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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밖에 나가지 마시오 part.5

익명
2026-10-18 02:21

준우 아저씨는 몸을 덜덜 떨었다. 방금전 죽음을 각오하던 그 비장한 얼굴은 온데간데 없었다.

딸깍.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은 3초 이내로 터지게 되어있다. 준우 아저씨 본인도 그것을 잘 알고 있을 테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이란.. '젠장!' 찰나의 순간 번개처럼 움직인 동생이 준우 아저씨에게서 수류탄을 빼앗아 던져 버렸다. 다행히 준우 아저씨의 손에서 터지는 것은 막았지만 수류탄이 떨어진 곳은 철문 앞이었다.

퍼펑!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종잇조각처럼 잘린 철문과 수류탄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퍼졌다.

사삭. 허벅지를 내려다보니 두꺼운 철문 파편이 허벅지에 박혀있는게 눈에 보였다. 곧 엄청난 통증이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으아악!”

양손을 간신히 뻗어 파편을 빼내었지만 끔찍한 격통에 정신이 순간 어지러웠다. '으아아악!' 총을 쏘지 못하는 패닉 상태에 빠져 병신처럼 소리만 지르고 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작전이 꼬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건 다른 두 사람은 나만큼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어서 들어와! 마지막 크레모아는 명중시켜야만 해.”

아저씨는 우리에게 손짓하며 외쳤다.

수류탄보다 더 화력이 강한 크레모아 하나를 허무하게 날려버렸다. 나는 동생과 준우 아저씨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들어오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크르르. 크르르륵.

그렇게 많은 공격을 퍼부었음에도 녀석들의 움직임에는 끝이 없었다. 골목을 가득 매운 붉은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몸에서 힘이 빠졌다.

크아앙!

우두머리의 울음소리가 온 몸을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과연 녀석의 포효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크아앙! 그것이 또 다른 공격신호였는지 녀석들은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아저씨가 크레모아의 스위치를 누르자 엄청난 소음과 함께 크레모아가 터졌다.

쿠쾅!

크아아아!

쇠구슬들이 괴물의 몸을 꿰뚫고 나갔다. 크레모아의 위력 때문인지 한동안 녀석들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뻥 뚫린 어두운 골목길에 더 이상 붉은 빛이 보이지 않았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릴 줄이야. 죽는 것을 각오하긴 했지만 막상 그때가 다가오자 역시 죽는 건 싫었다. 살고 싶다. 이곳에서 빠져 나가고 싶다. 이건 비단 나만 생각하는 게 아닐 것이다. 말로 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격한 숨을 몰아내쉬며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크르르르.

크르르.

​그러나 이런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시 붉은 빛들이 넘실거리며 다가왔다.

아저씨는 K-2의 아랫부분으로 커다란 유리창을 부셔버리고 난사를 하기 시작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우리도 그 옆에서 전방을 향해 난사를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달려오던 괴물 놈들이 차례대로 쓰러져나갔다.

“제기랄!”

준우 아저씨가 거세게 외쳤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이 차서 숨쉬기가 힘들었다. 100여 발의 총알도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두두두두두.

5분. 10분. 정원에는 엄청나게 많은 괴물들의 시체가 널브러졌다. K-2 소총에 총알이 바닥나버렸다. 나는 망설임 없이 K-2를 버리고서 권총을 집어 들었다.

휘이잉- ​잠시 동안 고요함이 흘렀다. 짧은 소강 상태 준우 아저씨는 비오듯 흐르는 땀을 간신히 닦아 내며 거친 숨을 토해냈다.

“하아…… 하아. 오늘 정말 원 없이 죽여보네요.”

“후우. 정말 해도 해도 끝이 없군. 솔직히 이 정도면 우리가 살아나갈 구멍이라도 생기는 건 아닌지 기대했는데 다 쓸데없고만.”

아저씨들은 권총을 만지작거리며 전방을 계속 주시했다.

와장창. 그 소음에 우리 넷은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하고 지켜주고 싶은 인물. 은혜가 있는 곳도 2층이었다.

"여기 계세요! 진우야 가자."

​나와 동생은 서둘러 2층으로 향했다. 매캐한 먼지와 건물 잔재들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뒹굴거리고 있었고 10평 정도의 작은 공간에 아까 보았던 우두머리가 나와 동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 은혜가 있는 방 앞은 아니었다. 우리는 권총을 녀석의 몸통에 겨누었다.

“생각보다 끈질기군. 하등 생물들 주제에.”

우두머리는 우리의 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감이 넘친 태도로 금방이라도 공격을 가할 것 같았다. 그 거대한 아우라와 공포감에 휘말려 다리가 풀릴 뻔했지만 강하게 이를 악물었다. 망설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이 녀석에게 당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머뭇거리면 안 돼. 방아쇠를 당겨.

타앙.

하지만 총알은 녀석의 어깨 위로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순간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방구석으로 날아간 것은 동생이었다. 벽에 심하게 부딪힌 동생은 입에서 피를 뱉으며 몸을 떨었다.

“젠장.”

“크크크큭.”

우두머리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괴물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2미터가 더 넘는 신장을 가진 우두머리는 나를 깔보듯 내려다보았다. 타는 듯한 붉은 눈동자에 사지가 마비된 것 같았다.

“하등 생물이여. 나와 함께 뜻을 이루지 않겠나? 다른 건 몰라도 네놈 눈 하나는 맘에 드는군. 그 공포감에 젖어 심하게 떠는 눈동자가 아주 마음에 들어. 크하하하!“

녀석은 나를 공격하지 않고 커다랗게 웃었다. 어떻게 하지?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없는 건가?

“잘 가라.”

녀석의 오른손이 크게 올라갔다. 그리고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신기하게 그동안 살아왔던 일들이 필름처럼 지나가며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 이게 죽기 직전에 경험한다는 그 현상인가?

퍼억.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은혜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이 빌어먹을 괴물들은 우리가 아는 것 이상의 힘을 가졌어. 미안해…….

“뭣이?”

녀석의 당황스러운 목소리에 눈을 떴다. 바로 앞에서 멈춰진 우두머리의 손과 그것을 강하게 움켜잡은 검은 털이 보였다. 바로 내 뒤에는 다른 녀석들과 다를 게 없는 괴물이 서 있었다. 목을 보니 K.H 라는 이니셜의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기…… 기현아.”

나는 그 괴물이 기현이라는 것을 알았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기현이를 올려다보았다. 완전히 괴물이 된 기현이는 더 이상 내가 알던 기현이가 아니었다. 녀석은 괴물 특유의 숨소리를 내쉬며 그렇게 서 있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모두 내 명에 따르고 있을 텐데 어찌해서 이놈만?”

우두머리는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팔을 빼내려고 했지만 기현에게 단단히 잡힌 상태라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바보처럼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서…… 가.”

굵은 목소리가 희마하게 들렸다.

“으…… 으아아아!”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나는 우두머리의 몸통에 총을 난사했다. 탕탕탕탕. 하지만 우두머리 녀석은 쓰러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포효를 하며 기현이를 멀리 내던져버렸다.

우두머리는 몸에서 피를 흘리며 내게 다가왔다. 충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손에 들린 권총에는 총알이 없었다.



크워어어!

사정거리 안. 녀석은 굳건한 발이 높이 들어올려 내 머리를 노렸다.

하지만 녀석의 공격은 이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일어난 동생이 녀석의 가슴 쪽에 총을 명중시켰다. 살짝 뒤로 밀려난 우두머리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크아아!

그때 무너진 벽 틈에서 기현이가 튀어나와 우두머리에게 돌진했다. 그 충격을 정면으로 받은 우두머리는 정원으로 나가떨어졌다. 나는 동생을 부축해 굳게 닫힌 다른 방문을 열었다. 은혜는 가만히 서 있었는데 우리를 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동생은 은혜의 손을 잡고 1층으로 내려왔다. 아저씨들은 무사히 내려온 우리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땅에 떨어진 커다란 물체 두개를 보고 권총을 겨누었다.

“안돼요! 기현이가 우리를 구해줬어요.”

크아아!

크엉!

커다란 두 괴물은 육탄전을 벌였다. 과연 우두머리는 우두머리였다. 우리에게 총 세례를 그렇게 받고도 기현이를 압도하고 있었다. 기현이는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었다.

“살 수…… 있을지도 몰라. 어서 따라와.”

아저씨는 집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 모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아저씨를 뒤따랐다. 하지만 정원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는 기현이가 눈에 밟혔다.

“우리가 알던 기현이가 아니네. 만약 살아난다고 해도 이미 괴물이 된 이상 우리와 같이 지낼 순 없어. 일단은 우리가 살고 봐야해.”

아저씨는 굳은 얼굴로 말하며 은혜를 안아들었다.

“준우씨, 수류탄 남은 거 있지?”

“예…… 하나 있습니다.”

준우 아저씨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수류탄 하나를 내밀었다.

“그것을 이 담벼락 바깥쪽으로 던질 수 있겠나?”

아저씨는 십 미터를 훌쩍 넘는 담벼락을 보며 물었다.

그러나 준우 아저씨의 상태는 눈에 띄게 지쳐보였다. 아저씨의 상태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양 팔뚝이 거의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져 힘을 쓸 수 없었다.

“해야죠. 다들 적당히 피해 계세요.”

준우 아저씨는 약간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수류탄을 높게 던졌다. 수류탄은 길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그러나 수류탄은 뭔가에 걸려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제길! 모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수류탄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야…… 나 좀…… 잡아줘.”

동생은 한 움큼의 피를 토해내며 말했다. 그리고는 권총을 양손으로 굳게 잡았다.

“줘. 내가 쏘게.”

“웃기지마. 그 부들거리는 다리로 저걸 쏘겠다고?”

조금 전 허벅지에 박힌 철문의 충격이 꽤 큰 것 같았다. 이런 부들거리는 다리로는 목표물을 제대로 조준할 수 없다. 그제야 허벅지에서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말없이 동생의 양손을 잡아주었다.

“손 말고 내 몸을 잡아줘. 조준은 내가 할게.”

나는 구부정한 자세로 동생의 몸을 가볍게 잡았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마치 뭔가가 빠진 듯한 이 느낌. 이건 마치 뼈가…….

“너 설마……?”

“조용해.”

동생은 이를 악물고 총구를 수류탄 쪽으로 겨누었다. 후우. 후우. 동생은 두 번 정도 숨을 내쉬다 참았다.

우리는 일제히 수류탄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대롱대롱.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격하게 움직였다.

“빌어먹을. 넘어가라고! 마지막 총알이란 말이다!”

동생의 말에 모두가 숙연해졌다.

틱. 이 소리는? 뭔가에 매달려 있던 수류탄이 반대편으로 떨어졌다. 아저씨는 피하라고 소리 쳤다. 곧 큰 폭음과 함께 수류탄이 터졌다. 우리 앞을 막고 있던 벽돌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나와 동생은 최대한 구석진 자리로 피했다.

“됐어. 서두르게.”

아저씨는 우리들을 안내하며 먼저 구멍이 뚫린 곳으로 들어갔다.

“콜록. 콜록.”

기관지에 다닥다닥 붙는 이물질들을 뱉어내기 위해 기침을 했다. 불에 지지는 듯한 고통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 떼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멈출 수 없었다.

깜깜한 구멍을 지나 일자로 걷자 다른 집의 거실이 보였다. 이어져 있었나? 아저씨는 이 상황을 모두 고려하고 있었던 걸까? 아저씨가 어떻게 옆집의 위치나 구조들을 잘 알고 있었지?

아저씨는 현관문을 열고 지하주차장으로 갔다. 얕은 조명 불빛만이 주차장을 비추고 있었다. 아저씨는 몇 번 두리번거리더니 은혜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한쪽으로 급히 뛰어갔다. 이내 시동이 걸리는 소리와 함께 꽤 큰 밴이 다가왔다.

정말 살 수 있을까? 라고 또 한 번의 희망을 갖게 해주는 밴이었다.

“뭐해? 죽고 싶어 다들? 어서 타.”

아저씨는 문을 열며 소리쳤다. 우리는 망설일 것 없이 다급하게 밴에 올라탔다.

“하아. 하아.”

“후우.”

모두 가쁜 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부우웅. 밴은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지하주차장에서 나와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크아아!

그때 우두머리의 녀석의 포효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곳은 다름 아닌 밴의 바로 앞이었다. 저 녀석이 여기로 왔다는 것은 기현이는…… '하찮은 인간들!' 우두머리 녀석은 돌진자세를 취했다. 아저씨는 녀석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핸들을 급격하게 돌렸다.

“이런 젠장맞을!”

끼이익.

커다란 마찰음과 함께 밴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꽉 잡아!' 라고 외친 아저씨는 급격하게 핸들을 돌렸다. 다행히 우두머리와 부딪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녀석은 이대로 포기하지 않았는지 우리를 뒤쫓기 시작했다. 크아아! 커다란 포효 소리가 바로 지척에서 들리는 것 같다. 절로 오금이 저려와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부아앙!

아저씨는 밴의 속도를 더욱 높였다. 우두머리는 커다란 괴성을 지르며 우리를 따라왔지만 점차 그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피칠갑을 하고 있는 녀석의 다리가 점차 느려지고 있다. 밤을 새운 생존 속에 녀석도 조금은 지친 것 같았다.

크아아아아!

분하다는 듯 하늘을 보며 힘껏 포효하는 녀석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앗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린 말 없이 눈물을 흘렸다.

“모두…… 수고했네.”

그 말을 끝으로 아저씨는 묵묵히 차를 몰았다. 살아남았다. 죽기를 각오했던 우리를 하늘이 도운건지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마지막 우두머리에게 당하기 전 기현이의 숭고한 희생이 아니었다면..

곧 넓은 밴 안은 피로 물들었다. 아저씨의 양팔과 얼굴, 목. 어디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준우 아저씨와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은혜만이 온전한 모습으로 조수석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우리를 지켜주고 있어요. 이제 그 약발이 다 떨어진거고요.]



준우 아저씨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 우린 아직 살아남을 운명일지도 몰라.

“끄으…….”

동생의 신음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우두머리의 공격으로 인해 갈비뼈들이 부러졌을 것이다. 더 이상 고통스러워하는 동생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아저씨 제 동생…… 갈비뼈가 부러진 거 같아요.”

“……우리 모두 상태가 좋지 않아. 가까운 병원으로 가야겠어.”

“모두 도망치고 없을 거예요…….”

“아니야. 그렇지 않네.”

그 말을 끝으로 아저씨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더 묻고 싶었지만 동생의 신음소리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준우 아저씨는 차 구석구석을 뒤지더니 이내 작은 구급함을 꺼냈다. 여러 종류의 연고와 압박붕대, 반찬고 등이 들어있었다. 준우 아저씨는 일단 자신의 몸을 지혈 하고 내 허벅지에 붕대를 감아주기 시작했다.

“솔직히 나 죽기 싫었어.”

준우 아저씨는 나직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붕대를 감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 언제라도 형님과 너희들을 버리고 도망갈 수 있는 타이밍이 온다면 지체 없이 그럴 거라고 마음먹었어. 정말 못된 놈이지?”

“아저씨…….”

“부인과 자식이 죽은 마당에 나 하나 살아봐서 뭐 어쩌겠다는 심보인지…… 참나.”

붕대를 다 감은 아저씨는 자신의 윗옷을 벗어 동생에게 덮어주었다. 동생은 고통에 정신을 잃었는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쉬며 창문을 열었다. 차갑고 신선한 바람이 폐에 들어오자 살아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실감났다.

천천히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이제 갈 곳은 아빠가 말한 제주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부산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긴장이 풀리자 졸음이 급속도로 밀려들어왔다. 길게 하품을 하고서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고 눈을 감는다. 나중을 위해 체력을 보충해둬야만 했다.

***

“으음…….”

따사로운 햇빛 때문인지 눈이 저절로 떠졌다. 벌써 오후다. 얼마나 잔거지? 밴은 멈춰져 있었다. 모두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은혜도 자고 있나? 워낙 몸집이 작아 뒤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확인하려는데 간밤에 다친 상처 때문에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밴에서 내리기로 했다.

드르륵.

밖으로 나오자 꽤 큰 병원이 눈에 들어왔다. 병원 앞으로는 여러 상가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는데 쥐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느릿하게 걸어가 밴의 조수석을 확인했지만 은혜는 온데간데 없었다. 어디 간거지?

“은혜야~”

병원 안쪽으로 들어갈까 했지만 혼자서 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어디로 간 거지? 다리를 절뚝이며 벤츠에 가서 앉았다. 사람들이 거닐었을 거리가 고요하기만 했다. 과연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가자…….”

어느새 다가온 은혜가 내 손을 잡아당겼다. 그 힘에 이끌려 앞으로 몸이 고꾸라졌고 나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두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섰다.

“크악.”

왼쪽 허벅지에서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내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은혜는 나를 계속 잡아당겼다.

“왜 그래 은혜야. 나 아파. 좀 이따가 가자. 응?”

은혜의 손을 잡고 달래보지만 소용 없었다. 은혜는 ‘가자’ 라는 말만 반복할 뿐 나를 당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때 밴의 옆문이 열리며 준우 아저씨가 내렸다. 푹 잤는지 혈색이 좋아 보였다.

“오~ 내가 방해한 건가?”

준우 아저씨는 능청스럽게 말하며 다가왔다.

“그게 아니에요. 은혜가 자꾸 가자고 당겨서. 아파 죽겠는데…….”

“알아. 농담이지. 그렇게 정색할거까지 없잖아?”

말은 그렇게 하지만 눈은 웃고 있었다.

“자, 은혜야 오빠 아프니까 여기에 앉자.”

준우 아저씨는 은혜의 손을 잡고 의자에 앉혔다. 은혜는 잠시 앉아 있는가 싶더니 다시 다른 쪽으로 가버렸다.

“너무 멀리 가지 마.”

준우 아저씨는 은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때 밴의 앞문이 열리며 아저씨가 내렸다. 아저씨는 힐끔 은혜를 보고는 우리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아저씨의 양손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왼쪽 팔목과 오른쪽 팔꿈치가 기형적으로 꺾여 있었다.

“형님, 괜찮으세요? 손이…….”

준우 아저씨는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아저씨는 말없이 의자에 앉아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대로 가면 우린 얼마가지 못해. 치료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죽을지도 몰라.”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의사가 병원에 남아 있을까요?”

“중요한건 의사가 아니야.”

“예?”

나와 준우 아저씨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아저씨는 쉽게 말하기가 어려운지 입술을 달싹였다. 우리는 재촉하지 않았다.

“중요한건 은혜라네.”

아저씨는 저 멀리서 뛰어 놀고 있는 은혜를 가만히 보며 말했다.

“예?”

준우 아저씨는 멀리서 해맑게 뛰노는 은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디를 봐도 평소의 은혜와 같았다. 은혜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진 않아 보였다. 아저씨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두고 보면 알게 되네. 진성아, 걸을 수 있지?”

“네? 네.”

“진성이는 나를 따라오고 준우씨는 은혜를 데려와. 일층 왼쪽 통로로 오다보면 주사실이 있어.”

아저씨는 병원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예.”

나는 절뚝거리며 아저씨의 뒤를 따랐다.

병원 안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일층에는 문의나 안내를 받는 접수처가 있었고, 그 뒤로는 일층으로 향하는 계단. 옆으로는 엘리베이터 두 대가 있었다. 오른쪽 통로에는 매점이라고 써져 있는 간판이 있었다. 아저씨는 머뭇거림 없이 왼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두컴컴한 왼쪽 통로에는 화장실이 있었고, 십 미터 정도 앞에는 주사실이라고 써져 있었다. 아저씨는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저씨는 침대에 앉으라는 손짓을 한 뒤 커튼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용물이 없는 주사기 하나를 갖고 나왔다.

이내 준우 아저씨도 은혜를 데리고 왔다. 근데 은혜의 표정이 금방이라도 울듯 했다. 뭔가 두려움에 찬 표정. 이때까지 은혜를 봐왔지만 이런 생생한 표정을 본적이 없었다.

“싫어. 은혜 갈래.”

두려움에 눈을 굴리던 은혜는 아저씨 손에 들린 주사기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꺄아아아! 싫어! 은혜 갈 거야! 아아악!”

하지만 건장한 남자를 당해내기엔 무리였다. 생전 처음 보는 은혜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준우 아저씨는 잡은 손을 놓아주었다. 은혜는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은혜를 꽉 잡아주게. 괜히 움직이게 두면 은혜가 다치니까. 진성이도 거들어주게. 우선 침대에 눕혀.”

아저씨는 은혜를 붙잡으며 말했다.

준우 아저씨는 영 내키지 않은 얼굴로 은혜를 강제적으로 들었다. 은혜는 양손으로 준우 아저씨의 머리를 마구 때리며 소리를 질렀다.

“진성아, 움직이면 다치니까 양 다리와 허리를 잡아줘. 꽉 잡아야해.”

왜 이래야 하는지 이유를 묻고 싶었다.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리는 은혜를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은혜의 얇은 다리와 허리를 단단히 잡았다.

“잘못했어요. 은혜가 잘못했어요.”

은혜는 어깨를 들썩이며 대성통곡을 했다.

“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위험해. 제발 나를 믿고 따라주게. 부탁이야…….”

아저씨는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침내 전신이 봉인된 은혜는 울기만 할뿐 저항을 하지 않았다. 포기한 것 같았다. 아저씨는 손에 들린 주사기를 잡고 한숨을 크게 쉬었다.

“조금만 참아줘.”

아저씨가 우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아저씨의 눈물에 나와 준우 아저씨의 눈시울도 덩달아 붉어졌다. 날카롭고 차가운 주사바늘이 은혜의 오른쪽 손목을 따라 올라갔다.

“으아앙. 잘못했어요.”

애처롭게 우는 은혜와는 달리 아저씨는 울음을 최대한 참으며 주사바늘을 넣었다. 천천히 주사기를 뒤로 당기자 뭔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초록색 액체 같은 것이 주사기 안에 빠른 속도로 채워졌다. 뭐…… 뭐지? 나와 준우 아저씨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상식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피의 색이 아니었다. 진한 녹색의 액체 같은 것이 은혜의 몸에서 나왔다. 아저씨는 조그만 주사기에 녹색 액체를 한가득 채워냈다. 우리는 그것을 멍하니 보기만 했다.

“형님……?”

준우 아저씨는 설명을 해달라는 눈빛으로 녹색 액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저씨는 거칠게 눈물을 닦아내고는 걸음을 옮겼다.

“일단 진우가 급하니까 그리로 가지.”

아저씨의 목소리는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그 놀라운 감정 변화에 놀란 나는 절뚝거리며 아저씨를 뒤따랐다. 준우 아저씨가 내 옆을 부축해주었다. 병원 밖으로 나온 우리는 밴의 트렁크를 열고 고통에 괴로워하는 동생을 내려다보았다.

아저씨는 주사기를 동생의 팔에 찔렀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주사에 담긴 액체를 동생의 몸에 투여했다. 하지만 동생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아저씨는 다시 트렁크를 닫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이 주사를 맞으면 바로 잠이 올 거야. 잠에서 깨면 몸이 개운해져 있을 걸세. 여기서 잠들면 곤란하니까 아까 그 매점으로 가지.”

아저씨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나는 굳게 닫힌 트렁크를 한 번 보고 아저씨의 뒤를 따랐다. 매점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나와 준우 아저씨는 매점 구석에 마련된 커다란 소파에 앉았다. 아저씨는 먼저 준우 아저씨에게 다가가 똑같은 방식으로 주사를 놓았다. 이내 준우 아저씨는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안심하게. 생사까지 같이한 마당에 자네에게 해를 가할 리가 있겠나?”

“아니…… 그냥 두려워서요.”

아저씨는 씁쓸하게 웃으며 내 팔에 주사를 놓았다. 주사 바늘이 몸에서 나오자마자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몸이 뒤로 넘어갔다.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

“……어.”

“……다니.”

사람소리가 들린다. 얼마나 잔거지? 눈꺼풀이 무거워 바로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곧 사람들의 소리가 선명해진다. 동생의 목소리. 분명 차에서 끙끙대던 동생의 목소리가 분명하다. 번쩍. 눈을 뜨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매점 다른 쪽에 있는 간이 테이블에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 그리고 동생이 앉아서 뭔가를 먹고 있었다.

“응?”

꿈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왼쪽 허벅지를 바라보았다. 설마…… 손을 뻗어 굳게 매져 있는 붕대를 조심스럽게 풀어냈다. 이상하게 가벼운 느낌이야. 이건 마치…… 설마하는 마음에 붕대를 다 풀어내니 하얀 새살이 돋아나 있었다.

“뭐, 뭐지?”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체 어떻게?

“일어났나? 그럼 와서 이거라도 들게.”

내 반응을 예상했는지 아저씨는 씁쓸하게 웃으며 나에게 손짓을 했다.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가 낯설었다. 흉터나 아픔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묘한 기분. 얼떨떨한 기분에 모두를 보며 물었다.

“이거…… 꿈인가요?”

“하하하. 나도 처음엔 그랬어.”

준우 아저씨는 유쾌한 웃음으로 터트리며 말했다. 동생도 피식거리며 빵을 입에 넣었다. 물론 아저씨의 양쪽 손도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까 그 주사가 정말……?”

“그래.”

아저씨는 남은 빵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이어 우유를 단숨에 들이 킨 아저씨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내 말을 듣고서도 화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를 구해줬는데 왜 화를 내겠어요. 아, 물론 은혜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네요.”

준우 아저씨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나와 동생은 의문이 담긴 얼굴로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렇게 중얼거린 아저씨는 우리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난 군인이 아니네.”

"...."

그 말에 어느 누구도 동요하지 않았다.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아저씨의 총 쏘는 실력이며 괴물들을 상대할 때에 다뤘던 무기들. 그리고 한 두번 겪은 일이 아니라는 듯 침착하게 대하는 행동거지들.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저씨는 덤덤히 말을 이었다.

“나는 국제과학기술센터 안에 있는 CODE-C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연구원이네.”

“연구원이요?”

요즘 연구원들은 그렇게 무기를 잘 다루나? CODE-C는 대체 뭐지? 동생과 준우 아저씨는 고개를 약간 흔들었다.

“인간들이 저렇게 괴물로 변하는 것을 정부에서는 5~6년 전에 알고 있었다네. 다만 그것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도록 철저히 차단을 했기 때문에 모르고 살았던 거지. 혹 사고가 나도 정부가 나서서 그 일들을 엄폐했다네. 기사, 방송국, 인터넷. 언론을 모두 장악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지.”

5~6년 전……? 그럼 그동안 저 빌어먹을 괴물들이 계속 날뛰고 있는데도 정부가 계속 관여를 하고 있었다는 건가?

“나는 원래 평범한 생물학을 전공하는 교수였어. 논문을 쓰는데 소질이 있었는지 쓰는 족족 상을 타게 되었네. 그리고 1년이 조금 안되어서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내게로 찾아왔어. 내 능력이 필요하다면서 말이야.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따라갔어. 하루하루 논문만 붙들고 사는 것도, 수업시간에 멍한 표정으로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이제 진절머리가 났거든.”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치직. 불을 붙이고 담배를 물었다. 아저씨는 우리들에게도 담배 한 개비씩 권했고, 마다할 것이 없는 우리들은 담배를 받아 물고 깊게 빨았다. 몽롱한 기분이 살짝 들었다. 오랜만에 펴서 그런가? 기분이 살짝 좋아졌다.

후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안내한 곳에 가보니 커다랗고 단단한 유리 관속에 울부짖는 괴물 녀석들이 있었어. 처음에 난 유인원의 종류인줄 알고 있었지. 하지만 안내를 해주던 사람이 말해주더군. 사람들이라고…….”

우리들의 뿌연 담배 연기들이 모여 천장으로 올라갔다.

“나는 아무 말도 못했어. 그저 저게 사람들이냐고 계속 물어봤지. 그 사람은 계속 같은 대답을 했어. 갑자기 두려워졌네. 왠지 여기서 일을 하게 되면 나까지 온전한 사람으로 남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 그래서 나는 여기서 일을 못하겠다고 하고 나가려고 했지. 하지만 나를 처음 데리고 왔던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내 앞을 막는 거야. 나는 직감적으로 일이 잘못 돌아간다고 느꼈네.”

담배는 생각보다 빨리 타들어갔다. 아저씨는 또 다시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난 밖에 나가보질 못했어. 하루하루를 괴물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 놈들의 상태나 특성 등을 파악하는데 하루를 다 보냈지. 미치겠더군. 녀석들의 울음소리가 내 마음과 머리를 아주 미치게 했어. 거기서 일하는 연구원들의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처지였었네. 가족들이 보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는…… 감옥 같은 일상이었지. 그래도 우리에게 지급되는 월급은 상당했어. 한 달에 이천…… 이 돈이면 두 자식의 학비는 물론 마누라 여가 생활도 마음껏 할 수 있는 금액이었지. 나가고 싶어도 가족들이 편하게 지낼 생각을 하니 그럴 수가 없더군. 후우..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괴물에 대한 특성을 어느 정도 마친 뒤 우리는 치료제를 연구하기 시작했어. 근데 이 괴물 놈들이 우리가 흔히 아는 좀비, 뱀파이어 영화처럼 사람을 물어 감염 시키는 형태를 갖고 있더군. 게다가 인육을 아주 좋아했어.”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아저씨의 말을 경청했다. 서서히 괴물들에 대한 실마리가 보이는 듯 했다.

“치료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실패를 겪었다네. 괴물들의 신체는 사람의 신체와 비슷했지만 근육을 구성하는 성분이나 뼈를 구성하는 성분은 아주 달랐어. 마취 치료, 가스 치료, 충격 요법을 이용한 치료들을 해봤지만 오히려 괴물들의 화를 돋우기만 했네. 우리는 점점 지쳐갔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단단한 유리관이 부셔지는 사고가 발생한 거지. 연구실은 비상으로 시끄러워졌고, 유리관에서 막 튀어나온 녀석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 차트를 정리하고 있던 연구원에게 달려들었어. 경비원들은 괴물을 저지하기 위해 총을 쐈지만 연구원은 이미 물린 뒤였어. 괴물은 그대로 죽어버렸고 물린 연구원은 아이러니하게도 괴물이 부셔버린 유리 관속에 갇히게 되었지.”

아저씨는 목이 타는지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커피를 아저씨에게 내밀었다. 아저씨는 말없이 커피를 한 모금 정도 마시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연구원들에게 권총을 소지하도록 했네. 물론 사격연습도 시켰지. 그러나 우리의 주 관심사는 물린 연구원이었네. 거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지. 연구원의 상태가 변하지 않는 거야. 1주일. 2주일이 지나도 연구원의 상태는 인간의 모습 그대로였어. 녀석들의 특징인 검은 털조차 보이지도 않았지. 우리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그 연구원의 혈액을 채취하고 조사했지. 그리고 우린 경악을 금치 못했어.”

후루룩. 아저씨는 나머지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한지 표정이 약간 들떠있었다.

“면역. 그 말이 맞을 거야. 그 연구원은 괴물에 대해 면역을 갖고 있었어. 피나 근육, 뼈 등이 우리 인간과 다를 게 없었지. 우리의 연구도 이제 종착역에 이르는 듯 했어. 하지만 그러질 못했지. 그 연구원은 희귀한 병을 앓고 있었어. 혈액 속에 무수히 많은 바이러스들이 끊임없이 활동을 하며 점차 생명을 갉아 먹는…… 학회에서도 보고가 되지 않은 그런 병을 앓고 있더군. 우린 괴물 녀석의 바이러스를 모조리 차단시켰던 것이 바로 그 혈액 속에 들끓고 있는 바이러스라고 결론을 내리게 됐지.”

아저씨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고 말을 이었다.

“백신으로 만들기에는 너무 부적합했어. 연구원의 혈액이 다른 사람 속에 들어간다면 그 사람의 생명도 급속도로 줄어들 것이었지.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네. 이 연구만 잘 성공해낸다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우리는 감염되지 않은 연구원의 혈액을 채취하여 바이러스들을 최대한 제거하는 노력을 했어. 아, 물론 그 연구원은 풀려났다네. 그렇게 2년 정도 흘렀던 것 같네. 마침내 우리는 혈액 속에서 원활히 활동하는 바이러스를 없애는데 성공 했지.”

끼이익.

매점 문이 열리며 은혜가 들어왔다. 긴장된 분위기가 갑자기 깨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들을 멀쩡하게 해준 것도 은혜였다. 나는 은혜에게 다가가 빵과 우유를 쥐어 주고 소파에 앉게 했다. 은혜는 말없이 소파에 앉아 빵을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그런 은혜를 멍하니 보다 준우 아저씨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특이한 점은 그 혈액의 색이었다네. 자네들도 보았겠지만 바이러스를 제거한 혈액의 색은 진한 녹색이었어. 우리는 2년 동안 이루어낸 성과가 과연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할지 기대를 하고 유리 관속에 갇힌 괴물에게 그 녹색 액체를 투여했지. 결과는 아주 좋았어. 액체를 투여 받은 괴물은 그대로 정신을 잃더니 하루가 지나서 완전히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지. 그땐…… 정말 기뻤어. 단순히 연구의 종착역에 다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류를 구할 수 있다는 성취감이 더 컸었던 것 같네. 일이 순식간에 풀리자 정부의 태도는 갑자기 달라졌어. 면역을 갖고 있는 연구원을 최대한 이용하겠다는 말투로 우리들을 풀어주지 않았지. 실제로 그 연구원의 생명은 곧 꺼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어. 당연했지. 하루에 4시간도 못자고 권총 연습에 호신술 연습에 연구진행에…… 모두 미치지 않고 묵묵히 해내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어. 왜 그런지 아는가?”

그 물음에 우리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가족이 있기 때문이었네. 우리가 돌아갈 집이 있고 거기서 우리를 기다릴 가족 생각을 하니 악이 생기더군. 후우…… 아무튼 정부에서는 바로 두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했어. 그 연구원의 혈액 특성을 그대로 물려받을 샘플들을 만드는 것이었지. 자네들도 대충 눈치 챘겠지…… 그래, 연구원의 정자를 채취해 건강한 여성의 난자와 인공 수정을 하여 대량적으로 면역을 가진 아기들을 생산해내는 과정…… 그것이 ‘CODE-C’ 네.”

그 말을 듣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막 하나가 새로 열리는 것 같았다. 철저히 사람들을 차단하는 정부…… 인터넷 장악은 물론 통신사의 연결 또한 제한하며 사실을 숨겨오고 반인류적인 실험도 강행해왔다. 이런 사실을 아빠가 모를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한거였나?

“수십 수 백 번의 인공수정의 과정을 거쳤어. 하지만 수정이 완전히 끝나 아기로 태어나는 케이스는 한 건도 없었지. 도중에 유산되거나 단순한 액체로 변해버리는 것이 전부였어. 사람들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나는 거기서 깨달았네. 마침 연구원에게는 이제 막 두 살이 된 딸이 있었어. 모두 지친 상태에서 빨리 여기를 나가고 싶은 마음을 못 이겨 그 연구원에게 딸이 있다고 윗대가리에게 보고했어. 그리고 머지않아 그 연구원의 두 살배기 딸이 연구소로 오게 되었지.”

두 살배기의 딸…… 직감적으로 은혜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빵을 우물거리는 은혜를 가만히 보았다.

“상상이나 해봤는가?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기를 수술용 침대 위에 놓고 각종 시술들을 하는 모습을? 연구원들은 변해 있었어. 닿을 듯 말듯 한 목표물이 이제 가까워진 상태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마음이 그들을 모두 변하게 한 거지. 나는 차마 그 광경을 보지 못하고 차트만 정리했어. 아직도 그 아기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생생하네.”

두 살…… 지금 은혜는 어딜 봐도 20대였다. 앞뒤가 맞지 않아. 사람이 몇 년 사이에 저렇게 성장할 수도 있는 건가?

“그럼 은혜는……?”

아저씨는 이제 막 잠이 든 은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두 살배기 아기가 죽는 것은 시간문제였다네. 그 작고 여린 몸으로 하루에 수십 바늘씩 꽂히는 주사바늘을 어떻게 견뎠겠는가? 안타까운 건 면역성을 가진 연구원은 딸보다 빨리 죽었다는 거야. 매일 울면서 식음을 전폐하고 시위 아닌 시위를 하다가 영양실조로 죽은 거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연구원의 피를 따로 빼내어 안전하게 보관해 놨다는 거야. 하…… 참 나도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 있다니. 은혜의 경우는…… 정말 특이한 케이스 중 하나였어. 우리는 수정을 하는 것에서 나아가 임상실험을 하게 되었지. 실험조건은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자’였어. 실제로 죽을지도 모르는 실험이니까. 하지만 보수는 상당했지. 2억. 자그마치 2억이야. 많은 사람들이 물밀듯이 몰려왔지. 저마다 2억을 타보겠다고 줄서서 기다리는 꼴이라니…… 웃기지도 않았네.”

“……”

“실험의 효과는 하루 전후로 나타났어. 완전히 말라비틀어져 식물처럼 죽어버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학을 하는 사람도 생겨났지. 그 수천 명의 사람 중에 성공한 케이스는 하나도 없었어. 그러다 문득 차트를 정리하는데 특이한 상태의 실험자를 발견했지. 그게 바로 은혜라네. 당시 정신지체 2급 판정을 받은 은혜가 이 실험을 자의로 지원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분명 어려운 가정 사정이거나 더 이상 은혜를 돌보기 힘들어 이리로 보냈다고 생각했지.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는 은혜를 볼 때마다 두 살배기의 아이 모습이 겹쳐서 참아내기가 힘들었어.”

아저씨의 말은 길어지고 있다. 그동안의 묵혀 두었던 것들을 하나둘씩 풀어내기라도 하듯 아저씨는 멈춤이 없었다. 허나 지루하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무언가를 향해 다가가는 듯한 느낌과 모험심이 강하게 일었다.

“차라리 고통스럽지 않게 죽는 게 편하다고 생각한 나는 은혜에게 조금 더 많은 액체를 투여했어. 근데…… 그게 화근이 된 거야. 다음 날 은혜는 멀쩡히 우리들 앞에 서 있었고 심지어 조금이나마 의사소통도 할 수 있게 되었어. 난리가 났지. 정부에서는 성공 케이스인 은혜에게 C-실험체라고 이름을 붙였어. 하지만 난 끝까지 은혜라고 불렀지. 다른 사람들이 은혜를 한낱 도구로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 슬펐네. 그리고 은혜는 두 살배기 아기에게 행해졌던 실험들을 온 몸으로 받아내기 시작 했네. 1년…… 동안. 그 엄청난 고통 속에서 은혜는 울부짖으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어.”

아저씨는 다시 담배를 물었다. 그 때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나는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은혜의 모습이 자꾸 어린아이와 겹쳐져 나까지 고통스러웠네.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조그만 죄의식이 살아났다고 할까? 그날 밤 나는 중대한 결심을 했지. 은혜를 데리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희망이 생긴 거야. 그리고 난 바로 그것을 행했지. 연구실에 고요히 잠든 은혜를 업고 출입 카드와 ID 카드로 연구실에서 빠져나왔어. 생각보다 쉽더군. 차마 내가 그런 일을 해낼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을 못했던 거야. 그 중에서도 난 꽤 유능했고 실제로 많은 발견들을 해냈거든. 정부에서 믿음을 받고 있는 내 상태라면 은혜를 빼돌리는 일도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게 잘 맞아 떨어진 거지.”

후우. 깊게 숨을 내뱉는 아저씨 앞에 꽁초가 쌓여 있었다. 이 말을 꺼내는데 까지 얼마나 망설이고 괴로웠을까. 그 심정을 잘 아는 우리들은 묵묵히 아저씨의 말을 들어주었다.

“가족들은 여전히 내가 연구소에서 일을 하는 줄 알아. 은혜를 데리고 나오는 대로 아무 방이나 잡고 계약했어. 내 계좌가 아닌 가상의 계좌를 하나 더 만들어 뒀던 게 큰 도움이 되더군. 단순히 용돈 벌이 목적으로 만든 건데 말이야. 아무튼 그 돈으로 계약을 해서 은혜를 보살피면서 지내왔지. 그러다가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 괴물들이 판을 치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자네들도 잘 알고 있으니까 설명하지 않겠네.”

그동안 아저씨가 겪었던 일들이 모두 끝이 났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애꿎은 담배만 만지작거렸다. 딱히 아저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조용히 있던 동생이 갑자기 일어나 아저씨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와 준우 아저씨는 멍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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