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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밖에 나가지 마시오 part.15

익명
2026-10-18 03:43

“대대장님은 그럴 리 없습니다. 괜한 오해를 하시는 것 같군요.”

“지금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제대로 알고 하는 말이오? 세상이 이 지경으로 돌아가는데 나쁜 마음을 먹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다는 거요?”

그 말에 이 하사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대대장님은 그럴 분이 아닙니다. 박 중사라면 모르겠지만…….”

“예?”

우리는 의문 섞인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 하사는 곧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박 중사는 애초에 군인이 되기를 싫어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군인이 된 거지요.”

“계급이…… 중사인데요? 중사는 몇년해서 달만한 직책이 아닌데.”

“그건 대대장님의 든든한 후원 덕이죠.”

대대장과 박 중사,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거지? 후원? 우리는 이 하사의 말에 경청하기 시작했다.

“대대장님과 박 중사는 배다른 형제입니다. 나이 차이가 좀 나긴해도 둘의 아버지는 같은 사람입니다.”

“이복형제요?”

“예. 저도 그 사실을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원래 사이가 나쁘진 않았었는데…… 아들들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이 하사는 말 끝을 흐리며 이를 갈았다. 그제야 조금 둘의 태도가 이해가갔다. 엄연히 계급이 존재하는 군에서 중사가 중령에게 대드는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동생이 한걸음 다가가 물었다.

“아들도 군인이었나요?”

“……아뇨. 둘 다 감염이 되었습니다.”

“감염이라면…….”

이 하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

“예. 괴물과 같은 증세를 보였죠. 실제로 몸에 검은 털들이 듬성듬성 나있었고요.”

무거은 숨을 내쉬는 이 하사를 보며 우린 침묵을 지켰다.

“좀 더 자세히 알려주시겠습니까?”

곧 침묵을 깨는 아저씨의 말에 이 하사는 남은 군인들에게 전방을 경계하라고 시키고는 우리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왔다.

“딱히…… 얘기할 거리는 아니지만 여러분들에게는 왠지 털어 놓고 싶군요. 저도 이 사실을 계속 안고 산다는 것이 영 꺼림직 했으니까요. 괴물들이 본격적으로 활개를 치는 다음날이었습니다. 우리 대대에 남은 병력이라고는 간부까지 포함에 24~25명이 전부였죠. 소수의 인원으로는 넓은 대대를 지키기 어려워 위병소를 제외한 곳곳에 여러 가지 살상 무기들을 매설하고 24시간 내내 위병소를 지키는 방식을 이어왔었습니다.”

“…….”

“그날도 평범한 날이었죠. 괴물 몇 놈들이 밤에 나와 우리를 놀래 키는 것을 제외하면요. 낮이었습니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위병소 쪽으로 몰려오더군요. 그날…… 제가 병사들과 같이 근무를 섰기 때문에 명확히 기억합니다. 다가오는 사람들을 멍하니 보는데…… 점점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몸에 돋아난 털들에 이상하게 눈이 가더군요.”

이 하사는 그날이 떠오르는지 입술을 달달 떨었다. 보는 우리까지 긴장 되서 마른침을 삼켜야했다.

“그건…… 사람이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했습니다. 붉게 충혈 된 두 눈과 이상하리만큼 발달된 송곳니들…… 우리는 바로 막사에 있는 병사들과 간부에게 알렸죠. 저 스위치를 통해서 말입니다.”

이 하사는 스위치를 가리킨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전 병력들이 위병소로 모여들었죠.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그런데 유독 대대장님과 박 중사의 표정이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딱히 이유를 묻지 않아도 왜 그런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죠. 우연히…… 박 중사의 가족사진을 본적이 있는데 고등학생이었나…… 아무튼 박 중사의 아들이 사람들 틈에 껴있었던 거지요.”

“그렇군요.”

“아이러니하게도 대대장의 아들도 그 틈에 있었나 봅니다. 참 웃기는 일이죠. 하늘이 장난도 이런 식으로 치나 하고 묻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살려둘 수는 없었습니다. 딱 보기에도 사람의 범주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두 사람…… 예, 대대장님과 박 중사는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쏴야한다는 대대장의 말과 일단 격리하자는 박 중사의 말…… 당연히 우리는 지휘관의 명령을 우선 시 해야 했죠. 머뭇거림 없이 총알을 날려주었습니다.”

사라라락. 거센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위병소에서 묵묵히 경계를 하고 있는 군인들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어두웠다. 다시 이 하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결과는 여러분들이 아시는대로입니다. 박 중사가 그렇게 오열하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그런 박 중사의 모습을 본체만체하며 대대장은 서둘러 시체들을 치우라고 했죠. 우리들은 바로 트럭을 가져와 시체들을 멀리 내다버리기 위해 싣기 시작했습니다. 다 싣고 출발하려는데 박 중사가 기어이 운전하겠다고 하더군요. 대대장도 그거까진 관섭하지 않고 그대로 막사로 올라갔습니다.”

“…….”

“박 중사는 시체 더미들을 혼자서 처리하고 왔어요. 그때부터 박 중사의 태도가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첫날에는 우울하던 모습을 보이더니 둘째 날 부터는 병사들에게 화풀이를 하고 대대장의 명령을 제대로 듣지 않기 시작했어요. 우린 그러려니 했습니다. 자식을 잃은 충격을 직접 겪어봐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어머니를 여윈 저로서는 약간이나마 이해가 되기도 했으니까요. 그 후로부터 박 중사는 우리와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필요한 말들을 제외하고는 아예 입을 닫고 살았죠. 더군다나 씻지도 않았어요. 그의 곁에는 항상 땀에 찌든 냄새와 역한 냄새만이 가득했죠.”

그러고 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그땐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었지만 박 중사의 몸에서 낯설지 않은 악취가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제길! 그걸 왜 이제야 알아차린 걸까. 큰일이다. 사태가 어쩌면…….

“냄새…… 냄새라면 설마!”

내 말에 이 하사를 제외한 모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하사는 설명을 바라는 눈치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박 중사님!”

그때 위병 경계를 서고 있던 군인 한명이 전방을 향해 외쳤다. 화들짝 놀란 우리들은 그대로 군인 옆으로 뛰어갔다.

“…….”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박 중사가 보였다. 군복 여기저기가 더럽혀져진 상태였다. 희미하게 악취가 풍겼다. 박 중사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빨간…… 아주 빨간 두 눈이 어둠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크르르……."

“박 중사님…….”

이 하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더 이상…… 날 그렇게 부르지 말게.”

녀석들과 같은 가래가 잔뜩 낀 목소리였다. 그의 두 손에는 아직도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하사는 부들부들 떨며 소총을 겨누었다.

“제기랄! 박 중사!”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태세였다. 그러나 박 중사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마당에 죽음을 두려워 할 것 같나?”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발작적으로 외치는 이 하사를 보며 박 중사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이때까지 봐왔던 괴물들과는 전혀 다른 행동이었다. 감염 된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괴물의 특징을 제외하면 인간일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내 유일한 낙은 바로 아들이었어. 사춘기라 말썽도 부렸지만 나에게 남은 거라고는 아들뿐이었어. 그런 아들이 내 눈 앞에서 총알 세례를 받고 더 이상 숨 쉬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줄 아는가?”

“그래도……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남은 사람은 살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박 중사는 서서히 고개를 저었다. 그의 두 눈은 투명한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희미한 위병소의 빛을 받아 그것이 미약하게 반짝거리며 한 두 방울 볼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아니, 난 삶의 이유를 잃었어. 평생을 살아오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떳떳하게 한 적이 있어야지. 그런 점은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어. 그러나 결과는 참혹하더군.”

“어떻게…… 감염이 된 겁니까?”

“그나마 미약하게 살아 있는 녀석에게 일부러 내 팔뚝을 내주었지. 다 죽어가면서도 내 팔을 아주 맛깔나게 뜯어먹더군. 녀석은 곧 죽고 말았지만 내 몸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어. 나도 아들과 같은 곳에 갈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더군.”

처음 우리를 냉대하던 박 중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은 그저 아들을 잃고 괴로워하는 평범한 아버지에 불과했다. 이 하사는 굵은 눈물을 흘리며 방아쇠를 천천히 당기기 시작했다.

“쏘게. 더 이상 내게 미련은 없어.”

“크흑…… 제길…… 큭…….”

이 하사는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박 중사는 서서히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보았다.

“낮엔 정말 미안하게 되었소. 당신들이 나를 도와주시오.”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 박 중사의 태도에 우리는 쉽사리 총을 들지 못했다. 은혜를 지켜주는 남자의 모습이 계속 생각났다. 괴물의 특성을 가지고도 저런 지성을 가진 상태라면…… 어쩌면 박 중사 역시…….

“부탁드립니다. 나를…… 어서 아들의 곁으로 보내주십시오.”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는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총을 들었다. 박 중사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을 체념한 태도였다. 하지만…… 박 중사는 다른 녀석들과는 달랐다.

“잠깐…… 박 중사님…… 물린지 얼마나 되었죠?”

“그게 왜 중요하지?”

박 중사는 슬며시 눈을 뜨며 물었다.

“중요해요. 얼마나 되었어요?”

“2일…… 3일 됐나.”

“근데 그렇게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이에요

?”

박 중사는 뭐가 잘못됐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두머리 같은 과정을 겪는다고 생각하는 거냐? 하지만 결국 죽여야 하는 대상에 지나지 않아. 사사로운 정에 휘말리지 마. 저 남자를 본 건 오늘이 처음이야.”

준우 아저씨는 나를 만류했다.

“하지만 그동안 괴물의 특성을 나타내는 단계도 늦었고…… 저렇게 변했는데도 인간의 지성 그대로에요. 우리에게 적의를 가진 것 같지도 않고요.”

그때 박 중사는 뭔가가 생각났는지 박수를 치며 웃었다.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송곳니들이 나를 움츠려들게 했다.

“적의라. 그래 생각났군. 대대장…… 대대장 자식은 내 손으로 죽여야겠어.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묵묵히 눈물을 흘리던 이 하사가 박 중사에게 총을 겨누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 때문에 총구가 심하게 흔들렸다.

“안됩니다! 아무리 박 중사님이라고 해도 더 이상의 접근은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허…….”

박 중사는 빙긋 웃으며 손을 까딱거렸다.

“그렇지 않으면 어쩔 건데?”

“쏠 겁니다!”

말을 마친 이 하사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커다란 소음 소리와 함께 이 하사의 상체가 약간 들썩였다. 우리는 박 중사가 총에 맞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박 중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엄청난 스피드와 반사 신경으로 총알을 피해낸 것이었다. 이 하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소대원들을 다그쳤다.



“어서 찾아! 빌어먹을!”

소대원들은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부 겁을 먹고 있는 상태인지 어깨가 심하게 움츠려 있었다. 우린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박 중사의 능력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정신 놓지 마.”

동생은 내 등을 강하게 치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크아아아!”

괴물 소리와 함께 유리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가 난 곳은……?



"막사다!"

바로 몸을 돌려 막사로 뛰기 시작했다. 어느 틈에 저기까지 간 거지?

"제길!"

막사에는 지켜야할 사람이 너무 많았다. 자칫 잘못하다간 사람들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었다.

“서둘러야 해요

!”

내 말에 모두 속도를 냈다. 연병장을 질주하는 수많은 발자국 때문에 안개가 일어났다.

“크르르.”

그러나 우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는 괴물들 때문에 하나 둘 멈춰 섰다. 제길. 이렇게 급한 때에!

“지뢰나 부비트랩이 설치되어 있는 거 아니었소?”

“맞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온전하게 들어왔는지…….”

이 하사는 이를 갈며 말했다. 그때 뒤에서 묵묵히 서 있던 우민 형이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박 중사 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죠. 그 정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아까 위병소 앞에서 미련 없이 죽겠다고 한 걸 수도 있어요. 괴물들이 곧 여기를 덮친다는 것을 안거죠.”

상황 파악이 된 우리는 소총을 들어 총알을 날려주었다. 녀석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하나 둘 쓰러졌다.

“크르르.”

총소리가 놈들의 이목을 끈 탓일까. 더 많은 수들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이런식으로라면 시간이 끌려도 한참 끌리게 된다. 그럼 막사의 사람들은..

“너희 4명은 여기에 남아 녀석들을 저지하고 따라와라. 그리고 다음 4명이 다른 녀석들을 막는 식으로 릴레이 한다.”

이 하사는 냉철하게 명령을 내렸다.

“예!”

이 하사가 지목한 4명은 괴물들의 앞을 막아섰다. 우리는 그 틈을 노려 왼쪽으로 크게 뛰어갔다. 괴물들은 우리를 잡으려고 몸을 돌렸지만 4명의 군인들에 의해 무참히 깨졌다.

“크아아!”

아직 막사까지는 꽤 되는 거리였다. 어두워서 그런지 제대로 식별이 되지 않았다.

얼마 가지 못하고 다른 녀석들이 앞을 가로 막았다. 우리는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녀석들을 따돌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인원이라고는 우리와 이 하사, 그리고 3명의 군인이 전부였다. 막사 앞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전력이었다.

“일단…… CP실부터 가지요.”

이 하사는 숨을 고르며 막사 중앙 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창문이 모두 막혀 있는 상태라 통로가 어두웠다. 이 하사와 군인들은 느린 걸음으로 움직였다. 이따금 들려오는 바람 소리를 제외하고는 너무 고요했다. 천천히 CP실 앞으로 다가갔다. 그때 지휘통제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괴물들이 튀어나왔다.

“크아아!”

녀석들은 곧바로 군인들과 이 하사를 덮치기 시작했다. 급작스러운 공격에 소총을 겨누지 못한 군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 하사는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괴물을 피해 총알을 퍼부어댔다. 우리도 군인들을 덮친 괴물을 향해 총알을 퍼부었다.

“끄으으.”

종잇장처럼 꿰뚫린 몸으로 휘청거리던 괴물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나 녀석들의 성과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찰나의 공격으로 두 명의 군인이 숨을 거두기 직전인 상황이었다. 이 하사와 남은 군인 한명은 묵묵히 그들의 군번줄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 하사는 점차 숨을 거두어가는 군인의 군번줄을 잡으며 물었다.

“가족은 있나?”

“없…… 습…… 니…… 다.”

힘겹게 말을 내뱉은 군인은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굳은 얼굴로 군번줄을 뜯은 이 하사는 이어 다른 군인의 군번줄을 뜯고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어, 어머니가…… 있습니다…….”

“남길 말은?”

“사, 살아…… 만…….”

군인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이 하사는 두 개의 군번줄을 강하게 움켜쥐고는 자신의 목에 걸었다.

“…….”

우리는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CP실에 다다른 우리는 서로를 보며 심호흡을 했다. 제일 앞에 선 이 하사가 문고리를 잡고 서서히 문을 열기 시작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소총을 더욱 강하게 잡았다.

끼이익. 낮은 마찰음이 들렸다. 우리는 신속하게 이 하사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

어두운 CP실에는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이 하사는 초조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 여긴 없는 것 같군요. 일단 2층으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우리는 CP실을 나와 계단으로 올라갔다. 저벅. 저벅. 녀석들의 포효소리나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이상해. 너무 조용하잖아…….

"……."

이 고요함은 그리 좋은 현상이 아니었다. 적어도 여태까지의 경험상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조용한 분위기에는 항상 죽음이 따르는 법이다.

계단을 올라 바로 왼쪽으로 트니 아직도 불빛이 새어나오는 행정부와 사람들이 있는 생활관이 보였다.

“천천히…….”

서서히 행정부 쪽으로 걸어갔다. 언제라도 녀석들에게 총알을 날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하사는 자기가 먼저 들어가겠다고 얘기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행정부 옆 벽면에 찰싹 붙어 심호흡을 한 이 하사는 단숨에 몸을 돌려 행정부 안으로 들어갔다.

“흡.”

우리도 이 하사의 뒤를 빠르게 따랐다.

“…….”

하지만 보이는 것은 중위로 추정되는 잘게 찢어진 고깃덩어리가 전부였다. 행정부 바닥 전체가 붉은 피로 뒤덮여 있었다. 아무렇게나 널린 서류더미들 위에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붉은 덩어리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이 하사는 이를 꽉 물고 행정부에서 나갔다. 잔인한 방식…… 박 중사의 짓인가?

“!!”

그럼 아까 봤던 백신 보급 자료는? 서둘러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 피와 붉은 덩어리들로 범벅이 되어 글씨를 알아보기가 불가능 했다. 손을 뻗어 서류더미들을 살짝 옆으로 밀었다.

사라락.

없다. 보이는 거라고는 엉뚱한 것들의 일부분이었다. 죄다 피에 절어버려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 젠장. 유일하게 희망을 걸어볼 단서였는데!

“야, 뭐해. 빨리 와.”

동생은 고개를 살짝 내밀고 나를 재촉했다. 어쩔 수 없어. 이렇게 된 이상 은혜라도 무사히 구해서 여기를 벗어나야 해.

“어…… 어.”

서둘러 동생을 따랐다. 나와 동생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미 생활관에 들어간 상태였다. 우리는 주위를 경계하며 생활관 쪽으로 걸어갔다. 저벅 저벅. 몇 걸음 가지 않아 사람들이 천천히 나왔다. 이 하사는 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한 명이 처참히 당했습니다.”

“부인분이 아닌 게 확실합니까?”

아저씨는 봉수 아저씨를 보며 물었다.

“예. 증거는 없지만 확신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어디로 가야하지요?”

아저씨는 저번과 같은 얼굴로 이 하사에게 물었다. 이 하사는 잠시 생각하다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당연히 우리도 그 뒤를 따랐다. 걸음을 옮기던 이 하사는 김 상병이 창문을 막아 놨던 것들을 거침없이 떼어내기 시작했다.

지직. 지지직. 테이프가 뜯겨 나가자 어두운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김 상병은 왜 이걸 숨기려고 했던 걸까.

“저…… 이 하사님.”

“예?”

“아까 김 상병한테 물어보니까…… 사기 저하 때문에 여길 막아 놨다고 하던데요?”

“보이지는 않지만 저 아래에 무수히 많은 괴물들의 시체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는 우리 부대원들의 시체도 섞여 있고…… 주민들의 시체도 섞여 있지요. 병사들이 그것을 볼 때마다 자신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자연스레 갖게 되더군요. 그래서 저와 김 상병이 여기를 막아 놓은 겁니다.”

“……아.”

이 하사는 창문에 얼굴을 붙이고 어느 한 곳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뭐가 보이기는 하나? 우리는 그저 멀뚱히 서서 주위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3분 정도가 지난 끝에 창문에서 떨어진 이 하사는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혹시 모르지만 지하창고를 한 번 가보는 게 좋겠습니다.”

“창고요?”

“지하에 있기 때문에 주민들을 거기로 대피시키곤 했었지요.”

“아깐…… 주민들이 다 시체로…….”

동생의 말에 이 하사는 보일 듯 말듯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계속 걸어 나갔다.

“당시 주민들은 괴물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인간인 채로 구걸하는 주민에게 창고 문을 열어주었다가 모조리 당하고 말았죠. 그 사건 이후로 이용한 적이 없지만 몇 사람을 제외하고 흔적이 없는걸 보니 그리로 피신 한 것 같습니다…….”

피신이라…… 중위는 죽어 있는 상태라 가지 못했을 테고, 사람들은 지하 창고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대대장이 사람들을 데리고 간 건가? 가만…… 생활관에 있는 그 시체는 뭐지? 다 같이 데리고 간 것이 아니었나? 행정부는? 분명 중요한 서류를 중위가 담당하고 있지 않았었나?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뭔가 잡고 싶은데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1층 복도를 지나 넓고 어두운 밖으로 나왔다. 처음 순찰을 돌던 코스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잠깐.”

앞서 가던 이 하사가 멈춰 섰다. 기계적으로 멈춘 우리는 주위를 경계하며 이 하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 하사는 그대로 몸을 돌려 우리가 나왔던 길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벅. 저벅. 저벅.

희미하지만 우리와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알아낸 거지? 새삼 이 하사의 청력에 감탄했다. 우리는 그대로 소총을 들고 어둠 속을 가만히 주시했다. 곧 다가온다. 이 하사는 총을 쏘기 전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관등성명 대봐.”

“상병 김00.”

김 상병이었다. 이 하사는 약간 경계를 늦추었다.

“몇 명이지?”

“8명입니다.”

“……당한 거냐?”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덤덤히 대화를 이어갔다. 이어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김 상병과 다른 군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 마르지 않은 핏물이 그들의 손을 서서히 덮어가고 있었다.

“막사엔…… 없었습니까?”

“중위님은 죽어 있는 상태였고 다른 여자분 한명 역시 마찬가지야.”

“……중위님이…… 죽었다고 하셨습니까?”

김 상병의 목소리가 유난히 떨렸다. 그것을 어렴풋이 눈치 챈 이 하사가 김 상병에게 바싹 다가갔다.

“중위님이랑 아니, 중위랑 무슨 사이야.”

“아, 아무것도.”

“거짓말하지 마, 새끼야. 내가 널 하루 이틀 보는 줄 알아? 얼른 말해라.”

이 하사는 거칠게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

“최근…… 아니지. 중위가 전임 온 이후로 유독 그 새끼랑 잘 어울려 다니더라? 특히…….”

이 하사는 마지막 단어에 강한 악센트를 주며 김 상병의 멱살을 더 강하게 잡았다. 김 상병은 헛기침을 하며 괴로워했다.

“괴물 녀석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때부터…… 그랬지 아마?”

“그, 그게…… 이 하사님.”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이 좁아터진 공간에서? 네가 아무리 몰래 움직인다고 하지만 사방에 눈이 달려 있기 마련이지.”

이 하사의 표정은 확고했다. 김 상병은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컥컥거렸다.

“말해. 한 톨의 거짓도 보태지 말고.”

“사실…… 그게.”

“죽고 싶냐? 여기서 죽여줘?”

“사실…… 중위님은 정부에서 파견된 연구원입니다.”

김 상병은 헛바람을 들이키며 말했다. 그 말에 아저씨가 약간 놀라는 것 같았지만 워낙 빠르게 지나간 터라 자세히 보진 못했다.

“그럴 것 같았어. 그 새끼…… 중위씩이나 달고서 아는 게 없었지. 마치 샌님 같단 말이야. 계속 해.”

“백신…… 치료제를 연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자신에게 괴물들의 시체만 제공해주면 모든 사람들을 낫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 전 그것 역시 사람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중위…… 아니, 그 사람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네가 그 창문을 막자고 먼저 제안한 거냐? 어쩐지…… 유독 그쪽으로 들락날락거리더라.”

괴물들이 나타난 것은 5년 전의 일이었다. 은혜가 연구소를 탈출한 시점도 2~3년 전후였다. 괴물들이 본격화되어 사람들을 해치기 시작한 것은 2주일,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아저씨 는 연구소에 많은 인력이 투입됐다고 했는데…… 왜 굳이 군 시설에 보내 백신을 실험하게 했을까. 오히려 괴물들을 잡아 들여 안전하게 실험을 하게 할 수는 없었나? 역시 은혜와 같은 케이스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은 걸까.

“하지만 성과는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 계속 실험을 했었죠.”

“어디서? 실험할 곳이라도 있나?”

“그게…… 지하창고입니다.”

“뭐?”

이 하사는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하창고입니다.”

“개소리 하지 마. 거긴 사람들이 대피하던 곳이잖아.”

“예…….”

“예?”

김 상병은 쭈뼛거리며 이 하사의 눈을 피했다. 뭔가 있다고 판단한 이 하사는 김 상병의 양 팔뚝을 강하게 잡았다.

“빨리 말해 새끼야."

“사실…… 그 사람이 사람들을 통해 여러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뭐?”

“그…… 과정에서 죽어나간 사람도 있었고 괴물로 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말에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이 하사는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너…… 그게 사실이야?”

김 상병은 인상을 찡그리며 잡힌 팔뚝을 슬며시 빼냈다.

“예.”

“어떻게?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왜?”

“……대대장님이 뒤를 봐주셨습니다.”

이 하사는 입을 벙긋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뭔가 서서히 잡혀가기 시작했다. 박 중사가 대대장을 그렇게 증오하던 이유가 굳이 아들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대대장과 중위, 그 두 사람은 각별한 관계가 분명했다. 중위가 행정부에서 일 하는 것을 보고 끝까지 의심을 했어야 했는데…….

“그럴 리 없어…….”

이 하사는 고개를 저으며 비틀거렸다. 김 상병은 그것을 보기 힘든지 울상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전 단지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이 하사는 아무 말 없이 한 곳을 멍하니 응시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럴 시간이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그 지하창고에 가서 사람들이 안전하게 있는지 확인 해야만 했다. 아저씨는 이 하사를 부축하며 다른 군인들을 바라보았다.

“정신 차리십시오. 그리고 다른 분들도. 지하창고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예.”

“알고 있습니다.”

“그리로 가지요.”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이 하사는 고개를 저으며 자세를 바로 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김 상병.”

“예…….”

“네가 지은 행동에 대한 책임은 내가 확실하게 물을 테니까 죽지 말고 따라와라.”

“…….”

상대적으로 수가 늘어난 우리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쩌면 조그마한 실마리가 손에 잡힐지도 몰랐다. 우린 더 서두르기로 했다. 지하 창고에 있는 은혜와 다른 사람들의 안위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후우. 후우."

모두가 거칠은 숨을 몰아쉬었다. 적당한 긴장감과 압박감이 몸안의 세포를 자극시켜주는 듯 하다. 서둘러 막사 뒤편을 지나니 동산 같은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저벅. 저벅. 저벅.

거의 다 도착했는지 이 하사의 걸음이 빨라졌다. 아직 녀석들이 나타나지는 않은 상태였다. 최악의 경우엔 창고 근처에서 사투를 벌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얼마나 갔을까. 앞에 약간 둥그스름한 지형이 보였다. 그 옆으로는 내려가는 길처럼 보이는 나무 계단이 있었다.

“잠깐…….”

이 하사는 최대한 몸을 숙여 지형 위를 기다시피 다가갔다. 마침내 지형 끝부분에 다다른 이 하사는 고개만 살짝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다시 천천히 내려왔다. 표정이 밝지 않은 걸 보니 아무래도 내 예상이 들어맞는 것 같다.

“앞에 놈들이 있습니다.”

“…….”

사람들은 절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수가 많고 적고를 떠나 사람들을 구하는데 있어 녀석들은 큰 장애물이었다.

“숫자는 어느 정도 입니까.”

계속 냉정을 유지하던 아저씨가 물었다.

“아주 많습니다. 많은데…….”

이 하사는 할 말이 남았는지 말끝을 흐렸다. 우리는 그것을 계속 기다려주었다. 어렴풋이 짐작은 갔지만 이 하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더 믿고 싶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이 하사가 말을 이었다.

“그…… 녀석들끼리 싸우고 있는 게 보여서…….”

“싸우다니요……?”

“그게…….”

이 하사의 답답한 행동을 못 참은 동생은 앞으로 걸어 나갔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성큼성큼 지형위로 올라간 동생은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한 곳만 응시했다.

“왜 그래?”

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나도 동생을 따랐다. 이번에도 역시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전부 궁금한 눈치였다. 동생과 거리가 좁혀질수록 녀석들의 소리가 들렸다.

“……오오!”

“크아아!”

자동적으로 양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크…….”

바로 옆길을 따라 쭉 늘어진 괴물들의 시체가 보였다. 이렇게 위에서 보니 상당히 난장판이었다. 길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빨간 색의 불빛들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키에에엑!”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하나의 불빛이 꺼졌다. 이어 또 꺼졌다. 그러나 수가 너무 많았다. 누가 저 녀석들을 상대하는 거지? 그 남자인가? 박 중사는 어디에 있는 거지? 우두머리 녀석은?

“가자. 아무리 그 남자가 힘이 세다고 하지만 저 많은 녀석들을 상대로는 무리야.”

어느새 내 옆에 선 준우 아저씨가 말했다. 옆으로는 아저씨와 다른 군인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동생은 고개를 돌려 나를 똑바로 보았다.

“사람들을 구하되 죽으면 안 돼.”

“…….”

“알아들었어?”

“어, 어.”

동생은 거침없이 몸을 돌려 아래로 뛰어내렸다. 괴물들의 시체와 피가 동생의 발과 옷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뛰어내렸다. 짧게 호흡을 뱉으며 가볍게 점프를 했다.

철퍽. 이동할 때 마다 철벅거리며 발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사람들은 말없이 걸으며 소총을 굳게 잡았다. 녀석들의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크아아아!”

“크오오오!”

10미터 남짓. 우리는 일렬로 서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수류탄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만약의 경우 괴물들과 싸우고 있는 남자가 다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크르르?”

우리들의 존재를 눈치 챘는지 한 녀석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이내 녀석은 우리를 빤히 보더니 침을 질질 흘리며 포효를 했다.

“크오오오!”

그게 시,발점이 되었는지 한 쪽에서 혈투를 벌이던 녀석들 중 일부가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어 숨어 있던 녀석들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선제공격을 날려야 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지 이 하사가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총을 쏘기 시작했다.

“죽어라. 이 개새끼들아!”

총알은 괴물들의 몸을 꿰뚫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녀석들과 혼비백산하며 도망가는 녀석들이 주 부류였다. 그러나 녀석들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끄아악!"

분노와 광기에 사로잡힌 녀석들의 공격에 군인 2명과 평범한 남자 1명이 죽어버리는 일은 피할 수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총을 쏘는 것 뿐이다. 생각보다 거센 화력에 참다못한 괴물들은 그대로 몸을 돌려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조금 숨을 내쉬며 정신을 차려보니 주위에는 괴물들의 시체가 원을 길게 그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괴물들을 해치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너……?”

우리가 다가가도 적의를 드러내지 않고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저 정도의 키와 군복…… 남자가 확실했다. 서둘러 걸음을 옮겨 남자에게 다가갔다. 몸 여기저기가 뜯겨져 있었다. 회색 빛깔의 군복은 어느새 붉은 빛으로 묽게 염색되어 있었다.

“안 아프냐?”

“…….”

준우 아저씨 말에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한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린 그 장소가 지하창고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남자의 뒤를 따르며 주위를 경계했다. 이 하사도 특별한 말이 없는걸 보니 우리가 찾던 목적지가 맞는 것 같다. 얼마 가지 않아 깊게 파인 땅과 철로 된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계단 끝에는 진한 검은 색의 철문이 있었다.

“중사 아저씨는 못 봤냐?”

남자 뒤에서 걷고 있던 동생이 물었다. 남자는 몸을 멈칫거리더니 손을 뻗어 문을 가리켰다.

“……안에 있다고?”

남자는 말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어떻게? 그냥 들여보내준 건가? 같은 종류의 사람…… 아니, 괴물이라서? 안에 대대장이 있기라도 한다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온전히 놔둘 수 있단 말인가? 혹여 은혜의 냄새에 끌려 해코지를 하진 않을까.

“뭐해.”

“아무것도.”

집중해. 집중해라 이진성. 빠르게 철문 앞에 멈춰선 남자는 문고리를 잡고 강하게 당겼다.

끼기기기긱.

마치 고통스러워하는 비명 소리처럼 들렸다. 느릿하게 열린 철문 사이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어느 정도 공간이 확보되자 남자는 머뭇거림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서둘러 남자의 뒤를 따랐다. 지하 특유의 냄새와 싸늘한 기운이 온 몸을 휘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눈앞에 있는 통로 위쪽에 불이 켜져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데가…….”

동생은 감탄사를 흘리며 벽을 두드렸다. 첫 번째 통로에서 좌측으로 몸을 꺾자 꽤 커다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15평은 되어 보이는 넓은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실험을 했던 도구들이나 여러 대의 컴퓨터들이 있었다.

“뭐야…….”

이 하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른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갔다. 주위를 살피던 군인들을 뒤로하고 남자를 따랐다. 이내 남자는 벽 앞에 서서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한 곳을 잡고 당기기 시작했다.

그그그극.

서서히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까와 같은 통로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남자는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통로를 걸으면 걸을수록 익숙하지 않은 악취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윽…….”

금방이라도 구토가 나올 것 같아 이를 악물었다.

저벅. 저벅. 저벅.

얼마나 걸었을까. 곧 넓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와 비슷한 규모의 공간이었다. 한쪽 구석에는 큰 유리병들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투명한 액체와 함께 괴물들의 장기나 신체들이 담겨져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중앙을 둘러보았다. 거기에는 박 중사가 우리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용케 여기까지 왔군.”

“박 중사…….”

그의 손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대대장으로 추정되는 사지와 절단된 목. 그리고 몸체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준우 아저씨는 소총을 겨누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있지?”

“저기 안보이나?”

박 중사는 어두운 구석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기절한 것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너…… 저 자식이 어떤 상태인지 보고도 들여보낸 거냐?”

준우 아저씨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르지 않다. 나와.”

그 말에 할 말을 잃은 준우 아저씨는 멍하니 박 중사를 바라보았다. 박 중사는 날카로운 이를 훤히 드러내며 웃었다.

“약속했거든. 다른 사람들은 건드리지 않는 조건으로 길을 내달라고 말이야.”

“……그래서 대대장과 이 사람들을 교환한 건가?”

“뭐, 얘기가 그렇게 되나?”

박 중사는 유들유들한 웃음을 흘리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양손에 묻은 피를 대충 허공에 저으며 털어냈다.

“그런 생각이 들더군. 어쩌면 이런 몸이 인간에게 최적화 된 게 아닐까하고 말이야.”

느릿하게 걸어가던 박 중사는 우리를 보며 말했다.

“…….”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박 중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박 중사는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우리가 왔던 통로로 걸어 나갔다. 서둘러 사람들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모두 무사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긴장이 풀리자 절로 눈이 감겨왔다.

탕. 타타타탕.

그때 귀를 찌르는 듯한 거친 총소리가 들렸다. 뭐지? 이 하사가 박 중사를 보자마자 총을 쏜 건가? 그렇게 되면 아무리 박 중사라도 이 하사를 가만히 둘리가 없는데…… 도와야하나?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전할지도 모르는데? 어떡해야 하지?

“빌어먹을.”

준우 아저씨는 박 중사가 사라진 곳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를 잠시 바라보다 준우 아저씨의 뒤를 쫓았다.

"제길!"

아마 동생이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서둘러 통로 쪽으로 뛰어가니.

"?"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뭐지……?”

우민 형은 작게 중얼거렸다. 박 중사는 우리의 우려와는 다르게 출구로 향하는 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자연스레 시선이 그 쪽으로 따라갔다.

“……."

통로 주위에는 이 하사와 남은 군인들이 소총을 겨누며 서 있었다. 준우 아저씨는 대검을 꺼내 미약하게 숨 쉬고 있는 녀석들을 마무리 하고 이 하사에게 다가갔다.

“제길…… 당했습니다.”

이 하사는 준우 아저씨는 힐끔 보고는 불이 꺼진 통로를 노려보았다. 준우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당하다니요.”

“애초에 녀석들이 노리고 있던 게 이겁니다. 밖에 지금 엄청난 수의 녀석들이 몰려 있어요.”

아까 총알 세례를 받고 완전히 도망간 게 아니었나? 단순히 우리를 몰기 위해 그런 거라면 너무 계획적인 움직임이었다. 역시…… 우두머리 녀석이 있는 게 분명해. 소총을 꺼내 어두운 통로 쪽을 겨누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붉은 불빛들이 한순간에 깜빡거렸다.

“크르르르.”

먹이를 찾았다는 기쁨 때문인지 녀석들의 소리가 한층 커져 있었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

“크아아아!”

일렬로 된 좁은 통로라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크게 당할 뻔했다. 녀석들은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저번과 같은 상황이었다. 문득 김 대위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번에 천장을 뚫을 놈은 없겠지?”

동생의 중얼거림을 시작으로 녀석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크아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많은 수였다. 우리는 좀 더 효율적으로 대항하기 위해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총알을 날리기로 했다. 좁은 통로의 여건을 이용한 것이었다.

허나 그 수가 상상을 초월했다. 우리의 화력은 점차 눈에 띄게 줄어갔고 총알도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후우…….”

두 사람은 한숨을 쉬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녀석들의 움직임 또한 잠잠해졌다. 이 하사는 손목에 찬 전자시계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직 해가 뜨려면 한참 남았습니다.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나는 시계를 보지 않기로 했다. 그저 소총을 잡는 것과 녀석들에게 총알을 날려줄 준비를 하는 게 전부였다. 10분이 지나도 녀석들의 공세는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오랜만이군.”

그때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설마 나를 잊은 건 아니겠지? 저번에도 말했듯 내 용건은 간단하다. 계집을 내놔라.”

“…….”

“오래 안 기다린다. 허나 충분히 상의할 시간은 주지. 5분이다.”

“방금…… 그게 뭐죠?”

이 하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처음 우리를 덮쳤던 그 우두머리 자식입니다.”

“우두머리…….”

이 하사와 군인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일반 사람들과 봉수 아저씨 역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목소리만으로도 공포에 떨게 할 수 있는 녀석이었다.

“저번에 분명 팔이 떨어져 나갔었지?”

준우 아저씨는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잊을 수 없는 일이지. 처음으로 포기 했던 시점이었으니까. 김 대위와 민정 누나도 그 지역에서…… 생을 마감 했으니 잊을 수가 없지.

“하지만 우두머리 녀석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잖아요. 방심할 수 없어요.”

우민 형의 말에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저 녀석은 우리가 봐왔던 것과는 많이 달라. 방심해선 안 돼.”

“3분 남았다. 빨리 정해라 빌어먹을 하등 생물들아.”

초조함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박 중사와 남자에게 시선이 갔다. 나는 어두운 통로를 보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가능성이 있을까요?”

내 말에 남자는 아무 말도 없었고 박 중사는 나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내가 왜 너희들을 도와야하지? 어차피 곧 죽을 건데.”

“……여기에 우리와 같이 있기 때문이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

“너 이 개새끼! 대대장님은 어디 있어!”

이 하사는 박 중사의 멱살을 강하게 잡으며 말했다.

“물어볼 필요가 있나?”

박 중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이 하사를 바라보았다. 이 하사는 이내 한 손을 들어 박 중사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박 중사는 이미 인간의 범주를 크게 벗어난 상태였다.

자연스럽게 이 하사의 손을 잡은 박 중사는 다른 한 손으로 이 하사의 가슴을 강하게 밀었다.

퍼억. 뒤로 밀려나며 벽에 부딪힌 이 하사는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쿨럭. 쿨럭.”

“저승 길동무라고 생각하지.”

“…….”

박 중사의 태도로 보아 협조적으로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번 공격을 통해 우두머리 녀석도 직접적으로 가세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뭔가 뾰족한 수가 필요했다. 머리를 싸매고 이리저리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남자가 다른 쪽으로 연결된 통로를 가만히 보더니 입을 열었다.

“메시아시여…….”

메시아? 은혜? 남자의 시선을 따라 통로 쪽을 보니 작고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가만히 있던 아저씨가 통로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은혜는 멍한 눈으로 우리를 훑어보았다. 아저씨는 그런 은혜를 가볍게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은혜야…… 은혜야.”

아저씨를 가볍게 밀어낸 은혜는 남자 쪽으로 걸어갔다. 남자는 은혜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제대로 지혈을 하지 못해 여기저기에서 피가 나오 있었다. 은혜는 그것을 물끄러미 보더니 이내 왼쪽 손목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은혜야!”

아저씨가 다가가 말리려고 했지만 남자의 행동이 빨랐다.

“감사합니다. 메시아여.”

남자는 은혜의 가늘고 흰 손목을 깨물고 피를 빨기 시작했다. 박 중사는 물론 이 하사와 다른 군인들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우리는 그것이 은혜의 수명을 단축시킬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볼 수만은 없었다.

“은혜야…….”

아저씨의 애 타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뗀 남자는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났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남자의 몸은 상당히 깨끗해져 있었다. 그것을 유심히 보던 박 중사는 두 눈을 빛내며 은혜에게 다가갔다.

“백신이군?”

“…….”

은혜는 말없이 박 중사를 올려다보았다. 박 중사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은혜의 손목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네가 살아 있다면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뀔지 모르겠구나.”

“…….”

“어쩌면…… 아들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박 중사는 착잡한 표정으로 은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행히 박 중사의 마음이 상당히 돌아선 것 같았다. 분명 우리에게 큰 전력이 되겠지만 상대는 보통 내기가 아니었다. 이제 서서히 시간이 다 되어갔다.

“너 그 새끼 일을 도왔으면 뭔가 알아낸 게 있을 거 아냐.”

이 하사는 체념한 듯한 김상병을 보며 말했다.

“……알아낸 거라고 하셨습니까?”

김 상병은 여러 가지 실험 도구들을 들추며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서랍을 뒤적거리던 김 상병은 아직 밀봉된 상태의 주사기를 꺼냈다. 대충 상태를 체크한 김 상병은 실험대 위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작은 약품들을 뒤적거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언뜻 비슷한 걸 본거 같기도 한데…….”

“뭔데 그게.”

“그…… 치료제는 아니고 괴물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게 있습니다.”

“그래?”

그때 어두운 통로에서 괴물들이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방심하고 있던 것이 화근이었다. 5마리의 괴물들은 멍하니 서 있는 은혜를 발견하고는 빠르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크아아!”

그러나 녀석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은혜 옆에 서 있는 남자와 박 중사를 염두 하지 않은 것이었다.

퍼버벅. 박터지는 소리와 함께 5마리의 괴물들은 처참히 바닥에 쓰러졌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고, 이 하사는 김 상병을 데리고 우리가 왔던 통로 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시간을 벌어야 돼…… 최대한.”

그렇게 중얼거린 동생은 긴장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어두운 통로를 가만히 주시했다.

쿵! 쿵! 쿵!

그때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바깥쪽이었다. 우리는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소총을 겨누었다. 소리가 반복될수록 벽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엄청난 괴력이었다.

“메시아시여. 여기는 위험합니다. 부디 안전한 곳에 대기해주십시오.”

남자는 은혜에게 공손히 말했다.

“…….”

멍한 얼굴의 은혜는 남자를 빤히 보다 자신이 왔던 통로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아슬아슬한 걸음이었다.

쿵! 쿵! 쿵!

서서히 흔들리던 벽이 눈에 띄게 흔들거렸다. 우리는 침을 삼키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침착해라 이진성. 이 고비만 넘기면 돼.

파각! 파각! 몇 번의 거친 굉음과 함께 벽이 부서지자 커다란 암흑이 우리의 몸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크으…… 크으.”

육중한 발걸음과 함께 느릿하게 걸어오는 첫 번째 우두머리. 어두운 공간에서도 녀석의 포스가 그대로 느껴져 온 몸이 부들거렸다. 곧 녀석이 뚫어놓은 공간을 이용해 다른 자잘한 녀석들이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한다. 싱싱한 먹잇감들을 발견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녀석들의 눈은 하나같이 웃고 있었다.

저벅. 저벅.

우두머리 녀석이 서서히 걸어 나왔다. 그 존재만으로도 이 넓은 공간이 꽉 채워지는 것 같았다. 이내 모습을 드러낸 녀석은 전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어떻게 붙였는지 몰라도 왼팔이 버젓이 붙어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녀석은 은혜가 없다는 것을 느꼈는지 입이 찢어지도록 웃었다.

“크하하하하! 술래잡기인가? 좋지!”

“크윽…….”

박 중사와 남자가 가세한다고 해도 저 우두머리 녀석은 차원이 다른 괴력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그 주위를 가득 매운 자잘한 녀석들까지……

“자아, 선택권을 주지.”

“닥쳐!”

준우 아저씨의 외침에 우두머리는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넓은 공간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쳤다.

“좋아! 여기서 다 죽여주마!”

"캬아아!"

우두머리의 외침을 시작으로 남은 녀석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우리는 재빨리 실험대를 쓰러트리고 몸을 숨겨 소총을 무작정 갈겨댔다.

두두두두.

저번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았다. 어쩌면 살아남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소총의 불길을 미처 피하지 못한 놈들의 피와 진득한 살덩이들이 내 몸을 적시기 시작한다.

“끄아아악!”

하지만 멈출 수 없다. 이건 우리 생존자들의 최후의 공간이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모든게 끝난다. 하지만 수가 너무 많았다. 곧 녀석들을 막지 못하고 다른 쪽에 서 있던 군인 한명이 녀석들에게 끌려가버렸다.

처량한 비명소리도 잠시 3초도 되지 않아 군인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군인을 맛본 녀석들은 더욱 괴성을 질러대며 우리들에게 뛰어 들었다.

두두두두.

이를 악물고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15평의 공간이 이렇게 불리하게 작용될 줄은 몰랐다. 그나마 이렇게 버티는 것도 앞에서 녀석들을 막아내는 남자와 박 중사 덕이었다.

“크아아!”

녀석들은 쓰러진 동료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살아보려고 버둥거리는 놈의 사지를 뜯어내고 닥치는 대로 입에 넣기 시작한다. 허기와 광기만이 가득한 공간에서 더 이상의 희망 따위는 무의미해 보였다. 점차 다리가 떨려오고 팔이 저려온다.

'버틸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녀석들의 광란은 더욱 강해져 갔다. 하지만 우리도 마지막 남은 마지노선이었기에 아슬아슬하게 버텨내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이대로 계속 간다면 좁은 통로에 닿게 될 것이다.

"제길!"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녀석들에게 총알을 쏘며 수를 줄이는 것뿐이었다.

“크르르.”

그때 지켜보던 우두머리 녀석이 서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든든한 대장이 움직인다는 사실 때문인지 녀석들은 더욱 큰 포효를 지르며 우리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박 중사와 남자의 손에 모두 저지됐다. 하지만 두 사람의 상태도 그리 온전한 것은 아니었다. 언제 찢겨졌는지 군복 여기저기가 누더기처럼 되어 있었고, 군데군데 살이 파여 있었다.

“크아아!”

우두머리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번에 봤던 그 스피드에서 더 상승된 수준이었다. 대체 녀석은 어디까지 강해지는 걸까.

커다란 덩치 때문인지 자잘한 녀석들이 좌우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우두머리가 지나간 자리에는 녀석들의 사지가 아무렇게나 잘려져 있었다.

녀석의 힘을 감지했는지 박 중사와 남자가 동시에 앞으로 달려 나갔다.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의 두 사람이지만 보통 내기가 아니기 때문에 기대해 볼만했다.

“쉬는 시간도 없네. 제기랄!”

우리는 녀석들에게 총알 세례를 퍼부었다. 녀석들은 하나 둘 쓰러졌지만 마음은 점차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철컥. 동생의 총이 말썽이었다. 노리쇠가 완전히 전진되지 않은 상태로 총알을 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노리쇠 부분을 다시 제대로 맞춰 끼우고는 탄알 집을 끼워 장전을 했다. '젠장!' 그렇게 말한 동생은 다시 총알을 퍼붓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바닥에는 녀석들의 시체가 쌓여갔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반대편 통로로 이동했다. 이 하사와 김 상병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퍼억. 그때 뭔가 빠르게 날아가 벽으로 부딪혔다. 고개를 돌려보니 남자가 피를 토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다시 이어지는 타육음. 설마 했지만 박 중사까지 당해버린 상태였다. 과연 우두머리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크아아!”

우두머리는 박 중사와 남자를 보며 거친 포효를 했다. 둘의 공격이 아주 헛되지는 않았는지 녀석의 한쪽 다리가 괴상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거기다 몸 여기저기에는 자잘하고 커다란 상처가 즐비했다.

“쿨럭. 쿨럭.”

그러나 두 사람의 상처가 더 심각했다. 도와주고 싶지만 이미 녀석들이 두 사람을 에워싼 상태였다. 총을 쏴야 하는 건가? 그럼 저 두 사람에게도 피해가 갈 텐데? 이대로 녀석들에게 먹힐 바에 고통 없이 보내주는 것이 최소한의 배려인걸까.

“지독한 새끼들…….”

그렇게 중얼거린 우두머리는 우리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방아쇠를 거칠게 당겼다.

"크크크크."

우두머리는 몸을 굴려 총알을 피했다. 그러나 온전히 피하지는 못했는지 등과 옆구리 쪽에 총알이 박혔다.

“크아아아아아아!”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소리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뛰어!”

누군가 반대쪽 통로로 뛰기 시작하자 모두 그쪽을 따르기 시작했다. 박 중사와 남자는? 살짝 고개를 돌려 동그랗게 에워싸인 공간을 바라보았다. 아직 죽지는 않았는지 괴물들의 시체가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조금만 버텨줘…….”

서둘러 통로 쪽으로 몸을 틀었다. 이리로 가면 해결책이 나오는 건가? 저 놈들을 전부 막아낼 수 있는 건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너무 큰 고비에 직면해서인지 몸이 지나칠 정도로 뜨거웠다.

“어딜!”

그러나 우리를 그대로 놔둘 우두머리 녀석이 아니었다. 우두머리는 네 발로 기어오며 추격해오기 시작했다. 제길! 다리 한쪽이 뒤틀렸는데도 저렇게 달릴 수 있단 말인가?

“빨리 와!”

동생은 나를 보며 소리쳤다. 그 옆으로는 이 하사와 김 상병이 주사기를 들고 있었다. 보라색의 액체. 그게 녀석에게 치명상을 준다는 건가? 좋아, 일단은 내 다리를 믿어보는 수밖에 없어.

동생과 준우 아저씨가 소총을 겨누며 몸을 숙이라는 수신호를 보낸다. 망설일 것 없이 몸을 숙였다. 총알은 그대로 내 몸 위를 통과해 우두머리 녀석에게 향했다.

푸푸푹. 둔탁한 소리와 함께 우두머리 녀석은 잠깐 멈칫했다. 이때다!

“크워어어!”

내가 멀어지는 것을 눈치 챈 녀석은 빠르게 뛰어오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김 상병과 이 하사는 통로 옆에 찰싹 붙어 주사기를 쥐었다. 남은 사람들은 녀석에게 정면을 보이며 소총을 겨누었다.

우리는 동시에 소총을 겨누었다. 녀석의 시선을 돌려야 두 사람의 작전이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꿀꺽. 긴장하지 마. 이진성. 평소대로 하던 대로…… 그래. 그렇게 방아쇠를 당겨. 지금!

“으, 은혜야!”

동생의 목소리에 우리는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졌다. 어느 틈에 나타난 건지 은혜가 통로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우두머리는 더욱 빠른 속도를 내어 은혜에게 다가갔다.

“은혜야!”

약속이라도 한듯 우리의 몸이 동시에 튀어나갔다. 막아야 해. 놈에게 은혜를 넘겨줄 수는 없어. 절대로!

"크아아!"

우두머리 녀석과 금방이라도 닿을 듯한 거리였다. 이대로라면 은혜가 위험했다.

“이 하사!”

아저씨는 이 하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이 하사는 갈등하는 듯 주사기와 은혜를 번갈아 보았다. 분명 우두머리가 은혜를 덮칠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김 상병…… 김 상병에게 맡기면 되지 않나? 뭘 망설이고 있는 거지?

“이 하사!”

이 하사는 주사기를 건빵 주머니에 넣고 은혜에게 뛰어 들었다.

“크오오!”

흥분한 우두머리 녀석은 손을 뻗어 이 하사를 쳐냈다. 슈웅.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이 여기까지 들렸다.

퍼억. 그러나 날아간 것은 이 하사가 아니었다. 빠른 속도로 튕겨져 나가 힘없이 굴러다니는 하나의 물체. 익히 보던 체구……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인 남자였다. 이 하사는 은혜를 가로채 우리에게 달려왔다.

“빌어먹을 놈들! 어디까지나 발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겠나!”

우두머리는 흥분한 듯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다시 접근하기 시작했다. 워낙 빠른 속도라 타이밍을 못 맞춘 김 상병은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제길! 망설일 것 없이 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괴성을 지른 우두머리는 몸을 옆으로 굴리며 다가왔다. 그러나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는지 몸에서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크아아!”

녀석의 단단한 두 팔이 위로 올라갔다. 그대로 내리칠 기세였다.

“흡!”

그것을 감지한 우리는 빠르게 산개하여 다른 방향으로 몸을 굴렀다.

콰앙! 목표를 잃은 우두머리의 공격이 지면을 강타하자 엄청난 소음과 함께 바닥이 푹 꺼졌다.

곧 미세한 돌조각들이 살갗에 닿으며 작은 생채기들을 냈다. 그러나 우두머리에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녀석은 바로 옆으로 구른 한 군인에게 다가갔다. 군인은 소리를 지르며 우두머리에게 총알 세례를 퍼부어댔다.

두두두두.

최후의 일격에 잠깐 멈칫하던 녀석은 그대로 몸을 틀어 군인의 몸을 찍어버렸다.

퍼억! 소리와 함께 군인의 총에서는 더 이상 불빛이 반짝이지 않았다.

콰쾅!

그리고 이어지는 폭발음. 수류탄인가? 저런 충격에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건가? 몸을 움찔거린 우두머리는 걸레처럼 후들거리는 손을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빌어먹을 놈아!"

내 사격을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 총알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우두머리는 몸을 이리저리 틀며 도망가기에 바빴다.

“크오오오!”

이내 결심을 했는지 후들거리는 손의 살을 단단히 잡고 그대로 떼어 내기 시작했다. 쩌적. 쩍. 끔찍한 소음과 함께 우두머리는 커다란 괴성을 질렀다. 곧 단단한 살을 뜯자 허옇고 단단한 뼈가 드러났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뿌득. 뿌득.

우두머리는 손가락 마디마디 뼈를 잘게 뜯어냈다. 그리고는 그대로 몸을 틀어 접근하기 시작했다.

푸슉.

몰아치는 총알들 사이로 뭔가가 빠르게 지나갔다.

“끄아악!”

비명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이 하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있었다. 명치 부분에 박힌 단단한 뼈…… 정말 지독한 녀석이었다.

“으아악!”

상태가 안 좋은 한 남자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앞으로 쓰러졌고, 우민 형 역시 남은 팔뚝에 뭔가가 박힌 채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서서히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며 우두머리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곧 녀석은 천천히 원을 그리며 접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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