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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밖에 나가지 마시오 part.11

익명
2026-10-18 03:19

벌벌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아저씨는 창가 쪽으로 다가가 녀석들을 주시했다. 지금 이 순간 살고 싶다는 절박함이 전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대체 왜 일까. 그동안 무수히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겨왔음에도.. 지금 이 감정은 뭐란 말인가.

“우리…… 살 수 있을까요?”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차라리 살수 없다고 말해요. 그게 더 편할지도 몰라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메시아시여…….”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은혜가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옆에 있는 남자는 황송하다는 듯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메시아라니…… 정말 미친 게 틀림없구나. 은혜는 느린 동작으로 남자의 어깨를 잡았다.

“메시아시여…….”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저대로 두면 그대로 죽을지도 몰라. 정말 저 사이코 녀석은 도움이 되지 않는구나.

“어이, 미친 아저씨! 빨리 돌아와!”

동생이 소리쳤지만 남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그저 묵묵히 걸어가기만 했다. 괴물들의 시체에 다가간 남자는 바닥에 흥건히 고여 있는 피를 조심스럽게 마시기 시작했다.

“크아아!”

그것을 시작으로 녀석들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저 미친 아저씨가 정말!”

당구대 뒤에 몸을 숙이고 있던 동생이 남자에게 뛰어갔다. 위험해. 남자는 몰라도 동생이 다쳐서는 안 돼. 발이 저절로 움직였다.

“위험해!”

준우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남자에게 뛰어가는 동생의 모습이 슬로우 화면처럼 보였다.

“크아아아!”

바로 앞. 소리가 가까웠다. 괴물들은 동료들의 시체를 무너트리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남자와 동생을 보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제길! 소총을 들어 녀석들의 머리 쪽으로 겨누웠다.

“크아아아!”

잔뜩 흥분한 괴물들은 남자와 동생에게 뛰어들었다. 힐끗 뒤를 돌아보자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도 출입구 쪽으로 소총을 겨누웠다.

순식간에 여러 개의 손이 창틀 사이를 쥐었다. 부드득. 진퇴양난이군. 빨리 움직여야 했다. 최소한의 행동으로 최적의 성과를 낼 수 있어야 했다. 제길! 어쩔 수 없어. 동생 쪽은 아저씨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창가 쪽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

괴물들은 머리에 총알들이 박힌 채 나가떨어졌다. 그 사격을 시작으로 아저씨들의 사격도 시작되었다. 녀석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대충 고비를 넘기고 동생과 남자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차마 공격을 성공하지 못한 3~4마리의 녀석들과 운 좋게 남자에게 접근한 2마리의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을 드러내며 남자의 살점을 금방이라도 뜯을 기세였다. 어쩔 수 없다. 총을 들어 남자의 몸을 겨누웠다. 이런 식의 공격이라면 총알이 남자의 몸을 뚫어 뒤에 녀석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었다. 그도 사람이긴 하지만 먼저 죽음을 자초한 것은 저 남자였다.

퍼억. 퍼억.

착각일까. 남자를 덮치려던 두 마리의 괴물이 좌우로 멀리 나가떨어졌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나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크아아아!”

남자는 뛰쳐나오는 괴물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퍼부어댔다.

녀석들은 몸 여기저기가 깊게 파여 그대로 피를 토하다 죽어 버렸다. 믿을 수가 없었다. 평범한 남자의 힘이 이 정도란 말인가?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듯 남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보이지도 않는 빠르기였다. 인간의 모습으로…… 괴물들을 장난감 다루듯 없애고 있었다.

“크아아아!”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상념이 퍼뜩 깨졌다. 나와 아저씨, 준우 아저씨는 그대로 창가 쪽으로 다가가 녀석들에게 총알 세례를 퍼부어 주었다.

괴물들은 픽픽 쓰러지는 동료들을 보자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었다. 아까처럼의 원을 그리듯 건물을 포위하기만 할 뿐, 우리를 보는 눈빛은 굶주린 야수의 그것과 같았다. 빌어먹을 녀석들. 저 정도의 수라면 가망이 없었다.

“…….”

아까보다 더 많은 괴물들의 사체가 널려 있었다. 하나같이 몸 어딘가가 쪼개져 있었다.

“…….”

남자가 서서히 뒤를 돌아보았다. 붉은 눈이었다. 하지만 괴물을 상징하는 털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아저씨…….”

아저씨도 남자를 보고 있었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것 같았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은혜를 잠시 바라보고는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꼭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창문에서 서서히 물러났다. 창문 앞에 도착한 남자는 밖에서 우글거리는 녀석들을 보며 입을 크게 벌렸다.

“크오오오!”

인간에게선 나올 수 없는 소리였다. 엄청난 성량과 괴물 특유의 목소리에 귀가 벙벙했다.

“저기 봐!”

누가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창문 밖에서 펼쳐지는 놀라운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괴물들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순간 몸에 들어간 힘이 풀렸다. ‘살았다.’ 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털썩.

남자는 그대로 힘없이 쓰러졌다. 그러나 우린 점점 멀어지는 붉은 빛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시…… c발…….”

이 소위는 입술을 떨며 말했다. 안도감에 내뱉은 말이었을까. 김 대위를 잃은 슬픔에 내뱉은 말이었을까.

“어서 여길 떠야겠어. 준비하지…….”

힘없는 아저씨의 목소리에 우리들은 천천히 움직였다. 사방은 온통 괴물들의 피와 살덩이들로 뒤덮여 있었다. 역한 화약 냄새와 비릿한 피 냄새가 속을 울렁거리게 했다. 아무 말 없이 출입구 쪽으로 걸어가 무수히 쌓여 있는 괴물들의 시체를 치워내기 시작했다. 1층으로 내려가려면 어쩔 수 없었다.

“우욱.”

헛구역질이 나왔지만 멈출 수 없었다. 간신히 찾아온 기회였다. 이것을 놓치면 다시 녀석들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차례차례 시체들을 치워내자 대강 이동할 만한 공간이 생겼다.

“은혜야. 가자.”

멍하니 이쪽을 보며 서 있는 은혜에게 손짓을 했다.

“…….”

얼른 은혜에게 뛰어가 손을 잡고 출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힘없이 딸려오는 은혜를 보며 모두 당구장에서 나왔다. 후우. 아직도 심장이 떨려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아저씨, 안에 그 남자가 있잖아요.”

그러나 아저씨는 들은 척도 안하고 계단으로 내려가 버렸다. 나는 동생에게 은혜의 손을 쥐어주고 당구장 안으로 들어갔다. 전에는 우두머리였을지 몰라도 우리를 구해준 남자였다. 버리고 갈 순 없었다. 다시 역한 냄새들을 참으며 남자에게 다가갔다.

“도와줄게.”

어느새 다가온 준우 아저씨가 말했다. 고맙다는 인사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 남자를 일으켜 올렸다. 나와 준우 아저씨는 남자의 왼쪽과 오른쪽을 부축하며 빠르게 당구장을 빠져 나왔다. 아저씨와 동생은 동그랗게 퍼진 괴물들의 시체더미를 대충 치워내고 있었다.

“후우. 후우…….”

숨이 차오른다. 금방이라도 몸이 쓰러질 것 같았다. 밴이 지나갈만한 통로를 만든 후 아저씨를 시작으로 모두 밴에 올라탔다. 나와 준우 아저씨는 트렁크 쪽에 남자를 조심스럽게 눕혔다.

부우웅.

시동이 걸리자 밴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치우지 못한 괴물들의 시체를 밟으며 낡은 건물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

밴 앞쪽 전자시계를 보니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총을 쥐고 창문 밖을 주시했다. 아직 새벽이라 안전하다고 판단하기엔 일렀다.

부아앙.

밴은 점차 속도를 내며 빠르게 이동했다. 그동안 머물렀던 건물과도 이별이었다. 그런데 자꾸 뭔가가 허전했다. 좌석을 훑어보니 우리들과 함께 했던 김 대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라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겼던 김 대위의 표정이 떠올랐다.

“큭…….”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기 위해 총을 꽉 쥐었다. 이 소위는 아예 넋이 나간 사람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동생과 준우 아저씨도 우울한 표정이었다.

밴의 속도가 점차 높아져만 갔다. 밴은 어두운 시내를 한참 벗어나 빠른 속도로 달렸다. 가로등이 빛나는 것을 빼면 도로는 완전히 어두웠다. 얼마나 왔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묵묵히 창밖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거예요?”

“표지판을 보니 안성으로 가는 거더군.”

동생의 물음에 아저씨는 짤막하게 대답하고 밴을 몰았다. 준우 아저씨는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제기랄. 이 짓도 오래 못해먹겠어. 하루도 마음 놓고 자는 날이 없으니 원…….”

“목이 두 개여도 모자를 것 같아요.”

동생이 준우 아저씨 말에 맞장구를 쳤다. 한 시간 만에 나눈 첫 대화였다. 이 소위는 여전히 멍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너덜거리는 팔의 소매가 안쓰러워 보였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지금 이 소위는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소위의 메마른 입술이 서서히 움직였다.

“됐어…….”

“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전우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익숙해. 하지만…….”

“…….”

“김 대위님은 나와 각별한 사이여서 그래.”

이 소위의 눈빛이 아련하게 젖어 들어갔다.

“나는 고아원에서 자랐어. 마땅히 취직할 곳 없어 노가다로 하루하루를 먹고 사는 게 전부였지. 사회라는 게 그렇잖아. 부모 없으면 이상하게 보고 학벌 낮으면 이상하게 보고, 거기다 고아원 출신이라고 하면 말 다한 거지. 빌어먹을 새끼들은 내 능력보단 주위 배경만을 보더라고. 학교 다닐 때에도 그랬지. 부모 없는 자식이라고 반에서 놀림 받는 게 일상이었어.”

“…….”

“그게 너무 개 같은 거야. 그래서 닥치는 대로 호신술을 연마하기 시작했지. 학원비는 새벽에 일어나서 우유 돌리고 신문 돌려서 냈어. 그리고 나를 놀리던 새끼들을 다 조지고 다녔지. 근데 그런 말이 있더군. ‘돈이 없으면 싸움 하지 말라는 말.’ 그게 맞았어. 묵사발이 된 새끼들이 지네 잘못은 생각 안 하고 나를 경찰에 신고한 거야. 나를 보호해줄 사람이 어디 있겠어. 소년원에 살다 나오고 그렇게 20살이 됐을 무렵엔 아무것도 할 게 없더라.”

이 소위는 소총의 총구를 부셔져라 거머쥐었다. 미약하게 떨리는 그 주먹에서 당시 상황이 얼마나 비참하고 힘들었는지 짐작이 갔다.

“그래도 살긴 살아야했어. 이때까지 제대로 해본 일들이 없었거든. 주제에 꿈이란 게 내게도 있었어. 큭큭…… 웃기지 않아? 그래서 무작정 노가다를 시작했어. 학창시절에 여러 가지 호신술로 체력단련을 해둔 덕에 큰 무리는 없었어. 하지만 일이 끝나고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게 참 개 같았지. 노가다 일을 통해 깨달았어. 체력적으로 힘든 것보다 정신적으로 힘든 것이 더 크다는 것을. 아무튼 그날도 어김없이 공사장 아저씨들이랑 밤까지 술을 마시고 적당히 여관 하나 잡아서 자려고 했어. 아저씨들도 나와 비슷한 상황들이었거든. 노숙자들이나 사업에 실패해서 어쩔 수 없이 노가다 판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전부였지.”

“…….”

“여관으로 가는 도중이었어. 근데 어두운 골목에서 사람 같지도 않은 게 갑자기 튀어나오더니 아저씨들을 무참히 살해하며 뜯어 먹는 거야. 처음엔 꿈인 줄 알았어. 아무것도 볼 것 없는 내 인생에 그런 엿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거든. 하지만 비명 소리가 정신 차리게 해주더군. 주위에 널브러진 쇠파이프를 들고 녀석들의 머리통을 깨부쉈어. 난리도 아니었지. 그런 거 있잖아. 위기적인 순간에 닥치면 인간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고. 그 자리에서 2~3놈을 모조리 때려눕힌 나는 허탈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공사장으로 들어갔어.”

밴의 이동속도가 조금씩 느려졌다. 모두 이 소위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저씨들이 죽었다는 슬픔보다 나에게 죄를 물을까 그게 더 두려웠어. 그런 빌어먹을 상황에서도 나만 챙길 생각만 나더라고. 사회라는 게 날 그렇게 만들었어. 그동안 내게 한 짓을 생각해보면 분명 불이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바로 공사장을 나와 뒤쪽으로 뚫려 있는 문으로 빠르게 도망갔어.”

“…….”

“근데 웬 군인들이 사방에 깔린 거야.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아니라 특수부대 차림에 중무장을 한 군인들이었어. 모두 나를 이상하게 봤지. 온 몸에 피와 살덩이들이 붙어 있으니 정상으로 보면 그게 이상했겠지. 슬금슬금 피해가려고 하는 도중에 누군가 내 어깨를 잡는 거야. 속으로 온갖 욕을 해대며 나를 잡은 사람을 봤어. 그게 김 대위님이었어. 당시 중위였었지만…… 아무튼 김 대위님은 나를 보고 저 괴물들을 죽였냐고 했지. 발뺌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그냥 그렇다고 했어. 그러자 김 대위님이 나를 끌고 어디로 데려가더군.”

서서히 어두운 밤이 지나고 있었다. 새로운 날을 맞이하기 위한 새벽녘이었다. 천천히 진행되는 일출을 보며 이 소위가 계속 말을 이었다.

“콩밥 먹을 심정으로 따라갔어. 근데 그게 아니더군. 이상한 군부대 시설로 나를 데려가더니 여러 가지 실험을 했어. 특별한 징후가 없자 나에게 그러는 거야. 이 부대에 지원했으면 좋겠다고. 달리 갈 곳도 없는 나는 좋다고 했지. 근데 한 가지가 걸렸어. 내 주변 환경을 걸고넘어지지 않을까 하고 사전에 말했지. 근데 김 대위님은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더군. 나와 같이 훈련을 받는 동기들이나 선임들, 후임들도 마찬가지였어. 어느 하나 내 배경에 대해 시비를 걸지 않았지. 거기에서는 오직 실력만이 우선이 되었어. 기뻤지. 더러운 괴물 자식들을 퇴치하러 다닐 때에도 두려움 보다는 더 많이 죽일 궁리를 했어. 그래야 나를 인정해주니까. 덕분에 초고속 승진이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에 소위가 된 거야.”

이 소위의 말을 듣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애초에 우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 소위가 왼팔을 못 쓰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리고 김 대위도…….

“소위님 말을 들어보니 우리는 정말 귀족처럼 자랐네요. 멀쩡하게 부모님 살아계시지, 남부럽지 않은 집안에서 살았어요. 그래도 우리들은 뭐가 부족하다고 계속 투정만 부리고…….”

동생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 소위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많이 지쳐 보였지만 눈만은 살아 있었다.

“뭐가?”

“팔 그렇게 된 거…… 솔직히 우리랑 만나지 않았더라면…….”

“됐어. 이미 각오한 일이야. 목숨도 버릴 각오도 한 마당에 이깟 팔이 대수겠어?”

“그럼 통성명이나 하죠. 나는 박준우 라고 합니다.”

가만히 있던 준우 아저씨가 말했다.

“이진성입니다.”

“이진우입니다.”

“이름보다는 아저씨라는 호칭이 더 자연스러워서…… 아저씨라고 부르시오.”

“이우민입니다.”

이 소위는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우리를 보며 말했다.

“좋아. 나보다 어린 것 같은데 몇 살이야?”

“27살입니다.”

“그래? 요 쌍둥이 형제들보다는 형이네. 나랑 저 형님보다는 어리고. 앞으로 잘 지내보자.”

“하지만 저는…….”

“다른 군인들과 합류해야 한다고?”

“아뇨…… 가지 않을래요.”

우민 형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왜?”

“그냥요. 저 혼자 간다고 해서 무사히 다른 소대와 만날 것 같지도 않고…… 김 대위님까지 없는 마당에 제가 뭘 하겠습니까.”

준우 아저씨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담배를 물었다. 마치 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담배가 유독 맛깔스러워 보였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서서히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살아있음을 축하해주기라도 하듯 미약한 빛이 밴과 우리 모두를 비춰주었다.

“우민아.”

“예…….”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은 주체할 수 없겠지…… 그건 나도 이해해. 하지만 지금 같은 현실에서는 자네의 그런 약한 감정이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자네도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을 테지.”

묵묵히 운전만 하던 아저씨의 말에 우민 형은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피웠다. 서서히 밴이 멈추기 시작했다. 인적이 드문 고속도로만 이어진 거리였다. 좌우로는 빛이 바랜 풀들이 낮게 깔려 있었다. 곳곳에 보이는 자동차에는 사람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 죽어버렸거나 떠나버린 것이었다.

“여기서 쉬기로 하지. 낮이니까 문단속만 잘해두면 될 거야. 천장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밴 자체가 높으니까 인간인 상태로 쉽게 오르지 못하겠지.”

모든 유리창이 두텁게 코팅이 되어 있어 밖에선 밴의 안을 볼 수 없었다. 그럼 일단 안전한 건가? 하긴, 지금은 이것저것 따지기보다 우선 쉬어야지.

아저씨는 사이드브레이크를 강하게 당기고 의자를 약간 뒤로 젖혔다. 우리는 창문을 완전히 위로 올리고 의자를 조금씩 뒤로 젖혔다. 넓게 뚫린 밴의 지붕 사이로 미약한 햇빛이 들어와 몸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엇다.

의자에 몸을 맡기자 금세 눈이 감기려 했다. 밴 안이 상당히 넓어 다리를 뻗어도 크게 무리가 없었다. 크게 기지개를 펴고 하품을 했다.

“흐아아암.”

점차 의식이 흐려지자 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소총을 적당히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흐음.”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서서히 눈을 떴다. 한숨 자고 나자 몸에 활력이 돌았다. 의자에서 일어나 창문 밖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창문을 내리자 기분 좋은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흐읍.”

크게 심호흡을 하며 신선한 공기를 가득 빨아들였다. 왠지 몸이 상쾌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밴 아래쪽에 있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치직. 서서히 타들어가는 담배를 입에 물지 않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담배는 서서히…… 느리지만 확실하게 타들어갔다. 이윽고 식어버린 꽁초를 던져버리고 다시 하나를 꺼내 물었다.

“후우.”

담배 맛이 유독 맛이 좋았다. 이내 한 개비를 완전히 태우고 창문을 닫았다. 어제의 여정이 피곤했는지 모두 곤히 잠들어 있었다.

“…….”

꼴이 말이 아니었다. 제대로 씻지 못해 얼굴 여기저기 검붉은 피가 붙어 있었고 옷도 지저분했다. 밖으로 나가 동태를 살피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잠들어 있는 동생을 넘어가야 했다. 괜히 동생을 깨우고 싶지 않아 다시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은혜…….”

살짝 몸을 일으켜 조수석을 확인했다.

“역시…….”

없다. 병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은혜가 없었다. 그렇다면 남자도? 살짝 몸을 돌려 트렁크를 확인했다. 역시…… 남자도 없었다. 은혜를 따라 나간 건가? 이렇게 되면 동생의 몸을 넘어서라도 은혜가 어디 있는지 찾아야 했다.

“읏…….차.”

조심스럽게 일어나 옆문을 열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뜨거운 태양이 내 눈을 따갑게 비추었다. 동생도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에 일어났다.

“미안. 깼냐.”

“……나가게?”

“은혜가 없어서.”

“남자도?”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도 소총을 정비하고 나를 따라나섰다. 뒤에 앉아 있는 준우 아저씨와 우민 형은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쭉 이어진 고속도로 위에는 안성이라고 적힌 표지판과 흩어져 있는 빈 자동차들이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동생은 눈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설마 저런 곳으로 가지는 않았겠지?”

“모르지…… 은혜 마음을 알 수가 있나. 그래도 그 사이코 자식이 있으니까 위험하지는 않을 거야.”

동생도 남자의 능력을 익히 본 탓에 특별히 걱정하는 투는 아니었다. 남자의 능력…… 이따 아저씨가 일어나면 물어봐야겠다. 아저씨도 모르는 눈치였지만 연구를 했던 사람이기에 뭔가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앞에 있는 차들이나 뒤져보자. 쓸 만한 게 있으면 좀 챙기고.”

우리는 꽤 빠른 걸음으로 차로 다가갔다.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서 차 내부가 자세히 보였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먹다 남은 과자 봉지와 아직 반 정도 남아 있는 생수병이 전부였다. 그리고 시트에 묻은 소량의 피가 당시 상황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없네.”

우린 바로 다음 차로 다가갔다. 꽤 커다란 중형차였다. 검게 코팅이 되어 있어서 안이 보이지 않았다.

“에이 썩을. 돈을 얼마나 투자한 거야?”

동생은 신경질 적으로 말했다.

“열어보자.”

앞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려고 하자 동생이 소총을 들며 손짓했다. 동생은 믿고 앞문을 서서히 열었다.

끼이익.

어두운 공간이 서서히 밝아졌다. 동생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궁금해진 나는 문을 완전히 열었다.

“으음…….”

거기에는 죽은 지 꽤 되어 보이는 중년 남성의 시체가 있었다. 머리의 피는 이미 굳을 대로 굳어져 있었고 입안에는 구더기가 가득했다.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동생은 빨리 문을 닫으라며 나를 재촉했다.

“에이.”

역한 냄새와 짜증나는 파리 소리를 이기지 못하고 문을 강하게 닫았다.

콰앙.

문이 닫히는 소리가 넓은 고속도로에 울려 퍼졌다.

우린 다시 걸어 다음 차로 향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창문은 검게 코팅되어 있었지만 농도가 약한 편이어서 밖에서 안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흐음…….”

고개를 가까이 들이대고 안을 살폈다. 앞 쪽에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 남녀의 시체가 보인다. 남자의 손에 들린 권총이 당시 상황을 얘기해 주는듯 했다. 총은 어디서 구한거지? 일반인은 구하기 힘든 무기인데…….

“뭐 있냐?”

뒷자석을 살피는 동생에게 물었다.

“아니, 어린 애들이 죽어 있는 거 빼고는 없어.”

“그래…….”

차문을 열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건 시체의 손에 있는 권총 한 자루였다. 곧 역한 냄새에 헛구역질이 나왔다. 미안합니다. 아저씨 아줌마. 그리고 꼬마야. 딱딱하게 굳은 손에서 권총을 빼내 다시 문을 닫았다. 후우.. 숨을 몰아쉬며 인상을 간신히 핀다. 위잉- 길을 잃은 파리들만이 밝은 햇빛을 피해 여기저기로 날아다닌다.

“총알 있어?”

총알집을 빼 확인했다. 어림잡아 3~4발이 보였다. 동생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때 뒤에서 밴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준우 아저씨와 우민 형, 그리고 아저씨가 차례대로 나왔다. 세 사람은 우리를 보며 손짓했다.

“굿모닝! 아침은 뭐로 할래?”

준우 아저씨가 해맑게 물었다.

“초코바나 빵이 전부잖아요.”

“틀렸어! 라면이다! 크하하하하!”

라면? 그 소리에 두 눈이 커진 우리는 밴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준우 아저씨는 콧노래를 부르며 밴에 다시 들어가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우민 형은 햇빛을 받으면서 멍하니 서 있었고, 아저씨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일어나보니 은혜랑 그 남자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찾아다닐 겸.…… 차도 둘러보고.”

“그래……? 먹을 때가 되면 오겠지.”

아저씨는 당황한 기색 없이 담배를 빼물었다.

“오! 찾았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꽤 커다란 냄비와 가스버너. 부탄가스 등이 나왔다.

“언제 이런 걸 챙겼어요? 못 봤는데…….”

동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하하하. 다 나의 실력이지. 라면이~ 어디 있지, 라면이~”

“이 밴은 여행용이라 수납공간이 꽤 되네. 전에 병원에 들렸을때 운좋게 여러가지들을 챙겨 놨지 뭔가."

“아…….”

부스럭 거리는 비닐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찾은 모양이었다. 곧 준우 아저씨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라면 뭉치를 꺼냈다. 그 모습에 아저씨는 물론 우리도 희미하게 웃었다. 정말 오랜만에 웃어보는 것 같았다.

가스버너에 부탄가스를 넣고 요령 있게 불을 피웠다. 밴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생수병 여러개를 집어 냄비에 부었다. 우리는 라면 봉지를 뜯어 세팅하기 시작했다. 스프만 뜯었을 뿐인데도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돌았다.

“아, 벌써부터 군침 도네.”

준우 아저씨는 양손을 싹싹 비비며 물이 끓기만을 기다렸다.

곧 서서히 끓기 시작하는 냄비 위로 수증기가 솟아올랐다.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 라면을 모조리 넣었다.

풀이 걷히는 소리에 우리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밴의 바로 옆에서 은혜와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갈색 후드를 맞춰 입은 두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낯설다. 은혜는 아저씨를 지나쳐 끓는 냄비 주변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남자는 그 뒤에 조용히 서 있었다.

“어디 갔다 왔어?”

“…….”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은혜는 그저 끓는 냄비만을 바라보았다. 아저씨가 그런 은혜의 행동을 설명해주었다.

“먹을 때가 되면 항상 알아서 온다네.”

“아…….”

면발을 확인한 준우 아저씨는 다시 밴으로 들어갔다. 나와 동생은 스프와 기타 조미료를 그 위에 붓기 시작했다. 준우 아저씨는 나무젓가락을 가져와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먹자~”

준우 아저씨가 제일 먼저 면발을 집어 올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도 두런두런 모여 젓가락을 움직였다.

“호~”

아저씨가 면발을 내밀며 말하자 은혜도 같이 ‘호’ 하고는 그대로 받아먹었다. 후루룩. 그대로 면발을 빨아내자 은혜의 고운 얼굴에 국물들이 튀었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남자가 후드 소매로 은혜의 얼굴을 닦아 줬다.

“허허.”

예상치 못한 동작에 우리는 실없이 웃었다.

“집사여?”

“종놈이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 조용히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사람이지만 붉은 눈동자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저씨의 말대로 저 남자를 멀리 해야 하는 걸까.

“…….”

아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저 남자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다시 젓가락을 들어 면발을 입에 가져갔다. 얼마만에 먹는 뜨거운 음식인지 위가 아우성 쳐대는 것을 애써 진정시키며 입을 움직였다.

후루룩. 후룩.

고요한 고속도로 위에서 늦은 아침 식사가 이어졌다.

15분이 넘은 끝에 평온한 아침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부른 배를 통통 두드리는 준우 아저씨의 표정이 행복해 보였다. 동생은 냄비에 남은 국물까지 모조리 비워냈다.

“후우…….”

뜨거운 날씨에 정신없이 라면을 먹어서인지 이마에 땀이 흘렀다. 소매로 대충 닦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흐아아.”

온 몸의 근육들이 쭉 펴지는 것이 느껴졌다.

“가자…….”

식사를 마친 은혜가 옷을 잡아당겼다. 나는 은혜의 여린 손을 살며시 떼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위험하니까 멀리 가면 안 돼.”

“가자…….”

“나랑?”

“사람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뒤에 서 있던 남자가 말했다. 그 말에 모두 동작을 멈추었다. 준우 아저씨는 담배를 끄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흔적을 따라 가보니 작은 마을 하나가 나왔습니다. 메시아께서 모두 정상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보다 은혜는 저 남자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건가? 아니면 저 남자는 은혜의 행동과 표정에서 의사를 읽어내는 건가? 어쨌거나 마을이 있다는 것은 큰 수확이었다. 안전한 공간을 찾았다는 기대감이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우민 형을 제외한 모두가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흐음…….”

아저씨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은혜와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괜찮겠지…… 준비하자고.”

그러자 준우 아저씨와 동생은 기다렸다는 듯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이내 빠르게 정리를 마친 우리들은 밴에 올랐다. 멀쩡한 사람들이 있는 마을이라……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했다.

“드디어 멀쩡한 사람들과 만나는 건가? 이거 기대되는데.”

준우 아저씨의 목소리가 잔뜩 들떠있었다. 우민 형도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안도하는 눈치였다.

부르릉.

조수석에 앉은 은혜는 손가락으로 특정 지역을 가리켰다. 덜컹이는 밴에 몸을 맡기다 문득 의문점이 떠올랐다. 트렁크 구석에 조용히 있는 남자를 힐끗 보고는 몸을 앞으로 빼 아저씨에게 속삭였다.

“아저씨, 저 남자요.”

“남자……?”

아저씨는 백미러로 남자를 힐끔 바라보았다.

“글쎄…… 저런 케이스는 한 번도 본적이 없어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두 완벽하게 치료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거든. 인간의 모습으로 괴물의 힘을 낸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럼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요?”

“충분히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저렇게 후드만 입고 벗을 생각을 안 하니 볼 수가 있나.”

새삼스레 남자가 걱정됐다. 과거엔 적이었었던 남자였지만 바로 어제만 해도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이상하게 남 같지만은 않았다. 일원으로 인정하는 걸까…….

밴이 심하게 덜컹거렸다. 잘 포장된 고속도로와는 다르게 온통 울퉁불퉁한 지형이었다. 어느 정도 지나자 은혜가 다른 쪽으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저씨는 바로 밴을 꺾어 꽤 빠른 속도를 냈다.

“은혜야. 언제 여기까지 온 거야? 멀리도 왔다 너…….”

“은혜는 원래 걷는 걸 좋아하네. 특히 낯선 곳에 데려가면 계속 돌아다니곤 했지. 마치 새로운 공간을 눈에 담는 듯 했어.”

아저씨의 얼굴에서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들은 적 있어. 정상인들과 정신지체 사람들과의 차이는 종이 한 장이라고. 그 한 장 차이 때문에 미쳤다, 미치지 않았다는 구분하는 게 웃기다고 어느 교수가 그랬었어.”

가만히 있던 동생이 앞으로 몸을 내밀며 말했다.

“허허허. 흥미로운 얘기군. 맞아.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사람들끼리는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하더군.”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준우 아저씨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쑤욱 내밀었다.

“그럼…… 말도 못하고 에~에~ 거리거나 으~으~ 거리는 사람들끼리 소통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형님?”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래서 전문가들이 그러는 거야.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차이는 종이 한 장이라고. 실제로 미쳤던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정상적으로 소통을 하면서 왜 자신이 미쳤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 그 일로 머리에 큰 충격을 받고 다시 대화를 하려고 했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 덕분에 그 남자는 정상인으로 판명 됐지. 그 남자 말로는 정상인과 비정상인 사이에는 뭔가 보이지 않는 작은 차이가 있다고 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이야기지.”

“그럼 은혜는 우리와 다른 세계에서 다른 시각으로 모든 것을 대하는건가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게 수다를 떠는 끝에 저 멀리 무언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언덕진 곳에 밴을 잠시 세운 아저씨는 운전석에서 내려 아래에 위치한 마을을 훑어보았다. 규모가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10가구가 될까 말까한 마을. 천천히 눈을 돌려 마을을 살폈다. 좌우에는 밭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는데 한창 농사기간이라 그런지 일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보였다.

“여기야?”

머리를 쓰다듬으며 묻자 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도 이런 곳을 찾았구나. 이내 아저씨는 다시 운전석에 올라 밴을 몰기 시작했다. 꽤 급격한 내리막길이라 몸이 앞으로 쏠렸다.

부우웅.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꽤 커다란 정자가 보였다. 그 정자 위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우리를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만에 만난 정상인들인가. 모두 반가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씩 밴에서 내렸다.

“갑작스럽게 죄송합니다. 어른신들.”

제일 앞에 선 아저씨가 백발의 노인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러나 어르신들은 냉담한 표정으로 우리를 훑어보았다. 아저씨는 손을 저으며 우리를 가리켰다.

“우리는 정상인입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 말에 여럿이 죽어 나갔지.”

백발의 노인이 천천히 중얼거렸다.

“아, 아닙니다. 저희들은 정말…….”

“됐네.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완전히 감염되지 않았다는 거겠지. 따라오게.”

백발의 노인은 마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른 어르신들은 우리를 가만히 보다 다시 정자에 올랐다. 하나같이 생기가 없는 얼굴이었다. 과연 이런 분들을 정상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노인을 따라 포장되지 않은 자갈길을 걸었다. 발바닥을 타고 느껴지는 낯선 감촉이 노인들이 우리를 대하는 감정 같아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겁나 쌀쌀맞다 그지?”

준우 아저씨는 나와 동생에게 귓속말을 했다. 우리는 말없이 웃었다. 한 숨 돌리고 싶다는 욕구가 더 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 들리네. 청년…… 나이가 먹었다고 해서 다른 감각이 완전히 무뎌지는 것은 아니지.”

“죄, 죄송합니다.”

준우 아저씨는 헛바람을 들이키며 말했다.

“킥킥킥.”

나와 동생은 작게 키득거렸다. 그게 백발 어르신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구불구불한 자갈길들을 지나자 아담한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길을 지날 때마다 농사를 짓고 있던 노인 분들이 우리를 이상한 눈초리로 보았다. 당연한 일이겠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방인의 존재는 그리 좋은 것이 아니니까.

백발 어르신은 두 번째 집을 지나 꽤 큰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앞에 보이는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른 집과는 달리 규모가 큰 집이었다.

끼이익.

낡은 소리를 내며 대문이 열렸다. 집 지붕에는 커다란 확성기와 녹색 깃발이 자리 잡고 있었다.

“으르릉.”

어르신의 집안에 있는 진돗개들이 우리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낯선 사람을 향한 경계 표시였다. 나와 동생, 아저씨, 우민 형까지 집안으로 들어오자 진돗개는 소리를 내며 짖었다. 하지만 남자와 은혜가 들어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꼬리를 말고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끼이잉.”

그것을 가만히 보던 백발 어르신은 남자와 은혜에게 시선을 주고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누추하지만 들어오게.”

어르신의 말에 우리는 조심스럽게 집안으로 들어갔다. 인원수가 많아서인지 신발을 놓는 바닥이 금세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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