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밖에 나가지 마시오 part.12
“실례합니다.”
집안은 꽤 넓었다. 30평 남짓한 공간에 커다란 거실. 그리고 이어지는 부엌. 여러 방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 방문이 전부였다. 간단한 가전제품과 살림도구를 제외하면 평범한 집이었지만 한약 냄새 때문에 모두 눈살을 찌푸렸다. 어르신은 우리의 반응을 유심히 살피더니 자리를 권했다. 거실에 둥글게 앉은 우리를 보고는 어르신도 같이 앉았다.
“저 냄새를 직접적으로 맡아도 인간인 상태를 보면 멀쩡한가 보군.”
냄새? 저걸로 괴물들을 구별해낸다고?
“냄새라니요?”
아저씨 역시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 냄새는 괴물들이 싫어하는 냄새야. 수많은 희생을 당한 끝에 우리가 얻은 작은 무기지. 덕분에 마을 입구에 접근해도 이 지독한 냄새 때문에 괴로워하며 도망가더군. 다행히 집안에 있으면 공격하지 않아.”
“……만약 우리가 괴물이었다면 어떻게 대처하시려고?”
“느낌일세. 그리고 자네들은 녀석들처럼 눈이 벌겋지 않잖나. 저 남자를 제외하고는 말이야. 하지만 계속 인간의 모습인걸 보니…… 이제야 안심이 되는군. 저 남자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심하게 경계를 한 거야.”
“그렇군요.”
가만…… 집안? 순간 아빠의 말이 떠올랐다. 괴물들이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은 일부러 사람들을 고립시킨 뒤 잡아먹기 위해서라고. 물론 우두머리가 있을 때 얘기긴 하지만…… 어찌 되었건 이 마을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저…… 그게.”
“아닙니다. 어르신. 정말 잘 대처하고 계셨군요.”
아저씨는 어렵사리 말을 꺼내려는 동생을 제지하며 말했다.
“많은 고비를 넘겼지. 요새는 녀석들의 움직임이 뜸해져 안심하고 있다네.”
“……그렇군요.”
“일단 쉬었다가게. 모처럼 젊은 친구들을 만나니 나도 힘이 나는 것 같네.”
어르신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미소를 보자 차마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아저씨가 왜 동생을 저지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우리는 다시 이 마을을 떠나야만 했다.
“시장하지? 이것도 좀 들게나.”
“아, 감사합니다.”
“더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하고.”
어르신은 집안에 있는 먹을 것들을 모아 우리에게 내주었다. 하지만 감추고 있는 진실의 무게가 무거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죄송스러웠다. 그런 우리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아저씨가 나섰다.
“어르신…… 저희는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왜?”
“사실 저희가 부산으로 가는 도중이어서…….”
“너무 멀지 않나? 게다가 밖은 위험하네.”
어르신은 아쉬운 얼굴로 우리를 붙잡았다. 난처한 상황이었다. 마음속에 있는 저울이 계속 오르락내리락했다. 이내 아저씨는 결심했는지 어르신의 손을 단단히 잡고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어르신…… 사실 녀석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런 고립상태입니다.”
“응?”
어르신은 눈을 껌뻑거리며 아저씨를 올려다보았다.
“할아버지…… 어서 여길 떠나야 해요.”
자동적으로 내 입이 열렸다. 어르신은 나를 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야? 이대로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는데 대체 어디로 가라는 건가?”
“……그게 아니에요. 괴물들은 충분히 집안까지 공격할 수 있어요. 일부러 집안에 몰아넣어서 나중에 공격하려는 거예요.”
“아니, 우린 잘 살아오고 있어. 무슨 소리여 대체?”
어르신은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아저씨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집을 나섰다. 우르르 신발을 신고 나가는 우리들을 보며 어르신은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들아! 밖은 위험하다고!”
어르신은 버선발로 쫓아와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감사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뒤도 안돌아보고 집을 나섰다.
왈왈왈.
조용히 있던 진돗개들이 유독 크게 짖었다. 우리는 다시 느린 걸음으로 마을을 떠났다. 잘한 일일까. 이대로 떠나버려도 괜찮은 걸까. 마음속에서 계속 같은 질문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네들은 아무도 못가네.]
커다란 마이크 소리 비슷한 것이 들렸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어르신의 지붕 위 스피커를 바라보았다.
[밖은 위험해. 우리와 같이 여기서 머무는 것이 좋을 거야.]
그 말에 동요 하지 않는 우리들은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후회할지도 모르네…….]
스피커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우리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걸음을 재촉했다.
“잠깐…….”
앞서 가던 아저씨가 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막아섰다.
“…….”
앞쪽에는 10명도 넘는 어르신들이 우리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평범한 모습이 아닌 곡괭이나 낫, 삽 등을 전부 하나씩 쥐고 있었다. 아저씨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이를 악물었다.
“역시…… 그 냄새…….”
“냄새라뇨, 형님?”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약초가 분명해. 제길! 왜 눈치 채지 못했지?”
머리가 멍해진다. 그제야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처음에는 구토를 유발하는 냄새가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편안해졌다. 정신이 몽롱해지는 느낌이 기분 좋아서 수상한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었다. 혹시 우리도 중독이 된 건가?
“대강 알 것 같군. 아까 정자에서 봤던 노인 분들 봤지? 하나같이 생기가 없고 멍한 얼굴이었잖아. 그건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이 아니야. 마치 뭐에 홀린 것 같은 표정이었다고.”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짝짝짝. 경쾌한 박수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어르신이 멍한 얼굴로 농기구들을 들고 서 있었다. 어르신은 눈매를 좁히면서 씩 웃었다.
“과연 젊은 친구들이라 머리 회전이 빠르구먼.”
“당신…… 제정신이 아냐!”
아저씨의 외침에 어르신은 누런 이를 드러내며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하! 그래 맞아. 여기서 살아가려면 미쳐야하지! 그러기 위해서는 저 약초의 힘이 필요했던 거야. 안타깝구먼. 내 말을 들었으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마을에서 살아갔을 텐데 말이야.”
소름이 돋았다. 이젠 괴물이 아닌 인간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는 건가? 왜 이런 무의미한 일을 벌여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저씨 역시 화를 누그러트리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좋게…… 해결합시다. 어르신. 우릴 그냥 보내주십시오.”
“그렇게는 안 돼. 괴물에게 제물을 바쳐야 우리 마을이 안전하거든.”
……제물?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인지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어르신은 그런 우리를 보고 유쾌하게 웃음을 흘렸다.
“맞아! 이 마을이 이때까지 안전했던 이유는 괴물들에게 제물을 바쳤기 때문이야. 매일 밤 12시에 마을 입구 쪽에 사람을 묶어 놓고 기다리면 괴물들이 나타나 그 사람만 먹어치우고 우리 마을을 덮치지 않았지. 이 얼마나 정당한 거래인가!”
“우리를 그냥 보내주십시오. 누군가 다치는 꼴을 보기 싫습니다. 왜 사람들끼리 이런 식으로 싸워야하는 겁니까?”
아저씨는 이를 갈며 말했다.
“닥쳐!”
어르신의 표정이 급격히 변했다. 간신히 화를 간신히 참아내는 듯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성난 두 눈에선 금방이라도 불이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잘난 내 새끼들을 다 제물로 바친 줄 알아? 이 마을의 이장으로서 주민들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내 심정을 너희들 같은 새끼들이 아느냔 말이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커다랗고 박력 있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우리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들이었다. 이런 거에 무너졌을 거라면 그 많던 시련들을 다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어르신은 씩씩거리는 화를 간신히 참으며 다시 처음 모습으로 돌아가 방긋 웃었다.
“아무튼…… 자네들은 여기를 떠나지 못해. 설마 이 노인네들을 무참히 때릴 생각인가? 그럴 수 있나 정말? 그게 아니라면 순순히 투항하여 제물이 될 준비나 하게.”
제길! 상황이 안 좋다. 비록 적은 수의 노인들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지만 어르신 말대로 폭력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자갈길 양옆으로는 꽤 높은 경사가 있어 자칫 잘못하면 굴러 떨어질 수 있었다.
“자네들 같은 이방인들을 위해 일부러 깎아 놓은 거야. 자아, 순순히 투항하게.”
철컥. 익숙한 쇳소리가 들렸다. 이건……?
“그럴까보냐 망할 영감아.”
동생은 싸늘한 표정으로 권총을 들었다. 총구의 방향은 어르신 쪽으로 향해있었다.
“몰래 가져온 보람이 있네.”
동생의 말에 어르신의 인상이 처참히 일그러졌다. 그러나 어르신은 물러나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내 목숨이 대수냐! 쳐라!”
어르신의 말에 멍하니 서 있던 노인들이 슬금슬금 움직였다. 방아쇠를 쥔 동생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지나갔다. 보다 못한 아저씨가 동생에게 권총을 빼앗아 뒤에 있는 노인의 몸으로 총알을 날렸다.
타앙.
노인은 커다란 메아리와 함께 힘없이 쓰러졌다. 아픈 것도 느끼지 못하는지 자리에서 쓰러져 일어서지 못했다.
“뛰어!”
아저씨는 우리가 돌아온 길로 빠르게 뛰어갔다. 우리도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능숙한 솜씨로 다른 노인을 맞췄다. 휘잉. 날카로운 낫이 아저씨의 목으로 휘둘러졌다. 하지만 아저씨는 예상했다는 듯 앞으로 굴러 낫을 든 노인을 경사진 곳으로 밀어버렸다.
“어서 잡아!”
어르신의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오랜 훈련으로 다져진 아저씨가 선두에 있다면 노인들은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타앙.
마지막 한발을 마저 쓴 아저씨는 허공을 가르는 삽을 손으로 막았다. 준우 아저씨는 아저씨의 다리 사이로 미끄러지듯 들어가 삽을 들고 있는 노인의 옆구리를 강하게 발로 찼다.
준우 아저씨의 공격에 노인은 제대로 피하지도 못한채 굴러 떨어졌다. 여전히 앞을 가로 막고 있는 노인의 수는 4~5명 남짓. 뒤에서 추격해 오는 노인들과의 거리는 꽤 됐다.
까앙.
그때 쇠의 맑은 소리가 나며 이목을 끌었다. 거기에는 머리에 삽을 맞은 준우 아저씨가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 찰나를 이용해 뒤에 있던 노인이 날카로운 곡괭이를 준우 아저씨의 목 쪽으로 휘둘렀다. 하지만 준우 아저씨도 오랜 수련을 해온 몸이었다.
“흡!”
준우 아저씨는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고개를 숙여 뒤돌려 차기를 했다.
준우 아저씨 공격에 타격을 입은 두 명의 노인은 경사진 곳으로 굴러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좁은 자갈길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큭…….”
준우 아저씨가 비틀거리자 아저씨가 몸을 살짝 돌려 앞으로 나섰다. 날카로운 낫을 피한 아저씨는 그대로 노인을 밀어버렸다.
“빌어먹을 놈들! 거기 안서!”
성난 어르신의 목소리가 우리 뒤에서 크게 울렸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생사를 건 순간에서 우리들의 운동 신경은 배가 되었다. 우리는 그대로 빠르게 뛰어가 밴에 허둥지둥 올라탔다. 모두 올라탄 것을 확인한 아저씨는 그대로 시동을 걸고 빠르게 출발했다.
끼이이익.
급작스러운 출발에 밴의 바퀴가 날카롭게 울어댔다. 그 순간 잊을 수 없는 포효 소리가 우리의 고막을 강타했다.
"크아아!"
바로 지척에서 들리는 듯한 포효 소리가 난 곳을 보니 바로 뒤에서 괴물 녀석이 우릴 향해 전속력으로 뛰어오고 있는게 보였다. 이런 대낮에 저런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먹혔어."
그렇게 말하며 이를 가는 준우 아저씨 말에 모두가 침울한 얼굴로 괴물을 노려보았다. 녀석의 뒤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노인들의 시체가 보였다.
부아아앙.
창문 밖으로 어르신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사정을 봐줄만한 여유가 없다. 아저씨는 더욱 속도를 내며 우리가 왔던 곳으로 밴을 몰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모두 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얼결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위험했다. 과연 이곳에서 안전한 장소란 아예 없는 걸까. 준우 아저씨는 답답한 표정으로 창문을 내렸다.
휘이잉.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준우 아저씨는 노인들에게 한 행동을 씻어내기라도 하듯 묵묵히 바람을 맞았다.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우린 정당한 일을 한 거야.”
묵묵히 밴을 몰던 아저씨가 말했다. 독하게 먹었던 다짐들이 점점 무뎌져갔다. 안 돼…… 이래서는 안 돼. 살아가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하고 현재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자.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 모든 걸 포기한 눈이었어.”
동생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마지막 순간에 어르신의 얼굴을 살핀 모양이었다.
“곧 해가 지겠군.”
아저씨 말에 살짝 고개를 내밀어 전자시계를 보았다. 어느새 16시가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1~2시간 뒤면 어두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은혜야.”
조수석에 앉아 있어야 할 은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놀란 눈으로 아저씨를 바라보자 트렁크 쪽을 가리켰다.
“아…….”
그럼 그렇지. 아저씨는 은혜를 두고 갈 사람이 아니지. 트렁크 뒤쪽에서 남자의 어깨에 기대 있는 은혜의 뒷모습이 보였다. 작은 어깨가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걸 보니 아마 잠든 모양이었다.
“저 남자가 은혜를 지켜주고 있어서 조금 안심이 되더군.”
“그래요?”
“은혜에게 접근하는 노인들에게 가차 없이 공격 하더군. 물론 괴물 때처럼 피가 튀기지는 않았지만.”
새삼 남자가 다르게 보였다. 물론 후드에 가려져 있어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는 없지만 듬직함이 느껴졌다.
“인생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더니…….”
동생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지…… 자네들보다 오래 살아온 나도 장담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내일이나 모레의 일은 오죽하겠는가.”
다시 의자에 기대 창문을 살짝 열었다. 제법 차가워진 바람과 붉은 빛의 노을이 시야에 가득 찼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노을의 색이 유독 붉었다.
“거리가 꽤 되는군. 오늘은 길에서 보내야겠어.”
아저씨의 말대로 앞에 보이는 거라곤 고속도로와 넓게 펼쳐진 풀들이 전부였다. 가끔 보이는 폐차와 안성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제외하고는 황량했다. 19시를 넘어서 돌아다니는 것은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그럼 간단히 요기만 하고 일찍 자는 게 좋겠습니다. 형님.”
준우 아저씨의 말에 모두 동의하는 눈치였다. 아저씨는 마지막으로 밴의 속도를 높였다. 나와 동생, 준우 아저씨는 밴 안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과자 봉지와 초코바, 빵 등을 주섬주섬 챙겼다. 구석에 처박힌 우리의 배낭 안에도 먹을거리가 꽤 있었다.
부우웅.
서서히 밴이 속도가 줄어들더니 이내 멈췄다. 모두 그 자리에서 대충 허기를 달래기 시작했다. 변변찮은 저녁 식사지만 아까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곧 녀석들이 본격적으로 활동 할 거야. 지금 차안에 있다고 해서 무조건 안전하다고 볼 순 없으니 그제처럼 불침번을 서야 할 것 같군. 다들 동의하는가?”
“그러죠.”
우리는 빠르게 허기를 채우고 의자에 편히 기댔다. 아직 잠을 자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무사히 부산까지 갈 수나 있으려나.”
한 숨 섞인 준우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겨우 안성에 도착한 상태였다. 게다가 이 정도 인원이 전부 가려면 충분한 먹을거리와 기름이 충분해야 했다. 게다가 은혜라는 변수 때문에 한치 앞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간다쳐도 거기에 뭔일이 날지 모르니 원.."
준우 아저씨가 그렇게 푸념 섞인 말을 해댈때.
“크윽…….”
우민 형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일제히 그의 안색을 살폈다. 우민 형은 땀을 뻘뻘 흘리며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다.
“정신없이 달려온 터라 우민이의 상태를 잊고 있었어…….”
우민 형의 상태는 꽤 심각했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으스러진 팔의 색이 점차 바래가고 있었다. 세포들이 죽어 부패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괜……. 찮습니다.”
우민 형은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장난해? 이게 괜찮은 거냐?”
준우 아저씨는 역정을 냈다. 그 말에 우민 형은 힘 없이 웃어보였다. 그 미소를 보는 우리들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형님…….”
준우 아저씨가 아저씨를 보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기에 아저씨는 잠시 주저했다.
“흐음…….”
아저씨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토했다.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당장 병원을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만약 찾는다고 해도 의사들이 살아있는지도 의문이었다. 게다가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괴물들의 습격에서 안전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면 답은 하나였다.
“…….”
하지만 은혜의 몸은 점점 야위어가고 있었다. 커다란 후드 때문에 보이지는 않지만 전보다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후우.”
어려운 결정임은 틀림없다. 괴로워하는 우민 형과 멍한 표정으로 창문 밖을 응시하는 은혜. 아저씨는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민 형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삼켜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기가 힘든지 준우 아저씨는 서둘러 은혜를 불렀다.
“…….”
그러나 은혜는 역시 반응이 없었다. 준우 아저씨는 손을 뻗으려 했지만 그림자처럼 은혜 곁에 있는 남자가 그것을 저지했다. 검은 털이 아닌 검은 색의 손이었다. 준우 아저씨는 놀란 얼굴로 남자와 손을 번갈아 보았다.
“메시아께서 힘들어 하십니다.”
남자는 적색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거 안 놔?”
준우 아저씨는 당황한 기색으로 손을 빼려 했다. 그러나 남자의 악력은 상상이상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은혜를 지키는 남자의 범위가 우리에게까지 미칠 줄은 몰랐다.
“그럼 쟤는 어떡하라고!”
준우 아저씨는 소리를 지르며 남자를 노려봤다. 남자는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가 괴로워하는 우민 형을 바라보았다.
“팔을 자르면 됩니다.”
“……뭐라고?”
모두 놀랐지만 우민 형은 이미 예상한 일인지 크게 놀라지 않았다.
“팔을 절단하십시오.”
“미친놈아! 저 상태로 팔을 자르면 누가 봉합하고 치료해줄 건데? 여기에 어디 의료도구라도 있는 줄 알아?”
잔뜩 흥분한 준우 아저씨는 침까지 튀겨가며 남자에게 대들었다. 하지만 남자는 별일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제가 멈추게 합니다.”
“뭐?”
의료기술을 따로 익히기라도 한 건가? 무거운 침묵이 흐르자 우민 형이 슬슬 움직였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에요. 저 남자가 해준다는데…… 뭐가 문제에요. 해가 지고 있어요. 서둘러야 해요.”
우민 형은 고통스러운 것을 억지로 삼켜내며 말했다. 준우 아저씨는 그런 우민 형을 보더니 한숨을 쉬며 옆문을 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되려 잘된 일이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드르륵.
문이 열리자 거의 저물어가고 있는 태양이 보였다. 시간이 없다. 우리는 모두 밖으로 나와 소총을 들고 주위를 경계했다. 곧 우민 형이 밖으로 나왔는데 왼쪽 팔 전체가 종잇장처럼 너덜거렸다. 그리고 이내 따라 나온 남자는 자신의 옷소매를 찢어 동생에게 내밀었다.
“불을.”
동생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찢은 소매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무슨 소재로 된 건지 쉽게 불이 붙지 않았다. 바람을 피해 오랫동안 열을 가하자 서서히 불이 붙기 시작했다. 남자는 소매가 불에 휩싸일 때까지 가만히 들고 서 있었다.
“뜨겁지도 않나…… 저 괴물 놈은.”
뜨거운 화염이 남자의 손을 집어 삼켰지만 남자는 편안해보였다. 남자는 이내 우민 형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민 형은 인상을 찡그리며 남자에게 다가갔다.
“빌어먹을 놈. 날 이렇게 만들더니…… 치료를 해주겠다? 병 주고 약주는…… 것도 정도가 있지…… 크윽.”
“아플 겁니다.”
남자의 말에 우민 형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자의 다른 손이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깔끔하게 자로 잰 듯한 솜씨였다. 우민 형의 몸이 허전해 보였다. 그제야 몸을 떠나 바닥에 굴러 떨어진 팔이 눈에 들어왔다. 취이익. 피가 사방으로 튀며 우민 형의 비명소리가 널리 퍼졌다.
“끄아아악!”
그러나 남다른 정신력을 가진 우민 형은 두 눈을 빛내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를 살갗에 가져다대었다.
“끄아아아악!”
우민 형은 엄청난 고통에 몸을 떨었다. 보는 우리들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질 정도였다. 고기가 타는 냄새와 특유의 비릿한 피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끄아아악!”
우민 형의 고개가 아래로 꺾였다. 혼절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남자는 계속 일정 부위를 불로 지져댔다. 5분 정도가 흐르자 남자는 불덩이를 꺼버리고는 우민 형을 들어 밴 안에 눕혔다. 짧다면 짧은 시술이었지만 어느덧 해가 완전히 저물어 있었다.
“일단 여기를 떠야겠어. 소음이 너무 컸어.”
아저씨 말에 우리는 재빨리 밴에 올랐다.
“크아아아!”
괴물들의 소리가 들렸다. 분명 우민 형이 내는 소음과 냄새를 맡고 근처까지 온 것이 확실했다. 동생이 서둘러 문을 닫자 아저씨는 밴을 빠르게 후진시켰다.
“크아아아!”
꽤 가깝다. 아저씨는 바로 밴을 멈추고 시동을 껐다. 20~30미터 왔을까? 고속도로에는 드문드문 빛나는 가로등 말고는 보이는 게 없었다. 우리는 최대한 숨을 죽이고 앞을 주시했다.
크르르. 바로 옆에서 놈들의 소리가 들리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제발 지나가라…… 제발. 두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밴 창문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낮이라면 우리의 실루엣이 보였겠지만 다행히 지금은 밤이었다.
“크르르르.”
녀석들은 날카로운 이빨을 빛내며 기다란 혀로 밴 차체를 핥기 시작했다. 우민 형의 몸에서 튄 피를 핥는 것 같았다.
“크아아!”
그때 앞에 나타난 녀석들이 잘린 팔뚝 하나를 두고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차체를 핥던 녀석들도 팔을 차지하기 위해 앞으로 뛰쳐나갔다.
녀석들은 팔 하나를 두고 몸싸움을 벌였다. 부러진 팔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살덩이를 씹어대는 녀석들과 그런 녀석들을 잡기 위해 괴성을 지르는 다른 녀석들.
“생지옥이 따로 없네. 제길.”
모두 마른침을 삼키며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제발 녀석들이 밴을 지나쳐가기를……’ 하고 간절히 기도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내 팔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녀석들은 손에 남은 살덩이까지 싹싹 핥으며 아쉬운 얼굴로 그르렁거렸다. 살점 한입조차 못 먹어본 녀석은 씩씩거리며 다른 녀석들을 노려보았다.
“크아아!”
이내 녀석은 자기 성질을 못 이기고 앞에서 걷고 있는 녀석의 목을 강하게 물었다. 물린 녀석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상대방의 머리를 강하게 두드려댔다. 하지만 독기가 오를 대로 오른 녀석은 그대로 목을 물어 뜯어버리고는 동료들을 보며 포효했다.
녀석들도 나름대로 살아가려고 발악을 하고 있었다. 내가 괴물이 되었다면 분명 저런 식으로 발버둥을 쳤겠지…… 다른 괴물들은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르르.”
곧 무슨 상황인지 깨달은 녀석들은 동료를 죽인 녀석을 처단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녀석은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얼씨구…….”
“정말 돈 주고도 못 볼 구경거리네요.”
준우 아저씨와 동생은 죽이 잘 맞았다. 그러나 틀린 말도 아니었다.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파괴의 욕구가 꿈틀거리며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더 죽이라고 괴물에게 말하고 싶었다.
크르르. 낮게 운 녀석은 동료의 살덩이를 질겅질겅 씹으며 뒤로 물러났다. 이대로 쭉 이어지면 밴과 부딪히게 된다.
“아저씨…….”
“알고 있네.”
최악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고작 저 한 놈 때문에 모든 걸 망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하지? 밴을 두리번거리며 녀석들의 주의를 끌만한 것을 찾아보았다. 그러다 문득 우민 형의 옷에 눈이 갔다. 피로 새빨갛게 염색된 옷…… 어쩌면 녀석들의 주의를 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부욱. 옷을 손으로 찢어 초코바에 감싸 묶었다. 아직 촉촉이 젖은 옷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났다.
“조심해…….”
지금 던져서는 안 돼. 녀석들이 조금 더 다가온 후에…… 그 후에 던져야 해.
“크르르.”
녀석은 낮게 이를 갈기만 할뿐 섣불리 공격을 못했다. 다른 녀석들은 가소로운 미생물을 대하듯 여유를 부리며 압박했다.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제발 성공해야 할 텐데…… 10미터. 9미터. 8미터. 지금이다! 작은 소리를 내는 순간 게임오버였다. 수동으로 밴의 창문을 서서히 열었다. 어설프게 창문을 여는 것보다 확실하게 연 뒤, 멀리 던지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일 것 같았다.
캬오오! 바로 앞에서 들리는 포효소리. 눈을 질끈 감고 손에 들린 옷 조각을 단단히 쥐고 창문 밖으로 던졌다. 손을 떠나간 옷 조각은 빠르고 높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순간 산뜻한 피 냄새 때문인지 녀석들의 고개가 순간적으로 돌아갔다.
“좋아…….”
왼손으로 창문을 올리며 녀석들의 행동을 주시했다.
“크아아!”
효과가 있었다. 녀석들은 옷 조각을 먹이로 인식했는지 거기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홀로 남은 녀석은 그대로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녀석은 맹렬한 속도로 밴 쪽으로 뛰어오는데 그게 너무나도 공격적이어서 심장이 벌렁거렸다. 설마…… 우리를 눈치 챈 건 아니겠지?
타다다닥. 녀석은 빠른 속도로 밴 옆을 지나쳤다. 그러나 서서히 닫히는 문틈 사이로 녀석의 붉은 눈빛이 내 눈과 마주쳤다.
“!!”
“크르르.”
그 찰나의 순간에 몸이 그대로 굳어져버렸다. 일이 꼬이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녀석은 우리를 지나쳐갔다. 후우…… 서둘러 창문을 닫고 몸을 기댔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였다.
“최소한의 도리일지도 몰라.”
그것을 지켜보던 준우 아저씨가 말했다. 과연 그럴까? 본능으로 움직이는 녀석이 그 짧은 순간에 우리를 배려할 여유가 있었을까?
“크아아아!”
이내 그것이 미끼였다는 것을 눈치 챈 녀석들은 도로로 다시 뛰어와 없어진 배신자를 보며 분노의 포효를 질렀다. 그리고는 동료의 시체로 뜯어먹기 시작했다.
“쓰레기들이구만…… 정말.”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겠죠. 뭐…….”
10분 정도가 지나자 녀석들은 그대로 몸을 일으켜 미련 없이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밴 쪽으로 오지 않고 쭉 이어진 고속도로를 누볐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었다.
“후아…….”
저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긴장이 한순간 풀려서인지 스르르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고맙다는 표시였습니다.”
그때 고요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밴 안에서 빛나는 남자의 붉은 눈은 녀석들과 같은 그것이다. 남자의 입이 고요히 움직였다.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 겁니다.”
“저 녀석의 말을 알아듣나?”
“느낌일 뿐입니다.”
“……괴물들도 그런 지성을 가졌나?”
준우 아저씨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서서히 진화합니다. 처음에는 본능으로 움직이다가 나중에는 생각을 하고 의사소통을 하면서 움직이게 됩니다. 물론 인간의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전혀 하지 못하게 됩니다.”
“개처럼 으르렁거리거나 짖는다는 식으로 대처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럼 당신도 그렇게 된 건가? 시간이 오래 지나서 그런 지성을 갖고 유창하게 말을 하게 된 거 말이야.”
“모르겠습니다. 일어나보니 모든 괴물들을 통제하고 있었고, 인간인 상태와 다를 봐 없었습니다. 다만 신체적인 능력이 인간의 기준을 훨씬 넘어서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인간인 상태와 다를 게 없다…… 괴물이 점점 진화한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위험해질지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괴물일 때의 힘을 그대로 갖고 있더군?”
아저씨의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우 아저씨가 그 말을 받았다.
“어떻게 된 거지?”
“그저…… 그렇게 원했기 때문입니다.”
“뭘?”
“메시아를 지키게 해달라고 간절히 바랐기 때문입니다.”
“뭐야. 농담하지 말라고. 그럼 괴물이 되고 안 되고의 차이는 본인 의사와 관련이 있다는 거야?”
준우 아저씨는 헛웃음을 내쉬며 말했다.
“그럴지도.”
준우 아저씨는 고개를 저으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과학자였던 아저씨만은 우리와 다른 반응이었다.
“컨트롤을 할 수만 있다면…….”
“…….”
“이건 진보…… 진화라고 할 수 있어.”
“……진화요?”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두운 밴 안에서 아저씨의 두 눈이 반짝이는 것은 착각이었을까.
“저 남자 말마따나 본인 의지로 그것을 조종할 수 있게 된다면 진화라고 볼 수 있겠지.”
“형님, 진화론을 두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게 얘기가 빠르겠군. 지금 같은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괴물이 되는 입장이 더 편할지도 모르지. 먹이사슬이 깨지면서 괴물이 최상위로 올라갔다는 점을 보면 이해가 쉽게 되겠지.”
“환경에서 유리한 조건을 가진 생명체만이 살아남는 다라…… 흐음.”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던 인간마저 닥치는 대로 살육하는 녀석들. 저런 추한 모습이 과연 인류의 진화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환경에 유리한 조건을 가진 거라면 괴물들의 상태가 딱 들어맞는다. 낮에는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다니다가 밤에는 괴물의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먹잇감을 구하러 다니며 개체수를 서서히 늘리고 자연스레 인간들의 수는 줄어든다.
“그럼 우리 인간은 이대로 멸종하는 건가요?”
“원래 약육강식의 세계야. 뚜렷한 대책이 없으면 그렇게 되겠지.”
“백신…… 한창 만들던 도중 아니었나요?”
“그랬지…… 은혜를 통해 서서히 대량 생산에 들어가려는 찰나였어. 그러나 내가 그것을 막았지. 연구소에서 은혜를 빼낸 거야. 사실…… 은혜 같은 케이스는 수많은 기간 동안 일하면서 단 한건이었어. 물론 이전의 데이터가 있긴 하지만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하늘에서 별 따기지. 더군다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임상실험이 제대로 되겠나? 어려운 일이지.”
아저씨는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해결책이 거의 없다. 우린 지금 인류의 희망을 밴에 태우고 다니는 건지도 몰랐다. 은혜만 무사히 연구실로 갈 수 있다면…… 어쩌면 이 빌어먹을 상황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은혜는 이미 우리들의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가족 같은 일원이었다. 대를 버리고 소를 선택하는가? 그게 정녕 옳은 선택인가?
“다들 무슨 심정인지 이해해.”
아저씨 말에 우리 모두 침묵을 지켰다. 모두 나와 비슷한 심정이었다. 분명 무엇이 옳은 일이고 맞는 건지 다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뜻 은혜를 데려가고 싶지는 않았다.
“메시아께서는 분명 우리를 구원해줄 구세주입니다.”
“알고 있어…….”
“그러나 메시아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알고 있어…… 빌어먹을.”
남자는 곤히 잠든 은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조심스럽고 섬세해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남자의 말대로 은혜는 메시아가 맞는지도 모른다. 백신…… 이라고 불리겠지만 괴물 녀석들을 한 번에 치료할 수 있는 신적인 능력. 저 남자와 다른 신도들이 은혜를 그토록 떠받드는지 알 것 같았다.
“일단 고비를 넘겼으니 쉬도록 하지. 녀석들이 올 것 같지는 않군…….”
아저씨 말에 우리 모두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머리가 심난했다. 열어서는 안 될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같았다. 점차 지능을 갖고 진화를 한다면 녀석들과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는 걸까. 평화적으로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마음이 점차 무거워졌다.
얼마나 잤을까. 저절로 눈이 떠졌다. 밴의 천장을 통해 빛이 보이는걸 보면 해가 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모두 일어났는지 밴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옆문이 열려있었다. 천천히 옆 좌석으로 이동해 밴에서 나왔다.
햇살이 따갑다.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소총을 들고 폐차 안을 수색하고 있었다. 천천히 그 쪽으로 걸어갔다.
“윽…….”
뭔가 썩은 내가 났다. 아, 어제 그 시체…… 동료에 의해 처참히 죽음을 맞이한 시체에서는 앙상한 뼈만 남아 있었다. 최대한 보지 않으려 애쓰며 차를 뒤적거리는 동생에게 다가갔다.
“쓸 만한 거 있냐?”
“아니.”
동생은 몸을 빼지 않은 상태로 말했다. 앞좌석과 뒷좌석을 둘러보던 동생은 이내 차 문을 닫고 한숨을 쉬었다.
“어제만큼의 작은 수확도 없어.”
“시간 낭비 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기름은 챙길 수 있으니까 뭐…….”
동생은 밴의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에는 여러 개의 통이 있었는데 투명한 액체가 반 정도 담겨 있었다.
“전에 성당에서 녀석들 죽일 때 기름을 너무 많이 썼나봐. 그래서 지금 이렇게 조금씩 모아서 보충하고 있어. 이미 밴 안은 가득찼고 저건 따로 모은 거야.”
“아아. 은혜는?”
“저기.”
동생이 가리킨 곳을 보니 꽤 먼 곳에서 가만히 서 있는 은혜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남자가 그림자같이 서 있었다. 저기서 뭐하는 거지? 은혜의 속을 알 리 없는 나는 다른 차를 뒤적거리는 우민 형에게 다가갔다. 형은 내 발소리를 듣고는 차안에서 몸을 뺐다. 덜렁거리는 소매가 낯설게 보였다.
“형. 몸은 어때?”
“그냥 그렇지 뭐. 이거나 좀 들어줘.”
우민 형은 운전석에서 커다란 검은 비닐 봉투를 힘겹게 들어올렸다. 꽤 묵직해 보였다. 양손으로 받아든 나는 무거운 봉투 안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자동차 부품이나 각종 수리 도구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걸 쓸데가 있나?
“정비 쪽 일도 조금 배워서 혹시 도움이 될까 하고 챙기는 거야.”
“아…….”
검은 봉투를 밴에 가져다 놓은 뒤 아침식사 준비를 했다. 구석에 비치된 배낭 하나를 우민 형에게 내밀었다.
“먹고 싶은 거 꺼내.”
우민 형은 오른 손을 이용해 배낭을 열었다. 나도 그 옆에 앉아 배를 채울 만한 것들을 꺼냈다. 통조림 과일. 사탕. 이온음료. 물이 전부였다.
그제야 할 일을 마친 모두가 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손이 비어있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오늘 내로 안성시에 도착할거고 필요한 것들은 거기서 보충하면 된다. 식사를 하려는 도중에 은혜와 남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1시간 좀 넘어서 안성에 도착할 것 같군.”
“거기서 최대한 챙기고 바로 떠나는 게 좋겠군요.”
“그래야지.”
서둘러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밴에 올랐다.
부우웅.
밴은 이내 빠른 속도로 출발했다. 딱히 할 말도 없는 우리는 멍하니 창문만 바라보았다. 휙. 휙. 빠른 속도로 지나쳐 가는 폐차들과 꺼져버린 가로등이 전부였다.
"거기엔 뭐가 기다리고 있으려나."
동생의 중얼거림에 모두의 얼굴이 복잡해져갔다. 아저씨는 대답 대신 밴의 속도를 더욱 높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뻥뚫린 도로 때문에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30분 조금 안되어 안성시에 도착했다.
"다 왔구만.."
그렇게 중얼거리는 준우 아저씨의 말에 모두 고개를 내밀었다. 시 입구에 걸린 커다란 표지판에 ‘환영합니다.’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우선 마트로 가는게 어때요? 형님."
"그러는게 좋겠어요."
우리들은 먼저 생필품을 챙기기로 했다. 아저씨는 커다란 시내가 있는 중앙으로 밴을 몰았다. 저번에 머물렀던 번화가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였다. 을씨년스럽게 자리 잡고 있는 고층 빌딩이 심심찮게 보였고 백화점이 여러 개가 눈에 들어왔다.
이젠 죽어버린 듯한 도시 내부를 천천히 운행하던 밴은 곧 목적지 앞에 도착했다.
부르르.
이내 시동이 꺼지자 하나둘씩 밴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한 명 한명이 내릴 때마다 사주 경계를 잊지 않았다. 우린 소총과 배낭을 소지한 채 ‘D/C마트’ 로 향했다. 시내의 형편은 그리 좋지 않았다. 여기저기 패여 있는 도로며 더 이상 못 움직이고 있는 자동차들. 사람들의 흔적과는 멀어진 빈 건물들.
천천히 걸어가며 시내 여기저기를 훑어 본 끝에 마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괜찮군.”
아저씨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퀴퀴한 냄새와 뭔가 썩어가는 냄새가 났다. 우리는 그 냄새를 따라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곧 냄새의 원인이 식품코너에 있는 말라비틀어진 과일들과 썩어가는 고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비교적 유통기한이 긴 음식들을 택했다. 그 중 통조림은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것이라 있는 대로 챙겼다.
“참치. 햄. 또 뭐가 있더라.”
참치 캔을 종류별로 쓸어 배낭 안에 두둑이 담고, 평소엔 먹지 못했던 비싼 햄 종류도 쓸어 담았다.
“오…… 콘 샐러드?”
다시 배낭을 열고 5개 정도를 챙겼다. 이제 뭘 챙길까 생각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들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챙기기 바빴다. 그 중에서도 은혜는 태평스럽게 과자 봉지를 뜯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런 사태에 심각성을 전혀 알리 없는 은혜는 고운 손으로 과자를 꺼내 먹기만 했다. 이내 자기만 먹는 게 미안한지 뒤에 남자에게도 건네는 은혜. 남자는 몇 번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곧 그것을 공손히 받아 들고는 입에 넣었다.
“쇼를 해요. 쇼를…….”
그렇게 10분 정도 지나자 어느 정도 챙긴 우리들은 끼니를 여기에서 때우기로 했다. 그러자 준우 아저씨가 방실방실 웃으며 한곳으로 뛰어갔다. 동생도 다른 곳으로 가서 가스버너와 부탄가스를 가져왔다.
“뭐에 쓰려고?”
내 물음에 동생은 웃기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와 아저씨는 콧노래를 부르며 다가오는 준우 아저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양 손안에 들린 투명한 봉지에는 붉은 고기들이 담겨 있었다.
“어?”
“얼마 만에 먹는 고기냐! 크하하핫!”
“아저씨. 그거 꽃등심이죠?”
동생의 은근한 어투에 준우 아저씨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듯 서로를 보며 씩 웃고는 서둘러 세팅하기 시작했다. 불판이 없어 생선을 굽는 그릴 같은 것으로 대신했다.
치이익.
열이 바짝 가해진 그릴 위에 고기를 얹자 빠르게 익어가기 시작했다.
“그거 상한 거 아니에요?”
“내가 직접 썰어온 거야. 냉장고에 아직도 많아.”
“아~”
오랜만에 먹는 고기라 다들 기대하는 눈치였다. 나무젓가락을 가져온 동생은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가위 있는 사람?”
“제가 가져올게요.”
아까 봐두었던 생필품 코너에서 가위와 집게를 가져와 준우 아저씨에게 건넸다. 준우 아저씨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게 미소를 짓고는 고기를 구웠다.
"근데 이상하지 않아요?"
내 말에 모두가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이런 상황에서 마트를 안 털었다는게.. 이상하잖아요."
"뭐.. 워낙에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 다 도망간거 아닐까?"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준우 아저씨의 말에 모두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그런 이성적인 생각을 할 시간에 눈 앞에 놓인 고기가 그들의 정신을 단단히 잡고 있는 듯 했다. 치이익. 점차 맛있는 냄새가 마트 안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진성이 말도 일리가 있어. 돌아가면서 경계를 서자."
준우 아저씨의 말에 우린 각자 구역을 맡았다. 그렇게 10분을 본 우리들은 더 이상 위험인자가 오지 않음을 어렴풋이 느끼고는 다시 자리에 모였다. 꼬르륵. 위장이 경련을 일으켰다. 어느 정도 고기가 구워지자 준우 아저씨는 고기 한 점을 들어 아저씨에게 먼저 권했다. 아저씨는 옅게 웃으며 고기를 받아먹었다.
“맛있네.”
“먹자~”
그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정신없이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육질과 맛이 오감을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우리가 열심히 고기를 먹을 동안에도 아저씨는 은혜를 챙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고기를 비워낸 우리는 다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뱃속에서는 아직 더 달라고 아우성을 쳐댔다.
“이런 상황에서 소소한 행복이라도 느낄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네요.”
“그렇지.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린 영원히 모르고 지냈을지도 몰라.”
“그게 다 남자라서 아쉽긴 하지만요.”
“하하하하하.”
준우 아저씨의 말에 마트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이런 기분을 언제까지나 느끼고 싶었다. 비록 괴물들에 쫓겨 다니며 사는 신세지만…….
딸랑. 딸랑.
마트 출입문의 방울 소리에 모두 소총을 들었다. 우민 형은 계산대 아래로 기어들어가 바로 총을 쏠 자세를 취하고 우리는 선반 뒤에 적당히 은신했다. 냄새가 너무 퍼진 탓일까.
두근두근. 떨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는 먼저 나가겠다는 수신호를 보냈다. 셋, 둘, 하나. 아저씨들은 동시에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에 맞춰 우리 형제도 뒤를 따랐다.
“쏘, 쏘지 마시오!”
거기에는 40대로 보이는 남자와 그의 딸로 보이는 우리를 보며 서 있었다. 교복을 입고 있는 걸로 봐서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같았다. 우린 말 없이 부녀를 바라 보았고 곧 은혜의 '괜찮아.' 라는 말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우리는 부녀가 안심할 수 있도록 총을 내려놓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 그저 고기 냄새가 나서…… 배고파서 나도 모르게 와봤소. 녀석들이 고기를 구워먹는다는 소리는 한 번도 본적도 들은 적이 없거든…… 분명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딸과 온 것이오.”
40대 남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실례가 많았소.”
아저씨는 사과의 뜻으로 손을 내밀었다. 40대 남자도 그 손을 맞잡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간단한 통성명을 한 우리들은 아저씨와 딸에게 잘 익은 고기를 내주었다. 제대로 씹지 않고 넘기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안쓰러워졌다. 부녀의 이름은 이봉수와 이해인 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 왔소?”
아저씨의 물음에 봉수 아저씨는 급하게 먹느라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저씨와 우리들은 차분히 그것을 기다려주었다.
“저…… 뭐라고 하셨지요?”
“그간 어디서 지내왔소?”
“저는 지하 물류 창고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업이 꽤 잘되는 편은 아니지만……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되지요. 그 일만 아니었어도…….”
봉수 아저씨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밖은 정말 아수라장이었죠. 세상에 그런 괴물 놈들이 존재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하교하는 딸을 차에 태우고 지하 물류 창고로 들어가 무작정 숨었죠. 마누라 생사는 아직까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며칠을 전전긍긍 하면서 물류 창고로 반입 반출되는 음식들로 하루하루를 버텼어요. 라디오를 통해 미약하게나마 세상일에 대해 듣게 되었죠. 처참했어요. 그러다 먹을거리가 점점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온 겁니다.”
“……그러셨군요.”
“당신들은 어디로 가는 중이었습니까? 밴이 보이던데…….”
봉수 아저씨의 말에 우리는 서로 눈치를 살폈다. 쉽게 꺼내기 힘든 말인가? 나는 봉수 아저씨에게 있는 그대로 말했다.
“부산에 생존자를 태우러 오는 유람선이 온다고 해서 그리로 가고 있어요.”
“생존자요?”
부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이내 봉수 아저씨는 두 눈을 글썽이며 고개를 숙였다.
“제발 데려가주십시오. 여기서 하루하루를 공포에 떨며 사는 것보다 여러분들과 동행하는 게 백배 천배는 나을 것 같아요. 제발 데려가주십시오.”
아저씨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예상 밖의 인원이 합류하게 된다면 여러모로 고려할 것이 많았다. 그러나 이렇게 멀쩡한 두 사람을 두고 우리끼리만 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같은 생존자끼리 돕고 도와야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아저씨…… 밴 뒷좌석에 두 자리가 남긴 하잖아요.”
“총 같은 건 다룰 줄 아시오?”
아저씨는 한숨을 쉬며 물었다.
“……모릅니다.”
“저 활 같은 건 쏠 줄 알아요…….”
“그, 그래요. 해인이가 보기에는 이래도 양궁 선수에요.”
봉수 아저씨의 말에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밴에 석궁이 있으니 그걸로 감각을 익히도록 해. 그럼 빨리 먹고 일어납시다. 시간이 얼마 없소.”
봉수 아저씨는 눈물을 훔치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우리들은 다시 흩어져 물건들을 보충하기로 했다. 인원수가 늘어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5분 만에 다시 챙긴 우리들은 밴의 트렁크에 배낭을 차곡차곡 쌓았다. 봉수 아저씨와 해인이는 가장 뒷좌석에 앉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서서히 밴이 출발하자 부녀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그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던 것 같다.
“잘한 걸까요.”
준우 아저씨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생존자끼리 도와야하니…… 별 수 없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침묵이 시작됐다. 하루 빨리 부산으로 가 유람선에 타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부우웅-
뒷좌석에 잠들어 있는 부녀를 보자 문득 병원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3일…… 4일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아주 오래전에 겪은 일처럼 희미해졌다. 괴물로 변한 자식을 끝까지 지키던 창민 아저씨의 얼굴이 봉수 아저씨와 자꾸 겹쳐졌다. 이번엔 두 부녀를 지켜주고 싶었다. 두 번 다시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챙그랑.
유리가 깨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우리들은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트렁크 쪽의 유리에 금이 가 있었다.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돌멩이를 손에 쥐고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누구지? 누가 우리를 공격한 거지?
“제길. 백미러로 뭔가 희끗 보이는가 싶더니 이거였군.”
아저씨의 표정이 좋지 않다.
“온다…….”
조용히 내뱉은 은혜의 말로 상황이 확실해졌다. 주위에 있는 녀석들이 있고 우리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낮인데……? 녀석들은 잠들 시간이 아닌가? 우리가 아까…… 마트에서 고기를 굽는 것이 영 좋은 선택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냄새가 멀리 퍼져 녀석들을 깨운 모양이었다.
“제길…….”
창문을 통해 주변을 살폈다. 좁고 어두운 골목길이 유독 많이 보였다.
“!!”
뭔가가 내 앞으로 날아왔다.
퍼억. 다행히 창문이 닫혀 있는 상태라 타격을 받진 않았지만 충격을 계속 받는다면 어떻게 될지 장담 할 수 없었다. 늘어진 상가 길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도구를 사용하다니…… 미치고 팔짝 뛰겠군.”
준우 아저씨 말에 뭔가가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녀석들이 점차 진화하고 있다는 남자의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건가? 어서 빠져나가야 했다. 부우웅. 밴의 속도가 점차 올라갔다.
텅. 텅. 텅. 텅.
시간이 지날수록 녀석들의 공격이 거세져갔다. 버틸 것 같던 창문도 서서히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큰일이야. 뭔가 대책을 취해야해. 돌…… 받아낼 만한 게 없을까.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난 서둘러 창문을 내리고 웃옷을 벗어 돌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향했다.
쉬이익.
날아온다. 침착해. 받으면 되는 거야.
텁. 생각보다 쉽게 잡혔다. 내 성공을 시작으로 모두가 웃옷을 벗고 그것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운전석과 조수석은 녀석들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도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가끔 예상 궤도를 벗어나거나 크기가 큰 돌들은 완전히 막아내지 못했다.
퍼억.
“크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