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밖에 나가지 마시오 part.17
“태성아, 혹시 그거 안 먹으면 나 좀…….”
그것이 녀석을 자극했을까. 순간 괴물 특유의 허밍이 들리는 것은 착각이었을까? 태성이는 곧 입을 벌려 친구의 귀를 강하게 물어 뜯기 시작했다. 찌지직. 찌직.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학생의 비명소리가 크게 울렸다.
“으아아아악!”
학생은 믿기 힘들다는 듯 흐르는 피를 받으며 뒤로 물러섰다. 반면 태성이 놈은 입안에 든 것을 여유롭게 씹으며 목을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여학생들은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달아났고, 남은 남학생들 역시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 내뺐다.
역시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당장 은혜를 데리고 나가야 했지만 이상하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계속 되는 친구 놈의 비명소리에 번뜩 정신이 든 소수의 남학생들은 그제야 태성이 놈에게 달려들었다.
“이 미친 새끼!”
무게와 힘을 못이긴 태성이 놈은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잔뜩 흥분한 남학생들은 마구잡이로 발길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퍽. 퍽퍽. 둔탁한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은혜에게 걸어갔다.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은혜는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 볼 뿐 움직이지 않았다.
“은혜야. 빨리 가야 돼.”
작게 속삭이며 은혜를 끌었다.
“개자식. 빌어먹을 박태성!”
다행히 잔뜩 흥분한 학생들은 우리는 안중에도 없는지 태성이를 구타하기 바빴다. 평소 쌓인게 한두가지가 아닌 것 같았다. 그 중 처음 귀를 물어 뜯긴 학생은 노릇하게 구워지고 있는 고기와 그 옆에 놓인 뾰족한 꼬챙이 하나를 들고 남학생들에게 당하고 있는 태성이 놈에게 다가갔다.
“나와!”
그 소리에 발길질을 멈춘 세 명은 학생은 손에 들린 날카로운 꼬챙이를 보고 대경하여 말했다.
“성호야. 너 설마?”
성호. 녀석의 이름은 성호였다. 성호 녀석은 세 명의 친구들을 거칠게 밀어내며 태성이을 내려다보았다. 귀에 흐르는 피를 지혈할 생각도 없는지 태성이 놈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개자식”
진심이다. 그대로 꼬챙이를 박아 넣을 기세였다. 말려야하는 것인가? 소수의 인간끼리 이런 식으로 싸워야만 하는 것인가? 아니, 이 점을 이용한다면 도망갈 수 있을지도 몰라. 서둘러 은혜를 일으켜세우려는데 은혜가 요지부동이다. 그 덕에 내 심장은 타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성호야. 일단 그거 치우고 얘기하자.”
나머지 세 명은 성호 녀석을 뜯어 말리며 강제로 꼬챙이를 뺏었다. 성호는 버둥거리며 벗어나려 했다. 그 발작과도 같은 동작에 태성이 놈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후우…… 후.”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태성이 놈은 붉은 핏물을 한 움큼 뱉어내고는 성호 녀석과 그 친구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드드득. 드득. 태성이 놈은 곧 몸을 꽈대며 비틀거렸다.
“태, 태성아?”
기묘하고 낯선 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렸다. 뼈가 갈리고 부러지는 소리였다. 성호 녀석과 친구들은 적잖이 당황한 듯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이제 정말 도망가야 해.’ 본능이 그렇게 말했다. 단번에 은혜를 이끌고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타다다닥. 그 많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 일단 밖으로 나가는 것은 무리가 있어 몸을 숨길 곳을 찾아야 했다.
“위험해.”
은혜의 목소리에 달리던 걸음을 멈췄다.
“뭐가? 무슨 말이야. 은혜야.”
은혜는 말없이 우리가 지나쳐 온 곳을 가리켰다. 태성이 놈이 있던 곳이었다. 불길해. 은혜는 쓸데없이 위험하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단숨에 은혜를 품에 안아 아래 쪽 계단으로 뛰어갔다. 이렇게 되면 이곳을 완전히 벗어나야만 했다.
“크아아아!”
찌리릿. 잊을 수 없는 소리에 온 몸이 마비가 된 듯 멈췄다.
“으윽.”
침착해. 여기서 멈추면 뒤진단 말이다! 어서 움직여 이진성!
“크아아!”
계단을 내려오자 앞뒤로 있는 유리문이 보였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필시 밖으로 통하는 문일 것이다. 어쩌지. 선택을 해야 돼. 밖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에 맞설 것인지, 당장 학교 내부에 있는 것과 맞설 것인지. 이럴 때 아저씨라면…… 준우 아저씨라면, 동생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제길.”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쓸 만한 것을 찾았다. 그러나 당황한 나머지 주위 사물이 분간이 되지 않았다. 침착해. 그래야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어…….
“저기.”
은혜가 뒤쪽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망설일 것 없이 그 쪽으로 뛰어갔다. 유리문 앞엔 정돈이 잘된 쇠파이프들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나가자. 이곳에서 벗어나는 게 맞는 거야. 단숨에 쇠파이프를 집고 유리문을 박차고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은혜야. 업히자.”
이 자세로는 멀리 갈 수가 없다. 최소 녀석들에게 대항이라도 하려면 양손이 자유로워야 했다.
“응.”
군소리 없이 등에 업히는 은혜를 꽉 잡고 빠르게 이동했다. 어두워서 앞을 분간할 수는 없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살려주세요!”
그런 나를 붙잡으려는 것인지 뒤쪽에서 여학생들의 소리가 들렸다. 돌아볼 시간조차 아까운 상황이지만 이상하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창가에 불을 켜고 손을 흔드는 여학생이 보였다. 한 명이 아니야. 여러 명…… 저러면 노출 되는 것은 시간문제인데…….
“크아아아!”
녀석의 포효소리가 들렸다. 미안하지만 너희들을 도울 수 없어. 다시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심장과 폐에 전해지는 압박감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땅을 박차는 발걸음 소리의 뒤로 여학생들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린다. 눈을 질끈 감고 다리에 더 힘을 준다.
“헉…… 헉. 헉.”
운동장 크기가 제법 됐다. 그나마 다행인건 운동장 입구 쪽에 있는 가로등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둘러야 했다. 녀석의 능력이라면 이 정도 거리는 우습게 따라잡을 수 있다.
“저기…….”
조용히 업혀 있던 은혜가 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크으…….”
검은 그림자들이 붉은 눈을 빛내며 가로등 아래에서 꾸물거리기 시작했다. 제길…… 제기랄! 양손에 쥔 쇠파이프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선택해라. 선택해야 돼.
“은혜야. 버틸 수 있지?”
“응.”
꿀꺽 침을 삼키며 다시 뛰어갔다. 은혜의 안전을 보장할 순 없지만 뒤보다는 앞이 나았다. 녀석들은 굶주려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변화할 힘도 갖고 있지 않을 터. 문제는 그 수와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지 아닌지의 여부였다.
“끄으어.”
좁은 철문 틈 사이로 한 녀석이 곧장 다가왔다. 으드득. 이를 악물고 쇠파이프로 녀석의 이마를 강하게 날렸다.
퍼억!
소리와 함께 녀석은 뒤로 무너졌다. 이마가 크게 함몰돼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크으.”
한눈 팔 시간도 없었다. 바로 이어서 두 마리가 들어왔다. 적당한 거리를 재며 곧게 뻗은 양 손목과 목 부분을 강하게 후려쳤다. 풀썩. 쉽게 쓰러지는 녀석들을 밀어내고 좁은 철문 틈 사이에 몸을 맡기고 앞을 주시했다.
“후우. 후우.”
가로등 아래에는 더 이상 놈들이 보이지 않았다. 단번에 문틈을 벗어나 어두운 곳으로 이동했다.
학교 앞이라 그런지 아파트와 민가들이 빽빽이 가득 차 있었다. 좋아. 희망이 있어. 몸을 숨길만한 곳은 많아. 길게 생각하지 않고 빌라가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짧은 전투와 살 수 있다는 희망 덕분에 이상하게 힘이 들지 않았다.
“은혜야. 조금만 버텨.”
등에서 느껴지는 가벼운 무게를 느끼며 적당한 위치의 빌라를 찾았다.
“크아아!”
움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당장 눈에 보이는 빌라에 들어가 계단을 올라갔다. 1층은 너무 위험해 3층이나 4층으로 향했다. 만에 하나 괴물들이 튀어나올 수 있으니 적당히 긴장해야 했다.
오래된 건물의 매캐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머리를 맑게 해주는 것 같았다. 한차례 숨을 고른 뒤 다시 걸음을 옮긴다.
“헉…… 허억. 헉.”
다리에서 한계라는 신호를 보냈다. 슬슬 힘이 빠졌다. 조금만 더…… 3층에 올라가 굳게 닫혀 있는 두 개의 문 중 하나의 손잡이를 돌렸다. 덜컥. 덜컥. 열리지 않았다. 제길…… 안 되는데…… 여기서 이렇게 막히면 안 되는데. 다시 남은 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덜컥.
"제길.."
숨을 크게 내쉬고 다시 올라갔다. 4층 역시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허억…… 헉.”
한계다.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때 은혜의 얇은 팔목이 내 목을 강하게 감쌌다. 그래, 힘내자. 나 혼자가 아니잖아. 내가 힘내지 않으면 은혜마저 죽게 돼.
“어…….”
순간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급히 숨을 들이마시며 쇠파이프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느리게 열리는 문 사이로 두 개의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하압!”
망설일 것이 없이 강하게 쇠파이프를 내리쳤다. 퍼억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고개가 푹 꺾였다. 찝찝한 피를 흘리며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녀석을 대충 밀어내고 문을 닫았다.
“하아…… 하아.”
느린 걸음으로 방 하나하나를 점검했다. 장롱이나 큰 서랍장 같은 것을 열어보며 다른 괴물이 있나 확인했다.
“후…….”
다행히 다른 괴물들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일단 은혜를 거실 소파에 앉히고 녀석에게 다가가 마무리 작업을 했다. 이 녀석의 냄새가 있다면 그 놈도 여기를 의심하지 못할 것이다.
“후우…….”
안전이 확보되자 긴장이 풀렸다. 그와 동시에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져버렸다. 느릿하게 걸어가 은혜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가볍고 여린 몸이 가슴 가득 느껴졌다. 살아남았구나. 다행이다 정말.
“은혜야.”
“....”
“절대 나가면 안 돼.”
“....”
“저기 커튼도 절대 걷지 말고.”
“....”
“이대로 자고 내일 움직이자.”
“응.”
은혜를 소파에 눕혀주고 아까 봐두었던 얇은 이불을 덮어주었다.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던 은혜는 곧 눈을 감고 잠이 들어버렸다. 그 평온한 얼굴을 잠시 보다 바닥에 대충 누웠다. 무리한 탓인지 온 몸이 저릿했고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후우…….”
학생들의 일은 쉽게 넘어갈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괴물들을 먹으며 연명하고 있다니…… 게다가 자신에게 일어난 몸의 변화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런데 왜 그 녀석만 변해버린 것일까. 은혜가 그것을 자극하는 촉매 역할을 한 걸까, 아니면 인간의 살과 피를 먹어서 그런 것일까.
순식간에 끓어오르는 욕망을 참지 못했기 때문인가? 만약 그 녀석이 우두머리의 힘을 가지게 된다면? 그 지성과 힘으로 우리를 압박하게 된다면? 일이 복잡해질지도 모른다. 꿈에 그리던 부산에 왔는데 이런 꼴로 쫓기며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니…… 게다가 다른 일행들과 연락이 닿지도 않는 상태다. 통신이 가능한 시각이 아직도 유효할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서로 휴대전화를 갖고 있지 않은 상태다.
마지막 헤어지기 전에 약속장소를 정했어야 하는건데.. 이건 내 불찰이다.
“후…….”
일단 날이 밝는 대로 정보를 모아야 했다. 세상이 엿같이 굴러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곳은 유독 수상했다. 그래, 일단 날이 밝으면…… 지금은 최대한 체력을 보충해두어야 해.
“…….”
길게 잠들지 못하고 눈이 떠졌다. 낯선 환경에서 잠이 들어서 그런가? 지나치게 무리하고 긴장한 탓인가? 기지개를 길게 켜고 몸 상태를 체크했다. 다행히 군데군데 알이 배긴 것 말고는 멀쩡했다.
“휴.”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꽤 커다란 TV와 그 위에 있는 벽시계. 오른쪽에는 식탁과 냉장고, 그리고 굳게 닫힌 창문 하나가 보였다. 베란다로 통하는 건가.
꼬르륵. 위장에서 아우성을 쳐댔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랜 시간을 공복으로 버틴 상태였다. 먹을 것이 있나 싶어 냉장고 쪽으로 걸어갔다.
“?!”
스윽. 무심결에 시선을 돌린 현관문에 붉은 색의 눈동자가 허공에 떠 있었다. 제길…… 어느새?
“허…… 업!”
너무 당황한 나머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파이프…… 파이프! 당장 자리로 돌아가 파이프를 거칠게 잡고 현관 쪽으로 달려갔다.
“…….”
하지만 어제 죽인 괴물 사체 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헛것이었나? 다시 느리게 냉장고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뭔가 썩는 듯한 냄새에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다행히 통조림 여러 개가 있었다. 참치 통조림과 복숭아 통조림을 열어 묵묵히 입에 가져갔다. 기름기를 최대한 빼고 기계처럼 씹었다. 금방 텁텁해진 입안을 복숭아 통조림의 과즙으로 헹구고 다시 참치 덩어리들을 입안에 가져갔다. 쩝. 쩝. 몇 번의 숟가락질로 금세 다 비워냈다.
“끄윽.”
배가 두둑하지는 않지만 이 상황에선 과분한 음식이었다. 이제 주변 환경을 자세히 봐야 했다. 일행들과 합류하려면 정보 수집은 필수였다. 바로 뒤쪽에 있는 창문을 열었다.
위이잉.
순간 엄청난 파리 떼들이 달라붙었다. 곧 역겨운 냄새와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발바닥에 느껴졌다. 냄새의 근원지를 따라 가보니 세탁기 바로 앞에 사람의 시체가 있었다.
“제길..”
그리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얼른 파리들을 떼어내고 창문을 닫았다. 그렇다면 커튼이 처진 저 곳이 베란다인가. 제일 큰 안방으로 들어가 굳게 처진 커튼을 살짝 걷어냈다. 푸르고 환한 백야의 빛이 눈을 간질였다. 그 몽환적인 색에 잠시 넋을 잃을 것 같았다.
아니지. 이러면 안 돼. 집중하자. 양옆으로 뻗은 도로와 그 위로 곧게 뻗은 오르막길. 그리고 그 옆길로는 어제 탈출했던 학교가 보였다. 그리 멀리 오지는 못했구나. 어제 그 학생들은 전부 죽었겠지?
학교 너머로 다른 건물들이 몇 개 있었지만 희미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 위와 옆으로는 길이 있었고, 그 양옆으로는 수많은 빌라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인구 밀집 지역이군. 학교가 있으니 당연한 건가. 그렇다면 괴물들의 수 역시 무시 할 수 없었다. 변하지 않는다고는 하나 그 수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저벅. 저벅.
희미한 발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당장 커튼을 치고 방문 쪽을 바라보니 은혜가 졸린 눈을 비비며 서 있었다.
“잘 잤어?”
“…….”
은혜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보다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아까 꺼내두었던 통조림을 들고 은혜를 불렀다. 은혜는 ‘밥’ 이라는 소리에 군말 없이 식탁에 앉아 조용히 받아먹기 시작했다.
“…….”
통조림의 반도 비우지 못한 은혜는 배가 부른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은혜를 데리고 밖에 나가는 것은 위험했다. 시계를 보니 겨우 40분 정도가 지나있는 상태였다. 해가 밝은 때를 기다려야 했다.
“은혜야. 조금만 더 자자. 아직 졸리지?”
끄덕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은혜는 다시 소파에 누웠다. 금세 잠이 드는 걸 보니 배가 고파서 일어난 모양이었다. 앞으로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그 후에 나가면 비교적 안전할 것이다. 낮에는 녀석들의 움직임이 둔화되고 감각도 많이 무뎌지니 충분히 이동할 수 있었다.
적당히 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다. 어느 정도 배를 채워서 그런지 눈꺼풀이 금세 감기기 시작했다. 혹여 은혜 혼자 밖에 나가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노파심에 은혜의 손을 잡았다.
“잘 자.”
“……응.”
은혜가 답했다. 그렇게 눈을 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이 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생각보다 많이 피곤한 것 같았다.
“흐아암.”
얼마나 잤을까.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커튼 사이로 환한 햇빛이 들어왔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파이프를 챙겼다. 이제 은혜를 데리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남자라면 분명 은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은혜야?”
없다. 자고 있던 은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방 곳곳을 뒤져보며 시체가 썩고 있는 창문을 열어봐도 은혜는 보이지 않았다. 안 돼. 당장 밖으로 나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은혜야. 은혜야…… 은혜가 갈만한 곳을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은 낯선 곳인데…….
‘은혜는 낯선 곳을 특히 더 좋아하지. 마치 그 눈에 모두 담아두려는 것 같이 말이야.’
실수다. 아저씨의 말이 그제야 떠올랐다. 은혜에게 낯선 환경은 놀이터와 같았다. 제길…… 제기랄! 이런 곳에서 어떻게 은혜를 찾는단 말인가.
“어디로…… 어디로 가야…… 제길.”
이대로 멈출 수는 없다. 내가 은혜라면 어디로 갔을까. 이런 비슷한 환경의 빌라 쪽으로는 가지 않았을 거야. 이왕이면 더 넓고 큰 대로로. 그래, 학교 앞에 쭉 뻗어진 대로로 갔을지도 몰라. 그 곳에는 고층 건물의 아파트들이 즐비하고 있으니 은혜의 호기심을 자극했을지도 몰라.
서두르자 이진성. 은혜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모두를 볼 면목이 없게 돼. 은혜야, 제발 무사히만 있어줘.
어제 처리한 괴물들의 시체가 철문 사이사이에 괴기스러운 상태로 꽂혀 있었다. 태성이라는 놈의 짓인가. 친구의 귀를 거침없이 물어뜯으며 거대한 소리로 내 몸을 자극했던 놈. 그 놈은 분명 은혜를 눈독들이고 있었다. 그 놈이 은혜를 찾아낸다면…….
“진정하자. 진정해.”
쭉 뻗은 대로를 지나자 아파트 단지들과 옆으로 뻗은 상가 단지들이 보였다. 어디로 가야할까. 은혜라면…… 내가 은혜였다면 고층의 아파트로 갔을까. 아니면 평범한 건물들과는 다른 특색이 있는 상가 쪽으로 갔을까.
“역시…… 상가 쪽이겠지.”
상가가 있는 곳은 경사가 낮은 내리막길이었다. 길 끝에 넓은 공원이 보였다. 공원…… 잠깐만 둘러보자. 얕게 설치된 담장을 넘어 잔디와 나무사이를 해치고 몇 걸음 가자, 넓은 공원이 나왔다.
커다란 원 형태의 공원 중앙에는 화장실이 있었고, 그 위와 아래에는 각종 운동기구와 놀이 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놈들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후…… 천천히 하자. 큰 원 테두리에 그려진 흰색 선들을 밟으며 찬찬히 걸었다.
“…….”
바닥 여기저기에 묻은 색이 바랜 수많은 핏자국들. 지난날 여기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 기분이 좋은 곳은 아니었다. 다시 상가 쪽으로 가는게 좋겠다.
“크으으.”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이 굳었다. 서둘러 고개를 돌리자 10미터 거리에 10마리의 괴물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일단 숨어야…….”
공원을 가로질러 서둘러 화장실로 뛰어갔다. 굳게 닫힌 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녹색 쇠문에는 무수히 많은 핏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문을 열어야하나? 안에 괴물들이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는데…… 차라리 보이지 않게 건물 뒤로 숨어 버릴까.
“그래, 그 편이 낫겠다.”
살짝 고개를 돌리자 작은 나무 틈 사이에 괴물들이 보였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니 희미한 내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
철컹. 철컹.
녀석들은 얕은 철창을 넘어서려 했다. 제길…… 운이 없어도 너무 없네. 서둘러 상의를 벗은 후 멀리 던져버리고 달렸다. 곧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겠지만 작은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공원 왼편을 빙 돌아 철창을 넘어 상가 쪽으로 이동했다. 나무 틈 사이로 녀석들의 동태를 살폈다. 역시 내 옷에 집착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기만 하면…….”
작은 코너를 돌아서던 순간, 한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것 같았다. 망설일 것 없이 쇠파이프를 강하게 움켜쥐고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크으으.”
허공을 가르는 매서운 소리와 함께 녀석은 바닥에 쓰러졌다. 한 놈이라 다행이었다. 상가 단지에 도착하자 고층 건물 여러 개와 중간 크기의 건물들이 눈을 어지럽게 했다.
“기다려라 은혜야.”
노출이 심한 넓은 도로보다 건물 사이사이를 통해 이동했다. 길 곳곳에 굳어버린 핏자국들과 수많은 파리 떼가 날아다녔다.
“옛날에도 이랬었지…….”
처음 민정 누나와 도망치던 은혜는 영문 모를 놈에게 잡혀 있었다. 그 우두머리 녀석이 지금 우리를 헌신적으로 도울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그 때 그 일이 없었다면 민정누나가 그렇게 변하지도,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 품에 안겨 피를 흘리던 누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괴물의 모습을 하고도 우두머리의 명을 따르지 않고 생을 마감했던 누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충격은 아직도 생생했다. 그렇기에 은혜만큼은 무사하길 바랐다. 만약 같은 일이 생긴다면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았다.
홀로 은혜를 찾으며 낯선 공간을 배회했다. 초조해지는 마음을 달래보려 심호흡을 했다. 괜히 쇠파이프를 만지작거리며 휘둘러보기도 하고, 작게 웅얼거리기도 했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일단 편의점에 들어가 숨을 돌려야 했다. 문이 서서히 열리자 굳을 대로 굳어버린 핏자국들이 내 눈을 어지럽혔다. 일단 간단히 목을 축이고 다시 나서야 했다. 대충 아무거나 골라 입에 쑤셔 넣으며 밖의 동태를 살폈다.
“…….”
밀집한 상가들 외에는 특별한 점이 없었다. 괜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
그때 희미한 무언가가 상가 틈 사이로 지나갔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괴물 놈들의 걸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니다. 일단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손에 들린 것을 아무렇게나 팽개치고 편의점을 나섰다. 그리고는 방금 인영이 지나간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후.”
주위를 둘러보니 고층 건물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본 게 은혜가 맞는 한 걸까, 아니면 헛것이라도 본 걸까.
다시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대로 멀리 떠나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지. 왜 그런 여자애 하나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해야 하지. 이상하다. 마음 한 곳에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성아.”
“?!”
사람 소리. 분명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지? 어디? 어디!
“진성아.”
“……어?”
내 이름.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전혀 듣지 못했던 목소리인데. 내 이름을 어떻게…… 소리가 나는 곳은 바로 앞 건물 사이였다. 머뭇거림 없이 그 쪽으로 향했다. 뭔가 싸하고 위험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것을 따지고 망설일 겨를이 없었다. 일단은 그 소리의 정체를 밝혀내야만 했다.
이 코너. 여기만 돌면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어.
“진성아.”
찌릿. 순식간에 기묘한 기운이 몸을 파고들었다. 이상해. 이런 경우…… 분명 어디서 들었던 것 같은데…… 나를 부르는 소리.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저씨들 밖에 없는데..
“!!”
‘녀석들은 인간의 소리를 내어 사람들을 유인해 잡아먹기도 한단다.’ 번개처럼 뇌리를 강타하는 아빠의 말이 떠올랐다. 아, 아. 왜 그 생각을 못했던 것일까. 왜 좀 더 조심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대로 가다가는…… 아니, 이미 늦었다. 몸을 빼내기에는 너무 가까이 와버렸고, 설사 도망친다고 해도 잡힐 것이 뻔했다.
타닥.
코너를 돌자 건장한 체구를 가진 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정된 호흡과 맑게 빛나는 진홍색의 눈은 그 놈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려줬다. 우리를 생사의 갈림길로 내몰았던 우두머리들…… 그놈들과 비슷했다.
“……은혜야.”
최악이다. 우려했던 상황 중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마네킹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은혜의 모습이 보였다.
“호오.”
녀석은 은혜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나를 가만히 보았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려야 해. 힘이 없다면 머리를 쓰고, 지형을 잘 이용해야 해.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과연 이 녀석을 따돌릴 수 있을까.
“박태성…… 너냐?”
멈칫. 손짓을 잠깐 멈춘 놈이 입을 열었다.
“그래.”
그리고는 다시 은혜의 머리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녀석은 입 안 가득 흐르는 침을 주체하지 못하고 질질 흘렸다. 뚜욱. 뚝. 끈적끈적한 타액이 은혜의 머리 위로 떨어져 머리카락 적시기 시작했다. 그리곤 양껏 은혜의 체취를 맡기 시작했다.
그 행동에 이성이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설사 내게 천운이 따른다고 해도 우두머리로 변해버린 놈을 이길 순 없을 것이다.
“왜…… 왜…….”
“살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게 인간이지.”
은혜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놈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아, 이젠 인간도 아니지. 이런 꼴이 되어버렸으니 말이야.”
씨익. 커다란 입술을 양옆으로 벌리며 웃었다. 날카로운 송곳니와 흐르는 타액이 한 없이 더럽게 보였다. 하지만 녀석에게 해를 가할 수도, 은혜를 빼낼 수도 없었다.
“내가 왜 너희들을 내버려둔 줄 아나?”
“…….”
쓰윽. 녀석은 거칠게 타액을 닦아내며 말했다.
“추격하는 맛이 있거든. 그게 너무 좋아. 학교에서 나를 피해 도망 다니던 년 놈들을 찾아내며.”
부르르. 미세하게 몸을 떨며 그때의 일을 회상하기라도 하듯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살과 뼈들을 입 안 가득 넣고 씹을 때의 느낌이란…… 정말 쾌락 그 자체더군. 이건 해보진 않고서는 절대 모를 감정이지.”
“…….”
“그 때 느꼈지. 그동안 두려움에 떨며 숨어 다니는 생활은 이제 끝이라고. 앞으로는 내 몸을 위해, 쾌락을 위해 살아가는 괴물이 되자고 말이야. 그동안 참 병신처럼 살았지 뭐야.”
녀석은 그 말과 함께 천천히 다가왔다. 느릿하지만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절대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그 기세에 눌려 몸이 점차 뻣뻣하게 굳어갔다.
“난 네가 마음에 들었다.”
어느새 눈앞에 다가온 놈은 허리를 살짝 숙이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눈동자에서 비치는 내 모습이 한 없이 나약하고 초라해 보였다. 이리도 무능한 것일까. 이리도…… 이리도.
“원한다면 나와 같이 갈 수도 있다.”
“뭐?”
“나와 같은 길을 걷자는 것이다.”
“어째서…….”
녀석의 눈매가 좁혀지며 다시 반듯하게 섰다.
“왠지 너라면 재밌을 것 같거든. 그렇게 버둥거리며 살아가려는 놈이 괴물이 되어 인간들을 잡아먹는 꼴을 꼭 보고 싶어. 그리고 괴물로 변한 네 놈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
“저 계집을 나와 같이 맛있게 먹는 것이다.”
녀석은 은혜를 가리키며 말했다.
“미…… 친.”
“크.. 큭큭크. 좋은 생각이지? 어때? 좋다고 말해봐.”
“미친…… 새끼야!”
멈출 수가 없었다. 손에 들린 쇠파이프를 강하게 휘둘렀다. 부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몸이 빠르게 돌아갔다.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퍼억.
하지만 통했다.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며 녀석의 몸이 잠깐 움찔거렸다.
“크, 큭큭. 크크크.”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받은 타격은 극히 미세했다. 녀석은 진한 타액을 흩뿌리며 웃었다. 잠시 몸을 움직이는가 싶더니 눈에서 멀어졌다.
아니, 멀어지는 것은 나였다. 낯선 소리와 함께 녀석에게서 멀어졌다. 어디를 맞았는지 극심한 통증이 온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바닥에 떨어져버린 탓에 그 충격은 배가 됐다.
“커헉!”
간신히 고개를 들어 은혜의 얼굴을 살폈다. 느린 동작으로 고개를 든 은혜가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공허한 눈이었다.
“……혜야.”
입 안 가득 씁쓸하고 싸한 것이 느껴졌다. 기침을 하며 입에 든 것을 뱉어내자 붉고 진한 혈액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럴 줄 알고 있었지. 얘가 얼마나 불쌍한지 알아? 정신을 잃는 순간에도 너만 찾더라. 아주 각별한 사이인가봐?”
어느새 은혜 곁으로 걸어온 녀석은 나를 내려다 봤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녀석을 노려보는 것 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듯 녀석의 눈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자아.”
양손을 뻗어 은혜를 끌어안은 녀석은 이내 은혜의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기기 시작했다. 두어 번의 동작으로 은혜의 얼굴과 목이 금세 드러났다.
“크흐흐흐흐.”
녀석은 광기에 젖은 웃음을 흘리며 타액을 흘렸다. 뚫어지게 보고 있는 것은 은혜의 얇은 목이었다. 그대로 얼굴과 몸통을 분리할 기세였다. 쩌억. 녀석은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나 은혜는 반응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녀석은 나를 보며 물었다.
“개…… 새끼…….”
“큭. 큭.”
콰득. 녀석의 커다란 입이 은혜의 목 전체를 물었다. 그리고는 벗어나려고 움직이는 은혜의 사지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콰득. 차마 듣기 힘든 소리가 내 귀로 생생히 전해졌다. 안 돼. 은혜야. 안 돼…….
츄루룹. 역겨운 소리가 들렸다. 하얗다 못해 창백해진 은혜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모든 일이 나 때문에 생긴 일인 것 같았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지 은혜의 여린 몸이 거칠게 떨렸다.
하지만 그 작은 저항조차도 속수무책이었다. 부르르르. 격한 움직임을 끝으로 은혜의 움직임이 서서히 멎었다. 눈도 감기며 두 손이 힘없이 바닥에 닿았다.
“음?”
은혜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그 무반응이 녀석의 흥미를 떨어트렸는지 은혜를 바닥에 팽개쳐버리고 내게 다가왔다. 지척에 앉은 녀석의 입 안 가득 녹색 액체와 은혜의 살점으로 보이는 붉은 색의 덩어리들이 보였다.
“너, 반드시 내가 죽인다.”
미안하다 은혜야. 이런 식으로 밖에 할 수 없어서. 많이 아프겠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줘. 어떻게든 내가…… 반드시 너를…….
“발악인가?”
녀석은 능글맞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곧 입안에 남은 여분의 액체와 살점들을 우물거리며 삼켜내기 시작했다. 쩝쩝거리는 녀석을 가만히 주시했다. 아직 인가? 아직…… 괴물 놈은 이내 질린다는 얼굴로 고개를 휘저었다.
“아, 정말이지…… 이렇게 맛없는 건 처음이야.”
“개새끼야! 넌 뒤질 준비나 해. 개새끼…….”
“크크…… 크하하하하!”
쩌렁쩌렁한 녀석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터업. 이내 녀석의 두 손이 내 머리통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꽈아아악. 관자놀이를 힘껏 누르는 악력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악!”
아프다. 아프다는 단어로 이 모든걸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럽다. 하지만 내겐 마지막 남은 수가 있다. 그때까지 버티는거다.
“크크…… 크크크크크.”
낮게 비소를 흘리던 녀석이 나를 풀어줬다. 스르르. 서 있을 힘도 남지 않았다. 허무하게 풀려버린 두 다리와 몸은 관절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이제 죽을 준비는 되었나?”
녀석은 승리에 찬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허…… 억. 허억. 헉.”
“안심해라. 최대한 고통 속에서 죽여 줄 테니. 우선 이 다리부터…….”
상체를 가볍게 숙인 녀석은 내 다리를 집어 올렸다. 순간 피가 아래로 쏠려 얼굴과 목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녀석에게 다리를 내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힘을 아껴야 했다. 파이프…… 저 정도 거리라면 아슬아슬하기는 하지만 가능해. 그래. 녀석이 당황하는 틈을 이용하는 거야. 버텨라. 이진성. 버텨야한다.
“이 다리로 잘 도망 다니더군.”
스윽. 날카로운 손톱이 발목 부분을 살짝 긋고 아래로 내려갔다. 불에 댄 듯 통증이 느껴지며 피가 흘러내렸다.
“크윽!
찌직. 길게 찢어진 상처 사이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 붉은 색의 피를 보던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다른 손으로 자신의 입안을 만지작거리더니 미량의 녹색 액체를 바라봤다.
“뭐지?”
녀석은 손을 높이 들어 얼굴 쪽으로 나를 당겼다.
“설명해라.”
“…….”
“어째서 저년의 색만 다른지? 왜 저년만 유독 맛이 없는지, 왜 저년에게서 나는 냄새가 그리 달콤한……?”
녀석은 말을 잇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 격한 떨림 덕에 나를 잡고 있던 것이 풀려났다. 지금이다. 지금이 기회야! 그나마 성한 다리로 뛰어가 단숨에 파이프를 굳게 쥐고 괴물 놈에게 다가갔다. 네가 숨을 쉴 수 있는 것도 지금 뿐이었다.
“크…… 크으윽!”
녀석은 바닥을 이리저리 구르며 몸을 꼬았다. 상당한 고통이 따르는지 사지와 몸통이 발작적으로 꿈틀거렸다. 어서. 어서!
사라락.
그와 동시에 녀석을 덮고 있던 검은 털들이 허공에 날리기 시작했다. 사라락. 한 번의 휘날림으로 연한 살갗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래, 이제 네 놈은 끝이다.
“어, 어째서!”
녀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털들을 향해 헛손질을 해댔다. 하지만 이어지는 고통에 다시 바닥을 구르며 신음을 토하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파이프를 강하게 쥐었다.
“하아!”
따앙. 맑은 소리와 함께 녀석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이내 머리를 싸매고 이리저리 구르는 놈을 향해 파이프를 강하게 내리쳤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녀석의 비명이 더욱 커졌다.
“크아아아!”
조준이 잘못됐다. 발작적으로 몸을 굴리는 탓에 머리에 제대로 맞지 않은 것이다.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되자 녀석은 살기 위해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사라락. 그러는 동안에도 남은 털들은 모조리 휘날렸다. 곧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 몸이 드러났다.
꽈악. 다시 한 번 파이프를 강하게 쥔다. 주도권은 내게 왔다.
다시 한 번 파이프를 강하게 쥐었다. 이번에는 실수가 없어야 했다. 시간을 너무 지체하면 안 된다.
“제, 제발!”
태성이는 황급히 뒤를 돌아 애원했다. 그러나 공격은 멈출 수 없었다. 그러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다. 많은 것을 봐버렸다. 넌 괴물에 지나지 않아. 다시 파이프를 강하게 쥐었다. 다른건 몰라도 은혜를 저렇게 만든 죄는 절대 가벼이 넘겨서는 안된다.
“나, 난! 단순히 살기 위해서였다고! 이건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야! 내 안의 무언가가 그렇게 시킨 거라고!”
발작적으로 외치며 몸을 버둥대는 놈을 가만히 바라본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할 말은…… 그게 다냐?”
부웅. 강하게 내리쳤다. 퍼억! 무언가가 부숴 지는 소리가 미세하게 났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비명소리가 상가를 울렸다.
“으악! 아아악!”
가까스로 파이프를 막은 놈은 보기 흉하게 꿈틀대며 고통스러워 했다. 급박한 순간이라 그런지, 아니면 살고 싶은 마음이 강한건지 느리지만 뛰기 시작했다.
“죽어라.”
단숨에 녀석과 거리를 좁혔다. 성치 않은 몸으로 내게서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 했다. 녀석에게 다가가 파이프를 강하게 옆으로 쳐냈다. 퍼억! 녀석의 옆구리가 활처럼 휘며 바닥에 쓰러졌다.
“끄..아아아!”
태성은 연신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두 눈 가득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그것이 진심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제, 제발! 미안해! 미안해! 제발!”
“괜찮아. 이제 죽을 거니까. 피하지 마라. 너만 고통스러우니까.”
부웅. 이번엔 녀석의 정수리 쪽을 향했다. 그러나 너무 정직하고 준비동작이 큰 탓에 녀석의 모습이 순간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퍼억!
가해지는 충격에 헛바람을 들이키며 몸이 앞으로 쏠렸다. 살짝 고개를 돌리니 바로 옆에서 녀석의 두 다리가 보였다.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반격을 한 것이다.
“하아!”
파이프를 대각선으로 휘둘렀다. 양 팔이 성치 않은 놈은 내게 온전히 반격을 가할 수가 없었다. 그럼 녀석의 선택은 오직 하나. 어느 쪽으로든 피하는 것이다.
“흡!”
녀석의 몸이 뒤로 크게 물러났다. 그대로 간다. 파이프를 휘두른 반동을 이용해 몸을 돌려 곧장 앞으로 뻗어 나갔다. 그 짧은 순간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퍼억.
녀석은 천천히 옆으로 쓰러졌다. 머리 쪽에서 피가 나오는 걸 보니 어느 한군데가 깊게 찢어진 것 같다. 자, 끝내자. 마지막이다. 다시 파이프를 고쳐 잡고 녀석의 몸통을 다리로 강하게 눌렀다.
“크으으.”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제길. 시간을 너무 끌렸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니 괴물들이 은혜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크으으으.”
녀석들의 움직임이 활발하고 격렬했다. 여기에 놈을 두고 간다면 짧지만 도망칠 시간은 벌 수 있었다. 은혜를 데리고 도망가야 했다.
“자, 잠깐…….”
“…….”
“날 두고…… 가지…… 마.”
마지막으로 짜낸 태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넌 여기서 죽어야 돼.”
얼른 은혜를 안아 들고 괴물들이 나타난 곳과 반대로 달렸다. 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괴물들은 분한 듯 포효를 지르며 내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내 나를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괴물 놈은 목표를 바꾸어 태성이 놈을 덮치기 시작했다. 곧 태성의 지척에 다다른 녀석들은 성대한 만찬을 즐기기 시작했다. 먼저 태성의 다리를 강하게 문 괴물은 머리를 격하게 흔들며 살점을 떼어 먹었다. 그것에 자극을 받은 다른 괴물 놈들도 서둘러 태성이 놈을 차례로 덮쳤다.
“으아아악!”
큰 비명소리가 울렸다. 내 손으로 끝내주고 싶었지만 녀석에게 더 없이 어울리는 죽음이었다.
시간을 너무 끌린 탓인가. 설상가상으로 몸도 점차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이 상태로는 멀리 도망가지 못할 것이다.
“은혜야, 은혜야!”
은혜의 얇은 목은 재생된 상태였지만 숨이 너무 미약했다. 가만히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죽었다고 여길 만큼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피를 너무 소모한 탓인지 체온도 점차 떨어지고 있었다. 최악이다. 방법은 없는 것인가?
“크아아!”
뚜렷하고 강렬한 소리가 들렸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세 마리 정도의 괴물이 검은 털을 온 몸에 두르고 나를 추격하고 있었다. 인간을 먹고 어느 정도 체력을 보충한 덕이었다. 일단 좁은 통로로 가야했다. 여럿이 아닌 일대일로 풀어야 그나마 승산있는 싸움이 될 터였다.
“허억. 헉.”
숨이 금세 차올랐다. 멈추지 마라. 끝까지 달려. 상가 골목 사이사이를 지나 제법 고층으로 보이는 건물로 들어갔다. 정면에 보이는 엘리베이터가 1층으로 맞춰져 있었다. 다행이다.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맡겼다.
“크아아아!”
한 녀석이 나타남과 동시에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목표물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녀석은 괴성을 지르며 문 쪽으로 길게 도약했다.
“크아아!”
지이잉. 하지만 엘리베이터 문은 약하지 않았다. 문에 몸을 부딪힌 녀석은 좁은 문틈사이로 손을 비집고 애를 썼다.
“크으!”
낮게 으르렁거리는 녀석의 손을 바라봤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은혜를 바닥에 얼른 눕히고 파이프를 강하게 쥐었다. 8층. 이 건물에서 가장 높은 층이다. 좋아. 이대로 올라가기만 하면 돼. 적당한 곳에 숨어 때를 기다리면 된다. 그럼 한숨 돌릴 수 있어.
지이잉. 하지만 내 바람대로 엘리베이터의 문은 굳게 닫히지 않았다. 괴물의 손을 인식한 것인지 단단해 보이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낭패다. 이대로 열리면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아니, 그대로 당할지도 모른다.
“크으으!”
녀석은 듣기 싫은 괴성을 지르며 양손을 넣어 허우적거렸다. 나를 잡으려는 심산이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허무하게 죽어버릴 수 없어. 내게는 은혜가 있어. 지켜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아!”
최대한 힘을 가해 녀석의 손가락을 내리쳤다. 빠각! 단단한 파이프로 인해 녀석의 손가락 몇 마디가 기괴한 각도로 꺾이며 뼈가 드러났다. 그러나 녀석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먹잇감에 대한 집념인지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집착을 버리지 않았다.
“하아아!”
다시 한 번. 녀석이 물러날 때까지 휘둘러야 했다. 빠각! 이번 공격은 꽤나 컸는지 괴물 녀석은 포효를 하며 손을 뺐다. 재빨리 닫힘 버튼을 눌렀다. 이대로 문이 무사히 닫혀야만 했다.
“크오오오!”
먹잇감을 눈에서 놓친다는 분노 때문인지 녀석의 포효소리가 유독 거셌다.
“크아아!”
그리고 또 하나의 포효 소리가 들렸다. 상황이 좋지 않다. 두 녀석이 문을 열려고 한다면 꼼짝 없이 당할지도 모른다. 제발…… 닫혀라. 제발…… 지이잉. 느리게 닫히는 문틈으로 괴물 녀석들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것이 곧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녀석들은 문을 열기 위해 앞으로 다가왔다. 제길! 이대로 있으면 꼼짝 없이 당하게 돼. 제발…… 제발. 빨리 닫혀라.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다르게 지이잉. 느리게 닫히는 문 사이로 또 다른 녀석의 손이 들어왔다.
“허억…… 헉.”
다시 파이프를 쥐고 강하게 휘둘렀다.
“어?”
하지만 파이프에 맞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순간 손을 뺀 녀석들은 서로를 밀쳐내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애초에 ‘협동’ 이라는 개념을 몰라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크아아!”
다행이었다. 본능에 충실한 나머지 중요한 것을 인식하지 못해 다행이었다. 지이잉. 완전히 문이 닫힌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체감 상으로는 십년정도 흐른 것 같았다. 온 몸이 축 처지고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바닥에 누워있는 은혜를 바라봤다.
“…….”
역시 어떠한 움직임도 없이 그대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모든 상황을 만든 태성이라는 새끼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나를 깔보던 얼굴과 목숨을 구걸하던 놈의 얼굴. 그런 얼굴로 학교에 있는 친구들을 먹어 치웠겠지. 빌어먹을 놈.
띵-동.
‘8층입니다.’ 라는 무미한 기계음이 들렸다.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은혜를 다시 안아 들었다. 좌우로 뻗은 복도와 중간 중간 간판들이 보였다. 일단은 오른쪽으로 향했다. 조용히 지낼 수 있고, 문이 튼튼한 곳을 찾아야 했다. 허기를 달랠 수 있는 곳이라면 금상첨화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후우. 후우.”
‘네일아트.’ 첫 번째 간판이었다. 그 뒤에 있는 것은 ‘중개사’ 라고 적힌 간판이었다. 둘 다 석연치 않은 장소였지만 반대 방향으로 가기에는 체력적인 한계가 따랐다. 하는 수 없이 끝에 있는 중개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아…….”
격한 숨소리가 컸던 탓일까. 네일아트라고 적힌 문이 스르르 열리기 시작했다. 곧 느릿한 동작으로 까만 손이 눈에 잡혔다. 마른침을 간신히 삼키고 은혜를 조심스레 바닥에 눕혔다.
“크르르.”
녀석의 두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호리호리한 체형을 보니 여자인 것 같았다. 상당히 오래 굶주린 모양인지 몸 전체가 앙상했다.
“와라.”
파이프를 앞으로 내밀며 말하자, 녀석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앗!”
사정거리다. 한 발자국 길게 떼며 파이프를 강하게 찍어 눌렀다. 푸각. 소리와 함께 녀석은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확실한 마무리를 위해 머리를 완전히 곤죽으로 만들어버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후우.”
심호흡을 내쉬며 중개사 앞으로 다가갔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파이프를 강하게 쥐고 문을 열었다. ‘딸랑. 딸랑.’ 손님을 알리는 방울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20평은 되어 보이는 공간이었다. 군데군데 어질러진 서류 더미와 큰 책상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벅. 저벅.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안쪽에 있는 화장실 문을 열었다. 끼이익. 낡은 쇳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화장실 특유의 냄새가 났다.
“됐어…….”
다행이었다. 솔직히 지금 상태로는 평범한 괴물 놈 하나 상대하기도 벅찼다. 다시 중개사의 출입문을 열고 은혜를 안고 들어왔다. 바닥에 깔린 서류더미들을 대충 치우고 은혜를 조심스럽게 눕힌 뒤 출입문을 이중 삼중으로 걸어 잠갔다.
“하…….”
그러자 온 몸에 힘이 빠졌다. 더 이상 움직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빠르게 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크게 호흡을 내쉬었다.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한단 말인가. 은혜는? 저 상태로 오래 버틸 수 있을까? 괴물들이 여기까지 오지는 않을까? 그럼 난…… 난 어떻게 해야 하지?
“…….”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대로 모든 걸 놓아버리고 죽어버리고 싶었다.
……퉁퉁.
희미하지만 분명 소리가 들렸다. 어디지? 소리가 점차 확대되어간다. 밖이다.
은혜는 여전히 시체처럼 바닥에 누워있었다. 퉁퉁퉁.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드디어 온 건가. 냄새를 맡고서 온 건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파이프를 강하게 움켜 쥐었다.
“……있나?”
작지만 분명히 들리는 소리. 사람의 목소리였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싶었지만 몸이 멈칫했다. 우두머리? 다시 문 쪽으로 귀를 갖다 댔다.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았다. 우두머리끼리 붙어 다니는 경우도 있나?
“은혜야!”
이 목소리는? 잊을 수 없는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단번에 문을 열자 눈에 들어온 것은 아저씨와 남자였다. 순간 힘이 빠졌다. 주저 앉는 다리를 일으켜 세우지 못한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진성아!”
아저씨는 내 몸을 부축해주며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문을 굳게 닫고 은혜에게 다가갔다. 은혜의 손을 조심스레 잡은 남자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져 있었다.
“죄송해요…….”
그저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울컥하고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순간 눈가가 뜨거워졌다.
“아니야. 괜찮아. 이제 괜찮아.”
아저씨는 두터운 손으로 나를 몇 번이고 다독여주었다. 따스한 체온이 느껴졌다. 이를 악물고 울음을 삼켜냈다.
“은혜는?”
아저씨의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힘들다. 이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런가.”
“사실은…… 괴물 녀석에게 쫓기다 당했어요.”
“……그렇군.”
아저씨는 조심스럽게 은혜에게 다가갔다. 남자와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고 다른 손으로 은혜의 이마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진성아.”
“네.”
“잘했어. 혼자서 정말 잘해냈어.”
나를 바라보는 아저씨의 두 눈이 슬픔으로 잠겨 있었다. 차마 그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렸다. 이럴 땐 어떡해야 하지? 이럴 땐…….
“날이 밝으면 이동하지. 모두 기다리고 있으니.”
“……우리는 어떻게 찾으셨어요?”
“남자 덕분에 찾을 수 있었네. 피곤할 테니 쉬도록 해.”
“…….”
아저씨와 남자는 은혜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손을 못 쓸 정도로 망가져버린 것인가. 이제 은혜는 정말…… 그때 은혜의 몸이 떨리며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으, 은혜야!”
황급히 은혜에게 다가갔다.
“꽉 잡아. 진성아, 어서 다리를 잡아.”
“네, 네.”
아저씨의 말에 위아래로 크게 흔들리는 은혜의 다리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제발…… 은혜야 제발. 간신히 진정이 되자 아저씨는 단검을 꺼내 은혜의 입 쪽으로 가져갔다.
“자, 잠깐만요.”
말릴 새도 없었다. 아저씨는 거침없이 자신의 손바닥 가운데를 단검으로 길게 그었다. 주루룩. 붉은 색의 피가 빠르게 흘러내려 은혜의 입안에 고이기 시작했다. 적당히 은혜의 턱을 들어주며 피를 넘겨줬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아저씨?”
“지금은 아무것도 묻지 말고 은혜가 움직이지 못하게 도와주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보다는 아저씨가 하는 일이 더 은혜에게 이로울 것이다. 아니, 그게 맞다. 아저씨는 절대 은혜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지는 않으니까. 주루룩. 붉은 피를 끊임없이 은혜의 입에 넣어줬다.
“후…….”
오 분 정도가 지났을까. 아저씨 손에서는 더 이상의 피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은혜의 경련도 서서히 멎어 곧 천천히 숨을 쉴 수 있게 됐다. 곧 아저씨는 입고 있는 셔츠 아랫단을 길게 찢어 손을 둘둘 말고 은혜 옆에 앉았다. 그리고 나를 보며 손짓했다.
“진성아.”
“네.”
“자네들에게는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이 있어.”
“…….”
아저씨는 많이 망설이는 듯 했다.
“괜찮아요. 우린 다 이해할 수 있어요.”
내 말에 아저씨는 은혜와 남자를 번갈아 보더니 내 손을 잡았다.
“사실 난 은혜와 같은 체질이야.”
“네?”
“내 몸은 백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몸이란 말일세.”
그 말은 샘플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인가? 만 명 중에 한명 나올까 말까 하는 그 희귀한 체질이 바로? 그럼 아저씨도 은혜와 같은 중요한 사람이라는 뜻?
“은혜에게 샘플을 주입했을 때, 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남은 샘플을 내 몸에 넣은 적이 있었지.”
“…….”
“그 결과 오일동안 의식을 잃었지만, 내 몸은 샘플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입증할 수 있었어. 물론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이지. 피가 붉은 이유는 샘플을 소량만 투입했기 때문이야. 아마 정상적인 샘플 수치 량을 내 몸에 주입했다면 은혜와 같은 ‘백신’이 될 거야.”
“아저씨…….”
아저씨는 은혜 왼편에 묵묵히 앉아 있는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끝까지 비밀로 하고 싶었어. 나도 참…… 이기적인 인간이지. 헌데 저 남자는 내 몸에 흐르고 있는 것을 알고 있더군.”
남자는 말없이 은혜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 이 사실을 떠벌리고 다니진 않았지. 그게 남자의 성격이니까.”
“……그럼 은혜는 이제 괜찮나요?”
“모르겠어. 어디까지나 응급 처치라고 생각해. 조금이지만 도움은 되겠지.”
아저씨는 묵묵히 은혜의 손등을 어루만졌다. 아저씨가 그런 사람이었다니…… 은혜만큼 중요한 인물이었다니. 그런데도 아저씨는 우리와 은혜를 위해 목숨 하나 아끼지 않았다. 처음 우리에게 무전기를 건넬 때도, 기현이를 함께 구하러 가줄 때도 아저씨는 늘 우리와 함께였다.
“…….”
배신감?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단지 아저씨가 조금 다르게 보일 뿐. 아저씨는 그대로 아저씨다. 어찌 되었건 우리에게는 소중한 가족의 일원이니까. 그래. 생사를 같이 한 아저씨는 가족이나 다름없다.
“고맙습니다. 솔직히 말씀해주셔서…….”
아저씨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솨아아.
넓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 옅고 아름다운 서리가 입에서 나왔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익숙한 공간이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디…… 어디였지?
“…….”
또 다른 내가 있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이미 다른 내가 나를 보며 서 있었다. 입술이 위로 올라갔다. ‘나’는 나를 보며 웃었다.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보였다. 분명 본적이 있는데…… 어디선가 분명…….
“…….”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기에 왜 있는지, 왜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는지. 갑갑하고 답답했다. 부드득. 송곳니를 갈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검은 털을 뒤덮고 있는 것이 흡사 늑대와도 같았다. 언제 저렇게 변해버린 거지? 천천히 걸어온 늑대는 입을 벌리며 두터운 손을 뻗었다. 단단히 내 어깨를 잡았다.
“크르르르.”
짐승의 낮은 소리가 온 몸을 따갑게 두드렸다. 이상하게 무섭지 않았다. 가만히 그 늑대를 바라보았다. 그저 가만히. 붉은 색의 눈동자에서 내 모습이 투명하게 반사됐다.
“크으…… 아!”
늑대의 두터운 손이 내 몸을 꿰뚫었다. 푸욱! 낯선 소리와 함께 상체가 앞으로 크게 쏠렸다. 아프지가 않다. 이상하다. 뭔가가 공허한 느낌…… 한없이 공허한 무언가가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투둑. 투두둑.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백색의 공간이 서서히 녹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이대로 눈을 감고 싶었다. ‘크르르르’ 늑대가 낮게 울부짖었다.
“…….”
힘겹게 고개를 들어 늑대를 바라봤다. 포효하던 늑대가 나를 보며 입을 벌린다. 진홍색의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투명한…… 투명한 액체가 가득 흘러내리고 있다. 왜…… 왜? 그렇게 나를 보는 거지?
“크아아!”
녹색으로 변해버린 하늘과 땅이 꺼졌다. 무너져 내리는 공간과 함께 내 몸도 갈기갈기 찢겨졌다. 그러나 아프지 않았다. 그저 내 몸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녹색의 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연스럽다. 처음부터 내 몸에 흐르는 것 같앗다.
“크아아아!”
울고 있다. 그것은 나를 보며 울고 있었다.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왜. 왜 나를 보며 우는 것일까. 그런 모습을 하고도…… 나를 갈기갈기 찢어 놓고서 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