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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밖에 나가지 마시오 part.20

익명
2026-10-18 04:03

“진성아. 모든 일들은 원하는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단다.”

다정하게 웃으며 말하는 아빠의 얼굴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딸깍. 작은 소리와 함께 아빠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보트를 바라보았다. 콰쾅! 곧 커다란 폭발과 함께 보트가 사라지는 것은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삐이이- 날카로운 이명이 달팽이관을 두드려댄다.

“어때? 세상에 나만큼 너를 생각해주는 존재가 있니?”

“…….”

“터지는 장면이 압권이지. 그렇지?”

허무했다. 그 말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적어도 아저씨와 은혜는 건강하게 살기를 바랐다. 비록 우리를 속였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같이 지내오면서 느꼈던 감정은 솔직한 것이었다. 생사를 같이 하며 서로를 의지하고 믿는 것은 특별한 감정이었다. 은혜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아저씨에게도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도움을 받으며 여기까지 왔다.

소름끼치는 미소를 짓고 있는 아빠보다 그들이 훨씬 더 가족같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저것이 송 박사와 샘플의 마지막이란다. 잘 기억해두도록 해.”

“……왜 나와 동생을 여기로 오라고 한 거야?”

“내 아들들이 얼마나 강해져서 살아오는지 보고 싶었거든.”

내게 다가오는 아빠의 모습에 더 이상의 좋은 말을 해줄 수가 없었다.

“개소리 하지 마! 아저씨와 은혜를 죽인 마당에서 네가 할 소리야?”

“슬프구나.”

가볍게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한 아빠는 다시 옅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모니터링을 하면서 너희 둘이 얼마나 잘 적응하는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지. 적당히 데이터를 뽑는 게 얼마나 힘들던지…… 정말 아빠는 피곤했단다.”

“뭐?”

그렇다는 말은 여태까지의 나와 동생이 겪었던 일들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이었나? 적응? 괴물들 사이에서 처절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편하게 앉으면서 구경하고 싶었나?

“우리는…… 당신의 아들 아니야? 그런 사지에 몰아세워서 구경하고 싶을 정도로 우리가 그렇게 미웠어?”

“진성아.”

걸음을 멈춘 아빠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샘플이야.”

“샘플?”

“그래. 송 박사에게 어디까지 들었는지 모르겠다만, 너희들은 과거 실험에서 죽어버린 아기의 유전자로 만들어낸 클론들이란다.”

뒤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본능이다 이 사람에게서 멀어지라고. 도망치라는 일종의 경고였다. 하지만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따. 그저 이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고개를 젓는 것이 내 유일한 발악이었다.

“거짓말…… 말도 안 돼.”

“너는 현대기술을 너무 간과하고 있어. 괴물들을 만들어내고 세상에 퍼트리는 일도 하는데 클론 하나 둘쯤 만들어 기억을 조작하는 일 정도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지.”

“괴물을…… 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아빠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는 불을 붙였다.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인 아빠는 진한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다시 한 번 소개해야겠구나. 난 괴물들의 창시자이자 너희 둘, 샘플들을 만들어낸 00과학연구소 소장. 이헌이라고 한다.”

“개소리! 개소리 하지 말란 말이야!”

“떼를 쓴다고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아. 생각보다 나약하구나. 널 만들 때 실수라도 한 건가? 네 동생을 봐라. 얼마나 강하고 냉철하니. 아무리 만들어낸 자식들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다니. 하하하하하하!”

아빠 아니, 소장 놈은 두 번 정도 빨아들인 담배를 미련 없이 버렸다. 곧 비릿한 미소를 지은 소장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네가 있어야 이 사태를 모두 잠재울 수가 있다.”

“……꺼져.”

“저항하면 괴로운 것은 너뿐이야. 응?”

소장 놈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말했다. 채 가시지 않은 진한 담배 냄새가 났다. 으드득. 강하게 주먹을 움켜쥔 후 사정없이 날려버렸다. 퍼억! 소리와 고개가 휙 돌아가 버린 소장 놈은 한숨을 쉬고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난 이진성이야! 난 너 따위가 만들어낸 클론 따위가 아니라고!”

“이렇게 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어려운 길을 택한 것은 너다. 후회하지 말아라.”

휘익. 강하게 휘파람을 분 소장 놈은 나를 보며 여유 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촤아악. 촤악. 그러자 사방에서 거센 물소리가 나며 검은 털들을 뒤집어쓴 괴물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르.”

순식간에 불어나버린 괴물들의 수는 소장 놈과 내 사이를 가득 메우기에 충분했다. 깔끔하게 열을 맞추며 정렬한 괴물 놈들은 나를 노려보기만 할 뿐 선뜻 움직이지는 않았다. 이것은 우두머리가 녀석들을 통제를 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소장 놈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선택해라. 이게 마지막 기회다.”

번뜩. 붉은 루비 색의 눈이 진하게 반짝였다. 놈의 눈은 이미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크르르르.”

흑막 속에서 빛나는 루비 색의 눈동자가 나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소장의 말 한마디에 괴물 놈들이 나를 처리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런 결과를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가족 모두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다른 결말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희망은 정말 어디에도 없는걸까.

“난…….”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 수많은 고비를 넘겨왔다. 더 이상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그건 지나친 욕심이었다. 그래, 여기서 모든 걸 놓아버리자.

“너 같은 놈을 따라갈 정도로 죽음이 두렵지 않아.”

“호오.”

흥미로운 얼굴로 나를 보던 소장 놈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다. 사지는 없어도 네 놈 몸통만 있으면 되니까. 덮쳐라!”

그 말을 시작으로 수많은 괴물 놈들이 일제히 도약했다. 도망갈 곳이 없다. 눈을 감고 이 지독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두두두두- 익숙한, 꽤 커다란 총소리가 들렸다.

“크아아아!”

“크오오!”

털썩. 털썩. 수많은 괴물 놈들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미약하게 들렸다. 살짝 눈을 떠보니 그 많던 괴물 놈들의 대다수가 바닥에 누워 있었고, 남은 놈들은 소장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진성아!”

“괜찮아?”

준우 아저씨와 우민 형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리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며 서 있었다. 우리들의 일행들은 물론이고 마지막 부대에서 죽음의 사투를 넘겼던 군인들 모두가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주루룩.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아. 바보처럼 이렇게 좋은 때에 모두에게 나쁜 꼴을 보여주고 있다니.

“어서 와!”

“서둘러야 해!”

나를 보며 손짓하는 사람들의 손짓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모두에게 내 몸을 맡겼다.

“제길! 잡아! 잡으란 말이다!”

발작적으로 외치는 소장의 목소리에 괴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엎드려!”

동생이었다. 헤어질 때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려면 일단 동생의 말대로 해야 했다.

두두두두두-

한 치의 용서도 없는 총알 세례가 괴물들의 몸을 꿰뚫고 생명을 앗아갔다. 비명을 지른 괴물들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바닥에 누워 죽음을 맞이했다.

“크아오오!”

마침내 모든 괴물들이 쓰러지자 격분한 소장 놈은 하늘을 향해 길게 포효를 해댔다. 그것을 구경 할 만큼 시간이 많지 않아 얼른 다리를 움직였다. 오랜 달리기를 한 끝에 결승점에 도달한 느낌이 이런 걸까. 모두가 있는 곳에 무사히 도달하자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스르르 풀리는 두 다리를 지탱하지 못하자 남자가 나를 부축해주었다. 동생도 옆에서 나를 부축하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서둘러야 돼!”

“……어딜?”

“백신. 아저씨가 말했던 연구소로 가면 백신을 만들 수 있대. 다 말해줬어.”

“하지만 아저씨와 은혜는 이미…….”

소장 놈에 의해 죽어버렸다고는 도저히 말 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알려야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지금 가고 있을 거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가고 있다니? 그럼 둘 다 살아있다는 거야?

“그, 그럼?”

“놈을 붙여뒀다. 아마 놈과 함께 이동하고 있을 거다. 우리도 서둘러야한다.”

“가면…… 이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거야?”

“그럴 거다.”

남자는 나를 등에 업고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때 뒤에서 거대한 포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해일처럼 온 몸을 강타하는 거대한 소리에 모두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젠장맞을…….”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설명 되었다. 물에서 나오는 괴물들의 수가 엄청나게 불어나 있었다. 소장 놈이 거대하게 포효를 지르자 괴물들의 수가 거짓말처럼 수십 배로 불어나 있었다.

“크르르르.”

수면 아래에서 얼굴만 내밀고 우리를 노려보는 수많은 괴물들의 모습은 악마와도 같았다. 하나같이 온전한 괴물의 상태였다. 저 많은 수의 괴물들을 상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군인만큼 쓰기 좋은 재료는 또 없지.”

괴물들의 틈을 헤치고 나온 소장 놈의 모습은 이미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처음 우두머리와 대면할 때의 느낌이었다. 온 몸이 싸하고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소장 놈은 우리를 쭉 훑어보더니 말을 이었다.

“선택해라. 너희 둘만 내게 온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무사히 보내주겠다.”

결국엔 나와 동생이 해답의 열쇠인가.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 모두들 숙연해진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에게 눈치를 주는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개소리 하지 마! 이놈들을 팔면서까지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지도 않다! 괴물 놈아!”

준우 아저씨의 말에 소장 놈은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스윽. 길게 한 팔을 든 소장 놈은 여유만만 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팔을 내리면 총 공격이 시작 될거다. 얼마나 버틸 것 같나?”

그 말에 동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온 모양인지 소총을 앞에 겨누며 말없이 장전을 했다. 그것이 우리의 답이었다. 소장 놈은 다시 한 번 우리를 훑어보고서는 손을 천천히 내렸다.

“…….”

폭풍전야. 넘실거리는 바다와 세차게 부는 바람소리만이 주위를 메우고 있었다. 남자는 주저 없이 나와 동생을 데리고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 검은 색의 중형차가 있었다. 모든 사람들의 목숨을 손에 쥐고 출발하는 것인가.

우리 형제가 풀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러 가는 것인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 상황이 꿈에서만 보던 일인지, 우리 형제가 클론이라는 사실이 정말인지. 아저씨와 은혜가 멀쩡히 살아있다는 것이 사실인지…….

“기다리고 있어.”

웃는 우민 형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곧 따라갈 테니까. 알았지?”

준우 아저씨의 순한 미소를 볼 수가 없었다.

“여긴 우리한테 맡겨두고 어서 가.”

박 중사가 말했다. 남자와 같은 몸을 하고 있었지만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하사 역시 말없이 우리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 외에 자대에 있던 군인들과 봉수 아저씨. 그리고 남은 민간인 남자들. 하나하나 눈에 새겨두고 싶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았다.

“마지막 모습을 잘 봐둬라.”

조수석에 나를 구겨 넣은 남자는 차 위에 올라가 소총을 들었다. 동생 역시 빠른 동작으로 운전석에 앉아 차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부아아앙- 빠르게 미끄러져가는 차에 앉아 백미러로 모두의 모습을 확인했다. 나와 동생이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크아아아!”

그것을 시작으로 검은 파도가 사람들을 덮쳤다. 두두두두- 맹렬한 불꽃을 내뿜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유난히 초라해 보였다.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 주먹을 꽉 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내야만 했다.

“우리가 백신이라고 하더라.”

동생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가 모든 사실을 털어 놓은 듯 했다.

“웃기지 않냐? 기껏 살려고 발버둥 쳐왔는데 모든 일을 해결 할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우리라는 게?”

“거기다 있지도 않은 아빠는 괴물들을 만든 소장 놈이고 말이야.”

“이게 무슨 막장 드라마 같은 경우냐.”

피식 웃으며 말하는 동생의 얼굴은 모든 걸 포기한 듯한 모습이었다. 나도 녀석과 그리 다르지 않은 얼굴일까. 부아앙- 골목 곳곳을 지날 때마다 인간의 모습을 한 놈들이 느릿하게 차를 따라왔다. 빠르게 시청을 벗어나 뻥 뚫린 고속도로를 탔다.

“그래도 다행이야.”

“뭐가?”

“우리만 있으면 다 해결되니까.”

“……그러네.”

그게 동생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우린 말없이 차 앞에 펼쳐지는 휑한 풍경 하나하나를 눈에 담았다. 그동안 우리가 지나오면서 수많은 고비를 넘겼던 도로 위.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우리를 챙겨주던 준우 아저씨. 한 쪽 팔로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던 우민 형. 그리고 모두들. 다음 생이 있다면, 모두와 만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라는 것은 없을 텐데…….

“온다.”

깊은 상념도 잠시, 동생의 목소리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뒤쪽을 보니 검은 색의 안개 같은 것이 쫓아오고 있었다.

“미친…….”

엄청난 속도였다. 내가 알고 있는 괴물들이 아니었다. 이 상태라면 금방은 아니더라도 따라잡힐 것이 뻔했다. 일단은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야만 했다.

“내가 시간을 벌겠다.”

남자는 고개를 들이밀며 말했다.

“제 정신이야? 저런 놈들을 어떻게 네가 다 상대해? 일단 가는 데까지 가보자.”

“이게 메시아의 뜻이다.”

“어? 자, 잠깐만!”

그렇게 말한 남자는 주저 없이 차 위에서 뛰어내렸다. 가뿐히 착지를 한 남자는 힐끔 나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총을 단단히 쥐고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이 한 없이 초라하고 작아보였다. 모두가…… 나와 동생을 위해 망설임 없이 죽음을 택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어. 그리고 우린 가야만 해. 여기서 늦춰지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어.”

남자의 모습을 보던 동생은 담담하게 말했다.

“알아. 하지만…….”

그 뒤의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모두 죽었을 것이다. 남자의 목숨도 머지않아 꺼질 것이 분명했다. 소장의 말대로 어려운 길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모두들 이렇게 죽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난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

“모두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마.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면 돼.”

“……그렇지. 그래야지.”

두두두두. 총소리가 들렸다. 희미하지만 선명한 소리. 괴물 놈들의 비명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동시에 남자의 몸에 생기는 치명상이 눈에 그려졌다. 두두두. 미약한 총소리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5초.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시간동안 남자의 숨이 꺼져버린 것이다.

“크윽…….”

분했다. 무력한 나 자신이 너무나 분했다. 남자의 소중한 생명을 쓰면서까지 번 시간이 겨우 5초였다. 그동안 우리와 함께 했던 시간들에 비해 보잘것 없이 짧아 마음 한켠이 쓰라렸다.

“어?”

휘익. 동생은 급하기 핸들을 꺾으며 운전했다. 그 시선을 따라 앞을 보니 처음 우두머리 놈이 쳐들어 올 때 유용하게 썼던 크레모아들이었다. 크레모아들이 설치된 것을 알았더라면 남자가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기다렸더라면…… 확실히 남자를 잡았더라면…….

“잡생각 하지 마. 지금은 살아남는 게 중요하니까.”

“……넌 아무렇지도 않아? 모두가 죽어버린 이 시점이 슬프지도 않아?”

“난 알고 있었어. 내가 만들어진 존재라는 걸.”

동생의 말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처음부터? 애초에? 그럼 나를 빼고…….

“어릴 때부터 아빠…… 아니, 그 놈이 너를 지켜주라고 했었지. 내가 너를 따서 만들어진 클론이라는 것도 설명해주었어. 나와는 다르게 넌 아주 중요한 존재라고 했지. 온전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고 말이야. 너에 비해 불완전한 나는 널 완전히 지켜줘야만 한다고 주입시켰어. 널 지키면서 배제할 수 있는 감정들은 최대한 없앤 상태로 만들어졌지. 하지만…… 너까지 클론인 줄은 몰랐다.”

어릴 적…… 그래, 소장 놈과 엄마라는 여자는 유독 같은 말을 반복하곤 했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일이었다. 동생이 나를 돌봐야한다는 건 약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동생과 같이 다니면서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눈에 띄게 준 것도 사실이었다. 그 덕에 자연스레 동생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동생은 어느새 나의 우상으로, 롤 모델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이젠 다 필요 없다. 종착점에 도달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 하나하나 따지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네가 만들어진 존재라는 걸 알았을 때 기분이 어땠냐.”

내 물음에 동생은 약간 고민했다.

“아무 생각도 없었어. 그냥 살아가니까 살아가는구나.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살았지. 나중엔 학교생활이 재밌어서 그것도 점차 잊었지만 말이야. 그리고 그놈과 엄마.. 생각보다 나한테 잘해줬거든. 정말 부모처럼.. 이제 와서 생각한다고 한다면…….”

“…….“

“역시 조금은 씁쓸하네.”

쓸쓸히 웃는 동생의 얼굴은 내가 봐오던 얼굴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 역시…… 동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도…… 역시 씁쓸하다.”

그동안의 인생이 모두 꾸며진 것이라면 그보다 더 허무한 인생이 또 있을까. 결국 소모품으로 전락된 나와 동생의 인생을 어느 누가 위로해주고 보상해준단 말인가. 아니, 아니지.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나와 동생의 손에 모든 것이 달려있는 이상 다른 생각은…….

펑. 퍼퍼펑. 펑펑.

수많은 크레모아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희미하게 들리는 걸로 봐서 꽤 거리가 떨어진 것 같았다. 이번 일격으로 더 거리가 벌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서둘러야 했다. 모든 일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라도, 모든 사람들의 목숨을 헛되게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부우웅-

얼마나 갔을까. 어디쯤일까. 주위를 분간해내는 것조차 희미해질 무렵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만약…… 만약에 말이야.”

“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라. 우리.”

“그러겠지…….”

“이 개 같은 일상도, 지겨운 괴물 놈들도, 살아있는 다른 사람들도 다 버리고 죽어버릴지도 몰라.”

오후로 접어들고 있었다. 생사를 함께하던 모두가 나와 동생을 위해 희생한 날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하늘은 왜 이렇게 맑고 화창한 걸까. 왜 이리도 날씨가 좋은 걸까. 비라도 내려줬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위로해줄 시간을 가졌을지도 모르는데…….

“근데…… 역시 죽는 건 싫어.”

동생은 평소 이런 말을 꺼낼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던 놈이 아니었다.

“넌 모르겠지만 난 손해만 보면서 살아왔어. 어릴 때부터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 왜 존재하는지를 알게 됐고, 주입을 받을 때부터 삶의 목적은 오직 너 하나였어. 물론 후회하진 않아. 하지만 이제는 날 위해 살아보고 싶어졌어.”

“…….”

그 말에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동생과는 반대로 난 지극히 평범한…… 아주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놈의 심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소장 놈이 우리를 속였다는 점에서는 같은 감정일지 몰라도, 인생 전부를 누군가에 의해 강요당하며 살아온 동생은 어땠을까.

“억울해. 결국 난 이런 용도로 밖에 쓰이지 않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참을 수 없이 화가 나.”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동생의 표정이었다. 이럴 때 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명색에 형이라는 사람이 하나 뿐인 혈육…… 아니, 클론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

“마지막…… 죽는 순간이 온다면 내가 해. 넌 지금까지의 일들을 모두 보상받을 자격이 있어. 살아서 아저씨와 은혜를 데리고 평범하게 살아.”

“그러면 내가 편하게 살 것 같아? 같이 가자. 어차피 너와 난 같은 존재야. 올 때도 같이, 갈 때도 같이…… 같이 가는 거야.”

“……그래.”

그래. 하지만 넌 살아남았으면 좋겠어. 그동안 너에게 많은 신세를 지며 살아왔지. 넌 내게 그림자였고 분신이었고 나의 하나뿐인 형제였어. 받기만 하며 자라온 나에게…… 내가 유일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너의 목숨을 지켜주는 것뿐이겠지. 물론 뜻대로 되지는 않을 테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너를 지켜내겠어. 이번엔 내가 아니라 너를, 너를 꼭 도와주겠어.

부아아앙-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아주 멀리서 희미한 괴물 놈들의 포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이잉- 창문을 열고 상체를 내밀었다. 아주 까만 먹구름이 꽤 먼 곳에서부터 우리를 쫓고 있었다.

“크아아아!”

가장 선두에 선 놈은 소장 놈이 분명했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엄청난 속도로 우리를 쫓고 있었다. 거센 풍압 때문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뒷좌석 아래에 봐봐. 수류탄 몇 개가 있을 거야.”

다시 자리에 앉자 동생이 말했다.

그 말대로 발 디디는 곳에 수류탄 5~6개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조금이지만 시간을 끌어줄 것이다. 수류탄 두 개를 집어 상체를 내밀었다. 최대한의 힘으로 던져야 했다.

“하앗!”

두 개를 연달아 던졌다. 수류탄은 길게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을 타고 날아갔다. 훌륭한 시간 벌이가 되어주면 좋을 텐데.

펑. 퍼펑.

3초. 4초가량 흐르자 작은 폭발이 일었다. 꽤 많은 수의 놈들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무섭게 보충되는 놈들의 기세에 계획은 무산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중에서도 소장 놈은 단연 선두에 있었다.

“젠장.”

남은 수류탄들을 모조리 던져야 했다. 얼른 뒷좌석에 있는 것들을 집어 연달아 던졌다.

펑. 퍼퍼펑. 퍼펑. 수류탄은 연쇄적으로 터지며 놈들을 삼켰다. 갈색 연기가 뿌옇게 일며 검은 안개를 덮어갔다. 괴물 놈들이 괴멸되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마지막 남은 수류탄들은 우리가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저렇게 조용할리가 없는데…….

“꽉 잡아!”

끼이이익-

“허억!”

동생의 다급한 말과 함께 차체가 급격히 틀어졌다. 그 덕에 창문 밖으로 튀어나갈 뻔했지만 동생의 강한 악력 덕에 무사할 수 있었다. 얼른 조수석에 앉았을 땐 우리의 앞을 막아서는 괴물 놈들이 심심찮게 보이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크오오!”

양쪽 팔이 없는 아니, 상체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놈들의 모습은 이상했다. 평범한 사람의 하체가 아닌 네 개의 다리를 갖고 있는 놈들의 하체. 과연…… 비정상적인 속도로 우리를 추격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저 하체였구나.

쿵. 쿵쿵.

괴물 놈들은 몸을 날리며 우리를 막아섰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몸집이 그리 크지 않고 공격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팔이 없어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제길.”

쿠웅. 용감히 달려든 놈에 의해 앞 유리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육탄돌격. 쪽수로는 훨씬 우세에 있는 놈들에겐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 덕에 지그재그로 길을 벗어나는 차량의 속도는 현저히 줄 수밖에 없었고, 우리의 시간은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제길…… 제기랄! 생각할 틈이 없었다. 동생의 허리 쪽에 있는 소총을 들고 놈들에게 총알 세례를 퍼부었다.

두두두두-

“크아아아!”

으드득. 이를 악물고 전방에 있는 놈들을 처리해나갔다.

“됐어! 얼른 앉아."

어느 정도 처리한 끝에 간신히 앉기는 했지만, 예상보다 빨리 접근한 괴물 놈들의 존재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부아앙- 동생은 있는 대로 속도를 내며 차를 운전했다. 바로 등 뒤에서 들리는 놈들의 포효소리가 무시무시했다. 마지막…… 마지막이다. 이번 한 번만 잘 넘긴다면…….

“어? 저 놈은 뭐야?"

생각에 잠겨있을 때 동생의 황당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어보니 꽤 먼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거구의 괴물 놈이 서 있었다. 온 몸 가득 뭔가를 두르고 있었는데, 특별히 악의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듯 했다.

“아!"

남자의 말대로. 놈은 아저씨와 은혜를 보호하고 우리를 돕기 위해 온 걸지도 몰랐다. 이런 상황에서 놈이 반갑게 느껴질 줄이야.

“생각나? 옛날에 고속도로에서 놈들을 따돌리려고 할 때 쫓기던 놈이야."

“뭐? 저게?"

동생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깜빡이며 연달아 물었다. 그럴 만 했다. 처음 본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체구로 우리 앞에 나타났으니까. 마지막 모습보다 몸집이 더 부풀어 있는 것 같았다. 남자가 죽은 마당에 놈이 우리를 돕는다는 것은 약간의 이성이 남아 있다는 것인가? 예전에 우연히 베풀었던 친절이 놈에게는 잊지 못할 정도로 큰 것이었을까.

“태워야 돼?"

그 말에 선뜻 '응' 이라고 답할 수 없었다. 저런 거구의 놈을 태우기는 어려울 뿐더러 설상 태우더라도 차의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 것이 뻔했다. 마지막…… 정말 마지막이라면 놈이 하려는 것은 남자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냥 지나가자."

부우웅- 말없이 속도를 냈다. 놈은 살기 없이 순한 늑대의 얼굴로 우리를 바라봤다. 온 몸에 두르고 있는 낯선…… 하지만 익히 알고 있는 수류탄들이 보였다. 역시 그런 것이었나. 아저씨는 마지막 관문으로 놈을 세운 것이었다.

“고마워."

달리는 차 안에서 내가 놈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도리였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놈은 그대로 몸을 돌려 짙은 안개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점점 멀어져가는 놈의 뒷모습을 보자 가슴 한 곳이 조여오기 시작했다. 꾸욱. 입술을 세게 물고서 정면을 바라봤다.

“거의 다 왔어."

정면에 보이는 도로 표지판과 그 옆으로 빠지는 샛길이 보였다. 그곳에 아저씨가 입고 있던 셔츠가 걸려 있었다. 서둘러 샛길로 통해 내려갔다. 꽈배기 형식의 도로를 내려올 때 쯤 큰 폭음 소리가 귀를 뒤흔들었다.

“서두르자."

도로를 완전히 내려오자 울창한 숲과 '통행금지' 라는 커다란 표지판이 보였다. 잘못 온 건가?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딱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허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한숨을 쉬며 동생을 바라봤다.

“어쩔래?"

“아저씨라면 우릴 분명히 도와줄 거야. 일단 길이 있을 법한 곳으로 가봐야겠어."

동생은 표지판 옆을 돌아 운전하기 시작했다. 그래. 아저씨라면 분명 어딘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것은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한 하나의 겉치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부아아앙-

비포장 도로 위를 빠르게 달린다. 덜컹거리며 이리저리 흔들리는 차체 탓에 허리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조금 속이 매스꺼웠지만 이를 악물었다. 커다랗게 자란 식물들과 나무들을 거침없이 헤쳐 가며 10분 정도를 주행하자, 넓게 트인 공터가 눈에 들어왔다.

“어?"

자연적인 공간이라고는 설명하기가 부족한…… 아주 넓고 반듯하게 정돈된 공터였다. 얕게 깔린 잔디와 저 멀리 보이는 백색의 건물은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목적지임을 직감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큰 희생이 따랐다. 드디어 결말이 보이는 건가. 이 일에 종지부를 찍어낼 수 있는 건가.

“야…… 저기."

부아앙- 차의 속도를 높이자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왔던 곳과는 전혀 다른 안정감과 속도였다. 슬쩍 고개를 빼 아래를 보니 포장된 도로 위에 잔디가 심어져 있는 기괴한 구조였다. 저런 게 가능하단 말이야?

5분 만에 백색 건물 앞에 도달한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듯 동시에 차문을 열고 걸음을 옮겼다. 다른 색은 찾아볼 수가 없는 백색의 건물이었다. 3~4층 정도의 높이였지만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굳게 닫힌 문을 망설임 없이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병원에서나 맡을 법한 의료 냄새가 후각을 마비시키기 시작했다.

나와 동생은 주위를 둘러보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면에 보이는 엘리베이터 2대와 양 옆으로 쭉 뻗은 어두운 복도였다. 아저씨가 어디로 갔을지 유추해내야만 했다.

“나눠서 갈까?"

동생은 좌우로 뻗은 복도를 가리키며 물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 신중히 해야 해."

“그럼 층마다 확인하는 거야. 대부분 이런 복도에 중요한 실험 도구들을 놓을 리 없으니까. 일단 올라가보자."

“그래."

동생은 소총을 들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붉은 빛이 물들며 무음과 함께 양 옆으로 갈라졌다. 자연스레 올라타려는 그때, 동생의 저지로 뒤로 물릴 수밖에 없었다. 곧 잊을 수 없는 울음소리가 귀로 들렸다.

“크르르르."

작지만 선명하게 빛나는 진홍색 눈은 우리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허리에 달린 대검을 꺼내 들었고, 동생은 소총을 앞으로 겨누어 방아쇠에 손을 가져갔다.

“너희들이로군. 크르르."

괴물은 엄청난 속도로 동생에게 다가갔다. 허나 동생은 냉정을 유지한 채 개머리판을 아래로 크게 휘둘렀다.

“크르르. 기다려라."

터억. 소총의 중간 부분을 가볍게 잡은 괴물은 동생을 보며 말했다.

“이…… 개자식!"

뜻대로 풀리지 않자 욕지거리를 내뱉은 동생은 강한 옆차기로 괴물을 찼다. 그러나 둔탁한 소리만 날 뿐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괴물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희미하지만 냄새가 나는군. 크르르. 네 녀석이 더 높군. 크르."

그렇게 말한 괴물은 소총을 빼앗아 복도 끝 쪽으로 던졌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에 올라 우리에게 손짓을 했다.

“따라와라. 송 박사가 기다리고 있다. 크르르."

그 행동이 너무 사람 같아서 우리는 멍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런 우리의 태도가 답답하게 느껴졌는지 괴물은 언성을 높이며 재촉했다.

“너희들의 처지를 인식하지 못하는가? 크르르르. 어서 타라!"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수많은 희생을 치르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물러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괴물은 송 박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는 건 아저씨와 은혜가 위층에 있다는 소리였다.

아저씨와 깊은 연관이 있는 건가? 일단은 괴물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뭐해?”

동생은 영 찜찜한 얼굴로 괴물을 바라보았다. 가만히 서 있는 동생의 팔을 잡아당겼다. 괴물은 3층 버튼을 눌렀고, 불만 가득한 얼굴로 나를 째려보던 동생은 한숨을 쉬며 서서히 바뀌는 숫자를 바라보았다. 지이이잉- 오래 쓰이지 않은 듯 약간 덜컹거리기는 했지만 올라가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띵-동.

3층.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거친 쇳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이게 대체…….”

눈앞에 보이는 것은 커다란 크기의 깨진 실험관들이었다. 엄청나게 큰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숫자를 헤아리기도 힘든 실험관이었다.

“무사히 왔구나.”

그때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나와 동생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작은 괴물은 아저씨 옆에 서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얼른 아저씨에게 뛰어가 은혜의 안부를 먼저 물었다.

“은혜는요. 은혜는 괜찮나요?”

“오래 버티지 못한다네. 길어야 한 달이야.”

“……그렇군요.”

“진성아, 너에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미안하게 됐다.”

그렇게 말하는 아저씨의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 없던 아저씨였다. 울컥하고 솟아오르려는 뜨거운 것을 간신히 누른 후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면서요.”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나와 동생의 말에 아저씨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뒤쪽에 있는 문으로 걸어갔다.

“이 괴물은 뭐죠?”

처음부터 궁금했던 괴물의 정체에 대해 동생이 물었다.

“과거 나와 같이 연구를 하던 부하 직원. 지금은 이런 꼴이지만.”

“키키키키키.”

괴물은 괴상한 웃음을 흘리며 우리를 흘겨봤다.

“안심해. 비록 이런 상태지만 머리는 정상이니까. 여기서 많은 도움을 줬어.”

아저씨는 문을 열며 말했다.

“……그래요?”

끼이익. 쇠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백색 침대에 시체처럼 누워있는 은혜가 보였다. 다행이구나. 무사했어. 천천히 걸어가 창백해진 은혜의 볼을 쓸어내렸다. 푸석하고 수분기가 없었다. 차가웠다. 이 상태로는…… 한 달이 아니라 일주일도 힘들어 보였다.

“진성아, 진우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야해.”

그렇게 말한 아저씨의 양 손에는 혈액 팩이 들려 있었다. 그 색은 은혜의 몸에서나 볼 수 있었던 녹색이었다. 괴물은 말없이 우리와 은혜를 번갈아 보며 주위를 서성거렸다. 아저씨는 한 걸음 내딛으며 팩을 내밀었다.

“이걸 다 들이키면 진우의 몸 전체가 백신화가 이루어질 거야.”

“제가 백신이 된다고요?”

동생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팩을 받아들었다.

“그 과정은 상당히 고통스럽겠지만, 확실하다네.”

“어째서…… 모두가 죽고 난 뒤에 이런 사실을 알려준 거죠? 처음부터 우리가 필요하다고 했더라면…… 이렇게 많은 괴물들이 활개치고 다니지는 않았을 거예요.”

“아니야. 자네들이 필요할 만큼 심각한 일은 아니었어. 처음엔 그랬지…….”

아저씨는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헌…… 그 사람도 처음부터 나쁜 생각으로 이 실험을 했던 건 아니야.”

“……그럼요?”

“불치병 치료에 목적을 두고 실험을 하게 되었지. 외부가 아니라 내부부터 바꾸어 나간다면 근본적인 병의 원인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어. 유전자부터 조금씩 바꾸어 나간다면 애초에 원인을 잘라낼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 일리가 있는 말이었어. 논문에서나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 의술기술을 보면 가능한 일이었지.”

그렇게 말한 아저씨는 남은 팩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꽤 무거웠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생명의 무게인걸까.

“연구는 활발히 진행됐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우리 모두는 같은 뜻을 갖고 있었고 그렇게 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 그 표본을 발견하기 전까진 말이야.”

“표본이요?”

“남극세종기지에서 연락이 왔다네. 이상한 생명을 발견했다고 말이야. 단순히 과학자로서의 호기심을 가진 우리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어. 꽁꽁 언 얼음 안에 있는 검은 색의 생명체를 보았을 땐 매우 흥미롭고 신기했지. 얼마나 됐는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었어. 그렇다고 어렵게 받은 표본을 그대로 썩힐 수는 없었지. 곧 괴 생명의 유전자를 채취해내는 작업에 들어갔고 우리들은 성공했다네.”

대충 감이 잡혀갔다. 소장 놈이 자신을 창시자라고 칭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채취를 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것을 실제 생명체에게 투입을 해보거나 다른 유전자로 변이시키는 일은 매우 조심스러웠어. 소극적인 태도를 가진 연구원들도 그랬지만 뒤에 있는 정부의 힘을 무시하지 못했지. 그 중에서도 이헌은 매우 진보적인 사람이었어. 그는 괴 생명체에서 채취한 유전자들을 몰래 빼내 쥐들에게 실험을 시작했지.”

“키키키키키. 나도 기억해.”

괴물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쥐가 변하기 시작한건 반나절이 지난 후였다네. 급속도로 몸이 커지고 흉폭 해진 쥐들은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했고, 실험실을 뛰쳐나와 많은 연구원들에게 상처를 남기고 죽어버렸지. 그리고…… 자네도 예상하고 있겠지만 작은 상처를 입은 연구원들이 변하는 데에는 반나절이 지나지 않았다네. 매우 빠르고 더 흉폭 하게 변하게 되었지.”

“키키키키.”

“그 때는 온전한 괴물의 모습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에 버금가는 폭력성이나 식욕을 갖고 있었어. 그들을 한 명 한 명을 가두어 실험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조용해서 많은 의의가 제기되기도 했지. 그러나 그것이 철회되는 일은 없었어. 더욱 이상한 점은 이헌이라는 자가 소장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고, 새로운 생명체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점이지.”

그 소장 놈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그런 일을 벌였을지도 모른다. 오랜 연구 끝에도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자 다른 곳으로 시선이 쏠린 거겠지. 그 쪽이 성과를 내기도 쉬웠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정부를 움직였을까.

“그때부터 이상하게 돌아갔어. 매주 충원되는 실험자들과 괴 생명체에서 캐낸 바이러스 같은 성분을 주입하는 날들의 연속이었지. 그들 모두가 괴물이 되었지만 한 가지 밝혀낼 수 있었던 건 괴물이 된 모두가 전에 걸렸던 병을 모조리 극복해냈다는 점이지.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따랐지만 엄청난 발견이었기에 우리들의 인식은 죽어 있었어. 아니, 우리들은 이미 괴물이었을지도 모르겠네.”

“……병이 다 나았다고요? 괴물로 변하는 즉시?”

내 물음에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학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 하지만 그렇게 되었고, 실제로 이루어졌어. 역사에 남을 만한 혁명적인 일은 분명했지만 그대로 발표할 수는 없었지. 병을 치료하는 최선의 방법이 괴물로 변하는 것이라고 제안한다면, 어느 누가 좋다고 하겠어. 우린 거기서 괴물로 변하게 하는 원인을 찾아내야만 했어.”

“실패했지. 키키키키.”

“맞아. 하지만 이헌은 욕심이 컸고 야망도 대단했지. 그는 다른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어.”

아저씨는 은혜의 발치에 있는 괴물을 가리켰다.

“괴물들을 도시 곳곳에 푸는 것이지.”

“……풀어요?”

오년 전…… 최초의 불치병 치료를 위해 시작된 괴물의 탄생. 그리고 도시 곳곳에 나타난 괴물들의 공격. 그 위치를 알고 있는 정부와 비밀리에 조직된 소규모 특수부대들. 임상실험자들을 모집하고 은혜라는 결과를 얻게 된 건가. 대충 앞뒤가 맞아떨어지는군.

“뒤를 봐주는 정부가 있었기에 이헌은 망설이지 않았어. 그때부터 그는 미쳐가고 있었어. 고지를 앞에 두고 결과물에 넋이 나간 상태였지. 사람들이 많은 곳에 괴물들을 풀고 공격을 당해도 변하지 않는, '면역'이 있는 사람들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다네.”

“그마저도 실패했군요?”

“그렇지. 그땐 이미 많은 수의 괴물들이 우리나라에서 살아가고 있었어. 그 뒤의 얘기는 자네들도 알고 있으니 따로 설명하지 않겠네.”

그 말에 나와 동생은 충격에 휩싸였다. 애초에 모든게..

"그럼.. 다른 나라에도 괴물들이?"

동생의 물음에 아저씨는 확신하기 어렵다는 듯 눈매를 모으며 답했다.

"당시엔 그렇지 않았지만.. 지금은 모르겠어. 모든 병을 고친 뒤 괴물에서 인간으로 돌아가는 이 프로세스는 해외에서도 군침을 흘릴 만한 일이거든.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케이스와 샘플이 필요했고. 뒤를 봐주던 정부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애기가 되겠지."

그럼 전세계적으로 괴물들이 뻗어나가고 있다는 말인건가? 생각보다 상황이 안좋구나.

“지금 와서 이걸 마시면 달라지는 게 있나요?”

내 물음에 아저씨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다만 한 명은 나와 여기 있어야 하네.”

아저씨의 목소리와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 말인 즉 백신화가 된 몸으로 괴물들을 상대해야한다는 말인가? 폴짝거리던 괴물은 아저씨에게 다가와 커다란 이빨을 내보이며 입을 열었다.

“송 박사는 이미 백신화가 되었지. 크르르.”

“예? 아저씨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뜬 동생은 아저씨를 보며 물었다. 아저씨는 말없이 왼쪽 손목을 내밀어 바닥에 굴러다니는 뾰족한 칼로 손목을 그었다. 뚜둑. 뚝. 붉은 색이 아닌 진한 녹색의 핏물이 바닥에 고이기 시작했다.

“키키키키키키.”

떨어지는 핏물을 손가락으로 찍어낸 괴물은 주위를 폴짝이며 뛰어다녔다. 동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났다.

“이럴 수가…… 왜 그걸 속였죠?”

“속인 게 아니라 숨긴 거였다네. 이 사실은 이헌도 모르고 있지. 그에게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답이라네.”

곧 숨을 크게 내쉰 동생은 혈액 팩을 따 녹색 액을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그 머뭇거림 없는 행동에 자극을 받아서인지 나도 동생을 따라 녹색 액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배가 부르다는 것만 느껴질 뿐이었다. 아저씨는 녹색 액을 비워낸 우리를 보며 무릎을 꿇었다. 괴물은 즐겁다는 듯 괴상을 소리를 내며 아저씨의 등 위에 올라탔다.

“한 명은 나와 괴물들을 막아줘야 하네. 다른 한 명은 옥상에 있는 헬기를 타고 이 나라를 벗어나야 해. 그래야 이 나라를 정화시킬 수가 있어. 모두를 구할 수가 있어.”

아저씨의 두 눈에서는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저씨는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염치없는 부탁이라는 거 알고 있네. 하지만 나 혼자로는 많은 수의 괴물들을 감당하기엔 벅차다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위해서는 자네 중 한명의 도움이 필요해.”

그 말에 우리 둘은 선뜻 나서지 못했다.

“키키키키.”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지만 동생에게 말했다. 죽는 순간이 온다면 네가 아니라 내가 될 거라고. 형으로서, 같은 클론으로서 오랫동안 나를 지켜줬던 동생을 위해…… 이번엔 내가 나설 차례였다.

“제가 갈게요.”

내 말에 동생은 말없이 눈물을 흘렸고, 괴물은 기괴하게 웃으며 손가락질을 했다. 곧 숨을 크게 들이마신 아저씨는 눈물을 거칠게 닦아내고 동생을 바라봤다.

“은혜를 부탁하네. 바로 옆에 있는 계단을 통해 죽 올라가면 헬기가 하나 있을 거야. 조종은 이 친구가 할 줄 아니 안심하게.”

“안심하라고. 키키키키.”

사악한 미소를 지은 괴물은 머뭇거림 없이 문을 나섰다. 말없이 서 있는 동생은 멍한 얼굴로 은혜를 바라볼 뿐이었다.

“잘했어. 여기까지 정말 수고했어. 이제 넌 평범하게 살아. 그동안 당한 것들을 모두 날려버리고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아.”

내 말에 말 없이 입술을 물어뜯는 동생을 오래 볼 수가 없었다. 서둘러 몸을 돌린다.

“얼른 가죠. 아저씨.”

아저씨는 동생의 어깨를 두드리며 문을 나섰다. 서둘러 그 뒤를 따르려고 할 때 동생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마워.”

웃음이라도 지어주고 싶었지만, 어느새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크게 숨을 내쉬었다. 죽으러간다는 것이, 여기가 모든 일의 종착점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모두를 위해서, 동생과 은혜를 위해서 나 한 몸 바친다는 것이 두렵고 무서웠다.

다른 사람들 모두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검은 안개 속에서 혈투를 벌이면서까지 나와 동생을 지켜낼 때의 감정이 이랬을까.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공허한 감정이었을까. 지이잉-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렸다.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잘한 선택이야. 남자답게 죽을 수 있는 명예로운 선택이야.

“이제 다 끝난 거죠?”

내 말에 아저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후…….”

절로 나오는 한숨은 어쩔 수가 없었다. 동생이 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미련만 남는 이별은 우리 둘에게도 좋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려는 순간, 아저씨가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진우야.”

“네?”

동생? 어째서 여기 있는 거지? 아저씨의 표정은 왜 그렇게…….

퍼억.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힘이 쭉 빠지며 다리가 풀렸다. 급격히 빠져나가는 힘을 짜내 최대한 몸을 돌려 동생을 바라봤다.

“잘 가.”

동생은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었다.

두두두두두두.

엄청난 소음 소리와 함께 강한 풍압이 온 몸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짜릿한 충격에 저절로 눈이 떠졌고 곧 몸을 일으켰다.

“어째서…… 어째서…….”

이곳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었다. 나는 분명 아저씨와 함께…….

“키키키키키.”

앞 조종석에서 앉아 있던 괴물은 나를 보며 웃었다. 조수석에 은혜의 뒷모습이 보였다. 어째서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거지? 동생은? 아저씨는?

“조심하라고. 키키키키.”

괴물은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슬쩍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보니 백색의 건물이 제법 작게 보일 정도로 높게 떠 있었다. 거대한 헬기의 소음 소리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이대로 갈 수 없어. 아래에는…….

“내 동생은! 내 동생은 어디 있어!”

거대한 소음 때문에 목소리가 파묻혔다. 크윽…… 최대한 몸을 낮춰 괴물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았다.

“내 동생!”

괴물은 말없이 아래를 가리키며 웃었다. 그럴 리가…… 그럴 수가…… 동생을 위해 목숨까지 내던진다고 했는데…….

“키야아아! 송박사!”

괴물들의 웅장한 소리가 들렸다. 훤히 열려 있는 문으로 다가가 고개를 내밀자, 거대한 흑막 하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크오오오!”

그대로 시선을 따라 건물 앞을 보니 아저씨와 동생으로 추정되는 두 사람이 가만히 서 있었다.

“키키키키. 운 좋은 줄 알라고.”

마지막까지 동생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었다. 조금의 망설임 없이 나섰더라면 동생이 저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머뭇거리던 꼴을…… 그 꼴을 보였기 때문에…….

두두두두두. 거대한 헬기의 소음과 함께 흑막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두 사람에게 접근하는 괴물 놈들에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멍하니 서서 거대한 흑막을 맞이하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크오오!”

거대한 흑막은 그대로 두 사람을 집어삼켰고, 곧 백색 건물들을 차례로 점거해 나가기 시작했다. 허무했다. 같이 살아남을 것 같은 사람들이 괴물들에게 당하는 모습이 너무나 분했다.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무력해지지 말자고 그렇게 악을 쓰며 노력해왔는데, 남을 지키기 위해 강해지자고 그렇게 노력해왔는데…….

“끄…… 끄윽…….”

결국에 난 끝까지 무능하고 도움만 받으며 살아남았다. 내 몸이 백신화가 되었고, 희망이 있다고는 하지만 죽어버린 사람들을 다시 살릴 수는 없었다. 모든 사람들은 끝내 나를 지키기 위해 희생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지금부터가 재미있을 거라고. 키키키키.”

그 말과 함께 헬기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건물 끄트머리에 있던 흑막들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괴성을 지르며 서로를 공격하는 모습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키키키. 둘은 허망하게 죽은 게 아니라고. 저런 식으로 괴물들에게 백신을 옮기고 있는 것이지. 키키.”

“뭐…… 뭐?”

“키키키키.”

두두두두. 거대한 소음과 함께 헬기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괴물들이 있던 곳도 점차 지옥의 한 장면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수백, 수천마리의 괴물들이 죽어나가며 뿜어내는 검은 털들 때문에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캬오오!”

인간으로 된 정화된 괴물들은 자신의 동족을 거리낌 없이 뜯어먹었다. 하지만 정화중이던 몸에는 백신의 기운이 강하게 남아 있었고, 그것을 먹은 괴물들은 빠른 속도로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백신을 퍼뜨릴 줄이야. 그 일렬은 마치 거대한 파도 같았다.

“키키키키키. 장관이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것이 완전한 점으로 변하게 되었을 때, 참고 있던 것들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아!”

엄청난 격통에 말을 듣지 않았다. 온 몸을 불로 지지는 듯한 생생한 고통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살고 싶다.’ 라는 생각만 들었다. 나를 위해 마지막 희생을 한 아저씨와 동생.. 모두가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왜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무언가가 머릿속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시작됐군.”

내게 다가온 괴물은 이리저리 내 몸을 훑어보고는 옆문을 닫았다. 찌이이잉- 귓속을 때리는 엄청난 소음과 통증에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지독하다. 이런 고통 속에서도 왜 정신은 온전한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기다려라. 곧 편해질 테니. 키킥.”

“끄아아아!”

온 몸을 두드리는 고통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 그보다 더 괴로운 건 내 기억이 조금씩…… 확실하게 지워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끝까지 나를 위해 힘써주었던…… 모든 이들을 기억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으아아아악!”

시선을 돌려 조종석에 앉아 있는 은혜를 바라보았다. 마지막……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은혜를 한 번이라도 눈에 담고 싶었다. 은혜야…… 은혜야. 내 간절한 염원이 닿았을까. 천천히 고개를 돌린 은혜가 나를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잘 가.”

따끔거리는 통증에 눈을 떠 보니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 두 명이 내 팔에 굵은 주사바늘을 꽂고 있었다. 곧 내 몸에 있는 피를 뽑아내며 그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약간은 상기된 얼굴로 서로를 보며 웃고 있는게 보였다. 그들은 의식을 차린 나를 발견하고서는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

그러나 들리지 않았다. 무슨 소리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건 어디 나라에서도 들어본 적도 없는 매우 해괴한 언어였다.

“저, 저기요. 여기가 대체 어디죠?”

“@#$%@#”

“$#%#$%^”

의사 둘은 심각한 얼굴로 뭐라고 얘기를 하더니 주사바늘을 뽑아내고는 병실 밖으로 나갔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나 병실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콱 막힌 공간에 안쪽에서는 열 수 없는 문의 구조다. 갇혀버린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열기 위해 갖은 수를 써봤지만 문은 요지부동이었다. 게다가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움직이기는 했지만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느낌…… 무언가 커다란 물체가 내 몸 안에 가득 쌓여 있는 더러운 느낌이었다.

“…….”

어째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 걸까. 난 여기에 왜 왔고 저들은 누구일까. 왜 말이 통하지 않는 걸까.

“#$%#^#”

그 때 문이 열리며 간호사로 보이는 두 명이 들어왔다. 그 뒤로 딸려오는 음식을 가만히 보니 먹음직스러운 수프와 얇게 썬 빵이 전부였다.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내게 음식을 건넨 간호사들은 멀찌감치 물러나 내 행동을 가만히 관찰했다. 대체 왜?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거지.

꼬르륵.

이것저것 생각하기엔 허기가 너무 강했다. 오랫동안 먹지 않았던가? 배가 고픈 걸 떠나서 아픈 것 같았다. 스프와 빵을 어느 정도 먹자 꼬르륵거리는 소리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맛있지만 않지만 나름대로 먹을 만 했다. 식사를 마치자 간호사들은 남은 그릇을 가져갔고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내게 말했다. 이건 어디의 말도 아니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 온 거지? 어째서 저런 언어가 존재하는 거지?

“후…….”

이 상황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골똘히 생각에 잠겨서일까. 몸이 급속도로 피곤해지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아침. 어제와 마찬가지로 느껴지는 따끔한 통증에 눈을 떠보니 두 의사가 같은 행동으로 내 몸에서 피를 뽑아내고 있었다.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니 어제보다는 약간 풀어진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

허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작업이 끝날 때까지 적당히 기다려주었다. 1분가량 피를 뽑아낸 그들은 서로를 보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는 병실을 나갔다. 그리고 몇 십분 후 간호사들이 식사를 갖고 들어왔다.

같은 패턴의 반복이었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몸에서 느껴지던 짐 같은 무게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었고, 잠을 자는 횟수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삼일, 사일, 칠일, 열흘…… 얼마나 갔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생활에 질릴 법도 하지만 이상하게 질리지가 않았다. 마치 그래야하고 꼭 해야만 하는 것처럼 순순히 그들을 따랐고, 그들도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에게 미소를 자주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 때문에 그들 모두가 밝게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아침마다 느껴지는 따끔한 통증 대신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낯선 기분에 눈을 떠 보니 흑발에 단발머리를 한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째서 낯설지가 않을까.

“안녕.”

뜻밖이었다. 여자 아이가 내뱉는 말을 내가 이해할 수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누, 누구?”

이 아이도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것일까. 여자 아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기억을 잃었구나. 나도 그랬어.”

“……넌 내가 누군지 알고 있어?”

내 물음에 여자 아이는 여전히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진성. 너의 이름은 이진성이야.”

“……이진성?”

“나와 같은 모습이 된 거지. 그래서 말이 통하는 거야.”

“무슨 소리야?”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미쳤다.’ 라고 말할지도 몰라. 하지만 틀려. 우리들은 미친 게 아니라 ‘다른 것.’ 뿐이야.”

여자 아이의 말을 하나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애초에 미쳤다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내가 더 이상했고, 어째서인지 이 아이와는 동질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넌 누구야?”

“은혜. 내 이름은 은혜야.”

“……은혜라고?”

“고생 많았어. 너에게는 많은 신세를 졌지. 나에게 많은 말을 해주었어.”

분명…… 어디선가 들었던 이름이다. 그러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째서…… 익숙한 이름은 분명한데.

“모두가 죽었어. 괴물들도 사라졌으면 좋겠는데..”

“괴물? 모두가 죽어?”

“그리고…… 우리도 죽어. 얼마 살지 못 할거야.”

그 말은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이대로 죽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나 허무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바보처럼 살아온 것이 전부인데……

“그동안 고마웠어. 난 오늘을 넘기기 힘들 거야.”

“무슨 소리야. 이렇게 건강해 보이는데.”

“난 죽음을 택할 수가 있어. 우리 때문에 모두가 죽었어. 이제 우리도 그 뒤를 따라가야 해.”

“웃기지마. 난 싫어. 죽기 싫다고!”

어째서 소리를 질렀던 것일까. 이 아이도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가여운 아인데, 어째서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일까.

“사람들은 모르고 있어. 진정한 괴물은 바로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그만해. 그만하라고!”

“내면에 있는 것이 바로 진정한 악이라는 것을…….”

나도 모르게 은혜라고 불린 아이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숨이 막힐 터인데…… 고통스러울 텐데…… 은혜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조금씩 입을 열어 간신히 말을 했다. 마치 '안녕.' 이라고 한 것 같았다.

콰앙!

그와 동시에 두 명의 의사가 들어와 나를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힘을 당하지 못한 나는 그대로 은혜를 놓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무표정하게 서 있던 은혜는 그대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버렸다.

분하다. 뭔가가 이상하다. 슬펐다. 괴로웠다.

“…….”

은혜가 남긴 작은 온기가 손에서 달아나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왜 그럴까. 유일하게 말이 통해서일까. 아니면 정말로 그 여자애 말대로 우린 서로가 알고 있었던 걸까?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 한켠이 아려오고 아파오는지 모르겠다. 정말..

한숨을 쉬며 침대에 눕는다. 더 이상 내겐 자유란 없는걸까. 나갈 수는 없는걸까.

**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그저 멍청하게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정신도 멍해지는 것 같은 더러운 기분이다. 문득. 아주 문득 은혜라는 여자애가 보고싶어졌다. 유일하게 나와 말이 통하기도 하거니와 왠지 그 여자애라면 나에 대해 뭔가 설명해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사과를 하고 싶기도 하지만.. 문제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에겐 내 말이 도통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애써 그들의 말을 이해하려고 공부하려 노력했지만 단단히 굳어버린 내 머리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

주사 바늘을 뽑으며 작게 미소 짓는 의사를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곧 몸을 돌려 돌아가는 의사를 가만히 보니 매우 빠른 속도로 문이 젖혀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은 검은 색의 긴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의사는 곧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는데 그보다 후드를 입은 사람들의 동작이 더 날랬다. 푸슉. 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색의 잉크 같은 것이 온 바닥과 벽을 칠하기 시작했다. 곧 내게로 다가온 후드들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

허나 뭔가 이상했다. 익히 보아왔던.. 의사나 간호사들의 손과는 매우 다른 손을 그들은 갖고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검은 물질이 있다면 이런 것일까. 칠흑 같은 손을 가만히 바라보며 고개를 위로 드니 진한.. 아주 진한 루비색의 눈동자가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따뜻함에 매료되서일까. 난 그들의 손을 굳게 잡았다. 내 손을 귀중한 보물인양 조심스레 받아든 그들은 뭐라 외치더니 곧 내 몸은 빠르게 이동되기 시작했다.

**

- 실험보고 -

한국에서 발견한 유일한 생존자 01 과 02 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한 자폐 증세를 보이고 있으며, 보통 사람과는 다른 녹색의 혈액을 갖고 있음. 그와 동시에 발견된 작은 괴 생명체는 자유로이 소통이 되었지만 급격히 심해진 광기 때문에 사살할 수밖에 없었음.

생존자들의 혈액은 이 사태를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이며 소중한 백신임.

- 1일차 -

아침마다 01의 피를 뽑아내는 일을 진행함.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 02와는 다르게 거부 반응이 덜함.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려고 하지만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구사함. 지내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으나 때때로 잠을 자면서 가위에 눌리는 것 같음.

01과는 반대로 02는 매우 거부 반응이 심함. 01과 또래로 보이지만 오래 살지 못할 것으로 보임. 거부 반응이 강한 점 외엔 특이점을 찾아볼 수가 없음.

- 3일차 -

01과 02 모두 아침마다 이루어지는 백신 채취에 익숙해진 듯함. 02는 힘이 없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듯 했고, 01는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의사들을 관찰하고 있음. 꾸준한 의사소통으로 조금이나마 사고를 바꾸려고 했지만 불가능함.

그에따라 실험을 하고 싶지만 여기에 있는 여건상 불가능해 보임. 추후 본부로 복귀한다면 실험을 진행하겠음.

- 5일차 -

01과 02 모두 안색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음. 더 이상 온전한 피를 생산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임.

- 7일차 -

01과 02를 한 방에 두자 정상인처럼 얘기를 하기 시작함. 그 말을 알아내려 많은 연구원들이 암호해석을 했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말임. 이 건은 본부로 돌아가면 본격적으로 연구해보겠음.

곧 01이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며 02를 공격했고, 바로 둘을 격리시킴.

- 8일차 -

02가 사망함. 01에게 당한 충격이 컸던지 방에 돌아오자마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사체에 남아 있는 백신은 모조리 회수 처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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