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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밖에 나가지 마시오 part.8

익명
2026-10-18 02:44

덜컹. 덜컹.

녀석은 문을 열기 위해 열심히 밀어댔다. 두근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제발 지나가다오.

죽기 싫은 마음은 녀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두 세 번 문 앞에서 고전하던 녀석은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동료의 포효소리에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서 쭈그려 앉았다. 곧 다른 녀석들도 여기를 지나가기를 바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녀석들이 서로를 먹고 있었어요. 저 녀석은 도망친 거고요.”

내 말에 모두 상황파악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탁탁. 타타탁. 타타탁.

무수히 많은 발소리에 우리는 더욱 긴장했다. 여기서 발각되면 정말 끝이었다. 숨 쉬는 소리조차 크게 들리는 것 같아 마음이 초조했다.

몇 번 문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특별히 흥미를 갖지 않았다. 다행이긴 하지만 완전히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김 대위는 이 소위에게 창가 쪽으로 가라고 가리켰다. 이 소위는 입구 쪽에서 빙 돌아 창가 쪽에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손을 저었다.

“모두 건물위로 올라간 듯 합니다.”

“이 위로 뭐가 있소?”

아저씨가 김 대위에게 물었다.

“특별한 것 없습니다. PC방과 쓰지 않는 빈 공간. 그리고 옥상이 있지요.”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굳게 닫힌 문을 가만히 응시했다. 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쫓기는 녀석은 죽었을까. 아니면 계속 도망가고 있을까. 막다른 길에 다다라서는 어떻게 할까. 동료들에게 이를 드러낼까.

“크아아아!”

커다랗고 긴 포효소리가 고요한 건물을 쩌렁쩌렁 울렸다. 화들짝 놀란 동생은 몸을 잔뜩 움츠렸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저씨와 김 대위, 이 소위만이 덤덤하게 입구 쪽을 노려보았다. 난 언제쯤 저들처럼 침착해질 수 있을까. 다시 한 번의 포효소리와 함께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쨍그랑.

위쪽 건물부터 깨지는 유리 소리에 우리 모두 창가 쪽을 주시했다.

한 층. 한 층. 깨지는 유리 소리. 그 다음은 이곳이다. 우리는 석궁을 쏠 채비를 하고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쉬익-

그때 검은 물체가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당구장의 유리가 깨졌다. 그 여파로 커튼이 크게 펄럭였다. 언뜻 보이는 것은 검은 털을 가진 그것. 바로 괴물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온 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고 깨진 유리 창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제길.”

우리는 고통에 낑낑대는 녀석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크으…….”

착각이었을까. 녀석의 눈에서 살고자 하는 욕망이 보인 것은……? 하지만 괴물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김 대위는 말없이 석궁을 들어 괴물에게 겨누었다. 그리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피융.

“크아아아!”

녀석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를 뿐 손을 놓지 않았다. 김 대위의 사격 솜씨는 뛰어났다. 그런데 그런 그가 실수를 한 걸까. 녀석은 한 번에 죽지 않았다. 김 대위는 다음 화살을 장전했다.

“고개를 틀어 입으로 화살을 받아냈군…… 제길.”

피융. 다시 한 번 목표물로 날아가는 화살.

“크아아!”

이번엔 녀석의 이마에 화살이 깊게 박혔다. 녀석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쿠웅’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아 그대로 죽은 듯 했다. 문제는 우리들이었다. 녀석들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정확하지 않았다. 그대로 계단을 내려가 동료를 뜯어먹을 것인지 아니면 당구장으로 들어오기 위해 문을 부술 것인지.

“일단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서 녀석들의 동태를 살핍시다.”

우리는 다시 당구대 앞에 쭈그려 앉아 석궁을 장전시키고 또 확인했다. 타타탁. 타탁. 다시 발소리가 들렸다. 제발 이대로 지나가줬으면…….

“흐으. 흐으.”

녀석들의 거친 숨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너무 긴장하고 겁을 먹은 탓이었다. 5분 정도가 지나자 녀석들은 완전히 내려갔는지 계단에서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았다. 우리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곳에 있으면서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이 소위는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면서 말했다. 그도 생생한 경험에 많이 긴장한 듯 했다. 다만 아저씨와 김 대위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안도의 순간도 잠시, 문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김 대위는 엎드리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문 쪽을 보니 실루엣 하나가 출입문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예전…… 사무실에 있었던 것처럼 하죠.”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동생과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 대위와 이 소위는 우리를 멀뚱히 보기만 했다. 나와 동생은 당구대를 서서히 치우기 시작했고 아저씨는 둘에게 설명해주었다.

“한 놈 밖에 없을 때에는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한 다음 사체를 여기에 보관해두었다가 아침에 밖에 내버리면 되오. 그런 식으로 우리도 살아남았소.”

“크으으.”

우리가 안에 있다는 것을 감지한 녀석은 더욱 세차게 문을 두드렸다. 김 대위와 이 소위도 당구대를 신속하게 치웠다. 이 소위를 제외한 우리들은 문에서 약간 떨어져서 석궁을 겨냥했고 이 소위는 출입 문고리에 달린 튼튼한 쇠막대를 천천히 빼내었다.

덜컹.

문이 서서히 열리자 녀석의 실루엣이 당구장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를 보자 활짝 웃는 녀석. 그것은 기쁨의 미소였다. 먹이를 찾았다는 기쁨의 미소. 이내 빠르게 변신을 한 놈은 자세를 낮추며 달려들 태세를 취했다. 경험이 적인 탓인지 굶주림에 눈이 먼 탓인지 녀석은 바로 옆에 있던 이 소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 같았다.

“크르르르.”

이 소위는 천천히 행동으로 옮겼고 녀석은 우리에게 다가왔다. 김 대위는 녀석의 무릎 쪽을 겨냥하며 석궁 방아쇠를 당겼다.

핑.

빠르게 날아간 화살은 녀석의 무릎을 관통했다. 녀석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단검을 가져온 이 소위가 두터운 목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푸학. 사방에 많은 피가 튀기 시작한다.

“꾸르르르.”

피를 토해내던 녀석은 도망치려고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대로 두고 볼 우리들이 아니었다.

나와 동생은 기다렸다는 듯 녀석의 뒤통수에 화살을 꽂아 넣었다. 녀석은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져 서서히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사라락. 검은 털들이 먼지처럼 휘날리다가 이내 사라졌다.

“어서 처리하지.”

털이 완전히 사라지자 우리 눈에 보인 것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었다. 이런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우리들은 시체를 끌고 당구장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이 소위는 1층과 3층을 한 번 훑어 본 뒤 다시 돌아와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녀석들은 모조리 내려간 것 같습니다.”

이 소위의 말에 모두 창가 쪽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한 치도 방심할 수 없겠군…….”

아저씨는 동료를 거침없이 뜯어먹는 괴물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느새 식사를 마친 괴물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허기를 채운 모양이었다.

“후우.”

순식간에 생긴 일이었다. 건물 앞에 있는 세 구의 시체. 그리고 구석에서 식어가는 시체까지. 문득 다른 사람들 모르게 깜빡 잠이 든 것이 미안해졌다.

“아직 23시입니다. 낮이 되려면 한참 멀었어요.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자둬야 합니다.”

그렇게 말한 김 대위는 창고에서 투명한 비닐을 꺼내 시체를 덮었다. 냄새를 차단하려는 건가. 동시에 이 소위는 대걸레를 들고 열심히 바닥을 문질렀다. 나와 동생 역시 대걸레를 빨아 이 소위를 도왔다.

슥. 스윽. 하얀 대걸레가 금세 붉게 물들었다.

“후각을 잘 맡는 녀석들이 피 냄새를 맡을 수도 있어요. 최대한 빨리 이 흔적들을 없애야 합니다.”

나와 동생은 고개를 끄덕이고 묵묵히 핏기를 닦아냈다. 피가 이토록 진하고 지우기 힘든 것일까. 우리를 보며 애절한 눈빛을 보낸 그 괴물의 피도 이렇게 진할까. 그 녀석을 거침없이 죽인 김 대위나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우리들의 피도 이렇게 진할까.

“아저씨께서는 절 좀 도와주십시오.”

김 대위는 아저씨를 불러 유리 조각을 모으기 시작했다. 소음에 민감한 녀석들이 있다면 꽤 위험한 수준이었지만 녀석들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1시간 정도 지나자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었다. 완전히 핏기를 닦아낸 당구장은 깔끔한 모습이었고, 뻥 뚫린 창문을 통해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으스스. 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24시입니다. 진우가 불침번을 서도록 하고, 나머지 분들은 내일을 대비해 눈을 붙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큰 혼란 때문에 잠이 들기 힘들겠지만 내일 따님과 아가씨를 찾으려면 체력을 보충해둬야 합니다.”

김 대위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말했다.

우리는 모두 군소리 없이 당구대 위에 몸을 뉘었다.

“두 분 가족은 모두 무사하시오?”

아저씨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이 소위는 고아원에서 자랐고, 전 시골에 홀어머니가 계시긴 한데 연락이 안 된지 꽤 되었습니다.”

“…….”

“고아긴 하지만 친동생처럼 챙겨주시는 김 대위님이 있어 힘들지 않습니다. 저에겐 가족 같은 분입니다.”

두 사람의 전우애가 상당히 끈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소위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김 대위님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요. 하하하.”

“나도 같은 심정이지. 자네와 생사를 같이한 시간이 얼마인데. 가족을 넘어서 형제 수준이라니까.”

“감사합니다. 김 대위님. 하하하.”

두 사람의 장난기가 섞인 대화에 내 입 꼬리도 절로 올라갔다. 그동안 이 어두운 밤에서 저런 식으로 버텨온 것일까.

“아무튼 여러분 덕에 당직을 서지 않아 다행입니다.”

“당직이요?”

“예. 아무래도 두 사람이다 보니 한 명은 자고 한 명은 밤을 새야만 했으니까요.”

“그렇군요. 그런데 ……준우 아저씨는 괜찮은 걸까요.”

나는 준우 아저씨를 바라보다 대화에 끼었다.

“괜찮을 겁니다. 그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 살아 왔다면 분명 깨어날 겁니다.”

이 소위의 말에 조금 안도감이 생긴 나는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기다렸다는 듯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나른해졌다. 차가운 바람을 피하기 위해 모포를 머리끝까지 올렸다.

“후우…….”

사람들의 말소리가 점차 작아져갔다.

"...."

커다란 운동장에 나 홀로 서 있는 것이 점차 확대되어갔다. 꿈인가?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둘러보지만 보이는 거라곤 넓은 공간뿐이다. 대체 이런 공간이 있기는 한 걸까. 매섭게 부는 바람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하지만 얼마가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렸다.

“크아아아!”

잊을 수 없는 괴물들의 포효소리가 운동장에 퍼졌다. 순간 온 몸에 피가 거꾸로 도는 듯한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전에 괴물들에 대한 두려움만 앞섰는데 이제는 녀석들을 빨리 없애고 싶은 마음 뿐이다. 이상해. 마치 내 몸이 아닌 듯한 이 느낌. 대체…….

“크아아!”

이내 파란 하늘에 조그만 구멍이 뚫리더니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괴물들은 아예 하늘을 찢어버리며 울부짖었다. 비처럼 내리는 괴물들 사이에 말소리가 들려온다.

“세상의 종말이 바로 너였구나.”

괴물들의 입에서 또렷한 인간의 말이 들렸다. 이건…… 동생의 목소리?

“모든 일의 원흉이 바로 너였어.”

“…….”

“너만 없으면…… 너만 없으면!”

수 많은 붉은 색 루비들이 반짝거린다. 어째서인지 두렵지가 않다. 난 여유로운 동작으로 괴물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앞에 있는 괴물을 향해 오른손을 힘껏 내질렀다.

푸학.

엄청난 소음과 함께 녀석의 머리가 사라졌다. 힘을 잃어버린 녀석의 몸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괴물들은 공포에 찬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려고 했지만, 사방을 막는 투명한 벽에 의해 그러지 못한다. 언제부터 벽이 있었던 거지.

오히려 좋았다. 이 빌어먹을 놈들은 나에게 겁먹어 있었고, 지금의 나라면 모두 없앨 수 있을 것 같았다.

퍼억. 퍼억. 퍼억.

손을 휘저을 때마다 한 마리씩 나가떨어졌다. 괴물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자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나도 모르게 괴물의 목을 물어뜯어 멀리 던져 버렸다.

질긴 살덩이가 입속에 가득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구역질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커다란 힘을 주는 것 같았다.

앞으로 달려가 한 놈의 머리를 부수고 팔을 뜯어 입가로 가져갔다. 질겅질겅. 고기 덩어리를 씹으며 녀석들을 둘러보았다. 고개를 조아리며 살려달라는 녀석들의 모습에 코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유쾌하고 통쾌한 적이 있었던가.

“크아앙!”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자 녀석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가만…… 내가 언제부터 녀석들과 같은 급이 되었지? 천천히 내 몸을 훑어보았다. 붉고 강한 가시 같은 털이 온 몸을 에워싸고 있었다. 이럴 수가…… 그럴 리 없어.

피가 고여 있는 웅덩이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내려 보았다. 붉은 핏물이 어느새 투명하게 변해 내 모습을 그대로 반사시켜 주었다. 완전히 검은 눈과 우락부락한 근육이 내 몸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건…… 괴물의 모습이었다.

“크아아아!”

하늘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빨리 꿈에서 깨어나라고 외쳤다. 푸른 하늘이 완전히 사라지자 어둡고 붉은 하늘만이 눈앞에 보였다. 몸에서 서서히 힘이 빠졌다. 고기를 원하는 거야……? 닥치는 대로 녀석들을 유린하면서 살덩이를 물고 희열을 느꼈다. 난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헉!”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번 눈을 깜빡이며 사방을 천천히 살펴보니 어제 밤을 보냈던 당구대 위였다. 역시 꿈이었나..

“괜찮나?”

창가에 서 있던 김 대위가 나에게 다가왔다. 온 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김 대위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 나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손수건으로 받아 땀을 닦아냈다.

“악몽이라도 꾼 거야?”

“……네. 정말 지독히 생생했어요.”

“어제 그런 일들을 당했으니…….”

나는 땀으로 흥건한 상의를 벗고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걸어 놓았다. 해가 완전히 떠 있었다. 녀석들이 잠자는 시간이었다.

“아직 7시네요.”

“이제 슬슬 다 깨워야지.”

모두들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준우 아저씨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흐으음.”

꼼지락꼼지락. 이 소위가 몸을 꿈틀대며 일어났다. 양손으로 눈을 비빈 이 소위는 기지개를 펴며 당구대에서 내려왔다. 가벼운 목례를 하고 당구장 구석에 있는 싱크대로 걸어가 간단한 세안을 했다. 그 물소리를 시작으로 아저씨와 동생도 일어났다.

“일단 아침을 먹고 출발하는 게 좋겠습니다.”

김 대위의 말에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모포를 접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세안을 마친 이 소위도 자신의 당구대 위에 놓여있는 모포를 접었다.

김 대위는 카운터 아래에 있는 커다란 박스에서 전투 식량을 하나씩 꺼냈다. 나도 김 대위의 일들을 거들어 전투식량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세안을 마친 우리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발열 팩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잘 먹겠습니다.”

잠시 후 연기가 멎은 전투식량을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우선 따님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기억나시나요?”

“예. 우리가 우두머리에게 당했을 때 이곳과 반대되는 길로 뛰어갔습니다.”

“반대라…….”

모두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검은 봉투에 쓰레기를 담았다. 석궁을 다시 재정비하고 출발할 준비를 했다. 캐비닛 안엔 신형 소총이 있긴 했지만 석궁만 챙겨가기로 했다.

“저거…….”

동생은 이미 싸늘히 식어버린 시체를 가리켰다. 나와 아저씨는 시체 곁으로 다가가 투명한 비닐을 떼어내고 시체를 들었다. 근육이 굳어져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흡!”

나와 아저씨가 약간 힘을 주자 뭔가 찢기는 소리와 함께 시체가 들렸다. 찢긴 부분을 가만히 보니 시체가 머물던 자리에 작은 피 웅덩이가 굳어 있었다. 김 대위와 이 소위는 문을 열고 밴에 올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밴의 천장이 인위적으로 뜯겨져 있어 보기 좋지 않았다. 아저씨는 아까 챙겨온 비닐로 밴의 천장을 대충 막고 옆문을 닫았다. 김 대위가 운전석에 앉고 이 소위가 조수석. 우리들은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부릉. 이내 시동이 걸리자 밴이 서서히 출발했다. 김 대위는 먼저 우리가 당했던 장소로 다시 되돌아갔다. 인위적으로 부러져 있는 가로등이 우리를 반겼다.

“저 쪽으로 갔단 말이죠?”

김 대위는 그곳을 지나며 아저씨에게 물었다.

“예.”

우우웅- 작은 소음을 내며 이동하려는 찰나 꾸물거리는 뭔가가 눈에 보였다.

“크으…….”

먹잇감을 발견했다는 흥분 때문인지 놈들은 양 손을 뻗으며 느릿하게 다가왔다. 한 마리씩 모두 요절내고 싶지만 은혜와 민정 누나 쪽이 더 촉박하기에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낮에는 멍청하니 안심해도 될 겁니다.”

그렇게 말한 김 대위는 속도를 높였다. 부아앙. 거리 곳곳을 지나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여러 괴물들이 일어났다. 우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묵묵히 놈들을 눈에 담았다.

“저깁니다.”

아저씨가 가리킨 곳은 건물들이 즐비하는 상가였다. 민정 누나와 은혜가 숨기에는 최적의 장소였지만 찾으려면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았다.

부우웅.

김 대위와 이 소위는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지형을 살폈다. 우리는 석궁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며 묵묵히 기다렸다.

“여기군요.”

김 대위는 밴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는 문을 열고 밴에서 내렸다. 상가 거리는 고요함 그 자체였다. 여기에 민정 누나와 은혜가 있을까. 무턱대고 찾기에는 위험부담이 컸다.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계단만 있는 건물은 피하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만 돌아다니는 게 좋겠군요. 이런 시간대면 어두침침한 계단에서 녀석들이 자고 있을지도 모르거든요.”

우리는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따로 조를 나누지는 않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인원을 분산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날 것이다.

“흐음…….”

수많은 상가 건물 가운데 가장 첫 번째 건물에 먼저 갔다. 건물은 꽤 고층으로 되어 있었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1층에 맞춰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아직 층수 번호를 누르지 않고 이 건물에 뭐가 있는지 표지판을 보았다.

“2층은 헬스장…… 3층은 노래방. 그 위로는 대개 넓은 공간이군요. 3층으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노래방 특징을 잘 아시니 긴장하시기 바랍니다.”

김 대위와 이 소위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3층을 누르자 엘리베이터는 서서히 올라갔다.

띵동. 맑은 기계음과 함께 서서히 문이 열렸다. 노래방 입구에서부터 심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저벅. 저벅.

우리는 느린 걸음으로 행을 맞추며 노래방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 바닥에는 뼈만 남은 시체가 즐비했다. 노래방은 U자 형식으로 되어 있었는데, 방은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여기서 나가죠. 저와 이 소위는 왼쪽 길로, 여러분들은 오른쪽으로 가주십시오.”

그렇게 말한 두 사람은 왼쪽에 있는 1번방으로 들어갔고 우리는 오른쪽에 있는 12번방에 들어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무척 어두웠다.

“여긴 없군.”

아저씨는 작게 중얼거리며 다음 방으로 건너갔다. 나와 동생도 그 뒤를 따랐다. 11번 방. 10번 방. 9번 방. 가끔 뼈만 남은 시체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피잉. 핑.

그 때 왼쪽으로 갔던 김 대위와 이 소위 쪽에서 석궁을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9번방의 문을 닫고 코너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석궁을 사용하는 건 괴물이 있다는 얘기였다. 만약을 대비해 석궁을 조준한 채 천천히 속도를 늦췄다.

“크아!”

저 쪽! 멀지 않은 방안에서 괴물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우린 빠른 속도로 뛰어가 방문을 거침없이 열었다.

“크으…….”

세 마리의 괴물은 구석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김 대위와 이 소위는 피로 물들은 손을 노래방 소파에 대충 문질러대고 있었다.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뭔가 달랐다.

“이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김 대위는 괴물들의 머리에서 화살을 뽑아내며 말했다.

“그런 것 같군요.”

우리는 노래방에서 나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1층에 내려 다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밀폐되고 안전한 공간…… 숨어 있어도 녀석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공간. 어디지?

“후우…….”

동생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갈 곳은 많지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었다.

“자, 다른 쪽으로 갑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두 사람은 두려움에 떨며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김 대위는 우리를 재촉하며 맞은편 건물로 들어갔다. 뒤 따라 들어간 우리는 건물 앞 간판에서 멈춰 섰다.

“카페…… PC방…….”

카페와 PC방은 각각 3층과 4층에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김 대위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우리도 뒤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4층을 누르자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올라갔다.

띵동.

문이 열리자 입구가 단단히 잠긴 PC방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임의로 막은 듯한 흔적이었다. 유리문을 통해 안을 보니 무거운 물건들을 입구 쪽에 쌓아 놓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로는 들어가지 못할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리문을 세게 두드려보았다. 하지만 들리는 것은 바깥에서 부는 바람소리가 전부였다. 우리는 주저 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라 3층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역시 문은 잠겨 있었다.

이 소위는 쇠로 된 철사를 구부리더니 열쇠 구멍에 넣고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했다. 2분 정도 지났을까.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우리는 석궁을 앞으로 겨누며 천천히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40평정도 돼 보이는 카페 안에는 수많은 테이블과 시체들이 쌓여있었다. 모두 괴물이 될 바엔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는지 손목이 깊게 절단 되어 있었다.

“…….”

조용히 카페 내부를 둘러보는 도중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동작을 멈추고 최대한 소리를 줄였다. 화장실 쪽인 것 같다. 김 대위는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고는 이 소위와 함께 화장실 앞으로 걸어갔다.

김 대위는 굳게 닫혀 있는 화장실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 소리에 식사를 하던 소리가 멈추더니 곧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끼이익-

낡은 쇳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평범한 중년의 여자였다. 그러나 얼굴을 제외하고는 온 몸이 검은 털로 뒤덮어 있었다.

“…….”

“제발…… 저 좀 도와주세…….”

여자는 천천히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피잉-

가만히 들어줄 김 대위가 아니었다. 여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살을 날린 김 대위는 단 번에 여자를 즉사시켰다.

“가죠.”

대충 카페를 훑은 우리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에서 나왔다. 워낙 긴장 한 탓에 몸이 지쳐갔다. 내가 이렇게 허약한 몸이었었나? 김 대위는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편의점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편의점으로 들어가 이온 음료나 물 등을 꺼내기 시작했다. 주변을 경계하며 목을 대충 축이고 한 곳에 진열된 빵 등을 꺼냈다.

“유통기한이 지났어.”

동생 말대로 유통기한이 2~3일 지난 것들이 많았다. 진공 포장이 된 것들은 문제가 없겠지만 김밥이나 샌드위치, 빵 종류들은 모두 유통기한이 지났다. 그러나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우리는 가져온 배낭에 빵과 초코바 등을 챙기고 편의점을 나왔다.

민정 누나와 은혜를 찾기에는 상가가 너무 넓고 건물들이 많았다. 게다가 노래방이나 카페 PC방은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일일이 다 뒤져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먹먹해졌다.

“후우. 안 돼.”

그래, 이런 약한 마음이 들어서는 안 돼. 나는 다시 편의점으로 들어가 지워지지 않는 수성 사인펜을 들고 나왔다. 편의점 문 쪽에 커다랗게 붙여져 있는 광고지를 떼어 글자를 써내려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리가 지내는 곳이 있어. 여기 약도를 그렸으니 찾아올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쓴 광고지를 편의점 문 앞에 붙였다. 이 정도면 발견할 수 있겠지. 이 방법이 꽤 좋다고 생각한 나는 편의점 안에 있는 여러 장의 광고지를 뜯어 조금 앞에서 걷고 있는 일행과 합류했다.

“이걸 누나가 보도록 하려고?”

동생은 내 손에 들린 광고지를 보며 물었다.

“충분히 크게 썼으니까 멀리서도 보일지 몰라.”

“그래?”

동생은 다시 주위를 경계한다. 낮이긴 하지만 방심할 순 없었다.

“건물에 직접 들어가는 것보다 이렇게 밖에서 간판들을 보는 게 낫겠어요. 아가씨와 따님도 무작정 아무 건물이나 들어가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충분히 일리 말이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호프집, DVD방, 영화관 등등. 눈에 보이는 것은 많지만 몸이 따라주는 데는 없었다. 천천히 이동을 하며 광고지에 같은 문구를 써서 일정한 간격으로 붙였다.

우리들은 상가 중심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편의점에서 빼온 담배들을 각각 하나씩 물고 상의하기 시작했다.

“쉽지 않겠어요. 차라리 여기서 기다렸다가 뭔가 이동하는 게 눈에 보이면 접근하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몰라요. 아가씨들도 밤에는 숨어 있다가 낮에 이동할 확률이 더 높아요.”

이 소위의 말에 김 대위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너무 위험해. 둘은 놈들을 잡아본 경험도 전무하다고 했어. 놈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할지도 몰라.”

아저씨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입술을 달싹였다. 나와 동생은 그 세 사람의 묘한 대치를 바라보기만 했다.

“사실…… 제 딸은 정신지체아입니다.”

“…….”

그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져갔다. 방금 전까지 열렬히 토의를 하던 그 열기도 사라졌다. 아저씨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딸은 괴물들을 탐지해낼 수가 있습니다. 그걸로 충분히 녀석들을 따돌리고 있을 겁니다.”

“……탐지요?”

김 대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 소위도 아저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설명을 바라는 눈치였다.

“제가 잘못 투여한 주사로 인해 괴물들의 위치를 탐지해낼 수가 있습니다.”

“5년 동안 현장에서 근무 하면서 그런 얘기는 처음입니다만…….”

김 대위와 이 소위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얼버무렸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어쨌든 사실이오. 이 상황에서 내가 왜 그런 거짓말을 하겠소?”

아저씨의 진지한 태도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 봐둔 곳 중 유력한 곳이라도 있습니까?”

김 대위의 물음에 아저씨와 동생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도 광고지에 정신이 팔려 주변을 잘 보지 못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김 대위는 몸을 돌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고시원이 있더군요. 일단 거기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밀폐된 공간이라면 고시원이 가장 최적의 장소였다. 좁은 평 단위의 공간과 무수히 많은 방의 개수. 우리는 서둘러 김 대위를 따랐다.

‘아트 고시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김 대위가 말한 곳이 여기인가. 엘리베이터 앞에 선 우리들은 6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의문을 가졌다.

“누군가 이용하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애초에 6층으로 맞춰져 있는 건지도 모르죠.”

“그럴 수도 있겠군.”

띵동.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약하지만 익숙한 피비린내가 엘리베이터 안에 가득 퍼졌다. 우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6층 버튼을 눌렀다. 점점 올라가는 숫자를 보자 묘하게 긴장이 됐다.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굳게 닫힌 고시원 문 앞에 섰다. 창문을 통해 안을 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제일 앞에선 김 대위는 천천히 고시원의 문을 열었다.

천천히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생명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T자 모양으로 된 고시원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긴 복도 끝에 좌우로 갈라진 길. 복도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닫혀 있는 작은 방문들. 이것들을 일일이 확인해야 한단 건가?

“CCTV에 다 나오지 않을까요.”

이 소위의 말에 동생은 고개를 저었다.

“요즘 CCTV는 복도만 비추지 안은 비추지 않아요. 프라이버시 침해된다고 해서.”

“골치 아프군 그래…….”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닫혀 있는 방문을 하나씩 열어 보기로 했다.

끼이익.

쇳소리가 고요한 복도에 울려 퍼졌다. 방문을 열자 3평이 될까 말까 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 짐을 싸고 나간건지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문을 열 때마다 묘한 긴장감과 흥분감이 맴돌았다. 안에 녀석들이 있을까 하는 긴장감과 민정 누나와 은혜가 있을지도 모르는 기대감이 점점 커져갔다. 하지만 우리를 반기는 것은 휑한 빈 방뿐이었다.

앞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나와 동생 그리고 아저씨는 걸음을 멈추고 석궁을 조준했다. 단순히 문이 열린 걸까. 아무것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천천히 전진하며 열린 문을 발로 살짝 밀었다.

끼익. 문은 다시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러나 안에 뭐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내야만 했다. 나와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자 동생은 벽에 바짝 붙어 방문을 천천히 열었다.

“쯧…….”

천장에 시체가 매달려 있었다. 우리는 다시 문을 닫았다.

“사…… 살려.”

“?!”

예상치 못한 소리에 다시 문을 열어보니 붉게 충혈 된 눈을 한 괴물이 우리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발목 부분이 검은 털로 뒤덮어 있었다.

“크…… 컥.”

괴물은 말라비틀어진 식물처럼 퍽퍽한 소리를 냈다.

피잉-

동생은 화살을 쏘았다. 푸욱. 이마 한가운데에 화살이 꽂히자 괴물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가지.”

모조리 수색했지만 민정 누나와 은혜의 실마리는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코너를 꺾는 부분에 김 대위와 이 소위가 서 있었다.

“…….”

김 대위는 말없이 출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기에도 없었다. 앞으로 두 세 건물만 돌아다녀도 저녁이 될 것만 같은데…… 그때까지 발견하지 못한다면…… 은혜와 민정 누나가 정말 위험해질지도 몰라.

“잘 될 거야.”

아저씨는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정작 애가 타는 사람은 나보다 아저씨 일 텐데…… 나는 아저씨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말이 없었다. 왠지 모르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다시 엘리베이터에 오른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같은 모습이었지만 우리는 다시 어디로 가야할지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휘이잉-

갑갑하네. 뭔가 작은 실마리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점점 강해지는 햇볕을 피하기 위해 1층 건물 안에서 상가를 훑어보았다. 정말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돼 버린 거지…….

“후우.”

담배를 피던 동생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

우리는 동생이 바라보는 쪽을 유심히 보았다.

“?!”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검은 색 로브를 입은 네 명의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괴물 특유의 걸음이 아닌 일반적인 사람의 걸음이었다. 우린 물고 있던 담배를 아무렇게나 던지고 무작정 뛰어갔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를 본체만체하며 다른 골목으로 들어가 버렸다.

“놓치면 안 돼.”

이 소위는 작게 중얼거렸다. 우리는 이를 악물고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헉…… 헉.”

그러나 우리 앞에 있는 것은 평범한 건물들이었다. 숨도 쉬지 않고 달려서인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두근두근.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배낭에서 물을 꺼내 목을 축였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이런 상황에서 그런 차림을 하고 어디를 가는 거지?”

확실히 이런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었다. 그들은 서양 천주교 신자들이나 입을법한 그런 로브를 입고 어딘가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뭔가 있어. 직감적으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 소위는 얼굴을 찡그리며 물로 입안을 헹궈냈다.

“일단은 그 네 명의 흔적을 찾는 게 중요하겠군요.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

우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여러 개의 오피스텔과 음식점. 화장품가게. 핸드폰 가게. 이런 평범한 곳에 그 사람들이 있을 리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그들의 복장이었다. 그건 종교의…….

“이 소위. 근처에 성당이 있나?”

“지형 브리핑을 받았을 때 얼핏 들은 것 같습니다만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중요 지점이 아니라 그냥 흘려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죄송합니다.”

“아냐. 왜 사과를 해. 나도 잘 몰라서 자네한테 물어보는 거야.”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동생은 근처에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동생의 행동에 우리는 이유도 묻지 못한 채 편의점에 들어갔다. 동생은 편의점 구석진 곳에 위치한 ‘직원전용실’을 열고 들어갔다.

“아! 컴퓨터!”

나는 서둘러 동생을 따라갔다. 동생은 인터넷을 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컴퓨터가 켜져 있다니…… 어찌되었건 다행이었다.

“뭐 좀 찾았나?”

김 대위가 문을 열며 물었다. 아저씨와 이 소위는 출입구 쪽에 서서 주변을 경계했다.

“대위님. 여기 정확한 위치가 어디죠?”

동생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오산. 오산동이라고 검색해도 될 거야.”

동생은 검색 창에 오산동이라고 치고 주변 검색에 교회를 입력했다.

“너무 많잖아. 제길…….”

2페이지를 가득 채운 교회를 찾아다니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동생은 키워드를 성당으로 바꾼 다음에 검색을 눌렀다.

“2개라.”

한 곳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여기서 10분정도 걸어야하는 위치에 있었다. 김 대위는 주변 약도를 상세하게 옮겨 적고 몸을 돌렸다. 동생도 망설임 없이 인터넷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있을지도 몰라.”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상황 에서 왜 그런 복장으로 있었던 걸까.

“서두르자고. 성당을 수색하면 다시 돌아가야 돼.”

김 대위는 출입구를 열며 말했다.

“네.”

꽤 멀리 걸어왔다. 돌아가려면 어느 정도 시간을 예상해야 했다. 더군다나 당구장에는 부상을 당한 준우 아저씨가 있었다.

우리는 편의점 옆에 있는 큰 골목을 지나갔다. 무수히 많은 아파트단지 속에 백색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머뭇거림 없이 육교를 지나 아파트단지 내로 들어갔다. 사람의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아파트단지. 우리는 대충 주변을 훑으면서 성당 쪽을 향해 걸어갔다.

“상당히 크네.”

성당의 규모는 상당히 컸다.

성당의 출입구를 열자 부드럽게 문이 열렸다. 2층으로 되어 있는 성당이었다. 1층에는 의자들이 늘어져 있었고, 그 끄트머리에는 마리아가 새겨진 오색의 유리창이 있었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지만 의자들만 있어서 딱히 둘러볼 데는 없는 것 같았다.

저벅. 저벅.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성당 내부를 훑기 시작했다. 한 줄. 한 줄. 가로로 길게 이어진 의자사이를 지날 때마다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수십 여개의 의자들을 지나쳐도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독서대까지 이른 우리들은 그 옆 작은 테이블 위에 금색의 커다란 컵이 있었다.

“어……?”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금색 컵에 찰랑이고 있는 붉은 색…… 저건 설마?

“흠……”

김 대위는 컵에 손가락을 담가보고 혀를 살짝 댔다. 그리고는 찝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피가 맞아. 완전히 식은 게 아니야. 여기서 뭔가가 행해지고 있어.”

그 말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놓친 것이 없나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하지만 보이는 거라고는 낮은 의자들과 출입구가 전부였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거로 합시다.”

아저씨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우리는 아저씨 말대로 출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스르륵.

성당의 출입구가 천천히 열렸다. 멈춰선 김 대위는 석궁을 정면을 겨냥하며 서서히 열리는 문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이어 검은 후드를 입은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

그 사람은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 뭐하는 사람입니까?”

김 대위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후드를 입은 사람에게 물었다.

“……”

“대답하지 않으면 쏠 겁니다.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던 겁니까?”

그 사람은 대답 대신 그대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큭!”

김 대위는 석궁을 등에 매고 빠른 속도로 뒤를 쫓기 시작했다.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우리도 김 대위의 뒤를 빠른 속도로 따랐다.

고요한 아파트단지 내에서 추격전이 이어졌다. 제일 뒤에 있던 이 소위가 속도를 내며 김 대위와 같이 뛰었고, 우리들은 그 뒤에서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달렸다.

그런데 로브를 입은 사람의 속도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바로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상가 쪽으로 뛰어갔다. 수많은 상가 건물 중 아무 곳에 들어가 숨기만 해도 우린 저 사람을 잡을 수가 없다.

“헉…… 헉.”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내 옆에서 달리던 아저씨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달리는 것을 멈추고 석궁을 겨누었다.

하지만 나와 동생은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왠지 이대로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피융.

화살은 빠른 파공음과 함께 로브를 입은 사람에게 곧장 날아갔다. 그러나 로브를 입은 사람은 빠른 반사 신경으로 몸을 틀어 화살을 피했다. 설마 사람이 아닌 건가? 김 대위와 이 소위 역시 석궁을 겨누었다.

핑. 피융. 두 개의 화살은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이번엔 약간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이내 결심을 했는지 하체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해내고, 상체로 날아오는 화살은 최대한 몸을 돌려 피했다.

우리는 멍하니 그 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허어…… 허억. 허억.”

“하악…… 하악.”

동생과 나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아저씨도 우리 곁으로와 걸음을 맞췄다.

“정말 엄청나군요.”

아저씨는 석궁의 현을 튕기며 중얼거렸다.

모두 그 말에 동의했는지 숨을 몰아쉬기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밴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상가 내에서 분명 뭔가가 행해지고 있었다. 그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밝혀내야만 민정 누나와 은혜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

치진 몸을 이끌고 밴에 올라탔다. 약간이긴 하지만 소득이 있긴 했다. 성당에서 뭔가가 이루고 지고 있다는 것과 우리 같은 정상인이 살고 있다는 것. 그들은 어떻게 이곳에서 밤을 보내고 있을까.

해가 서서히 지고 있었다.

“그래도 아주 못 살만한 곳은 아닌 것 같군요.”

김 대위는 운전을 하며 말했다.

“하지만 뭔가가 있소. 그것을 알아차리긴 전에는 찝찝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을 것 같군.”

아저씨는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들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을 겁니다.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일 수도 있겠지요.”

맞는 말이다. 어쩌면 로브를 입은 사람들 모두가 방금 추격을 하던 그 사람과 비슷한 능력을 가졌다면 순순히 목숨을 내놓지 않을 것이다.

혹시 그들은 괴물들에 대항할 방법을 갖고 있진 않을까. 단순히 사이비라고 치부해버리기엔 뭔가가 낯설다. 대체 왜 우리를 보고 도망갔으며 성당에 있는 컵의 피는 뭐란 말인가.

당구장에 도착한 우리는 밴에서 쓸 만한 것들을 꺼내 올라갔다.

“어……?”

열쇠를 꺼내던 이 소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런가?”

김 대위의 물음에 이 소위는 아무 말 없이 서서히 문을 열었다. 누군가 문을 열기라도 한 걸까. 설마 로브를 입은 사람이……?

“…….”

우리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맨 앞에 선 김 대위와 이 소위는 석궁 대신 날카로운 단검을 손에 꽉 쥐었다.

“깨어 나셨네요.”

이내 두 사람은 단검을 다시 집어넣으며 말했다. 설마……? 우리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이네.”

상의 전체를 붕대로 감은 준우 아저씨가 핼쑥한 얼굴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아저씨…….”

무사히 깨어난 준우 아저씨를 보자 안도감이 들었다. 아저씨와 함께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지만 생사를 같이 해서 그런지 남 같지가 않았다.

“다행일세. 정말.”

아저씨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준우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에이. 형님도…… 제가 죽기라도 할까 봐요.”

준우 아저씨는 장난 섞인 말투로 말했다. 단 2일 만에 보는 건데도 묘하게 낯설었다.

“너네도 괜히 손발 오글거리는 말 하지 말고, 하려고 한 일이나 마저 해. 원래 남자끼리는 눈으로 말하는 거야.”

“쳇…….”

동생은 콧방귀를 끼며 배낭을 당구대 위에 내려놓았다. 준우 아저씨는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래…… 저 미소야. 우리를 보며 웃어주던 저 미소. 나도 동생 옆에서 배낭을 풀었다. 생수 여러 개와 열량을 채워줄 사탕과 초코바. 그리고 유통기한이 조금 지난 빵들과 여러 가지 통조림 식품들.

“인사하게. 저 두 분이 아니었으면 우린 모두 죽은 목숨이었어.”

아저씨는 대검과 석궁을 수입하고 있는 김 대위와 이 소위를 가리켰다. 두 사람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지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준우 아저씨는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악수를 청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김 대위는 손을 저으며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상관없지만…… 세 사람을 살려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하하.”

“준우씨. 그런 말 하지 마. 우리가 남인가? 가족이지.”

아저씨의 준우 아저씨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준우 아저씨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무엇을 찾는 듯 했지만 나와 동생은 모른척하며 물품을 정리했다.

“민정씨랑…… 은혜는…….”

준우 아저씨는 무거운 얼굴로 물었다.

“……”

아저씨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준우 아저씨는 허망한 표정으로 창가로 걸어갔다.

“죽은 건…… 아니죠?”

“살아있어. 분명히.”

“다행이네요. 그럼 아까 나갔다 온 게 두 사람을 찾다가 온 거예요?”

“그래. 하지만 두 사람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어.”

준우 아저씨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른 수확이 있었습니다.”

이 소위는 준우 아저씨를 보며 말했다.

“수확이요?”

“예. 우리 말고 정상인들이 살아가고 있더군요. 하지만 그 중 한명과 조우했는데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스피드로 도망갔습니다. 게다가 성당에서 뭔가 꾸미고 있는 것 같고…… 영 찝찝합니다.”

“성당……? 신자들인가요?”

“그것까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들이 큰 후드를 입고 있어서 그렇게 추측한 것뿐입니다. 실제로 한 명은 성당에서 마주쳤고요.”

준우 아저씨는 숨을 크게 내쉬며 팔짱을 끼었다. 뭔가 생각하는 눈치였다. 수입을 마친 김 대위는 석궁과 단검을 당구대 위에 올려놓았다.

“두 사람은 정리가 다 끝나면 석궁을 손질하도록 해. 다음에 쓰려면 지금 관리해둬야 해.”

우리는 군말 없이 김 대위의 말에 따랐다. 잠시 수입을 마친 우리는 석궁과 단검을 당구대 위에 풀어 놓고 손을 씻었다. 준우 아저씨는 팔짱을 풀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후드를 입은 사람들…… 분명 봤어요…….”

“봤다니? 어디서?"

“예전에…… 동료와 같이 봤었어요. 정말 그때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머리털이 쭈뼛 선다니까요. 하아.”

준우 아저씨는 찝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 얘기해 보게.”

김 대위와 이 소위도 그 얘기를 듣기 위해 준우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준우 아저씨는 이내 못 이기는 척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6개월 전이었나. 경호 일을 하면 당직을 서는 일이 가끔 있어요. 아시잖아요. 제가 일한 곳이 재수 없는 갑부들의 이용 수단이라는 거. 동료와 당직을 서는 데 그날따라 너무 출출한 거예요. 원래는 안 되지만 우리는 사무실 문을 잠그고 편의점으로 가서 먹을 것 좀 사오자고 했어요. 그 건물 바로 건너편에 버스 정류장이랑 조그만 교회 있는 거 아시죠?”

“알고 있네.”

“얘기가 빠르겠군요. 무튼 거기 교회에서 뭔가 검은 물체들이 나오는 거예요. 저하고 동료는 호기심에 그 검은 물체들이 뭔가 하고 봤죠. 밤에 아무런 빛이 없으면 제대로 분간하기 힘든 짙은 검은 색이었어요. 그 땐 가로등 때문에 그들을 보긴 했지만…… 검은색의 짙은 로브를 입은 여러 명의 사람이 손만 내놓은 채 어느 한 특정 지역을 보며 손짓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와 동료는 재밌는 구경거리다 싶어서 가만히 봤죠. 막 손짓을 하는데 어디서 멀쩡한 사람이 걸어오더라고요. 자세히 보니까 여자였어요. 그것도 맨 몸의…….”

“여자?”

“네. 분명 여자였어요. 뭐에 홀린 듯 그들에게 천천히 걸어갔죠. 그 중 가장 앞에서 로브를 입은 사람이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 여자에게 건네더라고요. 저는 동료에게 위험한 거 아니냐며 물었지만 동료는 재밌는 구경거리라면서 좋아하기만 했어요.”

준우 아저씨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자세히 보니까 날이 잔뜩 선 단도였어요. 여자는 그것이 보물인 것처럼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어요. 그러자 검은 후드를 입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으며 여자를 향해 고개를 숙였죠. 여자는 그들을 훑어보며 단도를 높이 들었어요. 근데 그때…… 여자가 우리를 보는 거예요. 마치 우리가 보고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 게 여자의 눈이…… 흰자 밖에 없었어요. 제가 시력 하나는 좋거든요. 대개 경호원들 뽑는 기준이 신체건강이니까…… 아무튼 그 여자는 우리를 보고 살짝 웃더니…….”

“…….”

“시퍼런 단도를 자신의 심장 부근에 찌르는 거예요. 엄청났죠. 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여자의 몸이 흔들렸어요. 우리는 완전히 얼어붙어서 그대로 멈춰 섰죠. 근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거리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마치 누군가가 조작한 것처럼……. 엄청난 양의 피가 사방으로 튀었죠. 검은 후드를 입은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성수라도 되는 것처럼 양손으로 받아내기 시작했어요. 이내 그들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입가로 가져가 마시기 시작했죠. 검은 후드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마시는 게 분명했어요. 그리고 그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대로 교회 건물로 들어갔어요.”

“교회…….”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왜 그들이 우리를 모른 척 했는지. 분명 우리가 상황을 목격하고 있었거든요. 대개 그런 일들을 하면 주위를 경계하기 마련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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