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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밖에 나가지 마시오 part.2

익명
2026-10-18 02:03

지나치게 긴장한 탓에 심장이 크게 벌렁거렸다. 허둥거리며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아저씨가 내 앞을 가로 막았다. '괜찮네.' 라고 말하는 아저씨의 말에 조금 심호흡을 하며 시야를 가다듬었다. 다행히 나온 것은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구하러 와주…… 셨군요…… 감사합…… .니다.”

 

아르바이트생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앙다무는 모습이 처량해 보였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괴물을 직접 마주친 나조차도 이렇게 살이 떨리는데.

 

“다른 사람은 어디 있소?”

 

아저씨는 사무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모두 다 나갔어요. 낮에는 괴물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아침이 되자마자 나가 버렸어요. 전 너무 겁이 나서 여기에 남았고요.”

 

모두 나갔다고? 그럼 기현이도? 아침까지 기다려달라고 했는데…….

 

“그럼 자네 친구도 없을 거 아닌가?”

“그렇겠네요.”

“일단 여기서 나가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순간 이상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들어올 때는 너무 긴장을 한 나머지 악취가 나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악취…… 가만 이 냄새?!

 

“이 냄새…… 설마……”

 

편의점에서 있었던 일들이 뇌리를 훑고 지나갔다. 동생도 마찬가지인지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아저씨는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슬슬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어서 나오시오. 챙길 수 있는 것은 챙기고.”

“네…… 곧 가요.”

 

아르바이트생은 서둘러 카운터에서 나왔다. 발이 아주 새까맣다.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한손에 들려진 원인 불명의 고기 덩어리가 눈에 띄었다. 삐-삐-삐- 직감이 위험하다고 신호를 보냈다.

 

“아, 아저씨.”

 

너무 놀라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아저씨는 굳은 얼굴로 총구를 겨누었다. 아르바이트생은 갑자기 달라진 태도에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왜…… 왜 그러세요?”

“형씨, 손에 들린 그건 뭐요?”

“이건…… 그냥 배고파서……”

“어디서 구한 거요?”

“그냥…… 배고파서…… 크아앙!”

 

순식간에 괴물로 변한 아르바이트생은 거친 숨을 내쉬며 우리를 노려보았다.

 

“쏴버려! 더 이상 사람이 아니야!”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녀석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한달음에 달려올 수 있는 거리. 망설이면 안 된다. 하지만 빌어먹게도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어서!”

“크아아아!”

“으아아!”

 

타앙. 탕탕. 타다당. 눈을 감아버렸다. 도저히 눈을 뜨고 총을 쓸 자신이 없었다.

 

쿠웅.

 

공격은 성공이었는지 괴물은 피를 흘리며 힘없이 고꾸라졌다. 하지만 미약하게 숨을 쉬며 몸을 떨고 있었다.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었다.

 

“잘했네.”

 

아저씨는 정말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총구를 겨누기만 할 뿐 쏘진 않았다. 그 정도로 나와 동생을 믿는다는 걸까. 아저씨는 연약하게 숨을 쉬는 괴물의 머리를 툭툭 쳤다. 쉬익. 쉬이익.

 

“……줘.”

 

방금 말을 한 건가? 가만히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와줘.”

“……”

“도…… 와줘…….”

 

말을 한다. 괴물은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한 이 순간에 말을 했다. 도와달라고. 죽기 싫다고. 그러나 아저씨는 그런 괴물을 무시하고 다른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시해. 여기서 챙길 수 있는 건 다 챙기고 빨리 뜬다.”

 

아저씨는 카운터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동생도 스낵코너에 있는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심호흡을 하고 챙길만한 것들을 챙겼다. 초코바. 물. 사탕종류. 부피가 큰 것은 챙기지 않았다. 더블백이 있긴 하지만 나중에 도주할일이 생긴다면 오히려 짐이 된다.

 

물건을 챙긴 우리들은 괴물을 지나쳐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살, 살려…….”

“제기랄.”

 

띵-동. 1층에 도착한 우리들은 밖으로 나와 주위를 살폈다. 동네는 여전히 고요했다.

 

“마음 굳게 먹게. 여기서 믿을 건 우리 밖에 없어.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여기서 이런 일로 마음 약해지면 안 된다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쏴야 자네들이 사는 거라네.”

 

아저씨는 한 걸음 앞서 걸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나와 동생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아저씨는 개의치 않는 듯 빠른 걸음으로 편의점 쪽으로 향했다. PC방에 들어갈 때처럼 아저씨가 먼저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형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무장을 한 우리들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 했다. 하지만 양손을 덮고 있는 털은 그가 '무엇' 인지를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아저씨는 망설임 없이 권총을 꺼내 형을 겨누었다.

 

“자, 잠깐만.”

 

타앙. 힘없이 쓰러진 형은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소름 돋을 정도의 실력이었다. 아저씨는 형을 대충 구석으로 밀어낸 뒤 담배를 보관하고 있는 서랍을 열고 담배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와 동생 역시 기계적으로 챙길만한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원 전용이라고 적혀 있는 문을 열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비릿한 냄새만이 풍겨졌다. 나중을 위해 물을 챙기는 게 좋다고 생각한 나는 바로 옆에 있는 커다란 쿨러의 문고리를 당겼다.

 

“우윽…….”

 

그러나 쿨러 천장에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고기들이 걸려있었다. 저번에 맡았던 그 냄새와 같았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참아내야만 했다. 쿨러 구석에 있는 1.5L 물들을 최대한 챙겨 나왔다. 먼저 나온 아저씨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이렇게 멀었던가.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초조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담배를 물었다.

 

“잠깐.”

 

아저씨의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기현이었다. 매우 지친 기색으로 서 있는 기현이는 동생과 아저씨의 분위기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제 친구에요. 기현이…….”

“그래? 어이. 자네.”

 

기현이는 살짝 놀라는 듯 했지만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왔다.

 

“잠깐 다가오지 마. 자네 괴물들에게 물린 적은 있나?”

“없어요.”

“어떻게 믿지?”

“아저씨!”

 

내 외침에 아저씨는 냉정한 얼굴로 나를 힐끗 보며 말했다.

 

“지금 상황이 어떤지 자네도 잘 알잖나. 절차상 그런 것이니 옷을 벗어보게나. 괴물들과 같은 증세가 자네 몸에서 일어난다면 당장 총을 쏠 것이네.”

 

기현이는 머뭇거렸다. 낯선 사람 앞에서 옷을 벗으라는 주문을 받는다면 그것을 흔쾌히 행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 진지해. 시간 끌지 마. 서로에게 안 좋다고.”

 

아저씨의 압박에 기현이는 서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곧 전라의 몸이 된 기현이의 몸에선 특별한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저씨는 뒤를 돌라는 손짓을 했고 기현이는 시키는 대로 했다. 외관상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됐네. 이제 옷 입게나. 미안하게 되었네.”

“아닙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경계를 취하지 않은 채 기현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고생을 심하게 한 것이 눈에 보여 눈시울이 붉어졌다.

 

“……기현아. 미안하다.”

“아니야. 네 말이 맞았어. 덕분에 이렇게 만났잖아.”

“……”

 

우리는 철문을 단단히 잠그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기현이는 많이 지쳤는지 소파에 털썩 앉아 한숨을 쉬었다. 우리들은 밖에서 챙겨온 물건들을 정리하며 냉장고에 넣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자 아저씨는 식탁에 앉아 기현이를 불렀다.

 

“어제 PC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

“기억하기 힘든 일인 거 알고 있네. 하지만 앞으로의 일들을 대처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해.”

“네…….”

 

기현이는 어두운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녀석이 좀 더 편하게 말을 꺼낼 수 있도록 따뜻한 커피를 타주었다. 모두가 마음의 안정을 취할 시간이 필요했다. 한 모금. 두 모금. 기현이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마른침을 연달아 삼켰다.

 

“그건…… 정말.”

 

기현이의 입술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그날은 사람이 없었어요. 이 동네에서 그래도 제일 장사가 잘되는 PC방인데 10명밖에 없는 거예요. 처음에는 악취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없다고 생각했죠. 저 말고 다른 9명은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폐인들이었기 때문에 개의치 않고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 저도 과제를 뽑고 바로 나가려고 했죠.”

 

악취…… 녀석들의 공통점이었다.

 

“이제 출력을 하고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악취가 엄청나게 심해지는 거예요. 사람들도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표정들이 저마다 안 좋았죠. 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출력물을 들고 카운터로 갔어요. 근데…….”

 

기현이는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났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학창시절 몸이 약해 괴롭힘을 당하던 나를 자주 도와주던 친구가 바로 기현이었다. 항상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니며 도와주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친해졌고 우리는 대학교도 같이 갈 정도로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거기 아르바이트생이…… 뭔가 먹고 있었어요. 팔…… 팔이었어요. 사람 팔…… 전 마네킹인줄 알고 무시하고 나가려고 했죠. 근데 소리가 너무 생생한 거예요. 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어지는 소리 있잖아요. 제가 합기도랑 태권도를 오래 해봐서 알아요. 뼈가 부러질 때 소리나 인대가 늘어나는 소리 같은 거요. 그런데 그게…… 너무 생생하게 들리는 거예요.”

 

기현이는 눈에 띌 정도로 손을 떨었지만 우리는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저 기현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묵묵히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겁이 났어요. 또 한편으로는 웃겼어요. 살아오면서 그런 감정은 느껴본 적 없었거든요. 근데 아르바이트생의 모습이 서서히 변하는 거예요. 양 팔뚝에서 갑자기 검은 털들이 무수히 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는 도저히 사람이 낼 수 없는 소리로 팔을 열심히 뜯어 먹었어요.”

“……”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니까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카운터 쪽으로 걸어왔어요. 서로 친하진 않았지만 안면이 있어서 무슨 일인가 했겠죠. 한 아저씨가 나를 보고 왜 그러냐고, 안색이 안 좋다고 말하고…… 다른 아저씨는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어요.”

“……”

“그리고 비명을 질렀죠. 그 괴물을 자극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기현이는 떨리는 손으로 유리컵을 세게 움켜쥐었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손마디에 있는 뼈가 하얗게 보였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났어요. 아르바이트생이 괴물로 변하는 순간은…… 괴성을 지른 그 괴물은 처음 비명을 질렀던 아저씨를 덮쳤어요. 피가 튀었죠. 내 눈 앞에서 똑똑히 봤어요. 괴물의 이빨이 아저씨의 목과 몸통을 순식간에 분리시키는 것을요. 머릿속에 하얘졌어요. 그리고 내 본능이 시키는 대로 PC방을 뛰쳐나왔죠. 다른 아저씨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어요. 그저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반복했어요.”

 

기현이는 목이 타는지 마른침을 삼키기 시작했다. 나는 식어버린 내 커피를 녀석에게 내밀었다. 기현이는 거부하지 않고 커피를 마셨다.

 

“우리는 살기위해 계단으로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근데 아래층에서 야수의 울음소리가 나는 거예요. 나와 아저씨들은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어요. 살기는 틀렸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다행히 4층에 있는 사무실문이 열리는 거예요. 평범한 회사원처럼 생긴 중년 아저씨가 우리에게 손짓을 했어요. 빨리 오라고. 그렇게 우리는 목숨을 건졌어요.”

“……고생했네.”

 

아저씨는 기현이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준 뒤 소파에 다가가 누웠다.

 

 

 

“어제부터 한숨도 못 잤어.”

그 말을 끝으로 아저씨는 바로 곯아떨어졌다. 우리 셋은 아저씨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바로 주무시네.' 라고 말하는 동생의 말에 조금 공감했다. 이런 상황에서 눕자마자 바로 잠에 들수가 있다니. 어지간한 경험이 아니면 저렇게 잠을 잘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럼..' 그렇게 말한 동생은 나와 기현이를 위해 자리를 피해주었다. 

 

“어제 톡은 어떻게 보냈어?”

“……어제?”

“응. 낮에 다른 애들한테 톡 보내봤는데 통신 상태가 불량하다고 했었거든.”

“난 처음 알았어. 그냥 도망치고 나서 근처에 사는 사람이 너밖에 생각나지 않더라. 그래서 바로 너한테 연락한 거였어. 그때가 밤인지도 인식하지 못했었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미안해.”

“아니야.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게 더 중요한 거지.”

“……”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 아저씨 이상해.”

 

기현이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

“너희들한테 총을 줬다고 했잖아.”

“그렇지. 그게 왜?”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한테 자신이 가진 총알 전부를 거리낌 없이 주겠어? 아무리 군인이라고 해도 말이야. 사람은 이런 상황에 처해지면 무조건 자기만 살려고 하잖아. 너희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게 아닐까?”

“……기현아. 아저씨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야. 너를 구하러 같이 가달라고 했을 때도 길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승낙했어. 덕분에 네가 이렇게 우리 집에 있는 거고. 네 말대로 지금 세상은 엉망진창이야. 하지만 생존자끼리 의심하고 헐뜯을 수 없잖아? 우리가 상대할건 사람이 아닌 괴물이라고.”

“……그렇지?”

 

기현이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누그러뜨렸다.

 

“일단 좀 쉬도록 해. 2층에 방 남는 거 알지? 거기서 자둬.”

“응.”

 

기현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2층으로 올라갔다. 

 

"녀석 의심은……"

 

드르렁. 드르렁. 이내 아저씨는 코를 골며 자기 시작한다. 처음 우리가 옥상에서 녀석들을 관찰할 때 이불 안에 무전기를 넣어 던져주고…… 총도 주고 같이 친구도 구해주며 아낌없이 도움을 준 아저씨였다. 그런 아저씨가 설마…… 기현이 녀석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이것저것 검색을 했다. 역시 나오는 것은 매번 같은 문구였다. '해당 카페는 폐쇄되어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하아…… 인터넷은 도저히 진척이 없어. 더 이상 검색은 무의미하다. 진이 빠져서 컴퓨터를 끄고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탕탕. 탕! 조금 전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군대에서 총을 쏴 본적은 있지만 살아있는 생명체를 쏘는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코를 찌르는 화약 냄새와 신음을 흘리며 쓰러지는 괴물. 그리고 죽기 싫다는 듯 마지막 혼이 담겨 있는 눈동자..

 

“대체 뭐가 잘못된걸까. 어째서 이런 일이..”

 

난 길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었다. 기현이를 무사히 우리 집에 데려올 수 있었으니까. 그래, 그걸로 된 거다. 다시 활동하기 위해선 체력 보충이 필수다. 곧 눈을 감는다.

 

 

 **

 

 

“……이.”

“으음…….”

“어이.”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떠보니 기현이가 내 몸을 흔들고 있었다.

 

“언제까지 잘 거냐. 저녁이나 먹자.”

“저녁?”

 

기현이를 따라 거실로 가니 동생과 아저씨가 저녁 식사를 준비 중이었다.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뭐하냐? 와서 밥 먹어.”

“우와! 된장찌개네 누가 한 거야?”

“아저씨가.”

“우와.”

 

찌개를 한입 떠 맛을 봤다. 맛있었다. 우락부락한 아저씨의 체구에서 이런 맛이 나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허허. 혼자 살다보니 요리는 기본적으로 하게 되었지 뭐. 맛있게 먹어주니 오히려 기쁜데?”

 

아저씨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저씨 진짜 요리 잘하시네요. 우리 엄마보다 잘하신다.”

“하하하.”

“허허허.”

 

얼마 만에 웃어본 걸까. 이런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좋다. 밖의 일들을 모조리 잊고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리면 좋겠다. 하지만 이 행복한 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띵동. 동생은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미친.”

“왜? 무슨 일이야?”

 

영문을 모르는 기현이와 아저씨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말없이 인터폰에 비치는 여자 얼굴을 가리켰다. 기현이와 아저씨는 심각한 표정으로 인터폰을 향해 다가갔다.

 

“이 여자…….”

 

아저씨는 낮게 중얼거렸다.

 

“아는 여자에요?”

“그래. 바로 아래층에 사는 여자야.”

 

쿠웅. 머리가 띵하다. 망치에 얻어 맞은 듯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저씨는 굳은 얼굴로 현관문을 열었다.

 

“일단 어떻게 된 건지 보고 오지. 그래도 내 이웃이네.”

 

아저씨는 권총을 굳게 잡고 느리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호기심이란 건 거부하기 힘들 정도로 나를 이끌었다. 나도 모르게 아저씨를 뒤따라갔다. 갑작스런 여자의 등장에 기현이는 사색이 됐고, 동생은 나와 같이 아저씨의 뒤를 따랐다.

 

“별로 좋은 구경거리는 안 될 것 같은데?”

 

따라오지 말라는 압박감이 섞인 말투였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했다.

 

5미터. 3미터. 1미터. 그리고 바로 코앞. 아저씨는 굳건한 철문 앞에서 여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여자도 아저씨의 시선을 거부하지 않고 조용히 올려다보았다. 나와 동생은 아저씨 바로 뒤에서 곁눈질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은혜야. 기분이 어때?”

 

마치 환자를 대하는 듯 아저씨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멀리서 볼 땐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은혜라는 여자는 상당히 미인이었다. 화장기가 없어서 그런지 피부가 더욱 투명해보이고 깨끗했다. 진한 쌍까풀이 진 눈매와 날카로운 콧날, 작지만 날렵한 입술.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이목구비를 보니 살아 있는 인형이 있다면 이런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일정도로 그녀는 아름다웠다.

 

“……”

 

은혜라는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는 한숨을 내쉬며 권총을 철문 사이에 댔다. 방아쇠를 당기면 그대로 죽을 것이다.

 

“은혜 아파. 아프다…….”

 

처량할 정도로 힘이 없는 목소리였다. 그 말에 아저씨는 이를 갈며 신음성을 토해냈다.

 

“..큭. 은혜는 정신지체아야.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네. 꾸준한 훈련을 통해 2~3살의 지능을 갖고 있긴 하지만 일 년 전에 부모가 죽어서 가끔 내가 돌봐주곤 했었지. 사회복지사들이 가끔 집에 와서 돌봐주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발작을 심하게 일으켜서…….”

 

아저씨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다니…… 그동안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나 기러기 아빠야. 외국에 딸과 마누라가 있지. 은혜를 볼 때마다 딸이 생각나서 더 잘해주게 되더군. 은혜도 나한테는 발작을 일으키지 않았어. 사람들은 놀라워했고 나도 기뻤지. 1년 동안 친딸처럼 보살폈다네. 근데 최근에 그 일들이 터지고 나서 은혜를 구하러 갔는데 집에 아무도 없더군.”

“……”

“매일 오는 복지사들이 있긴 하지만 바깥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지 못하는 거야. 원래 은혜는 가두는 방식으로 생활하게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발작이 너무 심해서 스스로 돌아다니게끔 했어. 그런데 그게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아저씨는 권총을 나에게 주며 느리게 돌아갔다.

 

“……아저씨.”

“자네들에게 맡기지…….”

 

그 말을 끝으로 아저씨는 집으로 들어갔다. 나와 동생은 철문 밖에 처량하게 서 있는 은혜라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새하얗지만 군데군데 때가 탄 원피스가 더 처량해 보였다. 맨발로 서 있는 그녀는 달빛에 반사되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내가 할까?”

 

동생은 권총을 빼앗듯이 잡으며 말했다.

 

“아냐. 내가 할게.”

 

꾸욱. 권총을 강하게 쥐었다. 독하게 마음먹기로 다짐했으니 물러서면 안 된다. 앞으로 강해져야만 했다.

 

“은혜 아파…….”

“후우. 조금만 참아. 오빠가 곧 편하게 해줄게.”

 

권총을 철문 사이에 넣고 여자의 이마에 가까이 댔다. 떨지 마라 빌어먹을 손가락아. 빌어먹을…… 심호흡을 하는 거야. 지금 이 세상에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는 거다. 죽고 죽이는 게 유일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니까.

 

“날 원망하지 말아줘.”

“…….”

 

후우.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온다…… 와…….”

“크아앙!”

 

그 때 골목길에서 괴물 한마리가 어둠을 타고 빠르게 뛰어왔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집안에 있던 아저씨도 서둘러 뛰쳐나왔다.

 

“야!”

 

동생은 거세게 외쳤다.

 

“뭐하냐고!”

“하지만…… 저건 아무리 봐도 정상인이잖아! 제기랄. 저 여자가 어떻게 괴물일수가 있냐고!”

“이 미친놈아!”

 

내 머뭇거림이 답답했는지 동생은 권총을 빼앗았다. 괴물은 더욱 흥분하여 괴성을 질러댔다. 녀석은 빛의 속도로 접근하고 있었다. 3초. 아니, 2초 안에 우리에게 올 것이다. 녀석이 우리 집을 들어오지 못하는 습성을 가진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위험의 싹은 애초에 잘라내야 했다.

 

“아파…… 아프다.”

 

동생은 권총을 여자에게 겨누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그 찰나의 순간, 내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끼이익. 타앙. 나는 철문을 열어버렸고 덕분에 동생의 격발은 빗나갔다. 나는 망설일 것도 없이 여자의 손을 잡아 당겨 철문을 다시 닫아버렸다.

 

“크워어!”

 

괴물 녀석은 분하다는 듯 철문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175cm 정도 되는 날렵한 몸을 가진 괴물은 우리를 한참을 바라보다 이내 돌아갔다. 하지만 중요한건 내 손에 잡힌 이 여자였다. 동생은 패닉 상태가 됐고 아저씨가 정신을 차리고 우리에게 달려왔다.

 

“……아빠.”

 

그녀는 달려오는 아저씨를 강하게 껴안았다. '아빠' 라는 말에 아저씨는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아저씨는 거구에 어울리지 않게 서글프게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자는 안도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는 것에 만족했는지 그대로 눈을 감고 정신을 잃었다.

 

“크윽…… 제길.”

 

아저씨는 진정하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쉽게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고맙네. 사실 자네가 아무 망설임 없이 총을 쐈다면…… 난 자네를 원망했을 거라네.”

“……”

“옷을 벗겨 봐요. 녀석들의 흔적이 없으면 이 여자도 안전한 거잖아요.”

“어…… 어?”

 

동생은 냉정한 얼굴로 원피스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차마 보지 못하겠는지 뒤로 돌아섰고, 동생은 개의치 않는 듯 빠르게 단추들을 풀어냈다.

 

달빛 아래에 비치는 여인의 전라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걸까? 여자 경험이 몇 번 있긴 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까만 밤하늘에 하얀 물감을 칠해 놓은 듯 여자의 피부는 희고 고왔다. 다행히 괴물의 흔적은 없었고 그것을 확인한 동생은 몸을 돌려 여자의 뒤도 살폈다.

 

“됐어요. 정상이네요.”

 

동생의 말대로였다. 은혜는 놀라우리만큼 깨끗했다.

 

“……사실인가?”

 

 

아저씨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동생을 보며 물었다.

동생은 재빨리 옷을 입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여자를 조심스럽게 안고 작게 울음을 삼키고는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아.”

 

또 다른 생존자를 집안에 데려온 것은 정말 큰 이득이었다. 하지만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가녀린 사람이었다. 냉철하게 말해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존재였다. 만약 아저씨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면.. 결과적으론 잘된 일이지만 만약 그냥 타인이었다면 저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누, 누구야?”

 

기현이는 아저씨의 품안에 안겨 있는 여자를 보며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안심해. 정상이야.”

 

아저씨는 여자를 소파에 눕히고 바닥에 대충 개어낸 이불을 덮어주었다.

 

“오늘 일은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네.”

“아니에요.”

“아저씨.”

 

동생은 자고 있는 여자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떻게 저런 여자아이가 이틀 정도를 밖에서 보냈느냐가 의문점이겠지. 하지만 나도 아는 건 없어. 괴물들의 특징을 아주 조금 아는 것 빼고는 전무하니까.”

“……”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앞으로의 타개책을 마련하기 위해 뭐라도 내세우고 싶은데 머리가 콱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머리가 이렇게까지 돌아가지 않았었나? 그러고 보니…… 그래!

 

“분명 괴물이 오기 전에요.”

“응?”

“저 여자가 온다고 했어요. 온다고.”

“온다?”

“네. 괴물이 우리에게 오기 전에 여자가 괴물들이 온다고 중얼거렸어요. 전 그냥 혼잣말인줄 알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아무래도 여자는…….”

“뭔가 느끼는 것이 있고만.”

“네. 녀석들이 어디에 있는지 미리 알 수 있으니까 도망칠 수 있지 않을까요? 아, 물론 확실한 건 아니고요. 그냥 제 추측이 그래요.”

 

아저씨는 조용히 담배를 태우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나도 같이 있었잖아. 그때 여자가 하는 말. 나도 들었어.”

 

동생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연의 일치가 아닐까?”

 

기현이는 식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건 확인해보면 알겠지. 만약 저 여자의 능력…… 이런 말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

튼 그 능력이 진짜라면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렇죠. 아저씨?”

 

아저씨도 동생의 말에 긍정을 표했다. 담배를 다 태운 아저씨는 우리를 보며 말했다.

 

“그래. 우리와는 다르게 살아왔고 다른 정신을 가진 은혜라면 뭔가 있을지도 몰라. 그 증거로 이틀 정도를 밖에서 무사히 지냈고, 덕분에 저렇게 자고 있잖나.”

“죄송해요.”

“응?”

“우리는 그냥 미친 사람인줄 알았어요.”

“아니야. 은혜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네. 은혜는 이 집을 참 좋아했어.”

 

아저씨는 웃음을 흘리며 손을 저었다.

 

“네?”

“은혜가 부모랑 같이 살았을 때 이런 집에서 살았다고 하더군. 그래서 동네를 지나 갈 때마다 이 집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이 드문드문 있었어. 엄마 아빠가 여기에 있다고 자꾸 나보고 들어가자고 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저씨의 눈빛이 향수로 젖어들기 시작했다.

 

“아무튼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소중한 사람을 또 잃을 뻔했어.”

“……네.”

 

우리는 각자 쉬기 위해 흩어졌다. 동생은 동생 방으로, 기현이는 2층으로, 아저씨는 여자 바로 밑에서 잠을 청했다. 끝까지 남은 나는 곤히 자고 있는 여자를 한 번 보고 방으로 들어와 눈을 감았다.

 

***

 

찝찝한 기분에 눈을 떴다. 이상하게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악몽이라도 꾼 걸까.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최근 들어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온 몸이 뻐근하고 힘이 없다. 오늘은 땀까지 나고. 몸이 허약해진 건가…… 방문을 열자 TV를 멍하니 보는 은혜가 눈에 들어왔다. 아저씨와 동생은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고, 기현이는 멀찍이 떨어져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일찍 일어나시네요.”

“습관이 돼서. 허허.”

 

채소를 다듬던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동생은 아예 돌아보지도 않았다. 기현이는 내게 손을 흔들어주었고 나도 가볍게 응답했다. 그리고 은혜가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외관상으로 20~21세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정신만 멀쩡했더라면 연예인 제의도 분명히 받을 법한 외모였다.

 

“안녕.”

“……”

 

은혜는 멍하니 TV만 바라보았다.

 

“그래도 내가 널 구해준건데…….”

“……있어.”

“어?”

“그게 있어.”

 

그 말을 끝으로 은혜는 아예 입을 다물었다.

 

“원래 은혜 성격이 갈대 같아서 처음엔 대하기가 힘들 거야. 자네가 이해하게. 은혜야, 밥 먹자.”

 

은혜는 군말 없이 일어나 식탁으로 다가갔다. 그래, 일단은 먹는 게 우선이니까…… 나와 동생. 기현이. 아저씨랑 은혜까지 5명이 함께 식사를 했다. 불과 며칠전만해도 나와 동생만이 앉아 묵묵히 밥을 먹던 공간이었는데…….

 

“은혜야. 뭐 먹을래?”

 

은혜는 시금치를 가리켰다. 아저씨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시금치를 은혜 입으로 가져다주었다.

“싫어.”

“응?”

“싫어…….”

“뭐가 우리 은혜를 기분 나쁘게 할까?”

 

은혜는 묵묵히 식사를 하는 기현이를 바라보았다.

 

“오빠한테 그러면 실례지. 자, 미안하다고 해.”

“싫어.”

 

아저씨는 고집불통인 은혜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총을 나눠주고 쏠 때의 모습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밥 다 먹으면 슬슬 나가죠.”

 

하여간 동생은 분위기 깨는데 일가견이 있다. 아저씨는 말없이 은혜의 식사를 챙겨주었고 30분 정도가 걸린 끝에 식사를 다 마친 우리는 나갈 채비를 했다.

 

“……난 안가면 안 될까?”

 

기현이는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나와 동생은 서로를 바라보기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들 중 리더는 아저씨였다. 그 시선을 느낀 아저씨는 곧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그렇게 하게. 괜히 가서 방해만 하면 오히려 우리에게 독이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기현군. 언젠가는 밖으로 나가야하네. 미뤄서 되는 일이 아니야. 마음 굳게 먹게.”

“……”

 

기현이는 집 앞까지 마중 나왔다. 잔뜩 움츠린 어깨를 피지 못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마음이 무거웠다. 원래는 저런 녀석이 아니었는데……

 

“너무 친구에게 신경 쓰지 말게. 자기 몸 하나 거뜬히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남을 걱정하는 게 좋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말이지.”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그래, 어제의 각오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져버리면 안되지. 우리는 다시 골목을 돌아 편의점 앞에 멈춰 섰다.

 

“안에…….”

 

은혜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확인 차 편의점 문을 열었다. 역시…… 어제 죽은 알바형이 그대로 엎어져 있었다. 밖으로 나와 아저씨와 동생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뜻을 잘 알고 있는 둘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PC방 건물을 지나 커다란 삼거리가 있는 곳까지 걸어왔다. 정말 고요했다. 이 고요함이 뭔지 알기 때문에 입이 바싹 마르고 긴장이 됐다.

 

“빠방…… 안…….”

 

자동차? 은혜는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를 가리켰다. 아저씨는 굳은 얼굴로 자동차로 접근했다. 유리창은 모두 어두운 색으로 코팅이 되어 있어 밖에서는 보이지가 않았다.

 

“뒤를 부탁하지.”

 

동생은 아저씨의 뒤를 따랐다. 나와 은혜는 두 사람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철컥. 아저씨는 운전석을 연 뒤 서서히 뒷걸음질을 쳤다. 곧 차가 흔들리는가 싶더니 중년 여성이 나왔다. 일반인과 전혀 다를 게 없는 외모지만 양발은 모두 검은 털로 뒤덮여있었다.

 

“……고기. 고기 좀 주세요.”

“……”

“배고파서 미칠 것 같아요. 고기 좀…… 제발.”

 

여성은 서서히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동생은 권총을 여성의 머리에 가까이 대고 주저 없이 쏴버렸다.

 

타앙. 고요한 도로 한 복판에서 요란한 권총소리가 메아리쳤다. 여성은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졌고 아저씨는 여성을 들어 차에 대충 쑤셔 넣고는 문을 닫았다. 은혜는 바로 눈앞에서 살해하는 장면을 보고도 가만히 서 있었다.

 

“네 말이 맞았어. 은혜는 정말 괴물들을 탐지하고 있어.”

 

착각이 아니었다. 은혜는 신기하게도 괴물들의 위치를 감지해내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분명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돌아가지. 이 정도면 충분히 확인했으니까.”

 

아저씨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온다.”

 

은혜가 다시 중얼거렸다. 우리들은 총구를 전방으로 향하며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무턱대고 뛰다가 녀석들의 신경을 건드리면 골치가 아파진다.

 

“뭐지?”

 

아저씨는 고래를 갸웃거렸다.

 

“왜요?”

“저기 보게.”

 

500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곳에 뭔가가 뛰어오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무리'들이었다.

 

“개잖아……?”

 

덩치가 커다란 사냥개 같은 것들이 맹렬한 속도로 뛰어오고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도망친다고 해서 무사히 집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멍멍이…….”

 

그 말은 즉, 10마리의 개도 괴물이라는 소리였다. 우리는 최대한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은혜를 안아들었고, 동생은 위협 사격을 했지만 개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눈 앞에 둔 먹잇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놈들의 기세가 대단했다. 시간이 없다. 이 정도 속도라면 집까지 도착하기 전에 모두 죽을 것이었다.

 

“PC방 건물 있잖아. 그리로 가자.”

 

다시 위험사격을 한 동생은 5미터 정도 앞에 있는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나와 아저씨도 망설일 것 없이 동생을 따랐다. 마지막에 유리문을 닫는 것도 잊지 않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멍멍. 크르르.

 

10마리의 녀석들은 유리문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뿐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 때.

 

크아앙!

 

리더로 보이는 녀석이 다른 동료를 물더니 괴물로 변했다. 와장창! 놈은 우악스럽게 유리문을 부수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멍하니 검은 물체를 바라보았다.

 

타앙!

 

깨갱.검은 물체는 바닥에 고꾸라졌고 우리는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사이에 한 남자가 있었다.

 

“4층으로 올라오세요!”

 

다시 한 번 패닉에 빠진 우리들은 곧 정신을 차린 뒤 4층 버튼을 눌렀다.

 

크아앙!

 

 

나머지 녀석들은 우리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맹렬한 기세로 달려왔다. [문이 닫힙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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