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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밖에 나가지 마시오 part.14

익명
2026-10-18 03:37

“크아아아!”

그러나 온전히 피할 수는 없었는지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성공인가? 하지만 녀석은 바로 자리를 박차더니 더욱 매섭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과연 살겠다는 의지 하나는 대단한 놈이었다.

“제길…….”

점차 점이 되어가는 녀석을 보며 우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서둘러!”

머뭇거려선 안된다. 녀석에게 미련을 버리고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이대로 꼬리가 잡힌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경험으로 보건대 처음 우리를 궁지로 몰아 넣은 덩치 큰 우두머리는 절대 만만한 놈이 아니었다. 만약 다시 녀석과 조우하게 된다면..

"다들 타십시오."

아저씨는 모두 버스에 올라타게 했다. 봉수 아저씨와 해인이는 굵은 눈물을 흘리며 가족에게 다가갔다.

“흐어어엉.”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상황도 급했다.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는 세 사람을 강제로 버스에 타게 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탄 것을 확인한 아저씨는 이내 버스를 출발시켰다.

“…….”

버스 내부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그간 우리를 보호해주던 위풍당당한 모습은 온데 간 데 없었다. 마치 폐차 직전의 차처럼 버스 왼쪽 부분이 기하학적으로 찌그러져 있었다. 폭격이라도 맞은것처럼 멀쩡한 창문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우린 좌석에 남아 있는 유리파편들을 대강 치워내야만 했다.

"사, 살았어."

"정말 감사합니다."

생존자들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 사람들을 지나쳐 은혜와 남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은혜와 남자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남자의 상의가 보기 흉하게 찢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녀석도 아주 당한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괜찮아?”

“곧 나을 겁니다.”

“낫는다고?”

“재생이 가능합니다.”

저 정도의 상처를 입고도 덤덤하게 말하는 표정이라니……. 과연 남자는 인간의 범주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야, 진성아. 빨리 앉아라. 떨어질라.”

준우 아저씨가 옆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버스가 속도를 내자 자연스럽게 바람이 거세졌다. 천천히 준우 아저씨의 옆 의자에 앉아 안전벨트를 꽉 맸다.

"?!"

순간 뭔가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직 완전히 깨지지 않은 창문 조각이 여기저기 날리고 있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동생이 아저씨에게 다가가 버스를 세우게 했다.

“일단 위험요소가 될 만한 유리조각들만 없애고 가자고.”

아저씨의 말에 우리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유리 조각들을 본격적으로 치우기에 나섰다. 커다란 버스였지만 늘어난 머릿수 때문인지 생각보다 금세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대강 어느 정도 깨끗해지자 아저씨는 다시 버스를 몰기 시작했다.

“후우…….”

숨을 크게 내쉬고 자리에 앉았다. 앞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아직까지 충격이 가시지 않는지 몸을 심하게 떨었다. 이상하게 사람들을 봐도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들을 위해 내가 대신 싸워준다거나 그들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한다거나. 그런 것은 애초에 들지가 않았다. 그저 괴물들을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도 변하는건가?

"큭."

거세고 세찬 바람 때문에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몸을 앞으로 숙여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내 모습을 보던 준우 아저씨도 나와 같은 자세를 하며 말했다.

“저 많은 사람들을 전부 지켜줄 수는 없어.”

“……그럼요?”

준우 아저씨는 말없이 고개를 젓고 다시 원래의 자세로 돌아갔다. 기댈 곳 이라고는 우리 밖에 없는데 지켜줄 수 없다니…… 저 사람들을 버리고 가겠다는 건가? 사람들이 순순히 응할까?

“저들도 훈련을 하면 충분히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나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 게다가 우리는 총알도 얼마 남지 않았어. 총알이 다 떨어지면 우리 몸 하나 지키기도 힘들어.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너도 알잖아? 녀석들은 무리 단위로 움직이고 있다고.”

“저 사람들한텐 뭐라고 하게요.”

“나한테 생각이 있어.”

그 말을 끝으로 준우 아저씨는 그대로 몸을 젖혔다. 아저씨의 품 안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 소총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준우 아저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그러나 준우 아저씨의 말대로 총알이 떨어져갔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소총과 석궁 이 전부였다. 용케 석궁을 챙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무한으로 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철컥.

안전벨트를 풀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우민 형에게 다가갔다. 거센 풍압 때문인지 우민 형의 오른쪽 소매가 심하게 나풀거렸다.

“할…… 말 ……어?”

바람 때문에 우민 형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나는 우민 형 옆에 앉아 귓가에 속삭였다.

“충주에도 여러 부대가 있겠지?”

“부대는 전국 어딜 가나 있지. 잘 보이지 않게 주둔해 있는 것뿐이지만.”

“그럼…… 총을 얻을 수 있을까?”

“모르겠어. 제대로 남아 있는 부대가 과연 몇 개나 될지도 의문이고……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선뜻 개인화기를 내어줄 것 같지도 않고.”

우민 형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역시 그렇지?”

“그럴 가능성이 크지. 하지만 가 볼만해. 군대라는 곳이 워낙 말이 안 통하는 데라서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지휘관을 만나 잘 구슬리면 될지도 몰라. 물론 멀쩡히 부대가 남아 있다는 전제하에 말이야.”

그럼 아직 희망이 있다는 얘기인가. 설마 우리 같은 사람들을 매몰차게 내쫓지는 않겠지. 여기까지 왔는데 쉽게 포기할 순 없었다. 만약 온전한 상태의 부대에 간다면 저 사람들을 버리고 가지 않아도 된다.

“좋아…….”

충주에 도착하면 아저씨에게 얘기해 봐야겠다. 은혜를 빌미로 삼아 얘기 해보면 응해줄지도 모른다.

부우웅.

얼마나 지났을까. ‘충주.’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시계를 보니 아직 13시에 불과했다. 시내를 돌며 부대 위치를 확인할 시간이 있었다. 버스는 빠르게 충주 시내로 접어들었다. ‘탄금교’ 라는 다리 위를 지나자 충주역이 보였다.

역 앞에서 버스를 세운 아저씨는 모두에게 손짓을 했다.

“다들 내리시오.”

그 말에 사람들은 차례대로 내리기 시작했다. 남은 우리는 배낭을 메고 소총과 석궁을 챙겼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해인에게 석궁을 주고 화살 통을 건넸다.

“네가 지켜줘야 해. 알겠지?”

해인이는 눈동자를 몇 번 깜빡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좋아, 그 눈이야. 해인에게 석궁 사용법을 간단히 알려주고 장전을 시켰다.

해인이는 현을 조심스럽게 잡아당기며 강도를 가늠해 보고는 장전에 성공했다. 확실히 양궁을 다루고 있던 터라 우리들과는 달랐다. 해인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제일 선두에 있는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왜 그런가.”

나는 망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얘기를 아저씨에게 전했다. 물론 우리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작게 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일부러 총과 은혜를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흐음…….”

효과가 있는지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야. 일단 인터넷을 통해 부대 위치를 알아보도록 하고, 지금은 빨리 이동하는 게 좋아. 모두 모이시오.”

아저씨의 말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우선 차를 통해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4명당 1조로 나누겠습니다. 여성분들은 전부 여기에 남아 계시고 차를 운전할 줄 아는 세 명만 근처에 있는 차를 구해서 이리로 오는 것으로 하지요.”

아저씨 말에 여자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많이 지친 모양이었다. 해인이와 어머니는 서로를 놓을 생각이 없는지 아직까지도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봉수 아저씨가 나섰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역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대기하고 있게. 금방 올 테니.”

아저씨의 말에 남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적당한 차가 있는지 물색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역 부근이라 주인을 잃은 차들이 상당히 많았다. 봉수 아저씨는 제일 앞에 있는 SUV 차량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온통 검은 색으로 코팅이 되어있어 안을 보기가 힘들었다. 아저씨는 여유롭게 움직여 봉수 아저씨 옆에 붙었다.

“신호를 하면 여시오.”

“알겠습니다.”

봉수 아저씨는 긴장된 표정으로 운전석에 손을 가져갔다. 우리는 소총을 겨누고 준비를 마쳤다. 나는 봉수 아저씨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봉수 아저씨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단번에 운전석을 열었다.

“…….”

다행히 내부는 깨끗했다. 봉수 아저씨는 슬쩍 고개만 들이밀어 뒷좌석도 살폈다. 마지막으로 열쇠가 꽂혀 있는지 확인한 봉수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차량 한 대가 확보되었으니 다른 두 대를 구해야했다. 고개를 두어번 두리번거린 끝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되어 있는 중형차가 보였다.

“흐음…….”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렸다. 앞 창문이 전부 검은색이 아닌 붉은 색으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저것을 다 닦아낼 여유 같은 건 없다. 우리에겐 아직 뽑지 않은 카드가 많았다. 걸음을 옮겨 역 근처로 다가갔다. 길게 줄선 택시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좋아.”

대충 밖에서 살펴본 뒤 택시 3대를 이끌었다. 아까 보았던 SUV 차량은 잊은 지 오래였다.

부우웅.

시동이 걸리며 매끄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호나 도로를 전부 무시하고 사람들에게 되돌아갔다. 사람들에게 다가간 우리들은 조를 나누기 시작했다. 먼저 아저씨 차량에는 평범한 남자 둘과 우민 형이 탔고, 봉수 아저씨 차량에는 해인이와 어머니. 그리고 준우 아저씨가 탔다. 마지막으로 내 차량에는 평범한 여자 한명과 동생, 그리고 은혜와 남자가 탔다.

아저씨가 제일 선두에 섰고 그 다음은 봉수 아저씨, 후미는 내가 따랐다. 처음 집을 나설 때와는 다르게 상당히 규모가 커져 있었다. 살아남은 생존자들끼리 잘 뭉친다면 헤쳐나갈 수 있는 길이 조금이지만 보이지 않을까?

"출발합니다."

우린 역을 벗어나 큰 도로 쪽으로 차를 몰았다. 마침 근처에 주유소가 있었다. 망설임 없이 주유소로 이동하는 아저씨 차량. 남은 우리도 차례대로 주유소 쪽으로 운행을 하기 시작했다.

“…….”

차 안은 고요했다. 뒤에는 동생과 젊어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무심한 표정으로 밖을 보는 동생과는 달리 여자는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조금이라도 건드린다면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누나.”

“……네?”

“누나가 아닌가? 하하. 어찌되었든 우리가 꼭 지켜줄 거니까 걱정하지마세요.”

“네…….”

내 말이 효과가 없는 지 여자의 표정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이내 주유소에 도착한 우리는 차에서 한명씩 내렸다. 막상 주유소 기계를 만지려고 하니 머리가 멍해졌다. 아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해줄게. 기다려.”

준우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첫 번째 차량에 기름을 넣어주고 두 번째 차량에도 기름을 넣고 있었다. 좋아. 이제 남은 건 컴퓨터로 알아보는 것뿐이었다. 주유소 안쪽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나는 동생을 데리고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저벅. 저벅.

꽤 넓은 공간이라 발소리가 크게 울리는 것 같았다. 카운터는 딱딱하게 굳어 있는 대량의 핏자국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 거의 꺼져가는 모니터 앞에 섰다.

“깨끗하게 좀 쓰지…….”

동생은 투덜거리며 마우스를 움직였다. 이내 인터넷을 실행시키니 마지막 우리가 나오기 전의 화면 그대로 있는 상태였다. 실시간 검색에는 여전히 밖에 나가지 말라는 다잉 메시지 같은 것이 선명히 보였다. 동생은 곧 충주 군부대를 검색했다. 하지만 나오는 거라고는 ‘충주 부대찌개’가 전부였다.

“이런 곳에 나오겠냐. 병무청에 가봐야지.”

동생은 투덜거리며 병무청에 들어가 이것저것 검색을 했다. 그러자 여러 부대의 전화번호가 나왔다. 정확한 위치는 나오지 않았지만 근처에는 다가갈 수 있는 비슷한 주소도 있었다.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펜과 종이에 그것들을 다 받아 적은 후 빠르게 나왔다.

“다 됐어.”

준우 아저씨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는 차에 올라탔다. 나는 아저씨에게 다가가 종이를 내밀었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나와 동생도 차에 탑승한 뒤 그 뒤를 따랐다.

부아앙.

우리들은 점점 속도를 높이며 빠르게 도로를 질주했다. 시내를 벗어나 한참 운행을 한 끝에 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만한 길로 차를 몰았다. 5분 정도 지나자 ‘00대대.’ 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였다. 드디어…… 안전한 장소에 온 건가? 설레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구불구불한 길들을 여러 번 지나자 저 멀리 위병소가 눈에 들어왔다.

부르르.

하나 둘 차를 멈춰 세우고 조심스럽게 나와 위병소로 다가갔다.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는 빠른 걸음으로 위병 초소를 대강 훑어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여긴 아니야. 다른 곳을 가봐야겠어.”

우리는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부우웅.

다시 빠르게 이동했다. 처음 들어왔던 길을 지나 옆으로 꺾어 차를 몰았다. 얼마나 몰았을까. 아저씨의 차는 다시 작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우리도 그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마찬가지로 ‘00대대.’ 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였다. 아까와는 다르게 직선으로 이어져 있어 차를 모는데 수월했다.

저 멀리 보이는 위병소에는 세 명의 군인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우리는 느린 걸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군인들은 우리가 다가가는 것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우리를 반기는 눈치는 아니었다.

“상황이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아저씨는 가운데에 있는 중사에게 물었다.

“안 좋습니다.”

중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심각한 정도입니까?”

“예.”

“……그렇습니까.”

그것을 끝으로 더 이상의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들은 우리를 들여보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예상과는 다른 전개에 속이 타들어갔다.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그럴 수 없습니다.”

“…….”

중사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나서며 항의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러는 법이 어디 있어요?”

“국민을 지켜야하는 게 군인들 아닙니까?!”

하지만 중사의 표정은 한결 같았다.

“나라가 우릴 버렸습니다. 제가 왜 당신들을 지켜야하는 거죠? 당신들 때문에 죽어나간 전우의 수를 셀 수가 없습니다.”

“그게 왜 우리 때문이라는 겁니까!”

“괴물이 생겨 피해를 입은 게 전부 우리들 때문이라는 거예요?!”

사람들은 흥분하며 언성을 높였다.

“지금 돌아간다면 쏘지 않겠습니다.”

“…….”

사람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중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게 소총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던 김 대위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우리를 들여보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중사는 고개를 저으며 위병소 벽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삐익-

우리는 멍한 표정으로 중사를 바라보았다. 이내 10초가 되지 않아 위병소 뒷길에서 중무장한 군인들이 튀어나왔다. 하나같이 위장을 한 상태였다. 빠르게 뛰어오던 군인들은 우리를 보고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 중 제일 앞에 선 하사가 입을 열었다.

“박 중사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 하사. 이들은 감염되었어.”

박 중사의 충격적인 말에 우리는 공황상태가 됐다. 그러자 당황하던 이 하사도 표정을 사납게 굳히더니 총구를 겨누기 시작했다.

“아, 아니.”

당황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저희 모습을 보시고 말씀하세요! 이게 어딜 봐서 감염된 상태라는 거죠?”

사람들은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박 중사는 기다렸다는 듯 턱 끝으로 남자를 가리켰다.

“저 몰골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

남자의 모습이 괴물과 일치해 오해를 산 것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일이 크게 번질 수가 있었다.

“저기…… 그러니까 이게 말하자면…….”

준우 아저씨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닥치시오! 한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쏘겠소!”

살벌한 그의 태도에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우리는 이를 악물고 서서히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서서히 그들과 멀어졌다. 박 중사는 우리를 유심히 보더니 이내 표정이 일그러져갔다. 괜히 불안해진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다.

“허억…….”

“흑…….”

저 멀리 좁은 길에 뭔가가 다가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붉은 색의 물결’ 이었다. 우리는 망설일 것도 없이 위병소 앞으로 뛰어가 그들에게 말했다. 그 중 한 여자가 박 중사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저기를 봐요! 이래도 우리가 감염됐다고 말할 수 있어요? 저 뒤에 있는 괴물들 좀 보라고요!”

“크윽…….”

박 중사는 이를 악물고 전방을 주시했다. 그 사태를 가만히 지켜보던 이 하사는 소대원들을 데리고 위병소 앞으로 나가 진열을 가다듬었다. 다닥다닥 붙어 일렬로 선 상태에서 가만히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박 중사는 분에 못 이겨 몸을 부들부들 떨고는 여자를 거칠게 뿌리쳤다.

“꺄악!”

바닥에 나동그라진 여자는 그 자리에서 울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당신들이 전부 이리로 끌고 온 거였군!”

박 중사와 병사들은 이 하사가 선 대열에 나란히 합류했다. 우리는 서로를 멀뚱히 보다 머뭇거림 없이 그들 옆에 나란히 섰다.

셀 수도 없는 많은 소리들이 오갔다. 군인들은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K-2를 전부 착용하고 있었다. 개개인의 단독군장에는 작은 수류탄이 하나씩 꽂혀져 있었고 탄알 집도 꽤 두둑해보였다. 그들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대기했다.

“기다려…….”

박 중사가 말했다. 찰나의 방심이 죽음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배고파…… 크으.”

“고기…… 고기…….”

녀석들은 가래가 끓는 목소리로 말하며 서서히 다가왔다.

“사격!”

두두두두두.

귀가 멍멍해지며 몸이 떨렸다. 수많은 개인화기에서 내뿜는 불꽃들이 녀석들의 살갗을 꿰뚫었다.

“끄아아아!”

“사, 살려…….”

녀석들은 엄청난 화력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 중에는 쓰러진 동료의 고기를 뜯어먹는 놈들도 있었고, 괴물로 변신해 다가오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러나 총에는 자비가 없었다. 그렇게 5분도 안 되는 시간동안 거리는 온통 붉은 피로 물들었다. 박 중사는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고 그에 맞춰 모두 탄알 집을 분리했다. 익숙하지 않는 화약 냄새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곧 엄청난 바퀴소리와 함께 위병소 뒤쪽에서 레토나 한 대가 빠르게 다가왔다. 이내 선탑자석이 열리며 베레모를 쓴 남자가 내렸다. 계급을 보니 중령이었다. 박 중사는 경직된 얼굴로 한발 나아가 경례를 했다.

“충성!”

“습격인가?”

중령은 시체들을 보며 물었다.

“…….”

박 중사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중령도 그것을 다그치지 않았다. 묘한 대치 상태가 이어지자 이 하사가 조심스럽게 나섰다.

“대대장님…… 그게 저 사람들이 괴물들을 데리고 온 것 같습니다.”

이 하사의 말에 중령은 우리를 가만히 훑어보았다. 일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딱딱한 얼굴이었다.

“저번처럼 그런 상황인건가?”

“…….”

“지휘관 말에 그렇게 침묵으로 대답하게 되어있나?”

“…….”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는 것을 눈치 챈 이 하사는 박 중사를 옆으로 밀어냈다.

“대대장님 그게 아닙니다. 박 중사가 단지 오해를 한 것…….”

짝. 경쾌한 소리와 함께 이 하사의 얼굴이 크게 돌아갔다. 모든 군인들이 고개를 숙인 상태였다. 우리는 그저 멀뚱멀뚱하게 서서 중령과 박 중사의 상태를 지켜볼 뿐이었다.

“사람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게 군인의 철칙 아니었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모두가 움츠려들었다. 그러나 박 중사만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저런 인간들을 지키려다 중령님 아들과 제 아들이 그렇게 개처럼 죽어나간 겁니까?”

“박 중사!”

“말해보십시오! 저런 인간들을…… 피 같은 자식들을 희생시켜가며 구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겁니까! 이런 상황에서 그 빌어먹을 군인 정신이나 운운할 때입니까? 그런다고 이 개 같은 상황이 풀린단 말입니까?”

"후……."

무표정을 유지하던 박 중사의 표정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그건 중령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자네가 그렇게 과거에 연연하니 미래를 대비 못하는 거야.”

“…….”

중령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레토나 선탑자석으로 향했다. 우리는 그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잘 모시도록 해. 혹여 감염의 여지가 보이면 알아서 처리하고.”

대대장은 선탑자석 문을 열며 이 하사에게 말했다.

“충성!”

이 하사는 대대장에게 경례를 하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부우웅. 곧 레토나는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박 중사는 신경질적으로 위병소 철문을 발로 차버리고는 레토나가 사라진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이 하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아저씨에게 다가왔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처음 저 남자를 보고 너무 놀라서……."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이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 남자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이건 하늘에 맹세할 수 있습니다.”

이 하사는 남자와 아저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정리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끝나는 대로 막사로 모시겠습니다.”

“그러지요.”

우리는 이 하사와 남은 군인들을 돕기 시작했다. 물론 길에 무수히 널린 괴물들의 시체 운반 작업이었다. 비위가 약한 여자들은 위병소 뒤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게 했고, 남은 남자들은 괴물들의 시체를 한 곳에 모으기 시작했다.

“이걸 다 어디로 옮기는 겁니까?”

“5톤 차에 모조리 싣고 최대한 멀리 있는 곳에 아무렇게나 버립니다. 하지만 낮에 이 정도의 수가 공격을 해온 것은 처음이라…… 당황스럽습니다.”

“그렇군요.”

우리는 무사히 쉴 곳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기적인 마음도 필요했다. 아직 그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될 것 같았다. 20마리. 30마리가 넘어가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하사는 이대로는 안 되겠는지 군인 셋을 따로 불러 뭐라고 말했다. 곧 고개를 끄덕인 군인들은 위병소 뒤편으로 뛰어갔다.

“어딜 가는 겁니까?”

“포크레인하고 차를 갖고 오라고 했습니다. 이대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진즉에 부를 걸…….”

이 하사는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볼에 생긴 새빨간 손자국이 유독 크게 보였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꽤 커다란 규모의 포크레인과 5톤 트럭이 위병소 밖을 나왔다.

그 뒤로는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1시간도 안 되어 일이 끝나자 이 하사는 포크레인을 다시 보내고 두 명의 군인을 따로 선출해 트럭 옆에 타게 한 후 출발시켰다. 트럭은 거친 엔진 소리를 내며 부대와 점점 멀어졌다.

그러나 남은 핏물은 어쩌지 못했다. 일렬로 된 흙길이 온통 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고생했습니다. 들어가시죠.”

이 하사는 앞으로 서며 우리들을 안내했다.

“우웩!”

봉수 아저씨가 그 자리에서 먹은 것들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젊은 남자 둘도 구토를 해댔다. 이 하사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세 사람을 보았다.

“적응하기 힘드실 테지만 익숙해져야 합니다.”

“허억…… 허억.”

간신히 진정을 한 세 사람은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하사도 다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준우 아저씨와 동생은 허옇게 남은 위액들을 대충 흙으로 덮어 버리고는 뒤를 따랐다. 위병소 뒤쪽으로 가자 앉아 있던 해인이와 어머니가 봉수 아저씨의 몰골을 보고 울음을 터트렸다.

“괜찮아…….”

그렇게 말한 봉수 아저씨는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젊은 여자가 따라갔고 준우 아저씨가 얼른 뛰어가 은혜의 손을 잡고 데려오기 시작했다. 레토나가 지나갔던 바퀴 자국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막사로 보이는 건물이 한 눈에 들어왔다. 곳곳에 세워진 레토나 여러 대와 구급차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아저씨가 이 하사에게 물었다.

“꽤 된 일…… 이라고 해야 하나요? 괴물들이 본격적으로 활개를 시작하기 전날…… 각 부대에 비상소집령이 내려졌었습니다. 곧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했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부대에 최소 운영 인원들만 제외하고는 모든 병력을 최전방으로 투입시켰습니다. 그런데…….”

“……연락이 없군요?”

“예. 처음에는 잘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끊겼습니다. 그 뒤로 그 많은 병력들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과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것이고,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건 분명 예삿일이 아니었다. 뭔가가 일어나고 있는 게 틀림없어.

“이쪽입니다.”

막사 내부는 내가 생활하던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층에는 좌우로 봉쇄된 입구가 있었고 중앙에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좌우로 뻗은 통로를 보니 푯말들이 붙어 있었다. PX나 기타 행정부서들, 지휘통제실이 있었다.

“일단 쉬는 게 우선일 것 같군요. 2층으로 올라가서 아무 생활관을 쓰시면 됩니다. 보급품은…… 김 상병!”

이 하사에 말에 소총을 점검하던 김 상병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 하사는 김 상병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분들 좀 부탁해.”

“예. 따라오시죠.”

김 상병은 계단위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하사는 다른 소대원들을 이끌고 지휘통제실이라고 적힌 곳으로 들어갔다.

“창문들은 왜 다 막아 놓은 거죠?”

검은색 테이프로 봉해진 창문을 보며 물었다.

“아…… 별로 좋은 광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아 있는 병사들 사기도 있고 해서…….”

김 상병은 대답을 회피했다. 뭐, 상관없었다. 일단은 이 지독한 피로를 떨쳐내고 싶었고, 몸에 절어있는 땀 냄새를 지우고 싶었다. 2층으로 올라오자 김 상병은 곧장 왼쪽으로 꺾었다.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보니 철문으로 굳게 봉쇄되어 있었고, 3층으로 올라가는 통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로 왼쪽에 있는 행정실과 전방에 위치한 생활관의 푯말들이 보였다. 그 옆으로 샤워장과 세면장, 세탁실이 있었다.

“우와…….”

군대 시설을 처음 보는 여자들은 탄성을 지르며 두리번거렸다. 그 중에서 가장 활발한 것은 단연 은혜였다. 은혜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이곳저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나는 김 상병에게 양해의 말을 해야만 했다.

“죄송합니다. 저 친구가 정신지체아라…….”

“괜찮습니다. 이쪽 생활관에서 보급품들을 쓰시면 되고 아무데서나 쉬시면 됩니다. 그럼…….”

그렇게 말한 김 상병은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고요한 2층 내부에는 은혜가 뛰어다니는 발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때 행정부 안에서 쇠문을 여닫는 소리가 났다. 이내 한 사람이 우리를 보고는 놀란 기색을 보였다. 계급을 보니 중위였다.

“생존자들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본의 아니게 신세 좀 지게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인걸요. 푹 쉬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말한 중위는 이곳저곳에 널린 서류더미들을 들추기 시작했다. 상당히 바쁘게 움직이는 걸로 보아 더 이상 있으면 방해 될 것 같았다. 김 상병이 말한 생활관으로 들어가 각종 속옷들과 수건, 군복을 챙겼다.

“해인아. 은혜도 좀 챙겨줄래?”

준우 아저씨 말에 해인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체형도 거의 비슷해서 얼추 고르면 맞을 것 같았다.

“일단 거지꼴을 면해야 하니까 씻도록 합시다. 여자 분들이 먼저 들어가시고 남은 우리는 바로 옆 생활관에서 정리하도록 하자고.”

사람들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인이는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은혜의 손을 잡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남은 우리는 바로 옆 생활관으로 들어가 침대 위로 몸을 뉘었다. 물론 은혜를 끝까지 따라가려는 남자를 강제적으로 잡아둬야만 했다.

“흐아아아.”

몸이 그대로 녹아내릴 것 같았다. 기지개를 크게 펴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일단 여기까지 오는데 성공했어…….”

그렇게 중얼거린 준우 아저씨는 눈을 감았다. 그 뒤에 우리들이 할 일들은? 소총과 실탄을 챙기고 다시 부산으로 떠나야하는 것인가. 아직도 유람선을 운영하고 있을까. 우리가 갔을 때 이미 늦어버리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때 아저씨가 몸을 반만 일으켜 두 남자와 봉수 아저씨를 보며 물었다.

“우린 여길 떠날 겁니다. 당신들은 어쩌겠소?”

그 말을 들은 세 사람은 서로를 멀뚱멀뚱 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중 봉수 아저씨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여기 남겠습니다. 어딜 가시려고 그러는 겁니까?”

“부산에 제주도로 운행하는 유람선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위험한 일입니다. 여기가 더 안전하지 않습니까? 여기에 우리와 같이 있는 게…….”

“이미 정한일입니다.”

아저씨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곧 여러분들과 헤어지게 되겠군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받았던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저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세 남자의 말을 들으니 왠지 가슴이 울적했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아빠가 말한 것들은 전부 사실인걸까. 그리고 아빠의 정체는 대체 뭐지? 어떻게 그날 아무런 제재 없이 녀석들을 뚫고 온 것일까. 생각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머리가 지끈거렸다. 꼬여버린 미로 안에 나 홀로 갇힌 기분이었다.

“후우.”

그러나 아무것도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저…….”

20분 정도가 지나자 해인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촉촉이 젖은 머릿결과 발그레하게 생기된 볼을 보니 샤워를 마친 것 같았다. 우리는 몸을 일으켜 따로 두었던 보급품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응. 알았어.”

내 말에 해인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 생활관으로 걸어갔다. 채비를 마친 우리는 생활관에서 나와 샤워실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문득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어설프게 군복을 차려 입은 여자들이 낑낑거리며 군화를 신고 있었다.

"와 얼마만에 샤워냐."

문을 열자 사우나 특유의 냄새가 우리를 반겼다. 매일 화약과 피 냄새를 맡은 우리들에게는 향수나 다름없었다. 대충 옷을 벗고 샤워실 안으로 들어갔다. 샴푸와 바디린스, 비누, 칫솔, 치약 등 많은 도구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공기가 후덥지근한 것을 보니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것 같았다.

쏴아아.

샤워기를 틀자 기다렸다는 듯 뜨거운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온 몸을 가볍게 두드리는 수압에 기분이 좋아졌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그대로 물을 받아들였다. 온 몸에 찌든 때가 한 번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근처에 있는 샴푸를 짜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어느 정도 거품을 낸 후에 물로 씻어 냈다.

“푸하.”

이어 비누로 세수를 하고 온 몸을 닦아 냈다. 검고 붉은 핏물들이 배수구 쪽으로 빠졌다. 맑은 물들과 미련 없이 사라지는 이물질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생존해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주 씻을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구석구석 닦아냈다. 대충 정리가 끝나자 차례차례 나와 보급품들을 입기 시작했다.

“오, 이제 보니 신형이네 이거?”

준우 아저씨는 신형 전투복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웃었다. 적당히 군복을 차려 입은 다음 군화를 신기 시작했다.

“아, 개운하다. 정말.”

제일 먼저 옷을 차려입은 동생은 그 말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휑. 차가운 바람이 문틈으로 들어왔다. 볼에 닿은 차가운 한기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모두 군복을 차려입은 우리는 밖으로 나가 여자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씻고 나니 정말 몰라보겠군요.”

아저씨의 농담 섞인 말에 여자들은 옅게 웃기만 했다. 아저씨는 몇 번 헛기침을 하고서 그녀들을 둘러보았다.

“우린 곧 떠날 겁니다. 여기 남자 분들은 여기에 남는다고 했어요. 여러분들 생각을 듣고 싶군요.”

아저씨 말에 여자들은 볼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해인이 어머니가 그 중 대표로 나섰다.

“우리도 여기에 남겠어요.”

“그렇군요.”

사람들은 드디어 ‘쉴 곳이 생겼다.’ 라는 사실 때문인지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가만히 있던 해인이가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은혜 언니도 데려가시나요?”

그간 정이 많이 들었는지 해인이의 얼굴에서 아쉬움이 묻어났다. 아저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해인이는 우울한 얼굴로 은혜의 손을 잡았다. 곧 해인이의 손을 뿌리친 은혜는 자리에서 일어나 생활관 밖을 나갔다.

“발이 작아서 걷는데 불편하겠군.”

은혜의 걸음을 보며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

옆에 있던 남자도 바로 은혜를 따라 나섰다. 이상적인 체격을 갖춘 남자라 그런지 군복이 상당히 잘 어울렸다. 아저씨는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훑어 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푹 쉬는 걸로 합시다. 우리들은 떠나기로 되어 있으니 내일 바로 떠나도록 하고…… 여러분들은 여기에 계속 남아 군인들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사람들은 아저씨와 우리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언제까지나 여기가 완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럼…….”

아저씨는 몸을 돌려 생활관 밖으로 나갔다. 남은 우리도 그 뒤를 따랐고 제일 마지막에 나온 동생이 문을 가볍게 닫아 주었다. 그때 행정부에서 나온 중위가 느리게 걸어왔다.

“대대장님이 뵙고 싶어 하십니다.”

“알겠습니다. 쉴 사람들은 쉬도록 하십시오.”

아저씨 말에 남겠다고 한 사람들은 생활관으로 들어가 버렸다.

“1층 지휘통제실 옆에 CP실이 있을 겁니다. 거기로 가십시오.”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한 중위는 다시 행정부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1층으로 내려왔다. 저벅. 저벅. 지휘통제실을 지나 중위가 말했던 CP 라고 적힌 문 앞에 멈춰 섰다. 아저씨가 가볍게 노크를 했다.

“들어오시오.”

아저씨는 천천히 문을 열며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우리도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10평 남짓한 내부. 중앙에 놓인 테이블 위에는 커다란 지도가 있었고,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사무용으로 쓰는 책상 두 개가 붙어 있었다. 컴퓨터가 있긴 했지만 전원이 꺼진 상태였다. 테이블 위쪽 창가에는 뒷짐을 쥐고 서 있는 대대장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까 일은 감사했습니다.”

아저씨 말에 대대장은 몸을 돌려 테이블 근처에 있는 의자를 권했다. 우리는 사양하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곧 대대장도 의자에 앉아 우리를 둘러보았다.

“밖이 저렇게 돌아가도 여기까지 살아오신 것을 보면 분명 운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예. 그렇지요.”

대대장은 무언가를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그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아저씨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검은 남자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얘기가 빠르군요.”

“그건 저희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길에서 쓰러진 사람을 구해준 것뿐인데 저런 상태였습니다.”

“그렇군요.”

아저씨는 은혜 덕분에 저렇게 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은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일이 크게 틀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대대장은 아저씨의 거짓말을 그대로 믿는 눈치였다.

“그러고 보니…… 지휘관이신데 나가지 않으셨네요?”

가만히 있던 동생이 대대장을 보며 물었다.

“이라크 파견을 막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일어난 일이었지요. 자대에 돌아왔을 땐 이미 이렇게 된 꼴이었습니다.”

대대장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이라크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있나요?”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지요. 물론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장담할 수는 없지만.. 비단 이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겁니다.”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대대장의 말대로 세계가 엉망이 되어 가고 있는걸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여러분이 이리로 온 이상 최대한 지켜드리겠습니다. 물론 근무나 사격훈련에서 예외는 없지만…….”

“아뇨. 저희는 떠날 겁니다.”

“어디로 간다는 겁니까?”

대대장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일단은 부산으로 갈 생각입니다.”

“부산이라…… 부산.”

대대장은 팔짱을 끼고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굵게 자라 있는 콧수염과 턱수염이 그의 강인한 인상을 보여주었다. 대대장은 이내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듣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 유람선이 아직까지 운행을 하고 있을지…….”

“최소한의 희망을 거는 거죠.”

“알겠습니다. 모두 떠나는 겁니까?”

“아닙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과 아까 보았던 검은 피부의 남자, 그리고 제 딸입니다.”

아저씨 말에 대대장은 선선히 수긍했다. 이제 중요한 부탁을 할 차례였다. 아저씨는 잠시 입을 다물고 헛기침을 몇 번했다. 그 미묘한 차이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대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필요한건 총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어차피 미재고로 잡힌 총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줄 정도는 되지요. 이 마당에 군 재산 갖고 뭐라 할 사람도 없고.”

“……그럼.”

대대장은 아저씨의 의견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못할 것 없지요. 탄약도 넉넉히 있으니 챙겨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우리에게 무기를 내준 대대장이 천사처럼 보였다.

“다만…….”

“다만?”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긴다는 가정 하에 말이죠.”

대대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밤마다 녀석들이…….”

준우 아저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놈들은 밤에 최적화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우두머리 녀석은 밤에 이곳으로 올 것이다. 낮에 보았던 수많은 괴물 들을 보면 대강 짐작이 갔다.

“……."

이번에는 기필코 막아야 했다. 질긴 악연을 여기서 끊어야 했다.

“알겠습니다. 마침 해도 저물어가니…… 있는 힘껏 돕겠습니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녀석들이 본격적으로 오는 시각은 대개 20시나 21시부터입니다. 그 전까지는 잠을 자두십시오. 식사는 행정부에 있는 녀석에게 말하시면 될 겁니다.”

대대장은 일어나지 않고 말했다. 그의 두 눈은 상당히 지쳐있었다. 그러나 아직 희망의 끈을 놓을 순 없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많은 희생을 치루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김 대위와 기현이, 민정이 누나의 목숨을 헛되이 허비해서는 안 된다.

"그럼……."

2층으로 올라와 행정부에서 서류를 뒤적거리는 중위에게 다가갔다.

“식사를…… 말하면 준비해주신다고 해서.”

동생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아!”

중위는 그제야 뭔가 생각난 듯 행정부 안쪽 공간으로 뛰어갔다. 부스럭 부스럭. 아무래도 지금 밥을 먹고 저녁때까지 푹 자둬야 녀석들에게 대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 있습니다. 지금은 이거 밖에 없네요.”

중위가 가져온 것은 컵라면과 식은 밥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감사히 받아들었다. 곤란해 하는 중위를 보며 준우 아저씨는 손사래를 쳤다.

“이 정도도 과분합니다. 감사합니다.”

“예.”

중위는 다시 서류더미에 파묻혔다. 대체 뭘 찾고 있는 거지? 지금은 총을 들고 만약에 사태를 대비하는 것이 좋지 않나? 이 상황에서 비문이 그렇게 중요한가? 어쨌든 우리는 라면을 먹기 위해 복도 끝에 있는 정수기로 걸어갔다.

슬쩍 여자들이 있는 방을 보니 모두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여느때처럼 남자는 은혜의 수호신처럼 묵묵히 그 옆을 지킬 뿐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동생은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남자를 끌고 나왔다.

“일단은 먹고 나중을 대비하자. 너도 뭘 좀 먹어야 힘을 쓸 거 아냐.”

"……."

그 말에 남자는 별다른 항의 없이 우리를 따랐다. 군화를 벗고 최대한 편하게 앉아 라면이 익기만을 기다렸다.

“총은 쏠 줄 아시겠죠?”

아저씨는 다른 세 사람을 보며 물었다.

“예.”

“실전은 많이 다를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세 사람의 표정은 결연했다. 마지막 안식처인 이곳을 꼭 지켜야겠다는 각오가 느껴졌다. 우리도 오늘 하루만 버티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전보다 인원이 훨씬 많았고 전문병력들도 있었다.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다 익은거 같은데."

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면을 젓자 부드럽게 면이 갈라졌다. 몇 번 대충 휘젓고 입으로 가져갔다.

후룩. 후루룩.

라면 먹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숨에 라면을 비워내고 찬밥을 말아 먹었다. 우리는 포만감이 가득한 것을 느끼며 그대로 몸을 뉘었다.

그간 제대로 쉬지 못해서인지 눕자마자 힘이 풀렸다. 머리가 점점 멍해지면서 의식이 흐려졌다.

"으음……."

얼마나 잤을까. 번쩍 눈이 떠졌다. 문틈으로 희미한 노을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아하니 저녁 시간대에 이른 것 같았다. 침대 밑에 있는 군화를 신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행정부와 여자들이 있는 생활관을 제외하고는 2층 전체가 어두웠다. 느리게 행정부 쪽으로 걸어갔다.

“…….”

문서 더미와 씨름을 하던 중위가 고개를 숙이고 잠들어 있었다. 문득 중위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발소리를 최대한 줄이고 아무렇게나 널린 서류들을 대충 눈으로 훑어보았다.

“흐음…….”

그리 중요해 보이는 서류들은 없었다. 여러 장의 비문들이나 계획서, 부대 일지 등이 전부였다. 서서히 중위에게 다가가 끌어안다시피 한 서류를 가만히 보았다.

“백…… 신?”

이건? 해당하는 내용은 중위가 완전히 가리고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이 부대에서 뭔가 알아낸 것이 틀림없다. 이 종이를 찾으려고 그 많던 서류들 사이에서 씨름을 해왔던 건가? 아니야. 애초에 이런 중요한 사항의 문서라면 쉽게 내버려 둘리가 없어.

“드르렁.”

“…….”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 거지? 중위를 깨워 묻고 싶었지만 순순히 답해줄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를 적대하며 부대에서 쫓겨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일단 지금은 참는 수밖에 없다. 행정부에서 나와 여자들이 있는 생활관 쪽으로 걸어갔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는데 모두 깬 상태였다. 언제 일어났는지 봉수 아저씨네 가족은 서로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남자는 은혜 곁에 서서 가만히 내려다보기만 할뿐이었다.

저벅. 저벅.

고개를 돌리자 유리문이 열리며 누군가 걸어왔다. 특유의 발걸음과 덩치로 누군지 구별할 수 있었다. 바로 준우 아저씨와 동생이었다.

“어디 있다 왔어?”

“뒤에 넓은 테라스가 있더라고. 담배 피고 왔지.”

동생과 준우 아저씨의 몸에 미약하게나마 담배 냄새가 났다. 나는 두 사람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약간 숙였다.

“아까…… 행정부에서 내가 뭔가를 봤거든?”

“응?”

“백신…… 백신 보급이라고 적힌 종이를 봤어.”

두 사람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근데 이상해…… 그런 거라면 대대장도 알고 있을 테고 우리들에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혹시 예전에 신종플루가 터졌을 때 나누어주던 그 백신을 말하는 거 아닐까?”

준우 아저씨는 행정부를 힐끔 보며 말했다.

“그 백신요?”

“그래. 만약 백신이 나왔다면 정부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파를 했겠지.”

“하지만…… 그 백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천분의 일 확률이라고…….”

내 말에 동생은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대충 알 것 같다. 그 많은 임상실험을 하기 위해 군인들을 모조리 이용한 거야.”

그 말이 사실이라면.. 군인들 전부 죽임을 당했다는건가? 아니야. 이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해선 안돼.

“……그건 좀 억지가 아닐까.”

“아냐. 생각해봐. 거기서 후유증이 있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 못가고 죽었다고 했잖아. 게다가 전쟁에 나간 군인들 대부분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어. 만약 전쟁이 났다고 쳐. 그렇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다른 군인들은 보지 못했잖아? 우민 형은 뒤에서 은밀히 움직이는 군인들이라 그렇다 해도 우리와 우호 관계에 있던 미군의 모습도 보이지 않잖아?”

가만히 듣고 있던 준우 아저씨가 거들었다.

“가만……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고. 단순히 전쟁이라고 하기엔 너무 매스컴이 잘 차단되어 있던데?”

"그건 정부가 조작한거에요. 모든 통신매체들을 모조리 막아놨다구요."

"뭐라고..?"

준우 아저씨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그럼 그 많은 인원들을 전부 어디다 수용하고 이용한단 말이에요? 그것도 중무장을 한 군인들을?”

두 사람은 할 말이 없는 듯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분명 이 부대 내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속이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신종플루 백신을 통해 소량의 백신들을 집어넣으면…… 말이 될지도 모르겠다. 특이한 환자를 제외하고 모든 군인들이 그 백신을 맞은 상태잖아?"

"……일반 사람들까지도 신종플루 백신을 맞았다고 가정하면."

"진성아."

"……."

"우선 오늘 밤을 무사히 보내야 돼. 다른 건 생각하지 마. 죽으면 이도저도 아니라고.”

그렇게 말한 준우 아저씨는 앞으로 걸어갔다. 동생도 나를 힐끔 보고는 준우 아저씨의 뒤를 따랐다. 저 멀리 환하게 빛나는 행정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분명 뭔가 있는 것 같다. 정부의 유일한 무력이 군인들인데 그렇게 쉽게 버릴 리가 있나?

“빨리 와. 꾸물거리지 말고.”

준우 아저씨 말에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 채 그 뒤를 따랐다. 다시 우리들이 있던 생활관으로 가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끼익. 그에 맞춰 처음 우리를 안내해주었던 김 상병이 문 앞으로 다가왔다.

“준비하실 시간입니다.”

드디어 때가 온 건가. 우리는 천천히 몸을 움직여 김 상병의 뒤를 따랐다.

“저 중위 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멈칫. 잠시 걸음을 멈춘 김 상병은 그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평범한 중위입니다.”

“저분은 매일 저렇게 지내는 건가요?”

“그게 저 분의 업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일이라고 하기에는 지금 상황과 동떨어져 있었다. 녀석들이 난무하는 와중에 서류더미 사이에서 살아야하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역시…… 뭔가 중요한 것을 숨기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리고 박 중사의 말도 걸렸다. 우리 같은 사람들 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죽었다고 말했었다. 왜? 아들도 군인이었나?

“후우…….”

거대한 베일을 벗겨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1층으로 내려가자 준비를 마친 군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20명 조금 남짓한 군인들은 하나같이 중무장을 한 상태였다. 그 중 제일 선두에 서 있던 이 하사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총과 실탄을 넉넉히 준비해뒀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감사의 표시를 하자 이 하사는 겸연쩍게 웃으며 다른 군인들에게 향했다.

“너희 둘, 이분들 총이랑 탄약 따로 빼둔 거 가져와라.”

군인들은 재빠른 동작으로 지휘통제실로 들어가 K-2소총과 실탄이 담겨있는 크로스백을 가져왔다. 우린 그것을 적당히 나누어 가지고는 소총에 실탄을 삽입했다.

철컥. 철컥. 맑은 소리가 났다. 아마 이 소리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밤은 녀석들의 무대입니다. 작은 방심조차 용납 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합니다.”

“생각보다 부대가 넓을 텐데 이 인원들로 지킬 수 있는 겁니까?”

아저씨는 어두운 전방을 보며 물었다.

“위병소를 제외한 나머지 구역 모두 지뢰와 부비트랩을 충분히 설치해 놨습니다. 녀석들도 처음엔 산 쪽으로 오다 크게 당하고 난 다음부터는 위병소 쪽에서 많이 기웃거립니다.”

“그럼 20명 전부 위병소에서 대기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전부 외곽 쪽을 순찰하고 있죠. 10명 단위로 오전 오후로 풀타임으로 근무를 서고 있지요. 오늘은 무사히 보내기 힘들 것 같다고 대대장님이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전 병력이 투입하기로 했지요.”

“그렇습니까?”

“평소에도 많은 침입들이 있었지만 유독 오늘이 고비라고 강조하시는게..”

이 하사는 뭔가 불안한 눈치였다. 하지만 우리가 거기에 맞는 답을 해줄 순 없다. 다만 내 생각만 조금 다른 곳으로 빠져 있었다. 행정부의 일 때문에 모든 것에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 돼. 일단 오늘을 무사히 넘기는데 최선을 다하고 내일 부산에 가는 것을 생각하자. 목숨을 부지한 후에 물어도 늦지 않아. 그래, 오늘 일만 생각하자

.

“자, 그럼 가시지요.”

이 하사는 우리를 안내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뒤를 20명의 군인들이 바로 뒤따르고 남은 우리들은 제일 후미를 맡았다. 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어둠속을 군인들은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자연스럽게 걸어 나갔다.

저벅. 저벅. 저벅.

수많은 발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최대한 뒤처지지 않게 그 뒤를 바싹 붙었다. 서서히 어둠에 적응되자 앞서 걸어가는 군인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대충 주위를 둘러보니 연병장을 벗어나 다른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녀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긴장이 됐다.

야-옹.

고양이 소리에 흠칫 놀랐다. 후우…… 망할 고양이. 다시 묵묵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군화가 땅에 닿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저 멀리 우거진 산이 마치 커다란 괴물의 등 같아 소름이 돋았다.

‘위험해.’

마음속에서 말하는 소리에 크게 놀랐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옆에서 걷고 있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동생은 역시 한결같은 표정으로 묵묵히 걷고 있었다.

걷는 소리가 점차 희미해졌다. 앞을 보니 군인들이 멈춰서고 있는 게 들어왔다. 그에 맞춰 멈춘 우리들도 느리게 숨을 쉬며 주위를 경계했다.



사라라락.

바람에 휘날리는 나무 소리에 긴장감이 더해졌다. 스르륵. 군인들은 서서히 앉기 시작한다. 그 중 제일 앞서 가던 이 하사가 우리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저 산…… 보이십니까?”

“예?”

이 하사가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저 어둠만 보였다. 이 하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손가락을 들어 한 곳을 가만히 가리켰다.

“저 곳을 잘 보십시오.”

우리는 집중적으로 이 하사가 가리킨 곳을 봤다. 어두운 산기슭.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는 다르게 유독 한 군데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불빛 하나가 보였다. 녀석들의 특징인 그 눈이었다. 어떻게 발견한 거지?

“저런 식으로 우리를 지켜보는 겁니다. 녀석들도 멍청하지 않아요. 저러고 있으면서 서로 뭔가를 주고받습니다. 물론 다가오지는 못하죠. 그 앞에 무수히 깔린 지뢰들과 부비트랩을 맨 몸으로 받아낼 자신이 없을 테니까요.”

“저기서 뭐하는 거죠?”

“모릅니다. 그냥 저렇게 우리를 지켜봅니다.”

“죽여야 하지 않나요?”

동생은 눈을 찡그리며 물었다.

“아뇨. 밤에 퍼지는 총소리는 생각보다 길어서 다른 녀석들까지 끌어올 수 있습니다.”

“그럼 저렇게 방치하는 거예요?”

“딱히…… 우리에게 해를 가하지도 않고 해서 일단은 두고 있습니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쉰 다음 다시 일어나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하사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다시 어두운 공간만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가만히 보니 처음 우리를 반겨주던 위병소였다. 한 바퀴정도를 돈 것일까. 어두운 곳에서 빛을 본 탓인지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삐-익.

그때 처음 박 중사가 우리를 보며 눌렀던 벨소리가 귀에 꽂혔다. 제일 앞 쪽에 있던 이 하사가 ‘제길’ 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빠른 속도로 위병소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우리도 빠르게 군인들의 뒤를 따랐다.

삐-이익!

이 소리는 분명 녀석들의 공격이 시작 됐다는 신호였다. 그 우두머리 녀석…… 드디어 공격을 시작한 건가.

그러나 작은 비명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총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너무 고요했다. 뭐가 잘못된 걸까? 괴물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슈슉.

그때 허공에서 뭔가가 날아오는 것이 눈에 잡혔다. 붉은 색의 가느다란 선이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앞서 가던 군인들 틈으로 떨어졌다.

붉은 피들이 분수처럼 튀어 오르기 시작하는 것은 정말 찰나였다. 순간 몸이 경직되었다.



“으아악!”

내가 본게 헛것이 아니라는 듯 이어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고막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부들거리며 손이 떨려왔다.

“크아아!”

이내 녀석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꽤 커다란 그림자가 느리게 기어오는 것이 보였다. 어둠속에서 빛나는 저 두 눈. 나를 강하게 노려보고 있는 게 확실했다.

"제기랄!"

"죽어버려!"

군인들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예리한 대검을 꺼내 녀석의 정수리에 무차별적으로 박아댔다.

“끅…… 끄."

녀석은 두 눈을 깜빡이며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쉽게 숨을 끊지 못하자 군인들의 대검 세례가 더욱 거세져갔다. 푹. 푹. 푸욱. 붉은 빛이 점차 사그러졌다

.

“끄으으…….”

마침내 녀석은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녀석이 숨을 거둔 건지 확인을 위해 다른 군인이 랜턴을 비추었다.

“흐음…….”

일반 녀석들과는 달리 상당히 커다란 덩치였다. 낮에 봤었던 그 녀석과 많이 흡사해보였다. 어떻게 넘어온 거지? 고개를 돌려 녀석이 튀어온 곳을 보았다. 교묘하게 지뢰나 부비트랩을 피한 건가?

“부상자는?”

감정 없는 이 하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박 일병과 이 병장이 당했습니다.”

이런 일이 익숙하기라도 한 듯 군인들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전리품을 챙기고 앞으로 간다.”

“예.”

랜턴을 끄고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앞에 있던 다른 군인들은 소총과 수류탄, 실탄 등을 챙기기 시작했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두 시체는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녀석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었다.

‘이기적인 새끼.’

마음속에서 말했다. 그러나 별 수 없었다. 살기 위한 본능은 누구라도 다 같은 거니까. 서둘러 전리품을 챙긴 군인들은 빠른 걸음으로 위병소로 뛰어갔다. 습격을 받아서인지 그 속도가 더욱 빨랐다.

“헉. 헉.”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많이 긴장한 탓일까. 내 몸이 이렇게 허약했었나? 이를 악물고 빠르게 발을 놀렸다. 마침내 위병소에 다다른 우리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

“없어…….

”

아까 전 위병소를 지키던 세 명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뭐지?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뭔가가 있다.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놈들이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하사는 차분하게 소대원들을 진정시키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평정을 유지하려는 이 하사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어찌할 수가 없군요.”

“이런 것은 본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일단 침착하고 주위를 경계해야겠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상상 이상의 속도와 파괴력. 그리고 통제된 괴물 놈들의 흔적들.

'역시…….'

우두머리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동안 어떻게 세 명의 군인들을 처리할 수 있었지? 그것도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분명 경계를 서던 군인들은 뭔가를 봤기 때문에 벨을 울린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역시?

“혹시…… 녀석들 중 유독 특이하게 강한 녀석이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특이한 거?”

이 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일반 괴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상상이상의 힘을 가진 녀석이 존재하기도 해요. 그 녀석은 평범한 녀석들을 통제하고 사람과 똑같은 사고를 가졌어요.”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이 하사는 인정하기 싫은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나는 좀 더 진실 되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우두머리라고도…… 칭해요. 처음 우리 집을 습격했을 때에도 그 녀석이 다른 놈들을 이끌고 공격을 해왔어요. 우린 운이 좋게 살아남았고…… 그 뒤로도 그 녀석과 마주친 적이 있었어요. 게다가 낮에 우글거리며 몰려온 녀석들도 어쩌면 그 우두머리 녀석이 시킨 걸지도 몰라요.”

“…….”

이 하사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내 표정과 눈에서 거짓을 읽어내려는 듯 했다. 그러나 나는 한 치의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생생한 경험을 그대로 얘기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대강이나마 이 상황이 설명되는군요.”

이 하사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

“하지만…… 이 짧은 시간 만에 세 명을 없앴을 리가 없어요. 그것도 피 한 방울 남기지 않은 채로 말이죠.”

“그럼…… 누군가가 군인들을 불러낸 것이 아닐까?”

준우 아저씨 말에 사고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래, 너무 제한적으로 생각했어. 말끔하게 경계를 서고 있던 인원들이 순식간에 사라질리 없어. 그렇다면 유력한 후보는 군인들. 아니, 그들을 통솔하는 간부급이 된다는 건가? 중위는 행정부에서 서류더미들을 안고 자고 있었고…… 박 중사는 아까이후로 보이지도 않고 대대장은 CP실에…….

“……그럼 역시.”

“그게 더 와 닿는 군요. 그러나 우리가 정한 규율상 위병소 경계를 서는 인원에게 어떤 명령도 하지 않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충분히 거스를 만큼 지위를 가진 자라면 말이 틀려지지요.”

준우 아저씨 말에 이 하사는 눈매를 좁히며 CP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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