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밖에 나가지 마시오 part.13
명치 아래쪽에서 충격이 느껴졌다. 그 덕에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다. 지금 여기서 물러나면 다른 사람들이 다친다. 이를 악물고서 정신을 차린다. 다시 이어지는 맹공들. 고통속에서 배운 탓인지 제법 요령있게 놈들의 공격을 흘릴 수 있었다. 더욱이 쿠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웃옷 덕분에 버틸만했다.
빌어먹을 놈들…… 두고 보자. 당장 좌석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돌을 쥐고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다음 골목길까지 거리는 3초 내외.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망할 자식들.
휘익.
돌멩이를 골목길 사이로 던졌다.
“키엑!”
“오예!”
고통스러워하는 녀석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성공이다. 내 공격을 시작으로 모두가 돌멩이를 골목길로 던졌다.
"죽어라 이 망할 놈들아!"
그러나 상황이 좋게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우민 형과 봉수 아저씨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줄줄. 양손을 타고 붉은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놈들의 성과가 아주 없는것은 아니었다.
“조금만 버텨!”
순간 녀석들이 골목길에서 우르르 나와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이대로 있으면 밴과 정면으로 출동할 상황이었다.
“빌어먹을 놈들이!”
어느새 소총을 장전한 준우 아저씨는 밴 지붕으로 상체를 완전히 내밀었다. 녀석들은 뜻밖의 행동에 당황했는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준우 아저씨의 총에는 자비가 없었다.
총알은 녀석들의 몸을 그대로 꿰뚫었다. 녀석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텅. 텅. 텅. 텅.
준우 아저씨는 골목길에 총을 쏘았다. 그러나 양 옆을 다 맡기엔 부족했다. 서둘러 소총을 준비하고 준우 아저씨 옆에 섰다.
“넌 오른쪽! 난 왼쪽!”
골목길을 지나가는 타이밍에 맞춰 2~3발씩 총알을 날렸다.
“크아아!”
“크우!”
괴물의 포효소리에 설마 하는 심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 정말 끈질기네. 제길.”
동료의 시체를 뜯어먹은 녀석들은 괴물로 변해 차 뒤를 맹렬히 쫓았다. 정말 저놈의 집념 하나는 알아주어야 했다.
철컥.
소총을 녀석들에게 겨누었다. 방금 전 동료들을 죽인 무기를 보고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공포보다 본능이 더 큰 탓이었다.
우리의 총에는 자비가 실려있지 않았다. 우린 차분하게 놈들에게 총알을 날려주었고 놈들은 하나둘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한 번에 절명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골목길에서 녀석들이 뛰쳐나와 동료의 시체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그러나 사방이 막혀 있는 상태에서 도망갈 수가 없었다. 다행인건 녀석들이 먹을 것에 정신이 팔려 우리를 눈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부아앙.
완전히 상가를 벗어난 밴은 그대로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20분내지 30분 정도를 달린 끝에 밴을 세운 아저씨는 운전석에서 내려 우민 형과 봉수 아저씨의 상태를 살폈다. 심하지는 않지만 살이 찢어져 있었다. 우민 형은 워낙 경험이 많고 젊은 몸을 가져서인지 피가 서서히 멎기 시작했지만 봉수 아저씨는 그러지 못했다.
일단 우리들은 밴의 옆문을 열고 우민 형과 봉수 아저씨를 바닥에 눕게 했다.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는 거즈에 알코올을 잔뜩 묻히고 두 사람의 상처 부위에 그대로 갖다 댔다.
“끄으으윽.”
봉수 아저씨는 상당히 고통스러운지 신음을 내뱉었다. 반면 우민 형은 살짝 인상만 찡그릴 뿐이었다.
“이 정도는 아픈 축에도 못 끼죠.”
장난스럽게 던지는 우민 형의 말에 우리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런 농담을 던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정신력을 가졌다는 증거다. 반면 봉수 아저씨는 전혀 다른 생활에서 자란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상처를 봉합해야 할 것 같았다. 상처 부위가 꽤 벌어져 피가 멎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벌떡 일어난 우민 형은 봉수 아저씨의 상처를 유심히 살피더니 구급상자에서 실과 바늘을 꺼냈다. 그제야 한팔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우민 형은 허탈한 얼굴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안타깝지만 우민 형을 위로해줄 시간이 없었다. 녀석들이 피 냄새를 맡고 몰려올 수도 있으니 빨리 치료를 하고 여기를 떠나야 했다. 아저씨는 우민 형에게서 실과 바늘을 낚아채듯 가져와 봉수 아저씨의 상처 부위를 봉합하기 시작했다.
“끄…… 끄윽.”
마취도 없이 이루어지는 시술이라 봉수 아저씨는 상당히 고통스러워했다. 곁에서 지켜보는 해인이는 아예 울기 시작했다.
“해, 해인아. 아빠는 괜찮으니까…… 차에 먼저 타있으렴.”
봉수 아저씨 말에 해인이는 고개를 저으며 그 자리를 지켰다. 우리도 그것을 말리지 않았다. 앞으로 살아가려면 이보다 더한 것들을 보고 느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완전히 봉합을 마친 아저씨는 서둘러 구급상자를 챙겼다.
“생수 가져와서 손에 묻은 핏물을 씻어야 돼.”
동생은 얼른 밴 안으로 뛰어가 생수 두통을 가져왔다. 아저씨는 그것을 봉수 아저씨의 상처 부위에 쏟으며 손으로 살살 닦아 내었다. 완전히 핏기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아저씨는 자신의 손도 닦았다.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 역시 없애기 시작했다.
거의 마무리 되어가자 우리는 서둘러 밴에 올랐다. 창문에 균열이 가 있어 걱정되긴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어쩔 수 없었다.
부우웅.
밴은 다시 출발했다. 준우 아저씨는 밴 안을 둘러보았다.
“시트나 바닥에 피가 너무 많이 묻어 있어. 차를 바꿔야겠는데…….”
이 인원을 모조리 수용할 수 있는 차가 있을까. 아니면 차를 나눠서 가야하는 걸까. 그러나 아저씨는 묵묵히 밴을 몰았다. 준우 아저씨도 자신의 소총을 들고 묵묵히 점검을 하기 시작했다.
“흐으윽.”
여전히 해인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봉수 아저씨는 계속 같은 말로 해인이를 안심시켜주었다. 나도 처음에 저랬을까. 괴물을 처음 발견하고 도망치던 날…… 동생과 나는 지금의 해인이처럼 허약했었나? 고개를 돌려 동생을 보았다. 그러나 무표정한 얼굴에선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야, 가져오라고!”
“싫어. 뺏어보시지.”
“이씨!”
나와 동생은 유독 우애가 돈독했다. 일란성 쌍둥이라는 점 때문인지 서로 말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무엇을 싫어하고 꺼려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내가 가는 곳에 늘 동생이 있어야 안심이 됐고, 동생이 가는 곳에 내가 가야만 안심이 됐다. 마치 실과 바늘 같은 존재. 그러나 희한한 것은 나와 동생 단 둘이 찍은 사진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많이 붙어 다녔는데도 부모님은 우리 둘의 사진을 한 번도 찍어준 적이 없었다.
‘네가 형을 잘 지켜줘야 해.’
항상 같은 말. 주입시키듯 동생에게 말하는 부모님. 왜? 굳이 동생이 나를 지켜줘야 하는 걸까. 내가 지키면 안 되는 걸까? 부모님은 아침마다 항상 같은 말을 동생에게 하곤 했다. 그때마다 동생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은 나에 관한 일들을 자신의 일보다 우선시 했고 궂은일도 도맡아 했다. 학창 시절……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도 어김없이 나타나 녀석들에게 주먹을 날렸다.
‘네가 애새끼냐?’
그런 말들로 항상 위기에서 나를 구해주던 동생. 비슷한 신체 조건을 가졌음에도 동생은 모든 면에서 월등했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노래면 노래 무엇하나 빠지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동생은 학교 내에서도 이슈거리가 되었고 그만큼 인기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어떤가? 평범한데다 공부도 어중간하고 운동 싫어하고 노래도 못한다. 연애?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경험담 조차 없다. 그래서 동생에게 열등감이 심했다.
"와 같은 뱃속에서 나온거 맞냐."
나와 동생 사이를 이간질하는 놈들 때문에 학창 시절엔 동생과 사이가 틀어졌었다. 동생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항상 신경질적으로 대하고 화풀이를 했다.
‘…….’
그러나 동생은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받아주었다. 왜…… 왜 그랬던 걸까. 부모님은 왜 동생에게 나를 지켜주라는 말을 했던 걸까. 빛과 어둠의 인생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걸 두고 얘기하는 걸까.
우리 사이는 다시 전처럼 돌아가긴 했지만 학창시절의 트라우마는 여전히 가슴에 새겨져 있었다. 모든 상황에서도 냉정을 유지하는 동생과 달리 버둥거리는 면이 많은 나. 과연 우리는 형제가 맞는 걸까.
부우웅.
고속도로를 누비는 밴의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하늘을 보니 늦은 오후에 접어들고 있었다. 얼마 못가 밴을 세운 아저씨는 저녁을 먹고 다른 차를 알아보자고 했다.
군데군데 푹푹 파이고 창문에는 작은 균열들이 일어나 있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다행히 고속도로에는 주인을 잃은 차들이 많아서 선택폭은 넓은 편이었다. 배낭에서 각자 먹을 것들을 꺼내 고속도로 한복판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상처는 괜찮으시오?”
아저씨가 묻자 봉수 아저씨는 미약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것 같았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해인이를 보았다.
“해인양도 슬슬 석궁 다루는 법을 알아야겠어. 아까도 봤지?”
해인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상황이 기억나는지 몸을 미약하게 떨었다.
“그러고 보니 해인이 미인이네. 남자 친구는 있어?”
우울한 분위기를 전환시키려는 듯 준우 아저씨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 말에 해인이는 볼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곧 우울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자 준우 아저씨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저희를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봉수 아저씨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예…….”
그때 동생의 눈이 매섭게 반짝였다. 동생은 팔꿈치로 준우 아저씨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저씨. 해인이가 남자친구 있다고 하니까 실망한 표정 지었죠?”
“아니, 이자식이? 찰나의 순간에 어떻게 그걸?”
“큰일 날 아저씨네. 그건 범죄라고요. 범죄.”
그 말에 잠시 정적인 상태가 되었지만 아저씨의 웃음을 시작으로 모두가 웃기 시작했다.
“허허허허.”
“하하하하.”
두 사람 덕에 우울한 분위기가 조금은 가셨다.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뒷정리를 하고 다시 밴에 올랐다. 천천히 밴을 몰며 주인을 잃은 차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8~10명은 충분히 들어갈 만한 차를 구해야 했다.
“흐음…….”
마땅한 차가 보이지 않았다. 30분이 훌쩍 지났건만 전부 승용차거나 중형차뿐이었다.
“저거 어때요?”
동생의 말에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고속도로 반대편에 주차되어 있는 커다란 대형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서서히 밴에서 내린 우리는 소총을 들고 버스로 접근했다. ‘행운관광’ 이라고 적힌 관광버스였다.
“외견상으로는 쓸 만하겠어.”
외견상으로는 딱 좋은 조건을 갖춘 버스였다. 그러나 중요한건 내부였다. 우리는 버스 출입구 쪽으로 서서히 걸어갔다.
“이거 열줄 아는 사람 있나?”
아저씨는 굳게 닫혀 있는 문을 발로 툭툭 차며 물었다. 모두 대답이 없었다. 그때 봉수 아저씨가 슬쩍 나서서 버스 앞부분을 열더니 이것저것 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느 한 부분을 죽 잡아당기더니 그대로 버스 문을 옆으로 밀었다.
치이익.
익히 들었던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아저씨는 봉수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먼저 버스에 올랐다. 그 뒤를 이어 준우 아저씨와 우민 형이 오르고 우리 형제는 주위를 경계하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저씨들은 죽어버린 사람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눈과 코. 입에는 구더기들이 득실거렸다.
“우욱.”
해인이는 고개를 돌리고 헛구역질을 했다. 봉수 아저씨는 해인이를 부축하며 좀 떨어진 곳으로 발을 옮겼다.
“다 자살한 것 같아.”
마지막 시체를 끌어낸 우민 형이 말했다. 손목에는 자해를 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버틸 수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일단 쓸 만한 것 같으니 정리를 좀 해야겠어.”
아저씨는 버스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아저씨는 버스 위에 달린 문을 열고 올라가 전방을 살폈다. 남은 우리들은 앞으로 버스를 운용할 수 있도록 움직이기로 했다. 녀석들은 분명 여기에 모일 것이다. 최대한 이곳과 멀어져야만 했다.
“서두릅시다.”
봉수 아저씨와 해인이를 제외한 우리들은 굳어버린 핏물을 닦아내기로 했다.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할지도 모르는 녀석들이기에 만약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다행히 여행용 버스라서 그런지 여러 물품들이 제법 있었다. 우린 물티슈를 이용해 그네들의 흔적을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아직 버스 안에는 역한 냄새와 파리들이 꽤 많이 있었다. 준우 아저씨는 손짓을 해가며 파리들을 천천히 내쫓기 시작했다.
“훠이.”
더 이상 이곳에선 먹이를 구할 수 없음을 감지한걸까. 녀석들은 미련 없이 버스를 떠나 시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대강 핏자국을 지운 우리들은 환기를 시켰다. 하지만 이 특유의 썩은 냄새는 쉬이 가시지 않았다. 더 이상 이곳에 지체할 수 없었기에 서둘러 짐들을 옮기기로 했다.
나와 준우 아저씨는 버스의 옆면의 화물칸을 열어 여러 가지 물건을 꺼냈다. 유흥을 풀어줄 술과 음식들이 가득했다. 쓸데 없는 공간을 소비하면 안되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비교적 긴 포장된 음식들만 챙기고 나머지는 미련 없이 버려기로 했다.
“아까운 술…….”
준우 아저씨는 바닥에 널린 양주병을 보며 중얼거렸다.
“술은 필요 없어요.”
“알아. 안다고.”
입을 비죽이 내민 준우 아저씨는 다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심해.”
아저씨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대형버스라 그런지 수납공간이 상당히 넓었다. 우리는 먹을 것과 몇 개의 옷 종류. 구급상자와 공구함. 그리고 기름이 담긴 통들을 넣고 버스에 올랐다.
“괜찮니?”
봉수 아저씨가 해인이에게 물었다. 해인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최대한 앞좌석에 앉았다. 이렇게 넓은 버스 안에서 띄엄띄엄 앉아 가는 건 영 찜찜했다.
부르릉.
언제나 그랬듯 아저씨가 버스를 몰았다. 처음 접하는 거라고는 했지만 몇 번 핸들을 잡아보더니 금방 익숙해진 듯 했다.
“탑승감이 다른데? 편하고 좋네.”
준우 아저씨는 의자를 뒤로 젖히며 말했다.
“이거 정말 여행가는 기분이네요.”
옆에 있던 우민 형도 의자를 젖히며 말했다.
“매일 이렇게 편하게 갔으면 좋겠다.”
관광버스 안은 상당히 편했다. 천장 위에 비치된 서랍 안에는 군것질거리가 가득했고 정수기에는 꽉 찬 물과 예비용으로 하나의 물통이 더 있었다. 밴을 버리고 버스로 옮겨 탄 선택은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았다. 물론 오늘 밤을 무사히 지나야겠지만…….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몸을 뒤로 돌려 우리가 지나 왔었던 길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다. 그동안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었던 밴이 작별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고맙다. 잘 있어.”
반짝반짝. 노을빛에 빛나는 밴의 유리창이 빛난다. ‘잘가.’ 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단순한 착각일까. 다시 창문을 닫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느낌이 이제는 편안했다. 서서히…… 그리고 확실히 몸이 적응하는 것 같았다.
우르릉.
하늘에서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낮고 멀리 퍼지는 소리에 어깨가 절로 움츠려들었다. 곧 눈이 떠졌다. 밖은 완전히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툭. 툭.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빗물이 버스 천장을 때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맹렬한 기세로 비가 내렸다. 버스를 멈춰 세운 아저씨는 시동을 끄고 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콰르릉. 엄청난 소음과 함께 천둥이 내리쳤다. 흰색 빛이 저 멀리서 빛난다.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비 덕분인지 19시가 조금 넘은 시각인데도 밖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졌다. 우리는 초조한 마음을 달래며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두운 밤거리에 대항하듯 가로등의 불빛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무서운 얘기나 할까?”
준우 아저씨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무서운 얘기라니…… 그래도 상관없는지 준우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GOP에서 근무 할 때 얘기야. 순찰로 경계를 교대하는 식이지. 총 10명의 교대 병사들이 있었고 그 앞에는 소대장이 인솔하고 있었지. 야간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거든. 은근 걱정이 된 소대장은 뒤에 병사들이 잘 걷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30분 단위로 걸음을 멈추고 뒤로 번호를 하게 했지.”
“그래서요?”
어느새 동생은 준우 아저씨의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딱히 시간을 보낼 것도 없는 우리들도 그 이야기에 점차 집중했다.
“처음엔 문제없었어. 1번부터 10번까지 그대로 이어졌지. 소대장은 안심하고 또 걸어갔어. 그렇게 첫 번째 초소와 교대를 해주고 30분 정도를 걸어가서 번호를 시켰어. 역시 이번에도 이상이 없었어. 다시 30분을 걸어가고 교대를 해주고…… 다시 번호를 시켰지. 근데 번호가 9번까지만 하고 10번이 이어지지 않는 거야. 소대장은 이상하게 여기고 9번을 외친 병사에게 물었지. 뒤에 오는 놈은 뭔데 대답 안하냐고. 그러니까 9번이 그러는 거야. 그 병사가 지금 목이 다쳤다고. 소대장은 그런가보다 하고 다시 걸었어.”
“수상한데.”
“다시 30분이 지나 번호를 시켰지. 근데 이번에는 8번까지만 하는 거야. 열 받는 거지. 병사들이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한 소대장은 8번 병사에게 물었어. 마찬가지로 같은 대답이었지. 소대장은 이를 갈면서 돌아가면 얼차려를 주겠다고 결심했어. 다시 교대를 해주고 30분이 지난 후…… 번호를 시켰어. 이번엔 5번까지 말하는 거야. 소대장은 어디까지 가나 보자는 식으로 쭉 갔지. 주둔지에 거의 돌아갈 때 쯤 다시 번호를 시켰어. 3번까지만 대답을 하는 거야. 소대장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아무리 목이 아파도 7명이 넘게 대답을 못할 리가 없잖아?”
“그렇죠…….”
“더구나 병사들의 목소리가 익히 듣던 목소리가 아니었어. 소대장은 슬슬 걱정을 지나 겁이 나기 시작했어. 차마 뒤를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는 거야. 다시 걷기 시작한 소대장은 번호를 외치라고 말했어. 1번이 끝인 거야. 바로 뒤잖아? 가까이 있는 병사가 소대장과 유독 친하게 지냈었는데 그 녀석 목소리가 아닌 거야. 덜컥 겁이 난 소대장은 그대로 몸을 돌려 총을 난사했지.”
“…….”
“5분정도 난사를 하자 후환이 두려운 소대장은 어떻게 할까 고민했어. 근데 주둔지 쪽에서 총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막 뛰어오더래. 소대장은 거의 포기 심정으로 죽인 녀석들 얼굴을 보려고 랜턴을 비췄지. 근데!”
우르릉. 타이밍이 절묘하게 번개 소리가 준우 아저씨를 도와주었다. 덕분에 우리들은 헛바람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그게 전부 북한군이었던 거야. 차례차례 한명씩 병사들의 목을 따면서 소대장의 뒤를 따랐던 거지. 소름 돋지 않냐? 으으으.”
준우 아저씨는 몸을 부르르 떨며 정수기의 물을 한 번에 들이켰다. 뭔가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툭. 툭. 툭. 오히려 버스 위를 때리는 빗소리가 더 무서웠다. 그것을 시작으로 봉수 아저씨도 약간 장난기가 섞인 얼굴로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말이죠.”
그렇게 이야기를 열심히 경청하던 중에 아저씨가 봉수 아저씨를 중지 시켰다.
“잠깐만.”
우리는 버스 앞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어두운 밤에도 훤히 보이는 불빛들. 녀석들이었다. 다행히 저번처럼 대규모가 아닌 꽤 소규모에 속하는 불빛들이었다. 어제와 비슷한 형식이었다.
“조용히 있으면 될 거야…….”
알고는 있지만 초조해 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소총을 더욱 꽉 쥐고 앞을 노려보았다. 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 뒤쪽을 살폈다. 봉수 아저씨는 덜덜 떠는 해인이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작은 목소리로 ‘괜찮아.’ 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녀석들은 서서히 다가왔다. 10미터 안팎이었다. 아저씨는 봉수 아저씨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봉수 아저씨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꿀꺽.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크르르.”
녀석들의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한 마리씩 버스 옆을 지나쳐갔다. 그 중 한 마리가 유독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버스 앞을 이리저리 훑어보기 시작했다. 핏자국을 제대로 지우지 않았나? 미세하게나마 냄새가 남아 있는건가? 우리는 몸을 최대한 뒤로 뺐다.
우르르릉.
하늘에서 다시 번개소리가 크게 울렸다. 녀석은 킁킁거리며 버스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설마 채취를 발견한 건가?
“크르르.”
다른 녀석들도 버스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낮게 울부짖는 소리가 울렸다. 제길…… 지나가라 제발.
번쩍. 환한 천둥이 녀석들의 모습을 한꺼번에 비추었다. 숨이 점차 가빠지며 입술이 떨리기 시작했다.
“크르르.”
이내 얻을 게 없다고 판단한 녀석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녀석들도 천천히 버스를 지나쳐가기 시작했다. 후우…… 다행이다. 마지막 의심을 품고 있던 녀석도 서서히 옆을 지나쳐간다. 우리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식은땀을 닦아냈다.
“에취!”
“!!”
해인이의 재채기 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손으로 막긴 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너무나 컸다.
“크르르?”
덕분에 갈 길을 가던 마지막 녀석이 슬그머니 돌아와 해인이가 있던 자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버스 안이 보이지는 않지만 눈치 챈 것 같았다. 큰일이다…… 어쩌지? 녀석들의 수가 우리보다 많은데…….
“크르르르.”
녀석은 다시 킁킁거리며 해인이가 앉은 창가에 코를 대고 맡기 시작했다. 해인이는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어깨를 들썩였다. 너무 놀라 울고 있는 것이다. 봉수 아저씨는 그런 해인이를 꽉 안고 킁킁대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크아아아!”
녀석은 버스 아래쪽을 강하게 내리쳤다. 흠칫 놀란 우리들은 헛바람을 들이 삼켰다. 빌어먹을…….
“크아아!”
저 멀리서 다른 녀석의 소리가 들렸다. 뒤쪽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녀석은 버스를 다시 유심히 보고는 소리가 난 곳으로 뛰어갔다. 녀석들과 싸우지도 않았는데 녹초가 된 기분이었다. 깊은 한숨을 쉬며 의자에 털썩 기댔다.
“죄송해요…… 흐윽.”
“…….”
울음을 삼키는 해인에게 괜찮다고 말해줄 수가 없었다. 생리적인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그 작은 실수 때문에 모두가 위험에 빠질 뻔 했다.
곧 녀석들의 분노 섞인 포효 소리가 들렸다. 나와 동생, 준우 아저씨는 버스 뒤쪽 창문으로 다가갔다. 저 멀리 보이는 녀석들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어제와 같은 풍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까 버렸던 시체 중 일부가 분명했다.
“쓰레기 자식들…… 저게 진화의 모습인가?”
“…….”
살기 위해서라면 동료를 짓밟고 배를 채우는 것이 녀석들의 생존 방식이었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식사를 마친 녀석들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게 쭉 가라.
버스 위를 때리는 굵은 빗줄기가 귀에 거슬렸다. 별거 아닌 상황인데도 마음이 다급해졌다.
“저 자식 설마…….”
동생의 말에 앞을 보니 아까 마지막에 남아 있던 녀석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붉은 빛이 맹렬하게 빛난다. 제발…… 제발.
녀석은 그대로 고개를 돌려 동료들과 합류했다.
“후…….”
“아, 진짜 제 명에 못살겠네. 이거 원.”
“하아. 십년감수했다.”
준우 아저씨는 몸을 늘어트리며 땀을 닦았다. 갈증이 났다. 물을 가득 담아 단숨에 비웠다. 후우. 이제 겨우 숨이 트였다. 모두 극도의 긴장이 풀려서인지 저마다 땀을 흘리고 있었다. 차례대로 물을 한 모금씩 마신 우리들은 의자에 편하게 몸을 뉘었다.
“고생했습니다. 오늘 하루…….”
우민 형의 목소리를 끝으로 모두가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난 어느정도 피로를 회복한 상태였기 때문에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모두의 숨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죽이고 있다. 그간 여정이 노곤했는지 코를 고는 이들이 심심찮게 있다. 하지만 모두가 피곤했는지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어 한동안 그의 코골이 소리를 들어주기로 했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벌어졌다. 대체 왜 괴물들이 나온 것이며 아빠가 그때 했던 말의 뜻은 뭐였을까. 엄마와 함께 무사한건지.. 이 여정의 끝엔 뭐가 기다리고 있는건지. 가슴이 답답하다.
"후……."
창 밖을 통해 빛나고 있는 별들을 바라본다. 언제였던가.. 이렇게 밤하늘을 올려다본지가. 괴물들이 나타나기 전에 진즉에 이런 것들을 했어야 했는데. 여유를 즐겼어야 했었는데.. 그게 아쉽다.
정수기 앞에 다가가 물을 마시고 시계를 보았다. 새벽 3시. 아직 해가 뜨려면 한참 남은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잘 자고 있는지 좌석 하나하나를 둘러보았다.
“드르렁.”
미약하게 코고는 소리와 잠꼬대 소리가 들렸다. 다시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었다. 다시 일어나 좌석들을 둘러보았다. 이런.. 은혜와 남자가 없었다. 어딜 간 거야. 제길…… 소총을 들고 버스 창문에 붙어 밖을 내다보았다. 허나 희미하게 빛나는 가로등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
그때 저 멀리 30~4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꾸물거리는 두 개의 인영이 보였다. 느릿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인간의 걸음걸이…… 은혜와 남자였다. 은혜는 왜 밤마다 돌아다니는 걸까. 저렇게 하려고 그렇게 일찍 자는 건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걱정이 된 나는 버스 문을 수동으로 열고 밖으로 나왔다.
툭. 툭. 툭.
미약하게나마 내리는 비가 버스 천장을 때렸다. 주위를 둘러보며 은혜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움직일 배짱도 없었을 텐데…… 이진성, 정말 많이 발전했다.
은혜는 계속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내 마음을 애타게 했다. 물가에 어린아이를 풀어 놓은 부모의 심정보다 더 간이 떨렸다.
“?”
착각일까. 은혜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빠르게 움직이며 폐차 뒤에 숨었다. 내 눈이 잘못되기를 바라며 반짝이는 곳을 가만히 주시했다. 불행히도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
“한 놈인가…….”
이상하게 녀석은 무리 생활을 하지 않았다. 다만 은혜와 일정 거리를 두고 그 자리에 굳은 듯이 서 있는 게 전부였다. 은혜는 모르고 있는 눈치였지만 그 옆에 선 남자는 아니었다. 폐차 옆으로 살살 돌아 넓은 평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대로 돌면 은혜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얼마 가지 않아 뭔가 석연찮은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은혜를 보고 있던 녀석의 시선이 내게로 꽂혀 있었다. 멈칫. 반사적으로 몸이 굳었다. 가만…… 저 녀석 설마 어제 그 녀석인가? 몸을 제대로 피고 가만히 녀석들 바라보았다.
“뭐야. 날 먹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너를 도와준 은인이라고…….”
“……."
녀석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이내 몸을 돌려 넓은 평지 너머로 사라졌다. 후우……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여간 꼭 이렇게 사람을 걱정시키게 만든다니까…….”
은혜는 앉은 상태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나를 힐끗 보고는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뭐 보고 있어?”
“…….”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은혜의 눈이 보였다. 은혜의 손을 잡고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힘없이 몸을 일으킨 은혜는 여전히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은혜야, 왜 자꾸 밤에 나오는 거야. 위험하잖아…….”
“…….”
“보고 있는 겁니다.”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뭘?”
“앞으로의 일들을 보고 있는 겁니다.”
“예언이라도 한단거야?”
“비슷하지만 아닙니다. 메시아께서는 자신의 남은 날들을 보고 계시는 겁니다.”
남은 날……? 은혜도 자신이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
“은혜와 말이 통하는 거야?”
“느낌입니다.”
“그래서…… 매일 이렇게 새벽녘쯤에 나와 하늘을 멍하니 보는 거야?”
“메시아께서는 완전히 죽을 날을 선택하고 계십니다.”
남자의 표정에서 괴물과 비슷한 공포가 느껴졌다. 정말 저 남자의 모습이 우리 인류의 진화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저런 허수아비 같은 태도가?
“언제…… 언제 죽는데?”
“그건 메시아께서 정하는 겁니다.”
“그럼 넌 은혜가 죽을 때 가만히 있을 거야?”
“메시아의 뜻이라면…….”
답답하다. 남자는 이제 공과 사를 완전히 구별하지 못하는 건가?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 은혜의 손을 잡고 버스로 이끌었다.
“은혜야…… 죽으면 안 돼.”
“…….”
“약속하자. 응?”
새끼손가락을 은혜에게 내밀었다. 멍한 눈으로 내 손가락을 보던 은혜는 이내 작고 여린 손으로 손가락을 잡았다. 그래, 어찌되었든 약속한 거야. 괜히 눈물이 나오려 했다. 고개를 세차게 젓고 버스 쪽으로 걸어갔다.
“크아아!”
저 멀리 녀석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제길! 빠른 걸음으로 버스로 다가갔다. 녀석들이 사라진 곳에서 나는 소리였다. 냄새를 맡기라도 한 걸까. 버스 너머로 검은 물체 여러 마리가 접근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빨리 은혜야.”
일단 은혜를 버스에 태워놔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버스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치이익. 그 때 버스의 문이 열리며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 동생이 내렸다. 잠결에 녀석들의 소리를 듣고 나와 은혜가 없다는 것을 알고 바로 내린 것 같았다. 내 모습을 본 세 사람은 빨리 오라며 손짓을 했다.
“크아아아!”
녀석들에게도 절박한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잡아야 배가 골리는 것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필사적이었다.
장전을 마친 세 사람은 버스와 상당히 가까워진 녀석들에게 소총을 겨누고 2~3발씩 총알을 퍼부었다. 어둠 속에서 빠르게 날아가는 총알을 피하기는 불가능했다. 총알이 몸에 박힌 녀석들은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크웨엑.”
녀석들은 비틀거리며 일어서려 했다. 순식간에 어두운 대지 위가 붉은 피로 가득 찼다. 몸 여기저기 뜯겨져 있는 상처…… 녀석들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서로 치열하게 싸운 것 같았다. 그 중 살아남은 녀석들이 우리를 발견한 것이고, 배를 채울 수 있다는 희망으로 달려든 것이었다.
“크으으.”
세 사람은 각자 들고 있던 단검으로 녀석들의 머리를 강하게 쑤셨다. 이윽고 비에 단검을 씻어낸 세 사람은 다시 버스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어서 타.”
동생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든 나는 은혜를 먼저 버스에 태웠다. 남자가 타는 것을 끝으로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고 버스에 올랐다. 우민 형은 내게 마른 수건을 내밀었다.
“고마워…….”
먼저 은혜의 얼굴과 젖은 머리카락을 털어 주었다. 머리가 길어서 그런지 꽤 오래 걸렸다. 힘없이 고개를 숙인 은혜의 하얀 목덜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주어야 할까. 은혜도 곧 자신이 죽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그저 온전히 죽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크르르.”
작게 울리는 소리에 몸이 그대로 굳어졌다. 서로 수신호를 보내며 다시 소총을 챙겼다. 각자 창문에 붙어 아래를 살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붉은 눈빛이 빛났다.
“한 놈이야. 괜한 말썽 일으키지 말자고.”
아저씨 말에 우리는 일단 대기하기로 했다. 붉은 눈을 번뜩거리며 주위를 살피던 녀석은 버스 뒤쪽으로 걸어갔다. 녀석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크르르르.”
시체 더미를 보자 녀석은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그리고 서서히 식사를 시작했다.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준우 아저씨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거 혹시 어제 그 놈 아니야?”
“……맞아요.”
“우리를 따라다니는 것 같은데?”
“…….”
“우리를 따라다니면 배를 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 같은데…… 봐봐. 우리가 지나온 곳을 보면 전부 녀석들의 시체로 가득했잖아. 그래서 저 놈은 멀리 떠돌아다닐 필요 없이 우리 뒤를 졸졸 쫓는 거 같아.”
동생은 작게 중얼거리며 말했다.
“죽여야 할까.”
“……근데 저 놈 은혜를 봐도 전혀 공격적으로 나오지 않더라고요. 다른 놈들 같았으면 은혜 냄새만 맡아도 광분하면서 달려들잖아요. 저 놈은 뭔가 달라요.”
내 말에 두 사람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다른 녀석들과 분명 다른 태도를 가진 놈이지만 그 원본이 괴물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상부상조인가.”
“예?”
“그럴 수도 있잖아. 저 녀석의 채취가 버스에 묻으면 다른 녀석들이 이 버스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 거 아니야?”
“그런가…….”
“우린 녀석에게 고기만 제공해주면 된다고. 어차피 한 놈이야. 총알 1~2개면 끝나잖아.”
꽤 설득력 있는 준우 아저씨의 말이었다. 우리는 바보처럼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녀석이 식사를 마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동료 하나를 완전히 먹어 치운 녀석은 곧 해가 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다른 동료들의 시체를 질질 끌고 넓은 평지 쪽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다시 앞좌석으로 와 몸을 편하게 누웠다. 고개만 살짝 들어 시계를 보니 5시가 다 되어갔다.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어 사방이 캄캄했다.
“1~2시간만 더 자고 이동합시다. 이따 오후에 졸지 않으려면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는 게 좋겠습니다.”
아저씨의 말에 다들 동의했는지 몸을 편하게 하고 눈을 감기 시작했다. 축축하게 젖은 옷이 몸에 착 달라붙어 찝찝한 느낌이 들었지만 금방 잠에 빠졌다.
누군가 내 몸을 흔들었다. 서서히 잠에서 깨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동생이 보였다.
“아침 먹으래.”
“지금 몇 시야?”
“7시 조금 넘었어.”
“그래?”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모두 밖으로 나간 듯 고요했다. 목을 좌우로 돌리며 버스에서 내렸다. 어제 하루 종일 내린 비 때문인지 온 대지가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햇살이 내 눈을 따갑게 했다.
“응?”
맛있는 냄새가 났다. 버스 앞 쪽에서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천천히 걸어가니 라면을 삶아 먹었던 냄비에 찌개가 끓고 있었다. 이런 건 언제 챙긴 거지? 꼬르륵. 위장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준우 아저씨는 내 표정을 보더니 씩 웃었다.
“오늘은 해인이가 만든 거야.”
해인이는 발그레한 볼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보며 모두 희미하게 웃었다. 동생 옆에 앉으니 수저와 젓가락을 주었다. 봉수 아저씨는 자랑스러운 듯 어깨를 들썩였다.
“애가 요리에 흥미가 많아서 집에서 자주 요리를 했어요. 아마 못 먹을 정도는 아닐 겁니다.”
“아유, 냄새만 맡아도 숨넘어가겠어요.”
낯선 사람에게 말을 잘 못하는 해인이가 택한 방법은 요리였다. 아마 사과의 방식일 것이다.
“근데 이 밥이며 김치는 뭐야?”
“밥은 마트에서 데운 거야. 찬밥이긴 해도 먹을 만 할거야. 김치도 가져온 거고.”
“그래?”
그래도 상관없었다. 아침다운 아침을 먹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어느 정도 찌개가 끓자 불을 끈 아저씨가 수저를 들었다. 한 입 맛을 본 아저씨는 해인이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정말 잘하는 걸? 잘 먹을게.”
그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빠르게 식사를 시작했다. 뜨거운 찌개…… 김치와 어우러진 참치를 적당히 건져 한입에 넣었다.
“후하. 후…….”
맛은 최고였다. 차가운 찬밥이 입안에서 녹는 것 같았다. 모두 한 마디 대화도 하지 않은 채 입에 넣기에 바빴다.
“천천히 드세요…….”
해인이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넌…… 이걸 후우. 천천히…… 후우. 먹으라는…… 거냐?”
준우 아저씨는 음식물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정말…… 거지가 따로 없네.”
동생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맛있는 걸 먹을 땐 거지가 되어야 해.”
“그건 어디 논리에요?”
“몰라.”
두 사람의 모습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아저씨는 여전히 은혜부터 챙겼다. 남자는 뒤에서 묵묵히 밥을 먹을 뿐이고, 봉수 아저씨와 해인이도 그제야 식사를 시작했다.
“잘 먹었다.”
“해인이가 요리를 잘하네. 종종 맡겨야겠어.”
준우 아저씨와 동생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의 밥을 비운 나도 두 사람을 따라나섰다. 버스 뒤편으로 느리게 걸어가는 둘은 한 곳에서 멈춰 섰다. 빗물에 다 씻겨나간 줄 알았던 피들이 바닥에 흡수가 된 듯 그대로 남아 있었다. 준우 아저씨는 담배를 꺼내 나와 동생에게 나눠주었다.
치직. 불을 붙이고 서서히 타들어가는 담배를 힘껏 빨았다.
“저기로 간 것 같네.”
준우 아저씨는 녀석이 사라진 경로를 가리켰다. 그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굵은 핏자국이 이어져있었다.
“아저씨 말대로 그 녀석이 정말 우리에게 도움을 줄까요?”
“모르지. 우리 중 하나라도 홀로 남겨진다면 저 녀석이 우리를 먹이로 인식하고 공격하겠지…… 아마?”
“하긴…… 어차피 괴물 시체를 어디다 쓸 것도 아닌데…….”
동생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하이에나라고 생각해. 어딜 가나 뒤처리 반은 꼭 있으니까 말이야.”
우리는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담배를 태웠다. 곧 완전히 타버린 담배꽁초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리고 다시 버스 앞으로 갔다. 사람들은 거의 식사를 마쳤는지 슬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정리를 도우며 남은 물건들을 버스 옆 공간에 넣었다.
10분 정도가 소요되자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다. 모두 버스에 탑승한 것을 확인한 아저씨는 서서히 버스를 몰았다. 어느 정도 가니 커다란 표지판 위에 ‘감사합니다.’ 라고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부우우웅. 버스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우리는 자리에 편하게 누워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 멀리 안성시에 있는 건물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톡톡. 순간 마이크가 켜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는 ‘아아.’ 테스트를 몇 번 하고서 입을 열었다.
“휴게소 들릴 사람 있나?”
“관광 가는 기분이네 정말…….”
동생은 뒷좌석에서 중얼거렸다. 별로 내키지 않았다. 특별히 먹을 것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괜히 들려서 시간을 낭비하는 건 아닌지…… 그러나 준우 아저씨는 단박에 손을 번쩍 들었다.
“가야죠! 여행의 필수 코스 휴게소를 빼 놓으면 섭섭합니다.”
“5키로 정도 남았어.”
고개를 내밀어 창밖을 보니 휴게소라고 적힌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몸을 일으켜 준우 아저씨 옆에 다가가 앉았다. 준우 아저씨는 의아한 눈빛으로 날 보았다.
“혹시 안에 뭐라도 있으면 어쩌죠?”
“낮이야. 그리고 휴게소는 사방이 트인 공간이야. 그늘진 곳은 없어. 괜찮아. 다들 옷 좀 보라고. 버스 칸에 여벌의 옷이 있긴 하지만 어디 그걸 입을 수나 있냐?”
그 말대로 버스 안에 있는 옷들은 전부 노인들을 위한 옷이었다. 농촌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커다란 바지나 낡아 보이는 얇은 셔츠들. 모두 입으려면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실용적이지도 않았다. 무조건 오래 입을 수 있고 질긴 소재의 옷을 입어야 했다.
“그렇겠네요…….”
“거기서 해인이 석궁 연습도 시킬 겸…… 좋잖아. 겸사겸사.”
준우 아저씨는 항상 긍정적이고 밝았다. 저번 당구장에서 일이 있고 난후부터 그렇게 변한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보기가 좋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하긴…… 이런 우울한 여행 에도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되는 거니까…….
"근데 뭐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내 말에 준우 아저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서라. 불안한 마음 먹으면 꼭 그렇게 된다."
"..그게 이상하잖아요. 아무리 사람들이 다 대피를 해도 그렇지.. 어떻게 도로가 이렇게 멀끔하죠? 마치 우리보고 지나가라고 하듯이 말이에요."
"...."
내 말에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허나 그것도 잠시 동생이 몸을 일으켰다.
"어찌됐건 살아있으니 된거야. 다 도망가서 없을수도 있잖아. 거기다가 이런 촌동네야. 충분히 차가 없을 법도 해. 혹시 알아? 우리가 혈투를 벌이고 있을 때 정부에서 도망가라고 전부 방송을 해대서 다 내려갔을수도?"
그 말에 모두가 동의하는 눈치였다. 아니, 내 말에 또 다른 의문을 품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일이 너무 잘 풀리고 있다. 그래서 더 불안해졌다. 과연 이대로 가는게 맞는걸까.
부우웅.
버스가 우측으로 돌기 시작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채비를 했다. 각자 물품들을 챙기고 소총과 배낭, 그리고 해인이에게 가르쳐줄 석궁을 챙겼다.
버스는 커다란 휴게소 앞 공터에 서서히 멈췄다. 치이익. 문이 열리자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곳곳에 주차되어 있는 소수의 차들과 휴게소 건물들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점이 없었다.
“가지…….”
아저씨가 제일 앞에 섰다.
“…….”
그리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은혜가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녀석들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모르고 대비하는 것보다 알고 대비하는 게 생존율을 높이기에는 효과적이었다. 거기다 남자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혹여 은혜에게 혜를 끼치려는 괴물이 나타난다면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
“화장실 좀…….”
해인이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아무래도 남자끼리의 여행이다 보니 해인이의 안위를 생각하는 것을 잊은 것 같았다.
“아, 미안하게 됐네…… 은혜랑 같이 가고…….”
아저씨는 해인에게 은혜를 붙여주며 말했다. 해인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은혜 손을 잡고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남자는 그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 붙었다. 무슨 일이야 있겠어? 우리는 꽤 빠른 걸음으로 휴게소 가운데 부분에 있는 편의점에 멈춰 섰다. 곧 우리의 움직임을 감지한 자동문이 서서히 열렸다.
“천천히.”
소총을 앞으로 겨누고 좁지도 크지도 않은 편의점 안을 둘러보았다. 비릿한 피 냄새를 제외하고는 특이한 점은 없었다. 우리는 가져온 배낭에 여러 가지 물건과 음식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먹을 사람?”
고개를 돌려보니 냉동고 쪽에서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는 준우 아저씨가 서 있었다. 달고 시원한 것. 우리는 뭐에 홀리기라도 하듯 준우 아저씨 곁으로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었다.
“와, 이거 엄청 비싼 건데.”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먹어보겠냐.”
부드러운 크림 맛에 웃음이 절로 났다. 허겁지겁 아이스크림을 먹은 우리는 몇 개를 더 챙기고 바로 옆 스포츠용품 가게에 들어갔다. 그 사이 일을 마치고 온 해인이와 은혜도 뒤를 따랐다.
“선물.”
준우 아저씨는 두 사람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해인이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은혜와 서로 나눠먹기 시작했다. 우리는 각자 입을 것들을 빠르게 챙기기 시작했다.
“해인아, 은혜도 챙겨주고 저기 탈의실에서 갈아입고 올래?”
준우 아저씨의 말에 해인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것과 은혜의 것을 챙겨 탈의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 뒤를 따라가려는 남자의 어깨를 잡은 준우 아저씨는 걸려 있는 옷들을 보며 턱짓을 했다.
“너도 그 후드 벗어버려. 멀리서 보면 오인한다고.”
“…….”
남자는 말없이 옷을 골라 그 자리에서 입기 시작했다. 앙상히 마른 흑색의 몸이었다. 저런 몸으로 어떻게 상상이상의 힘을 내는 거지? 신기하네. 탈의실로 들어간 해인이와 은혜를 확인한 후 모두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상의를 벗을 때 나는 매캐한 냄새 때문에 절로 눈이 찌푸려졌다.
“어우, 내 냄새에 내가 짜증나네.”
10분정도가 지나 말끔히 차려입은 우리는 남은 옷가지를 챙겼다. 그에 맞춰 탈의실에서 나온 해인이와 은혜도 여러 가지 옷을 챙기기 시작했다. 모두 챙긴 것들을 확인한 아저씨는 밖으로 나가 버스 쪽으로 향했다.
저벅. 저벅. 저벅.
고요한 거리에는 우리의 발소리만 가득 울렸다.
“온다…….”
은혜의 목소리에 맞춰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일제히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크으.”
한 녀석이 건물에서 튀어나와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한 마리 정도라면 무시할 수 있어. 우리는 빠르게 버스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5마리의 녀석들이 있었다. 모두 흉흉한 기세로 붉은 안광을 빛내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아저씨는 모두 탑승한 것을 확인한 후 바로 버스를 출발시켰다. 하지만 대형 버스라 순식간의 가속도를 내기가 힘들었다.
“크아아!”
녀석들은 빠른 속도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8마리 이상이었다.
“제길!”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동료를 이용해 언제 변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해인이는 비명을 질렀고 우리는 이를 악물고 언제든지 창문을 열 준비를 했다.
“꽉 잡아!”
버스의 속도가 서서히 올라갔다. 녀석들의 울음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소총을 다시 장전하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했다. 녀석들은 분명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빨라지는 속도 때문에 버스 위쪽으로는 오르지 못했다. 녀석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창문 아래에 매달려 우리를 노려보는 것뿐이었다.
부아앙. 버스의 속도가 올라감과 동시에 한 녀석이 나가떨어졌다. 바닥에 굴러 떨어진 녀석은 그대로 축 늘어졌다.
“크으으으”
“아저씨! 안에 아무것도 없을 거라면서요!”
동생은 따지듯이 말했다.
“누,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냐?!”
준우 아저씨도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전벨트 꽉 매! 브레이크 밟을 거니까!”
아저씨는 큰 소리로 외쳤다. 관성으로 녀석들을 떨구려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군말 없이 안전벨트를 매고 단단히 채비를 했다. 아저씨는 ‘간다!’ 라고 외친 뒤 바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익.
커다란 마찰 소리와 함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밴과는 비교도 안 되는 압력에 상체가 거의 바닥에 닿을 정도였다.
“키에엑!”
그러나 성과는 대단했다. 관성의 힘을 이기지 못한 7마리 녀석들이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아저씨는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바로 버스 가속 페달을 밟고 출발하기 시작했다. 몇몇 녀석들은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버스 밑에 깔렸다.
덜컹. 덜컹.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녀석들을 뭉개버렸다. 그나마 좌우로 피한 1~2마리 녀석들은 온 몸을 비틀거리며 다른 동료를 가만히 보았다.
"제발. 부탁이다 그대로 있어줘라."
준우 아저씨의 절박한 외침은 소용이 없었다.
“크아아아!”
준우 아저씨를 놀리려는 듯 미련없이 죽은 동료의 살을 뜯어 먹은 두 녀석이 버스 뒤를 쫓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변화한 놈들은 사지 여기저기가 비틀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부아아앙.
그러나 녀석들의 체력으로 버스를 쫓는 건 무리가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지친 두 녀석은 어깨를 들썩이며 도로가 떠내려가라 소리를 질렀다.
“휴…… 미친놈들 정말…….”
이내 녀석들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모두 한숨을 크게 쉬며 흐르는 땀을 닦았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미리 챙겨 두었던 이온 음료를 꺼내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고맙네.”
“제가 더 고맙죠.”
“많이 달라졌어.”
“예?”
“상황 판단이 많이 빨라졌어. 안심이 되는데?”
“에이,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아저씨는 말없이 웃었다. 왠지 그 웃음이 멀리 여행을 떠나려고 준비하는 사람의 것과 같아 나도 모르게 낯설었다. 착각이겠지…… 뚜껑을 닫아주고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멀리 표지판이 보였다. 충주. 남은 거리는 40키로 라고 적혀있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것 같았다.
부르르.
잘 달릴 것 같던 버스가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다. 앞 창문을 바라보자 저 멀리서 뭔가가 보였다. 아저씨는 운전석에서 일어나 한참동안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설마…….”
상황 파악이 된 우리는 창문 밖의 상황을 유심이 보기 시작했다. 뭔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낮에도…… 자유롭게 괴물의 모습이라니…… 설마?”
준우 아저씨 말에 모두 조용해졌다. 낮에도 괴물의 상태를 하고 흥분하지 않는 모습…… 그렇다면 우두머리일 확률이 높았다.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의 우두마리라니…… 게다가 두 녀석은 서로 협동하는 관계처럼 보였다.
“일단…… 조용히 있어. 총은 언제라도 쓸 수 있게 대기하고.”
아저씨의 시력이 좋아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녀석들의 눈에 버스 움직임이 포착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찾아온 긴장 속에 소총을 꽉 쥐고 앞을 보았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두 괴물과 사람들이 보였다.
“쓰레기 같은 새끼들…….”
남자 2명과 여자 3명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꽤 젊어 보이는 사람들인데 어쩌다가 저런 꼴을 당한건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섣불리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온다.”
서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몸을 숙여 고개만 내밀고 녀석들의 행렬을 지켜보기로 했다.
‘이기적인 놈.’
마음속에서 그렇게 말했다. 닥쳐. 지금 우리 상황도 어렵긴 마찬가지야.
‘멀쩡한 사람들이잖아. 버릴 거야?’
닥쳐!
‘너희들도 저 괴물과 다를 게 없다.’
나도 도와주고 싶다고! 젠장! 이를 갈며 두 녀석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우두머리 두 마리…… 상상이상의 전투력을 가진 놈들일 것이다. 이건 이기적인 게 아니야. 우리도 지켜야할 사람이 있고 나아가야할 목표가 있다고.
“도저히…… 못 걷겠어요! 못 걷겠다고!”
그때 여자 2명이 발악적으로 외치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여파로 다른 사람들도 그 자리에 눕듯이 쓰러졌다. 우두머리 두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혀를 날름거렸다.
“그럼 죽여줘?”
“허억…… 어차피…… 우릴 못…… 먹잖아요.”
못 먹어? 이건 무슨 소리지? 여자의 말에 괴물은 화가 단단히 난듯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크아아아!”
화풀이를 하듯 지상에 주먹을 꽂았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꽤 커다란 원이 생기며 땅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다른 괴물이 손을 저으며 만류했다.
“그만. 먹잇감에 흠이라도 생기면 두목께서 불쾌해하신다.”
두목? 저 우두머리들 보다 더 강한 놈이 위에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괴물들끼리 뭉친 집단이 따로 있다는 건가? 우리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왠지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 엄마.”
해인이의 작은 목소리에 우리는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해인이의 몸이 서서히 떨렸다. 봉수 아저씨도 밖을 가만히 보더니 한숨을 삼키며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해인 엄마…….”
“…….”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또 있을까. 하필 저 사람들 중 한 명이 두 사람의 가족이라니. 봉수 아저씨는 말없이 해인이를 안고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였다. 그에 맞춰 해인이의 어깨도 들썩거렸다. 최대한 울음을 참아내려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무슨 소리 들리지 않나?”
정말 귀신같은 감각이다. 광분한 녀석을 만류하던 녀석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소리를 들은 부녀는 손으로 입을 막고 숨도 쉬지 않았다. 제발…… 제발.
“소리는 무슨. 네 녀석은 쓸데없이 신경을 많이 써.”
다행히 다른 녀석은 투덜거렸다. 곧 그 녀석도 팔짱을 끼고 인간들을 훑어보았다.
“배가 고프긴 한데…….”
“그럼 하나만 슬쩍 하자. 두목도 이해하실거야.”
“괜찮겠지?”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한 녀석이 자리에서 껑충껑충 뛰며 사람들 주위를 맴돌았다. 사람들은 사시나무 떨듯 고개를 숙이고 표적이 되지 않기만을 바랐다.
“이 년으로 하지!”
제일 뒤에 있는 젊은 여자를 가리킨 괴물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여자는 사색이 된 얼굴로 두 괴물을 번갈아 바라보며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쉽게 여자의 사정을 봐줄 놈들이 아니다.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을 드러내며 다가가려는 찰나 여자의 바지가 젖기 시작했다.
“에이, 제길!”
눈을 찡그리며 손을 저은 괴물은 그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여자의 머리채를 붙잡고 들어 올렸다.
“끄헉!”
여자는 고통스러운 듯 두 손으로 괴물의 손을 잡으며 매달렸다. 바로 봉수 아저씨와 해인이의 가족이었다. 괴물은 혀를 날름거리며 여자의 목을 거칠게 핥았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애절한 여자의 목소리에 부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떨었다. 우리는 그런 부녀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작은 양심이 자꾸 가슴을 푹푹 찔렀다.
“나름 맛있게 익은 것 같네. 낄낄낄.”
“흐윽. 흑흑.”
여자는 이내 체념한 듯 굵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괴물은 몸 여기저기를 핥기 시작했다.
“내가 위를 먹을 테니 네가 남은 부위를 먹어라.”
“좋지.”
괴물의 날카로운 입이 번뜩거렸다. 커다랗게 입을 벌린 녀석은 목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어쩌지……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 건가. 부녀에게 또 다시 슬픔을 안겨주어야만 하는 건가. 안 돼…… 그럴 순 없어.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다.
꽈악.
동생은 내 손을 잡고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가지마.’
으드드득. 이를 악 물고 겁에 질려 벌벌 떠는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타앙. 그때 봉수 아저씨가 빠른 속도로 내 총을 뺏더니 버스 문을 강하게 발로 찼다.
“응?”
여자를 먹으려 했던 우두머리 녀석이 고개를 획 돌렸다. 봉수 아저씨는 그대로 버스 밖으로 나가 녀석들에게 총을 겨누었다.
“해인 엄마!”
“여, 여보.”
“오호. 설마 했지만 진짜로 있을 줄은 몰랐는걸.”
감각이 좋은 녀석이 말했다. 제길…… 어쩔 수 없지. 모두 버스 밖으로 나와 녀석들과 마주섰다. 물론 은혜와 해인이는 버스 안에 그대로 둔 상태였다. 사람들은 우리의 존재를 보고 희망적인 표정을 지었지만, 우두머리의 힘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쏠 건가? 응?”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우두머리 녀석이 말했다. 봉수 아저씨에게 소총을 다시 건네받아 단단히 잡았다. 서서히 녀석들에게 겨누었다. 사람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사, 살려주세요!”
“크하하하. 재미있군! 누가 누굴 보고 살려 달라는 거지? 이러니 너희 같은 하등 생물들이 멸종해가는 거다.”
우두머리 녀석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놈은 여자로 자신의 몸을 교묘하게 가리고 있어 총을 쏠 수 없었다. 그때 다른 녀석이 코를 킁킁대더니 이내 환한 얼굴로 웃음을 지었다.
“어이. 이 냄새…….”
그 말에 다른 녀석도 코를 벌름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들은 적이 있는 냄새군. 두목께서 그토록 찾아 헤맨다는 그 냄새…… 예상외의 수확이야.”
두 녀석은 눈이 반짝였다. 두목…… 냄새. 설마…… 전에 은혜를 노렸던 그 덩치 큰 녀석을 말하는 건가? 저런 놈들까지 부릴 만큼 녀석의 힘이 그렇게 강했었나? 두 녀석은 서서히 왼쪽으로 크게 돌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버스의 옆면을 그냥 내주게 된다.
“큭큭큭.”
녀석들은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이 상황……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누굴 선택해야 옳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두두두.
착각이었을까. 커다랗게 울리는 소리가 달팽이관을 때렸다. 총소리였다. 고개를 돌리자 아저씨가 굳은 얼굴로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녀석들을 보았다.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한 남자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우두머리. 남자의 연약한 몸을 그대로 총알이 뚫어 녀석에게로 향한 것이었다.
“아저씨…….”
나지막이 아저씨를 불렀다. 그러나 아무 말이 없는 아저씨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져 있었다.
“크아아아!”
우두머리 녀석은 가슴팍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주춤거렸다. 곧 분노를 못 이긴 녀석은 피를 흘리는 남자의 머리를 그대로 분리시키고는 우리에게 던져버렸다. 휘이잉. 우리는 그것을 피해내고 앞이 빈 녀석에게 총알 세례를 퍼부었다.
그러나 녀석은 높은 도약을 통해 버스 창문 쪽으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크게 주먹을 휘둘러 버스 창문들을 모조리 깨부수기 시작했다.
와장창.
이내 다른 녀석도 합류해 동료를 돕기 시작했다. 서둘러 뛰어간 우리는 힐끔 보이는 녀석들의 옆모습에 총알을 퍼부어댔다.
총알이 옆을 스쳐지나갔는지 몸에서 피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도 우리를 돌아보지 않았다. 마침내 창문을 깨부순 녀석들은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은혜와 해인이…… 그리고 남자가 있었다.
“크아아!”
곧 녀석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이내 버스 밖으로 튕겨져 나온 녀석은 충격이 꽤 컸는지 피를 한 움큼 토하고는 일어나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그것을 그냥 놓칠 우리들이 아니었다.
'공격해!' 라는 말과 우린 사정 봐주지 않고 총알을 퍼부어댔다.
“크어어억.”
녀석은 총알에 몸이 꿰뚫리며 이리저리 몸을 비틀대다가 바닥에 축 늘어졌다.
와장창. 그때 남은 창문들이 완전히 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남은 우두머리 녀석이 빠른 속도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온 몸에 피를 흘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중상이 확실해보였다. 그러나 녀석을 이대로 놓친다면 후에 다가올 일들을 완전히 감당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후우…….”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소총을 들고 점점 멀어져가는 녀석의 등 뒤를 겨누었다. 호흡을 멈추고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맹렬한 화염이 총구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제발 그대로 끝나버려라.
"제길!"
하지만 녀석은 우리가 쉬이 판단할 놈이 아니었다. 생존력이 상당히 강한 녀석은 곡예를 하듯 몸을 옆으로 돌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