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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밖에 나가지 마시오 part.6

익명
2026-10-18 02:31

“그럼…… 저번에 기현이가 왔을 때 왜 그냥 돌려보냈어요? 살릴 수 있었잖아!”

순간 그 말에 머리가 멍해졌다. 잊고 있었던 기현이의 일이 생각났다. 마지막 괴물로 변하면서까지 믿을 수 없는 정신력으로 우리를 도와주던 녀석. 그 기현이가..

[지금 간다면 쏘지 않겠네.]

라고 말했던 아저씨.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현이를 매몰차게 내보냈던 아저씨였다.

“제기랄! 기현이는 괴물이 되어서라도 우리를 지켜주었다고요! 왜 그때 돌려보냈어요! 왜!”

동생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지 씩씩거리며 아저씨를 노려보았다.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잠들어 있는 은혜에게 다가가 자신의 윗옷을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어두운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은혜는 이제 얼마 살지 못하네.”

아저씨의 말에 모두가 숙연해졌다. 버둥거리던 동생도 멍하니 멈춰 섰다.

“얼마 못 살아요……?”

아저씨는 은혜의 고운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은혜의 심장과 골수는 너무 약해서 건강한 피로 걸러내지 못하네. 아까 은혜에게서 뽑아낸 피도 사실 죽어 있는 피라고 봐야해. 임상실험의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지. 사실 많이 고민 했었네. 기현에게 은혜의 피를 줬다면…… 분명 살아있었겠지. 그건 내 잘못이 크네. 이기적인 나를 탓하게. 하지만 더 이상 피를 뽑아낸다면 은혜는 정말 위험해. 지금도 서 있는 게 신기할 정도야.”

아저씨의 말에 모두가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그리곤 물끄러미 잠들어 있는 은혜를 바라보았다. 처음 대문 앞에서 우리를 보며 서있던게 엊그제 같았는데.. 미친 사람으로 치부해버리고 괴물들이 들끓는 길로 매몰차게 몰아내던 나의 행동이 생각났다.

“솔직히 말해서 자네들을 모두 밴에 두고 나 혼자 은혜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어. 자네들까지 치료 하게 된다면 은혜에게 가는 부담이 클 거라는 생각이 들었네. 근데…… 은혜 이 녀석이…….”

아저씨의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도저히 자네들을 두고 갈 수 없다는 거야. 난 괜찮으니까 내 피를 주면 된다고…… 그렇게 주사를 싫어하는 은혜가 말이야. 짧은 시간이지만 자네들을 친구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었어. 정말 기뻤다네.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 정말 뿌듯했지. 그래서 나는 자네들에게 은혜의 피를 나눠 준거고…… 보다시피 우리는 멀쩡하지만 은혜는 더욱 힘들어 진거야.”

그 말에 은혜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 날밤.. 은혜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우리의 냉정이 은혜에게는 얼마나 큰 절망이었을까. 그런 은혜가 지금은 우릴 이렇게 살려준거나 다름 없다.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해줄 말이 없네. 파렴치하게 용서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네."

그렇게 말하며 돌아서는 아저씨를 보며 나와 동생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기현이의 숭고한 희생은 절대 잊지 않으리라.

스스슥.

“?!”

순간 밖에서 나는 소음에 모두가 긴장했다. 이 병원에는 우리 밖에 없는 것 아니었나? 그 소리를 들은 아저씨는 매점 구석진 곳에 있는 야구 방망이와 자잘한 망치 등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었다. 슬픔에 잠겨 있을 여유는 없었다. 놈들은 우리를 노리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는 싸워야했다.

우린 매점 문 옆에서 긴장한 얼굴로 자리를 잡았다. 만약 녀석이 들어오면 지체 없이 망치나 방망이를 휘두를 것이었다. 하루 만에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우리들에게 일말의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스슥. 스스슥.

뭔가가 끌리는 소리였다. 대체 뭐지? 바깥 상황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지만 이 문을 열면 모두가 위험할 수 있다. 마른침을 삼키며 소리가 멀어지기만을 바랐다. 제길…… 나는 이를 악물고 망치를 꽉 쥐었다.

끼이익. 서서히 매점 문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온 것은 젊은 여자였다. 얇은 잠바와 움직이기 편한 운동복과 운동화를 신은 여자는 우리를 보자마자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녀의 손에는 검은 색 비닐봉지가 들려있다.

“사…… 살려주세요.”

여자는 서서히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정상인지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괴물일수도 있다. 인간일 때에는 약간이나마 이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방심해선 안 된다.

“당신 물렸소?”

아저씨는 방망이를 잡고 여자에게 물었다. 여자는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그걸 어떻게 믿지?”

“그…… 그건.”

“그 봉투 안에든 건 뭐요?”

여자는 화들짝 놀라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뒤로 물러나시오. 안에 뭐가 들었는지 확인 할 테니 만약…… 우리가 생각하던 그런 것이 들어 있다면 지체 없이 당신 머리를 부셔 버릴 것이오.”

여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우 아저씨와 동생은 여자 앞을 막아섰고 나와 아저씨는 천천히 비닐봉지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기 위해 바닥에 쏟아 냈다.

“으음……”

보기 민망한 속옷들과 여분의 옷, 그리고 신사임당이 그려진 돈 다발이 잔뜩 나왔다. 아저씨는 돈 다발 중 하나를 한 곳으로 휙 던져버렸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돈이 뭐가 필요하다고 들고 다니시오?”

“이…… 인간의 욕심이란 게 그렇잖아요. 당신들은 몰라요. 쓸 수 없어도 갖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요.”

“그나저나 당신이 정상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거지?”

“그, 그건…….”

여자는 선뜻 말하지 못했다.

“벗겨요.”

동생의 말에 여자는 놀란 얼굴로 슬슬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생의 말대로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 타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옷을 강제로 벗긴다는 일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저번 기현이 때에도 털은 없었잖아.”

“지금은 다를 수도 있잖아.”

“시…… 싫어요.”

여자는 강하게 부정하며 주사실 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묘한 대치 상황이었다.

“저 아줌마 착해.”

그때 은혜가 끼어들며 말했다.

“아, 그렇지.”

잊고 있었다. 은혜가 괴물들을 탐지해낸다는 것을…… 그제야 안심한 우리들은 무기를 멀리 던져 버리고 여자에게 손짓을 했다.

“미안하오. 우리가 워낙 예민해진 상태라…… 어제 괴물들의 습격을 받았었거든.”

아저씨는 잔뜩 긴장한 여자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전 여기서 계속 숨어 지냈어요. 이 봉투를 숨기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우연히 당신들을 발견한 거고요.”

여자는 아저씨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정말 미안하게 됐소. 초면에 실례가 많았어.”

“아니에요. 일단 서로 오해가 풀렸으니 그걸로 된 거죠.”

다행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인을 만나게 되다니. 모두 괴물들로 점령당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돌아다니는 생존자가 있었구나.

꼬르륵. 난데없는 소리에 우리의 시선이 주목되자 여자는 홍당무가 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사실 이틀 동안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어요.”

“그럼 아가씨를 위해 이 매점을 빌려드리리다.”

장난 섞인 아저씨의 말에 여자는 작게 웃었다.

“꼬르륵 꼬르륵.”

은혜는 같은 말을 되풀이 하며 여자를 따라갔다.

“푸하하하.”

오랜만에 큰 소리로 웃으며 주변을 정리했다. 나와 동생은 1층을 돌아다니며 모든 출입구나 창문을 단단히 잠갔고,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는 2층으로 올라가 우리와 같은 작업을 했다. 생각보다 병원이 넓어서 모든 출입구를 봉쇄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얼마 정도의 작업을 마친 우리들은 다시 접수 데스크로 모였다.

“여기서는 오래 머물 수 없겠어. 병원이 너무 넓어서 녀석들이 오기라도 하면 막기가 힘들어. 숨을 장소도 마땅치 않고. 내일 아침 일찍 여기를 떠나지.”

아저씨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잊고 있었던 여자와 은혜가 생각난 우리들은 매점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여자는 은혜와 같이 앉아 빵과 우유를 나눠 먹고 있었다.

“아가씨는 이름이 뭐요?”

“서민정이요.”

“서민정…… 좋은 이름이구만.”

민정은 우리들을 쭉 훑어 봤다. 아저씨는 요령 있게 한 사람 한 사람씩 소개시켜주었다.

“저기 쌍둥이 형제는 이진성과 이진우고, 그 옆은 준우씨, 그리고 난 그냥 아저씨라고 부르게. 민정씨 앞에 앉은 이 귀여운 아가씨는 은혜고. 민정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지?”

“28살이요.”

“으음. 그럼 민정씨가 쌍둥이 형제보다 나이가 많군. 앞으로 잘 지내게.”

나와 눈이 마주친 누나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특별히 못난 외모는 아니었지만 눈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거기다 윤기가 흐르는 머릿결이 누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 같았다.

“아~”

은혜가 입을 벌리며 소리를 내자 누나는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 빵 한 조각을 입에 넣어주었다.

“사실 은혜는 정신지체아라네. 자네를 잘 따르는 것 같아서 보기가 좋아.”

“정말요? 이렇게 예쁜 아이가 어쩌다가…….”

누나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은혜를 바라보았다. 은혜는 누나를 보며 살짝 웃어주고는 매점에 있는 창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우리의 시선도 은혜를 따라갔다. 은혜는 양손을 창문 위에 올리고 가만히 서 있었다.

“은혜야…… 뭐가 오니?”

아저씨는 은혜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온다. 와…….”

은혜는 앞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 상황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그나마 나았지만 누난 그렇지 않은 듯 초조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벌써 이렇게 됐군.."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녀석들이 활동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 아닌가?

창밖을 보며 잠깐 상념에 잠기자 은혜가 다시 경고를 보냈다. 그 말에 더 지체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준비를 해야만 했다.

"각자 정한 위치로 돌아가자구."

우리는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서로의 눈빛만 보아도 무엇을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이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는 민정 누나는 초조한 표정으로 은혜에게 다가갔다. 나는 매점에서 나와 입구를 막고 있는 아저씨들을 도왔다.

“녀석들이 우리를 발견하지만 않으면 되네. 낮에는 시각으로 판별하지만 그 범위가 매우 좁아서 활동이 적어. 하지만 밤에는 오감에 의존해서 활동량이 넓어지게 되지. 밤에 소리가 더 멀리 퍼지는 것은 알고 있지?”

우리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원 입구를 단단히 봉쇄시켰다.

“아까 봤던 그 주사실로 들어가게. 은혜와 민정씨를 데리고 가겠네.”

아저씨는 매점 쪽으로 뛰어갔고, 우리들은 주사실로 향했다.

우리는 각자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 느릿하게 호흡을 맞추었다. 주사실 안의 공기가 상당히 텁텁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늘어서 그런 건가? 아님 내가 예민해져서 그런 건가?

“여기 좀 답답하지 않아요?”

“그러게. 아깐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준우 아저씨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주사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아저씨가 올 시간이 지났는데 왜 안 오실까. 매점에서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2분도 걸리지 않는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조바심이 생긴 나는 살짝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

상태가 심상치 않은 두 남자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목과 팔이 온통 검은 털로 뒤덮여 있었다. 준우 아저씨와 동생도 녀석들을 발견하고는 표정을 굳혔다.

“제길…….”

중얼거린 소리가 너무 큰 탓일까. 문득 한 녀석이 고개를 휙 돌렸다.

“허업.”

헛바람을 들이킨 우리 세 사람은 문을 살며시 닫았다. 최악의 사태까지 염두 해야만 했다. 여차하면 녀석들을 덮쳐서 위험을 차단해야만 했다.

“1층하고 2층 모두 점검했잖아?”

준우 아저씨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우리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녀석들은 그 위에서 내려왔다는 건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서?

“흐으…… 흐으.”

어느새 문 앞까지 다가온 녀석의 거친 숨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제발 돌아가기만을 바라며 몸에 힘을 실었다.

터덜. 터덜.

우리의 바람이 닿았는지 녀석의 힘없는 발소리가 점차 멀어져갔다. '후우..'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안도의 숨을 내뱉으며 식은땀을 닦았다. 다시 살짝 문을 열어 녀석들을 감시했다. 다행히 녀석들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기만 했다.

띵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고요한 침묵이 흐르는 탓에 그 작은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이내 엘리베이터에 오른 녀석들은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직 남아 있는 최소한의 지성으로 시설들을 이용하는 것 같아요.”

동생은 사라진 녀석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응. 전혀 방심할 수 없겠어…….”

우리는 5분 뒤에 문을 열고 나왔다. 매점에 있는 아저씨와 민정 누나, 은혜에게 아무 일이 없길 바라며 천천히 걸어갔다. 어느 정도 걷자 매점 문이 열리며 모두가 나왔다.

“소름 돋네요. 인간일 때도 무시하면 안 되겠어요.”

“병원이 너무 넓어서 1층과 2층만 체크한 것이 화근이 될 줄은 몰랐네요.”

“바꿔 말하면 우리가 숨을 공간도 많다는 소리예요.”

민정 누나 말에 우린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녀석들이 기구를 이용하면서 다닌다면 우리는 병실이나 기타 공간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숨으면 된다.

“그러고 보니 민정씨.”

아저씨는 엘리베이터 층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혼자서 잘 버텨온 거 보니 따로 숨는 공간이라도 있나 보군?”

“네. 4층 탈의실이 있는데 거기에 있는 커다란 서랍장에서 숨어 지냈어요. 그럼 괴물들도 저를 발견하지 못 하더라구요.”

“4층이라…… 흐음.”

아저씨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층계를 바라보았다. 여기는 1층이다. 4층까지 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이용하거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했다. 해도 벌써 반 이상이 지고 있었다. 밖에 나가기에는 위험한 시간이었다.

“제가 계단을 보고 올게요.”

묵묵히 서 있던 동생은 왼쪽 계단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나도 같이가.' 준우 아저씨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동생의 뒤를 따랐다.

“형님, 아까 전엔 불이 다 켜져 있었죠?”

잠시 후 다시 내려온 준우 아저씨는 찝찝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지.”

“근데 지금은 불이 다 꺼져 있네요.”

“그래?”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녀석들이 내려오면서 층계에 있는 불을 끄고 있나 보군.”

“하지만 우리가 처음 들어 왔을 때에는 불이 다 켜져 있었잖아요.”

동생의 말에 우리 모두 생각에 잠겼다. 누군가 이 병원에 있다는 건가?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누군가가 살고 있을 걸까요?”

“그럴 수도 있어. 괴물 녀석들이 설사 불을 껐다고 해도 다시 불을 키지는 않았을 거야. 괴물들이 정신 나가지 않은 이상 밝은 곳을 좋아할 리는 없네. 민정씨, 뭐 아는 거 없나?”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나 민정 누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누나 역시 혼자서 살아오기가 빠듯한 탓에 그런 사소한 것들에 일일이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띵동. 작은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우리는 자동적으로 무기를 꽉 쥐었다.

“흐으……”

“……어우.”

아까 보았던 두 마리의 괴물 녀석이 우리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이내 두 눈을 붉게 밝히며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워어!”

다행히 사람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두 놈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아저씨는 먼저 달려오는 괴물의 머리를 날려 버렸고, 우리는 쓰러진 괴물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아저씨는 이어 다른 괴물을 쓰러트렸고 우리는 같은 방법으로 마무리했다.

살이 부셔지고 뼈가 깨지는 소리에 민정 누나는 고개를 돌려 버렸고 은혜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와 준우 아저씨는 두 시체의 발목을 잡고 질질 끌어 주사실에 놓고 다시 엘리베이터 앞으로 왔다. 검붉은 피가 복도에 길게 그어져 있었다. 엘리베이터나 우리의 옷에도 검붉은 피들이 튀어 있었다.

“쇼핑 좀 해야겠군.”

아저씨의 말에 우리의 옷에 눈이 갔다.

“일단 오늘 밤을 무사히 넘겨야겠어요. 형님.”

“으음…… 민정씨가 말한 대로 4층으로 가보지. 민정씨, 탈의실 위치는 어디지?”

“엘리베이터에서 바로 내린 다음에 왼쪽으로 열 발자국정도 걸어가면 돼요.”

민정 누나는 창백한 표정으로 아저씨에게 말했다. 나는 누나가 안쓰러웠지만 특별한 위로의 말을 하지는 않았다. 살아가려면 이 정도는 충분히 감수해야만 했다.

“그럼 가지.”

아저씨의 말에 우리 모두 엘리베이터에 올라 4층 버튼을 눌렀다.

서서히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이잉-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혹여 멈추지 않을까 하고 마음을 졸였다. 2층…… 3층.

띵동.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의 목적지와는 전혀 다른 곳에 멈췄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버튼을 눌렀다는 소리인데.. 필시 괴물이 분명했다.

“한 번에 덮치는 거야.”

그 말에 우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완전히 문이 열리자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 외소한 체격의 남자였지만 몸 군데군데 보이는 맨살은 그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하게 했다.

“흐악!”

남자는 우리를 보고 놀랐는지 덜덜 떨며 뒷걸음질을 쳤다.

“은혜야, 나쁜 사람이니?”

나는 등 뒤에 서 있는 은혜에게 물었다.

“으응.”

은혜를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저 남자도 민정 누나와 마찬가지로 여기서 숨어 지내는 사람이라는 건가? 은혜가 안전하다는 판단을 하자 우리는 얘기치 않게 3층에서 내렸다. 예상외로 생존자를 많이 만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아저씨는 방망이를 슬쩍 내려놓고 남자에게 다가갔다.

“미안하오. 세상이 이렇게 굴러가니 저절로 의심하는 병이 생겨버렸소.”

“괴물들한테 쫓겨 살기도 바쁜데, 사람들한테까지 맞아죽는 건 아닌지 의심했어요. 아무튼 반갑습니다.”

남자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준우 아저씨와 동년배로 보이는 남자는 나와 비슷하게 순한 인상을 가졌다. 아저씨는 오른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남자도 그 손을 잡으며 가볍게 흔들었다.

“반갑소. 여기 이 사람들은 우리와 같이 다니는 동료고, 저 뒤에 있는 아가씨는 오늘 당신처럼 이곳에서 만났소.”

아저씨가 간단히 우리를 소개시켜주었다. 그러나 남자는 썩 기뻐하지 않았다. 그것을 숨기려고 최대한 노력하긴 했지만 나와 동생의 눈에는 그것이 훤히 보였다. 취미 삼아 읽어본 심리 논문이나 책들이 이런 곳에서 도움이 될 줄이야.

“전 송창민이라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이 병원에서 숨어 지내고 있죠.”

“그동안 어떻게 숨어서 지내셨소? 3층…… 이곳은 상당히 트인 공간이 많은데.”

아저씨의 말처럼 3층은 1층과는 다르게 커다란 헬스장이나 재활치료실이 전부였다. 여기에 숨을 곳이 있는 건가?

“있다…….”

은혜는 작게 중얼거리며 재활치료실로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은혜의 행동에 놀란 우리는 은혜를 따라갔다. 그러나 창민 아저씨가 비장한 표정으로 우리 앞을 막아섰다.

“왜 그러시오?”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여, 여긴.”

창민 아저씨의 행동에 우리들의 의심이 증폭되어 갔다.

“창민씨, 당신이 우리 모두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왜 그러는지 이유나 설명해 보시오. 더군다나 저기엔 우리 은혜가 있으니까.”

아저씨는 굳게 닫힌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창민 아저씨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얼마나 기구한 사연이 길래 저러는 걸까. 우리는 차분하게 창민 아저씨를 기다려주었다.

“지금부터 보게 되는 광경에 절대 놀라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십시오.”

창민 아저씨는 결심한 듯 옆으로 비켜서며 말했다.

“알겠소.”

“알았어요.”

그렇게 건성으로 대답한 우리는 창민 아저씨를 따라 재활치료실로 들어갔다.

딸칵. 창민 아저씨가 스위치를 누르자 재활치료실에 불이 들어왔다. 우리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정 가운데로 몰렸다.

“이런…….”

아저씨는 신음을 내뱉으며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커다랗고 단단한 플라스틱 통 안에 1~2살이 된 아기가 버둥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아기의 몸에 다닥다닥 붙은 검은 털들은 평범한 아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캬아악!”

은혜는 그 통 앞에 쭈그리고 앉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그럴 때마다 아기는 괴성을 지르며 양손을 마구 휘저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요?”

“휴…….”

창민 아저씨는 한숨을 쉬기만 할뿐 아무 말이 없었다. 아저씨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창민 아저씨에게 권했다. 조심스레 담배를 받아든 창민 아저씨는 두 서번 깊게 빨고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처음 아내가 임신했을 땐……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어요. 아내 뱃속에 자라나는 어린 생명이 태어나 걷고…… 나를 보며 아빠라고 부를 것 같은 환상에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냈죠. 벌써 아기 이름까지도 생각하고 아기가 미리 입을 옷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사두었죠. 그런데…….”

창민 아저씨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담배를 빨았다.

“그 빌어먹을 날이 아직도 잊혀 지지가 않아요. 아기가 태어나기 전이라 매사에 조심스럽게 행동했어요. 근데 그날따라 아내가 계속 배가 고프다고 하는 거예요. 고기가 먹고 싶다고…… 그래서 우린 집 근처에 있는 갈비 집으로 갔죠. 저녁 늦게…… 갈비를 시키고 불에 구우려고 하는 순간 아내가 생고기를 뜯어먹기 시작했어요. 당연히 사람들의 시선이 주목되었죠. 너무 당황스럽고 무서워서 아내를 멍하니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저는 보았어요. 아내의 팔과 다리에서 급속도로 돋아나는 그 검은 털들을…….”

“캬아아!”

아기의 포효소리가 적막을 채웠다. 창민 아저씨는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정신을 잃은 것 같았어요. 너무 놀라서 그랬나 봐요. 다음 날 눈을 떠보니 가게 안의 사람들은 모조리 죽어 있었어요. 짐승에게 당한 것처럼…… 살들이 모조리 뜯겨 있었죠.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은 저와 정신을 잃은 아내. 그리고 뱃속에 있는 아기였어요. 떨리는 마음으로 아내를 이리저리 훑어보았죠. 그날 본 것이 제발 헛것이기를 바라면서요.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아내의 발은 사람의 발이 아니었어요.”

“캬아아아!”

“그러다 진통이 시작된 거죠. 아내가 갑자기 눈을 뜨더니 배가 아프다고 저에게 죽는 소리를 하는 거예요. 저는 너무 당황해서 전날 아내가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일들을 뒤로 한 채 택시를 타고 급히 이 병원으로 오게 되었어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분만실로 아내가 들어가는 것을 끝으로 5~6시간을 보지 못했어요.”

“캬아아아!”

민정 누나는 은혜에게 다가가 이쪽으로 데리고 왔다. 캬르르. 먹잇감이 점점 멀어지자 아기는 마지막 포효를 뱉었다. 그런 아기를 애처로운 눈길로 보던 창민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아내의 고통 섞인 신음소리 끝에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저는 안도감보다 두려움이 더 컸어요. 아내가 언제 그 괴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벌벌 떨면서 문 앞을 서성였죠. 분만실 문이 열리고 의사와 간호사가 저를 보며 웃으면서 말하는 거예요. 딸이라고…… 전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죠. 근데 갑자기 분만실에서 포효소리가 나는 거예요. 저는 직감적으로 아내라는 것을 알아채고 분만실 안으로 들어갔죠.”

아기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유리 표면을 핥아댔다. 우리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모두가 비명을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아내는 이미 괴물로 변해 그곳에 있는 간호사들을 무차별로 유린하게 시작했어요. 저는 갑자기 변해 버린 아내가 무서워서 한쪽에 놓인 아기를 들고 무작정 뛰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병원 안에는 이미 괴물들의 공격이 시작이 된 후였죠.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사람이 괴물들한테 뜯기건 말건…… 목이 날아가건 말건…… 그냥 앞만 보고 달렸어요. 근데 달리면서 이상한 점이…… 괴물들이 저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저씨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그게 아기 때문인지는 꿈에도 모른 채 3층에 있는 재활치료실로 들어 왔어요. 다행히 안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저는 치료실 구석에 있는 헝겊 같은 걸로 아기의 몸을 닦아주었죠. 아기가 상당히 씩씩했어요. 그런 충격을 받고서도 씩씩하게 숨을 쉬었죠. 근데…… 아기 등에 자란 털들이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창민 아저씨는 울음을 삼키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아기 눈을 보았죠. 대개 갓 태어난 아기들은 제대로 눈도 못 뜨잖아요? 근데 이 아기는 붉은 색의 눈으로 저를 보며 웃고 있었어요. 소름이 돋았죠. 그리고 느꼈어요. 괴물들이 저를 공격을 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아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저는 쉽게 부숴 지지 않는 커다란 통에 아기를 가둬두고 지내기 시작했어요. 가끔 괴물들이 이곳에 들어와도 사각지대에 숨어 버리면 자신의 동료가 안에 있다고 인식했는지 그대로 나가버리더군요. 그런 식으로……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럼 아기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나?”

“아뇨…… 가끔 생고기를 구해서 줬어요.”

그렇게 말한 창민 아저씨의 눈에는 애정이 깃들어 있었다. 아무리 괴물이라고는 하지만 일단은 자식으로 인정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저 아기는 이제 우리와 다른 삶을 살아야만 했다. 나중에 크면 우리들에게 해를 가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

그러나 영락없는 아기의 모습에 우리들은 머뭇거렸다. 그런 우리들의 심정을 눈치 채고 있었는지 창민 아저씨는 무릎을 꿇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이에요. 제발……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세요.”

“…….”

어떻게 해야 하지? 괴물이긴 하지만 창민 아저씨에게 남은 유일한 혈육이었다. 허나 아저씨는 굳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는 안 되네. 아직 어리다고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르는 일이야.”

아저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창민 아저씨는 절박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냉정하게 생각하게. 5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아기는 치료되지 않아. 그때까지 고기를 주면서 저런 식으로 사육할건가? 그게 정녕 옳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지만 제 생에 가진 첫 자식입니다…….”

우리는 씁쓸한 마음으로 창민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내가 은혜처럼 능력을 가졌더라면…… 아저씨처럼 저렇게 차가운 말들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우린 이미 해결 책을 알고 있음에도 그걸 당당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저 아저씨의 입장이었다면..

“아기와 작별인사를 해두게. 이미 다른 세상에 사는 존재야. 자네와 어울릴 수 없어.”

아저씨는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크흑…… 크윽.”

창민 아저씨는 눈물로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는 대성통곡을 하는 창민 아저씨를 뒤로 하고 통 앞으로 걸어갔다. 아기는 날카로운 이빨을 세우며 우리들을 위협했다.

“정말…… 크흑. 그렇게 하시겠다면…… 크흑. 저도 죽겠습니다.”

창민 아저씨는 우리를 막아서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창민 아저씨를 보기만 했다. 남의 일이긴 하지만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

“고집부리지 말게. 언제까지 붙들고 지낼 건가? 살 사람은 살아야지. 그게 세상의 이치야. 물러나게. 그리고 우리와 같이 가지. 그게 당신에게도 좋은 일이야.”

아저씨의 완강한 태도에 창민 아저씨는 한숨을 푹 쉬고 통을 열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작은 아기가 튀어나와 창민 아저씨의 허벅지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살이 찢어지고 피가 튀는 광경이 눈앞에서 생생히 펼쳐졌다. 너무나 갑작스레 일어난 광경에 우린 경악에 휩싸여 당장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이…… 이렇게 된 거 저와 같이 주…… 죽이십시오.”

창민 아저씨는 고통을 참아내며 말했다. 망치를 잡은 손에 힘이 풀렸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왜 이런 일들이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왜 이런 시련이 생기는 걸까.

찌익. 쩝쩝. 찌익. 쩝.

어느새 검은 털로 뒤덮인 작은 괴물은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입 안 가득 차있는 살점들이 유일하게 남은 자신의 아버지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괴물은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지으며 정신없이 살점들을 뜯기 시작한다.

“잘 가게.”

아저씨는 머뭇거림 없이 방망이를 크게 휘둘러 괴물의 두개골을 그대고 부쉈다.

“캬악!”

괴물은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그대로 널브러졌다. 창민 아저씨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다리로 비틀거리다 괴물 옆에 쓰러졌다. 이내 창민 아저씨는 검은 털로 뒤덮인 괴물을 가슴에 안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끄으윽. 으아아아!”

소리를 지르던 창민 아저씨의 몸에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빠른 변화였다. 우리는 긴장한 자세로 무기를 꽉 쥐었다.

“제발…… 제가 인간일 때 죽여주십시오. 그게 저를 위한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창민 아저씨는 투명한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나는 선뜻 망치를 휘두를 수 없었다. 하지만 아저씨는 달랐다. 곧 허공을 가르는 매서운 바람 소리와 함께 ‘빠각’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창민 아저씨의 몸이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

깨끗했던 재활치료실이 검붉은 피로 뒤덮였다. 우리는 흘러가는 피를 멍하니 보기만 할 뿐 움직이지 못했다. 아직도 작은 괴물이 창민 아저씨의 허벅지를 뜯어 먹는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오늘 우리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한 명의 아버지를 죽인 셈이었다.

“가지…….”

아저씨는 치료실을 나가며 말했다. 손에 들린 방망이에서는 아직도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자꾸만 창민 아저씨와 아기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이런 거…… 도저히 적응이 안 되겠어.”

준우 아저씨는 힘없이 말하며 나갔다. 우리도 그 뒤를 따랐다.

“한층만…… 더 올라가면 돼.”

아저씨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괴물이 아닌 사람을 죽인 것은 아저씨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계단은 어두우니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병원의 계단이나 내부는 온통 깜깜했다. 창민 아저씨와의 조우가 상당히 길어진 탓에 밖은 이미 어두웠다.

“그…… 그냥. 치료실로 가요. 저기라면…….”

민정 누나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하지만 우리는 치료실로 이동할 마음이 없었다. 죽은 사람…… 창민 아저씨를 이용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최소한의 예의마저 지키지 않는다면 녀석들과 다를 게 없었다.

“…….”

우리가 움직이지 않자 민정 누나도 조용히 침묵했다. 아저씨는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

스르르.

천천히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밝은 조명에 넓은 엘리베이터 안이 유난히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차례대로 안에 탑승한 우리들은 4층 버튼을 눌렀다.

띵동. 다 왔다. 이제 무사히 탈의실로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오늘 밤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다행히 녀석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은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럼 여기는 안전하다는 소리였다. 천천히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민정누나의 뒤를 따랐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세 발자국. 얼마 남지 않았어. 이대로 가기만 하면 돼.

띵동.

“!”

잊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두 개라는 것을…… 그리고 녀석들은 그것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엘리베이터의 기계음이 들리자 우리는 동시에 멈춰 섰다. 빨리 판단을 내려야 했다.

“민정씨. 은혜를 데리고 먼저 숨어 있어.”

아저씨는 방망이를 꽉 쥐며 말했다.

“예? 여러분들은…….”

“시간이 없어. 어서!”

민정 누나는 울상이 된 얼굴로 은혜를 데리고 뛰어갔다. 우리 모두 탈의실로 뛰어가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심장이 점차 빠르게 뛰고 호흡이 빨라졌다.

“…….”

고요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괴물이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된다.

“흐으…….”

이런 나의 바람을 무참히 밟기라도 하듯 누군가 꾸물거리며 나왔다. 환자복을 입은 노인이었지만 온 몸에 돋아난 털들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를 향해 다가오던 노인은 신음소리를 내며 괴물로 변하기 시작했다.

“끄으으. 끄으.”

노인은 고통스러운지 머리를 부여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본능을 억제하고 있어. 공격할 기회는 지금 뿐이야.”

아저씨는 다급하게 말하며 노인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도 뒤따랐다.

“크아아!”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아저씨가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아저씨는 굳게 닫힌 엘리베이터에 부딪혀 일어나지 못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공격은 이어져야만 했다. 살기 위해서는 괴물을 없애야 했다.

“크르르.”

괴물의 손이 기형적으로 꺾인걸 보면 아저씨가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하아!”

준우 아저씨는 손에 든 망치를 괴물의 얼굴에 던졌다. 그것을 멍하니 보던 괴물은 망치에 얼굴을 가격 당했다.

“크아아아!”

괴물은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지르며 준우 아저씨에게 오른 손을 뻗었다. 하지만 아저씨의 일격으로 손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준우 아저씨는 방망이를 굳게 잡고 괴물의 아킬레스건을 힘껏 내려쳤다.

“크아아!”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괴물은 무릎을 꿇었다. 기회는 지금 뿐이었다. 나와 동생은 녀석의 정수리에 망치를 힘껏 내리쳤다.

빠직. 빠각.

괴물은 신음 소리를 뱉으며 엉금엉금 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괴물을 놓아줄 생각은 없었다.

“끄으으. 끄으.”

고통스러워하는 괴물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이내 몸을 잠시 부르르 떨더니 서서히 멈추었다

“하아…… 하아. 미친.”

속이 울렁거리고 손이 떨렸다. 살이 찢기고 뼈를 부러트리는 감촉과 발악하는 괴물의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제길…… 이제는 익숙해져야 해.

“……잘했어.”

준우 아저씨는 아저씨의 양 다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나와 동생도 각각 한 팔씩 쥐고 탈의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언제 괴물들이 들이닥칠지 몰라 서둘러야 했다.

끼이익.

낮은 마찰소리와 함께 탈의실로 들어가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세로로 된 커다란 캐비닛들이 벽 쪽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아저씨를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환한 달빛이 아저씨의 파리한 안색을 비쳐주었다. 우리는 식음 땀을 흘리며 그 옆 빈 공간에 앉았다.

그 때 캐비닛 문 하나가 열리더니 민정 누나와 은혜가 뛰쳐나왔다. 누나는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안겨 들었다.

“흐어엉. 다 죽는 줄 알았어.”

서럽게 우는 누나의 작은 등을 말없이 두드려주었다.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맘을 졸이며 캐비닛에서 살아왔을까…….

“험험. 분위기 깨서 미안한데 일단 형님 상태를 보자고.”

준우 아저씨 말에 민정 누나는 쭈뼛거리며 내게서 떨어졌다. 나는 누나에게 가볍게 웃어 주었다. 준우 아저씨는 아저씨가 입고 있던 남방의 단추를 풀었다. 나와 동생은 팔과 다리를 각각 맡아 이상이 있는지 체크했다. 다행히 이상은 없었다.

“왼쪽 옆구리가 심하게 멍이 든 것을 제외하고는 괜찮은 것 같네…….”

아저씨의 몸은 상당히 탄탄했다. 40대의 몸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근육질의 몸이었다. 연구소에 있을 때 얼마나 많은 수련들을 했던 걸가. 아마 괴물의 일격을 내가 맞았더라면 아저씨처럼 멍으로 끝나진 않았을 것이다.

“이제 캐비닛에서 쉬도록 하자고. 먼저 형님부터 옮길 테니 도와줘.”

우린 넓은 캐비닛 문을 열고 아저씨를 앉혔다. 고개가 숙여지지 않게 등과 고개를 캐비닛 쪽에 기대게 해주었다. 천천히 문을 닫고 우리도 각자 아무 캐비닛에 들어갔다.

“으차.”

캐비닛 안이 의외로 넓어서 밤을 지내기에는 크게 불편함이 없을 것 같았다.

“후우…….”

많은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결국 등과 머리를 캐비닛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쭈그린 상태에서 밤을 보내야하지만 오늘을 무사히 넘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밤을 보내는 것이 점점 두려워진다. 과연 우리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

소곤소곤.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자 사방이 캄캄한 어둠이었다. 그제야 몸을 구부린 상태에서 잠을 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맞다. 여기는 캐비닛 안이었지. 간신히 발을 뻗어 캐비닛의 문을 열었다. 환하고 눈부신 태양이 눈을 따갑게 했다.

“일어났어?”

넓은 정자 위에 앉아 있던 민정 누나가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은혜도 그 옆에 앉아 있었다.

“네…… 어?”

밤새 구부려 잔 탓에 다리에 힘이 없었다. 다리 근육들이 괴로운 비명을 지르는 것이 느껴졌다. 힘없이 기어 나와 정자 위에 간신히 몸을 뉘었다. 하반신이 마비된 것처럼 아무 감각이 없었다.

“처음엔 다 그래.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민정 누나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요?”

“모두 매점으로 갔어. 먹을 것 좀 구해온다고 해서.”

아아. 아침은 이렇게 평온하구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깨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오늘에야 깨닫게 됐다.

“읏샤.”

“벌써 일어나게? 다리 저릴 텐데.”

“돌아다니면 좀 빨리 나아질 거 같아서요.”

탈의실 문을 열고 4층 복도로 나왔다.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괴물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들이 치운 건가? 4층을 둘러보자 직원실과 휴게실 테라스가 있었다. 테라스는 유리로 된 창으로 되어 있어서 여기서도 바깥이 보였다.

이번엔 테라스의 문을 열고 조금 걸어갔다. 중앙 쪽에는 커다란 재떨이 통이 놓여 있었다. 통을 지나 가슴 높이의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1층에 있는 약국, 편의점, 커피 전문점 등이 보였다.

“야. 밥 먹어.”

언제 들어왔는지 동생이 고개만 살짝 내밀며 말했다. 나는 대충 아래를 더 훑어보고는 탈의실로 향했다. 곧 문을 열자 미각을 자극하는 냄새가 퍼졌다. 구수한 냄새. 이건 마치…….

“혹시 된장국이에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묻자 아저씨는 선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괴물의 일격으로 정신을 잃은 것 치고는 너무 멀쩡해보였다.

“매점에 이것저것 쓸 만한 게 많더군. 이래서 전자레인지가 참 좋아.”

포장용 된장찌개였지만 그래도 좋았다. 매일 빵과 우유로 허기를 달래는 일보다 따스한 밥을 먹는 것이 백배는 나으니까.

“자, 진우가 수저 좀 나눠주고 준우씨는 젓가락을 나눠줘. 민정씨는 여기 포장 김치 좀 세팅 해주고.”

꽤 일사분란하게 아침 식사 준비가 완료 되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포장용 된장찌개가 식욕을 당겼다. 게다가 그 옆에 놓인 김장김치가 침샘을 자극했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시작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를 드리고…… 먹도록 하지.”

우리는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자신의 손에 들린 밥을 먹었다. 구수한 된장찌개와 입맛을 돋우는 매콤한 김치가 몸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다. 그러나 아저씨는 은혜부터 먼저 챙기느라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다. 제일 먼저 식사를 마친 우리 형제와 준우 아저씨는 뒷정리를 하며 은혜를 챙겨주었다. 아저씨는 그제야 식사를 시작했다.

“와, 정말 얼마 만에 이렇게 먹는 건지 모르겠어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맛있네요.”

준우 아저씨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민정 누나는 손가락으로 준우 아저씨의 치아를 가리켰다.

“오빠…… 이빨에 고춧가루 꼈어요.”

“응?”

“더러워.”

밥을 오물거리던 은혜는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푸하하하.”

“호호호.”

그 말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우리 은혜가 인상을 쓸 정도면 상태가 심각한 걸? 양치라도 하고 오게.”

아저씨도 어느새 밥을 다 비우고는 준우 아저씨의 등을 두드렸다. 준우 아저씨는 한숨을 쉬고 터덜터덜 걸어 나갔다. 상대적으로 밥 먹는 속도가 느린 민정 누나와 은혜는 우리가 세안을 다 하고 나서야 식사를 마쳤다.

“민정씨도 씻고 와. 곧 출발할거니까.”

“네.”

우리들은 테라스로 걸어가 담배를 피웠다. 그리곤 후에 대한 일을 간단히 도모하기로 했다. 아저씨는 깊은 연기를 내쉬며 말했다.

“우선 물과 기름이 충분히 있어야해. 최소한의 허기를 때울 초코바나 빵을 챙겨가야겠군. 마침 저기 편의점이 있군 그래. 주유소는 이 상가에서 거의 끄트머리 쪽에 있으니 거기로 가면 되고…….”

아저씨는 편의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준우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산으로 가는 거죠. 형님?”

“……그래야지.”

똑똑. 세안을 마친 민정 누나와 은혜가 유리문을 두드렸다. 우리는 테라스 문을 열고 다 같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아, 혹시 어제 그 괴물 녀석 시체 다른 데로 치우셨어요?”

나는 아저씨들과 동생을 보며 물었다.

“응? 아니.”

준우 아저씨와 동생은 고개를 저었다.

“형님이 하셨어요?”

“그건 나도 모르는 일인데…….”

“…….”

그럼 누가 괴물의 시체를 치웠다는 거지? 우리 중에 그것을 건드린 사람이 없다면……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서둘러야겠어.”

결론은 하나였다. 죽어버린 괴물의 시체를 다른 녀석들이 와서 먹었다는 것. 소름이 돋았다. 안전한 곳은 정말 어디에도 없는 걸까.

띵동. 1층에 도착하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스르르 열렸다.

“일단 지금은 아침이니까 침착하자고.”

준우 아저씨는 앞으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 우리도 그 뒤를 따랐다. 밴에 모두 올라탄 것을 확인한 아저씨는 시동을 걸었다.

“우선 편의점이랑 주유소에 들려야 해.”

아까 봐두었던 대로 골목길 사이사이를 지나 편의점으로 갔다. 민정 누나와 은혜는 차에 남겨두고 우리들만 내렸다. 고요한 시내 한복판.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녀석들을 생각하며 편의점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크윽..' 피비린내가 후각을 자극했지만 다행히 괴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최대한 많이 챙기게.”

아저씨 말에 우리는 각자 흩어져 맡은 물건들을 밴의 트렁크 쪽에 모조리 실어 날랐다.

“아저씨. 이제 옷 좀 바꿔야겠어요. 총은 구하기 어려울 거 같고…….”

아저씨는 내 말에 공감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아저씨가 갖고 있는 단단한 방망이를 제외하고는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망치가 있긴 하지만 사정거리가 긴 것들을 구해야만 했다.

“진성이가 말 잘했네. 우선 주유소에 들리고 가까운 백화점이나 마트에 들리도록 하지. 시간이 없으니까 최대한 서둘러야 해.”

아직 오전이지만 이것저것 챙기고 떠나게 되면 점심이 훌쩍 가버릴지도 모른다. 그 상태에서 멀리 떠나야 하기 때문에 밤에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우리는 빠르게 시내를 벗어나 주유소로 향했다. 그리고는 비어 있는 통 여러 개를 구해 기름을 가득 채웠다. 그 과정에서 빈약해 보이는 괴물들의 처리도 잊지 않았다.

"배를 채우지 못한 놈들은 생각보다 약하군 그래."

"그러게요."

그 말을 끝으로 아저씨는 편의점에서 챙겨왔던 물건들을 밴의 뒷좌석에 차곡차곡 쌓았다.

우리들은 2~3개의 통을 가득 채워 트렁크에 조심스럽게 놓고 밴에 올라탔다. 아저씨는 주유소와 그리 멀지 않은 마트 앞에 밴을 세웠다. 상당히 큰 규모의 마트였다. 한 눈에 들어오는 면적이 고작 1/3이었다. 녀석들이 매복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정도는 감수해야 했다.

“민정씨도 같이 가지. 은혜랑 가면 괴물들의 위치를 알 수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아저씨의 말에 민정 누나도 밖으로 나왔다.

“드디어 새 옷으로 갈아입는 건가? 매일 이것만 입어서 찝찝했는데 잘 됐네.”

준우 아저씨는 약간 상기 된 얼굴로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양 옆에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안내판이 있었다. 1층은 생필품이나 음식을 파는 곳이었지만 우리가 필요한 것은 옷과 무기로 쓸 만한 것들이었다.

“2층과 3층으로 가면 되겠군.”

2층은 패션 코너였고 3층은 레저기구 코너였다.

“응?”

은혜는 뭔가를 느꼈는지 위쪽을 바라보았다. 우리도 은혜의 시선을 따라 위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딱딱한 벽 밖에 보이지 않았다.

“에이.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민정 누나의 말에 은혜의 고개가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은혜가 바라보는 위치와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위치가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다. 설마 엘리베이터 안에?

“안에 있나보군. 물러나 있어.”

민정 누나는 은혜를 데리고 뒤로 물러났다.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손에 들린 망치와 방망이를 꽉 쥐었다.

“끄으…….”

괴물은 신음소리를 흘리며 손짓했다. 우리는 머뭇거림 없이 놈의 머리를 곤죽으로 만들어 버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검붉은 피가 신발의 밑바닥을 집어 삼키는 것 같았다. 작게 숨을 내쉰 아저씨는 2층으로 가는 버튼을 눌렀다.

띵동.

문이 열리자 아주 넓은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전체가 하나의 매장으로 통일되어 있는지 경계선이 없었다.

“어서 입을 것만 챙겨서 이리로 오는 거야. 오 분 뒤에 보자고.”

아저씨 말과 동시에 보이는 곳으로 무작정 달려갔다. 나와 준우 아저씨, 동생은 같은 등산복 쪽에서 옷을 골랐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고만. 나 평소에 입고 싶었던 00브랜드로 입을거야. 말리지마.”

준우 아저씨는 어린애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 형제도 작게나마 미소를 지었다.

"됐지?"

준우 아저씨는 때가 잘 타지 않는 검은색 등산복을 골라 입었다. 우리 형제도 준우 아저씨와 비슷한 검은 색 계열의 등산복을 골랐다. 서둘러 착용감이 좋은 등산복으로 갈아입은 뒤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갔다.

3분. 4분이 지나자 아저씨와 민정누나, 은혜도 이쪽으로 왔다.

“오우.”

민정 누나와 은혜는 활동하기 편한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바꿔 입었고, 아저씨는 짙은 검은 색 양복을 입고 나왔다.

“아니, 형님은 선보러 가십니까?”

준우 아저씨는 킬킬거리며 물었다.

“한 번도 입어 본적이 없어서…….”

아저씨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준우 아저씨는 가까운 매장에서 상의와 하의 그리고 가벼운 잠바를 들고 왔다.

“대충 맞을 겁니다. 양복은 오늘 같은 날에만 입으십시오.”

아저씨도 거부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3층으로 올라갔다. 레저 용품을 팔고 있었지만 흉기로 휘두를 만한 것은 딱히 없었다. 고심 끝에 택한 것은 골프채였다. 우리는 각자 골프채를 챙기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이제 밴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도와주세요.”

그때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스르르 닫히는 엘리베이터의 문을 다시 열었다.

“가야 돼…….”

하지만 은혜는 고개를 저으며 가야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영락없는 사람의 목소리였지만 은혜의 직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저 목소리는…… 아저씨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말없이 닫힘 버튼을 눌렀다.

“캬오오오!”

분하다는 듯 길게 포효하는 괴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마침내 1층에 다다르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스르르 열렸다. 우리는 서둘러 밴에 오르기 위해 마트의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캬오오!”

아까 들었던 괴물의 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렸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날렵한 몸을 가진 녀석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녀석의 뒤로는 아직 인간의 모습을 한 여러 명의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어디서 나타난 거지?

“처음부터 우리의 움직임을 읽고 있었던 거야. 어서 밴에 타게.”

아저씨의 재촉에 우리는 서둘러 밴에 올라탔다.

부아앙. 밴은 곧 빠른 속도로 출발했다. 그러나 놈들은 우리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뒤에 느릿한 놈들은 걱정이 없지만 우두머리 격으로 보이는 놈의 스피드는 차원이 달랐다.

“아저씨 놈이 쫓아와요.”

아저씨는 말없이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뒤쪽에 실은 무게 덕에 밴의 속도가 빠르게 나아가지 못했다. 제길…… 이 상태라면 분명 끝까지 따라올 텐데.

“어쩔 수 없군. 놈의 체력이 다할 때까지 최고 속도를 내면서 달려야겠어.”

아저씨는 더 빠른 속도로 밴을 몰았다. 슈우웅. 날카로운 바람이 밴의 창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그러나 중량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6명의 사람과 많은 양의 짐을 싣고 제 속도를 내기에는 역시 무리가 있었다.

“제길. 쫓아왔어요.”

동생은 뒷좌석 창문을 보며 말했다. 아저씨와 은혜를 제외하고는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발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놈의 속도는 엄청났다. 어느새 밴의 뒤를 따라 잡아 거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녀석은 더욱 속도를 내 있는 힘껏 도약했다. 점프력도 상당했다. 이내 우리 시야에서 사라진 녀석의 존재가 불안함을 증폭시켰다. 곧 공격해 올 것이다. 우리는 각자 골프채를 손에 쥐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위다!”

쿠웅! 준우 아저씨의 말과 함께 밴의 위쪽에서 둔탁한 소음이 났다. 콰앙. 쾅! 녀석은 밴의 위쪽을 부수기 위해 강하게 내리쳤다. 그 소리에 민정 누나가 비명을 질렀다. 우린 이를 악물고서 차분히 녀석의 행동을 지켜보기로 했다.

“안전벨트 꽉 매! 급정지하면 녀석도 나가 떨어질 거야!”

아저씨는 밴의 속도를 더욱 내며 말했다. 안전벨트를 하고 있는 은혜는 우리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멍하니 밖을 바라보았다. 우리들은 허둥지둥하며 각자 자리에 있는 안전벨트를 단단히 맸다.

“롤러코스터 타는 상황과 비슷한데?”

준우 아저씨는 태연하게 행동했지만 꽤 많은 땀을 흘렸다. '다 됐지?' 곧 모두가 안전벨트를 맨 것을 확인한 아저씨는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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