대로 하루종일 기도를 계속하였습니다.
그 기도는 몇 달 동안 계속됩니다.
그 무렵 마을의 절에서는 스님에 의한 가지기도가, 천주교에서도 평일 밤에 특별미사가 거행되었습니다.
모두 원인 불명의 재앙에 두려움을 느끼고 신불에 매달리는 사람이 늘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규모 기도가 진행되면서 자연재해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대형태풍과 지진이 겹친 현상이었을 뿐이므로 지금은 우연한 일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원인 불명의 고열과 목을 맨 사망자에 관해서는 분명 귀신의 소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을 전체가 무거운 분위기에 잠겨 있었습니다.
경찰도 신문도 마을의 분위기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마을의 심상치 않은 모습에 겁을 먹었는지 싫증이 났는지,
많은 보도 관계자가 마을에서 사라졌습니다.
기도의 효과로 자연재해는 멈췄다고 생각했지만, 원령에 대한 건에 대해서는 이때는 아직 아무도 몰랐습니다.
원령은 그 존재를, 사람들을 바들바들 떨게 만드는 두려움을 동반하며 세상에 드러낸 것입니다.
그 무렵부터 학교나 회사 등 마을 곳곳에 뒤따라오는 그림자를 봤다는 등의 괴담 같은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낮이든 밤이든 문득 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면 길모퉁이에 그림자가 휙 하고 사라지는 것이 보인다.
몇번이고 뒤돌아봤다.
아파트의 2층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면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더 오르지 않는다.
계단을 봐도 아무도 없다.
맑은 날인데도 멀리서 검은 우산을 쓰고 이쪽을 응시하는 인물이 있다.
심야에 창문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물론 창문을 열어도 아무도 없다.
그런 흔한 괴담들이 일제히 동네에 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도 이상한 그림자를 보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체험했다는 사람으로부터 직접 그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그 괴담들은 소문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적인 공포가 되어 거리를 불안으로 뒤덮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칠 줄 모르는 고열과 목매달음.
목을 매단 시체는 마침내 온 마을에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심야의 레스토랑 주차장에서, 마트 화장실에서, 야근하는 주재소에서, 밭 옆 헌간에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도 가리지 않았으며,
사인도 고열이었거나 대동맥류 파열이었거나 목을 매단 질식이었거나,
무작위로 무차별적으로 목을 매단 시체가 온동네에 나타났습니다.
저 스스로도 대로변 교차로에 있는 신호등에 매달린 시체를 봤을 때, 내일은 제 몸이 매달리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질렸습니다.
20명 가까운 사망자를 낸 이런 사건은 불과 1개월정도 사이에 일어난 일로,
경찰도 관공서도, 성직자도, 대책다운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늘어가는 시체더미에 머리를 싸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그날 우리 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국기를 게양하는 장대 끝에, 매달린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매달려 있던 것은 젊은 남자 교사였습니다.
여름방학이 끝나 등교했었습니다.
밖에서 누군가가 비명을 질러, 무슨일인가하고 밖을 본 우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교사의 눈 앞에 펼쳐진 교정.
전교회의 등에서 교장 선생님이 말하는 단 뒤에 서 있는 깃발을 내거는 기둥의 끝.
처음에는 무슨 천이라도 결쳐져 있는 줄 알았지만, 곧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첫번째 비명이 울릴때까지 아무도 모르고 모두 수업의 시작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곧바로 경찰이 왔습니다.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교정을 보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그 말을 따르지 않고 난리를 피우고 있었어요.
남녀불문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학생이 많아, 선생님들도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온학교가 발칵 뒤집힌 것처럼 아수라장이 되어있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봤습니다.
새파란 가을 하늘에 떠있는 남자교사.
기둥에 매달린 그 시체가 파닥파닥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매달린 것이 발견된지 꽤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더 이상 살아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매달린 시체는 바람도 없는데 크게 손발을 휘둘렀고,
만약 살아있어서 밧줄을 풀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 해도,
도저히 의지나 목적이 느껴지지 않는 엉터리 같은 움직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무엇에 농락당하듯 매달린 시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남겨진 광경에 경찰도 선생님들도 멍하니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시신을 치우기 위해 사다리를 걸었지만 아무도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저런 상태의 시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신주가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계속 날뛰던 시체를 바라보던 우리는 이제 동요조차 잊고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전혀 현실감이 없는 그 광경은 이상하리만치 맑게 갠 바깥 경치에 녹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체는 목뼈 등이 이미 부러져, 목이 완전히 늘어져 있어,
마치 도마뱀 같은, 인간이 아닌 실루엣이 되었지만 아직 계속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목에 파고든 밧줄이 피부와 살을 도려내고 시체에서 쏟아진 피가 땅을 시커멓게 더럽혔어요.
신주도 멍하니 쳐다보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축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그러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체가 움직임을 멈추었습니다.
덜렁 매달린채로 움직이지 않게 되어, 기도가 들었나 생각했던 차에,
무게를 이기지 못했는지 시신의 목이 떨어져 나가며 몸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목부터 위까지 떨어졌습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지면에 떨어진 시체가 다시 움직이지 않을까하는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곧 신주가 다시 기도를 드렸고 기도가 끝난 후에야 시체에 다가갔습니다.
경찰이 사진을 찍은 후 시체위에 파란 시트가 덮였어요.
이상한 광경이 덮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건 우리만이 아니었던지, 교장 선생님의 교내 방송이 진행되었습니다.
매우 충격적인 일이 있었고,
이제 가족이 데리러 올 테니, 모두 동요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릴 것.
무서운 것은 당연하지만 신주가 오셨기에 이제 괜찮다.
담임선생님이 교실마다 가실 테니 지시에 따르도록.
등의 안내가 전해지고, 교내 방송이 끝났습니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다시 스피커에서 바로 전자음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교장선생님이 전하지 않은 것이라도 있나 생각했지만, 들려온것은 이세상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무서운 목소리였습니다.
“우우우웅으으우응우ㅜ우우”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으으으응….으…응…”
“오오오오오아아아아”
신음소리 같이 낮은 목소리가 여러변 겹쳐 들려오고 있습니다.
소리의 주인공은 한둘이 아니라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괴로운듯 신음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싫어어어!!”
하고 여학생 중 한명이 귀를 막으며 소리쳤습니다.
“뭔데!!!”
반광란하여 울부짖는 여학생.
그 목소리에 이끌려 모두가 일제히 소리를 질렀어요.
“우와아아아아!”
“어이 이거… 뭔데….”
“무서워! 무서워어어어어!!”
“선생님--! 선생님--!!!”
“이제 그만둬요오오오오!!!”
마치 아비규환의 교내.
복도로 뛰쳐나온 학생도 많이 있어서 복도에서도 울음소리나 고함소리가 들려옵니다.
학교 전체가 발칵 뒤집혔어요.
모두 겁에 질려 광란상태였습니다.
스피커에서는 아직도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도 너무 무서워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어요.
구원을 청하며 교정의 신주에게 눈을 돌리니 필사적으로 제례용 지팡이를 흔들며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선생님이 교실로 뛰어들어왔습니다.
모두 괜찮니!하며 고함쳐 근처의 학생의 어깨를 두드리거나 머리를 어루만지거나 하고 있습니다.
교실의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밀려들었습니다.
몇 분 후 신음소리는 사라졌지만, 신음소리가 들리는 동안,
선생님은 계속 큰 소리로 모두의 이름을 부르며,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신음소리가 저희에게 들리지 않도록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제 머리를 쓰다듬어 조금 진정됐습니다.
“고바야시, 괜찮니?”
선생님께서 제 옆으로도 와주셨습니다.
저는 예하고 선생님과 한두마디를 나누고 다시 교정에 있는 신주를 보았습니다.
잠시 기도가 계속된 후, 교정에 눈에 익은 신사의 차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신주 쪽에 정차하자 운전석에서 신관이 나와 뒷자석의 문을 열었습니다.
안에서는 신관 의상을 입은 시즈할머니가 내려왔습니다.
그 뒤에 사츠키도 이어 내려옵니다.
저는 사츠키를 본 순간, 무의식중에 벌떡 일어나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고바야시!라고 선생님이 부른 것이 들렸습니다만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쏜살같이 내려가, 입구에서 신발을 갈아신는 것도 갑갑해 실내화를 신은 채 교정으로 뛰쳐나왔습니다.
목표는 사츠키가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는 그 무서운 시체가 파란 시트 아래에서 아직 움직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래도 온힘을 다해 달렸습니다.
사츠키에게 달려가는 저를 발견한 사츠키가 소리쳤습니다.
“케이! 다행이야!”
사츠키도 저에게 달려왔습니다.
마주 멈춰서서 사츠키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케이, 무서웠지. 괜찮아?”
사츠키는 걱정스럽게 말했습니다.
눈물로 흐릿한 눈으로 사츠키의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다가갔습니다.
사츠키는 손을 뻗어 저를 안아 주었어요.
부드럽게 사츠키의 향기에 휩싸인 저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보기 흉하게 사츠키에게 매달려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사츠키, 케이타를 데리고 떨어져있어.”
시즈할머니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평소의 낯익은 부드러운 목소리와 달라, 저는 현실로 되돌아왔습니다.
아직 사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사츠키를 만나 안심했지만, 아직 시체는 시트 아래 있고, 조금 전의 무서운 소리도 생생히 귀에 남아있었습니다.
신주와 시즈할머니, 그리고 2명의 신관이 시트를 둘러싸듯 서서 경찰에게 신호를 보내 시트를 제거합니다.
거기에는 낙하의 충격으로 있을수 없는 형태로 손발이 휘어진 피투성이의 남자 교사의 몸과,
신주를 노려보는 머리가 있었습니다.
지면을 구른 채 신주를 노려보는 머리는 핏발선 눈을 드러내고 입이 맥없이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면 알 수 있는, 분노의 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는 표정으로 신주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물론 죽었기 때문에 그 눈은 신주를 향해 있지는 않았지만,
얼굴의 위치와 방향 그리고 시선으로 신주를 노려보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나중에 확인한 건데, 시체가 떨어져 파란색 시트가 덮이기 전 경찰이 사진을 찍었을 때는 얼굴은 보통의 무표정이었다고 합니다.
신주가 끔찍한 모습의 시체를 앞에 두고 축사를 올립니다.
시즈할머니와 신관들도 꼼짝않고 기도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기도가 끝나고 남자교사의 몸과 목은 바디백에 넣어져 구급차에 실려갔습니다.
신주는 시신을 따라 구급차에 올랐고, 시즈할머니와 신관들은 남아 학교에서 액막이를 했습니다.
피로 얼룩진 교정에 집합할 수는 없기에 체육관에 전교생이 모여 단상에서 기도를 드리는 시즈할머니를 향해 고개를 숙였습니다.
머지않아 학부모들이 속속 학교에 도착해 체육관에 들어왔습니다.
부모와 재회한 학생들은 모두 울면서 안기며 귀가했습니다.
저도 엄마를 다시 만났을 때는 안도감에 울 뻔했지만, 이미 사츠키의 품을 빌려 펑펑 운 뒤여서 간신히 눈물을 참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