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밖에 나가지 마시오 part.16
“으아아아! 제기랄!”
누군가가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녀석의 몸에 박힌 총알의 수가 어마어마하다. 그럼에도 저렇게 움직이며 우리를 압박하는 꼴이라니.. 과연 녀석은 달랐다. 그러나 멈출 순 없었다. 이대로 손을 놓아버리면 끝이었다. 다시 한 번 소총을 강하게 쥐며 호흡을 들이마신다. 휘잉- 바람소리와 함께 뭔가 우두머리 곁을 지나쳐 갔다.
푸학. 엄청난 양의 피가 허공으로 튀었다. 우두머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박 중사가 날카로운 대검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서 있었다. 상의가 거의 없어질 정도로 찢겨져 있었고 상처들 틈으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쥐새끼 같은 놈이…….”
우두머리는 박 중사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흡사 한 마리의 괴수를 보는 것 같았다. 박 중사는 우두머리 녀석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상태로 입을 열었다.
“놈들이 온다. 통로를 엄호해.”
우리는 말없이 박 중사의 말을 따랐다. 서둘러 통로 쪽으로 뛰어갔다. 김 상병은 창백한 안색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왼손에는 주사기를 단단히 잡고 있는 상태였다. 준우 아저씨가 빠르게 뛰어가 김 상병의 볼을 강하게 때렸다.
짜악.
“정신 차려! 죽고 싶어?”
그제야 김 상병의 눈에 서서히 생기가 돌아왔다. 그는 곧 소총과 주사기를 강하게 잡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저런 상태라면 이것을 쓸 기회가 없어요.”
“알아. 기회는 반드시 온다. 일단은 여기를 막고 있는 수밖에 없어.”
준우 아저씨의 말을 시작으로 통로 저편에서 녀석들의 포효소리가 들렸다. 앞뒤가 꽉 막힌 상황이었다. 이대로 버틸 수 있을까? 동생은 내 마음을 읽었는지 부상당한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서둘러!”
우리는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는 통로를 예의주시했다.
“크르르르.”
“크르르.”
녀석들은 우리를 빤히 보더니 뒤에서 들려오는 우두머리의 비명에 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 들려오는 우두머리의 비명 소리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는 튀어나갈 자세를 했다.
“쏴! 지금 쏴야 돼!”
준우 아저씨의 말에 우리는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
소총이 흔들리며 총알이 나아갔다. 녀석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나 뒤에 있는 놈들의 수가 더 많았다.
“받아!”
남은 탄알 집을 챙겨 온 동생이 우리에게 적당히 나눠주었다. 슬쩍 탄알 집을 보니 그다지 많은 상태가 아니었다.
“크아아아!”
녀석들의 공세는 더욱 거세져갔다. 상황은 점점 절망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드디어 우려했던 순간이 왔다. 준우 아저씨의 총알이 모두 떨어진 것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안타깝게 바라볼 시간이 없었다.
“젠장!”
준우 아저씨는 소총을 던져버리고는 대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가 생각났는지 뒤쪽으로 빠르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진성아. 김 상병! 나 좀 도와줘!”
하지만 여기 상황도 그렇게 좋지 않았다. 어떡해야 하지? 김 상병도 나와 같은 심정인지 준우 아저씨와 정면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탄알 집 하나씩 주고 가. 최대한 버텨볼 테니까.”
아저씨가 나서며 말했다. 그 옆에 선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고마워요. 인사는 살아남은 다음에 꼭 할 테니까 무사히 있어줘요. 서둘러 탄알 집 하나를 동생에게 건네고 준우 아저씨 쪽으로 뛰어갔다. 준우 아저씨는 이 하사의 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적거렸다. 곧 자그마한 주사기를 발견하고는 서서히 일어났다.
“아저씨 설마?”
“그래. 이 방법 밖에 없어. 우두머리 녀석을 저지해야 저 녀석들도 도망갈 거야.”
준우 아저씨는 굳은 얼굴로 주사기를 잡았다. 김 상병도 왼손에 쥔 주사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떻게……?”
“기회는 온다. 대기하고 있자고…… 진성아 네가 시선 좀 끌어줘.”
“네.”
박 중사와 혈투를 벌이고 있는 우두머리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접근을 모르는 눈치인지 박 중사에게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크르르."
녀석의 몸에는 전보다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아!"
박 중사는 날카로운 단검을 이용해 우두머리 녀석에게 흠집을 냈다. 하지만 워낙에 단단한 탓에 급소를 노리지 못했다.
"쥐새끼 같은 놈!"
박 중사는 우두머리의 공격을 요령 있게 피하며 뒤로 물러났다. 녀석은 그런 박 중사를 잡으려 움직였지만 어느정도 체력이 고갈난 모양인지 쉽사리 잡지 못하고 있었다.
“!!”
순간 나를 발견한 우두머리. 바로 목표를 바꾸며 거친 호흡을 뿜었다. 시퍼런 안광을 빛낸 녀석은 내게 달려들었다.
"이놈!"
녀석의 존재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슈슉. 그때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호기심에 눈을 떠보니 피범벅이 된 남자가 나를 안고 뒤로 물러나 있었다. 남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남자를 부축했다.
“괜찮아?”
“…….”
남자는 말없이 우두머리를 바라보았다. 점차 양상이 과열되자 몰래 숨어 있던 준우 아저씨와 김 상병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이. 몸 좀 움직일 수 있겠어?”
“……가능하다.”
“시간 좀 끌어줘. 우리가 이 주사기로 저 놈을 멈추게 할 테니까.”
남자는 준우 아저씨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놀라운 속도로 우두머리에게 다가갔다.
우두머리는 고개를 힐끗 돌려 남자를 보았다. 남자의 손에는 어느새 들린 단검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우두머리는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뒤로 점프를 하며 남자의 일격을 피했다. 그러나 박 중사의 존재를 너무 과시하고 있었다.
푸욱!
박 중사의 단검이 우두머리의 살을 꿰뚫었다. 곧 박 중사는 괴성을 지르며 단검을 이리저리 돌려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우두머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대검을 비트는 박 중사를 강하게 쳐냈다. 남자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우두머리의 머리 쪽으로 다가가 단검을 내려찍었다. 하지만 위협을 감지한 우두머리는 뼈 밖에 남지 않은 손으로 머리를 보호했다.
푸욱!
그러나 성과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뼈 밖에 남지 않은 손 사이로 대검을 찔러 넣은 남자는 우두머리와 거리를 이격시켰다.
“크아아아!”
우두머리는 괴로워하며 다른 손으로 단검을 빼내었다. 한 쪽 눈이 완전히 마비가 된 우두머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남자와 우리를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애벌레 새끼들! 내가 죽더라도 살아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는 게 좋을 거다!”
그렇게 말한 우두머리가 조금은 느려진 속도로 남자를 압박해갔다. 준우 아저씨가 내 등을 떠밀었다.
“지금이다. 기회는 많지 않아.”
우두머리의 옆구리로 파고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
얼마 남지 않은 총알이었다. 내 생명의 무게와 다름없는 소총. 부디 우두머리 녀석의 발을 묶어주길…….
“크으으.”
몸을 구부린 우두머리는 나를 보지도 않고 다른 손을 휘둘렀다. 거대한 손은 바로 머리 위를 향해 날아갔다.
“으아아아!”
다시 몸을 일으켜 녀석에게 총알 세례를 퍼부었다. 그 틈에 남자는 우두머리의 등에 올라타 대검을 꽂아 넣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이윽고 우두머리의 등이 넓게 베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느낀 우두머리는 그대로 몸을 돌려 벽 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이대로 몸을 돌려 남자를 뭉개버릴 심산이었다. 그것을 가만히 보던 준우 아저씨와 김 상병도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서둘러 나도 움직였다. 저 멀리 튀어나간 박 중사도 몸을 꿈틀거리며 일어나려고 애쓰고 있었다.
콰앙!
벽에 충격을 준 우두머리는 우리를 지긋이 노려보았다. 하지만 날렵하게 몸을 빼낸 남자는 대검을 들고 우두머리의 허벅지를 길게 베었다.
“이 빌어먹을 새끼!”
우두머리는 괴성을 지르며 남자의 몸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우리는 서둘러 녀석에게 다가갔다. 남자를 도와야 해! 바로 소총을 들고 우두머리의 머리 쪽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
우두머리의 입안에 총알들이 박혔다. 고개를 뒤로 젖힌 우두머리는 격하게 피를 토해내며 남자를 더욱 꽉 움켜잡았다. 뿌득. 뿌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두 다리가 축 늘어졌다. 그 순간 박 중사가 빠르게 다가가 괴물의 목 쪽에 대검을 꽂았다.
푸욱!
“크르르르.”
우두머리는 비릿하게 웃었다. 일부러 맞아준 것이었다. 곧 녀석은 박 중사의 몸을 단단히 압박해가기 시작했다.
"하!"
그제야 우두머리에게 접근한 준우 아저씨와 김 상병은 우두머리의 양 허벅지에 주사를 꽂아 넣었다.
“크르르…….”
작은 충격을 감지한 우두머리는 강하게 다리를 틀어 김 상병과 준우 아저씨를 걷어찼다.
퍼억. 퍽. 그러나 두 사람은 몸을 휘청거리기만 할 뿐 날아가지 않았다. 그 광경에 당황한 것은 우두머리나 우리들도 마찬가지였다. 박 중사는 그 틈을 이용해 우두머리의 명치에 박힌 단검을 빼내 그대로 심장을 노렸다.
하지만 우두머리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미련 없이 박 중사를 내동댕이 친 우두머리는 서둘러 자세를 다잡았다. 하지만 곧 녀석의 신형이 크게 흔들렸다.
“크르…… 크르르…….”
우두머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이내 우두머리의 몸에서 미세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 남자가 변할 때처럼 우두머리의 몸에 있던 털들이 바람에 휘날리기 시작했다. 샤라락. 우두머리는 눈을 크게 뜨며 한 없이 날려대는 털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금이야! 박 중사!”
무릎을 꿇고 있던 준우 아저씨가 박 중사에게 다가가 부축했다. 박 중사는 거칠게 입안에 고인 피를 뱉어내고는 우두머리를 향해 도약했다. 그리고는 멍하니 서 있는 우두머리의 정수리에 대검을 꽂았다.
푸욱!
우두머리는 멍한 얼굴로 대검을 찾기 위해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하지만 점차 빠져나가는 피와 힘 때문에 서서히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어…… 떻…… 크르르…… 게?”
우두머리는 허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새끼…….”
무릎을 꿇으며 바보 같은 우두머리를 보고 있자니 지난 날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녀석의 손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 당해왔었다. 드디어 드디어..
“방아쇠를 당겨! 뭘 병신 같이 서 있는 거야? 당겨 어서!”
누군가의 목소리에 최면에 걸린 듯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하지만 다 써버린 총알 때문에 방아쇠가 당겨지는 소리만 났다. 기계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쓰러진 남자에게 다가가 단검을 거칠게 빼앗아 들고 우두머리에게 달려갔다.
“이야아아아아!”
우두머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지옥 끝까지 따라가서라도 죽여줄 테다! 개자식아!”
높게 도약하여 우두머리의 심장 쪽에 대검을 꽂았다. 슈욱! 살이 꿰뚫리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피가 몸을 뒤덮었다.
“개자식. 개자식!”
다시 단검을 빼 녀석의 심장 부근을 거침없이 쑤셔댔다. 온 몸에 피가 들끓어 올랐다. 일말의 저항도 없는 우두머리의 육신에 나의 분노가 터져나온다.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이 빌어먹을 새끼야!”
“크르르르르.”
육중한 몸이 서서히 옆으로 기울어졌다. 어느새 다 빠져버린 털들이 사방에 휘날렸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검은 색의 털들을 보니 그제야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만, 그만!”
준우 아저씨가 나를 뜯어말리고 있었다.
“허억…… 허억.”
굵은 죽음의 숨을 토해내며 평온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육중한 체구의 남성이 보였다. 마침내…… 마침내…….
“……수고했어.”
준우 아저씨의 말에 눈물이 흘렀다.
“드디어..”
흐르는 눈물 때문에 앞이 뿌옇다.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며 우두머리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진한 갈색 피부와 단단하게 자리 잡은 근육들. 조각상에서나 볼법한 아주 이상적인 몸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는 것을 감지했는지 우두머리 녀석이 한쪽 눈을 치켜떴다. 그리고는 무심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
아무 말 없이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녀석의 입술이 달싹거리며 천천히 열렸다.
“이……유 삶…… 의…….”
“…….”
“내…… 유일…… 한…….”
녀석은 한자 한자 힘겹게 내뱉었다. 곧 숨이 꺼질 것이었다. 곧 구석진 곳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은혜가 다가오고 있었다.
“……너.”
우두머리는 바로 옆에 다가온 은혜를 보며 꿈틀거렸다. 하지만 미약하게 몸을 튕기는 것이 전부였다. 은혜는 손을 뻗어 우두머리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잘 가.”
오랜만에 듣는 은혜의 목소리였다. 모두 놀란 얼굴로 은혜를 바라보았다. 은혜는 여전히 우두머리의 얼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큭…… 크윽….”
은혜의 손길에 우두머리는 기어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슬프지 않았다. 녀석 때문에 죽어나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 죽여도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우두머리는 구슬프게 흐느꼈다. 죽는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우리를 죽이지 못한 분함 때문일까.
숨을 헐떡이던 우두머리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돌아…… 가…… 고…….”
우두머리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멈췄다. 녀석의 신형은 바닥에 축 늘어졌다. 은혜는 아직도 눈을 뜨고 있는 우두머리의 한 쪽 눈을 살며시 감겨 주었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던 준우 아저씨가 은혜를 일으켜 세웠다.
“이제 끝이야.”
은혜는 멀찌감치 쓰러져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우리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은혜의 뒷모습에서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이내 남자에게 다가간 은혜는 쭈그려 앉아 남자에게 팔을 내밀었다.
“…….”
“은혜야…….”
아무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살고 싶다는 욕망이 너무 큰 탓이었다. 비겁하게도 나는 그것을 빤히 바라보았다.
“…….”
남자는 미약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고개를 들 기력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은혜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뾰족한 돌 파편으로 자신의 손을 길게 그었다. 뚝. 뚝. 녹색 액체가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은혜는 손을 옮겨 남자의 입가에 가져갔다.
한 방울. 한 방울. 남자의 입안에 녹색 액체가 들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남자는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그 짧은 사이에 원래 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메시아시여…….”
남자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처음으로 보는 표정변화였다. 휘청. 그때 남자 옆에 앉아 있던 은혜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다급하게 은혜를 붙잡아 바닥에 눕혔다.
“메시아시여…….”
주룩. 은혜의 손에서는 작은 양의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가만히 보던 박 중사는 은혜에게 다가가 흘러내리는 피들을 핥아내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런 박 중사를 특별히 제재 하지 않았다. 서서히 은혜의 피가 멎어감에 따라 박 중사의 몸도 눈에 띄게 회복되어져 갔다.
“그만…….”
남자의 말에 몸을 일으킨 박 중사는 자신의 몸을 훑어보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거짓말처럼 깨끗해진 상태였다. 이어 박 중사는 주변에 떨어진 대검을 들고 통로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일단 여기서 벗어나고 보자고.”
두두두두.
그제야 사람들의 총소리가 들렸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통로 쪽에는 아직 사람들이 우리를 엄호해주고 있었다. 어느새 가세했는지 우민 형이 소총을 들고 서 있었다. 비교적 총알이 남은 이 하사와 김 상병이 빠르게 뛰어갔다.
“메시아를…… 부디.”
그렇게 말한 남자도 통로 쪽으로 뛰어갔다.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고요히 눈을 감고 있는 은혜에게 다가가 얼굴과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따스하고 보드라운 감촉…… 금방이라도 눈을 뜰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고생했어, 은혜야.”
들릴 리는 없겠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
“나중에…… 아니, 내일이면 전처럼 일어나서 돌아다니겠지? 그럴 거지? 은혜야. 저번에 나랑 약속 한 거…… 잊지 않았잖아? 그 날…… 버스에서 한 약속…… 나 아직도 기억해. 그러니까 기운내야 해. 알았지?”
“일어날 거야. 걱정 마.”
준우 아저씨가 말했다. 피를 너무 흘려서일까? 은혜의 몸이 얼음처럼 식어만 간다. 상의를 벗어 은혜의 몸에 덮어주었지만 불길한 예감은 쉬이 떨쳐낼 수 있는게 아니었다.
“크아아아!”
통로 쪽에서 녀석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박 중사와 남자가 가세한 이상 우리의 싸움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크오오!”
“……오오!”
점점 녀석들의 비명소리가 멀어져갔다. 둘의 활약이 상당한 것 같았다. 은혜의 목을 가볍게 들어 무릎 위에 올려놓고 바닥에 몸을 뉘었다. 축축한 피가 옷을 적셨지만 상관없었다. 상황은 좋게 끝났고, 우리들은 결국 살아남았으니까……. 살았다는 안도감이 전신을 지배하자 곧 정신을 놓은 것 같았다.
“……아아!”
이제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안심한 탓인지 눈이 스르르 감겼다. 이런 더러운 환경 속에서 잠이라니…… 정말 이놈의 몸은 왜 이렇게 약해 빠진 거야.
“..성아.”
"...."
"진성아!"
우민 형의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힘겹게 상체를 일으키며 아직도 무릎을 베고 잠들어 있는 은혜를 바라보았다.
“형, 몇 시야……?”
“아침이야. 7시. 은혜는…… 아직 이지?”
우민 형은 잠들어 있는 은혜를 바라보며 물었다.
“응…… 평소에는 제일 먼저 일어나서 돌아다니던 애가…… 오늘은 아니네.”
“그래…… 일단 여기서 벗어나는 게 좋겠다.”
우민 형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자, 딱딱하게 굳은 피 웅덩이와 서서히 부패하기 시작한 살덩이들이 보였다. 어느새 냄새를 맡았는지 파리 녀석들이 득실대기 시작했다. 만찬을 즐기던 파리떼들은 곧 움직이는 우리를 향해 맹렬한 기세로 다가왔다. 거칠게 손을 흔들며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은혜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은혜를 흔들었지만 일어나지 못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남자가 무릎을 꿇어 은혜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
가볍게 눈짓으로 인사를 하고 몸을 일으켰다.
찌릿. 양쪽 무릎에 전기가 찌르르 통했다. 다리가 순간 말을 듣지 않았다. 저릿한 통증을 참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데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우민 형을 돌아보며 궁금한 표정을 짓자, 형은 손가락을 뻗어 통로 쪽을 가리켰다.
“이미 다 나갔어. 네가 늦잠자서 깨우러 온 거야.”
“……빨리 깨워도 되는데.”
“둘 다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안 깨웠어.”
“……고마워.”
“고맙긴. 가자.”
우민 형이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남자는 은혜를 품안에 안은 채 뒤에 서 있을 뿐이었다.
“가야 돼.”
“메시아께서 살아계시지 않는다면, 저 역시 살아갈 의미가 없습니다.”
남자는 은혜를 내려 보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은혜는 그렇게 빨리 안 죽어. 저번에 나랑 약속했어.”
“메시아께서는 약속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릅니다.”
“……아니야. 빨리 나가자 우선.”
“메시아께서는…….”
남자의 말은 더 이상 듣지 않은 채 통로 쪽으로 걸어 나갔다. 희미하게 빛을 내는 작은 램프가 붉은 피로 뒤덮여 있어 상당히 미묘했다. 마치 우리들의 상황인 것 같아 램프를 닦아냈다.
“너도…… 힘내.”
묽은 피를 닦아내자 램프는 환하게 빛을 냈다. 그래, 그렇게 빛나는 거야. 이내 통로를 벗어나자, 셀 수 없이 많은 괴물들의 시체가 앞을 가로 막았다. 다리를 들어 그것들을 다 피해내며 걸었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남자가 따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럴 리 없잖아. 그럴 리 없어…….”
기나긴 지하를 지나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상쾌한 바람과 공기가 기분을 좋게 해주었다.
“일어났냐?”
“수고했다.”
“잠이 제일 많다니까.”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비록 꼴은 엉망이었지만 모두 살아 있었다. 물론 몇몇이 희생되는 것은 막을 수 없었지만…… 뜨거운 뭔가가 올라오려 했다. 애써 그것을 삼키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는 우리가 왔던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직 부산에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큰 고비 하나를 넘긴 것 같아 마음이 홀가분했다.
휘우웅.
시원한 미풍을 맞으며 막사로 복귀했다.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기만 한데도 모든 게 정리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왠지 이대로 쭉 가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막사에 도착한 우리는 1층 복도에 있는 시체더미들을 애써 외면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일단 씻고 가지. 이런 몰골로 다니기에는 찝찝하니까.”
아저씨 말에 모두 동의하고 보급품이 있는 생활관으로 갔다. 서둘러 보급품들을 챙기고 저번과 같이 여자부터 샤워 실을 쓰게 하고 남자들은 침대에 누워 은혜를 돌봤다.
“은혜…… 일어날 수 있겠죠?”
동생의 말에 아저씨는 은혜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이제…… 힘들지도 몰라.”
그 말에 모두 침묵을 지켰다. 저번에 남자가 그랬었지. 은혜는 죽을 날을 고르고 있다고. 그게 점점 다가오고 있는 걸까.
“행정부에 쓸 만한 게 있나 보고 올게요.”
이런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은 준우 아저씨와 동생은 생활관 밖으로 나갔다.
“행복했었지.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행복이란 것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것도 은혜였어.”
아저씨는 애정 어린 눈길로 은혜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저씨…….”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은 알고 있었지만…….”
아저씨는 말을 잇지 못하고 은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준우 아저씨와 동생이 들어왔다. 양손 가득 컵라면을 들고 있었다. 준우 아저씨는 애써 웃는 얼굴로 우리를 바라봤다.
“굶고 출발하지는 않겠어요.”
“좋지.”
모두 좋아했지만 너무 어색했다. 그동안 은혜라는 존재가 크게 잡혀버린 것 같았다. 그때 샤워를 마친 해인이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제 씻으셔도 되요.”
“응.”
서둘러 갈아입을 것들을 챙기고 밖을 나섰다. 남자는 끝까지 은혜 옆에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박 중사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남자를 끌고 나왔다.
“메시안지 뭔지. 일어날 거니까 깔끔한 모습으로 좀 있어라. 나중에 일어났을 때 더러운 모습 보면 좋아하겠냐?”
박 중사의 말에 남자는 묵묵히 샤워실로 걸어갔다. 박 중사는 쓴웃음을 짓고는 그 뒤를 따랐다. 하나 둘 샤워실 안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빨리 옷을 벗고 온 몸에 덕지덕지 묻은 것들을 씻어 냈다.
쏴아아.
모두 나와 비슷한 생각인지 서로 아무 말 없이 몸을 씻어내기만 했다. 처음 이곳을 쓸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빠르게 샤워를 마친 후 밖으로 나와 새로운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분명 잘 되고 있었지만 마음이 텁텁했다.
꼬르르륵.
살아 있음을 증명해주는 듯 뱃속의 시계가 울려댔다. 은혜가 있는 생활관 쪽으로 걸어갔다. 해인이는 여전히 잠들어 있는 은혜 곁에 앉아 있었다.
“은혜 언니는요?”
“……일어날 거야.”
“네…….”
“밥이나 먹자. 출발해야 하니까.”
컵라면을 품 안에 가득 안고 생활관을 나왔다. 해인이도 허둥지둥 내 뒤를 따라왔다. 긴 복도 안에 울려 퍼지는 군화 소리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정수기 앞에서 포장을 뜯고 뜨거운 물을 받았다. 1개. 2개. 3개. 해인이에게 건넸다.
“다 들 수 있겠어?”
“네.”
해인이는 요령 있게 컵라면을 쌓고 생활관 쪽으로 걸어갔다. 다시 포장을 뜯고 물을 받았다. 주루룩.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용기가 뜨거워져갔다. 멍하니 그것을 움켜쥐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주세요.”
어느새 다가온 해인이가 손을 내밀었다. 그제야 정신이 든 나는 다시 컵라면을 건네고 물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2~3번을 반복하자 모두가 먹을 정도의 양이 됐다. 남은 컵라면에도 물을 받고 생활관으로 걸아갔다.
“후우…….”
안으로 들어가니 모두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아무렇게나 앉아 컵라면을 입에 가져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물을 너무 많이 넣었나? 스프를 안 넣은 건가?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떠날 채비를 했다. 남자는 침대 위에 누워있는 은혜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웬만큼 필요한 것들은 위병소 밖에 있는 택시 안에 있어 따로 챙길 게 없었다.
“갑시다.”
아저씨가 앞서 걷기 시작했다. 1층으로 내려와 중앙 계단을 지나 연병장을 가로질러 갔다. 사방에 괴물들의 시체가 즐비하게 깔려있었다. 이제는 괴물들의 시체를 봐도 아무렇지가 않았다. 익숙해진 건가. 거리낌 없이 생명체를 죽이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처음보다 많이 성장한 내 모습. 부모님이 보면 놀랄까? 잘했다고 칭찬해줄까? 그보다 부모님은 무사히 살아 있을까?
“무슨 생각을 그리해?”
우민 형이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거기에 딱히 답할 말이 없어서 위병소를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이제 거의 다 왔어. 힘내자.”
“……응.”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택시가 주차돼 있었다. 물론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부산까지 가는데 지장은 없을 것 같았다. 모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박 중사와 이 하사. 김 상병과 남은 몇몇 군인들은 위병소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안가요?”
준우 아저씨가 뒤를 돌아보며 묻자 박 중사가 고개를 저었다.
“남아 있는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군.”
“미쳤어요?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라고요.”
준우 아저씨는 답답하다는 듯 언성을 높였지만, 그들은 옅게 웃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이 하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 표정과 태도가 너무나 확고해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조심하세요. 감사했습니다.”
김 상병도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봅시다.”
그렇게 말한 아저씨는 서둘러 택시에 타 시동을 걸었다. 남은 우리들도 각자 택시 운전석에 탔다. 그 중 몸이 성치 않은 우민 형과 남자는 아무렇게나 택시에 올라탔다. 부르릉. 시동이 걸리며 아저씨가 제일 먼저 택시를 몰았다.
“가자…….”
동생의 말에 꽂혀 있는 차키를 힘껏 돌렸다. 부르릉. 엔진 음이 들리며 택시가 미약하게 흔들렸다. 운전대를 잡고 앞 창문을 바라봤다. 남아 있는 사람들 모두가 우리를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도 손을 흔들어주고 운전대를 크게 돌렸다. 차체가 부드럽게 회전하며 나아갔다.
“사람들은 헤어질 때 마지막 모습을 끝까지 기억한대.”
그렇게 말한 동생은 조수석 창문을 열고 상체를 길게 빼내 위병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목소리로 외쳤다.
“꼭 살아서 봐요! 꼭이요!”
동생은 양손을 크게 흔들었다. 백미러로 위병소에 남은 사람들을 보니, 모두 희미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마지막 모습…… 제대로 인사를 하려면 지금 이 순간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잠시 차를 멈추고 내려 아직까지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고마웠습니다! 꼭 살아있어야 해요!”
주룩. 두 눈에 뭔가가 흐르는 것 같았다. 눈앞이 점점 흐려져 갔다. 왠지 이대로 있다간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동생도 창문을 닫고 말없이 의자를 뒤로 젖혔다.
“이제…… 가는 거야.”
동생은 슬며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앞서 가는 택시를 쫓아갔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도 어딘가에 녀석들이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부아앙.
택시의 속도가 올라갔다. 점점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과연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찬란한 빛의 희망일까, 아니면 어두운 절망일까.
“…….”
달리는 택시 안. 나와 동생은 아무 말도 없었다. 흐르던 눈물도 어느새 말랐는지 눈이 따가워졌다. 눈을 껌뻑이며 고개를 돌렸다. 백미러를 통해 멍하니 앉아 있는 남자와 어깨에 기댄 채 잠들어 있는 은혜를 바라보았다.
“부산이네.”
동생의 말에 앞에 달린 표지판을 바라봤다. 드디어 왔구나. 수많은 고생 끝에 드디어…….
“유람선…… 아직도 있을까?”
“직접 가보지 않고는 모르겠지.”
동생은 확실하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빠의 말이 사실이었다면 좋겠는데…… 우리가 시간을 지체한 탓에 이미 유람선이 떠나 버렸거나 운행을 하지 않으면 어쩌지. 최악의 경우 녀석들이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곧 아저씨의 차가 먼저 앞질러 갔다. 그 뒤를 차분히 따르며 운행을 했다. 10분. 15분. 얼마 가지 않아 시청이 보였다. 슬슬 멈춘 아저씨의 차에서 준우 아저씨와 우민 형이 내렸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가볍게 준비를 하자는 것이었다.
뒤에 조심스럽게 주차한 후 차에서 내렸다. 남자는 여전히 은혜를 곁에 둔 채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 안색이 좋지 않았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부산에 왔는데도 당장 괴물들과 싸워야할 사람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그 무거운 분위기 속에 준우 아저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 원…… 막상 여기에 오니 더 떨리네. 젠장.”
“마지막…… 이니까요.”
우민 형이 말했다. 어느새 형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것을 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나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일단 배부터 채우고 가지. 여기서 항구까지 10분 거리도 안 되니까 말이야.”
아저씨는 소총을 메고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리고는 근처 편의점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를 한 번씩 본 후 아저씨의 뒤를 따랐다. 차에 남아 있는 은혜라면 걱정 없었다. 남자와 같이 있으니 알아서 지켜주겠지.
띵-동. 소리와 함께 편의점 문이 열렸다. 저마다 인상을 찌푸리며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피비린내와 뭔가가 썩는 냄새가 났다. 그러나 우리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들이었다. 이 정도는 참고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유통기한이 비교적 긴 음식들을 먼저 챙긴 후, 라면이나 즉석식품을 먹기 시작했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왜 이럴까. 괜히 마음이 먹먹해지고 답답했다.
“만약…… 만약에요.”
내 말에 모두 멈칫하더니 곧 식사를 계속 했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진성아. 괜찮아.”
준우 아저씨가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 말에 우민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없으면 다시 그 부대로 돌아가면 되잖아. 앞으로 살아갈 일들만 생각하자.”
“……그렇죠?”
역시 엄마 아빠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인 걸까. 그래,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아. 가족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야. 지금은 살아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거야.
다시 밥알을 입에 넣었다. 편의점 창문을 통해 택시가 주차된 곳을 멍하니 바라봤다. 남자의 뒷모습과 옆에 기댄 은혜의 모습이 보였다. 난 은혜에게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는 건가? 이대로 은혜가 가버리면…… 그러면…….
“모두 총 챙겨.”
아저씨의 말에 저마다 먹던 것을 놔두고 한 곳에 모였다. 아저씨는 차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을 바라봤다. 걸음걸이가 이상한 수많은 사람들이 차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저마다 검은 털들이 돋아난 걸 보니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는 조용히 총을 챙기고 편의점 문을 열었다. 띵-동 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지만, 저 괴물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쭉 걸어가면 남자가 있는 곳에 도달하게 된다. 왜 못 본거지? 우두머리가 죽어서? 긴장을 늦춘건가?
“섣불리 움직이지 마. 괜히 여기로 관심이 끌리면 곤란해지니까. 일단 남자가 있으니 같은 종족으로 인식하고 공격하지는 않을 거야.”
아저씨 말에 차 뒤에 숨어 상황을 주시했다. 차 문을 닫고 온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조그만 공간을 통해 은혜의 체취가 녀석들을 자극한다면, 아무리 남자가 있다고 해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조용히 숨을 들이키며 괴물들이 움직이는 것을 주시했다. 그대로. 그대로 지나가라. 제발. 하지만 이런 바람은 오래가지 못했다.
“으아아아!”
사람들이 나타난 곳 반대편에서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덩달아 놀란 우리는 몸을 더욱 숙이며 소리가 난 곳을 주시했다. 모두 신음을 흘리며 욕을 내뱉었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녀석들이 쇠 파이프나 야구 방망이를 들고 괴물들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벌떡.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켰지만 옆에 앉아 있던 준우 아저씨의 힘에 눌려 다시 다리를 구부렸다.
“최소 서른이야. 지금은 저렇지만 일제히 변하면 아무리 우리가 나선다고 해도 승산이 없어.”
준우 아저씨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저씨!”
“지금은 그냥 두고 봐야해.”
하지만 저런 어린놈들이 허무하게 죽어나가는 것은 보기 싫었다.
“지금은 준우 아저씨 말대로 해. 여기까지 왔는데 죽을 수는 없어.”
동생을 가만히 바라봤다. 일말의 감정도 섞여 있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 결연한 얼굴을 계속 볼 수가 없어 무모하게 달려드는 고등학생 녀석들을 바라봤다.
“으아압!”
제일 선두에 선 녀석이 괴물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퍼억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녀석들도 탄력을 받았는지 저마다 괴성을 지르며 괴물들을 쓰러트리기 시작했다. 추풍낙엽처럼 픽픽 쓰러지는 괴물을 보며 한 가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왜…… 변하지 않지?”
“너무 일방적인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내 심정도 모두와 같았다. 왜 괴물들이 저토록 무기력한 것일까. 지금으로서는 답을 내릴 수가 없어 고등학생 녀석들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퍼억. 퍽. 퍼퍼퍽. 녀석들은 이런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닌지 저마다 일당백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 정도의 실력과 경험이 있으니 저렇게 달려든 것인가? 학생들은 이미 괴물의 약점을 파악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괴물이 약해진 건가?
“흐아압!”
마지막 남은 괴물의 머리가 흉물스럽게 찌그러졌다. 10분정도 지났을까. 고등학생들은 무기에 묻은 피나 살점을 대충 털어 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 우리의 모습을 들킨다면 곤란할지도 모른다.
“옮기자.”
제일 선두에 선 녀석이 파이프를 가볍게 쥐며 말했다.
그 말에 나머지 녀석들은 일사분란하게 괴물의 시체를 옮겼다. 뭐하려는 거지? 조용히 숨을 죽이고 그 행동을 지켜봤다. 저마다 맡은 시체의 다리를 끌고 갔다. 보아하니 이 부근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다가가 주변 상황이나 정보를 얻고 싶었지만, 내 어깨를 꽉 누르고 있는 준우 아저씨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덜컥.
“젠장…….”
낭패다. 남자의 돌발 행동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차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등학생 녀석들은 하나 둘 무기를 움켜잡기 시작했다. 빠르지만 고요한 동작으로 택시 주변을 천천히 에워싸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모두 소총을 장전하며 언제든 발포할 준비를 했다. 상대가 고등학생이라고는 하나 저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만약 허튼 짓이라도 했다가는 나보다 아저씨가 먼저 나설지도 모른다. 아저씨는 은혜에 관한거라면 금방 변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어떤 짓을 할지는 머릿속에 그려지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를 않기를 마음 속으로 바랬다.
떨리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밖으로 나온 것은 남자가 아닌 은혜였다. 창백하리만큼 흰색 피부에 은혜가 비틀거리며 차에서 나왔다. 드디어 깨어났구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은혜야…….”
아저씨의 말에 적잖은 감정이 느껴졌다. 남자의 말이 틀렸다.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더니. 우리 은혜가 절대 그럴 리 없지.
“여자?”
“멀쩡하네?”
고등학생 녀석들은 은혜를 보고는 저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중 한 놈이 제일 선두에 선 놈에게 고개 짓을 했다.
“태성아. 어떡할래?”
“괜히 짐만 늘어난다. 그냥 가자.”
선두에 선 놈. 태성이라고 불린 학생은 은혜를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 여자들이 너무 없어. 데려가자.”
처음 말을 꺼낸 녀석이 아쉬운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아저씨는 당장 일어나려고 했지만 우민 형과 동생이 그것을 간신히 제지했다. 그보다 걱정되는 것은 남자의 존재였다. 은혜에게 해코지라도 했다가는 저 학생들이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태성이라는 학생은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기 보다는 친구들의 안전에 더 신경을 썼다. 녀석은 그 말을 무시하고는 몸을 돌려 시체들을 끌기 시작했다. 그 행동에 다른 녀석들도 묵묵히 시체를 끌기 시작했고, 은혜에게 입맛을 다시던 녀석은 쉽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를 힐끔거리며 시체를 끌었다.
“후…….”
저마다 한숨을 쉬며 녀석들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다. 이내 황급히 택시에 올라 시청 쪽으로 차를 몰았다. 일단은 생각을 정리해야만 했다.
서둘러 시청에 도착한 우리는 1층 끝자락에 위치한 직원실에 모였다. 우민 형과 준우 아저씨가 순찰을 나갔고, 나와 동생은 은혜를 살폈다. 크게 달라진 건 없었지만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 피를 더 이상 생산하지 못하는 은혜의 특성상 과한 움직임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나갈래.”
그럼에도 은혜는 밖에 나가겠다고 보챘다. 나와 동생은 난처한 표정으로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
아저씨는 말없이 은혜를 바라보다 문을 열어주었다. 은혜는 기다렸다는 듯 문을 박차고 나갔다. 남자와 동생이 그 뒤를 그림자처럼 따랐다.
“저대로 둘 거예요?”
“더 이상 내 마음대로 한다면 은혜에게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네. 은혜는…… 이제.”
“아니에요. 분명 방법이 있어요.”
“……진성아.”
아저씨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저씨.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하지 마세요. 분명 무슨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래.”
더 이상의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주변을 정찰한 준우 아저씨와 우민 형이 돌아왔다. 꽤 지쳤는지 직원실에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털썩 앉았다.
“뭐 특별한 거라도 있나?”
아저씨는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아뇨. 없어요.”
준우 아저씨는 손을 저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는 기지개를 쭉 피며 ‘죽겠다.’ 라고 중얼거렸다. 반면 우민 형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까 그 일 말인데요.”
역시 그냥 지나칠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너무 이상하지 않았나요? 아무리 낮이라고는 하지만 괴물들이 그렇게 당할 정도라니…… 학생들도 평범했고요.”
“확실히…….”
자세를 바로 한 준우 아저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동안 없앤 녀석들과 비교하자면 순한 양에 속했다.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것인가? 그저 움직이는 것뿐인가.
“힘이 부족할지도 모르네.”
“……힘이요?”
아저씨의 말에 모두 귀를 기울였다. 아저씨는 팔짱을 낀 채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말을 이었다.
“허기에 지면 괴물들이 점점 무기력해지는 것을 본 적이 있잖나. 아마 모습을 변화시키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꽤 많은 힘이 필요할거야.”
그 말에 저번의 일이 떠올랐다. 변신을 못할 때엔 궁여지책으로 동료의 살을 뜯고는 급하게 변신을 하던 놈들의 모습이. 허나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뭔가 다른 건가?
“먹을 인간들이 줄어드니까 자연스럽게 약해지는 거군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럼.. 결국엔 자기네들끼리 먹는 날도 오겠네요."
마지막 말은 조금 희망적이었다. 하지만 확답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러기엔 우두머리라는 변수는 절대 무시할게 못됐다. 우린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문득처음 은혜를 데리고 동네를 거닐던 때가 생각났다. 차안에서 괴물을 발견하던 때와 개들의 습격으로 건물에 피신하여 준우 아저씨를 만난 일들. 그리고 내 친구 기현이가 괴물이 되어 우두머리에게서 나를 지켜주던 일. 생각해보면 참 기구하고도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정말 운이라도 따라주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는 이 모든 상황들이 설명되지 않았다.
“일단 오늘은 여기서 쉬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괴물들의 상태를 살피는 걸로 하지.”
아저씨의 말에 모두 동의한 듯 몸을 축 늘어트렸다.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5시. 몇 시간 후면 해가 떨어진다. 밖에 있을 은혜와 동생 그리고 남자를 데리러 직원실을 나섰다. 침침한 복도를 지나며 창문을 통해 사무실 안을 바라봤다. 민원실. 인사과. 복사실.
“?”
잘못 봤나? 복사실 안에 사람 비슷한 인영이 지나간 것 같은데……. K-2를 거칠게 움켜쥐고 복사실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낡은 문소리의 비명과 함께 쾨쾨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10평 남짓한 복사실 안의 중앙에는 커다란 수납공간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잘못 본건가?”
안심하고 돌아나가려는 그때, 미세하지만 빠른 발자국 소리가 분명히 들렸다. 여기서 가까운 곳이었다. 반사적으로 앞으로 굴러 K-2 총구를 전방으로 향했다.
“끼잉..”
하지만 보이는 것은 작은 강아지 한 마리였다.
“후…….”
식은땀을 닦아내며 문을 열고 나왔다. 다시 걸음을 옮겨 은혜를 데리러 가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은혜는 시청 앞에 있는 분수대 위를 폴짝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 뒤를 남자가 묵묵히 따르고 있었고, 동생은 차들이 주차된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은혜를 잠시 보다 동생 쪽으로 걸어갔다. 동생도 곧 나를 발견했는지 담배를 끄고 나에게 걸어왔다.
“엉? 그건 웬 개새끼냐.”
“개?”
동생이 내 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끼잉.”
처량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검은 색의 작은 발바리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작고 여린 모습을 가만히 보자 문득 은혜가 떠올랐다. 나는 녀석을 단번에 안아들고 동생에게 보여줬다.
“복사실에서 데리고 왔어.”
“시끄러울 텐데…….”
동생의 눈썹이 심하게 꿈틀거렸다. 확실히…… 발바리 녀석이 짖어대기라도 한다면 위험할 수 있었다.
“뭐, 나중에 적당한 곳에 풀어주면 되겠지.”
그렇게 말한 동생은 휘적휘적 시청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어느새 다가온 은혜가 발바리 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품에 안겨주자 은혜는 발바리 녀석의 등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가자. 은혜야.”
그대로 두면 해가 져도 모를 것 같아 은혜를 직원실로 데리고 왔다. 모두 웬 강아지를 데려왔냐며 한소리 했지만, 은혜가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아 크게 제재를 가하지는 않았다.
“……초코.”
은혜는 발바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게 이름인 모양이었다. 우린 은혜를 따라 녀석을 초코라고 부르기로 했다. 물론 적당한 때를 봐서 버리고 가자는 무언의 약속을 한 상태였다. 은혜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적당히 끼니를 때운 우리는 간단히 회의를 하고 밤에 실행에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 중 한쪽 팔밖에 남지 않은 우민 형은 이곳에 남아 은혜를 돌보기로 했다.
“일단 자 두는 게 좋겠네.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일이니까.”
아저씨의 말에 모두 적당한 위치에 누워 잠을 청했다. 모두 많은 피로를 느꼈는지 금세 곯아 떨어졌다.
..쿵. ..쿵. ..쿵쿵.
일정한 간격으로 들리는 소리에 눈을 번적 떴다. 완전히 해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불그스름하게 노을이 져 있었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저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가? 모두들 작은 움직임 없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깨우기가 미안해져 혼자 소총을 메고 직원실을 나섰다.
“어?”
달칵하는 소리는 나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어찌된 영문이지? 문고리를 꽉 잡고 힘차게 밀었다. 그러나 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잘 열리던 문이 이렇게 잠길 수가 있나?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
문득 아까 낮에 봤던 고등학생 녀석들이 생각났다. 그래, 녀석들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괴물들을 처리한 후 완전히 돌아가지 않고 우리를 미행한 건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문을 세게 밀었다.
“흡…….”
역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일단 모두를 깨워야 했다.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자고 있는 준우 아저씨를 깨우자 그 소리에 하나 둘 몸을 일으켰다.
“누가 문을 막아놨어요.”
“뭐?”
잠결에 눈을 비비던 준우 아저씨는 화들짝 놀라며 문고리를 잡고 세게 밀었다.
“제길…… 대체…….”
“아까 그 녀석들 인 것 같아요……. 아마도.”
“제길.”
이렇게 되면 이곳이 안전하다고 볼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 녀석들이 튀어나와 우리에게 해를 입힐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내 남자가 몸을 일으켜 문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문을 강하게 밀어내기 시작했다. 콰직. 콰지직. 곧 문이 반으로 갈라지며 앞이 뚫렸다. 저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왔다.
“크으으..”
“크으.”
그때 잊을 수 없는 소리가 복도 근처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제길…… 제기랄! 우리는 말없이 총구를 내리고 가만히 서 있었다. 이대로 그냥 지나쳐주기만을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문을 부수는데 소음이 너무 컸다.
“크으?”
한 녀석이 우리를 보며 다가오고 있었다. 총알을 쓰는 것은 낭비였다. 얼른 허리춤에 있는 대검을 꺼내 녀석의 뒤통수를 강하게 찍었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은 힘없이 쓰러졌다.
“크으으.”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언뜻 들어도 상당수의 녀석들이 복도에 진을 치고 있었다. 우리는 초조하게 이를 갈며 놈들이 직원실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문틈으로 꾸역꾸역 몰려드는 괴물들을 기계적인 동작으로 처리했다. 대검을 휘둘러 뒤통수나 눈알 부분. 턱 아래 부분. 목 부분에 거침없이 박아 넣었다. 혼자라면 체력적인 부담이 되지만 우리는 여럿이고 남자의 공헌이 지대했다.
“크으으으.”
문틈 사이로 괴물들이 시체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시체들이 높게 쌓여 자연스럽게 바리게이트가 만들어졌다. 녀석들을 이렇게 이용하는 날도 있다니…….
“후…….”
손과 발 옷 모두 검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해도 완전히 떨어져 어두워졌고 시체 너머에서는 아직도 괴물들의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괴물로 변하지는 않으니까요.”
동생의 말에 모두 한숨을 쉬며 동의했다. 당장은 무리겠지만 적당한 때를 봐서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았다. 모두 체력적인 소모가 상당했는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은혜는 구석에 앉아 초코를 보듬기만 할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은혜가 알려줬더라면 그렇게 문을 부수지는 않았을 텐데…….”
지나가는 말로 우민이 형이 말하자 준우 아저씨가 받아쳤다.
“그건 그렇고 대체 누가 우릴 이렇게 가둬둔 걸까?”
“피곤했나 봐요. 그렇게 박아대는데 영 깨질 않았으니…….”
쿵쿵 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문이 잠겨있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분명 누군가가 우리를 발견하고 고의적으로 가둔 거라고 밖에 설명되지 않았다. 정말 낮에 봤던 그 학생 녀석들의 짓인 걸까?
“하지만 왜 그런 짓을…….”
“이것 때문이겠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개인화기니까 말이야.”
동생이 말하자 옆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소총을 두드리며 말했다.
“하지만 낮에는…….”
“그래. 하지만 좀 더 확실하고 강력한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지도 몰라.”
아저씨의 말에 모두 숙연해졌다. 남아 있는 생존자끼리 이렇게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하다니……. 서로 도우면서 살아 갈수는 없는 건가?
“어디까지나 제 생각인데요.”
준우 아저씨는 대검에 묻은 피와 살점을 털어내며 말했다.
“음?”
“우리가 여기서 사라지는 것. 그게 녀석들이 바라는 것이 아닐까요?”
“……확실히 우릴 없앨 속셈이었다면 자는 도중에 들어와 흉기를 휘둘렀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 단순히 가둬두기만 했으니…… 경고 차원에서 그러는 건가?”
뭔가 이상했다. 단지 우리가 떠나길 원한다는 이유로 이렇게 가둬두는 것일까. 왜 우리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을까. 어떻게 보면 우리들을 보호하기 위해 문을 막아둔 것이 아닐까.
“크으으으.”
오래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시체 바리게이트 사이를 비집고 들춰내려는 팔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었다.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는 흔들거리는 바리게이트를 가만히 보며 대검을 꽉 쥐었다.
남자의 커다란 소리로 녀석들을 움직이게 할까? 아니다. 괴물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상식이 다르다. 만약 실패한다면 주위에 있는 모든 괴물들까지 몰려드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온다.”
그 말과 함께 바리게이트가 앞으로 무너지며 수많은 괴물들의 붉은 눈이 보였다. 몸에 돋아나는 소름이 그대로 느껴졌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강하게 대검을 움켜잡은 채 짧게 호흡을 하며 기다렸다. 후…… 후우. 긴장하지마라, 이진성.
“크으으.”
괴물들은 동료들의 시체를 밟고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녀석에게 달려가 대검을 목에 꽂아 넣은 채 그대로 밀어버렸다.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거리던 괴물은 동료들 틈으로 넘어졌다. 그 작은 여파로 인해 괴물들의 사이에 작은 틈이 생겨났다.
“조심해!”
남자는 틈이 생긴 것을 지나치지 않았다. 단숨에 그 사이로 뛰어든 그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빠르기로 괴물들의 머리를 부수며 길을 뚫기 시작했다. 넋 놓고 볼 시간조차 아까웠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남자가 뚫어놓는 길을 따라 이동했다.
“엄호!”
퍼퍼퍽. 퍽. 박 깨지는 소리와 괴물들의 비명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바닥에 붙어 있는 살덩이와 핏덩이가 신발과 바지 사이로 스며드는 것 같아 찝찝함이 배가됐다. 하지만 여기까지 겪어온 일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였다. 남자와 거리를 유지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시청 복도를 완전히 뚫었을 때 즈음, 완전히 지친 남자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수고했어.”
앞으로 나서며 괴물들의 머리통에 구멍을 내주었다. 아직 숫자는 꽤 됐다. 하지만 할 수 있었다. 이 정도의 숫자라면 충분히 물리칠 수 있는 수였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공격적으로 나서며 괴물들을 천천히 쓰러트렸다.
왈왈.
그러던 중, 은혜 품안에서 조용히 있던 초코 녀석이 괴물들의 틈으로 들어가 버렸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친 것일까. 하지만 녀석에게 신경 쓸 정도로 상황이 여유롭지 못했다.
“크으..”
손을 뻗으며 다가오는 녀석의 이마에 대검을 강하게 꽂아 넣었다. 꾸르르. 녀석은 요상한 소리와 함께 검붉은 피를 토하며 뒤로 넘어졌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다른 녀석이 내게 다가왔다.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대검을 꽂아 넣을 준비를 했다.
“초코…….”
갑자기 눈앞을 가리는 은혜 때문에 대검을 휘두르지 못했다. 은혜는 방금 초코가 사라진 방향으로 망설임 없이 향했다. 안 돼 은혜야. 안 돼. 그 쪽으로 가면…… 손을 뻗어 잡고 싶었지만, 뻗어나가려던 대검을 다른 방향으로 튼 탓에 몸이 크게 옆으로 쏠렸다. 소리를 질러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제길!”
은혜를 발견한 괴물은 지체 없이 그쪽으로 달려들었다. 난 돌아가는 반동을 이용해 다른 발로 땅을 힘차게 밟아 앞으로 구르다시피 나아갔다. 그리고 바로 위에서 헐떡거리는 녀석의 턱에 대검을 꽂아 넣고 옆으로 밀쳐냈다.
하지만 녀석은 호락호락하게 당할 생각이 없는지 내 몸을 움켜잡고 옆으로 쓰러져버렸다. 내 몸은 옆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고, 그대로 넘어지는 것으로 이어졌다.
“은혜야!”
몸의 통증보다 비집고 나아가는 은혜에게 시선이 쏠렸다. 재빨리 녀석의 머리를 걷어차고 일어나 뒤에서 헐떡거리는 남자를 바라봤다.
“어서! 은혜가 앞에 있어!”
남자는 크게 도약하며 남은 괴물들을 쓰러트리기 시작했다. 얼른 은혜를 잡아야 했다. 소총을 꽉 쥐고 은혜가 뛰어간 곳으로 달려갔다.
“초코…….”
“은혜야!”
애타게 은혜를 불렀지만 초코 생각에 완전히 정신이 팔린 은혜는 나를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제길…… 제기랄! 그 놈의 개새끼를 데려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크으…….”
시청 골목 곳곳에서 괴물들이 느리게 걸어 나왔다.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달려가고 있는 은혜와 그 뒤를 쫓는 나.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이대로 포위 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녀석이 두 팔을 벌려 내 몸을 감싸려 했다. 개머리판으로 녀석의 명치 부분을 힘껏 치고 팔꿈치로 머리를 내리 찍었다. 녀석은 옆으로 쓰러졌지만 은혜와의 거리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은혜야!”
애가 탔다. 이대로 은혜를 놓쳐버리거나 녀석들에게 당할 꼴을 상상하니 절로 다급해졌다. 이를 악물고 은혜의 뒤를 쫒았다.
“태성아, 여기!”
신은 나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낮에 들리던 익숙한 목소리와 그 주인공이 은혜의 앞에 나타났다. 두 명뿐이었지만 나에게는 천군만마나 다름없었다. 태성이라고 불린 녀석과 그 친구로 보이는 녀석은 주위에 얼쩡거리는 괴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은혜와의 거리를 단박에 좁힐 수 있었고, 마침내 따라잡을 수 있었다.
콰악. 은혜의 얇은 팔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버둥거리며 은혜를 강제로 껴안고 뒤로 슬슬 물러났다. 앞에는 아직 여럿의 괴물들이 있었지만 당장 이쪽으로 올 모양은 아닌 것 같았다.
“후…… 은혜야.”
“초코. 초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버둥거리는 은혜를 힘으로 고정시켰다. 대체 왜…… 왜 이렇게까지 집착을 하는 거야. 하마터면…….
휘잉.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이 꽤 생생하게 들렸다. 문득 은혜의 표정이 크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퍼억.
꽤 가까운 소리에서 타격 음이 들렸다. 근처에 괴물 놈이 있었나?
“으, 은혜.”
왜…… 눈이 감기는 것일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은혜야…… 은혜…….
우르릉.
콰광. 하늘을 쪼갤 듯한 천둥소리와 그 환한 빛이 주변을 미세하게나마 살필 수 있게 해줬다. 눈을 껌뻑이며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뒤통수에서 싸한 통증이 느껴졌다. 손가락을 더듬어 뒤통수를 만졌지만 눅눅한 느낌만 날 뿐이었다.
콰광. 다시 천둥이 번쩍이며 환한 빛이 내 몸을 비췄다. 그 덕에 손에 묻은 소량의 피를 볼 수 있었다. 피를 흘렸었군.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15평 남짓한 공간에 책상과 걸상. 그리고 칠판까지 있었다. 학교잖아?
“일단…… 주위를 둘러봐야겠어.”
창문 쪽으로 걸어가 밖을 살폈다. 곳곳에 밝게 빛나는 가로등이 보였다. 그 주변을 미약하지만 비춰주는 건물들과 길바닥을 제외하고는 낯선 곳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여기에 온지 하루도 되지 않았으니.
“살아있는 게 더 중요하지 뭐…….”
그래. 그게 더 중요한 거다.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건 은혜 역시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 녀석들이…….
드르륵.
뒤쪽에서 쇳소리가 미약하게 들렸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아까 나와 은혜를 도와주었던 태성이라고 불린 녀석이 서 있었다. 번쩍. 환한 빛과 함께 녀석의 얼굴이 더욱 또렷하게 보였다. 나와 비슷한 키에 시원스런 이목구비를 가진 잘생긴 얼굴이었다.
“날 여기에 가둔 이유가 뭐지?”
녀석은 말없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열 발자국 정도 거리에서 멈추고는 입을 열었다.
“악의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악의?”
“당신들을 가둔 일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