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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밖에 나가지 마시오 part.3

익명
2026-10-18 02:09

크아앙!

녀석들의 공격이 이어지기도 전에 문이 닫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심장마저 철렁이는 것 같았다. 우우웅-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면서 녀석들의 거친 포효 소리가 들려온다. 다음에도 이렇게 피할수 있을까?

“하아…….”

동생은 한숨을 쉬며 힘없이 앉아 버렸다. 아저씨는 고개를 힘 없이 저으며 중얼거렸다.

“제법 머리를 쓰는 녀석도 있군 그래.”

“……죽는 줄 알았다.”

십년감수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은혜는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했다. ‘4층입니다.’ 라는 기계음이 들리고 나서야 문이 서서히 열렸다. 거기엔 우리를 구해준 남자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저씨는 우리를 대신해 마음을 표했다. 남자는 30대 정도로 176cm 정도의 키와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착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생존자끼리 도와야죠. 아무튼 아무 일 없어서 다행입니다. 일단 안으로 드시죠.”

남자는 작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4층에 있는 사무실…… 아, 기현이가 여기서 목숨을 건졌다고 했지. 남자는 우리가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사무실 문을 이중 삼중으로 단단히 잠갔다. 사무실 안은 꽤 넓었다. 족히 60평은 되어 보였는데 컴퓨터 몇 대가 켜진 것을 제외하면 상당히 어두운 편이었다.

“여기서 혼자 지내는 겁니까?”

“예. 그렇게 됐습니다.”

“흐음…… 며칠 전 구한 친구 말에 따르면 여기에서 10명 정도를 댁이 구해줬다고 했는데? 그럼 그 사람들은 어디에 간 거요?”

아저씨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예? 10명을요? 괴물들이 활개 하는 날부터 전 여기서 쭉 혼자였습니다. 가끔 동태를 살피러 복도에 있는 창문으로 밖을 보긴 하죠. 그러다가 쫓기고 있는 여러분들을 발견한 거고요. 다행히 권총을 소지하고 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남자는 처음 듣는 소리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 말 사실입니까?”

“아니, 제가 왜 이런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하늘에 맹세코 전 쭉 혼자였습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기현아…… 거짓말을 한 거야? 우리에게? 아니면 이 아저씨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어떤 게 사실이지? 둘 중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소리인가? 복잡하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 거지? 혼란스러운 내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아저씨가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 친구는 5층에서 괴물이 나타났고 10명의 사람들과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에 댁을 만나서 목숨을 건졌다고 했소. 바로 하루 전. 저녁 시간이었지 아마.”

“정말 저 혼자였습니다. 저녁 시간대라면 건물에서 녀석들의 울음소리 때문에 잠도 못 잔다고요. 다행히 여기를 뚫으려고 노력하지 않아서 제가 목숨을 부지하고 있긴 합니다만, 그것도 언제까지 갈지 모릅니다. 식량도 바닥나고 있고…….”

남자의 말과 표정에서 거짓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현이를 의심할 수도 없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굴러가는 거지?

“맞아.”

가만히 있던 은혜가 말했다.

“싫어. 그 오빠.”

“……은혜야.”

나는 은혜와 눈을 맞추고 양 어깨를 꽉 잡았다.

“그 오빠라면 덩치 큰 오빠 말하는 거야?”

은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왜 싫은데?”

“나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은혜의 말대로라면……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분명 기현이의 몸은 우리와 같았어.

“야. 그만해. 은혜가 아파하잖아.”

“미, 미안.”

은혜는 말없이 사무실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심각한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남자도 별다른 말없이 우리를 지켜보기만 했다.

“진성아.”

아저씨는 조용히 나를 불렀다.

“그럴 리 없을 거예요. 그렇죠? 아저씨도 봤잖아요. 야, 너도 봤잖아.”

“…….”

“은혜가…… 그래! 은혜가 실수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얼굴로 나 보지마세요. 기현이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요. 아니, 당장 가서 확인해야..”

짜악. 순간 왼쪽 볼이 화끈거렸다.

“이 미친 새끼야! 네 친구새끼가 괴물이라고 우리가 언제 말했냐? 왜 너 혼자 들떠서 지랄 발광을 하는 건데? 다시 확인하면 되잖아! 마음 강하게 먹기로 한 다짐은 다 어디로 간 거냐? 이진성! 고작 이 정도였냐?”

동생은 내 멱살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만.”

가만히 서 있던 아저씨가 우리 둘을 갈라놓았다.

“진우 너도 그만해. 형의 심정 자네도 알 것 아닌가. 사람은 누구나 나약한 면을 갖고 있는 거야. 어제 내 모습을 봤으니 알 것 아닌 가. 너무 몰아세우지 말게. 진성이도 약한 게 아니라 이 빌어먹을 세상이 더럽게 변한 거니까.”

동생은 말 없이 사무실 구석으로 향했고,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저씨는 내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진성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힘이 얼마나 큰지 아니?”

“……”

“사람은 누구나 간절히 바라는 염원이 하나씩 있지. 그 염원이란 게 신기하게 간절히 바라고 바라면 꼭 이루어지더군. 그와 마찬가지로 불길한 것을 생각하면 언젠가는 꼭 그렇게 일어나게 된다네. 친구를 믿게. 분명 외관상으로는 아무 이상 없었잖아.”

“……”

“일단은 쉬도록 하게.”

그렇게 말한 아저씨는 남자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귀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후우.”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한 개비 두 개비. 타들어가는 담배의 양만 늘어갔다.

[지금 밖으로 나와.]

처음 녀석에게 왔던 톡이었다. 고립이 된 상태에서 나에게 보낸…….

[나 몸이 별로 안 좋아서.]

녀석은 그런 식으로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일이 많았다.

[나 집에 있어도 될까?]

그게 녀석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기현이는 집 안에서도 뭔가에 쫓기는 듯 잔뜩 몸을 움츠렸고 괴물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덩치에 맞지 않게 밥을 아주 조금만 먹었고 거의 모든 시간을 잠으로 때우기도 했다.

은혜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알고 있다. 단순히 확인만 하면 원만하게 끝나는 일 이라는 걸.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정말 은혜 말대로라면…… 그땐 기현이를 없애야 하는 걸까. 더 이상 기현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일까. 같은 괴물로 치부해버려야만 하는 걸까.

“진성아.”

고개를 돌려보니 아저씨가 나를 보며 서 있었다. 시간은 이미 저녁 시간대라 지금 집으로 돌아가기엔 위험했다.

“아깐 죄송했어요.”

“됐어. 일단 뭐라도 먹도록 해. 내일 아침 준우씨를 데리고 밖으로 나갈 거니까.”

준우. 그 남자 이름인가. 그래, 아직 확정되진 않았어. 지레짐작으로 괜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것 같다. 사과를 해야지. 그게 맞는 거야. 아무리 세상이 뭐 같이 굴러가도 연장자 앞에서는 최소한 예의를 차렸어야 했다.

"일단 배라도 채우시죠."

그렇게 말하며 움직이는 사람들. 대충 굴러 다니는 사무실 책상 2~3개를 모으자 꽤 커다란 식탁이 됐다. 60평의 넓은 사무실에서 하는 늦은 저녁이라……

"제가 가진게 이것 밖에 없군요."

​책상 위에는 빵과 우유가 전부였다. 2~3일 동안 준우 아저씨는 빵과 우유만으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일단 이렇게 모였으니 서로 소개라도 하는 게 좋겠소. 우린 잘 알고 있지만 준우씨는 오늘 처음 보잖아.”

제일 연장자인 아저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난 박준우라고 해. 나이는 32세고. 사는 곳은 여기 근처야.”

준우 아저씨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송병현이네. 현직 군인이고, 이 아가씨는 은혜양이야. 정신지체아지. 내가 돌봐주고 있네.”

“아…….”

군인 아저씨의 이름이 송병현이었구나. 그제야 아저씨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전 이진우입니다. 얘랑 일란성 쌍둥이에요.”

“전 이진성입니다.”

그렇게 간단한 소개를 끝낸 뒤 빵과 우유를 먹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빵 하나를 크게 물고는 문득 생각난 듯 준우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준우씨, 아까 총 좀 쏘던데 뭐하는 사람이야?”

“하하하. 그냥 경호 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사무실에 경호원도 쓰나?”

“이게 보통 사무실이 아니라서 말이죠.”

“응?”

“이 사무실에서는 주로 갑부들의 계좌를 관리하는 일을 해요. 하루가 뭐야. 십분 단위로 억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이 여기에요. 갑부들이 많이 모이면 무서운 게 주가를 자기들 마음대로 조정을 하더라고요. 그 이상의 내용은 잘 모르겠고…… 아무튼 사무실에서 다루는 일이 좀 크다보니 경호원을 쓰더군요.”

“호오…… 우리 동네에 이런 사무실도 있었나. 아무렴 어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처지도 아니니까.”

“그렇죠.”

그렇게 말했지만 준우 아저씨의 눈에선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분명 사연이 있는 눈이었다. 하지만 묻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나의 상태도 썩 좋은 편은 아니니까.

“그래, 녀석들을 쭉 관찰했는데 뭐 알아낸 거라도 있나?”

“으음. 딱히 이렇다 할 건 없어요. 주로 밤에 돌아다니고 낮엔 잠을 잔다는 거? 그 외에 별

로 아는 건 없어요. 아, 고기 종류가 녀석들을 자극시키는 건 분명히 알겠더라고요.”

“흐음…….”

“근데 이런 위험한 곳에 저런 아가씨를 데리고 다니고 다니시네요?”

“믿을 진 모르겠지만 은혜는 괴물들을 탐지해내는 능력이 있어. 실제로 밖에서 이틀 정도를 혼자서 생존해왔고.”

“……능력이요?”

준우 아저씨는 눈을 가늘게 뜨고 되물었다. 믿지 못하는 눈치가 분명했다.

“나도 반신반의했네. 하지만 오늘 낮의 일로 그게 다 풀렸지.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대강 녀석들의 위치를 감지해 내는 것 같아. 아무래도 우리와 다른 지능과 다른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뭔가 특별해.”

“신기하네요. 하긴, 어린아이들이 하나에 집중하면 뭐가 가까이와도 눈 하나 깜빡 안하잖아요.”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는 서로 죽이 잘 맞는 듯 했다. 나는 빵을 먹고 있는 동생을 슬쩍 보고 은혜 옆으로 갔다. 저녁이 되기만을 기다렸는지 일반 사람의 모습을 한 괴물들이 기계적으로 도로를 활보하고 다녔다.

“……은혜야.”

“……”

“괴물들이 참 많다. 그치?”

“……”

은혜는 대답 없이 한 곳만 응시했다. 나는 그 옆에 조심스럽게 앉아 가만히 밖을 바라보았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어디야 진성아…….]

기현이었다. 지금 시간에는 통신사에서도 아무런 제재를 안 하는 건가? 시계를 보니 20시였다. 20시…… 통신이 가능한 시간대인가?

[미안…… 우리 지금 고립 됐어. 내일 아침에 바로 집으로 갈 거야.]

[무서워. 녀석들이 집 앞을 돌아다니고 있어.]

[집으로는 들어오지 못하잖아. 조금만 버텨줘.]

[……그래.]

이렇게까지 냉정하게 대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은혜 말을 듣고 나서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멍하니 액정 화면을 바라보았다. 역시 잘못 된 거야. 다시 보내야겠어. 하지만 통신 상태가 불량하다고 뜰뿐이었고 톡은 전송되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20시에서 5분이 지나고 있었다. 단 5분 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었다. 20시부터 5분까지 통신사의 제재가 약해진다?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동생은 여전히 느릿하게 빵을 씹고 있었다.

“제 추측일지도 모르지만 20시부터 20시 5분까지 통신사에서 아무런 제재도 안 하는 것 같아요. 방금 기현이와 톡을 했거든요. 5분이 넘자마자 바로 끊기더라고요.”

“우연의 일치 아닌가?”

아저씨는 빵을 씹으며 물었다.

“아니에요. 기현이가 그제 저한테 톡을 보낸 시간도 거의 비슷했어요.”

 

내 말에 아저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곧 빵을 우물거리기 시작한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흐음…… 그래? 그럼 내일 다시 시험해보면 알겠군. 일단 쉬기로 하지. 내일 아침 일찍 이동할거니까.”

 

아저씨는 손을 훌훌 털고 책상이 끌리지 않게 들어 적당한 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와 동생도 적당히  거들었다. 

 

“근데 괴물들이 문을 부수지 않을까요?”

 

준우 아저씨는 책상을 끌며 물었다.

 

“우리가 알아본 바로는 괴물들은 남의 집에 침입을 못하더군.”

“예? 왜 그렇죠?”

“나도 의문이야. 그 정도의 힘과 스피드를 갖고 있으면서 왜 다른 집에 침입을 못하는지…… 아무튼 우리한테는 좋은 소식이지.”

“그랬구나. 전 그것도 모르고 밤에 계속 보초를 섰어요. 문 앞에서요. 형님 말 들어보니까 괴물들은 그냥 울어대기만 할 뿐, 한 번도 저 문을 치지는 않았네요. 전 그것도 모르고 밤을 꼴딱 새고 낮에 자고…… 그렇게 괴물들과 생활 패턴을 맞췄었는데 그게 다 헛고생이었네요.”

 

준우 아저씨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준우 아저씨를 보며 아저씨는 너털 웃음을 흘렸다. 

 

“허허허. 아무튼 살아 있다는 게 중요한 거야.”

“그렇죠. 역시?”

 

둘은 어느새 형님 동생이라고 할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사무실에는 꽤 많은 책상들이 있어서 몇 개만 붙였을 뿐인데도 넓은 공간이 생겨났다. 딱딱하긴 했지만 바닥에서 자는 것보다는 백배 나았다.

 

책상 세 개 정도 이어 잠자리를 만들고 나니 어느새 22시였다. 밖은 여전히 고요했다. 괴물들이 활보하고 다니는 동네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이거 도저히 잠이 안 오네요.”

 

준우 아저씨 말에 다들 동감했다. 아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루아침에 바뀐 잠자리 환경이 이렇게나 힘들 줄이야.

 

“우리 은혜는 잘 자는 걸?”

 

은혜는 서류더미를 베개 삼아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저씨는 조용히 일어나 자신의 담요를 은혜에게 덮어주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 그 반지.”

“아, 이거요?”

“마누라는 잘 있고?”

“이제 막 돌이 된 아들이랑 집에 있을 거예요. 아마도…….”

 

준우 아저씨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어떤 뜻인지 모두가 간접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입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살아있기를 간절히 바라겠지만 밖의 상황은 너무나 절망적이었다. 

 

무거운 침묵만이 이어지는 공간. 하지만 그 침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쿵쿵.

 

뭔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고는 각자 소지한 총을 꺼내 들었다. 은혜는 세상모르고 곤히 잠든 상태였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고 준우 아저씨와 함께 문 앞에 다가섰다.

 

쿵. 쿵. 약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분명 밖에 뭔가가 있었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곤 권총을 양손으로 굳게 잡았다. 

 

"트러블을 일으켜 일이 커지면 안돼."

 

그 말에 모두가 동감했다.

 

“……도와주세요.”

 

작지만 확실히 전달되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거기 있는 거 다 알아요. 제발 도와줘요. 밖에 괴물들이 너무 많아요. 무서워죽겠어요. 제발요…….”

 

영락없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준우 아저씨는 이런 경험은 처음인 듯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아저씨에게 해답을 바라는 얼굴로 바라보았지만 아저씨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쿵! 쿵! 쿵!

 

문을 두드리는 강도가 점점 세져갔다. 이대로라면 녀석들이 몰려올지도 모른다.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하겠지만 녀석들이 몰려든다면 내일 아침에 집으로 가는데 지장이 생길지도 모른다.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준우 아저씨는 문 옆에 있는 공구도구함을 열기 시작했다. 꽤 큰 망치 두개를 꺼낸 준우 아저씨는 그것을 강하게 쥐었다. 두 아저씨는 결심이라도 한 듯, 망치를 나누어 갖고 문을 천천히 열기 시작했다. 꿀꺽. 나와 동생은 만약에 있을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총구를 겨누었다.

 

저벅. 저벅.

 

느릿하지만 꽤 커다란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고서 마른 남자가 천천히 들어왔다. 정상인과 다를 게 없어 보였지만 그의 목은 이미 검은 털로 뒤덮여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아저씨는 굳게 문을 닫았고 우리들의 행동에 놀란 남자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왜…… 왜 이러세요?”

“근데 왜 얼굴은 웃고 있지?”

 

아저씨의 말에 정곡을 찔린 남자는 커다랗게 괴성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는 남자 머리를 가격했다.

 

퍽. 팍. 빠각. 사정 봐주지 않는 공격이었다. 남자는 곧 맥없이 숨을 거두었고 아저씨는 시신을 구석으로 끌고 갔다.

 

“하아……”

“후우…….”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듯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소리가 너무 컸다. 남자의 괴성이 다른 놈들을 부른 것 같았다. 문을 약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점차 많아졌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배고파요.”

“한 번만 열어주세요.”

 

몇 명인지도 짐작도 가지 않는 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는 책상을 끌어 문 앞을 막기 시작한다. 나와 동생도 빠르게 도왔다. 밖에선 애원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쉴 새 없이 철문을 두드려댔다.

 

“하아…… 하아. 오늘 잠자기는 글렀군.”

 

아저씨는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그 말에 모두 동의했는지 적당히 자리를 잡고 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이가 며칠째 굶고 있어요. 제발 열어주세요.”

 

그 말에 소름이 돋았다. 굶고 있는 것을 왜 우리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걸까. 떨리는 입술로 심호흡을 크게 했다. 동생은 굳은 얼굴로 문을 응시했고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도 마찬가지였다.

 

 

애원하는 소리가 점차 거세져갔다. 준우 아저씨는 견디기 힘든지 고개를 숙였다.

 

“잊지 마. 저것들은 사람이 아니야. 사람의 탈을 쓴 괴물이라고.”

 

아저씨는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자꾸 텁텁해지고 무거워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 지금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은혜는 여전히 곤히 자고 있었다. 처음으로 은혜가 부러웠다. 이 빌어먹을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낮에 있었던 개들과의 추격전이 이 정도로 여파가 커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마 1층에 있는 개들의 시체를 따라 온 것이 분명했다. 층마다 개방된 문과 곳곳에 널린 괴물들의 사체가 있으니 그것을 먹었을 테고…… 다시 건물을 맴돌다가 굳게 잠긴 4층 문을 보고 미심쩍게 생각한 거겠지.

 

쿵. 쿵. 쿵. 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그칠 줄 모른다. 후우. 후우. 긴장하지 마. 어차피 저 자식들은 우리가 열어주지 않는 한 들어오지 못하잖아. 그래, 이진성. 긴장하지마라.

 

우리는 무거운 침묵만을 유지한 채 문을 응시했다. 1시간. 2시간. 3시간이 더 지난 것 같았다.

 

“후…….”

 

길게 숨을 내쉬며 문 쪽으로 다가갔다. 우리 모두 한손엔 권총을, 다른 한손에는 망치나 커다란 커터 칼을 쥔 상태였다.

 

“1시간정도면 날이 밝아.”

 

아저씨는 담배를 물고 깊게 한 모금을 빨았다. 뿌연 연기가 천장에 맴돌다 사라졌다. 우리는 말없이 그것을 바라보았다.

 

“날이 밝아도 녀석들이 떠난다는 보장이 없어. 적어도 인간 상태에서는 '지성' 이란 게 존재하는 거 같으니까 말이야.”

 

다시 한 모금 깊게 내뱉었다.

 

“미끼를 던지는 건 어때요?”

 

동생은 벌떡 일어나 말했다.

 

“?”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우리들은 동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동생은 공구함에서 날카로운 커터 칼과 톱들을 꺼내 우리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한 마디 말도 없이 구석으로 다가갔다. 거기엔 시체가 있는…… 너 설마?

 

아저씨들은 굳은 얼굴로 동생을 따라 들어갔다. 망설일 시간도 없었다. 우선은 살아야했다. 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다. 동생은 싸늘하게 식어가는 시체를 방 가운데에 질질 끌어 왔다.

 

“각자 맡은 부위를 정하고 최대한 많이 자르는 거예요. 작고 많게 잘라서 녀석들의 시선을 빼앗는 거예요. 고기 덩어리들을 계속 던져주면 녀석들도 거기로 모여들 거예요. 아무것도 안하고 나가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예요.”

 

말을 마친 동생은 시체의 왼쪽 손가락부터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는 태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차갑고 냉철한 면이 있긴 했어도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아저씨들은 각각 왼발과 오른발을 작업하기 시작했다.

 

“진우는 생각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네.”

“살려면 뭐든 못하겠어요.”

“……그렇지.”

 

살이 썰리는 소리와 뼈가 부러지는 불협화음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진성아, 힘들면 문 앞에서 감시나 해줘. 어려운 일이란 거 알아.”

“그래 진성아. 무리하지 마. 우리 셋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아저씨들은 그렇게 말해주었지만 표정은 정반대였다. 두 사람 모두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참아내는 표정이었다. 좁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공간을 나가버린다면 계속 죄책감에 빠져 지낼 것 같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나를 움직이게 한 건 동생의 말이었다.

 

[마음 강하게 먹기로 한 다짐은 다 어디로 간 거냐? 이진성 너란 새끼. 고작 이 정도였냐?]

 

이를 악물고 남은 오른손에 날카로운 커터 칼을 들이밀었다.

 

[남을 지키기 위해서는 최소한 나를 지킬 능력은 갖고 있어야한다.]

 

맞아. 아저씨의 말이 백번 만 번 맞아.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이 곳에서 도망갈 수 없다. 후우. 후우.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건 살인이 아니야. 고인을 모독하는 행위도 아니야. 그저 괴물을 잘라내는 작업일 뿐이야.

 

 

 

싸늘하게 식은 오른 손목보다 약간 위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날이 두꺼운 커터 칼로 손목에 강하게 대고 톱질하듯 잘라냈다. 피가 많이 나와 자르는데 어려움이 따랐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몸을 옥죄어오기 시작했다. 안 돼. 약한 마음이 들면 안 돼. 넌 해내야해. 이건 선택이 아닌 필수야.

서걱. 서걱. 일정 부분을 가르자 더 이상 잘라지지 않았다. 어느새 막바지에 다다른 동생은 말없이 망치를 건넸다. 나는 말없이 망치를 받아들고 고깃덩어리를 힘껏 내리쳤다.

 

"하아.. 하.."

 

퍽. 퍽. 빠각. 땀이 비 오듯 흘러 눈이 따가웠다. 숨이 점점 가빠진다. 두 번 정도 더 내리친 끝에 손목으로 추정되는 것이 잘려나갔다.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손 마디마디를 내리쳐 뼈들을 으스러트렸다. 그리고는 커터 칼로 힘껏 잘랐다. 손가락에서 나온 3~4조각과 손목에 붙어 있는 살덩이들…… 이것들이 괴물들의 시선을 충분히 끌어주었으면 한다.

 

제일 마지막으로 작업을 마친 나는 피범벅이 된 공간에서 나왔다. 준우 아저씨는 말없이 쟁반을 내밀었다. 나는 잘려진 '고기'들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 있는 담배를 찾아 입에 간신히 물었다.

 

아저씨가 말없이 불을 붙여주었다. 차갑고 기분 나쁜 피의 감촉이 얼굴과 목에서 느껴졌다. 손은 이미 마비 된지 오래였다.

 

“하아…….”

“우웩!”

 

내가 담배를 핌과 동시에 동생은 바로 옆에서 먹은 것들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먼저 제안을 하긴 했지만 동생 역시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등을 두드려주는 것뿐이었다.

 

“고생했어. 앞으로 더한 일을 겪어도 이젠 쉽게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아저씨는 힘없이 말했다.

 

“…….”

 

하지만 자축을 할 때가 아니었다. 미끼는 그저 수단에 불과할 뿐이지 우리들을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택시 같은 게 아니었다. 시간이 꽤 흘렀는지 문 밖은 조용했다. 마지막 남은 담배를 힘껏 빨고서 창문을 보니 서서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얼굴 곳곳에 피를 묻히고 일출을 바라보는 우리 네 사람은 한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준우 아저씨는 쟁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슬슬 움직이죠.”

“그러지.”

 

아저씨는 곤히 자고 있는 은혜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선뜻 깨우지는 못했다. 양손이 피로 물든 상태에서 은혜를 건드리기에는 죄악감이 든 탓이었다. 그래. 은혜는 우리에게 있어 최소한의 양심이지.

 

이내 아저씨는 손에 묻은 피를 억지로 닦아 냈다. 스윽. 슥. 완전히 닦아지진 않았지만 최소한 손의 모양은 갖추게 되었다.

 

“은혜야. 일어나자.”

“으움…….”

 

은혜는 눈을 비비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혜야. 앞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절대 소리 지르면 안 돼.”

 

아저씨는 무릎을 꿇고 은혜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소리?”

“그래. 우리 은혜는 착하니까 괴물들을 봐도 소리 지르면 안 된단다. 여기서 나가고 싶지?”

“응.”

 

은혜를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우리들의 상태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지.”

 

서서히 나갈 준비를 했다. 아저씨들은 제일 선방을 맡고 은혜는 바로 그 뒤를, 우린 후방을 맡았다.

 

“준비됐지?”

“…….”

 

아저씨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은혜만 제외하고는 전부 극도의 긴장상태였다. 아저씨는 우리의 침묵을 OK 사인으로 받아들이고 서서히 문을 열기 시작했다.

 

끼이익. 밤새 놈들의 공격을 버틴 철문은 힘없는 마찰음을 내며 좌우로 갈라졌다. 두근두근. 심장 박동이 점차 빨라졌다.

 

“흐음…….”

 

아저씨들은 신음을 내뱉었다. 4층에는 두 갈래의 통로가 있는데 하나는 위층으로 가는 계단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래층으로 통하는 통로였다. 5미터 앞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문제는 바닥에서 죽은 듯이 자고 있는 괴물들이었다. 설사 엘리베이터에 오른다고 해도 녀석들이 잠에서 깰 수 있었다.

 

“은혜야, 저기 계단이랑 저기 계단에도 괴물이 있니?”

 

나는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은혜에게 귓속말을 했다.

 

“응.”

 

생각보다 많은 놈들이 이 건물을 장악한 것 같다. 계단으로 통하는 길이 막혔다면 엘리베이터로 가는 수밖에 없다. 큰 위험부담이 따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자고 있는 녀석들을 밟지 않기 위해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조심히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5미터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크으?”

 

모두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10살 정도 된 어린 소년이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평범한 소년의 모습이었지만 눈은 이미 붉은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여기서 소란을 일으키면 곤란해. 준우 아저씨는 위로 올라가는 통로 쪽에 작은 고기 덩어리를 던졌다. 날아가는 고기를 바라보던 소년은 우리를 본체만체하며 서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시 안도의 숨을 내쉰 우리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스르륵.

 

1층을 누른 뒤 닫힘 버튼을 연달아 눌렀다. 그래 봤자 닫히는 속도는 같지만 이렇게라도 초조한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고파.”

 

아까 그 소년이 닫히는 문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소년은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목덜미가 검은 털로 뒤덮인 걸로 봐서 곧 변신을 할 것 같았다.

 

아저씨는 머뭇거림 없이 소년의 손을 잡아당겼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오른손에 들린 커터 칼로 소년의 정수리를 강하게 내리 찍었다. 이 모든 행동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푸쉬익.

 

소년의 검붉은 피가 엘리베이터를 가득 채웠다. 그와 동시에 '1층입니다.' 라는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그런 우리들을 반긴 것은 3마리의 개들이었다.

 

개들은 바닥에 엎드려 가만히 잠을 자고 있었다. 아저씨는 준우 아저씨와 나에게 개를 한 마리씩 지목하고는 천천히 다가갔다. 그 뜻이 뭔지 잘 알고 있는 아저씨와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다가갔다.

 

신발소리가 나지 않게 최대한 바닥을 끌며 접근했다. 두근두근. 심장이 너무 뛰어서 심장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였다. 손에 들린 망치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천천히…….”

 

아저씨는 엎드려 자고 있는 녀석에게 접근했다. 나와 준우 아저씨 역시 자고 있는 두 녀석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녀석의 청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크아앙!

 

우리의 접근을 눈치 챈 녀석들은 일제히 일어나 공격태세를 갖췄다. 하지만 그 중 한 마리는 아저씨의 공격으로 인해 피를 토하며 다시 쓰러졌다. 남은 두 마리는 으르렁거리며 우리를 노려보았다. 소리가 너무 컸다. 계단에 잠들어 있는 괴물들이 내려올 수 있었다.

 

육탄전. 그 방법 밖에 없군. 나와 준우 아저씨는 으르렁거리고 있는 두 녀석에게 달려갔다. 녀석들도 잽싸게 달려와 높게 뛰어올랐다. 망치를 휘둘러야 하지만 나의 대처가 먹혀들지 의문이었다.

 

위험해. 머릿속에서 경고를 보냈다. 이렇게 되면 녀석에게 물어뜯기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깨갱. 하지만 녀석의 공격은 무의로 끝났다. 먼저 녀석을 처리한 아저씨가 내 뒤에서 녀석의 머리를 부셔버린 것이었다. 준우 아저씨는 나머지 녀석을 해치우고 우리에게 손짓을 했다. 제길…… 중요한 순간에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으드득. 이를 악물고 아저씨들을 따라 나섰다. 태양은 우리들의 피로를 잊게 해줄 만큼 눈부셨다. 그러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따사로움도 잠시, 뒤따라 나온 동생과 은혜가 뛰기 시작했다.

 

“계단에서 소리가 났어요. 녀석들이 올 거예요.”

 

그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은혜가 걱정되긴 했지만 완전히 챙겨줄 여력이 없었다.

 

크어어!

크워!

 

이대로라면 분명 잡히고 만다. 아까의 실수를 만회해야만 했다. 언제까지 도움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 몸을 돌려 한 녀석의 목 쪽으로 총을 겨누었다.

 

‘목표물보다 약간 아래의 느낌으로…….’

 

약간 더 아래다. 기회는 한번 뿐이다. 이진성. 너의 능력을 보여줄 때야. 흐읍. 호흡을 멈춘다. 천천히. 정확하게 방아쇠를 당겨.

 

타앙.

 

녀석은 뒤로 나가떨어졌다. 처음 권총을 쏜 것 치고는 상당히 좋은 명중이었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상대는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바로 내 앞까지 다가온 녀석은 웃고 있었다. 날카로운 송곳니와 번들거리는 눈이 나를 깔보고 있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나에게는 뒤를 봐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타앙.

 

준우 아저씨였다. 바로 내 앞에 있던 녀석은 옆으로 나가떨어졌고, 나와 준우 아저씨는 전속력으로 달려 세 사람과 합류했다. 허억. 허억.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다리는 더 이상 달릴 수 없다고 신호를 보내지만 여기서 멈출 순 없었다.

 

“이 골목만 돌면 돼. 힘내게!”

 

아저씨는 무사히 따라오고 있는 우리를 보며 외쳤다. 그래, 이 골목만 지나면 우리를 쉬게 해줄 집이 있어. 조금만 버텨라 이 빌어먹을 체력아. 고작 하룻밤 샜다고 이 정도로 나약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냐.

 

“하아. 하아. 하아…….”

 

골목을 돌자 집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앞서 가던 아저씨와 동생은 걸음을 멈춰섰다.

 

“왜? 허억. 허억.”

 

제대로 숨을 쉬기 힘들었다. 모두 나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숨을 헐떡이기만 할뿐, 내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아저씨의 커다란 덩치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아저씨 옆에 서서 우리를 멈추게 한 빌어먹을 놈을 보았다.

 

“…….”

 

그건 있어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

 

“……기현아.”

 

분명 집에 있어야 할 놈이었다. 근데 왜 밖에 나와 있는 거야? 왜…… 양 손이 검은 거지? 기현이는 검게 변한 두 손을 바라보더니 허망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곧 울 듯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진성아…….”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네가 왜 거기 있어……?”

“……”

 

기현이는 축 처진 어깨로 우리를 응시했다.

 

“네가 왜 거기 있냐고! 그 팔은 대체 뭐야, 이 미친놈아!”

 

온 몸을 떨며 기현에게 소리쳤다. 살아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점차 사라져갔다.

 

“미안하다…… 사실을 숨겼어. 나…… 그날 물렸었거든. 덕분에 괴물들이 나를 동료로 인식한 거고 해치지 않았어. 덕분에 너와 만날 수 있었던 거야.”

“……”

 

가슴이 아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뜨거운 뭔가가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저씨는 권총을 기현에게 겨누었다.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게.”

“……사실 여러분들과 지내면서 어쩌면 치유가 될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했어요. 희망 고문이었던 거죠. 고기를 아예 입에 대지도 않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팔이…… 이렇게 되어있지 뭐예요. 그동안 속여서 죄송했습니다.”

"...."

"진성아."

 

기현이는 힘없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 부름에 난 선뜻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너를 아무 조건 없이 도와주는 사람.. 그 사람을 조심해."

 

그리고는 기현이는 왼쪽 골목으로 힘없이 걸어갔다. 점점 멀어져가는 녀석을 차마 잡을 수가 없었다. 아니, 잡아선 안 돼. 이미 우리와 다른 괴물이야.

 

[넌 매일 맞고 사는 게 지겹지도 않냐?]

[……나라고 좋아서 이러는 줄 아냐.]

[그럼 너도 같이 싸워. 뭐가 무섭다고 그래?]

[싫어…… 내 손에 누군가가 다치는 건. 난 힘도 없고…….]

[사내자식이 쯧쯧.]

 

우울한 학창시절을 보내던 나에게 다가와준 녀석. 학교라는 곳이 생각보다 재밌고 다닐만하다는 것을 알려준 녀석. 힘들 때 같이 있어주고 기쁠 때에도 같이 있어주면서 축하해주던 녀석. 처음 여자 친구가 생긴 날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던 녀석.

 

[우리 아버지 돌아가셨다…….]

[괜찮아. 네 아버지가 나한테 잘해주시니까 왠지 모르게 든든하다.]

 

 

 

그런 기현이가 괴물로 변해버리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평생을 불행에 빠져 살던 놈에게 어떻게 저런 벌을 내려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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