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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밖에 나가지 마시오 part.9

익명
2026-10-18 02:49

준우 아저씨 말에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두려운 마음에 허기고 뭐고 그대로 건물로 올라가 신고부터 했어요. 사람이 죽었다고. 아니, 자살했다고. 평소 고성방가나 취객들이 있다고 신고를 하면 더럽게 늦게 오던 경찰이 사람이 죽었다는 말에 5분도 안 돼서 건물 앞으로 오더군요. 우리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 건물에서 내려와 경찰에게 우리가 본 것을 그대로 얘기했어요.”

꼴깍.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묘하게 긴장이 됐다.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근데 경찰이 우리를 보더니 화를 내는 거예요. 장난 전화 할 거면 다른데 알아보라고. 우리는 억울했죠. 그래서 그 경찰들을 이끌고 교회 쪽으로 걸어갔어요. 근데…….”

“없었군.”

“네. 분명 우리가 봤던 그 많은 피와 여자의 시신이 감쪽같이 사라진 거예요. 불과 몇 분만에요. 우리는 아무 말도 못했죠. 경찰들도 우리를 보며 화를 내기 시작했어요. 무리도 아니었죠. 신고를 받고 현장에 왔는데 보이는 거라고는 멀쩡한 길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경찰들도 우리 표정을 보더니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고 주위를 뒤지기 시작하더군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어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거예요. 경찰들은 이내 수색을 마치고 다시 철수했죠. 차마 교회 안으로 들어가자는 말은 못 했어요. 그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요. 경찰들이 다 떠나고 교회 앞에 남겨진 우리 둘은 멍한 표정으로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돌렸죠.”

“…….”

“이상하게 걸음이 빨라지더군요. 우리가 사무실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려는 찰나 검은 후드를 입은 한 사람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더군요. 깊숙이 눌러쓴 모자 때문인지 그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어요. 우리는 당황한 기색을 최대한 숨기며 그 사람을 지나쳐 계단으로 올라가려 했어요.”

준우 아저씨의 안색이 창백했다. 동생은 말없이 다가가 작은 물통을 건넸다. 벌컥벌컥. 반 이상을 들이킨 준우 아저씨는 크게 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좀 살 것 같네. 아무튼 계단에 막 올라가려는데 그 검은 후드를 입은 사람이 그러는 거예요. ‘앞으로는 조용히 가던 길을 갔으면 좋겠다. 서로 피곤하게 하지 말자’ 소름이 확 돋았죠. 저와 동료는 그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았어요. 1분 정도…… 그렇게 대치한 끝에 그 사람은 천천히 다른 쪽으로 걸어갔고, 우리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대로 주저앉았어요. 어둠 속에서도 붉게 빛나는 눈동자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후드를 입은 사람들…… 그들은 상식 밖의 일들을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었다. 뭔가가 있는 걸까. 준우 아저씨는 김 대위가 건네준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 내고는 당구대 위에 걸터앉았다.

“그게…… 제가 후드를 입은 사람들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전부에요. 상가 내에서 후드를 입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니…… 그 때의 기억이 자꾸 떠올라서.”

나와 동생은 준우 아저씨에게 물과 황도 캔을 가져다주었다.

“고마워.”

준우 아저씨는 살짝 손을 떨었다. 많이 야윈 얼굴이었다. 그간 남모를 고통에 시달렸을 준우 아저씨는 그것을 커버하기 위해 일부러 밝은 척 한 걸지도 몰랐다.

휘이잉.

세찬 바람 소리만이 당구장 안을 가득 매웠다. 어쩌면 지금 당장 우리가 맞서야 할 것은 괴물들이 아닌 후드를 입은 사람들 일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어제처럼 당구대를 세워 놓고 저녁을 준비했다. 삐. 삐. 삐. 전자레인지에서 완료 됐다는 기계음과 함께 뜨끈한 파운드 케이크가 완성됐다.

“오! 오랜만에 보네.”

준우 아저씨는 케이크를 보며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다지 맛은 없지만 배를 채우는 데는 좋지. 아마.”

커다란 소파에 앉은 우리들은 조촐하게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준우 아저씨는 빵을 크게 한 입 물고 우물거렸다.

“그간 별 일 없었어?”

“왜 없어요. 위험했던 일도 있었죠.”

동생은 괜히 너스레를 떨며 어제의 일들을 설명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준우 아저씨는 장난기 섞인 말을 그대로 받아 들였고,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들은 조용히 웃기만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20시에 통신 해봐야겠네요.”

이 소위는 무릎을 탁 치며 무전기를 내려놓았다

“그동안 쓰질 않아서 까먹었지 뭐야. 하하하.”

아직 18시 30분밖에 되지 않았다. 통신이 연결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조촐한 저녁을 마치고 짝을 이루어 창가 쪽에 섰다. 물론 준우 아저씨는 당구대 위에서 쉬도록 했다. 자기도 불침번을 서겠다고 고집을 피웠지만 우리 모두가 말렸다.

어제보다 바람이 더 세고 싸늘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19시 50분 정도가 되자 이 소위는 서서히 통신 준비를 했다. 그와 동시에 녀석들의 움직임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제와 동일한 패턴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문득 어제의 일이 생각났다. 나는 모두에게 주의를 주며 커튼으로 몸을 가리는 것을 제안했다.

모두 내 말에 순순히 따라주었다. 조용히 녀석들을 주시하는 도중에 무전기의 통신 소리가 들렸다.

치지직.

[여긴 브라보 소대.]

[여기는 차리 소대. 상태 양호.]

[현재 두 명의 민간인을 수색 중에 있으며 차리 상황 알고 싶다고 알림.]

[차리 상황 특별한 것 없으며 주둔지에서 대기 중임.]

[양호.]

[민간인을 찾는 즉시 합류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음.]

[양호.]

“됐습니다.”

무전을 마친 이 소위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준우 아저씨는 당구대 위에 멍하니 앉아 우리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보기만 했다.

“어제와 같은 일이 일어나면 안 되는데…….”

동생은 작게 중얼거렸다.

“으음?”

김 대위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눈매를 좁히며 인상을 구겼다. 나와 동생은 김 대위가 보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거리를 누비는 괴물들이 전부였다.

“잘못 본건가…….”

김 대위는 다시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묘하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괴물들의 동태를 살폈다. 녀석들에게서 한눈을 팔면 안 돼.

“크오오!”

커다란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는 설마…… 그 포효 소리에 거리를 누비던 괴물들이 한 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리를 덮치던 우두머리와는 다른 소리였다. 그럼 여기에도 다른 우두머리가 있다는 건가.

“조심하시오. 우두머리는 녀석들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소.”

아저씨는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그 정도 입니까?”

이 소위는 의외라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괴물들은 느린 걸음으로 일정한 곳에 모여들었다. 5분. 10분이 지나자 거리가 다시 한산해졌다. 준우 아저씨는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말 상대라도 해주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야…… 저거.”

동생은 나를 툭툭 치며 말했다.

“왜.”

붉은 불빛들이 파도를 타듯 넘실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설마 눈치 챈 건가? 저 많은 숫자가 여기를 덮친다면 살아날 구멍이 없어진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는지 준우 아저씨도 석궁을 들고 다가왔다.

“야…… 쟤네들 우리 쪽으로 오는 거 아니야?”

“…….”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었다. 김 대위와 이 소위는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는 말없이 석궁에 화살을 장전시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상황이 낯설지만은 않았다. 이보다 더한 상황도 극복해왔고 실제로 살아남았다.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크르르르.”

“크아아!”

건물과 20미터 정도 여유를 둔 괴물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공격 의사가 뚜렷한 녀석들을 최대한 많이 죽여야 했다.

“후아…… 빌어먹을. 이놈에 피곤한 인생.”

준우 아저씨는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

그 때 괴물들의 틈이 서서히 벌어졌다. 그리고 그 작은 통로에서 뭔가가 걸어 나왔다. 우두머리겠지. 그러나 그것은 낮에 우리와 추격전을 벌이던 그 후드였다. 김 대위는 이를 갈며 후드를 노려보았다.

“제길…… 역시 인간이 아니었나.”

후드는 아무 움직임 없이 묵묵히 서 있었다. 왜 낮에는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았던 거지?

“저 정도라면 아까 우리들을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았을 거예요. 근데 도망가기만 했어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거예요.”

나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흐음…… 확실히.”

우두머리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아저씨는 긍정을 표했다. 그러나 김 대위와 이 소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고 저 녀석에게 순순히 목을 내어줄 건가?”

“그런 뜻이 아니라…….”

“어차피 괴물일 뿐이야. 쓸데없는 것은 신경 쓰지 말자고.”

두 사람은 완고한 태도로 내 말을 따르지 않았다. 석궁의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뒤에 있는 수백의 괴물들이 여기를 들이닥칠지도 모른다. 말리고 싶었지만 내 말을 들어줄지가 의문이었다.

그 때 가만히 서 있던 후드가 소매에서 뭔가를 꺼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뭔가를 꺼낸 후드는 그것을 우리 쪽에 던졌다.

석궁을 쏠 때와 비슷한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맨손으로 던진 것뿐인데도 저런 속도가 나올 수 있다니…… 실로 놀라웠다.

팍.

거친 소리와 함께 당구장 천장에 박힌 것은 화살이었다. 저건 분명…… 아까 김 대위와 이 소위가 후드에게 쐈던 화살 중 하나…… 선전포고인가? 후드의 돌발행동에 적잖이 당황한 우리는 석궁을 겨누기만 할 뿐 쉽게 방아쇠를 당기지는 못했다.

서로 아무런 행동도 없이 묵묵히 서 있기만 했다. 무슨 속셈으로 괴물들을 데리고 온 걸까.

“더 이상…….”

낯선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날뛰지 말라.”

우리는 아무런 대꾸도 못한 채 석궁만 만지작거린다. 언제라도 공격명령을 내린다면 바로 방아쇠를 당겨야만 했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다.

“모레까지 떠나는 시간을 주겠다.”

후드는 우리에게 해를 가할 생각이 없는 걸까. 다른 우두머리와는 다르게 목소리 자체에 ‘살기’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모레 같은 시각에 다시 오겠다. 만약 그때에도 네놈들이 떠나지 않고 거기서 나와 마주친다면…….”

“…….”

“없애버린다.”

말을 마친 후드는 그대로 몸을 돌려 괴물들의 틈으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붉은 색의 불빛도 점차 사그라져 갔다.

“…….”

다행이라는 안도감보다 허탈함이 더 컸다. 우리는 후드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괴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준우 아저씨는 녀석들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 증거로 낮에 우리들에게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았으니…….”

이 소위도 그 말에 동감했다.

“……그럼 낮에 봤던 네 명의 사람들은 뭐지? 저 녀석과 관계가 있는 건가?”

김 대위의 말에 모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이상하다. 네 명의 정상인…… 그리고 하나의 우두머리. 우두머리는 정말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후드를 쓰고 다닌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외모를 가리기 위해서 후드를 입은 것일까.

“그래도 모레까지 시간을 준다는 건 우리를 죽일 의사가 크진 않은 것 같아요.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동생의 말에 모두 공감했다. 왜 우리를 살려두는 걸까. 무엇을 전하고 싶은 것일까. 우리들은 말없이 녀석이 사라진 곳을 멍하니 응시했다.

“역시 저런 옷을 입은 새끼들은 하나같이 정상이 아니야. 그 때 내가 본 것도 헛것이 아니라니까…….”

준우 아저씨는 이를 악 물며 말했다.

“…….”

당구장 안엔 무거운 침묵만이 맴돌았다. 어느 누가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모두가 복잡한 심정인듯 하다. 확실한 것은 평소처럼 괴물들이 거리를 활보하지 않는다는 것과 당장 공격의 의사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팅. 티잉.

동생은 애꿎은 석궁의 현만 튕겨댔다. 민정 누나와 은혜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은 내일 저녁까지였다. 어떻게 하지. 만약 찾지 못한다면…… 두 사람을 포기해야하는 걸까.

아저씨는 담배를 물었다. 밤에 담배를 피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지만 김 대위는 특별히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우리에겐 9시간 정도가 있어. 거기다 아직 들리지 못한 성당 한 군데가 있지 않나?”

“…….”

“분명 뭔가 있을 거야.”

김 대위는 화살을 빼내며 말했다.

“녀석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 해를 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어요. 더군다나 오늘 일도…… 일단 모두 쉬는 게 좋겠습니다.”

“그럼 제가 당직을 설게요. 어차피 저는 내일 같이 못가니까…… 차라리 여러분들이 푹 쉬고 내일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준우 아저씨는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렇게 합시다. 준우씨도 경호 일을 오래 해왔기 때문에 임기응변이 좋습니다.”

아저씨는 그 의견에 동의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김 대위와 이 소위는 당구대 위에 누웠다. 아저씨는 준우 아저씨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힘들면 얘기하고.”

“이 정도 갖고 뭐가 힘들겠어요.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편히 쉬세요.”

우리들도 당구대 위에 몸을 뉘었다. 조용히 창밖을 응시하는 준우 아저씨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연약해 보였다.

“…….”

천천히 눈을 감고 모포를 잔뜩 끌어올렸다.

휘이잉. 차가운 바람에 귀와 코가 시렸다. 다른 사람들은 이내 잠들어버린 듯 모두 일정한 간격으로 숨을 내쉬었다. 이대로라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안 자?”

준우 아저씨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추워서…….”

구멍이 뻥 뚫린 창문을 막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 편의만 생각하다니……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구나.

“배부른 소리 하지 말고 잠이나 자.”

준우 아저씨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다시 자리에 누워 모포를 끌어 올렸다.

“아저씨.”

“왜.”

준우 아저씨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건성으로 대답했다.

“살아서 다행이에요.”

“누가 그렇게 쉽게 죽을 거 같으냐. 다 계산된 행동이었어.”

“……그래요?”

“그래. 급소를 피하기 위해 몸을 살짝 비틀어서 돈 거지. 하여간 그 빌어먹을 우두머리 녀석 집념 하나는 알아줄만 해.”

“은혜가 괴물들을 끌어당기는 걸까요.”

“음…….”

“확실히…… 그 때 너도 들었잖아. 우두머리 녀석이 한 말…….”

준우 아저씨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름다운 꽃에는 벌들이 몰려들기 마련이지.]

은혜는 괴물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대처 능력이 없는 은혜와 민정 누나는…….

“어이.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

“네?”

“티 난다고. 사내자식이 뭘 그런 거 갖고 걱정해.”

준우 아저씨는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무사히 있을 거야. 반드시…… 그러니까 너도 어리광 그만 부리고 자라.”

준우 아저씨의 태도가 예전과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어쨌든 내일을 위해 잠을 자둬야 했다. 길게 심호흡을 하자 서서히 힘이 빠져 나갔다.

화악. 눈꺼풀을 두드리는 낯선 기운에 슬며시 눈을 뜨자 떠오르는 해가 보였다.

“흐아암.”

숨을 내뱉으며 기지개를 폈다. 준우 아저씨는 창가에서 조용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렇게 투정부리더니 코만 잘 골더라.”

“제가요?”

“말도 마라. 얼마나 큰지…… 밖에 괴물들 다 불러 모으는 줄 알았다니까.”

“……거짓말하지마세요.”

“진짜야. 덕분에 깜빡 잠이 들 때에도 괴물 소리로 오인하고 깼어.”

준우 아저씨는 씩 웃으며 담배를 건넸다. 나는 담배를 물고 아저씨 옆에 서서 연기를 뿜었다. 고요한 상가에 담배 연기가 퍼져 나갔다.

“조심해. 다른 사람도 중요하지만 우선 자기부터 살고 봐야 되는 거야.”

“…….”

“이기적인 게 아냐. 네가 살아있음으로 인해 앞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때가 분명 올 거야. 그 때를 대비해서 살아간다고 생각해.”

“우선 민정 누나와 은혜를 데려오고요.”

“분명 데려올 수 있을 거야. 나만 믿어.”

“……네.”

준우 아저씨는 피곤에 찌든 기색으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잘게. 날도 밝았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네가 알아서 깨워.”

준우 아저씨는 느릿하게 걸어가 내가 사용했던 당구대 위에 누웠다. 그새 잠이 든 준우 아저씨를 잠깐 보고 석궁과 단검을 따로 챙겨 간단히 세안을 했다.

“푸하.”

차가운 물 온도가 멍했던 정신을 깨워줬다. 싱크대에 걸린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오늘은 뭔가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10분 정도 지나자 모두들 차례대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소위는 제일 먼저 일어난 나에게 아침 식사를 부탁하고 장비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세안을 마친 동생은 내 옆에서 식사 준비를 거들었다. 전투식량을 차례대로 나눠주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소파에 앉았다.

“흠…… 흠.”

김 대위는 할 말이 있는지 연신 헛기침을 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무래도 오늘까지 꼭 찾아야…….”

김 대위는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오늘까지 찾지 못하면 다른 소대와 합류하는 것이오?”

“예.”

“알겠습니다.”

아저씨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겠습니까?”

“더 이상 두 분에게 신세를 질 순 없습니다. 충분히 도와줬어요.”

“그럼…….”

김 대위는 조심스럽게 아저씨의 눈치를 살폈다.

“오늘까지 찾지 못하면 포기하겠습니다.”

아저씨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멍하니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아저씨의 표정은 굳어져 있었다.

“어제 일로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제 고집 하나로 모두가 위험에 빠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

김 대위는 펄펄 끓어오르는 발열 팩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누구보다 은혜를 아끼던 아저씨가…… 대체 왜…….

푸르르르.

이내 완전히 끓은 발열 팩이 서서히 잠잠해졌다. 아저씨는 말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나와 동생도 얼결에 같이 수저를 들었다. 또 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제길. 이렇게 된 이상…… 오늘 반드시 찾아야 했다. 만약 오늘 이내로 찾지 못하면 민정 누나와 은혜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가죠.”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밴에 올랐다. 첫 번째 목적지는 어제 가보지 못한 성당이었다.

부우웅.

김 대위는 약도를 외웠는지 거침없이 운전을 했다. 괴물 모두가 후드의 통제 하에 잠복하고 있는 걸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걸까.

잠시 후 밴의 엔진 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우리는 석궁과 화살. 단검을 챙기고 차례대로 밴에서 내렸다. 울창한 오솔길 끝에 어제보다 규모가 더 큰 성당이 보였다.

“갑시다.”

김 대위를 선두로 동생. 나. 아저씨. 이 소위가 후미를 맡았다.

자박. 자박.

오솔길에 깔린 자그마한 자갈들이 밟혔다. 울창한 숲속에서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우리는 주위를 경계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사라라락. 나뭇잎들이 흔들거리며 기묘한 소리를 냈다. 우리에게 경고를 주려는 걸까. 이상하게 입술이 떨리고 양 손이 경직되어 갔다.

그렇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아직 성당 안을 확인해보지 않았다. 분명 저 안에서 뭔가가 행해지고 있었다. 민정 누나와 은혜가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잠깐…….”

선두에 선 김 대위는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묘하게 신경을 긁는 나뭇잎 소리. 그 소리가 너무나 기분이 나빠서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저기.”

김 대위가 가리킨 방향을 가만히 주시했다. 눈매를 모아 자세히 보니 검은 색의 뭔가가 꾸물거렸다. 여기구나. 놈들의 아지트가.

“역시…….”

느릿느릿. 검은 인영은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왔다. 김 대위는 머뭇거림 없이 꽤 인영의 머리 쪽으로 석궁을 겨누었다.

핑. 화살은 맑은 소리와 함께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풀썩. 인영은 그대로 쓰러졌다. 김 대위는 주위를 다시 한 번 살피라고 말했다. 이렇게 울창하고 어두운 숲에서는 우리가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우리가 찾고 있던 곳이 맞는 것 같군요.”

이 소위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그러니까 저런 녀석이 얼쩡대고 있겠지.”

우리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사라락. 조그만 소음에도 동생의 어깨가 들썩 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신 차리자. 은혜와 민정 누나가 코앞이다.

“크으으.”

얼마 못가 울창한 수풀 옆에서 괴물들이 걸어 나왔다.

피잉-

아까와 마찬가지로 김 대위와 이 소위가 괴물들을 마무리하고는 주위를 살폈다.

"천천히.."

스치는 소리와 함께 검은 인영들이 꾸물거리기 시작했다. 불안하고 두려웠지만 지금은 김 대위에 말에 따라야 했다. 이 소위도 대충 상황을 파악했는지 이를 악물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대로 포위 되면 답이 없습니다.”

“역시 그 빌어먹을 후드 놈의 짓인가.”

뒤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이내 붉은 빛을 내는 인영들이 좌, 우, 뒤쪽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환하게 빛나는 성당 쪽에는 괴물들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성당 안에서 대항해야겠어요. 서두릅시다

.”

김 대위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크으아.”

“크아

.”

우리들은 무작정 성당으로 달렸다. 꽤 짧은 시간 안에 성당 입구까지 도착한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괴물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절망할 수만은 없었다. 김 대위는 거침없이 성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도 망설임 없이 김 대위의 뒤를 따랐다.

“일단 입구를 막아야겠습니다.”

김 대위의 말에 의자들을 마구잡이로 잡아 입구 쪽에 쌓아 올렸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작업이 진행되자 김 대위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랐다.

“어?”

계단을 오르던 김 대위는 뭔가 수상함을 느꼈는지 다시 내려왔다. 무슨 일이지? 김 대위를 따라 계단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

이것을 본거였구나. 계단에 오르니 커튼 뒤로 뻥 뚫린 공간이 어렴풋이 보였다. 누군가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계단을 오르는 것 보다 커튼 뒤의 통로가 더 안전하다고 판단을 내리고 걸음을 돌렸다.

흰색 커튼을 걷자 두 명은 들어 갈만한 어두운 공간이 보였다.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깜깜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걸어갔을까. 알아듣기 힘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

“……여!”

“……아여!”

김 대위는 잠시 멈추는 듯 하더니 다시 걸음을 옮겼다. 뭔가 확신에 찬 발걸음이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서히 걸음 속도를 늦추고 빛을 향해 걸어갔다.

“아아.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분이 오셨구나!”

“메시아여!”

사람들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구원? 메시아? 그게 다 무슨 소리지.

최대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빛이 점차 강해졌다. 김 대위는 어느 정도 걸은 끝에 왼쪽으로 몸을 바짝 붙였다.

“준비하도록.”

그 말은 즉 그들과 곧 만난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은 영문 모를 소리를 내뱉으며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우리는 좀 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잠깐.”

김 대위가 우뚝 멈춰 서서 뒤를 돌았다.

“여기 문이 있어. 소리를 들어보니 아마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

“일반 사람이라도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면 주저 없이 사살해야 돼. 이 말 명심할 수 있겠지?”

우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온 이상 악으로나마 석궁의 방아쇠를 당겨야만 했다.

끼이익. 듣기 싫은 쇠의 마찰음을 들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공간 가운데에 멍하니 앉아 있는 은혜가 보였다. 은혜 주위로는 로브를 입은 네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민정 누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은혜야…….”

아저씨는 격한 감정을 숨기며 은혜를 나지막이 불렀다. 하지만 은혜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다른 곳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김 대위는 로브를 입은 사람들에게 석궁을 겨누었다. 뒤에 있던 이 소위도 마찬가지로 석궁을 겨누었다

.

“당신들 뭐하는 사람이야.”

김 대위의 물음에 로브를 입은 한 사람이 살짝 앞으로 나왔다

.

“세계의 종말을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이런 사람들이 은혜를 데려간 걸까. 은혜는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을 뿐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김 대위는 곧 방아쇠를 당길 기세로 되받아쳤다.

“개소리. 지금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거지? 어서 그 아가씨를 돌려줘.”

“아가씨가 아닙니다!”

로브를 입은 여자가 거세게 소리치며 말했다.

“메시아입니다.”

“……메시아?”

“인류를 구원해줄 메시아입니다. 메시아께서 우리들과 있으시면 모든 악마들을 치유할 수가 있습니다.”

메시아…… 치유.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들 모두 은혜의 능력을 알아버린 걸까.

“개소리 작작해! 3초 준다. 그래도 따르지 않으면 이 화살이 당신 몸을 뚫어버려도 몰라.”

김 대위 역시 격하게 소리를 치며 말했다.

“조용히 하십시오. 메시아께서 피곤해 하십니다.”

“3…….”

“왜 모르는 겁니까. 우리를 구원해주는 메시아가 바로 당신들 눈앞에 있는데.”

“2…….”

“믿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도 구원 받을 것입니다.”

“1……!”

김 대위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이대로 있으면 여자의 얼굴에 화살이 박힐 것이었다.

하지만 김 대위가 쏜 화살은 여자의 얼굴에 박히지 않았다. 어느새 나타난 어제의 그 후드가 날아가는 화살을 한 손으로 잡고 그대로 부러트렸다. 그 장면에 모두가 침음성을 흘렸다. 최악이군. 밀폐된 공간에서 우두머리 급의 녀석과 마주치다니…….

“용케 여기까지 왔군.”

후드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천을 올리며 말했다.

“!”

영락없는 괴물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후드는 숨을 헐떡이거나 살기를 내뿜지 않았다. 뭔가 다른 괴물들과 달랐다. 후드는 멍하니 앉아 있는 은혜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메시아시여. 결정을 내려주시옵소서.”

그 말에 멍하니 있던 은혜의 고개가 우리를 향했다. 굳게 다문 입술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아…… 빠.”

생기를 잃은 은혜의 목소리에 가슴이 울컥해졌다. 이곳에서 얼마나 시달렸으면 저런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빌어먹을 사이코 새끼들! 주먹을 꽉 쥐고 후드에 가려진 얼굴을 노려보았다.

“은혜…… 야

.”

아저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내 슬픔을 이기지 못한 아저씨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간의 걱정과 서러움을 눈물로 씻어 버리려는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 눈물만 흘렸다.

“…….

”

그런데 민정 누나는 어디에 있지?

“또 한 명의 여자는 어디 있지?”

나는 우두머리를 보며 물었다

.

그러나 우두머리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다른 한 명의 후드가 은혜 앞으로 나섰다. 저 후드는 처음 김 대위에게 소리를 질렀던……? 후드는 얼굴을 덮고 있는 천천히 모자를 올렸다.

“…….”

그동안 생사를 같이 해왔던 소중한 동료…… 민정누나였다. 머리가 멍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누나…….”

“나는 다시 태어났다.”

“그게 무슨 소리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버렸다. 내가 알던 누나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었다. 어쩌다가……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나는 다시 태어났다.”

민정 누나는 같은 말을 반복하며 후드를 벗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성의 몸의 형태가 보였다. 잘못본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한 번 자세히 보니 몸 전체를 뒤덮고 있는 검은 털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누나는 이제 사람의 경계선을 완전히 넘어버린 상태였다.

“……누나.”

민정 누나는 사람이 아닌 괴물로 전락해버렸다. 나를 가만히 노려보는 누나의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아…… 으.”

은혜가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지 몸을 들썩였다. 하지만 단 번에 일어서지 못했다. 몸에 힘이 없는 것 같았다.

“메시아여.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우두머리는 은혜를 부축하며 우리를 노려보았다.

“하찮은 네놈들 때문에!”

“…….”

“메시아께서 혼란스러워 하시지 않느냐!”

“개소리 하지 마! 은혜가 어떻게 메시아라는 거야. 이 사이코 새끼들아!”

동생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

“개소리? 우리야말로 메시아의 뜻을 받들고 따르는 충실한 천사다. 어디서 개와 비교하려드는 것이냐!”

우두머리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 빠.”

은혜는 버둥거리며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우두머리는 뒤에 서 있는 세 명의 후드에게 손짓을 했다. 후드들은 은혜를 의자 뒤편에 있는 작은 공간으로 데려갔다. 당장이라도 막고 싶었지만 눈앞에 있는 민정 누나 때문에 나아갈 수가 없었다

.

“은혜에게 무슨 짓을 했지?”

아저씨는 우두머리를 보며 물었다.

“우리 형제들이 이성을 잃고 날뛰고 있었을 때 메시아께서 희생하시어 우리들을 온전케 하셨다. 그때 그 순간이란…….”

우두머리는 두터운 손으로 어깨를 감싸며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에 떠있는 기분이었지…… 그 향기로운 살들에서 새어져 나오는 성수…… 아, 아아아!”

“개새끼…….”

동생이 이를 갈며 우두머리에게 석궁을 겨누었다. 우두머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고개를 높이 들고 웃기 시작했다.

“키키키키. 키키키키킥. 캬하하하!”

마치 하나의 악귀를 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석궁 방아쇠를 당기는 것도 잊은 채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내 우두머리는 은혜가 앉았던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민정 누나는 그런 우두머리에게 다가가 뭐라고 속삭였다

.

“그래.”

우두머리는 마음에 든다는 듯 민정 누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고개를 살짝 숙인 민정 누나는 우리를 보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으드득. 이를 악물고 민정 누나를 바라보았다. 선택을 해야 해. 누나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야.

민정 누나는 자신의 팔뚝을 물어뜯어 살들을 씹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그래, 이제 정말 내가 기억하고 있는 누나가 아니야.

핑. 피잉.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김 대위와 이 소위가 화살을 날렸다

.

푸슉. 푸슉.

푸슉. 살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괴물의 움직임이 잠깐 멈췄다. 크르르. 이내 복부에 박힌 두 개의 화살을 바라본 괴물은 낮게 이를 갈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보며 우두머리는 만족스러운 듯 박수를 치며 미친 듯이 웃어대고 있었다.

“캬하하하!”

“어서 쏴! 괴물이란 말이다!”

김 대위의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간신히 괴물의 이마를 향해 석궁을 겨누었다. 하지만 호흡이 가빠지고 손이 떨려 화살을 쏠 수 없었다.

주루룩.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방아쇠에 닿은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

“크흑..”

다시 여러 개의 화살이 날아갔다. 괴물은 용케 급소 부분을 피하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정신 차려 이진성! 이 미친 새끼야!”

동생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내 멱살을 잡았다. 턱. 숨이 막히며 머리가 멍했다.

“c발.”

“크아아!”

어느새 가까운 거리에 온 괴물은 괴성을 지르며 높게 도약했다. 괴물은 나를 노리고 있었다. 화면이 정지된 것처럼 그 순간이 긴 세월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살고자 하는 본능 때문인지 단검을 빼내 급소부분에 찔러 넣었다.

“크아아!”

괴물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눈을 감았다.

푸욱.

살이 깊게 꿰뚫리는 느낌과 소름 돋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뜨거운 뭔가가 내 몸을 적시기 시작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애써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

몸이 무거웠다. 괴물은 심장이 뚫린 채 내게 안겨 있는 꼴이었다. 그제야 괴물은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왜 나를 공격하지 않은 걸까.

“……끄으.”

괴물은 힘겨운 소리를 내며 부르르 떨었다. 나도 모르게 괴물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미…… 안해.”

한 글자. 한 글자. 낯선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이은 괴물은 이내 축 늘어졌다. 생각보다 가벼운 무게가 어깨로 전해졌다. 서서히 늘어지는 괴물을 보자 가슴 속에서 뭔가가 ‘팍’ 하고 터지는 것 같았다.

“으아아아아!”

내 목에서 나는 소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고 거칠었다. 서서히 내 품에서 미끄러지는 괴물을 아니, 누나를 꽉 잡았다.

사라락.

까칠까칠한 털들이 바람에 실려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뽀얀 살이 드러나자 숨을 쉬지 않는 민정 누나가 눈에 들어왔다.

“크하하하하하!”

우두머리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럽게 눈물을 흘리며 점차 식어가는 누나의 몸을 붙들었다.

“크하하하하!”

우두머리는 커다랗게 웃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짙은 진홍색의 눈동자에서 비웃음이 느껴졌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아저씨는 내게 다가와 민정 누나를 꽉 잡은 손을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보내주게. 민정씨는 마지막까지 우리들을 생각한 거야. 더 이상 민정씨를 힘들게 하지 마.”

“……아저씨.”

민정 누나의 몸에서는 아직도 붉은 피가 나오고 있었다.

“…….”

다시 한 번 민정 누나의 얼굴을 눈에 새겼다. 그래, 누나는 마지막까지 최소한의 호의를 베푼 거야.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저 빌어먹을 사이코 자식을 없애는 것뿐이야.

“조금만…… 기다려 누나.”

차디찬 바닥 위에 민정 누나가 있었다. 혹여라 누나가 가는길 춥지 않도록 내 상의를 벗어 민정 누나의 몸을 덮어주었다. 내 행동에 동생과 아저씨도 각각 입고 있던 얇은 잠바를 벗어 민정 누나의 하체와 얼굴을 덮어주었다.

“자, 지루한 신파극은 이제 끝인가?”

우두머리는 능글거리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작은 체구를 가졌지만 절대 방심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빌어먹을 새끼…….”

“그렇게 부르지 말거라. 아까도 말하지 않았나. 우리들은 ‘천사’ 라고. 메시아의 뜻을 받드는…….”

“닥쳐!”

동생의 첫 발사에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화살을 날렸다.

“흡!”

우두머리는 짧은 심호흡과 함께 옆으로 뛰어올랐다. 반사 신경 하나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처음 만났던 우두머리보다 벅찬 느낌이 들었다. 왜일까. 녀석이 차분하게 사고를 할 수 있어서?

목표를 잃은 화살들은 벽에 부딪혀 힘없이 떨어졌다. 우리는 바로 착지한 녀석을 향해 화살 세례를 퍼부었다. 호흡을 멈추고…… 목표보다 조금 위로.

“급소를 노리는 것 보단 몸 전체를 봐야 돼!”

김 대위의 말을 신호로 다시 화살이 날아갔다.

쐐애액.

그러나 우두머리는 매서운 화살들을 모조리 피해냈다. 녀석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기가 힘들었다.

공중에서 큰 원을 그리고 바로 착지한 우두머리가 곧장 이쪽으로 달려왔다.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놀라운 속도였다.

“하!”

수많은 화살을 쐈지만 정작 타격 음은 우리 쪽에서 터져 나왔다. 내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녀석은 그대로 동생의 얼굴에 주먹을 내다 꽂았다.

퍼억!

둔탁한 파육음과 함께 동생의 몸이 날아가버렸다.

“크억.”

고통에 찬 동생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동생의 안위를 살필 겨를도 없이 단검을 들어 녀석의 등 뒤에 그대로 찔러 넣었다.

하지만 우두머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왼손으로 내 손목을 잡았다. '귀여운 새끼.' 라고 말하며 웃는 우두머리의 이빨이 유난히 날카롭다. 드드득. 손목의 압박이 점점 심해졌다. 뼈가 갈리는 듯한 통증에 난 비명을 질러야 했다.

우두머리가 방심한 틈을 타 다른 사람들이 화살을 날렸다. 그러나 우두머리는 미련 없이 내 손을 놓고 동생이 날아간 방향으로 훌쩍 뛰어갔다. 그리고 힘겹게 일어서려는 동생의 옆구리를 발로 찼다. 퍼억 소리와 함께 벽과 충돌한 동생은 곧장 바닥에 떨어져 피를 토했다.

“쿨럭.”

“일어나려고 하지마라. 내 손을 더럽히기는 싫으니…… 죽어있는 척이라도 해라.”

우두머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닥쳐. 개…… 자식아!”

동생은 악을 쓰며 상체를 간신히 들었다. 하지만 이미 힘이 다 빠졌는지 앉지도 못했다.

그 모습에 난 발악하듯 석궁 방아쇠를 당겼다. 곧 공기를 가르며 나아가는 화살. 하지만 여유로운 몸짓으로 화살을 피한 피한 우두머리는 나를 보며 씩 웃었다. 그 찰나의 틈을 이용해 아저씨와 김 대위, 이 소위가 화살들을 날렸다. 우두머리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화살을 피하기 위해 도약 자세를 취했다.

“으아아아!”

동생은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우두머리의 한 쪽 발목을 양손으로 굳게 잡았다. 덕분에 균형을 잃은 우두머리의 몸이 약간 앞으로 기울어졌다.

푸슉. 푸슈슉.

살이 찢기는 소리와 함께 맹렬히 날아가는 화살들이 우두머리의 몸통에 박혔다. 하지만 충격이 크지는 않았는지 화살을 단숨에 뽑아내고는 동생을 보며 쭈그려 앉았다.

“근성 하나는 봐줄만 하구나. 좋아! 네 녀석을 가장 나중에 죽여주마. 여기서 똑똑히 봐둬라. 동료들이 어떻게 죽어나가는지.”

우두머리는 몸을 일으켜 흐르는 피를 바라보았다.

“메시아의 뜻대로 네놈들을 살려 보내주려고 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화살 통에 손을 뻗어 화살을 뽑았다. 손끝에 만져지는 화살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허무하게 빗나간 공격들로 인해 화살 소모가 극심한 탓이었다. 아저씨. 김 대위. 이 소위 역시 이제 2개의 화살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떨어져가는 화살 대신에 무엇으로 나에게 맞설 건가?”

우두머리도 우리의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뭔가가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우두머리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디지? 우리는 당황할 겨를도 없이 우두머리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어딜 보시나.”

우두머리의 목소리…… 뒤쪽이다! 순식간에 김 대위의 뒤로 나타난 우두머리는 그대로 옆구리를 찼다.

퍼억.

엄청난 소리와 함께 김 대위가 멀리 날아갔다. 손에 들고 있던 석궁과 화살들이 공중에 뿌려졌다. 우두머리는 바로 옆에 서 있는 이 소위에게 다가갔다.

이 소위는 석궁을 미련 없이 버리고 옆구리에 달린 단검을 빼내 가로로 길게 뻗었다.

이 소위의 판단력이 성과가 있었다.

“반응은 좋군.”

우두머리는 제자리에서 점프를 해 이 소위의 어깨를 내리찍었다. 빠각 하는 소리와 함께 이 소위의 신형이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크아아아악!”

이 소위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발버둥 쳤다. 도와야 했다. 화살을 맞을 리는 없지만 어떻게든 저 사이코 놈과 이 소위를 떼어놔야 했다. 방아쇠를 당겼다.

“흥.”

그러나 우두머리는 가볍게 화살을 피했다. 그 모습이 흡사 하나의 예술 동작 같아서 순간 넋을 놔버렸다.

그때 우두머리의 옆구리로 날아가는 화살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녀석이라도 온전히 피하기는 어려웠다.

푸욱.

역시 예상이 들어맞았다. 아저씨의 일격에 우두머리의 옆구리에는 화살이 깊게 박혀들었다. 하지만 겨우 타격을 줄 뿐이었다. 반면 우리 중에 몸이 온전한 사람은 나와 아저씨뿐이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우두머리 녀석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괴물과는 급히 달랐다.

가볍게 착지를 한 우두머리는 옆구리에 박힌 화살을 가볍게 뺐다. 점점 다가오는 녀석의 행동이 느려지게 보였다. 하지만 내 몸은 그 정도의 빠르기에 대응할 수 없었다. 그래도 타격을 줘야만 했다.

꽈악.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앞으로 뻗었다. 녀석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겠지만 적어도 타격은 줄 수 있을 것이다.

검은 주먹이 점점 얼굴 쪽으로 날아들었다. 제길…… 하지만 내 공격은 어떻게든 성공시켜야만 했다. 멈춰선 안 돼!

“꺄아아악!”

착각일까. 귀를 찌르는 여자의 고성이 눈을 찡그리게 했다. 그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 우두머리는 공격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은혜가 사라진 방향이었다.

하지만 내 공격은 그대로 이어졌다. 단검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낸 우두머리는 다시 고개를 돌려 오른쪽 가슴에 박힌 단검을 뽑아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이대로 죽는 걸까.

“꺄아악!”

다시 들리는 여자의 비명소리에 우두머리는 공격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메시아.”

우두머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검을 쥔 상태로 소리가 난 곳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허억…… 헉.”

“후우.”

나와 아저씨는 멍하니 있다 사람들의 신음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모두들 상태가 심각했다. 어깨의 살과 뼈가 쪼그라들어 고통스러워하는 이 소위를 천천히 앉게 한 다음 김 대위를 부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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