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밖에 나가지 마시오 part.10
“제길…… 말로만 듣던…… 쿨럭. 우두머리가 저런…… 거였어?”
피를 토하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김 대위를 벽에 기대게 해주었다. 동생에게 다가간 아저씨는 동생이 편하게 눕게 몸을 돌려주었다.
“그 새끼…… 꼭 족쳐야…… 돼.”
동생은 이를 갈며 나와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일단 쉬고 있어.”
부상당한 사람들을 놔두고 우두머리를 쫓아야 하는 걸까. 은혜는……? 은혜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마음에 걸렸다.
“뭐해!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빨리 가라니까!”
동생의 신경질적인 외침에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들 고통스러운 얼굴이었지만 나와 아저씨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 말이 맞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보낼 생각이야?”
“어서 가. 우린 세 명이잖아.”
그게 말이 되나. 그런 엉망인 몸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고.
“하아.”
아저씨는 땅에 떨어져 있는 화살들을 묵묵히 챙기기 시작했다. 그래. 어쨌거나 준비를 해야 했다. 아저씨를 거들어 주변에 깔린 화살들을 모조리 챙겨 화살 통 안에 넣었다.
“됐네.”
그렇게 말한 아저씨는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아저씨는 우두머리가 사라진 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크으…….”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우두머리와는 다른 소리…… 이건 괴물의……? 아저씨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앞이 아닌 뒤였다. 제길…… 이런 중요한 시간에 하필…… 제기랄!
“크으..”
우리가 온 통로에서 검은 인영이 꾸물거리더니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저씨는 녀석들에게 석궁을 겨누었다. 본능에 사로잡힌 녀석들은 격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움직였다.
“크으으으.”
그러나 아저씨의 화살이 더 빨랐다. 매서운 화살에 머리가 뚫린 괴물은 옆으로 쓰러졌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한 놈이 여기로 왔다는 것은 다른 놈들도 충분히 올 수 있다는 소리였다. 더군다나 여기는 텅 빈 공간이라 녀석들을 피해 숨을 곳도, 막을 곳도 없었다.
“진성아, 내가 여기에 남을 테니까 우두머리를 쫓아.”
아저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
내가 우두머리를 저지할 수 있을까. 이 보잘 것 없는 힘으로? 은혜를 무사히 구출 할 수 있을까.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아저씨는 내 어깨를 단단히 잡고 말을 이었다.
“자네를 믿으니까 이러는 거야. 녀석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어. 결국 한 사람은 남아야 돼. 내가 가면 좋겠지만…… 은혜 앞에서 우두머리 녀석을 본다면 이성을 잃을지도 몰라. 그럼 최악의 사태까지 예상해야 돼. 차라리 내가 남아서 사람들을 지키는 게 나아.”
자신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저씨의 결연한 눈빛과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보자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다시 뭔가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나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탁합니다.”
석궁을 꽉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말 대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는 석궁을 겨누었다.
나는 모두를 뒤로 한 채 우두머리가 사라진 곳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어둡고 긴 통로였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이런건지 간접적으로 보여주기라도 하듯 아주 어두운 통로다.
“헉. 헉. 헉.”
쉬지 않고 달렸지만 이상하게 힘들지 않았다. 두렵지가 않았다. 왜 일까. 죽음을 앞둔 순간이라 그런걸까.
얼마나 달렸을까. 저 멀리서 밝은 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점차 빛이 강해지고 있었다. 곧 있으면…… 우두머리 녀석과 마주칠 것이다. 이길 수 있을까. 내가 녀석을 없앨 수 있을까. 모두를 죽음 직전까지 내 몰던 녀석을?
"후우."
아니야.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 없어. 뒤에서 나를 믿고 남은 사람들을 생각해. 다시 한 번 숨을 크게 쉬었다. 짧은 호흡을 마치고 걸음을 띄려는 순간 낯선 소리가 들렸다. 응? 이 비명소리와 포효소리는 뭐지?
“크오오!”
우두머리의 포효소리가 길게 메아리쳤다. 눈을 똑바로 뜨고 보려고 했지만 워낙 강한 햇빛 때문에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흰색의 막 같은 것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크으…….”
“……크으.”
성당의 뒷길로 보이는 넓은 공터였다. 내가 나온 곳에 인위적으로 넓게 땅을 갈은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땅 위에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세 명의 후드들이 있었다. 몸 여기저기가 뜯긴 걸로 봐서는 괴물들에게 당한 것 같았다. 다시 시선을 중앙으로 가져갔다.
“…….”
이런 상황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은혜는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우두머리는 그런 은혜를 묵묵히 지켜내고 있었다.
“…….”
우두머리의 몸은 크고 작은 상처들로 가득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다시 우두머리의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붉은 빛이 넘실거렸다.
“크으…….”
“크으으.”
괴물들은 내 존재는 안중에도 없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시선을 따라 가보니 멍하니 서 있는 은혜에게 꽂혀있었다. 아, 녀석들이 원하는 것은 은혜였구나. 그때도 말했었지. 은혜에게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아마 은혜의 존재가 녀석들의 관심을 끄는 것 같았다.
“크아아!”
우두머리 녀석은 은혜를 보호하며 괴성을 질렀다. 그러나 녀석들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은혜를 노려보았다.
그 중 한 녀석이 결심을 했는지 동료의 살점을 물어뜯었다. 살이 뜯긴 동료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려고 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두려움에 찬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
살기 위해 두리번거리던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사는 녀석에게 동정을 베풀 여유 따위는 없었다.
“크으!”
뜯겨나간 살덩이들이 녀석들의 심기를 자극했다. 녀석들은 순식간에 동료를 덮쳤고 커다란 비명 소리가 길게 메아리쳤다. 그리고 녀석들은 서서히 괴물의 모습으로 변했다.
곧 변신에 성공한 녀석들은 천천히 우두머리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우두머리의 힘이 세고 월등하다고는 하지만 수 앞에서는 장사가 없는 법이었다.
“크아아아!”
수십 마리가 괴성을 지르며 동시에 달려들었다. 저 많은 괴물들을 상대로 은혜를 완전히 보호할 수는 없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튀어 오르는 한 녀석의 미간에 화살을 날렸다.
푸욱. 미간에 적중당한 녀석은 그대로 고꾸라졌다. 시간이 없었다. 어서 다른 화살을 장전해야 했다.
우두머리는 빠른 속도로 괴물들을 쳐냈다. 하지만 그들의 본성은 두려움을 지배한지 오래였다. 우두머리의 통제를 철저히 무시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크르르르.”
그 중 다른 녀석들이 나를 발견한 모양이다. 녀석은 에워싸듯 내게 다가왔다. 뒤로 물러날 수 있는 통로가 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까지 허무하게 무너진다면 안에 있는 모두가 위험했다.
“쳇.”
그래, 이판사판이다. 나는 머뭇거림 없이 우두머리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녀석들은 내 행동에 잠깐 멈춰서더니 출입구를 막아서기 시작했다. 이제 녀석들의 목표는 하나가 아닌 둘이 된 셈이었다. 우두머리는 나를 발견하고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찮은 인간 따위가 잘도 여기까지 왔군.”
“닥쳐. 네 놈 걱정이나 해.”
“크하하하하! 머리가 안돌아가는 놈들이 메시아의 뜻을 알 리가 없지.”
우두머리는 고개를 들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나 나에게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았다. 녀석도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을 타개해 나가려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한다는 것을.
“후우…….”
길게 숨을 내쉬며 우두머리에게 등을 맡겼다. 지금은 우두머리를 최대한 이용해야만 했다.
“메시아께서 너희들을 좋아하더군.”
“알아. 가족이니까.”
“큭큭…….”
녀석의 목소리에서 쓸쓸함이 느껴진 것은 착각일까. 안 돼. 감성에 젖을 시간은 없어. 변신을 마친 괴물들은 나와 우두머리. 은혜를 노려보며 슬금슬금 움직였다.
“크아아아!”
괴물들은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었다. 파랗고 눈부신 하늘이 점차 검게 물들어갔다. 나는 머뭇거림 없이 석궁의 방아쇠를 당겼다.
핑.
빠른 속도로 석궁을 떠난 화살은 괴물의 이마를 꿰뚫었다. 하지만 쓰러지는 놈은 한 마리 뿐. 장전할 시간에 다른 녀석들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생각보다는 본능으로 움직여야해. 망설이지 말고 빠르게 움직여! 괴물들의 날카로운 손톱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앞으로 구르며 단검을 빼냈다.
"크르르르."
괴물들은 분하다는 듯 낮게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곧 멍하니 서 있는 은혜를 발견하고는 슬금슬금 접근하기 시작했다. 우두머리 역시 앞에 오는 녀석들을 처리하기에 바빴다. 그렇다면 망설이면 안 된다. 녀석들은 지금 뒤가 무방비였다. 그럼 기회는 지금 뿐이었다.
불쾌한 소리와 낯선 감촉이 느껴졌다. 재빨리 단검을 뽑아 괴물들의 귀에 쑤셔 넣었다.
“허억. 허억.”
단 두 놈을 처리하는데 이렇게 힘들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 나아지긴 했다. 전엔 녀석들의 소리만 들어도 벌벌 떨었었는데…….
“호오.”
우두머리는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나를 보았다. 녀석의 양손은 붉다 못해 검었다. 얼마나 많은 괴물들을 죽였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우두머리는 은혜의 안색을 살폈다. 은혜는 여전히 멍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옷가게 쇼윈도에 비치되어 있는 마네킹 같았다.
조금은 은혜를 걱정 되기 시작했는지 우두머리 녀석이 작게 속삭였다.
“메시아시여…… 조금만 버텨주십시오.”
결의에 찬 우두머리의 목소리는 믿음직스러웠지만 상황이 나빠도 너무 나빴다.
“크아아!”
이젠 완전히 우두머리의 통제를 벗어난 녀석들은 바로 옆 동료의 시체를 뜯어먹으며 점점 변신하기 시작했다. 최악이다. 이대로 있다간 꼼짝 없이 당한다. 무슨 수를 써야했다.
도망갈 수 있을까. 저 많은 괴물들을 뚫고 도망갈 수 있을까. 혹여 모든걸 버리고서라도 내가 도망갈 방법이 있는걸까. 암담해져만 가는 상황 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화살을 장전시키는 것뿐이었다.
“여기서 살아남을 수는 있는 거야?”
답답한 마음을 담아 우두머리에게 물었다.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메시아는 지킬 것이다.”
그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는 것은 왜일까. 다시 호흡을 크게 들이마시며 놈들을 살핀다.
“크아아!”
순간 수십 마리의 괴물들의 다시 도약을 시작했다. 피할 수 없다면 한 놈이라도 더 죽여야 했다.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석궁을 겨눠 끝에 있는 놈에게 화살을 날려준다.
푸욱.
녀석은 그대로 공중에서 낙하했다. 겨우 1마리 줄어든 셈이었다. 이번엔 단검을 들고 가운데에 있는 녀석을 노리며 튀어나갔다. 만약 이 공격이 성공한다면 작은 틈이 또 생길 것이었다. 그 틈을 잘 이용한다면..
“하아아!”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소리를 지르며 단검을 꽉 쥐었다. 정면 대결에선 녀석을 이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치명상을 줄 수는 있다.
“크르르.”
찰나의 순간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광기에 사로잡힌 눈…… 죽어라 이 개자식아! 온 몸을 던지며 행하는 최후의 발악이자 최고의 공격. 곧 뭔가를 꿰뚫는 듯한 감촉과 함께 온 몸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크아아아!”
“으아아악!”
녀석의 비명소리와 동시에 내 비명소리가 섞였다. 살을 주고 뼈를 깎는 공격이 성공했다. 심장에 박힌 단검을 빼기 위해 녀석의 몸을 강하게 발로 찼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녀석은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불행히도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상태였다.
“크으.”
녀석은 단검을 뽑으려고 하는 내 손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계획이 어긋나자 몸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꺼져!”
손을 빼내려 했지만 녀석의 힘은 만만치 않았다. 이건 계산에 없는 행동이었다. 녀석은 당황한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마치 ‘넌 죽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크아아!”
내가 녀석에게 잡혀 버둥거리자 다른 녀석들은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제길…… 제기랄! 피잉. 그때 주위에 있던 괴물들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끄르륵.”
내 손목을 잡고 있던 녀석 역시 서서히 뒤로 쓰러졌다.
“후우…… 후우.”
화살이 날아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이~ 괜찮아?”
준우 아저씨와 아저씨, 김 대위가 나를 보며 서 있었다.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인사는 나중에 해두고!”
준우 아저씨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잊고 있었다. 나에겐 든든한 동료들이 있다는 것을. 준우 아저씨는 김 대위를 보며 손짓을 했다. 고개를 끄덕인 김 대위는 뒤쪽 통로로 뛰어가더니 성당 내부에 걸려있던 커다란 커튼 여러 개를 가져왔다.
“하아!”
김 대위의 기합 소리와 함께 커튼 하나가 공중을 돌며 넓게 퍼졌다.
커튼은 바람을 타고 녀석들의 머리 위를 덮었다. 순식간에 시야가 좁아진 녀석들은 커튼을 걷어내기 위해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김 대위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다시 커다랗게 날아간 커튼이 다른 녀석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치직.
준우 아저씨와 아저씨는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조잡하게 만든 화염병을 커튼 위로 던졌다. 화르륵 뜨거운 불길은 커튼은 집어삼킬 기세로 빠르게 번졌다. 나와 우두머리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크아아아!”
“크으으!”
녀석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운 좋게 불이 붙지 않은 나머지 녀석들은 혼비백산 하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공터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우린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빨리 와!”
준우 아저씨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나는 은혜를 낚아채 뛰어갔다.
“아빠…….”
은혜는 아저씨를 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 소리가 유독 컸는지 우두머리가 고개를 돌렸다. 이내 은혜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우두머리는 빠르게 쫓아오기 시작했다. 제길.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움직여라, 빌어먹을 다리야!
“크아아!”
하지만 우두머리는 이쪽으로 오지 못했다. 괴물들 중 상태가 양호한 놈들이 우두머리의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우두머리는 더 이상 그들의 동료가 아니었다.
“어서!”
준우 아저씨는 빨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하지만 은혜를 데리고 빨리 달리는 것은 무리였다.
“은혜야, 조금만 참아.”
결국 은혜를 번쩍 들어올렸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나는 은혜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주고는 아저씨들에게 뛰어갔다.
“메시아시여!”
우두머리의 외침이 귓가에 울렸다. 하지만 우린 은혜만 데려가면 된다. 이참에 우두머리 녀석이 죽는다면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잡았다!' 은혜를 낚아챈 아저씨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린 반갑다는 재회 인사를 생략한 뒤 동시에 달리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힘내자. 고지가 눈앞이야. 상황이 급박해서 그런지 통로가 유독 길게 느껴졌다.
“어떻게 된 거예요?”
“약도보고 왔어. 걱정 되서 미치겠더라고.”
“아…….”
“자세한 얘기는 당구장에서 하기로 하고, 지금은 여기서 빠져나가는 데에만 신경 쓰자.”
“네.”
이윽고 우리는 처음의 좁은 공간에 도착했다. 동생과 이 소위는 여전히 몸을 가누지 못했다. 나는 죽은듯이 늘어진 동생을 부축했다. 김 대위도 이 소위를 업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야, 업혀라.”
인상을 잔뜩 찌푸린 동생은 내 등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순순히 업혔다. 묵직한 압박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헉. 헉.”
입에서 단내가 느껴졌다. 하지만 걸음을 멈출 순 없었다. 한시라도 이곳을 빨리 떠나야만 했다. 조금만 더 힘내면 돼.
길고 긴 억겹의 시간을 지나니 성당 내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간의 일들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괴물들의 시체가 곳곳에 쓰러져 있었다.
“밖에 녀석들이 없다고 보장은 못하니까 여기서부터는 천천히 가야해요.”
준우 아저씨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는 동의한다는 듯 석궁을 꺼냈다. 모두 화살이 넉넉지 않아 내 것을 조금 나눠주었다. 다시 동생을 업은 채 준우 아저씨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저벅. 저벅.
고요한 성당 내부를 지나 밖으로 나왔다.
“굉장하군.”
자갈이 깔려 있던 오솔길은 괴물들의 시체와 피로 물들어 있었다.
10미터 정도를 전진해도 녀석들의 움직임이 없자 우리들은 점차 걷는 속도를 올렸다. 저 멀리 밴과 승용차 한 대가 보였다. 저기까지만 간다면 일단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크르르.”
하지만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곳곳에서 녀석들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괴물의 모습을 한 녀석들은 10마리도 되지 않았다. 천천히 다가오는 괴물을 보며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였다.
피잉. 핑. 핑.
괴물들은 낮게 소리를 지르며 힘없이 쓰러졌다.
“뛰어!”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속도를 내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준우 아저씨의 외침과 동시에 젖 먹던 힘까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크아아!”
괴물의 포효 소리가 들렸다. 주위에 있던 녀석들이 동료의 시체를 뜯어 먹고 괴물로 변한 것이었다.
“아저씨!”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 김 대위가 멈춰 서서 화살을 날렸다. 곧 세 마리가 차례대로 쓰러졌지만 아직 처리하지 못한 몇 놈 남아 있었다.
“받아.”
내가 정자세로 서자 동생이 화살을 내밀어 주었다. 빠르게 화살을 장전시키고는 꽤 가까이 다가온 녀석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녀석은 일말의 비명과 소리와 함께 그대로 꼬꾸라졌다. 아저씨들은 다시 차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화살 통을 보니 이제 몇 발 남지 않았다.
“서둘러!”
다행히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들은 밴에 잽싸게 올라탔고 운전석에 앉은 준우 아저씨가 서둘러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소리가 있을까. 순간 살았다는 안도감에 몸에 힘이 풀렸다.
“얼른 타!”
“아!”
동생에게 무리가 가지 않도록 밴에 태우고 뒤를 돌아봤다. 깨끗하고 정갈했던 오솔길 위에는 녀석들과 시체와 검붉은 피들이 얼룩져 있었다.
아저씨는 은혜를 꼭 앉은 채 조수석에 앉았다. 모두 밴에 올라탄 것을 확인한 준우 아저씨는 급하게 운전하기 시작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석궁을 꽉 잡고 화살을 장전했다.
“오, 제길!”
준우 아저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5미터 앞에서 느릿하게 걸어오는 괴물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안전벨트!”
나는 동생에게 안전벨트를 해주었다. 김 대위도 신속한 손놀림으로 이 소위에게 안전벨트를 매주었다. 순간 뭔가에 부딪히는 충격이 밴 전체에 가해지자 몸이 앞으로 쏠렸다.
밴의 차체가 크게 붕 떴다. 녀석을 깔고 뭉갠 듯 했다. 부우웅. 밴은 점차 속도를 내며 성당과 거리를 벌렸다. 시내와 가까워질수록 괴물들의 포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고생했습니다.”
잔뜩 지친 기색의 김 대위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 옆에 앉은 이 소위는 아직도 통증에 시달리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이거 팔 하나는 버려야겠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지요.”
그 말을 끝으로 누구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20분 정도가 지나자 밴이 멈췄다. 천천히 밴에서 내려 동생을 부축하며 낡고 허름한 건물을 바라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온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시동을 끈 준우 아저씨는 밴에 남아 있는 물건들을 모조리 챙겨 건물 계단에 올랐다. 그 뒤를 따라 아저씨와 은혜, 김 대위와 이 소위, 나와 동생이 올랐다.
저벅. 저벅.
당구장의 입구를 열고 부상자들을 당구대 위에 눕혔다. 그리고는 다시 입구를 막은 후 소파에 쓰러지듯이 앉았다.
"하아……."
너무 힘든 탓인지 모두 아무런 말이 없었다. 민정 누나를 잃은 것이 마음을 무겁게 했지만, 은혜라도 무사히 데려올 수 있어 다행이었다.
“여기 오니까 좋지?”
아저씨 옆에 앉은 은혜를 보며 물었다.
“…….”
은혜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 일로 마음의 상처를 받진 않았을까. 혹시 트라우마가 생기는 건 아닐지 걱정 됐다.
“……온.”
그때 은혜의 입술이 작게 열렸다.
“응?”
“다…….”
온다? 온다고? 제길! 긴장을 늦추고 있던 나와 아저씨는 석궁과 화살이 있는 캐비닛을 열었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준우 아저씨는 우리를 거들었고, 김 대위는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녀석들이 오고 있소. 준비하시오.”
아저씨는 석궁과 화살을 건네며 말했다.
그러자 김 대위는 굳은 얼굴로 석궁과 화살을 조절을 한 후 단검을 챙겼다.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 그리고 나도 옆구리에 단검을 꽂았다.
“죄송합니다.”
이 소위는 미안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김 대위는 고개를 저으며 이 소위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잘했어. 그러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말게.”
“김 대위님…….”
“뒤는 우리들에게 맡겨. 우린 죽지 않아. 살아남을 거야 반드시.”
이 소위는 말없이 어깨를 들썩였다. 김 대위는 이 소위의 손을 조심스럽게 놓고 창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동생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김 대위의 옆 창가에 섰다. 그 옆으로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가 굳은 얼굴로 석궁에 화살을 장전시켰다.
“온다…….”
은혜의 목소리에 불안이 증폭됐다. 곧 녀석들이 온다. 막을 수 있을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다시 창가 쪽으로 걸어가 남은 파운트케이크를 입에 물었다. 푸석거리고 달달한 맛이 서서히 질려간다. 텁텁해지는 입안의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날려보려 크게 숨을 내쉰다.
“그러고 보니…… 아까…….”
김 대위는 뭔가 생각났는지 아저씨를 보며 말했다.
그러나 아저씨는 말없이 케이크를 먹기만 했다. 김 대위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지 다시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이윽고 식사를 마친 우리는 아직 남아 있는 잔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석궁들을 차례로 모아 수입을 했다. 여기저기 구부러지고 피가 묻어 있었지만 목숨을 지켜준 고마운 녀석들이었다. 석궁 수입을 마치자 20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김 대위는 구석에 있는 무전기를 가져왔다.
[여기는 브라보 소대. 들리는가?]
[여기는 차리 소대. 수신 상태 양호.]
[내일 합류하겠음.]
[양호. 자세한 위치는…….]
김 대위는 사전에 준비한 종이에 열심히 받아 적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두 사람과도 이별이네. 꼭 가야 하는 걸까. 5분 동안 통신을 마친 김 대위는 무전기를 끄고 종이에 적힌 내용들을 다시 검토했다.
“우리랑 같이 가요. 부산에 사람들을 구하러오는 유람선이 온대요.”
“우린 군인이야. 너처럼 민간인이 아니야.”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런 게 중요해요?”
“중요해. 우리마저 없어진다면 누가 너희들을 지켜주지? 나도 무섭고 도망가고 싶어. 하지만 내 뒤로는 민간인들과 우리나라가 있기 때문에 싸우는 거야.”
김 대위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알아요. 우리가 밤에 발 뻗고 자는 것도 군인들이 고생한 덕이잖아요. 물론 괴물들이 나타나기 전 얘기지만…….”
“맞아. 원래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뭉쳐야 돼. 언제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빠른 시일 내로 괴물들을 모조리 없앨 거야.”
“네.”
김 대위의 태도는 확고했다. 그 말은 즉, 이 소위도 같은 입장이라는 거겠지…… 다시 우리끼리 떠나야 하는 걸까.
“저 남자는 어떻게 할까?”
그때 조용히 있던 아저씨가 물었다.
그제야 당구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남자에게 시선이 향했다.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자꾸 우두머리의 모습과 겹쳐보였다.
“어떻게 하다니요……? 이제 사람이잖아요.”
“그런 뜻이 아니야. 저 남자 때문에 은혜가 받을 영향을 생각해 봐.”
아저씨는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메시아…… 은혜는 그렇게 말했었다. 저런 사이코 남자와 계속 있게 된다면 은혜는 어떻게 되는 걸까. 사태가 더 나빠지는 걸까? 하지만 이제 저 남자도 인간이었다.
“떼어 놓아야 돼.”
“네?”
“은혜와 최대한 멀리 떼어 놓아야 돼.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그렇게 하지.”
아저씨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 대위도 더 이상 우리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지 아무 말이 없었다. 이게 맞는걸까. 아무리 미치광이라고 해도 일단은 우리와 같은 사람인데…….
“하지만 아저씨…… 멀쩡한 사람이라고요.”
“알고 있네. 하지만 은혜보다 소중한 것은 없어.”
“아저씨…….”
변했다. 적어도 내가 알던 아저씨는 남을 함부로 버리거나 죽이는 성격이 아니었다. 갑작스레 기현이의 일이 떠올랐다. 동생이 화를 냈을 때도 은혜를 핑계로 넘겼었지. 아저씨는 은혜의 목숨이 기현이보다 몇 배는 더 가치 있다는 식으로 말했었다. 왠지 모르게 아저씨가 낯설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 같아 마음 한켠이 무거워진다.
"……."
“그럼 우리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보다 못한 김 대위가 나서서 말했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고맙습니다.”
나는 김 대위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인사는 무슨. 민간인들을 구제하는 것이 군인의 목표이기도 하니까.”
“……그래도 저런 아저씨의 모습은 너무 낯설어요.”
“네가 이해해. 민감한 상황에선 자기가 가장 소중히 여기고 싶은걸 우선적으로 하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거야.”
김 대위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리고는 내일 출발할 짐들을 대충 꾸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김 대위를 가만히 보다 아저씨를 보았다. 사람이 저렇게까지 냉철해질 수 있는 걸까. ‘은혜’ 라는 대상 앞에선 모든 걸 포기하며 주저 없이 버릴 수 있는 걸까.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창가 쪽으로 걸어가 담배를 물었다.
“후우…….”
폐에 연기를 담아 천천히 내뱉었다. 몸이 붕 뜬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나?”
어느새 내 곁에 다가온 아저씨가 그렇게 말했다. 거기에 난 적당한 답을 찾을 수 없어 말 없이 담배만 빨아댔다.
“나는 은혜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내놓을 수 있어. 실험실에서 고통 섞인 비명을 지르는 은혜를 보고 결심한 거야. 그리고…… 자네도 알잖나. 은혜의 목숨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저씨 말에 멍해졌다. 잊고 있었다. 은혜가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아아. 입에 물린 담배 끝이 점점 타들어갔다. 나는 담배를 털어낼 생각도 못한 채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나를 이해할거라고 생각하네. 아까 은혜가 흘린 피들을 보며 내 가슴은 오죽했겠는가.”
“…….”
아저씨는 느릿하게 걸어가 김 대위를 거들어주기 시작했다. 언젠가 은혜와 이별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도 이런 감정인데 아저씨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이 짧았다.
어느 정도 정리를 한 아저씨와 김 대위는 창가 쪽으로 다가왔다.
“불침번을 정하지요. 우선 진성이가 먼저 서고 다음은 아저씨께서 해주십시오. 마지막은 제가 서고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시계 바늘은 10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준우 아저씨가 사용했던 의자를 끌어 앉았다. 아저씨와 김 대위는 당구대 위에 누워 일정한 숨소리만 낼 뿐이었다. 어둡고 고요한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휘이잉.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이 얼굴을 간질거렸다. 다른 때 같았으면 춥다고 투정을 부렸겠지만 오늘만큼은 기쁘게 느껴졌다.
“…….”
1시간. 2시간. 3시간이 지나도 졸음이 오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 정신이 말짱했다. 기지개를 펴고 창문 밖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거리가 고요했다.
똑딱. 똑딱. 시계 바늘 소리가 귀에 생생하게 들렸다. 1시였다. 자리에 일어나 아저씨가 잠든 곳으로 다가갔다. 단잠을 자고 있는 아저씨의 얼굴을 보자 깨우기가 미안해졌다.
내가 기웃거리는 것을 알았는지 아저씨가 눈을 떴다.
“아…… 깼어요?”
“그런 걸로 미안해하지 말게. 괜한 것에 연연해 할 필요 없어.”
“네.”
아저씨는 빙긋 웃으며 모포를 치우고 당구대에서 내려왔다. 근데…… 가만?
“아…… 저씨?”
아저씨의 손등 부분이 까맣다. 어두워서 까만 것이 아니라…… 뭔가가 나있었다.
“이거?”
아저씨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털들을 보여주고는 씩 웃었다. 다른 사람이야. 도망쳐야 해. 서서히 아저씨와 거리를 벌리며 떨리는 손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꿀꺽. 숨이 가빠진다. 석궁을 아저씨에게 겨누었다. 아저씨는 두 손을 들며 나에게 걸어왔다.
“어, 어떻게 된 거예요?”
“큭큭. 눈치가 정말 느리구나.”
뼈와 근육이 갈리는 소리가 나면서 아저씨의 모습이 순식간에 변했다. 처음…… 우리를 습격했던 그 우두머리였다. 이럴 수가…… 이럴 수는 없어. 어떻게 이게 가능하다는 거지? 말도 안 돼…….
“놀랐나? 하지만 그럴 필요 없어. 곧 죽게 될 거니까!”
우두머리는 무서운 속도로 나를 향해 달려왔다. 피할 수 없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내 목을 뚫을 것 같았다.
“헉!”
번쩍. 눈이 떠진다.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자 아직 어두운 시간이었다. 시계를 보니 12: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제길…… 꿈이었나? 이마에 흐르는 땀들을 닦아 냈다. 내가 잠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후우…… 꿈에서까지 우두머리를 만날 줄이야.
목을 축이기 위해 냉장고까지 걸어가 차가운 물을 마셨다.
“후우…….”
숨을 크게 내쉬며 다시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제길…….”
그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거리는 평소로 돌아와 있었다. 꿈에서 본 거리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무수히 많은 괴물들이 목적지를 잃어버린 채 돌아다니는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초조한 마음을 숨기고 녀석들의 동태를 천천히 살폈다. 이내 살금살금 걸어가 잠들어 있는 아저씨를 깨웠다. 아저씨는 기계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상황은 어떤가?”
“밖에 녀석들이 있어요.”
“그렇군. 수고했어. 쉬고 있게.”
아저씨는 내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자신의 석궁을 챙겼다. 느릿하게 창가 쪽으로 걸어간 아저씨는 내가 따로 마련해 둔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아 녀석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구대 쪽으로 걸어가 몸을 뉘었다. 살짝 잠이 들었던 탓인지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날이 밝으면 이곳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체력을 아껴둬야만 했다.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어나!”
얼마나 지났을까. 뭔가가 나를 깨우는 것 같다. 꺼져 있던 의식이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뭔가 다급한 사람들의 소리. 뭐지……..
“일어나!”
준우 아저씨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아저씨?”
준우 아저씨는 상기된 얼굴로 나를 강제로 일으키고는 석궁을 쥐어주었다. 얼결에 받아 든 나는 멍한 얼굴로 준우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준우 아저씨는 말없이 출입구 쪽을 가리켰다.
쿵. 쿵. 쿵.
아직 어두웠다. 그렇지만 밖에서 누군가 출입구를 두드려대고 있었다. 주위를 빠르게 둘러보았다. 은혜를 제외하고 모두 일어나 대비를 하고 있었다. 한 팔을 거의 못 쓰는 이 소위는 당구대 위에 앉아 총을 쥐고 있었다. 동생도 그 옆에서 총을 쥔 채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보면 몰라? 녀석들이 왔잖아.”
준우 아저씨는 화살 뭉치를 내밀며 말했다.
“하지만…… 조용히만 있으면 눈치 못 채지 않나요?”
“그게 안 되니까 이러지.”
“네……?”
준우 아저씨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낯선 남자를 가리켰다. 우두머리…… 맞다. 그 녀석이다.
“설마……?”
“저 빌어먹을 녀석이 소리를 쳤다니까. 나 참, 미치고 팔짝 뛰겠네.”
낯선 남자는 은혜를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아저씨 말대로 남자가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은 적지 않은 것이었다.
“창문을 타고 올 것 같지는 않아. 하지만 수가 너무 많아.”
아저씨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총을 사용해야겠군요. 여러 마리가 뭉쳐 있을 땐 화력이 강한 걸로 대체해야 합니다. 진성아, 나 좀 도와줘.”
말을 마친 김 대위는 출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캐비닛으로 뛰어갔다. 나도 재빨리 뛰어가 김 대위가 건네주는 총을 받았다. K-2보다 약간 길고 총신이 얇은 모델이었다. 방아쇠의 위치도 손잡이와 가깝게 되어 있었고, 탄알집이 K-2보다 1.5배는 많아 보였다.
철컥.
두 아저씨는 시원하고 매끄러운 소리를 내며 총을 장전시켰다. 김 대위도 내게 다가와 총을 건네주었다.
"크아아!"
출입구는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다. 임시방편인 여러 장애물로 문을 박았지만 유리로 된 문이라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녀석들이 아직 변신을 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었다.
“가만 보니까 녀석들이 변신을 하고 유지하는 것도 힘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
준우 아저씨는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배고프고 허기진 상태에서는 그게 힘들다는 말이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